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조 바이든 한미 두 정상이 북핵 대응을 위해 4월 말 발표한 ‘워싱턴선언’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선언의 정확한 내용에 대해 한미 핵심 당국자가 서로 다른 해석을 했고, 국내 진보·보수 진영의 평가 또한 판이하게 갈린다. 한마디로 ‘동상이몽’이다.북핵에 맞서 우리나라의 ‘핵무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온 정성장 필자가 워싱턴선언에 대한 평가의 글을 보내왔다. 북핵 강경론의 상황 인식과 대응 전략 등을 엿볼 수 있는 글이다. 핵무장론에 비판적인 이들에게도 우리 현실의 이해에 도움이 되는 대목이 있기를 기대한다. [편집자 주]

✔ 내용을 둘러싸고 상반된 평가 이어지는 '워싱턴선언'✔ 정부와 여당, 미국 약속에 대해 비현실적 기대 가져✔ 미국 대통령 바뀌면 하루아침에 휴지 조각으로 전락✔ 핵확산금지조약 탈퇴 권리 포기한 것은 유감스러워✔ 긴 호흡으로 독자적 핵 보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사진: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4월 26일 한미 정상회담을 갖고, 확장억제를 강화하고 핵 및 전략 기획을 토의하기 위한 ‘핵협의 그룹(NCG·Nuclear Consultative Group)’ 신설과 한국의 자체 핵무장 옵션 포기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워싱턴선언’을 발표했다. 이후 워싱턴선언의 내용을 둘러싸고 한미 간에, 그리고 여당과 야당 간에, 전문가들 간에 상반된 평가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워싱턴선언이 사실상의 핵 공유선언인가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워싱턴선언’이 발표된 날 워싱턴 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 선언이 “한국형 확장억제 실행계획을 담아내 한·미 확장억제 실행력을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이라고 자평했다. 그리고 “미국의 핵무기 운용에 대한 정보공유와 공동계획 메커니즘을 마련한 만큼, 우리 국민이 사실상 미국과 핵을 공유하면서 지내는 것처럼 느끼게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국민의힘 주요 인사들도 “한·미 군사동맹이 핵동맹으로 발전하는 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하고, “이번 워싱턴선언으로 우리나라에 핵이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아도 사실상 존재하게 됐다”고 주장했다(윤재옥 원내대표). 심지어 “워싱턴선언 이후의 한·미 동맹은 핵동맹이 됐다”는 평가까지 나왔다(신원식 의원). 또한 “미국이 타국과 핵 공유 체제를 구축한 것은 1966년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가 첫 번째이고, 이번에 우리와의 핵 공유가 두 번째”라는 주장도 나왔다(박대출 정책위의장). 여당 인사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주된 근거는 선언에 명문화된 전략핵잠수함(SSBN) 등의 정례적인 한반도 전개가 ‘나토식 핵 공유’의 최대 특징인 전술핵 재배치와 같은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에드 케이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동아시아·오세아니아 담당 선임국장은 4월 27일 국무부 청사에서 한국 언론 워싱턴 특파원단과 한 간담회에서 워싱턴선언 내용을 ‘사실상의 핵 공유’(de facto nuclear sharing)로 보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케이건 국장은 ‘(한반도에) 전술핵무기를 배치하지 않기 때문에 핵 공유가 아니라는 의미인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이어 “핵 공유는 핵무기 통제(control of weapons)에 관한 것이고, 여기(워싱턴선언)에서 그것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워싱턴선언에 대한 한미 간의 이 같은 입장 차이는 한국의 정부와 여당이 미국의 약속에 대해 실제와 괴리된 환상과 비현실적인 기대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니얼 크리튼브링크 미국 국무부 동아태차관보(왼쪽)와 에드 케이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동아시아·오세아니아 담당 선임국장(오른쪽)이 워싱턴DC 국무부에서 열린 한국 특파원단과 브리핑에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선언의 군사적 효율성에 대한 평가

