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력 좋은 아이돌은 많다. BTS의 차별점: ‘흙수저’ 성장 스토리
  • ‘공정사회’에 대한 밀레니얼 세대 시대정신 반영
  • 약점을 강점으로: SNS를 통한 팬들과의 자유로운 소통
  • 혼자만 좋아하지 않는다. ‘BTS는 우리가 키운다’
  • 미국에서 BTS 정치 지도를 그려본다면?
  • 경제효과 크지만 ‘K팝-한류’에 가둬선 안돼
얼마 전 “‘방탄소년단(BTS)'의 생산 유발 효과가 4조 원”이라는 연구가 결과가 나와 화제였습니다. K팝, 아이돌에 관심이 없는 분들도 BTS 인기가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엄청나다던데, 왜 그런 거야?’라는 궁금증은 한 번씩 품어봤을 겁니다. 정답은 “좋으니까” 이겠죠. 다만 취향의 문제이기에 ‘나는 도통 뭐가 좋은지 모르겠던데’라는 반응도 당연합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 BTS의 인기 이유를 이성적으로 짚어볼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한국수출입은행 김윤지 연구위원이 여러분을 BTS 신드롬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BTS를 통해 밀레니얼 세대의 시대정신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방송사의 연말 시상식 시즌이 돌아왔고 BTS의 열띤 무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신 뒤에는 TV 채널을 돌리다 BTS의 무대에 눈길이 멈춘 당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편집자>

[김윤지 /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위원, <박스오피스 경제학> 저자]2018년을 수놓은 인물 가운데 딱 하나만을 꼽아야 한다면 누가 좋을까. 아마도 ‘방탄소년단’을 떠올릴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2013년 7인조 남성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한 이들은 2015년 처음 미국 빌보드 차트에 진입한 이후 K팝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웠다. 단지 앨범만 성공한 것이 아니라 ‘아미(ARMY)'라는 글로벌 팬덤을 형성하며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에 힘입어 2018년 5월과 8월에는 빌보트 차트 1위를 연속으로 거머쥐며 세계적 아이돌로서 입지를 다졌다. 10월에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커버를 장식했고, 12월에는 타임이 선정하는 ‘올해의 인물’ 독자투표에서는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해외 음악평론가들은 이들에게 “21세기 비틀즈”라는 찬사를 던지고 있다. 방탄소년단 신드롬이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여겨질 만큼 이들의 위상이 높아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어떻게 이런 성공을 거머쥐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특히 최근 아이돌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기성세대들에게 이들의 성공은 도통 이해불가 측면들이 많다. 물론 이들의 성공이 전반적인 K팝 성공 위에 세워진 것은 맞다. 그러나 이들의 성공은 기존 K팝의 테두리를 넘어가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그럼 무엇이 이것을 가능하게 했을까.

유물론적 세계관을 잠시 빌려 온다면,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 변화된 시대정신과 변화된 인적자원, 변화된 인프라, 변화된 시장이라는 토대의 변화가 이들의 성공을 가능하게 했다. 어쩌면 이런 변화가 없었다면 이들도 선배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방탄소년단의 성공에서 무언가 메시지를 찾고 싶다면, 이런 변화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 짚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키워드 “흙수저“, 세대를 관통하다

처음 이들이 성공 가도를 달리기 시작하자 많은 분석이 쏟아졌다. 빼어난 외모, 칼군무, 현란한 랩 등이 거론되기도 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적어도 우리나라 K팝 아이돌이 되려면 이 정도는 필요조건으로 갖추고 있고, 이들보다 이런 점들이 뛰어난 그룹도 많았다.

이들이 다른 아이돌들과 차별화된 점이 있다면 ‘흙수저’라는 시대적 키워드를 선점했다는 점이다. 이미 우리나라 K팝 시장은 SM, YG, JYP라는 3대 기획사 중심으로 산업화를 이루고 있다. 굵직한 스타들을 키워낸 경험이 있는 3대 기획사가 아니면 거물 신인이 탄생하는 것이 거의 힘들 정도로 이들의 힘은 막강하다. 방탄소년단은 이런 3대 기획사 출신이 아닌 탓에 시작이 평탄치 않았고, 그래서 ‘흙수저 아이돌’이라는 닉네임을 달게 되었다.

