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과 없는 회담… 컵에 물 한 방울 떨어트리고 간 일본✔ 한일 시민단체, ‘핵폐수 조사단’ 꾸려 철저히 검증해야✔ '역대 내각 인식 계승'으로 퉁친 日, 성과로 보기 어려워✔ 원폭 희생자 공동참배, 진짜 문제를 덮으려 해선 안 돼✔ 독도 두고 돌발행동 없을까? 셔틀 외교, 부메랑 될 수도

<박지원의 식탁> 시즌 2 9화 방송 바로 가기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방한해 5월 7~8일 이틀 동안 한일 정상회담이 열렸다. 정부는 12년 만에 ‘셔틀 외교’가 복원됐으며, 일본 총리가 과거사 문제에 대해 유감 표명을 했다는 성과를 과시한다. 하지만 박지원 전 비서실장과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장은 “우리가 먼저 반 컵을 채우면 일본이 나머지를 채울 것이라는 윤 정부의 기대와 달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성과라고 할만한 게 없다”고 말한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와 관련한 한국시찰단 파견에 대해서도 “시찰단이 검증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문제를 가볍게 보면 안 된다”고 경고한다. <박지원의 식탁> 시즌2 9화에서는 한일 정상회담을 평가하고, G7 정상회의를 전망하는 시간을 가졌다.

윤 대통령 취임 1주년, 사라진 소통

김보협: 시즌2부터 새롭게 선보인 ‘이주의 짤’은 바로 이 장면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1주년을 맞았습니다. 언론과 시민단체 등에서 윤석열 정부 1주년을 평가했더니 정치, 경제, 외교안보, 사회문화 등 전 분야의 퇴행, 역주행이라는 평가가 다수입니다.

박지원: 총체적 실패입니다. 점수를 몇 점 주겠냐 묻길래 34점이라고 했습니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34.7%여서. 그런데, 우리나라 대학교수들 평가점수는 21점이더라고요. 제가 너무 후했지 않나 생각합니다.

김보협: 대학 교수님들이 한미·한일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시국선언문을 많이 발표하십니다. 기독교, 천주교, 불교 등 종교계도 마찬가지고요. 저는 우선 소통만 이야기해보고 싶은데요. 보통 취임 1주년에는 기자회견을 하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기자실 들러서 파이팅만 외치고 가셨던데 어떻게 보세요?

박지원: 국민의 굉장히 인색한 평가 중 하나가 소통 부족이에요. 상식적인 대통령은 1주년이면 기자회견을 하죠. 윤 대통령이 안 하시는 것을 보면, 당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겠다, 는 걸로 읽히죠. 일방 소통이죠.

김보협: 국무회의 모두발언 생중계를 하면서 하고 싶은 말만 그냥 쏟아 버리잖아요.

박지원: 자화자찬하지 말라 해놓고 본인이 자화자찬해 버리잖아요. 기자회견은 국민의 소리를 듣자고 하는 겁니다. 기자 질문을 들어야 해요. 기자는 우리 ‘국민 1호’란 말이에요. 거기를 봉쇄하니 일방통행밖에 안 되죠.

김보협: 그런 질문 듣는 게 불편한 거죠. 도어스테핑 하겠다고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이전했는데, 그것도 없애버렸잖아요. 그런데 윤 대통령은 한미동맹 복원, 한일 관계 정상화를 언급하면서 거의 무너진 나라를 다시 세운 것처럼 자화자찬했어요. 뿐만 아니라 전세 사기, 마약사범 확산 등 모든 문제는 문재인 정부 탓이라는데요.

박지원: 입만 열면 문재인 탓, 야당 탓. 언론 탓. 참 편리한 사고를 가졌어요. 2년 차에 접어들었으니까 이제부터는 ‘내 탓이오’ 모드로 갔으면 해요. 이제 국민에게 전 정부 탓은 약발이 안 먹힐 겁니다.

김보협: 내년 5월 취임 2주년을 어떤 분위기에서 맞게 될지 걱정되는데, 평소 윤 대통령을 위해 조언을 많이 하시는 실장님이 조언해주신다면.

