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신당 창당론이 떠오르고 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에 속하지 않으면서 중도를 표방하는 정치세력에서 제기되는 신당은, 역대 선거철에 자주 등장했던 ‘제3지대론’을 떠올리게 한다. 거대양당 체제의 한계와 문제점에 대한 여론의 비판이 적지 않았는데도 한국 정치에서 제3지대 실험은 그다지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왜일까?한국 사회의 낡은 관념 극복과 새로운 방향 모색에 관심이 많은 김도훈 필자가 마침 지난 2020년 총선 전 제3지대를 표방하며 창당했던 ‘시대전환’에 대한 평가의 글을 보내왔다. 필자는 시대전환에서 교육과학 분야의 정책을 맡은 내부자로 활동하다 그만둔 경력이 있어, 이 글은 그의 ‘시대전환 결별기’이자 3년여에 걸친 ‘시대전환 관찰기’이기도 하다. 그는 시대전환의 지난 3년을 ‘실패’로 규정하고, 무엇이 실패를 낳았는지 살핀다. 그리고 정치적 다양성에 필요불가결한 제3지대의 정치 조직이 생존하고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들을 제안한다.시대전환과 관련해 필자와 다른 견해나 제3지대에 대한 의견이 <피렌체의 식탁>에서 논의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편집자 주]

✔ 시민들의 '제3지대'를 고민하던 중 만들어진 정당 '시대전환'✔ 국가 지속가능성을 위한 교육·과학 영역에는 문제의식 없어✔ 정치적 무능·무책임으로, 원자화된 개인에게 피해 고스란히✔ 정당 활동은 이상 추구하기보다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젊은 인재들이 리더십 키울 수 있는 참신한 조직 탄생하기를

사진: 시대전환 페이스북

내가 시대전환에 참여했던 이유: 양대 정당 체제에선 문제해결과 합의가 불가능

2019년 10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저는 랩2050이라는 사회연구소가 주최한 모임에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제가 왜 거기에 갔는지 기억을 상기해 보면, 당시 연구소의 소장이었던 이원재 씨에게 답답함을 토로했던 것 같습니다. 그즈음 제 회사 아르스 프락시아는 한 대학과 공동연구를 진행했는데,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대한민국의 미래 어젠다를 예측하는 일이었습니다. 백캐스팅(Backcasting)이라는 미래 예측 기법을 활용해서, 2030년쯤에 대한민국이 몰락해 있다면 어떤 이유(변인)들의 연결로 인해서 그런 결과가 초래될 수 있을지를 가설적으로 복기해 보는 작업입니다.

결론만 갈무리하면, 인구문제는 심화되고 중국은 부상하는데 정책은 답보 상태에 있고 낙후된 생산구조는 혁신 역량을 제고하지 못해 생산성의 정체에 빠질 가능성이 농후했습니다. 그 와중에 양극화, 계급 고착이 심화되고 북핵 위협마저 심각하게 전개된다면, 내부 갈등과 외부의 위기가 겹쳐 국가의 통제 역량이 잠식될 위험이 커집니다. 물론, 연구를 통해 도출된 이런 리스크 요소들이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심각하다고 느낀 점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사회가 해당 문제들에 대응하기 위해 어떠한 합의도 이끌어내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 담론 네트워크를 통해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당시 정부를 봐도 답답한 마음은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시민들의 촛불항쟁으로 인해 새 정부가 들어선 지 벌써 3년 차였는데, 어부지리로 권력을 잡은 인사들이 국민의 여망을 반영하여 국가를 운영할 역량은 매우 제한적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사회적 참사였던 부동산 정책, 아무런 콘텐츠 없이 피상적인 이념에만 충실했던 교육 정책, 실제 구현을 위한 전략과 오퍼레이션은 부재한 채 마케팅성 구호만 요란했던 과학, 산업, 기술 정책 등은 국가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더했습니다. 젊은 친구들이 한국에서의 삶은 ‘불안하거나 불행하거나’ 둘 중 하나밖에 없다고 할 때 마음이 아팠습니다.

