• 임중도원(任重道遠): 임무는 막중한데 갈 길은 멀다.
  • 집권 초기 높은 지지율은 ‘만족’이 아니라 ‘기대감’이었다
  • ‘데드 크로스’, 일희일비할 필요 없지만 미래 세대 이탈은 뼈아파
  • 아직 떠나지 않은 30~40대, 부동산/교육 정책부터 다시 짜야
  • 사회경제 개혁은 이해집단 첨예해 반드시 패키지로 추진해야
  • 위기의 핵심은 단기 경제성과보다 공정사회 방향 상실
  • ‘야당 탓’이지만 ‘야당 탓만’ 해서야: 산안법 통과 안 되면 산재 못 막나
  • 행정부 힘은 생각보다 크다: 관료집단 움직이게 해야
  • 문제는 확고한 방향, 그것을 실현할 예산, 그리고 관료 동원
  • 부패권력 무너뜨렸지만, 새로운 사회질서 못 만든 4.19
  • 미완의 촛불혁명, 정치-사회 개혁 주체 키워야

1960년 부정선거로 촉발된 4.19로 이승만 정권은 붕괴되고 부정축재자들이 대거 구속됐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사회 질서와 이념을 구축하는데 실패했고, 이듬해 5.16으로 이어졌습니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이제 집권 3년차를 맞이합니다. 김동춘 교수는 보수 야당과 언론의 발목잡기와 흔들기에 문재인 정부가 촛불혁명의 방향성마저 잃을까 우려하고 있습니다. 김동춘 교수는 행정부의 능력은 생각보다 크지만 별로 진전된 개혁이 없다면서 입법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관료 사회가 움직일 수 있게 확실한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편집자>

[김동춘 / 성공회대학교 교수, 민주주의연구소 소장]
2018년 남북한은 전 세계의 뉴스메이커였다.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최초의 북미정상회담 자체가 세계를 깜작 놀라게 할 만한 뉴스거리였다. 한반도의 역사에서 보더라도 올 해는 분단 70년 이래 가장 큰 사건이 터진 해다. 문재인 정부는 종전선언을 통해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돌려놓기 위해 미국, 북한 사이에서 적극적인 중재자 역할을 수행했다. 남북 양측은 한반도 비핵화에 합의를 했고, 북한은 핵실험과 미사일 실험을 중단했고 동창리 실험장을 폐쇄했으며, 미국은 한국과의 훈련 연기, 군사훈련을 중단하거나 축소했다.

남북한 간의 교류와 평화는 남북한 정치사회 모두를 변화시키게 될 것이고, 남북한을 완전히 새로운 국가로 거듭나게 할 것이다. 한반도의 두 국가는 식민주의, 전쟁, 분단을 겪었기 때문에 정상국가로 서지 못했다. 그래서 올해의 이 평화 무드는 당장 통일로 가는 길은 아니더라도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경제개방의 길로 가게하고, 남한을 탈냉전 평화국가로 가게 하는 가장 중요한 초석이다. 즉 한반도의 평화의 결정적인 열쇠는 미국과 중국이 쥐고 있지만, 문재인 정부는 그 틈새에서 큰 역할을 했다.

물론 미국은 아직 그에 상응하는 대북 경제재재를 완화하는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고 트럼프 행정부도 약간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트럼프의 미국, 더 정확히 말하면 미국의 실질적인 권력체인 상하원과 그들을 움직이는 기득권 세력이 움직이지 않고, 중국과 일본이 협조하지 않으면 남북 관계의 진전을 큰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다.