박지원: 세계 모든 지도자는 민생경제로 평가받습니다. 민생경제를 살리기 위해 협치하시고, 가장 중요한 외교를 잘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당면한 문제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입니다. 절대 막아야 합니다. 웃통 벗고 화끈하게 막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남은 반 잔에 물 한 방울 똑… 한일 회담 빈 잔 그대로 남았다

김보협: 메인 이슈로 넘어가죠. 한국과 일본 모두 연휴였던 지난 7일 한일 정상회담이 열렸어요. 정부는 셔틀 외교의 복원을 포함해 엄청난 성과를 남겼다고 이야기하는데요.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장님 모시고 냉철하게 평가해 보겠습니다. 먼저 서울대 일본연구소부터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남기정: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관할기구로 2004년 설립된 연구소입니다. 구조변동 속에 있는 일본을 가능한 한 객관적이고 경험적인 자료에 근거해 제대로 분석해보자는 것을 과제로 설정하고 있고요. 여러 가지 학술연구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김보협: 이번 한일 정상회담은 지난번 한일 회담이나 4월 말 한미 정상회담에 비해 관심도가 뚝 떨어진 것 같아요. 언론 보도량도 적은 것 같고요.

남기정: 저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먼저 회담이 양국 연휴에 열렸다는 점이 작용한 것 같습니다. 일본도 황금연휴였거든요. 저도 마침 정상회담이 열릴 때 일본에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회담 내용을 알고 싶어 일본 뉴스, 한국 뉴스를 확인해도 별로 분석·평가가 나오지 않고 있더라고요. 성과도 없고 비판할 거리도 별로 없는, 내용이 거의 없는 정상회담이었다고 봅니다.

김보협: 실장님도 총평을 해주시죠.

박지원: 외교를 정상 혼자 하면 사고가 나요. 한미 정상회담은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에서 ‘아메리칸 파이’ 노래를 불렀고,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총리는 “가슴 아프게”, 남진 노래를 부르고 갔어요. 떠오르는 게 이것밖에 없어요.

김보협: 지난 7일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정상회담을 한 뒤에 셔틀 외교 복원을 포함해 대여섯 가지 내용을 발표했는데요. 우선 성과라고 할 만한 게 있나요?

남기정: 아직 없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 앞으로 이런 일들이 이어질 수 있다는 계획들이고, 몇 가지 이제 시동에 들어갔다 정도입니다. 실질적으로 내용이 있다고 할 수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반 정도 찬 컵에 일본이 어느 정도 채울 것인가가 관전 포인트였는데 이번 회담에서 채워진 건 없었습니다.

지난 3월 16일 한일 정상회담 직후에 대통령실 내에서도 “우리가 너무 양보한 것 아니냐. 다음에 기시다 총리가 올 때 나머지 빈 컵을 채워서 올 것이다”라는 이야기가 나왔다는데, 과거사와 관련해서도 지금까지 일본에서 나왔던 사죄 발언에 비해 수위가 낮았습니다.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장

김보협: 지난번에 일본에서 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반복한 수준이죠,

남기정: 그렇죠. 기시다 총리의 “가슴 아프다” 발언을 개인적인 감상으로 다뤘는데요. 이는 국가나 정부의 책임과는 별개로 개인적으로는 그런 생각이 든다는 이야기죠. 지금 일본에서는 해당 발언을 두고 크게 기시다 총리가 마음을 쓴 것처럼 보도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김보협: 그러니까 자기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 일본 문화 특성상 그 정도의 표현은 꽤 한국에 선물을 준 것이라는 식으로 일본 측에서는 해석한다는 거군요. 실장님, 지난번 방송에서 기시다 총리가 오면 적어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언급하면서 과거사 반성을 할 거다, 전망하셨잖아요.

박지원: 저는 정상적인 사람이니까 그렇게 전망을 한 거죠. 윤석열 대통령이 컵에 반 정도 물을 채웠기 때문에 기시다 총리가 오면 윤 대통령 체면을 위해서라도 남은 반 컵을 채워줄 것이라 예상했는데, 물 한 방울 딱 떨어뜨리고 갔네요.

