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4월 25일 내년도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워낙 예정됐던 일이라 큰 관심사가 되지 못했다. 오히려 바이든의 대항마, 즉 공화당의 내부 경쟁이 더 흥미를 끄는 분위기다.공화당의 사정은 복잡하다. 한때 ‘젊은 기수’로 각광받던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의 인기는 주춤하고, 트럼프의 주가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트럼프는 3월 30일 무려 34개 혐의로 기소된 뒤 선거자금이 몰리는 등 기세를 올리고 있다. 물론 둘 사이의 경쟁은 아직 그 결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트럼프가 디샌티스를 누르고 ‘바이든 대 트럼프’의 시즌2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왜 디샌티스는 흔들리고 있는 것일까? [편집자 주]

✔ 해외 순방으로 대선 주자 입지 다지는 디샌티스✔ 플로리다에서 쿠바계 지지를 얻기 위해 공들여✔ 대선 출마 선언한 트럼프, 디샌티스 정책 공격해✔ 여론조사 추이도 트럼프가 디샌티스 크게 앞서✔ 바이든과 트럼프의 '리턴 매치' 될 가능성 커져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왼쪽)와 트럼프 전 대통령(오른쪽) (사진: 셔터스톡)

 

론 디샌티스 미국 플로리다 주지사(공화당·재선)가 4월 24일 일본을 방문했다. 해외 순방 일정의 시작이다. 디샌티스는 일본 도착 후에 여론조사 관련 질문을 받자 “저는 후보가 아닙니다”라고 답했으나, 곧 자신의 진짜 의도를 드러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만나 일본의 국방력 강화 방침에 지지를 표명한 것이다. 언론들은 그가 내년 대선에서 집권할 경우, 대 중국 강경책을 추진할 것임을 드러냈다고 해석했다.

해외 순방에 나선 디샌티스, 목적은 역시

 

디샌티스는 25일과 26일에는 한국에 들러 한덕수 국무총리와 김동연 경기지사 등을 만났다. 그는 김 지사와 무역⸱투자 파트너십 구축, 한반도 긴장 완화, 미래 지도자의 역할과 책임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디샌티스는 이어 이스라엘과 영국을 방문하고 순방을 마치는데, 이스라엘 방문 역시 대선을 겨냥한 정치 행보로 여겨진다. 공화당은 친이스라엘 노선을 표방하면서 백인 복음주의자의 지지를 받는다. 일례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란 핵협정을 파기했고, 자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했다. <AP통신>의 2020년 대선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백인 복음주의자 중에서 81%가 트럼프를 찍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왼쪽)와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오른쪽) (사진: 경기도)

 

차기 공화당 대통령 후보는 민주당을 반(反)이스라엘 정당으로 규정할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 내 진보의 아이콘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 하원의원(뉴욕 제14구·3선)이 이스라엘을 지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디샌티스는 이 점까지 고려한 것으로 보이며, 이스라엘 건국 75주년을 직접 기념하고 이란 핵협정 반대파인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만난다. 요컨대, 디샌티스는 이번 순방 일정을 통해 차세대 대선 주자로서의 입지를 해외에서도 공고히 다지려고 하고 있다.

공화당 안에서 디샌티스의 ‘몸값’은 2022년 플로리다 주지사 선거에서 1,507,897표(19.40%포인트) 차이로 압승하며 재선에 성공한 뒤 크게 치솟았다.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히스패닉(58%)과 도시 교외지역(58%)의 지지까지 확보해 확장성을 갖춘 반트럼프 후보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지금도 여전히 제일 유력한 반트럼프 대권 주자이다.

과대평가의 여지도 존재한다

 

디샌티스의 재선 성공은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결과였다. 쿠바계, 니카라과계, 베네수엘라계가 플로리다에 자리잡았고, 좌파 정권을 변함없이 혐오해서 민주당이 2016년 대선 이래로 플로리다에서는 번번이 고전을 면치 못했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민주당·재선)이 2004년 대선 당시에 공화당이 57%포인트 우세에 달했던 쿠바계 격차를 2012년에 민주당의 2%포인트 초박빙 우세로 뒤집은 적이 있을 뿐이다.

당시 젊은 세대(18~49세)가 오바마를 지지했으나, 그들도 카스트로 정권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특히 1995년 이후에 정착한 사람들은 더딘 경제 개혁·개방에 분노하면서 기업가 정신을 지지하게 되었다. 미국 유권자는 한국과 다르게 선호 정당을 고르고 등록해야만 투표할 수 있는데, 여론조사 전문가인 기예르모 그레니어 플로리다국제대학 교수(사회학)에 따르면 2010년 이래로 미국에 정착한 쿠바계 중에서 76%가 공화당 유권자로 등록했다.