‘흙수저’라는 키워드는 이미 세대를 관통하는 키워드였다. 청소년 세대들 사이에는 이미 우리 사회의 기회가 ‘공정하지 않아’, ‘능력’이 출중해도 성공하기 힘들다는 현실 인식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들에게 아이돌은 이런 사회의 마지막 보루이기도 했다. 집이 가난하고, 공부를 못해도 능력만 있으면 스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많은 아이들의 꿈이 ‘아이돌’로 자리잡아 가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돌 세계에서도 ‘흙수저’라 성공하기 힘들다는 현상이 나타나자 ‘불합리’하다는 공감대가 나타났다. 이들은 방탄소년단이 장안에서 랩으로는 평정을 했다는 RM 등 빼어난 멤버를 갖추고도 ‘공정하지 못한 출발점’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고 느꼈다. 정권교체의 시발점이 된 사건이 ‘특례입학의 불공정함’이었듯, ‘공정 사회’에 대한 시대의 감수성은 이미 높았다. 변화한 시대의 감수성이 새로운 팀과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SNS'·‘유튜브’ 인프라 혁명, 집단적 콘텐츠 소비문화와 만나다

방탄소년단의 성공에 빼놓을 수 없는 요인 가운데 하나가 페이스북, 유튜브 등 SNS 인프라 혁명이었다. 아마도 이들 기획사가 선택한 전략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점을 꼽으라면 SNS 활용이라 할 수 있다. SNS는 최근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반에 걸쳐 어마어마한 혁명을 가져왔다. 10대들은 검색 사이트가 아니라 유튜브에서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찾는다. 초등학생들의 미래 꿈 순위에 유튜버가 5위에 올랐다는 사실도 이를 보여준다.

물론 많은 스타들이 SNS로 팬들과 소통을 해오기는 했다. 하지만 대형 기획사에 의해 ‘제조’되어 엄격하게 ‘관리’당하는 아이돌들은 SNS 활동에 제한을 받았다. 절제하지 못한 언어와 사진 등으로 크고 작은 사건들이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방탄소년단은 이 공간을 십분 활용했다. 이들은 팬들이 지루해 질 틈을 주지 않으며 자신들의 활동과 삶을 SNS에 그대로 노출시켰다. 이 공간에서 흙수저 아이돌의 고민, 또래들이 느낄 10대 이야기를 풀어놓았고 이것들을 모아 노래 가사로 전환했다. 팬들은 열광했다. 이미 정서적 공감대를 높인 ‘우리’ 오빠들과 직접 나눈 ‘성장 이야기’가 노래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들의 SNS 활용은 두 가지 차원에서 주목할 점이 있다. 첫째는 최근 팬덤이 집단적 콘텐츠 소비문화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어떤 스타를 좋아하면 나 혼자 좋아하고 소비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특정한 콘텐츠를 집단적으로 소비하면서 동질감과 소속감을 확인하고, 직접 그 콘텐츠를 키우고 성장시키는 측면이 강해졌다. 팬클럽이 단순히 환호하며 스타들을 따라다니는 존재가 아니라, 스타를 만들고 성장시켜 보호하는 역할까지 한다는 의미다.

이러한 역할을 하려면 SNS 등을 통한 정서적 교류가 필수적이다. 스타가 정확히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떤 상황인지를 알아야 팬들의 의견 제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제 팬들은 특정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기획사를 대신해 스타의 보호자로 나서기도 한다. 최근 방탄소년단 멤버의 티셔츠로 일본에서 문제가 발생하자 팬들이 집단적으로 나서 팩트체크, 언론 반응, 근대사와 정치적 맥락까지 망라한 백서를 국영문으로 발표한 사례 등이 이런 현상을 보여준다.