문제 해결을 위한 숙고와 합의가 필요한데, 양대 정당의 해묵은 대립 구도는 지엽적인 사건과 이슈에 집착하고 말장난으로 대립을 유발하는 현대판 ‘예송 논쟁’을 격화시킵니다. 정치권에서 국가·사회 어젠다가 공전하여 문제의 해결이 요원해지고, 적대적 공생이 항구화될 때 오히려 각자의 권력이 공고화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정치적 중용과 진지한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들의 ‘제3지대’가 필요하지 않을까 고민하던 중에, 우연히 참여했던 모임은 이듬해(2020년) ‘시대전환’이라는 신생 정당의 창당으로 이어졌습니다.

2020년 1월 시대전환 창당 선포식 (사진: 연합뉴스)

참여관찰: ‘진보 모임’에서도 낡은 행태가 반복되는 이유

<나무위키>에서 시대전환을 검색해 보니, ‘조정훈 국회의원이 당대표로 있는 중도실용주의 정당’으로, ‘문제 해결 정치를 추구하며 이념 대립에 벗어나 실용 정치를 지향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총선 직전 탈당하기 전까지 수개월간 참여했던 제 관점에선 나름 합당한 설명이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중도는 무엇이고, 실용주의는 무엇이며, 문제 해결 정치, 실용 정치의 구체적인 지향과 방법론이 무엇인지는 따로 논의해야겠지만요.

‘진보 vs 보수’, ‘좌파 vs 우파’ 같은 기존 문법에 익숙한 이들의 관념에선 정치 지향을 논할 때 정치 집단이 좌파에 가까운지, 우파에 가까운지를 따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생각은 좀 다른데, 오늘날의 복잡다단한 현실에서는 정책의 효과성과 효율성, 공정성과 도덕적 원칙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적응해야 하고, 그 해법은 때때로 좌파, 우파, 혹은 전혀 다른 지향일 수 있다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오히려 문제의 근본적 핵심을 파악하여 기존의 구분선을 돌파하는 리더십과 국정철학 아닐까요.

그렇게 이념 대립에서 벗어나 문제 해결 정치를 구현하는 것이 사회의 진보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 문제의 근본인지 그 개념부터 이해하고, 대한민국의 역사가 무엇을 위해 나아가야 할지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국정철학과 복합적 교양이 필요합니다. 그 교양의 요체는 문제의 발견과 정의, 해법을 위한 객관적인 접근과 실증적 분석, 높은 추상적 사고와 해석적 역량의 융합인데, 여야를 막론하고 현 정치권에 결여된 역량과 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시대전환은 어땠을까요? 불행히도 신생정당 역시 애초의 취지와 달리 실제 행태는 기존 정치권과 별 차이가 없었거나 빠르게 낡은 방식으로 수렴되어 갔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에 대해 나름 복기해 보려 합니다.

2020년 2월 초에 유럽 여행을 마치고 국내에 돌아와 처음 정당 모임에 참여했습니다. 이미 1월에 몇 차례 모임이 진행된 터였는데, ‘이대로 바람만 불면 (총선에서) 최소 30석’이라는 얘기가 회의장에서 나오는 등 한창 들떠 있는 분위기였습니다. 정치를 잘 모르지만 제 상식적 판단으론 가능한 획득 의석 범위가 0~3석 사이였고, 그해 4월 총선에서 신생정당이 단 한 석도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정당이 ‘떴다방’ 같이 운영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이원재 공동대표를 만나 “이번 총선이 아닌 장기적 안목에서의 정당 운영 플랜이 있는가. 설령 이번에는 원내 진입을 못하더라도 젊은 친구들을 성장시키고 향후 선거에 계속 내보낼 수 있는 정당 운영이 필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재원 확보와 미디어 운영이 선결되어야 한다. 그런 일들을 진지하게 수행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여하기 어렵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다 공개하긴 어렵지만 당시 이 대표는 재단 설립과 출연 등을 언급하며 정당의 장기 운영 의지를 피력했고, 저는 교육·과학 정책 분과를 맡아 그 후 몇 달간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이 대표의 말과 달리 정당의 실제 운영이 재정면에서 열악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총선을 두어 달 앞두고 모인 활동 자금이 몇백만 원이 채 안 되었습니다. 정당을 구성하는 주된 요소로 정책(사상), 조직(인물과 원칙), 재정을 꼽을 수 있는데, 사업을 하는 관점에서 조직 운영을 위한 재정 확보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구성원들은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훌륭한 일을 하고 있고, 당장에 바람을 일으킬 텐데 저 사람은 여기서 무슨 돈 얘기를 저렇게 하는 걸까’ 같은 반응이었다고나 할까요.

