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 10’. 비상장 벤처 기업이나 스타트업 창업자의 보유 주식 1주에 최대 10배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벤처기업육성특별법' 개정안이 4월 말 국회를 통과했다. 흔히 벤처 업계의 ‘숙원’으로 불리는 ‘경영 방패’가 마련된 것이다. 복수의결권(차등의결권)이라 불리는 이 제도는 창업자가 지분 희석에 따른 경영권 위협의 걱정 없이 투자 유치 등 적극적인 경영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하지만 이상민 필자는 복수의결권이 자칫 ‘약(藥)보다는 독(毒)’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한다. 최대주주의 경영권 독점이나 불합리한 지배력 강화 등을 불러와 시장경제와 주주자본주의 질서에 오히려 해가 된다는 것이다. 복수의결권, 무엇이 문제일까? [편집자 주]

✔ 창업주 의결권에 특혜를 주는 복수의결권, 문제 많아✔ 시장원리에 어긋나고 창업자는 '참호'에서 안 나올 것✔ 복수의결권 부여 이유 과장돼… 시장 효율 줄어들 것✔ 이미 우위 점한 지배주주, 투자자는 안전장치 사라져✔ 특정 집단이 시장원칙을 무시하는 특권 가져선 안 돼

사진: 셔터스톡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고부가가치 상품이 무엇일까? 기업이라고 생각한다. 기업을 만들어서 팔고 또 다른 기업을 만들어서 파는 것이 최고의 고부가가치 상품이다. 혁신적인 기업을 만드는 능력과 안정적으로 경영을 하는 능력은 다르다. 최고의 혁신가, 또는 최고의 기술자도 최고의 경영자가 아닐 수 있다. 그래서 혁신가는 기업을 만들어서 적절한 가격에 팔고(엑시트) 그 돈으로 또다시 새로운 기업을 창업하는 것이 사회 전체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최고 부가가치 상품 ‘기업’

물론 반대도 가능하다. 기업의 본질을 알고 주인의식을 가진 기술자가 기업의 경영을 맡아서 초심을 유지하는 것도 좋다. 벤처 기업이 처음의 혁신과 이상을 잃고 그저 그런 평범한 IT기업이 되는 사례도 있을 수 있다. 요는 ‘창업 → 성장 → 엑시트’의 벤처생태계를 마련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혁신가가 초심을 잃지 않고 계속 기업을 경영하는 것도 바람직할 수 있다. 각 벤처 기업이 처한 환경과 창업자의 성향에 따라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판단해야 할 일이다.

문제는 창업자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회사의 지배력을 상실할 수도 있다는 데 있다. 적대적 M&A(인수합병) 때문이다. 벤처 기업이 성장하려면 투자 유치는 필수다. 투자를 받으면 지분이 희석된다. 지분이 희석되면, 지배력을 상실할 수도 있다. 적대적 M&A의 두려움으로 투자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이런 우려로 국회는 지난 4월 27일 벤처기업육성특별법을 개정했다. 국회는 이 법을 통해 벤처 기업 창업주의 의결권을 최대 10배까지 인정해주는 ‘복수의결권(차등의결권)’을 발행하는 특례를 만들었다. 하지만 창업주의 의결권에 특혜를 주는 복수의결권은 적지 않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그 6가지 문제점을 살펴보자.

‘10배의 복수의결권’, 시장원리에 맞지 않아

첫째, 창업자 경영이 좋을지, 전문경영인 경영이 좋을지는 창업자 개인의 의지만으로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주주와 시장이 판단해야 한다. 기업지배구조에는 확실한 정답은 없다. 창업자가 엑시트를 하고 전문경영인이 경영했을 때의 장단점이 있다. 반면, 창업자가 초심을 유지하면서 지배력을 유지하는 것도 장단점이 있다. 그렇다면 언제는 엑시트가 좋고, 어떤 환경에서는 창업자 경영이 좋을까? 어느 쪽이 바람직한지 누가 판단할 수 있을까?

창업자 개인 혼자 결정할 수는 없다. 엑시트는 창업자 의지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은 명확하다. 창업자의 지분을 적당한 가격에 구입할 다른 주주가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창업자가 지배력을 유지하고 싶다고 언제든지 가능한 것도 아니다. 창업자의 지배력 유지를 바라는 다른 주주가 필요하다. 그런데 창업자에게 10배의 의결권 주식을 부여한다면, 창업자가 개인의 선택만으로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주주 평등주의 위배는 물론 시장원리 자체에 부합하지 않는다.

