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를 일컬어 인류가 지구의 운명을 바꾸는 '인류세'(Anthropocene)라고들 한다. 힐난이 담겨 있다. 오염의 주범인 인류는 지구 환경과 기후를 바꾸고 그것은 대지와 바다의 생태계를 위협한다. 반대편에서 인류 최초의 직업이라는 정원사(Gardener)들은 오래전부터 정원을 통해 인위적 문명의 해독을 추구해 왔다. 환경에 영향을 미치되 생태와 상호 조화하는 긍정적 방향이다.오늘 소개할 프랑스 정원 세 곳 중 첫 번째는 인간이 갖는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과 공격 심리를 덜기 위해 만든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원'이다. 두 번째 정원은 설계자인 질 클레망이 '움직이는 정원'을 만들어 놓고 원칙 없는 정원사가 미관을 해칠까 봐 정원 관리의 매뉴얼을 만드는데 노심초사했다는 숨은 얘기가 있다. 두 정원 모두 파리 시내에 있다. 세 번째 정원은 프랑스 3대 미성(美城)의 대표격인 쇼몽 성에 있다. 마침 쇼몽 성에서 열린 정원 페스티벌을 찾았다. [편집자 주]

✔ 베르사유 궁에서 활짝 핀 세계 최고의 정원 예술
✔ 프랑스·영국·일본의 정원을 한눈에 보는 알베르 칸 정원
✔ 조성된 이후에도 끊임없이 변하는 정원… 주역은 정원사
✔ ‘회복력 있는 정원’ 주제로 쇼몽 정원 페스티벌도 열려
✔ 인간이 망친 자연을 정원 창조의 철학과 기술로 되살릴 수 있다면

 

알베르 칸 박물관의 일본식 정원 (사진: 서정완)

 

프랑스는 대체적으로 기온이 온화하며 저지대 평야가 발달해 있다. 화려하고 웅장한 프랑스 정원은 이러한 환경에서 절대 왕권 당시의 위엄이 더해져 피어난 결과물이다. 최근 조경, 정원 전문가들과 함께 파리 여행을 다녀왔다. ‘정원’을 테마로 프랑스 파리와 인근 지역의 여러 정원을 둘러보았고, 그중 세 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프랑스·영국·일본의 정원을 한눈에, 알베르 칸 정원

19세기 은행가 알베르 칸(Albert kahn)은 자신이 모은 재산을 의미 있는 일에 사용하고자 했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들은,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봤다. '이해와 소통에는 근거가 필요하다'는 이 생각은, 그의 가정교사이자 평생의 친구였던 앙리 베르그송의 영향으로 보인다. 돈을 벌자 그는 이의 해결에 보태기 위해  ‘Les Archives de la Planète’(지구 기록 보관소)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50여개 국가에 사진가들을 보내 사진과 영상 등을 찍어오도록 했으며, 시작부터 종료까지 22년이 걸렸다. 촬영한 72,000점(183,000미터)의 자료는 현재, 당시의 사람과 문화의 다양성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이 자료들은 알베르 칸 박물관을 설립하는 데에 기초가 되기도 했다.

필자가 유학하던 10여 년 전에 비해 박물관 건물의 크기는 더 커지고 현대적으로 바뀌었다. 건물 내에 위치한 전시 공간을 한 바퀴 둘러본 후 야외 정원에 들어서는 것을 추천한다. 4ha(40,000㎡)가 넘는 야외 부지에는 흔히 세계 3대 정원 스타일로 알려진 영국식, 프랑스식, 일본식 정원이 알차게 조성되어 있다. 이 정도면 독일식, 이슬람식 정원을 제외하고 세계 톱클래스급이다. 달리 말하면 굳이 움직이지 않고서, 세계의 여러 정원을 한 장소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이 정원의 큰 장점이다.