더욱 우려스러운 생각이 들었던 것은, 정강 정책과 관련된 부분이었습니다. 중도실용과 문제 해결 정치를 표방했으면 광범위한 영역에서 심도 있는 지식과 경험을 갖춘 전문가들이 정책을 입안하고 이들을 포괄할 국정 철학과 수권 전략이 수립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시대전환이 내세운 정강 정책은 북한과 이웃 국가같이 평화롭게 지내겠다는 조정훈 대표의 ‘이웃 국가론’, 이원재 대표의 정책 아이템이었던 기본소득 정도가 고작이었습니다. 이후 환경운동가 등이 합류하여 탄소제로 정책 등을 기술했는데,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제가 핵심적이라고 생각했던 교육, 과학, 산업, 기술 방면에서의 문제의식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수뇌부도 해당 영역을 딱히 중시하지는 않았는데, “교육, 과학, 산업, 기술 방면에서의 정책은 어떻게 할 거냐?”는 제 질문에 제가 알아서 하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어쩌면 ‘북한’과 ‘기본소득’이 신생정당에서도 대표적으로 내세우는 어젠다가 되고 국가·사회 거버넌스와 오퍼레이션의 핵심인 교육, 과학, 산업, 기술 영역이 부차적이거나 정책에서 논외가 되는 현실이야말로 이 나라가 누적해 온 낡은 이념 대립의 폐해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국가를 운영할 포괄적인 고민은 없이 당장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이슈와 정책 아이템에 골몰하게 되는 것이죠. 내부 회의에 참여하면서 북한 문제에 대해 보다 포괄적인 외교 청사진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피력했었고,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팩트를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발제자인 이 대표에게 “기본소득이 실제로 구현된다면 전 국민에게 1인당 얼마를 줄 수 있는 거냐”고 질문하니 30만 원이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짐짓 놀라서 “만약 국민적 저항이 만만치 않을 중부담 과세를 관철한다면 최대 얼마까지 지급할 수 있는 거냐”고 물으니 대략 50만 원 정도라고 했습니다. 사회에 이미 행정 시스템과 지역 사회에 다양한 복지 제도가 운영 중이고, 그 시스템이 단순히 ‘돈’만을 지급해서 수급자를 지원하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고작 30만~50만 원의 현금 지원을 붕괴하는 고용과 인간소외의 만병통치약 같은 대안으로 주창했던 것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공유했던 기대의 거품은 정치 상황이 조금만 바뀌어도 손쉽게 사그라들기 마련입니다. 양대 정당이 위성정당을 만들면서 제3지대가 운신할 폭이 급속히 좁아졌습니다. 조정훈, 이원재 두 공동대표는 당원들 앞에서, ‘위성정당이 급조되는 정치환경의 급변으로 인해 시대전환도 선택의 기로에 섰다, 우리는 더불어민주당의 우산으로 들어가고자 한다’는 취지의 선언을 했습니다. 어느 금요일 오후에 격렬한 토론이 벌어졌고, 참석한 당원들의 투표에 의해 공동대표들의 제안이 부결되었습니다. 그러나 사흘 뒤 월요일 조정훈 대표는 “당헌 당규에 정당의 중요한 결정을 투표에 의하지 않고 대표가 결정할 수 있다고 명문화되어 있다. 이번만큼은 우리 대표들의 판단과 결정을 믿어 달라”는 내용의 글을 당원들의 단톡방에 올렸습니다.

당원들이 결정한 사안에 대한 번복은 다른 차원에서도 이루어졌습니다. 내부 투표를 통해 비례대표 순위를 이원재, 조정훈 순으로 정했는데, 더불어민주당과의 교섭 과정에서 수뇌부가 일방적으로 후보 1순위를 조정훈으로 바꿔 추천했습니다. 의석을 보다 많이 확보하기 위해 이원재 대표를 시대전환이 아닌 외부 시민사회의 비례대표 추천으로 돌렸다고 들었습니다. 관계자에게 “그런 변칙적인 전략은 매우 우려스럽다. 딴 건 몰라도 협잡질은 기성 정치권이 심할 텐데, 신생정당이 운영 초기부터 원칙을 지키지 않고 변칙 플레이를 시도하는 것은 아예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의견을 전달했던 기억이 납니다. 우려했던 대로 이원재 씨는 외부에서 공천을 받지 못했습니다.