어쨌든 셔틀 외교 복원, 기시다 총리의 현충원 참배 등도 성과라고 봐야겠죠. 그렇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그렇게 금과옥조처럼 여긴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존중해 기시다 총리가 당시 오부치 총리가 발언한 내용 그대로라도 한 번 해주기를 바랐는데,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 정도로 퉁치고 가버렸어요.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 갔을 때 “내가 후쿠시마 농수산물에 대해서는 한국 가서 설득하겠다”라고 했다는 보도가 있었잖아요. 이거 하러 오신 거 아니에요? 저는 그렇게 보입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허용, 국민 저항 부를 것

김보협: 국민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관심 있게 지켜봤는데 시찰단 합의를 내놨어요.

박지원: 일본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는 건 시찰이 아니에요. 가서 “안녕하십니까 오염수님” 인사하고 오는 거예요. 저는 우리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는 볼 것은 보고 검증해야 한다고 봐요. 그런데 지금 우리 정부의 태도를 보면 오염수라는 말을 쓰지 말고 처리수라고 쓰자? 일본 정부 대변인 역할을 하는 거예요. 사실 <BBC> 같은 세계 유수의 언론들은 ‘핵폐수’라는 표현을 씁니다. 그게 맞는 표현이에요.

남기정: 외형적으로는 우리가 요구해서 받아준 것처럼 됐지만, 일본이 요구한 것을 받아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박지원: 중국 정부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더라고요. 그렇게 안전하면 방류하지 말고 당신들이 농업용수나 공업용수로 쓰지 왜 방류하느냐. 이게 맞는 이야기 아니에요?

남기정: 그렇죠. 처리수라고 하지만 처리 과정을 거친 오염수인 거죠. 삼중수소는 완전히 희석되지 않은 채 남아 있습니다. 국제기준 이내에서 처리되고 있다는 것이 일본 측 주장이지만, 앞으로도 그럴지 보장이 안 돼 있고요. 문제가 없다면 농업용수로 쓰거나, 방류하더라도 앞바다에 방류하면 될 텐데 1km나 멀리 방류하겠다는 이유가 뭐냐는 거죠. 일본 정부의 설명은 모순이 많고 일본 국민도 신뢰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박지원: 일본 어민들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요. 문제는 미국이 이해를 해주고 있다는 거예요. IAEA(국제원자력기구) 검토보고서도 6월에 나온다고 하죠. 그런데 IAEA 운영 분담금을 미국-중국-일본 순으로 많이 내요.

남기정: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는 중국도 분담금을 많이 내고 있습니다만, 개인 후원금은 일본 기업 등이 많이 내고 있습니다. 이런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데다 중국도 말은 세게 하지만 원전 대국이거든요. IAEA 권위를 어느 정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IAEA 안에서 중국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많지 않다고 볼 수 있어요.

이 문제는 우리가 많은 걱정을 하고 있는 주변 국가들과 시민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노력을 좀 해야 할 텐데요. 원전 생태계 복원, 원전 재가동, 원전 수출에 목을 매달고 있는 윤석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원전 문제에 대한 진정한 고민이 기초에 깔려 있지 않으면 오염수 방류 관련 입장도 제대로 가질 수 없죠.

박지원: 저는 윤 정부가 태생적으로 성공할 수 없는 정부라고 봐요. 첫째는 정치. 협치하지 않고 있고요. 가장 중요한 민생경제를 위해서는 우리나라는 특히 외교가 중요한데 완전히 0점 아니에요? 가장 큰 문제는 핵폐수를 방류했을 때, 3면 바다에 종사하는 어민들의 엄청난 저항과 함께 육지에 사는 젊은 부부들이 아들딸 학교 급식과 집 식탁에 그 오염수를 먹고 자란 농수산물을 올릴 수 있을까요? 또 저처럼 나이가 든 사람들은 원폭 피해자가 대를 이어서 고생하는 것을 봐왔잖아요. 이런 불안감은 종식하기 어려울 거예요. 그래서 저는 제2의 ‘광우병 사태’가 올 수 있다. 절대 가볍게 보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저장 탱크 (사진: 연합뉴스)