 

오바마가 쿠바 국교 정상화를 2014년 중간선거 참패 이후에 본격적으로 추진했기에, 그의 행보와 트럼프의 이념 공세가 친공화당의 주요 요인으로 꼽아볼 수 있다. 트럼프는 국교 정상화를 2016년부터 거세게 비난하고 있으며, 2020년에는 버니 샌더스 무소속 상원의원(버몬트·3선)의 ‘카스트로 옹호 발언’까지 부각시켜 젊은 쿠바계까지 결집시켰다. 젊은 세대를 포함한 쿠바계 지지율을 2020년에 55%까지 높여서 공화당 우위 구도를 회복했다.

디샌티스는 트럼프처럼 플로리다에서 쿠바계의 확고한 지지를 얻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2021년 쿠바 반정부 시위 당시에 2,500만 달러를 투입해서 마이애미에 소재한 프리덤 타워를 개·보수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프리덤 타워는 냉전 시기에 마이애미로 건너온 쿠바계 난민을 심사하고 서류를 발급하는 장소로도 활용되었다. 즉, 디샌티스는 ‘트럼프가 일으킨 변화’를 이용해서 쿠바계의 지지가 자신에게 향하도록 애를 쓰고 있다. 2022년 중간선거 당시에 허리케인 이언(Ian)의 피해 복구에 노력한 것도 이런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마이애미 프리덤 타워 (사진: 셔터스톡)

 

※ 디샌티스의 쿠바계 지지율2018년: 66% (쿠바계 여론조사 전문가 페르난디 아만디의 조사 결과)2022년: 68% (NBC 출구조사 결과)

당선 가능성? 섣불리 자만해선 안 된다

 

하지만 재선 결과에 취한 것일까? 디샌티스의 구상에 브레이크가 걸린 흐름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디샌티스가 내세우는 경쟁력의 핵심은 자신의 재선과 2022년 중간선거 결과를 비교한 ‘당선 가능성(electability)’이다. 공화당이 하원에선 222석(+9)을 확보해 다수당을 힘겹게 탈환했지만 트럼프 추종자들을 차출한 상원에서는 1석을 오히려 상실했기 때문에, 디샌티스는 트럼프와의 차별화를 시도하면서 자신을 공화당 중간선거의 최대 승자로 내세울 수 있었다. 실제로 디샌티스는 이런 자신감 속에서 4월에 뉴햄프셔를 방문해 ‘패배의 문화’를 콕 집어 비판하면서 자신을 강력한 후보로 내세웠다.

그렇지만 디샌티스가 직면한 가장 큰 어려움은 대선 출마를 선언한 트럼프라는 존재다. 트럼프는 우선 디샌티스의 정책을 강하게 공격하고 있다. 트럼프는 주류(재정보수파)와 다르게 사회보장연금과 메디케어 혜택의 축소 불가, 대규모 인프라 확충을 공언해서 백인 블루칼라 노동자의 지지를 받았다. 디샌티스는 반대로 주류인 폴 라이언 전 하원의장(위스콘신 제1구·10선)의 복지 민영화 정책을 연방 하원의원(플로리다 제6구·3선) 시절에 지지한 바 있다. 민주당과 바이든도 공화당을 복지 혜택을 축소하려는 정당으로 규정해서 백인 블루칼라 노동자의 표를 얻으려 하다 보니, 기묘하게도 민주당과 트럼프가 합심해서 디샌티스를 비판하는 모양새가 갖춰졌다. 디샌티스가 그 시절에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을 지지했는데 지금은 불개입을 천명한 점 역시 트럼프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포인트다.

디샌티스의 ‘사회⸱문화 전사’ 이미지 도움이 될까

 

디샌티스가 자신의 구상과 달리 반트럼프 진영을 결집시키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디샌티스는 워키즘(Wokisme), ‘깨어 있는 캘리포니아 기업’ 등과 싸우겠다며 지난해부터 디즈니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 디즈니가 동성애자입막음법(Don't Call Gay)에 반대하자 자치권의 한 축인 세금 혜택을 박탈했다. 그런데 공화당 주류와 온건 보수파들은 여전히 친기업 성향이라서 정치적인 디샌티스의 반기업 행보를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럼에도 디샌티스는 교도소를 놀이공원 근처에 건립하겠다고 발언하는 등 디즈니를 끊임없이 협박하고 있으며, 동성애자입막음법을 강화해서 공립학교의 성소수자 교육을 완전히 금지했다. 디즈니가 디샌티스를 고소했기 때문에, 동성애자입막음법이 대선 쟁점으로 떠오를 수도 있다.