사실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평화 드라이브도 촛불이라는 동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지만, 이처럼 국민 다수와 여론이 전폭적으로 지지하더라도 국제정치에서는 우리가 풀 수 없는 장벽이 있다. 사실 국내정치의 장벽은 더 크다. 지금 선거법 개혁을 거부하고 사립유치원 개혁을 위한 관련법 통과를 저지하는 112석의 자유한국당의 존재다. 그래서 국내외 정치 모두에서 문재인 정부는 시험대에 올라선 셈이다. 국제적으로는 고차방정식을 풀 수 있는 외교의 방향이 정말로 중요해졌고, 국내적으로는 국내정치 특히 장단기 사회경제정책의 방향을 제시하고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자 보수언론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데드 크로스’를 넘었다고 외쳤다.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다는 공격이 주를 이루지만 각 부처 장관들의 역할 부재와 소소한 일에 대한 미숙한 처리도 한 몫을 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 하락에 관해 "국민의 마음은 늘 무겁게 받아들이겠지만, 숫자에 너무 매몰되면 더 큰 것을 놓칠 수가 있다"고 말했다. 물론 지지율에 일희일비할 필요 없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큰 것, 그것이 무엇인가, 그 방향을 제대로 잡고 가는 중인가, 지금 어디 쯤 왔으며, 앞으로 갈 길이 어디인가에 답이 선명하지 않다.

집권 초기 높은 지지율은 ‘만족’이 아니라 ‘기대감’이었다

정권 초기 국민들이 문재인 정부를 80% 정도까지 지지한 것은 정책에 만족했기 때문이었을까? 물론 남북화해 평화 드라이브가 높은 지지율과 상관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높은 지지율은 변화와 개혁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되었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것은 박근혜 정부에 넌더리가 난 일부 보수적인 층까지도 문재인 정부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기대가 표현된 것이었다. 여당인 민주당에 대한 높은 지지율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은 박근혜 정권 기에 현재의 집권 민주당이 야당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았으며 개혁의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을 대체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년 동안 여당 지지율이 역대 민주당 지지율 중 가장 높았던 것 역시 변화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런 기대감은 집권 전반부 1년까지는 유지될 수 있으나, 2년차가 되어도 계속 지속되기는 어렵다. 즉 대중들은 정권의 수사나 구호, 대통령의 언술보다는 자신의 삶의 개선 여부로 이 정부를 평가하게 된다. 집권초기 작년에 경제가 특별히 좋았다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그 이후 더 나빠졌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면, 그리고 기대한 만큼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들은 크게 실망하게 될 것이다. 물론 국민들은 중요한 개혁입법은 국회의 몫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원하는 개혁 작업이 야당의 저지 때문에 진척이 없다고 해도 책임은 모두 문재인 정부에게 있다고 본다.

남북관계의 진전은 가장 중요한 성과이지만 그것은 당장 대중들의 삶에 어떤 변화, 가시적 경제적 성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실제 피부로 느끼는 서민 경제의 상태는 매우 심각하다. 연휴 인천공항은 해외여행객으로 북새통이지만, 동네 자영업자들의 매출은 반으로 떨어졌고, 동네 식당과 술집에는 손님이 보이지 않는다. 공시족(공무원시험 준비하는 사람)은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청년 실업과 심각한 고용불안을 반영한다. 이런 문제는 거의 구조적인 것이고, 신자유주의 하의 산업정책 부재의 결과라 볼 수 있지만, 부분적으로는 이 정부의 초기 정책 실패에 기인한 점도 크다. 특히 소득주도 성장을 내걸었으나 집 부자들에게 부당이득을 안겨주고 재산소득에서 엄청난 격차를 벌여 놓은 지난 1년 반 동안의 부동산 정책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모든 성과를 뒤덮을 정도로 치명적인 정책 실패였고, 그것을 만회하기도 쉽지 않다.

경제를 굴러가게 하기 위한 가장 단기적인 처방은 대기업의 투자를 유도하거나 정부의 재정 지출을 늘리는 것이다. 그런데 대기업의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원하는 규제완화, 조세감축, 노동시장 유연화를 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으로 쉬운 선택지다. 그리고 정부의 재정지출을 늘려 각종 SOC 사업을 확충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정책은 단기적인 성과를 거둘 수는 있으나 나쁜 일자리 창출에 그치고, 장기적으로 빈곤과 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정부의 정책 기조와 맞지 않고, 지지자들을 돌아서게 할 극히 위험한 폭탄이다. 쏘시개가 없다고 중요 서류를 태우거나 목이 마르다고 양잿물을 마실 수 없듯이 경제가 어렵다고 대기업 집단의 민원을 모두 들어줄 수는 없는 일이다.