한일 시민단체 중심 조사단 눈 부릅뜨고확인, 핵폐수 상시 감시해야

남기정: 저도 전문가 시찰단이 아니라, 한일 시민이 중심이 된 조사단·검증단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일본에서도 정부에 정보공개를 요구하고 변화를 이끌어낸 시민들이 있거든요. 정부가 그들을 상대하다 보니 마지못해 기준을 높여온 일이 있습니다. 그런 경험들을 기본으로 해서 한국과 일본의 일반시민도 납득할 수 있는 정보를 일본이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는 겁니다. 면죄부를 주는 것처럼 처리했다는 건 후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보협: 지금이라도 그렇게 하면 안 될까요? 시민단체 간의 연대가 있잖아요. 시찰은 제가 사전을 찾아봤어요. ‘두루 돌아다니면서 실지 사정을 살핌.’ 볼 시(視) 살필 찰(察). 그냥 눈으로만 쓱 보고 오는 건데, 그거 말고 시민단체들끼리 연대를 통해서 검증단을 꾸려서 정부 시찰단과 별개로 역할을 할 수는 없는 건가요?

남기정: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보공개를 계속 요구해야죠. 일본 측에서 아직 공개하지 않은 정보들이 있다고 봅니다. 일본 정부를 긴장시키는 노력을 시민들이 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김보협: 정부 시찰단이 시찰하면서 후쿠시마 원전 시설, 처리수 시설 등을 최소한 들어가서 볼 수는 있습니까?

남기정: 보여주는 데까지는 볼 수 있겠죠. 그러니까 “이곳도 보고 싶다” “확인해 봐야 된다” 이렇게 요구해야겠죠. 그리고 시찰이 한 번에 끝나서는 안 되고요. 주기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삼중수소가 지금은 기준치 이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에요. 계속 감시의 눈을 뜨고 있어야 합니다.

강제징용 배상 해법 발표 이후 안보 논의 속도 내는

김보협: 알겠습니다. 소장님, 윤 대통령이 “워싱턴선언에 일본 참여 배제 않는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일본은 핵무기에 민감하지 않나요? 지구상 유일한 피폭국가잖아요? 일본도 한국처럼 핵우산을 갖고 싶다, 워싱턴선언에 참여하고 싶다는 요구가 있습니까?

남기정: 약간 다른 결로 봐야 합니다. 기시다 총리 자신은 히로시마 출신으로서 비핵평화주의를 자신의 정치적 신조로 삼고 있죠. 히로시마 시민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노력을 겉으로는 보여주려고 노력합니다. 그렇지만 일본이 처한 현실이 있습니다. 미국의 핵우산 아래 일본이 있다는 현실 때문에 핵공유를 전면적으로 정책화하지 못하는 한계죠. 그런 상황에서 나름대로 본인은 비핵국가와 핵보유국 사이에서 교량 역할을 하겠다, 일본의 역할을 찾겠다고 말하고 있는데요. 실질적으로는 핵금지조약에도 가입하지 않고 있는 등 이중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핵공유 등에서는 선을 긋는 발언을 해왔는데, 올해 들어 미묘하게 바뀐 게 있습니다. 그 앞에 단서가 붙었어요. ‘정부로서는 그런 논의를 하지 않는다.’ 뒤집어 말하면 민간이나 일반 학자들이 그런 연구를 시작하는 건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다, 이런 이야기거든요. 논의를 시작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움직이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고요.