 

내부 전시 공간 (사진: 서정완)

 

정원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둘러볼 경우 가장 먼저 만나게 될 정원은 영국식 정원이다. 키가 쉽게 가늠되지 않을 만큼 울창한 교목 사이로 유선형의 산책로가 이어지는데, 대부분의 풍경은 마치 자연에서 흔히 발견되는 곡선의 형태를 띤다. 이곳은 더운 날에도 나무들의 빼곡한 수관이 하늘을 가려준 덕분에 시원한 그늘에서 산책하는 재미를 준다.

정원의 일부는 알베르 칸이 어린 시절 자란 보쥬(Vosges) 숲을 테마로 했는데, 산악 지방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공간의 높이를 올리고 돌무더기를 배치하는 풍경을 재현했다. 정원의 일부는 '황금 숲'을 주제로 구성하였다. 주제 맞게 잎이 황금색을 띠는 침엽수를 선택했고, 나무 아래로는 초화류(꽃이 피는 풀)로 구성된 초원을 만들었다.

 

영국식 정원 (사진: 서정완)

 

영국식 정원과 대비되는 프랑스식 정원은 부지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 강력한 축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이 강조되는 전형적인 프랑스 정원의 모습이다. 다양한 색의 장미가 만발하는 장미원과 녹색 카펫을 연상시키는 잔디밭, 단정하게 키워진 유실수(먹을 수 있거나 유용한 열매가 열리는 나무) 등의 요소가 한 치의 어긋남도 용인될 수 없다는 듯 반듯한 모습으로 배열되어 있다.

장미의 경우 어른 주먹보다도 큰 꽃이 달린 경우가 많은데, 꽃의 개수까지 많아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유실수의 경우 나무가 유목일 때부터 가지의 생장을 인위적으로 제어해 네모반듯한 모습을 보이는데, 그것이 단지 시각적인 목적만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가지마다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사람의 키보다 너무 크지 않도록 하는 것은 사람들이 열매를 수확할 때 불편함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프랑스식 정원 (사진: 서정완)

 

프랑스식 정원을 지나면 마지막으로 일본식 정원에 이르게 된다. 정원에 들어서면 인위적으로 반듯하게 조성된 철쭉 언덕과 둥그런 돌을 바닥에 일부 박아놓은 것을 보게 되는데, 이는 일본의 전통을 새롭게 해석한 현대적인 정원 공간이다. 대개 관람객은 개울을 가로지르는 빨간색 다리에 올라서서 사진을 찍곤 하는데, 이는 마치 모네의 정원에 있는 일본식 다리를 떠올리게 한다. 프랑스인들의 일본에 대한 애정이 꽤 오래되었고 지금도 지속되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일본식 정원 (사진: 서정완)

 

자동차 제조회사 부지에 들어선 앙드레 시트로엥 공원

앙드레 시트로엥 공원은 14ha(140,000㎡) 규모의 공원으로 파리 남서부인 15구에 있다. 시트로엥(Citroën) 자동차 제조회사가 다른 곳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파리시에서 매입해 공원으로 계획했다. 1985년 파리시는 해당 부지에 대해 공모전을 개최했고, ‘21세기를 위한 공원’이라는 키워드를 내건 이 공모전은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받았다. 조경가 질 클레망(Gilles Clément)과 알랭 프로보(Alain Provost)의 작품이 공동으로 선발되는데, 클레망은 부지의 북동쪽을, 프로보는 남서쪽을 주로 계획하게 된다.

 

공원 중심에 있는 온실 (사진: 서정완)

 

공원의 중심에는 15m 높이의 온실이 센 강을 바라보고 있고, 그 앞으로 넓은 잔디밭이 이어져 있다. 마치 베르사유 궁전이 높이 위치한 가운데 그 앞으로 정원의 축이 끝없이 이어진 듯한 형태를 연상시킨다. 금방이라도 하늘로 오를 듯한 열기구 아래, 녹색으로 펼쳐진 잔디밭에는 피크닉을 즐기러 온 많은 사람이 있다.