진짜 위기는 방향 상실

그러나 사실 문재인 정부의 위기는 가시적인 경제적 성과를 내지 못한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5대 국정과제인 ‘국민이 주인’이 되고 ‘더불어 잘사는 경제’를 실천하기 위한 과제,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했던 과제, 적폐청산과 공정한 사회의 내용과 방향을 제대로 설정하고 룰을 엄격하게 만들고 집행하지 못한데서 오는 것이라고 본다. 즉 보수세력이 연일 공격하는 경제위기론은 문재인 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다분히 깔려있고, 반대편 사회운동 세력이 주장하는 근본적인 사회개혁의 부재는 매우 적절한 지적이기는 하지만 현재 정치사회적 역학의 제약, 민주당의 한계 때문에 시도하기 매우 어려운 점도 있다. 정책 정당의 부재, 조직 노동의 취약성, 조세저항이나 분배 복지에 대한 국민들의 보수성 등 기존의 불리한 정치 지형 등이 그 제약조건이다.

사실 지금의 한국이 앓고 있는 병은 감기약과 해열제정도로는 턱도 없고 근본적인 체질개선을 통해서만 고칠 수 있다. 사회경제 개혁은 이해집단이 얽혀 있어서 하나를 떼서 추진하면 반드시 큰 혼란이 올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패키지로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는 사회경제정책을 패키지로 추진할 준비, 인력, 청사진이 없는 상태에서 집권했다. 공기업 비정규직 정규직화, 최저임금, 그리고 노동시간 단축은 모두가 대기업의 갑질 개선과 복지, 조세, 재정의 뒷받침이 필요하고, 교육 부동산 문제, 지방 분권, 노동개혁은 긴밀하게 상호 얽혀 있는 문제들이다.

그래서 나는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 하락은 이 정부가 좌경화 혹은 우경화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적폐청산, 사회적 공정성의 요구를 제대로 실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촛불시민의 요구나 문재인 정부의 방향은 사실 이념적으로는 보수적인 것이며, 자유, 법치, 시장경제의 틀을 넘어서지 않는다. 그런데 그 정도의 개혁도 70년 기득권 세력인 자유한국당과 보수세력의 극력 저항에 부딪치기 때문에, 우군을 최대한 동원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우군을 최대한 동원해야

사실 적폐청산은 인적 청산보다는 제도적 청산, 즉 제도개혁으로 완수해야 하고 그 중 상당부분은 입법을 통해서 해결해야 하는 것들이기도 하지만, 비입법적인 힘 즉 관료집단을 확실하게 움직이게 하는 일은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 비입법적 과제의 영역은 매우 넓다. 예산 집행,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와 각종 행정명령, 시행령 개정 등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우리가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겪으면서 대통령과 행정부의 권한이 그렇게 막강한지 새삼 실감했다. 즉 오랜 국가주의-관료주의 전통을 가진 한국에서 행정부의 힘을 동원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엄청나다. 단 행정부의 공무원들이 법 집행을 엄격히 하고 일사분란에게 정권의 의지대로 움직여준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오늘 한국사회 적폐의 정점에는 삼성 등 재벌기업과 금융위, 기재부 등 관료의 유착, 그리고 그 뒤에는 재벌밀어주기, 개발주의, 성장주의 정책기조가 도사리고 있다. 즉 시장에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기업의 시장교란 범죄의 처리라는 사안에서 이 정부가 강조하는 적폐청산이라는 의제와 ‘더불어 잘사는 경제’라는 ‘중도적’, ‘개혁자유주의적’ 개혁국정 과제가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경제살리기 명분으로 기업(주)에 과도한 특혜를 주었거나 각종 감세 혜택을 주었거나 범법을 눈감아주었던 적폐를 청산하는 일이다. 그런데 삼성 바이오에게 80억 원의 과징금을 물리고 상장을 그대로 유지한 데서 이 정부의 적폐 청산 작업의 가장 큰 굴절이 드러났다. 경제안정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삼성 계열사라면 분식회계까지 눈감아줄 수 있다는 신호를 줌으로서 다른 모든 경제 영역에서의 법치와 공정의 실현이 어렵게 되었다. 24살 청년 김용균을 먼지 덮어쓴 채 죽게 만든 것은 불법파견, 기업의 책임 부재, 위험의 약자에게 몰아주기였다. 대기업이 이윤을 올리는 만큼 법적, 사회적 책임을 지게 만들지 않으면 공정이고 시장경제고 모두가 헛소리에 불과하다.