걱정되는 건 더 나아가 한미일 간 안보협의체를 궁극적으로 원하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이번에 NCG(Nuclear Consultative Group)를 통해 일본의 역할을 어느 정도 확인하고 다음 단계로 안보협의체 속에서 일본이 역할을 하겠다고 나서지 않을까 싶은데요. 제가 놀란 건 3월에 정부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 관련 해법 발표가 있었지 않습니까? 그걸 기점으로 동아시아 안보 논의가 일본 안에서 갑작스럽게 활발하게 되는 듯한 움직임이 있습니다. 다음은 한국과 함께 안보 논의를 할 수 있다는 방향으로 일본의 분위기가 간 측면이 있습니다. 일본이 태평양선언 참여 논의 등을 하는 것도 하나씩 단계를 밟아나가는 것이 아닐까 싶어 우려가 있습니다.

김보협: 5월 19일부터 일본 히로시마에서 G7 회의가 열리잖아요.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요?

남기정: 논의가 나올 것 같고요. 지금은 경제 안보로 시작했지만, 상당히 높은 수준의 안보 대화로도 갈 것 같거든요. 아마 제가 보기에는 한미 간 2+2, 미일 간 2+2 고위급협의가 연계되면서 상당한 정도로 어젠다가 가시화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 안에서 제대로 논의해서 일본과 어느 정도까지 갈 수 있는지를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어가면서 윤 정부의 거침없는 행보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지원: 현실적으로 북한의 김정은이 저렇게 미사일 쏴대고 핵실험을 하겠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국민은 강 대 강, 특히 한미일 삼국 동맹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할 수가 없어요. 국방 강화하자는데 어떻게 반대해요. 그렇지만 과거에는 그러한 대비를 하면서도 미국이 항상 ‘우리는 북한을 침범할 생각이 없다, 그리고 외교적 해결을 위해 대화로 나와라’라고 이야기했는데 이번에는 그런 이야기가 실종되고 없어요. 특히 이번 G7 정상회의에서 그런 드라이브를 윤 대통령이 강하게 걸 것 같아요.

박지원 전 국정원장

김보협: 윤 대통령이 신냉전 구도를 직접 앞장서서 열어가고 있다.

남기정: 한국에서는 별로 보도되지 않고 있는 이야기인데요. 일본은 총리 관저 등에서 발언요지와 회담 내용을 공개하고 있어요. 그중에 “납북 일본인 문제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를 획득했다”는 문구가 있습니다. 일본이 원하는 납북 일본인 문제 해결은 전원 즉시 생환입니다. 굉장히 정치적이고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목표입니다. 대북 적대 정책을 하겠다는 것이고, 우리가 그것을 간접적으로 인정했다고 나왔거든요. 저는 우리 정부가 이 문제에 섣불리 동의했다는 건 앞으로 남북 관계에서 커다란 부담이 될 수 있겠다, 생각합니다.

원폭 희생자 위령비 참배 넘어 실질적 해결 이끌어 내야

김보협: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G7 정상회의 때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공동참배하기로 했잖아요. 성과라고 발표했던데, 이걸 성과라고 할 수 있나요?

남기정: 히로시마까지 갔는데 참배 안 하고 돌아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떻게 보면 당연히 가야 되는 것이고 자연스러운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것을 통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가 논의돼야 하는데, 일절 나오지 않고 있어요. 오히려 이것으로 진짜 문제를 덮으려 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한국인 피폭자가 당시에 8만~10만 명이라고 추정되고 최소 3만 명 정도의 한국인이 돌아가셨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5만 명 정도의 피폭자가 계속 고통을 당하셨고요. 지금 2세 문제도 있습니다. 그분들이 일본의 피폭자와 같은 수준의 원호 대상자가 돼서 치료받을 수 있게 된 것은 2016년으로 아주 최근입니다. 2세 문제 등은 여전히 처리되지 않고 있고요. 그 문제를 계속 요구해왔는데, 이번에 별도의 갑작스러운 내용으로 참배가 발표됐단 말이예요. 그러니까 정말 우리 정부가 이 문제를 전면으로 다룰 생각이 있는가? 일 정부가 문제 제기를 받아들일 생각이 있는가? 이게 확인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눈을 부릅뜨고 확인해야죠.

김보협: 위령비 참배로 시동은 걸었으니 실제 문제 해결 쪽으로 끌고 가야 한다는.

