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대체로 미국이 결코 패권을 잃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중국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중국이라는 나라의 수천 년 역사가 패권 경쟁 자체였기 때문에 어떻게 싸워야할지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국의 외교관들은 고사를 인용하며 상대국을 압박 회유하곤 합니다. 어려서부터 초한지, 삼국지 등 수많은 고서를 접해왔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 핵심이 손자병법입니다. 헨리 키신저 이래 미국 엘리트 외교관들 역시 중국을 상대하기 위해 손자병법을 공부합니다. 손자의 병법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을 최고로 치고 있습니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투는 없지만 미국과 중국은 이미 전쟁 중입니다. 손자병법을 알면 현대 중국의 대외 전략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을 정교하게 전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 동양철학 연구자인 황희경 선생을 <피렌체의 식탁>에 모셨습니다. 고전과 역사를 과거에만 가둬두지 않고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해 독자 여러분이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편집자>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가장 좋은 것

세계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에 관한 갖가지 논란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이럴 때, 역사에서 교훈과 지혜를 얻기 위해 현재에 지나치게 매몰된 뉴스와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과거 역사와 비교한다면 어디에서 유사한 지점을 찾을 수 있을까?

신흥 아테네 세력의 성장이 기존 강국 스파르타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켜 발생한 펠로폰네소스 전쟁 전의 시기일까? 아니면 대륙세력(독일)과 해양세력(영국)이 부딪쳤던 1차 세계대전 전야일까? 아니면 1차대전과 2차대전 사이의 간전기(間戰期)일까? 중국의 급속한 부상과 이에 대한 미국의 억제로 야기된 일련의 사태는 어떻게 귀결될 것인가. 트럼프의 당선과 영국의 브렉시트, 그리고 미중 간의 무역전쟁은 전혀 다른 사태 같지만 모두 구질서가 무너지는 신호처럼 보인다.

새로운 질서가 확립되는 과정에서 전쟁을 피할 수 있을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오늘날의 중국과 미국의 관계를 과거 아테네와 스파르타, 혹은 독일과 영국에 투영해보면서 파국을 피할 수 있는 교훈이나 지혜를 찾을 수 있다면 정말 다행일 것이다. 헌데 시야를 먼 서양이 아니라 가까운 중국 자체의 역사에서 찾아보면 어떨까? 중국을 새롭게 이해하거나 다른 시각으로 사태를 바라볼 수 있는 재미를 안겨줄지 모르겠다. 이런 생각으로, 길어질 수도 있는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다.

힐러리가 “同舟共濟” 하자, 원자바오는 “携手共進”이라 답했다

각설하고 작금의 사태가 벌어지는 세계를 기존의 주나라 천자 중심의 체제가 무너져가고 새롭게 부상한 제후들이 할거하면서 패자가 교체되어 갔던 춘추시대에 비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미국과 중국은 춘추시대의 여러 나라 중에서 어느 나라에 해당할까? 미국 국무부에 따르면 바로 오나라와 월나라다. 10년 전의 일이기는 하지만 미국의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은 금융위기에 직면해서 동주공제(同舟共濟, 같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라는 중국의 고사성어를 언급하면서 중국의 협조를 구한 적이 있다. 동주공제는 『손자병법』 「구지편」에 나오는 말이다. 당시 중국의 총리 원자바오는 휴수공진(携手共進, 손을 맞잡고 앞으로 나아가다)이라는 말로 적극적으로 화답했다. 전략적 경쟁관계인 미국과 중국이 춘추시대의 오나라와 월나라가 한 배를 탄 것처럼 금융위기라는 격랑을 만나 서로 손을 맞잡은 것이다.

미국의 정치인이 이처럼 적절한 순간에 손자병법에 나오는 구절, 그것도 일반적으로 잘 인용하지 않는 부분을 외교에서 잘 활용하는 것을 보면 중국과 관련하여 손자병법을 얼마나 잘 숙지하고 있는지가 드러난다. 이는 손자병법이 원래 유명한 철학서이자 전략의 고전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국이 과거 한국전쟁에서 중국 때문에 자신의 정치적 의도를 관철시키지 못한 것도 중요한 요인이다. 미국은 세계 최강의 화력을 소유하고도 변변한 무기조차 없었던 중국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삼팔선에서 시작된 전쟁이 휴전선에서 멈추었으니 대략 비겼다고 할 수 있다. 냉전사의 권위자인 선즈화(沈志華, 1950- )는 이를 중국의 승리로 해석한다.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겠으나 월드컵 본선에도 출전하지 못하는 중국이 세계 최강의 브라질을 상대로 축구경기를 해서 비겼다면 결국 브라질이 진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전쟁을 소재로 다룬 할리우드 영화가 수없이 많지만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가 거의 없는 것을 보면 이 해석에 일리가 없다고 할 수 없다.