다수의 미국 전문가들은 워싱턴선언의 군사적 실효성에 대해 회의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제프리 루이스 미들베리 국제연구소 동아시아 비확산센터 교수는 <N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워싱턴선언이 “미국이 여전히 한국을 지지하고 있다는 점을 알려 한국 대중들을 안심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이러한 약속이 “군사적 가치는 없다”며 회의적 시각을 드러냈다. 앤드루 여 브루킹스연구소 한국 석좌도 “북한은 핵·미사일 능력 진전에 몰두하기 때문에 그들의 무기 개발을 막는 데 효과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프랭크 엄 미국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도 이번 합의가 “북한의 공격을 억제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며 “북한을 억제하고 한국 대중을 안심시키는 실질적 안보 이익을 제공하는지는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지낸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KBS> 라디오 ‘주진우 라이브’에 출연해 워싱턴선언에 대해 “새로운 게 별로 없었다. 기존과의 차이는 협의체를 하나 만들겠다는 것이고 앞으로 전략자산들을 수시로 보내겠다는 것”이라면서 “협의체는 지금까지 2개가 있었다. ‘2+2’(외교·국방) 형태의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차관급 회의체가 있었고 그다음에 DSC(한·미 전략억제위원회)가 있다. 별 차이 없이 정리된 것으로 보여진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워싱턴선언의 군사적 실효성에 대해서도 정부 여당의 입장과는 다른 평가들이 국내외에서 나오고 있다. 그러므로 이 선언의 의의와 한계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다 냉정하고도 구체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핵 중심 확장억제 실행력 강화와 전략자산의 정례적 가시성증진

한미 정상은 “확장억제를 강화하고, 핵 및 전략 기획을 토의하며, 비확산체제에 대한 북한의 위협을 관리하기 위해” 새로운 핵협의 그룹(NCG) 설립을 선언했다. 이 핵협의 그룹은 차관보급 협의체로 1년에 4차례 정도 개최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기존의 한미 국방·외교 차관급 2+2 협의체인 EDSCG와의 차별성에 대해선 “EDSCG가 광범위한 정책을 협의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면, NCG는 핵 운용에 특화된 협의체”라고 설명했다. NCG가 EDSCG보다 격이 낮은 것도 이 같은 특성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워싱턴선언은 “한미 동맹은 유사시 미국 핵 작전에 대한 한국 재래식 지원의 공동 실행 및 기획이 가능하도록 협력하고, 한반도에서의 핵 억제 적용에 관한 연합 교육 및 훈련 활동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언급해, 분명히 이 같은 기대를 갖게 하는 내용들이 들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워싱턴선언은 또한 “한미 동맹은 핵 유사시 기획에 대한 공동의 접근을 강화하기 위한 양국 간 새로운 범정부 도상 시뮬레이션을 도입하였다”고 밝히고 있어 확장억제의 실행력을 높이고 있다.

한미 정상은 “미국은 향후 예정된 미국 전략핵잠수함의 한국 기항을 통해 증명되듯, 한국에 대한 미국 전략자산의 정례적 가시성을 한층 증진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운용하는 전략핵잠수함(SSBN)에는 사거리 1만2000㎞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트라이던트-Ⅱ’가 20발 실려 있고, 각 미사일엔 핵탄두가 8기씩 탑재돼 있다. 따라서 전략핵잠수함의 한국 기항은 북한에게 상당한 위협으로 간주될 것이다.