창업자가 ‘안전한 참호’에 머물러 있기만 한다면

둘째, 창업자가 지배력을 상실하게 된다면, 그것은 지분 희석 때문만이 아니라 경영 능력이 미덥지 못하기 때문이다. ‘50% +1주’를 보유한 주주는 경영 능력과 상관없이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다. 다만 50% 이하의 지분을 보유하게 되면, 다른 주주에게 경영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 경영 능력만 다른 주주에게 인정받는다면 한 주도 없어도 지속적으로 경영이 가능하다.

창업자는 80점은 먹고 시작한다. 창업자의 지배력을 위협하고자 하는 다른 주주보다 권위와 신뢰가 더 있기 마련이다. 지분율이 조금 낮아도, 경영에서 몇 차례 실수를 해도 다른 주주가 바로 쫓아내는 일은 거의 없다. 특별히 대단한 사고만 치지 않는다면, 아무리 지분율이 적어도 쫓겨나는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데 만약 대단한 사고를 친다면, 지배력을 잃어야 하는 게 정상이다. 주주들이 창업자를 신뢰하지 못한다면 무언가 큰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창업자에게 10배의 의결권 주식을 부여한다면, 매일 매일 전투를 치러야 하는 기업 현장에서 안전한 ‘참호(entrenchment)’에서 나오지 않게 될 수 있다.

4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벤처기업육성특별법 개정안이 가결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적대적 M&A’의 불안은 실제보다 과장돼 있다

셋째, 적대적 M&A 성공사례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주변에서 보는 M&A는 창업자와 투자자가 동의한 엑시트를 위한 M&A가 대부분이다. 영화나 드라마는 물론 시장경제가 잘 발달한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적대적 M&A 얘기가 가끔 나오기는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적대적 M&A가 성공을 거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실제로 감정적으로는 적대적 M&A처럼 느껴지는 여러 사례는 대부분 주주권 행사에 불과하다. 특정 경영 판단에 반기를 드는 정도이지 창업자의 지배력 자체를 무력화하는 수준을 요구하는 일은 거의 없다.

지배력 싸움이 적극적인 표 대결로 확대될 때도 상대측이 요구하는 것은 기껏해야 이사 한 명의 선임 정도에 불과하다. 사외이사나 감사 선임 요구조차 관철되지 못하고 실패하는 사례가 훨씬 더 많다. 반대 측 이사 한두 명이 선임되어도 창업자의 지배력이 상실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의견을 지닌 이사진이 합류해서 ‘레드팀’(조직의 취약점을 파악하는 쓴소리 조직)의 역할을 한다면 회사는 더욱 좋아질 수 있다.

KCC와 현대엘리베이터, 두산그룹의 ‘형제의 난’, 한진그룹의 ‘남매의 난’, SM엔터테인먼트 분쟁 등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지배력 승부는 친척 일가들 사이에서 진행된 분쟁이다. 창업자와 외부 투자자 사이의 분쟁 사례는 아니다. ‘재무적 투자자’(지배력에 관심이 없는 투자자)가 갑자기 주식 지분만 믿고 지배력을 공격하는 일은 극히 드물고, 성공한 사례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특히, 우리나라는 ‘5% 룰’도 있어서 상장사의 주식 등을 5% 이상 보유한 자는 지분 보유, 변동 상황, 보유 목적 등의 변경 내용을 공시해야 한다. 창업자 몰래 5% 이상 주식을 모아서 ‘등 뒤에서 습격’할 수가 없다. 지배력 쟁탈을 위해 주식을 모은다는 사실은 시장에서 알려질 수밖에 없다. 결국, 주식 가격이 크게 올라, 회사를 싸게 인수해서 비싸게 매각하려는 단기 기업사냥꾼의 전략이 먹혀들기 어렵다. 10배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이유 자체가 대단히 과장되었다는 의미다.

기존 경영자의 비정상적 경영 판단까지 보호된다면

넷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대적 M&A가 발생한다면, 기존 경영자의 잘못된 경영으로 극단적으로 주가가 저평가받을 때뿐이다. 소버린이 SK(주)를 공격했을 때, SK(주) 시가총액은 보유한 SK텔레콤 가치에도 미치지 못했다. 즉, 1억 원의 금덩어리를 보유한 기업 가격이 1억 원도 안 되는 상황에서는 1억 원을 주고 그 기업을 사려는 시도가 발생할 만하다. 주가 총액이 순자산가치보다도 크게 낮은 상황은(PBR이 1보다 크게 낮을 때) 무언가 비정상적이다. 그리고 이런 비정상적 상황이 경영진의 잘못된 경영 판단 때문이라면, 잘못된 경영을 고치고 기업의 가치를 증대시키고 싶은 것은 시장참여자라면 당연히 드는 생각이다. 기업의 가치 증대에 따른 경제적 이익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거꾸로 말하면 경제적 이득은 기업의 가치를 증대시킬 수 있을 때 발생하게 된다.

