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34개 국가 중에서 인적자원 투자 1위, 경제활동 공정성 34위. 2017년 김도훈 필자가 대표로 있는 ‘아르스 프락시아’가 국가혁신과 경쟁력에 영향을 미치는 69개 변수를 그룹화해 도출한 대한민국의 혁신 ‘성적표’다. 그 결과, 인적자원 투자 몰입으로 당장의 양적인 지식경제 성과는 만들어내고 있지만, 경제활동의 공정성이 매우 낮아 혁신성장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평가한다.지금 한국은 ‘병목으로 길이 꽉 막혀 있는데, 운전자들이 자신의 삶을 걸고 액셀레이터를 밟도록 내몰리는 모습'이라고 필자는 묘사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 지속가능하고 혁신적인 환경이 갖춰지려면, 무엇보다 ‘교육’과 ‘관료’ 시스템의 개혁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낡은 교육 체계 속에서 낡은 경쟁력으로 무장한 낡은 관료들이 혁신을 이끌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세계적으로 역량이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일본의 관료들이 맹목적으로 이끈 일본이 왜 ‘잃어버린 30년’에 갇혔는지 잘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편집자 주]

✔ 혁신, 하드웨어 인프라만으로 대변될 수 있을까✔ 혁신성장률의 지속가능성 담보하기는 어려울 것✔ 혁신 환경 갖춰지려면 사회 통합과 응집력 필요✔ 정책 운용을 위한 전문성·역량 부족한 관료 조직✔ 시스템 재조직할 새 정치·지식 주체 준비 필요해

서울중앙지법에서 법원 관계자들이 서류뭉치가 올려진 카트를 끌고 다니고 있다. (위 사진은 칼럼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음, 사진: 연합뉴스)

새로운 혁신지표가 필요한 이유

한국은 혁신적인 나라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관점에 따라서’ 일 것이다. 그 나름의 관점을 객관화한 것이 블룸버그, ITU(국제전기통신연합), IMD(국제경영개발연구원), WIPO(세계지적재산권기구) 등 여러 기관의 국가경쟁력 혹은 글로벌혁신 지표이다. 2010 년대에 필자와 대학의 교수들 몇몇은 정부로부터 혁신의 참모습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대안적인 지표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기존의 혁신 관련 지표들의 세부 변수들을 보면, 인터넷 보급률, 스마트폰 사용률 등 하드웨어 인프라에 방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런 관점을 따르자면 한국처럼 밀집도가 높고 제조업이 강하면서 새로운 디바이스 사용률이 높은 나라가 매해 수위권에 있는 것은 놀랍지 않다.

그러나, 혁신이 과연 하드웨어 인프라만으로 대변될 수 있는지에 대해 전문가들은 회의적이다. 또한, 기존의 혁신 지표에서 매번 스위스, 에스토니아, 핀란드 등 인구가 적고 조밀한 나라들의 ‘작은 혁신’ 이 과대평가되는 면도 복합적인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본다. 혁신의 지속가능성 역시 규모의 경제와 독과점적 권력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성과물과 사회적 행태, 효율성과 효과성을 적절히 안배한 새로운 지표의 개발이 필요했다.

글로벌 혁신지표가 드러낸 병목: 불공정한 사회의 양적 밀어내기

정부의 제안으로 시작된 프로젝트는 우여곡절 끝에 회사(아르스 프락시아)의 자체적인 연구개발 과업이 되었다. 2016 년 당시 국가혁신과 경쟁력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 69 개의 변수를 추출하여 통계 클러스터링(그룹화)을 해 보니([그림 1-1]), 혁신성장률에 영향을 미치는 그룹화된 변인으로 경제활동 공정성, 인적자원 투자, 지식경제 성과, 경제혁신 환경, 인적자원 경쟁력이 도출되었다.

[그림 1-1] 새로운 혁신지표의 변수와 관계

그 연결 관계에도 위계가 있어서 경제활동 공정성, 인적자원 투자, 지식경제 성과가 경제혁신 환경에 영향을 미치고, 경제혁신 환경은 다시 인적자원 경쟁력을 제고하여 혁신성장률로 이어졌다([그림 1-2]).