중국에 당한 미국, 손자병법을 연구하다

미국에게 뼈아픈 상처를 안겨준 마오쩌둥이 손자의 사숙제자라고 보고 열심히 연구했던 것이다. 사실 키신저를 비롯한 미국이나 서구의 저명한 전략가들이 중국에 관해 쓴 책을 보면 언제나 손자병법을 거론하고 이를 높이 평가한다. 손자는 대개 투키디데스나 마키아벨리, 혹은 클라우제비츠, 앙투안 앙리 조미니 등과 자주 비교된다. 가령 키신저는 『중국이야기』에서 서구의 전략과 손자를 비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략을 다룬 서구의 저자들과 손자를 확연히 구분하는 것은, 그가 순전히 군사적 요소에 앞서 심리적, 정치적 요소를 강조했다는 점이다.”

클라우제비츠의 유명한 “전쟁이란 다른 방법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란 말도 전쟁이 나면 정치가는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다는 것을 암시하는 반면에 손자는 정치와 전쟁을 하나의 장에 융합시킨다는 것이다. 손자에게 전쟁의 발발은 정치적 실패의 폭력적 결과이므로 전쟁을 피하는 ‘최상의 방법’은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것이다.

“백번 싸워 백번 이기는 것은 가장 좋은 것이 아니다. 싸우지 않고 남을 굴복시키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손자는 원래 제나라 사람이지만 오자서의 추천으로 오나라 장수가 되어 당시 강대국이었던 초나라를 거의 멸망의 지경에까지 이르게 했던 저명한 장수다. 그의 병법 중에 외적 환경의 이용을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 오나라는 월나라와 유명한 원수지간이지만 이런 두 나라도 협조할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 같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가 폭풍우를 만났을 때다. 살려면 서로 도울 수밖에 없다. 그건 바로 열악한 외적 환경이 부득이 그렇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렇듯 외적 환경을 잘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지(九地, nine situations) 중에 하나인 사지(死地)는 전사할지언정 퇴각할 수 없는 곳이다. 어떤 경우엔 군대를 이런 사지로 몰아넣어야 살아날 수 있다. 또 궁지에 몰린 적을 무리하게 몰지 말아야 한다.(窮寇勿迫) 거꾸로 자신에게 손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손자가 오나라의 장수이고, 동주공제라는 말이 그의 병법에 나오지만 오나라는 월나라와 물고 물리는 복수극을 벌이면서 싸우다가 월나라에 의해 일찍 멸망당했다. 와신상담의 담긴 고사가 전하는 바 그대로다. 오나라와 연관이 깊은 손자병법에 “망한 나라는 다시 존속할 수 없고, 죽은 자는 다시 살아날 수 없으니 현명한 군주는 삼가야 하고 훌륭한 장수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이것(분노해서 군대를 동원해 전쟁을 하지 않는 것)이 나라를 편안히 하고 군대를 온전히 하는 방법인 것이다.”라고 쓰여 있건만 먼저 망한 것이다. 월나라도 나중에 초나라에 의해 사실상 멸망했다. 오나라와 월나라는 춘추시대 말기에 한순간에 패자의 지위에 올라 춘추오패의 지위에 오르기도 했지만 결국 모두 급속히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춘추 4강과 현대 4강

UN에 가입되어 있는 나라가 190개국에 달하지만 중요한 결정은 미국이나 거부권을 가지고 있는 상임이사국에 속한 5개국(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이 하는 것처럼, 춘추시대에도 오월 뿐만이 아니라 수백 개의 제후국이 있었지만 강대국은 결국 네 나라다. 첫 번째가 북쪽의 진(晉)나라다. 지금으로 치면 산시(山西)성, 허난성, 허베이성 일대에 있었던 나라다. 두 번째는 동쪽의 제나라다. 산동성 북부와 허베이성의 일부분에 해당하는 나라로 진(秦)나라에 의해 멸망당하기까지 가장 오래 존속한 나라다. 세 번째 나라는 서쪽의 진(秦)나라다. 산시(陝西)성, 간쑤성 일대의 나라로 합종책을 구사하는 나라를 비수와 같이 찌르면서 천하를 통일했다. 마지막으로 후베이성을 중심으로 후난성과 안후이성, 그리고 허난성 일부분을 포함하는 초나라이다.