두 번째는 K팝이 우리나라에서는 주류 대중문화지만 세계 시장에서는 철저하게 마이너한 팬들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강남스타일의 뮤직비디오 조회 수가 세계 기록을 세운다 하더라도 K팝이 세계 음악시장의 ‘주류’가 될 수는 없다. 때문에 해외 팬들에게 접근할 때에도 주류적 속성이 강한 대중 미디어보다는 마이너한 집단을 타깃팅해 소통할 수 있는 수단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SNS는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다양한 교류 통로로 기능하며 해외팬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효율적인 도구였다.

밀레니얼 세대 부상으로 달라진 해외 시장

그럼 이렇게 우리만 변하면 가능한 이야기였을까? 그렇지 않다. 시장도 변했다. 우리는 과거에도 숱한 가수들을 미국으로 보내왔지만 반응은 늘 신통치 않았다. 하지만 시장의 인구 구성과 취향이 바뀌면서 새로운 틈이 발생했다. 바로 밀레니얼 세대의 부상이다.

스웨덴의 문화경제학자 멜란더 연구팀의 ‘음악 선호도에 대한 미국인 취향 지도’ 연구가 이런 실마리를 보여준다. 연구팀은 미국인의 정치경제적 특성과 인구통계학적 특성, 음악 취향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해 실증 연구를 진행했다. 이를 위해 음악을 크게 ‘부드러운 음악’, ‘소박한 음악’, ‘격렬한 음악’, ‘세련된 음악’, ‘현대 음악’ 등 크게 5개의 범주로 나눠 인구 특성에 따른 취향을 조사했다.

분석 결과, 소득과 학력, 창의성 지수가 높고 인구밀도도 높은 도시일수록 포크, 블루스, 재즈, 클래식, 세계 음악 등 ‘세련된 음악’과 랩, 소울, 레게, 펑크 등 ‘현대 음악’을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두 취향이 강한 도시에서는 백인 비율과 기혼자 비율은 낮고, 흑인 비율과 게이 비율은 높았다. 정치적으로는 민주당 지지도가, 심리적으로는 ‘개방성’이 높았다. 우리가 흔히 ‘힙스터’라 일컫는 사람들이 많은 지역이었다.

반면 가스펠, 컨트리 음악 등 ‘소박한 음악’과 헤비메탈 등 ‘격렬한 음악’에 대한 취향이 강한 도시는 저학력, 블루칼라 계층이 많은 반면, 이민자, 게이, 싱글맘, 예술 종사자 비율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소박한 음악’은 정치적으로는 공화당 지지도가, 심리적으로는 ‘성실성’이 강한 층이 많은 지역에서 강세를 나타냈다.

이 결과에서 방탄소년단의 지지층도 유추해 볼 수 있다. 방탄소년단의 음악은 장르로는 랩, 지역으로는 세계 음악에 속하므로 ‘현대 음악’ 또는 ‘세련된 음악’에 해당한다. 따라서 인구밀도가 높은 대도시, 소득과 학력이 높은 층 가운데 미국 이외의 음악에 마음을 여는 개방적인 사람들이 선호층일 가능성이 높다. 컨트리 음악이나 헤비메탈을 즐겨 듣는 백인 공화당 지지자들이 방탄소년단에 관심을 갖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현대 음악’과 ‘세련된 음악’ 취향 특성에서 ‘밀레니얼 세대’를 떠올렸음직하다. 밀레니얼 세대는 닐 하우와 윌리엄 스트라우스가 1991년 출간한 ‘세대들, 미국 미래의 역사’에 처음 등장한 단어다. 이 책에 따르면 미국인 세대는 크게 1955~1964년에 출생한 베이비부머, 1965~1979년에 출생한 X세대, 그리고 1980~2000년에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로 나뉜다.