[그림 1-2] 새로운 혁신지표의 변수와 관계

새로운 지표에서 한국은 2017 년 현재 14 위를 차지했다. 총점의 순위보다 중요한 것은 세부항목인데, 경제활동 공정성이 34 위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 중에서 꼴지를 차지했고, 경제혁신 환경도 21 위에 그쳤다. 경제활동 공정성의 경우 특히 GDP 대비 사교육 지출 비율, 성별 임금 차이, 신용획득 용이성, 정부 지출 대비 사회복지 지출, 내부 경쟁의 강도와 같은 변수에서 한국이 저조했다. 30 여 개의 변수들을 포함하는 경제혁신 환경의 경우, 전체 고용 대비 창조직종 비율, 25~34 세 청년 고용률, 벤처캐피탈 활용 가능성, 창업 용이성, ICT(정보통신기술) 가 새로운 서비스와 제조에 미치는 영향, ICT 활용과 정부의 효율성, 반독점 정책의 효과성, 정부에 대한 신뢰, 사회적 신뢰, 교육의 질적 수준, 산학 협력 연구개발 등에서 점수가 비교적 낮게 나왔다. 반면, 인적자원 투자는 전 세계에서 1 위였고, 인적자원 경쟁력은 투입에 비해 못 미치는 7 위 수준으로 평가되었다.([그림 2])

[그림 2] 주요 항목별 순위

한국은 R&D(연구개발) 지출, 연구원 고용률, 대졸자 비율 등 인적자원 투자에 몰입하면서 당장의 양적인 지식경제 성과를 창출하고는 있는데, 경제활동 공정성이 매우 낮고 자생적인 혁신이 가능한 제도와 문화적 환경이 갖춰져 있지 않아서 인재들의 경쟁력이 반감된다. 이 때문에 앞으로 혁신성장률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평가되었다.

혁신지표 개발에 참가했던 필자와 전문가들은 한국 언론에서 종종 성과를 보도하는 여러 세부적인 변수들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가졌다. 이를테면 조사 당시 대한민국 학생들이 PISA(국제 학업성취도 평가) 의 평균 수학 점수에서 2 위를 기록했지만, 1 위를 기록한 핀란드에 비해 투입한 공식적인 수학 공부 시간이 3 배 이상(사교육을 감안하면 10 배가 될 수도 있다) 많았다. 대학 졸업자 비율 역시 한국이 매우 높지만, 그 대졸자들이 기대할 수 있는 평균소득은 그리스, 터키, 멕시코에 이어 최하위 수준에 머물렀다.

대한민국은 과도한 인적투자, 사교육에 포획된 무한 시간 투입의 공부, 연구기관에서 억지로 밀어내는 양적 성과 등으로 ‘어떤 관점에서는’ 혁신이 이루어지고 있다. 연구원과 대졸자(대학 입학 희망자)들에게 온전히 그들의 시간과 비용으로 무한경쟁을 시키고, 그 다음엔 값싸게 부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구성원 만족도, 사회 전반의 효율성, 내재적이고 질적인 혁신 역량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2010 년대 중반의 지표에서 이렇듯 효율성의 병목은 이미 발견되었지만, 그동안 우린 어떤 개선을 해 왔을까?

데이터가 일깨우는 실마리: 교육과 관료 시스템의 혁명적 변화가 필요하다

필자는 지표 개발을 끝낸 지 수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씩 주요 변인들의 관계를 분석한 선행모델을 들여다보며 상념에 잠긴다. 특히 발전된 컴퓨팅 기법으로 반복(iteration) 을 통해 최적화한 구조방정식([그림 3]) 모델은 여러 해석적 상상력의 여지를 남긴다. 연구자로서 필요한 조심스러움과 해석적 엄밀성 때문에 섣불리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지속가능하고 혁신적인 환경이 갖춰지려면 사회가 보다 통합되고 응집력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느낀다. 현실의 재현(representation) 으로서의 데이터는, 경험의 차원에서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과제들을 일깨운다. 한국 구성원들이 매몰된 교육체제 내의 대입시험과 같은 피상적인 경쟁은, 결국 그들 자신의 인생 비용으로 가혹하게 훈련된(질적인 깊이가 있지는 않은) 값싼 노동력을 제공할 뿐이다.