남기정: 2005년에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이 있었습니다.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3가지로, 원전 피폭자 문제, 강제이주 사할린 동포 문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청구권 협정에서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는 것이거든요. 원전 피폭자 문제의 경우, 늦게나마 2016년에 일본 정부가 받아들였다는 것은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다는 걸 인정한 거거든요. 그 논리로 가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였기 때문에 일본이 법적으로 진정성 있는 대응을 해야 한다는 논리도 나올 수 있습니다.

미국에는 한없이 약하고 한국은 무시하는 일본 외교의 이중성

김보협: 미국도 하필이면 G7 장소를 히로시마로 잡았나 곤혹스러울 거 같아요.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나라잖아요. 일본은 이번 G7 회의를 계기로 전범국가가 아니라 원폭 피해국임을 강조하고 싶은 게 아닐까요? 세계가 민감하게 생각하는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도 풀려고 시도할 거 같고.

남기정: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에 히로시마 가서 어떤 행동을 보일지가 궁금합니다. 사실 2016년 5월,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방문한 적 있습니다. 아베 총리 때인데요. 당시 오바마가 히로시마로 방문하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게 기시다 외상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일본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했는데, 오바마가 일정 정도 호응해줬어요. 일본인 피폭자를 만나 쓰다듬어주고 위로하는 발언을 전하면서 미일 간 화해를 연출한 적이 있습니다.

그 후에 2016년 12월에 아베 총리가 하와이를 방문해 진주만 애리조나 기념관에서 진주만 공습으로 숨진 미군을 추도했어요. 미일 간 화해를 또 연출합니다. 역시 반성까지는 아니고요. 당시 아베가 연설을 끝내고 단상에 내려와 참전용사 노병 앞에 무릎을 꿇고 손을 잡아주며 말을 건네는 장면이 화제가 됐습니다. 아베 총리라는 사람은 미국 노병 앞에서는 무릎 꿇고 이야기할 줄 아는 사람이에요. 이 일들이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에 이뤄졌어요. 위안부 합의 이후에 조금도 비슷한 행보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게 일본의 문제점인 거죠. 이중적인 외교를 하는 겁니다.

김보협: 센 놈 앞에서는 약하고, 약한 놈 앞에서는 센 척하고.

남기정: 우리는 우리 힘을 최대한 발휘해서 대응해야 하는데, 힘을 싹 내려버리는 외교를 하고 있습니다.

박지원: 윤 대통령은 우리 국민이, 우리 역사가 하고 싶은 말씀은 안 해요. 일본 국민이, 기시다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하고 있습니다. 총체적 굴욕외교라고 생각합니다.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된 셔틀 외교 복원… 일본 잘못 짚었어야

김보협: 셔틀 외교가 중단된 것도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 탓을 하는데, 그게 아니잖아요. 사실은 이명박 정부 때 중단됐고, 문 정부는 셔틀 외교 복원하자고 합의까지 했었는데 일본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죠?

남기정: 2017년 함부르크 G20 정상회의에서 셔틀 외교 복원 합의까지 했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이 지키지 않았어요.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에 가서 노다 총리를 만난 후에 끊겼기 때문에 셔틀 외교 순서상 일본 쪽에서 한국에 왔어야죠. 이를 일본이 거부하고 대화 자체까지 거부하면서 일방적으로 국제법 위반이라고 압박하며 한국의 굴복을 강요했죠. 수출을 규제해 한국 정부가 국제사회에서 문제점이 있다고 문제를 제기하게 했고요. 본인들이 대화를 안 하면서 한국 문제인 것처럼 호도하기도 했고요. 이런 지점을 윤석열 정부가 짚어줘야 하는데 국민의 소리도 전달하지 못할뿐더러 이런 일을 없던 것처럼 덮어버리는 외교를 한다는 게 통탄할 따름입니다. 자꾸 일본에게 만만하게 보이면 약점을 갖고 더 큰 것들을 요구해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본은 윤 대통령 재임 기간이 기회라고 생각하면서 특히 윤 대통령의 워딩을 쌓아 놓자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외교라는 것은 신중함이 중요한데요. 어떤 타이밍에 어떤 장소에서 어떤 말을 할 것인지 생각해야 하는데, 너무 발목을 잡힐만한 워딩을 많이 주고 있습니다.