 

잔디밭과 열기구 (사진: 서정완)

 

잔디밭 옆으로 길게 이어진 운하에는 동일한 형태의 구조물이 배열되어 있는데, 이것 또한 베르사유 정원을 비롯한 프랑스 전통 정원에서 발견되는 조각상을 떠올리게 한다. 과거의 전통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계승한 사례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운하의 수면 위에는 오리 가족이 여유롭게 유영하고 있었는데, 어떤 아이가 새끼 오리를 잡으려 했지만 오리는 쉽게 아이의 손을 허락하지 않았다.

 

서쪽 운하와 구조물 (사진: 서정완)

 

운하를 따라 서쪽으로 이동하면 알랭 프로보의 스타일이 확연히 드러나는 공간을 만나게 된다. 강한 직선의 형태와 높이 차이가 그것으로, 공간의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멀리까지 이어지는 직선의 보행로를 마주한다. 공원 이용자가 높은 곳과 낮은 곳을 자유롭게 오가게 하면서 시선의 변화를 추구하는데, 다소 단조롭게 구성된 공간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서쪽 공간 (사진: 서정완)

 

열기구가 있는 잔디밭을 가로질러 동쪽으로 이동하게 되면 클레망이 조성한 공간을 볼 수 있다. 그는 생태를 강조하는 조경가이자 정원사로 ‘움직이는 정원’이라는 개념을 널리 알리고자 노력해 온 인물이다. 정원은 조성된 이후에도 끊임없이 변화하는데, 그 변화의 주역이 정원사라는 점에 그는 특히 주목했다. 이를테면 정원의 잔디밭을 정원사가 어떻게 깎는지에 따라 풍경이 확 달라질 수 있다고 봤다.

‘움직이는 정원’을 찾아 공원 깊숙이 들어갔고, 이윽고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러 종의 야생화가 섞인 초원에서 일부분은 잔디깎이가 지나간 흔적을 보여주고 있었으나 다른 부분은 그렇지 않았다. 매뉴얼이 없는 정원 관리의 경우 절대적으로 정원사에게 정원의 운명은 맡겨지는데, 자칫 이는 정원의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클레망 역시 이 가능성을 인지하였기에 생명 중심의 철학을 교육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그에게 정원은 곧 지구였기 때문에 지구의 정원사인 인간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렇다. 지금은 인류가 지구의 운명을 바꾸는 인류세가 아니던가.

 

움직이는 정원 (사진: 서정완)

 

세계 3대 정원 축제, 쇼몽 정원 페스티벌

영국의 첼시 플라워쇼, 독일의 연방 정원 박람회와 함께 세계 3대 정원 축제로 뽑히는 쇼몽 정원 페스티벌은 매년 주제를 정하고 당선자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영국 첼시 플라워쇼의 경우 후원 회사가 없으면 응모자가 지원하는 것조차 힘든 것과 달리, 쇼몽 정원 페스티벌의 경우 응모작이 당선되면 제작비를 지원해주고 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젊은 예술가들의 참여가 활발한 편이며 참여하는 팀의 전공 분야가 정원뿐 아니라 예술, 건축 등 다양한 경우가 많아 창의적인 작품이 많은 편이다. 또한 작품이 훨씬 도전적이라는 평이다.