정당의 온전한 운용을 위해 정책(사상), 조직(인물과 원칙), 재정이 중요하다고 앞서 언급했습니다만, 일단 조직의 지속가능한 운용을 위해서는 원칙을 견지할 수 있는 인물들로 핵심부를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경험을 얻었습니다. 구멍가게만한 스타트업도 수없이 많은 평지풍파를 겪고, 쉽고 편하게 이익을 추구하고자 하는 유혹도 받습니다. 아마도 정치 조직은 훨씬 더 많은 압박과 유혹에 노출되겠지요. 그 압박과 유혹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단순히 이목을 끌기 위한 아이템 같은 정책을 들고 나올 것이 아니라 당사자가 ‘정치를 왜, 어떻게 하고자 하는가?’라는 진지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되는 사상이 확고하고, 단순히 저명인사나 전문가를 모을 것이 아니라 고생을 겪더라도 구성원들을 한 방향으로 계속 함께 가게 하는 원칙이 중요합니다. 탈진실 사회에 이미지 포장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수많은 말과 연출은 결정적인 행동을 은폐하지 못합니다.

2020년 당시 시대전환 공동대표였던 조정훈(왼쪽/조정훈 페이스북) 의원과 이원재(오른쪽/이원재 페이스북) 경기도 정책보좌관

비전과 리더십의 체화를 위하여: ‘못난 사람들만 정치를 한다’고 말하기 전에

시대전환은 ‘절반의 실패’에 가까운 성적표를 남겼다고 생각합니다. 지도부의 독단적인 의사결정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정당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한 명이 원내에 입성했고, 선거 준비 과정에서 함께 했던 젊은 보좌진들 상당수가 온전히 활동하고 있다는 면에서는 성과가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조정훈 의원은 국회 입성 후 여러 차례 국정감사 최우수 의원상을 수상했고, 신사의원 베스트 10에 뽑히기도 했습니다. 물론 앞으로의 정치적 생존을 위해서는 기존 정당들 어느 쪽과 비슷한 스탠스를 취하고 언행을 구사하고자 하는 압박과 유혹을 받을 겁니다. 정치인 개인의 커리어를 지켜줄 독자적인 정당 기반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조 의원이 최근에 외국인 도우미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법을 발의한 것을 보고 새삼 놀라기는 했지만, 겉으로 화려한 외양과 달리 늘상 쫓길 수밖에 없는 직업정치인의 예측가능한 수순이라는 생각도 한편으론 듭니다.

“내 아는 (사회에서 성공한) 친구들 중에 정치권에 들어간 놈은 하나도 없어. 사회에서 자리를 잡았으면 거길 왜 가.” 수년 전 사회적으로 명망 있고 존경받는 어떤 분이 사석에서 하신 말씀이 가끔씩 귓가를 맴돕니다. 그 말씀에는 그간 축적된 진실이 담겨 있겠지만, 이제는 그 인식을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인의 이미지가 언제부턴가 후져졌고, 더 이상 크게 선망받는 직업이 아니기도 합니다. 깊은 문제의식이나 사회적 소명의식이 없는 채로, 단지 부(富) 혹은 사회적 지위를 획득했거나 시민운동 등으로 그럴듯한 경력을 쌓은 사람들이 자신을 포장하며 개인적인 입신양명의 수단(욕망)으로 정치권에서 운신하는 행태가 반복되어 왔기 때문이겠죠. 그런 행태의 재생산은 개인의 문제라기보단 그 사회의 가치관과 시스템의 허점을 드러냅니다. 그만큼 인테그리티(integrity)가 갖춰진 사람들이 정치권에 들어갈 인센티브가 없고, 뚜렷한 철학이나 비전 없이 이미지 메이킹만 하는 사람들을 걸러낼 장치와 인적 네트워크가 시민사회에서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일 테니까요.