김보협: 윤 대통령의 발언은 이후에 다른 성격의 정부가 들어선다고 해도 문제가 될 수 있는 거잖아요.

남기정: 셔틀 외교만 해도 그렇습니다. 셔틀 외교 복원도 사실은 우리가 많은 것들을 일본에 채워줬기 때문에 셔틀 외교 복원 이야기가 일본 쪽에서 나올 때까지 기다렸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먼저 가서 조르는 것처럼 해놓고 성과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문제가 될 수 있는 건 앞으로 일본이 한일 간 역사, 독도 문제에서 일본이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덜컥 셔틀 외교 복원을 요구해서 받은 것처럼 만들어 놨으니, 일본이 문제 있는 행동을 했을 때, 셔틀 외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 문제가 될지도 모릅니다.

김보협: 셔틀 외교 복원이 목적이 된 것 같아요. 사실 수단인데. 한미동맹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한 수단인 것처럼, 셔틀 외교 복원도 수단일 뿐, 그것을 통해 무엇을 채울 것인가가 핵심 아닌가요? 목적과 수단이 전도된 느낌을 받습니다.

김보협 진행자

일본보다 전 정부 때리기에 열심인 정부, 공과 공정하게 평가해야

김보협: 이번 한일 정상회담의 주요 내용을 살펴봤는데 빠진 게 있으면 교수님이 덧붙여 주시죠.

남기정: 이 정부는 특히 과거 문재인 정부의 대일 외교 잘못을 가혹하게 비판하면서 자신의 대일 외교 기조 명분으로 삼고 있는 듯합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대일 외교를 잘 운영하지 못한 부분에 일정 책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공평하지 않은 시각에서 평가가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대일 외교가 곤란했던 이유는 구조적 요인도 있고 아베 내각이 했던 대한 외교가 상식을 일탈하는 정도의 문제를 안고 있었거든요. 예컨대 대화는 거부하면서 마치 한국의 문제인 것처럼 덮어씌우고, 화이트리스트 배제라는 국제사회에서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조치를 한국에 대해서는 서슴없이 했거든요. 그래도 나름 문재인 정부는 견디면서 현실적인 해법을 제시하려고 노력했던 측면이 있었습니다.

그런 것들을 전부 이념 외교라고 잘못된 것처럼 치부한 다음에 스스로는 실용 외교를 하겠다고 하지만 본인이 반공 냉전 전사인 것처럼 이념 외교를 하고 있어요. 한일 관계에서 일본이 했던 잘못과 한국이 했던 잘못을 공평하게 보지 않고, 한국에만 잘못이 있는 것처럼 몰아가는 외교가 성공할 수 있는 외교인가 의심스럽습니다. 일본 정부의 잘못은 과오라고 할 수 있고, 문재인 정부는 전략상 오판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일본의 근본적인 과오는 묻지 않고 전략상 오판에는 혹독한 평가를 내리는 외교 구상이 과연 성공할 것인가? 저는 회의적입니다.

김보협: 오늘은 외교안보 전문가인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소장님을 모시고 한일 정상회담 평가와 5월 19~21일 열리는 G7 정상회의 전망까지 해봤습니다. 감사합니다.

※ 본 텍스트는 <박지원의 식탁> 방송 내용을 읽기 쉽게 정리한 것으로, 출연자의 실제 발언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보다 정확한 내용은 영상(메디치미디어 유튜브)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초대손님 남기정은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교수.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했고, 도쿄대학 종합문화연구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관심 주제는 미일동맹의 전개와 이에 대한 일본 평화운동 진영의 대응이다. 저서로는 <난감한 이웃 일본을 이해하는 여섯 가지 시선> (공저), <스가 내각 출범 이후 한일관계를 구상하다> (공저), <기지국가의 탄생> (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