밀레니얼 세대는 요즘 미국을 설명하는 주요 키워드 가운데 하나다. 이들은 기술이 급속도로 발달한 사회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인터넷 등 정보기술에 능통하다. 방탄소년단의 주 소통 통로인 SNS와 막역한 셈이다. 이들은 정치사회적으로 욜로(YOLO), 샌더스 지지, 월가 점령 등 다양한 특성을 나타내며, 무엇보다 다양한 문화 공존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 이들이 미국 인구 구성에서 베이비부머를 넘어서는 최대 세대로 부상했다. 문화상품에 대한 소비력도 커 이들이 무엇을 택하는가가 시장의 향방을 좌우한다. 방탄소년단은 이런 변화에 맞춰, 이들이 가장 익숙한 방식으로 소통하고, 이들의 음악을 듣는 것이 ‘힙하다’는 느낌을 주며 접근했다. 방탄소년단의 매력도 중요했지만 이들을 받아들일 토대도 이전과는 달랐다는 이야기다.

한류의 경제효과와 정치적 딜레마

방탄소년단의 성공에 많은 사람들이 한류의 성공, K팝의 성공이라며 즐거워한다. 실제로 한류가 확산되면 연관 경제효과도 크다. 필자의 책 <박스오피스 경제학>에서도 밝혔듯, 과거 10여 년의 우리나라 수출 데이터로 추정했을 때 한류 수출액 증가는 관련 소비재 수출액 증가를 4배 정도 견인하는 것으로 검증되었다. 한류 여파로 문화상품 수출액이 약 100만 원 늘어나면, 의류·가공식품·화장품 등과 같은 연관 소비재 수출액을 400만 원 정도 늘리는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다.

예전부터 서로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고 있으면, 즉 ‘문화적 근접성’이 높으면 서로 교역량이 많다는 연구들이 있었다. 단 과거에는 주로 동일한 언어나 종교를 가졌거나 같은 식민지 경험을 하는 것과 같은 ‘선천적’ 문화에 주목했다. 이런 나라들은 서로 멀리 있어도 비슷한 문화 때문에 취향과 선택이 중요한 소비재 교역을 많이 한다는 것이었다. 예컨대 영국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들끼리 서로 홍차 교역을 많이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최근 미디어 발달로 ‘후천적’ 문화를 공유할 때에도 문화적 근접성이 높아져 교역에 영향을 준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같은 노래, 드라마, 스타를 보면서 서로 문화적 친밀감이 높아지면 취향이 중요한 소비재를 선택할 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한류가 파급된 지역에서 한류 콘텐츠와 스타를 통해 노출이 많이 되는 의류, 화장품, 가공식품의 수출액이 늘어나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이런 결과는 현재 우리나라 수출 구조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제까지 우리나라 수출은 중간재 중심으로 성장해왔다. 그런데 최근 중국 등의 추격으로 주력 수출품의 경쟁력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소비재 등 다양한 분야로 수출 품목을 다변화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는데, 한류가 이런 과정에서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최근 화장품 수출이 높은 성장세를 보인 것과 같이 한류가 우리 수출 시장과 품목을 다변화하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정 산업을 국가 이미지와 너무 밀접하게 연결할 때 우려되는 폐해도 있다.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중국의 ‘한한령’이 대표적이다. 한국에 제재를 가하고 싶었던 중국은 ‘한류’를 한국의 대표 상품으로 지목했다. 그 결과 한국의 콘텐츠가 정식 통로로 중국에서 유통되는 것은 아직까지도 차단된 상태다. 전 세계를 휘젓는 방탄소년단도 중국에서 공연할 날은 요원하다.

때문에 국가대표 산업으로 ‘한류’를 너무 과하게 내거는 것도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정치 외교 이슈의 볼모가 될 가능성도 높고 장기적으로는 산업의 성장에도 악영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방탄소년단이 ‘K팝이지만 K팝 범주를 넘어선’ 스타로 도약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다. 세계를 제패했다는 성취감을 넘어, 더 차분하고 더 장기적으로 우리의 문화 자산 활용을 생각하는 게 중요해졌다는 의미다.

김윤지 /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