미국 전략핵잠수함(SSBN) (사진: 연합뉴스)

그런데 이런 워싱턴선언은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 간의 합의문이기 때문에 만약 미국에서 대통령이 바뀌면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으로 전락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한국의 대통령실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이번 워싱턴선언을 ‘제2의 한미 상호방위조약’으로 간주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조약은 대통령이 바뀌어도 쉽게 폐기할 수 없는 반면, ‘선언’은 그런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략자산의 ‘정례적 가시성’ 증진이 과연 한반도 정세를 안정시키고 한국 국민의 안보 불안감을 지속적으로 해소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에릭 고메즈 케이토연구소 선임연구원이 지난 4월 30일 미국 정치전문매체 <더힐>에 기고한 글에서 밝힌 것처럼,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는 한미 연합군사훈련에 자체 미사일 훈련으로 대응하는 북한의 최근 행태를 고려할 때 북한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고메즈 연구원은 “워싱턴선언은 증상을 치료하는 것이지 근본적인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북한 핵 프로그램에 대한 제약이 없다면 김정은은 계속해서 핵무기를 확장할 것이고 이는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고 한국이 더 많은 안심을 추구하도록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워싱턴선언은 미국의 확장억제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이 고도화될수록 미국의 확장억제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리고 한국이 스스로를 지키는데 필요한 자체 핵무기가 없어 미국에 안보를 거의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될수록 한중 관계는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고 북한은 남한을 계속 무시할 것이며, 남한은 북한 핵의 공포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자체 핵 보유 옵션과 핵잠재력 추구 모두 포기

워싱턴선언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은 자체 핵 보유 옵션을 명시적으로 포기했고,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의 안보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한국과의 핵 협의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약속했다. 선언은 “한국은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을 완전히 신뢰하며 한국의 미국 핵 억제에 대한 지속적 의존의 중요성, 필요성 및 이점을 인식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윤 대통령은 국제 비확산체제의 초석인 핵확산금지조약(NPT) 상 의무에 대한 한국의 오랜 공약 및 대한민국 정부와 미합중국 정부 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력 협정 준수를 재확인하였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이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을 ‘완전히’ 신뢰하기 때문에 자체 핵무기 개발을 추구하지 않으며, 한국의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을 제한하고 있는 한미 원자력협정도 준수하겠다는 것이다.

과거에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국의 미사일 발전을 제약해왔던 한미 미사일 지침의 개정 및 해제를 끌어냈다. 이처럼 윤석열 정부도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한미 원자력협정의 개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어야 했지만, 오히려 미일 원자력협정에 비해 우리의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을 심각하게 제한하고 있는 한미 원자력협정의 준수를 재확인한 것이다.

북한의 대남 전술핵 위협이 갈수록 노골화되고 있고 가까운 미래에 북한의 제7차 핵실험도 예상되는 상황에서 한국이 국가 생존을 위해 핵확산금지조약을 탈퇴할 수 있는 권리마저 자발적으로 포기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부분이다. 미국이 오스트레일리아에 한 것처럼 한국에 대해서도 원자력추진잠수함 확보와 관련한 협력을 요구할 필요가 있었지만, 이에 대해서도 진지한 논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새로운 활동이 관측된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4번 갱도 위성사진 (사진: 연합뉴스)

결론적으로 워싱턴선언을 통해 한국이 미국의 강력한 확장억제 약속을 받은 것은 중요한 성과이지만, 그것을 위해 NPT 탈퇴 권리와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요구까지 포기한 것은 한국 정부의 전략 부재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었다. 이 같은 문제점을 제대로 지적하지 못하고 있는 야당도 동일한 한계를 보이고 있다.

한국이 핵을 보유하지 못한 상태에서 한미의 확장억제를 더욱 강화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대북 억제가 실패해 북한이 한국에 핵을 사용할 경우 미국이 본토가 핵 공격을 당하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한국을 지켜줄 것이라고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매우 나이브한 태도일 수 있다. 그러므로 한국 정부가 자체 핵 보유 옵션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긴 호흡을 가지고 단계적으로 독자적 핵 보유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글쓴이 정성장은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이다. 프랑스 파리 낭떼르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청와대 국가안보실, 통일부, 국방부, 한미연합군사령부의 정책자문위원과 외교부의 자체평가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핵자강전략포럼 대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과 민화협 정책위원 등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