산안법 통과 안 돼 산재 못 막으면 노동부는 왜 있나

물론 촛불시민이 요구하는 국민주권 실현, ‘공정사회 건설’ 그리고 사회개혁 요구를 문재인 정부 5년 내에 실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촛불혁명에서 주장된 수많은 요구들은 구조개혁을 통해 지속적으로 추진해야할 성질의 것이고 국민들도 그것을 잘 알고 있다. 문제는 확고한 방향, 그것을 실현할 예산, 관료들을 동원할 수 있는가이다.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에 산재사망사고 감소 대책 아무리 마련해도 위험의 외주화와 불법하도급을 단호하게 막지 않는다면, 이런 정책안은 구호에 불과할 것이다. 산업안전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계속 되는 산재사망을 막는 것이 불가능할까? 노동부는 왜 존재해야하는가?

문재인 정부가 제2의 민주화 정부가 아니라 노무현 정부 2기가 된다면 우리 국민은 절망에 빠질 것이다. 정권초기부터 문재인의 청와대는 우리사회의 힘 있는 세력을 건드리는 일은 대체로 회피하고, 산업정책, 금융정책, 교육정책, 노동정책 등 우리사회의 인프라, 사회경제의 체질을 개선하는 해묵은 작업은 거의 착수조차 하지 않았다. 국민연금 개편 안처럼 아직 목소리 없는 다음 세대에게 짐을 넘기는 것도 참 실망스럽다. 정치적 리더십이 약하면 익숙한 관료적 방식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일은 지지율이 45%이하로 떨어지는 일 만이 아니다. 미래세대인 20대가 등을 돌리고 있다는 사실이며, “대한민국을 저주합니다”라고 부르짖는 청년 비정규 노동자 김용균의 어머니와 같은 사람이 우리사회 바닥에 숱하게 깔려 있다는 사실이다.

미완의 촛불혁명 완수할 정치-사회 주체 키워야

교수사회가 2019년 사자성어로 내건 임중도원(任重道遠)이라는 말처럼 임무는 막중한데 갈 길은 멀다. 개혁입법이 야당의 반대로 저지된다면 주체를 다시 구축하고 자원을 최대한 동원하는 일이라도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애초의 국정목표를 변경하지는 어렵겠지만, 남은 기간의 국정 목표와 과제를 재설정하고 국민적 공론을 모아야 한다. 아직 마음이 완전히 떠나지 않은 30~40대를 잡기 위해서 부동산/교육 정책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중도우파까지 포함하는 지식인 집단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어야 한다. 마음이 돌아서기 시작한 사회운동세력에게는 왜 이 정도 밖에 할 수 없는지 대화를 통해 설명해야 한다.

4.19 이후 국민들과 민주화 운동은 독재정권과 부패한 권력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으나 대체로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은 사회개혁 운동, 정치개혁 운동, 나아가 새 질서 창출운동이나 새로운 사상적 대안을 만드는 운동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촛불혁명은 미완이다. 주체의 취약성 때문이다. 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국민들을 다시 패배감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소소한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일, 그리고 구조적으로는 개혁의 정치 사회적 주체가 만들어 질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시민사회의 자력화를 가능하게 하는 각종의 사회적 기반 마련 작업, 그리고 정치적 주체가 만들어 질 수 있도록 하는 선거법 개정은 제대로 된 개혁을 위한 가장 중요한 정지작업이 될 것이다.

김동춘 / 성공회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