문제는 그런 정치적 무능과 무책임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장기간 불안 속에서 공부하거나 불행하게 삶을 영위해 온 이 나라의 보통사람들이 고스란히 받는다는 점입니다. 서두에 양대 정당의 폐해에 대해 언급했지만, 현재 대의제 구조는 고 김용균 씨 같은 일하는 젊은이와 입시에 찌든 청소년들, 행복하지 못한 채 붕괴하고 있는 가족, 크고 작은 회사의 사원과 임원, 교사와 연구원, 상점이나 에이전시를 운영하는 자영업자, 여의도의 증권매니저와 전문직, 중소기업 사장, 강남에 ‘꼬마 빌딩’을 가진 건물주까지 다양한 계층의 원자화된 개인들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사회적으로 관성화된 믿음 혹은 편견에 의해, 유사 종교집단이나 연예계 팬덤처럼 이 나라의 몇 안 되는 정당과 인물들에 대해 선택지 없는 호불호를 드러낼 뿐이죠. ‘빨갱이’, ‘친일파’ 같은 허황된 비난 대신, 공히 국가를 이끌 역량과 진정성이 없는 이들의 실체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과문하지만, 유럽 선진국들처럼 중선거구제, 비례대표제, 연립정부 구성이 활성화되어야 다양한 정치 집단이 보다 폭넓게 민의를 수렴하면서 정치적 효용감을 제고하고, 견제와 균형을 통해 리더십과 정책역량을 발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진: 셔터스톡

앞으로 정치적 다양성을 촉진하기 위해 필요불가결한 제3지대의 정치 조직들이 향후 어떻게 생존하고 발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숙고가 필요합니다. 양대 정당 바깥에 위치한 정치 조직들이 구성원들의 지지를 오래도록 얻지 못한 채 와해되는 데는 장기적 비전과 철학의 부재, 정당 정체성을 발전시키기 위한 소통과 물적 투자의 부족, 정치적 생존과 단기적 이익에 대한 수뇌부의 조급함이 크게 작용했다고 판단합니다. 정말 제대로 된 정당을 만들고 키울 생각이 있다면, 선거가 없는 해에 시작해서 비전과 운용체계부터 탄탄히 준비해야 합니다. 단순한 비판과 안티테제, 일견 진보적이거나 혁신적인 것으로 비치는 얄팍한 구호와 정책 아이템을 넘어서 통치 철학에 대한 숙고와 체화가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정당을 장기간 안정적으로 운영하면서 혁신에 투자할 수 있는 재원부터 확보해야 하구요. 나름의 숭고한 의지와 별도로, 참여자들에게 제대로 보상하고 전문가적 외연을 넓힐 수 있는 기업적 합리성과 조직 역량이 결여되어서는 진짜 좋은 사람들을 모으기 어렵습니다. 정당 활동은 운동이나 이상의 추구가 아니라, 사회의 전위에서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한 현실적인 조직 운용입니다.

요즘 세태에서 전문직이나 대기업, 참신한 스타트업 대신 정당 활동을 선택할 젊은 인재들이 있을까 회의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개인적 영달만을 위해서 사는 존재는 아니기에, 공공의식이 투철한 소수의 인재만이라도 견실한 조직 내에서 성장하고 네트워크를 확장할 수 있다면 작금의 정치 환경은 의외로 급속히 변할 수도 있음을 엿보았습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경쟁력이 낮아져서, 역설적으로 오늘날 정치의 장은 ‘블루오션’이기도 합니다. 투쟁으로 점철되었던 근현대사와 낡은 권위주의의 유산에 기생한 ‘정치꾼’들이 계속 현 상태로 운신하기엔, 국가적 생존 위기가 근미래에 가시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젊은 인재들이 새로운 리더십을 키울 수 있는 참신한 조직이 탄생하길 염원합니다.


글쓴이 김도훈은사회학을 공부한 학자이자 데이터 전문가이다. 데이터를 분석하지만, 숫자와 도표 안에서 시민을 읽는다. 데이터 분석 자체를 사람을 이해하는 실용적인 예술이라는 생각에 회사 이름도 라틴어로 이를 뜻하는 ‘아르스 프락시아’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