창업자와 적대적 M&A 세력이 서로 지배력을 놓고 싸울 때, 지배력은 순수한 두 세력의 지분율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제3의 주주의 신뢰를 확보하는 세력이 이기게 된다. 그리고 제3의 세력은 기본적으로 창업자에게 후한 기본점수를 주고 판단을 한다. 창업자가 물러나는 것이 기업의 가치를 더 높일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지 않다면, 보통 창업자 편을 들기 마련이다. 즉, 창업자와 적대적 M&A 세력의 분쟁에서 누구 손을 들어줄지는 시장과 제3 주주 세력이 결정해야 한다. 창업자가 아무리 잘못된 경영 판단을 해도, 그래서 주식 총액이 순자산액의 반의 반토막에 지나지 않아도 10배 의결권의 힘만으로 창업자가 이길 수 있다면, 시장의 효율성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물론, 제3 주주 세력이 공정하고, 정의롭고 항상 효율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존재인지는 좀 더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 영국을 비롯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6개 나라 중 17개 국가가 복수의결권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기업사냥꾼’과 제3세력이 결탁해서 단기간의 시세차익만 노리는 세력으로부터 창업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의미다.

사진: 셔터스톡

지배주주보다 소수주주의 권리가 부족한 현실

다섯째, 기업사냥꾼과 결탁하는 제3 세력이 문제가 아니라 기존 지배주주와 독립되지 못한 제3 세력이 너무 많아서 문제다. 미국, 영국처럼 자본시장이 발달한 나라는 M&A는 매우 활발히 이루어지면서도 소수주주의 권리는 충분히 보호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적대적 M&A는 극히 드물면서도 소수주주의 권리는 부족한 실정이다. 각 나라의 사정에 따라 창업자의 참호를 조금 더 파는 정책이 필요하기도 하고, 투자자의 화력을 조금 더 높이는 정책이 필요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지배주주가 기울어진 운동장의 높은 쪽에 자리 잡고 싸우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배주주에게 더 깊은 참호까지 파주는 것은 우리나라 실정에 맞지 않는다. 삼성생명과 제일모직의 합병 비율에 따라 삼성생명의 주주가 피해를 보는 상황이 명백한데도 삼성생명의 주주인 국민연금이 합병을 찬성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현실이다. 미국의 복수의결권 제도는 우리나라로 오면 ‘탱자’가 될 수밖에 없다.

벤처 기업 투자가 활성화될까, 위축될까

여섯째, 투자 위축이 우려된다. 이 법의 가장 주요한 목적은 투자 활성화다. 지분 희석에 따라 지배력 상실의 우려 때문에 투자를 받지 못하던 벤처 기업이 이 법 통과 이후 투자에 보다 적극적으로 임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투자는 받는 사람의 의지보다는 하는 사람의 의지가 더 중요하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벤처 기업의 투자 매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창업자에게 10배의 의결권을 주면서 투자자의 안전장치가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투자자는 기본적으로 경영인이 능력 있고 똑똑해서 자신이 투자한 기업이 부가가치를 창출하기를 바란다. 그런데 만에 하나, 창업자가 초심을 잃거나 잘못된 경영 판단을 했을 때, 이를 거부할 수 있는 힘을 갖기를 원한다. 그런데 10배의 의결권으로 투자자의 안전장치를 제거한 이상 투자자는 벤처 투자를 꺼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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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몇 가지 안전장치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번 벤처기업육성특별법 개정에는 나름 안전장치가 들어가 있다. 우선 창업주가 30% 미만의 주식을 소유할 때만 복수의결권 주식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하거나, 상속 또는 양도 시에는 보통주식으로 전환되는 요건은 존재한다. 특히, 최대 10년까지만 복수의결권이 유효하며, 상장된 지 3년이 지나면 보통주로 전환되는 등의 조치도 포함돼 있다. 복수의결권의 부작용을 막기 위한 장치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창업자의 ‘경영권’은 무언가 ‘천부인권’ 같이 지켜야 한다는 잘못된 관념이 느껴진다. 이 세상에 ‘경영권’이라는 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경영을 할 수 있는 ‘권리’란 없다. 굳이 영어로 번역하자면 ‘management right’일 텐데, 미안하지만 이런 단어는 영어에 없다. 오로지 ‘지배력(control power)’만 존재할 뿐이다.

시장의 효율성은 경쟁에 있다. 특히, 이 정부는 말끝마다 시장주의, 시장원칙, 자유주의를 들먹인다. 특정 집단과 계층만 경쟁이라는 시장원칙을 무시하고 ‘지대추구’를 할 수 있는 특권을 보유하면 안 된다.


글쓴이 이상민은분석하는 게 일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예산서, 결산서, 집행 내역을 매일 업데이트하고 분석한다. 참여연대 간사, 국회의원 보좌관을 거쳐 현재는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