이 네 나라를 현재에 적용해본다면 대략 진(晉)나라는 미국에, 초나라는 중국에, 진나라는 러시아에, 제나라는 영국 혹은 유럽연합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미국처럼 당시에 진나라는 ‘중원문화’의 중심으로 이른바 중원의 “핵심적 가치관과 보편적 가치”의 체현자인 동시에 해석자인 최강의 강대국이었다. 오나라가 춘추시대 말기에 급속히 부상할 수 있었던 것도 진나라가 초나라를 견제하기 위한 대전략에 힘입은 바 크다.

초나라는 신흥의 대국으로 이른바 존왕양이(尊王攘夷)의 이(夷, 오랑캐)의 대상이 되어 여러 제후국에 의해 배척을 받았지만 진나라라는 패자의 지위에 대적할 수 유일한 남방의 대국이었던 점은 오늘날의 중국의 처지와 비슷하다.

진(秦)나라는 네 강대국 중에서 판세를 교란시키는 역할을 한 나라로, 어느 편과 손을 잡느냐에 따라 당시의 국제 정세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던 나라다. 종합국력은 강하지 않았지만 군사력은 매우 강한 점이 오늘날 러시아와 닮았다. 후발주자지만 과감한 개혁과 진초 두 나라의 패권 다툼에 힘입어 나중에 천하를 통일한다.

제나라는 일반적인 경우 진(晉)의 편을 들었지만 때때로 모순이 발생하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전략적 협조관계를 유지하면서 초나라라는 공동의 적에 대처했다. 이 점이 오늘날 영국 혹은 유럽공동체와 엇비슷하다.

진짜 고수는 어부지리를 얻는 자

그 중에서 진나라와 초나라가 춘추시대의 G2이다. 두 나라는 패권을 다투는 과정에서 성복(城濮)의 전투(진나라 승리), 필(邲)의 전투(초나라 승리), 언능(鄢陵)의 전투(진나라 승리)를 크게 벌였다. 중간에 낀 중원의 여러 제후국들이 북방의 진나라와 남방의 초나라라는 당시 G2의 패권 다툼에 전쟁의 참화에 시달렸던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미중의 패권 다툼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의 처지와 유사하다. 공자가 천하를 주유했다고 하지만 진나라와 초나라가 아니라 그 사이에 있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닌 것이다. 지금으로 치면 산동성과 허난성 일대를 주유한 것이다. 공자 같은 성인도 천하를 바로 잡을 수 없었던 비밀이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진나라와 초나라의 패권 다툼의 덕에 서쪽에 치우쳐 있던 진나라가 결국 나중에 천하를 통일한다. 중국철학의 핵심이 어부지리에 있다는 주장이 있지만, 진짜 고수는 어부지리를 얻는 자다.

구질서가 무너지면서 전쟁으로 점철되었던 시대에도 약소국이었던 송나라의 대부 상수(向戍)에 의해 정전협정과 같은 미병(弭兵, 전쟁을 중지함)의 회맹이 있었던 일은 기억해둘 만한 일이다. 타협이야말로 최고의 전략적 정치적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상수는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하여 진나라와 초나라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대부들을 자신의 나라에 오게 해서 전쟁을 중지하고 진초 두 나라를 공통의 패자로 상호 인정하는 회의를 성공리에 주재했다. 이를 상수미병(向戍弭兵)이라 부른다. 이번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서 미중 두 나라가 잠시 무역전쟁의 휴전에 합의할 것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부디 싸워서 이기고 줄 세우는 회의가 아니라 “싸우지 않고 상대방을 인정하는” 가장 좋은 만남이 되길 기대해 본다.

황희경/중국철학 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