[그림 3] 구조방정식: 사회통합을 가로막는 교육과 관료 시스템의 비효율

혹자는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그간의 인적 동원과 무한노력의 방식이 불가피했다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양적 성과를 만들어내고 꾸며내기 위해 거의 무의미하고 무용하게 시간과 자원을 낭비한 사람들이 혁신을 이끌기는 어렵다. 사회적 합의와 혁명적 변화를 통해 국가가 대학 학부를 평준화하여 경쟁 환경을 완화하고, 구성원들이 장기간 넓은 교양과 경험을 쌓은 후 멀티트랙의 커리어를 추구하며 협업할 수 있도록 사회적 공정성의 개념과 룰을 개선할 필요성이 크다.

작금의 교육 시스템이 ‘무용’ 의 한계에 다다랐다면, 같은 방식으로 공부하고 자원을 투자한 사람들의 일군이 모여 있는 관료 시스템의 비효율성은 또다른 혁신의 병목이 되고 있다. 일단 , 한국의 관료 조직은 실제 정책 운용을 위한 전문성과 역량이 부족하다. 혁신지표 조사 당시 관료의 역량 면에서 한국의 수준은 OECD 국가들 중에 중간 정도로 나타났다. 1위는 일본인데, 한국의 지식인들은 그렇게 ‘우수한’ 관료가 맹목적으로 이끈 일본이 ‘잃어버린 30 년’ 에 갇힌 궤적을 반성적으로 복기할 필요가 있다.

< 헤이세이사>의 저자 요시미 슌야는 일본이 1990~2000 년대에 혁신의 지식 기반과 메커니즘을 깊이 고민하지 않은 채 자족의 분위기와 관료 주도의 네트워크에 안주하고, 해마다 ‘LCD(액정표시장치) 같은’ 단위기술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며 피상적인 기술 투자를 하다 방향성을 잃었다고 꼬집는다. 필자는, 관료와 학계 등 일부 전문가들이 해마다 키워드의 유행을 만들며 공생하는 작금의 상황 속에서 비슷한 기시감을 느끼고 있다.

혁신을 책임질 새로운 정치-지식 주체가 필요하다

자원을 전략적으로 배분하는 조직, 그들에게 보고를 받고 의사결정을 하는 정치 리더십이 지식, 기술, 혁신에 대해 깊이 이해를 못하고 고민하지 않으면 ‘메타버스’, ‘챗G PT’ 같은 단위기술의 키워드가 담론을 지배하게 된다. 보다 지적이고 성찰적인 관료 시스템을 위해서는 ‘무용성’ 의 정점에 있는 고시제도를 폐지하고 싱가포르의 사례처럼 우수한 인재들이 민간과 공공을 오가면서 유연하게 일할 수 있는 인센티브와 개방적인 환경이 새롭게 만들어질 필요도 있다. 사회적 유용성과 포용성을 담지한 교육, 지적 수준과 오퍼레이션 역량이 제고된 관료 시스템을 위한 개혁은 사회적 신뢰와 국가적 통합의 수준을 결정하는 핵심축으로 작용할 개연성이 높다. 문제는 그러한 개혁과 혁신이 단순한 제도적 조정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가의 역량 제고와 사회적 통합은 리더십이 명확한 비전과 오퍼레이션 능력을 갖추고 사회 구성원의 역량 발현과 관료 시스템의 효율적인 지원을 효과적으로 조응시킬 때만 가능하다. 권위주의적 지시와 맹목적인 자원 동원이 아니라, 지적이고 성찰적이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아우를 수 있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차가 진행하는 방향이 막막하고 전진이 안 될 때 무조건 액셀을 밟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작금의 한국은, 시스템 병목의 사이드브레이크가 올려진 채, 제각기 자신의 삶을 걸고 액셀을 밟도록 내몰리고 있다. 향후 목도할 다양한 차원의 실패에 좌절하기보단, 사회 시스템의 재조직화를 해낼 새로운 정치와 지식 주체의 준비가 필요하다.


글쓴이 김도훈은사회학을 공부한 학자이자 데이터 전문가이다. 데이터를 분석하지만, 숫자와 도표 안에서 시민을 읽는다. 데이터 분석 자체를 사람을 이해하는 실용적인 예술이라는 생각에 회사 이름도 라틴어로 이를 뜻하는 ‘아르스 프락시아’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