축제가 벌어지는 곳은 쇼몽 쉬르 루아르 지역으로 파리에서 남쪽으로 200km 떨어져 있다.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기에는 약간 번거로워 이번에는 차량으로 이동했다. 언젠가 프랑스 중부의 소도시 블루아까지 기차로 이동한 후, 그곳에서부터 쇼몽까지 자전거를 타고 이동한 적이 있다. 이 지역 자체가 '프랑스의 정원'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거기 걸맞게 루아르 강의 풍경은 아름다웠고, 강의 풍경을 즐기며 페달을 밟다 보니 어느새 페스티벌이 열리는 장소에 도달했던 기억이 있다. 쇼몽 성은 인접한 쉬농소 성, 앙부아즈 성과 함께 프랑스 3대 미성(美城)이라고들 한다. 이 성들에는 중세에서 근대로 가던 프랑스의 짙은 러브스토리가 있다. 앙리 2세와 이탈리아 출신 왕비 카트린느 디 메디치, 앙리의 '찐 애인' 프와티에의 다이앤은 쇼몽 성과 쉬농소 성에 살면서 정원을 가꿔 자랑하고, 사랑을 경쟁했다. 앙리가 토너먼트(말 위의 창 싸움) 창에 꿰뚫려 죽으면서 이 이야기는 10여년 만에 끝났다.

올해 쇼몽 정원 페스티벌 주제는 ‘Resilient garden’(회복력이 있는 정원)으로 기후 변화, 생물 위협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쇼몽에 도착했을 때 축제 운영진 중 한 명이 나와, 우리를 친절하게 맞이해주었다. 그는 우리 팀이 오기 전에 서울시에서도 이곳을 방문했다고 알려주었다. 기사를 검색해 보니 서울시에서는 기존의 서울정원박람회를 세계적인 급으로 확대 개최할 계획이 있다고 한다.

총 25개 작품 중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몇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하나, 식물 통로현대의 인간이 많이 사용하는 콘크리트와 아스팔트가 바닥에 깔려 있고, 녹색의 통로가 서 있다. 통로는 버드나무 가지와 함께 덩굴성 식물로 구성됐는데, 이는 자연이 재생 과정을 시작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식물 통로 (사진: 서정완)

 

둘, 타일 정원동양의 전통 재료 중 하나인 점토 타일은 배수를 하거나 빗물을 모으기 위한 목적으로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설계자는 이러한 중국의 전통 재료가 생태적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문화적 가치를 지닌다고 말한다.

 

타일 정원 (사진: 서정완)

 

셋, 참나무 정원정원의 한가운데 도토리 형태의 조형물이 있고 참나무가 의자, 바크(멀칭 재료의 일종으로 나무 껍질을 말린 것) 등 다양한 목적으로 쓰이고 있다. 작가는 지구온난화에 참나무가 잘 적응하고 있으며, 미래에 활용도가 높은 나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참나무 정원 (사진: 서정완)

 

넷, 소금의 노래정원의 바닥에 깔린 하늘색 소재는 유리병 등을 재활용한 것이다. 작가는 해수면 상승으로 해수를 막지 못한다면 이와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식물은 소금에 강한 종으로 구성되었다.

 

소금의 노래 (사진: 서정완)

다섯, 네메시스의 균형그리스 신화에서 네메시스는 균형을 회복하는 여신이다. 이 정원에서는 오뚝이 조형물로 표현됐다. 오뚝이는 앞뒤로 흔들릴 수 있지만 늘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는 것처럼, 작가는 식물이 달성할 균형에 대해 기대하고 있다.

쇼몽 정원 페스티벌의 여러 작품들을 통해 기후위기의 이슈들을 당장 해결할 방법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위기의 심각성과 시급성의 메시지를 대중에게 자연스레 전달하고 대책을 세우도록 촉구하는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한다. 정원의 아름다움에도 취하면서 잠시나마 지구의 거주민으로서 모두의 미래를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 얼마나 멋진 일인가.


글쓴이 서정완은
서울대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베르사유 국립조경학교 최고조경가 전문과정을 수료했다. 삼성물산, 본시구도 등에서 실무를 익혔고 정원 설계 및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순천만국가정원 국가식물원 식재설계, 장성 생활밀착형 숲정원 기본구상 등을 수행했다. 전남대학교에서 정원전문가를 양성하고 있으며, 탄소중립을 위한 정원을 주제로 강연하기도 한다. 월간 <가드닝>에 정원과 여행에 대한 칼럼 ‘Road to Garden’을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