 

지난해 3월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세이디힐스의 한 학교에서 공립학교에서 성정체성 및 성적 지향 언급을 금지하는 '학부모 교육권리법'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또한 디샌티스는 ‘6주 후 임신중절금지법’에 서명하기도 했다. 선거 당시에는 플로리다의 시스템과 여론을 의식했으나, 자신이 재선에 성공하고 공화당이 주 의회 양원에서 2/3 이상 의석을 확보하자 생각을 바꾸었다. 공화당은 법안을 4월에 통과시켰으며 은닉총기 소지권도 확대했다.

 

민주당이 낙태, 총기 규제, 성소수자 인권을 내년 대선에서도 활용하려 하건만, 디샌티스는 강경한 사회·문화 전사 이미지를 고수하고 있다. 2022년 중간선거 결과의 충격이 크다 보니, 적지 않은 공화당 지지층조차 디샌티스의 이런 강경 이미지에 지지를 주저하고 있는 듯하다.

결국 바이든과 트럼프가 다시 격돌할까?

 

디샌티스가 확실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와중에 3월 30일 트럼프의 기소 이슈가 터졌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사법 리스크’ 부담이 불거졌는데도 트럼프의 기세는 더 살아나고 있다. 트럼프는 올해 1분기 석 달 동안 1,450만 달러를 모금했다. 기부자 중에서 99%가 200달러 미만을 제공한 풀뿌리 지지자들이었다. 그런데 트럼프는 기소 뒤 4월 15일까지 불과 보름 만에 1,500만 달러가 넘는 자금을 끌어모았다. 이 가운데 개인 기부자가 30만 명이 넘었으며, 그중 압도적 다수가 200달러 미만을 제공했다고 한다. 트럼프가 풀뿌리 지지층을 결집시키면서 주도권을 되찾은 것이다.

전국 혹은 지역별 여론조사 추이를 봐도 트럼프가 디샌티스를 크게 앞선다. 예를 들어 사우스캐롤라이나는 1980년 이래로 역대 공화당 대통령 혹은 후보를 매우 높은 확률로 지지해 온 곳이다. 2012년 프라이머리 승자인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조지아 제6구·11선)만이 후보 지명을 받지 못했을 정도인데, 공립 윈스롭대학(Winthrop)의 4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트럼프가 41%의 지지를 받아서 디샌티스를 20%포인트 차이로 앞섰다.

여러 어려움이 겹친 가운데 디샌티스는 해외 순방을 벌이고 있다. 그는 미국에 귀국한 후에는 더욱 본격적으로 트럼프와의 대결을 준비해야만 한다. 1978년생인 디샌티스는 트럼프보다 훨씬 젊지만, 워싱턴 정가와 지역에서 폭넓게 경력을 쌓다가 대권 주자로 떠올랐다. 민주당 소속인 케네디 형제,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처럼 ‘젊은 기수’로서 공화당을 이끌어 볼 수 있게 되었으나, 트럼프와의 차별화를 이루지 못하고 지금은 주도권까지 내주고 있다.

 

공화당 대통령 경선이 2024년 2월 5일 아이오와에서 시작되지만, 시간을 디샌티스의 편으로 보기는 힘들다. 조지아의 패니 윌리스 풀턴 카운티 지방검사가 트럼프를 기소하면, 풀뿌리 지지층이 2020년 대선 결과에 불복하면서 트럼프를 지지할 가능성이 있다. 크리스 스누누 뉴햄프셔 주지사(4선) 등 온건파들이 출마했거나 입후보를 준비하고 있어서, 디샌티스는 공화당 내 반트럼프의 온전한 지지를 기대하기도 힘들다. 트럼프가 혼돈의 구도를 형성한 것일까, 아니면 디샌티스가 자만하면서 화를 자초한 것일까?

이대로라면 내년 미국 대선은 바이든과 트럼프의 ‘리턴 매치’가 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글쓴이 신은철은프리랜서 칼럼니스트이다. 영어영문학과 출신으로, 2012년 미국 대선을 지켜보면서 미국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미국의 주요 일간지와 주간지는 물론, 주요 정치 사이트, 블로그, 주와 카운티 단위의 지방 언론까지 수년 간 섭렵하면서, 미국 정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아가고 있다. 미국 정치에 대해 정리된 생각들을 2016년부터 SNS 등을 통해 알리고 있고, 지난해 8월부터는 본격적으로 칼럼을 쓰고 외부 강연을 하고 있다. 미국 유권자층의 변화, 그리고 이에 대한 정치권의 대응을 미시적 수준까지 추적해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