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행 선거제는 사회적 합의 산물… 위성정당으로 능멸당해✔ 국회 전원위원회, 합의점 만들지 못하고 말의 향연으로 끝나✔ 어떤 스포츠도 경기 뛰는 선수들이 룰을 정하는 법은 없어✔ 시민의회서 열린 자세로 숙의해 선거제 개편 방향 결정해야✔ 진검승부 조장하는 양당제 깨고, 합의 활발한 다당제로 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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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총선을 1년 앞두고 국회는 선거법 개정 논의에 돌입했다. 3개의 개편안을 마련하고 4월 10일부터 나흘간 열린 전원위원회에서 선거제 개편 방향에 대해 논했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지금까지는 토론의 시간이었고 이제는 협상의 시간이 시작된다”며 “늦어도 6월까지는 단일안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곽노현 징검다리교육공동체 이사장(전 서울시 교육감)은 “선거법을 개악하려거든 차라리 현행 제도로 치르는 게 낫다”며 “어떤 스포츠 경기도 선수들이 직접 룰을 정하는 경우는 없으니 시민의회에서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지원의 식탁’ 시즌2 6회에서는 선거구제 개편 쟁점과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짚었다.

이재명의 돈봉투 사건 사과, 늦었지만 잘했다

김보협: ‘이주의 짤’. 이번 주 주인공은 바로 이분입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에 대해 4월 17일 오전에 사과한다며 고개를 숙였고 프랑스에 체류 중인 송영길 전 대표의 귀국을 요청했어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2021년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과 관련해 사과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박지원: 사과 잘했어요. 지난 12일과 13일에 <JTBC>에서 민주당 현역 의원들과 간부의 육성이 공개되더라고요. 그런데 민주당은 멈칫해요. 그래서 14일에는 <YTN> 라디오에서, 주말에는 강연 가서 “민주당이 이래서는 안 된다. 잘못한 건 인정해야지. 이렇게 육성으로 돈봉투가 왔다 갔다 한 것이 밝혀지는데, 검찰이 민주당을 정치 탄압하고 있다고 말하면 국민들이 안 믿는다. 솔직히 말하자”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재명 대표에게도 직접 연락했어요. 조금 늦었지만 이 대표가 월요일 사과하면서 윤석열 대통령과 완전히 차별화가 됐어요.

윤 대통령은 잘못해도, 사고가 나도, 반성하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반면 이재명 대표는 대국민 사과, 송영길 전 대표의 귀국 조치, 그리고 자체 조사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검찰 조사에 협력하겠다고 했어요. 얼마나 옳은 대응입니까?

김보협: 근데 그게 좀 늦었잖아요. 사과한 게 17일인데, <JTBC> 보도에서 의원들의 육성이 나온 게 12일, 13일 지난주고. 처음에는 이재명 대표도 시점이 묘하다, 검찰이 정치 탄압 수사를 많이 해왔기 때문에 그런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었잖아요.

박지원: 합리적 의심은 가요. 이정근 사무부총장이 구속돼 있으면서 검찰에 협력했기 때문에 검찰이 징역 3년 구형한 듯한데, 법원에서 이례적으로 4년 6개월 선고를 했어요.

김보협: 보통은 법원이 검찰 구형보다 낮은 선고를 하기 마련인데, 이번 건의 경우 검찰에 수사를 협조하고 있어서 구형을 좀 낮춘 것 아니냐...

박지원: 그러고 녹음테이프(녹음파일)가 공개되기 시작했단 말이에요. 그렇다면 검찰은 당연히 녹음테이프를 갖고 있었을 거예요. 또 한일 굴욕 외교, 미국 정보기관의 도청, 전광훈 목사 사태, 김재원·태영호 최고위원 실언 등이 계속돼서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다시 20%대로 내려앉았단 말이에요. 시점에 대해서는 합리적 의심은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건의 경우) 검찰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에요. 우리 국회의원, 당 간부의 육성이 돈봉투 관련해 나왔는데 검찰이 정치 탄압한다고 주장하면 국민이 믿겠냐? 그래서 저는 14일부터 책임을 져야 한다 했습니다.

김보협: 요약하면, 늦었지만 이재명 대표 잘했다.

박지원: 그리고 반대로 이재명 대표 수사는 수년간 350번 이상 압수수색을 했지만 증거가 있느냐? 또 이재명이 돈봉투 줘라 마라한 녹음테이프가 공개됐느냐? 우리는 지금도 이재명 대표 사건에 대해서는 ‘보고 싶다 증거야’라는 입장이죠.

송영길 전 대표, 빠르게 귀국해 입장 밝혀야

김보협: 이번 건은 의원에게 돈봉투가 전달됐다는 정황이 나왔고, 이재명 사건은 지금 어떠한 증거도 드러나지 않고 몇몇 사람들의 진술밖에 없다, 그런 말씀이시죠? 실장님도 상황 파악을 해보셨을 거 아니에요? 실제로 2021년 송영길 대표가 당선되던 때 돈봉투가 뿌려졌나요?

박지원: 그건 모르겠어요. 저는 당시 민주당이 아니었어요. 다만 송영길 전 대표가 금권 선거를 하는 분은 아니에요. 굉장히 클린한(깨끗한) 정치인인데… 어찌됐든 거명이 됐고 그런 일이 있으면 빨리 들어와서 해명을 해야죠. 22일에 파리에서 왜 기자회견을 하나요? 큰일 납니다.

김보협: 22일 기자회견을 서울에서 해야 하는 거 아닐까?

박지원: 들어와서 해야죠. 저 같으면 적극적으로 검찰 수사에 협력하고 차라리 민주당 자진 탈당하겠다, 검찰 수사에서 내 혐의가 사실이 아니라고 드러나면 그때 복당하겠다 할 것 같아요. 이런 태도가 송영길 정치 미래에 훨씬 좋을 겁니다. 제일 좋은 정치인은 ‘자생당생(自生黨生)’. 자기도 살고 당도 살아야 하는데, ‘자생당사(自生黨死’)하면 안 돼요. 그렇게 하다가는 자기도 죽고 당도 죽습니다. 저는 송영길 대표가 해박한 능력이 있는 분이니까 국민이 바라는 대로 할 것이라고 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정치인은 내 생각이 중요한 게 아니라 국민 생각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어요. 그걸 잘 생각해 보면 지혜가 나올 거예요.

선거법 개정 전원위, 합의 도출 없이 말의 향연으로 끝나

김보협: 몸풀기는 이 정도로 하고요. 오늘 메인 이슈는 정치 개혁, 좀 더 구체적으로는 ‘정치를 바꾸기 위해서 내년 국회의원 선출 제도를 어떻게 손볼까?’입니다. 국회가 최근 전원위원회를 열어 어떻게 제도를 바꿔야 민의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을지에 대해 논의는 했는데요, 성에 차지는 않습니다. 최근에 <피렌체의 식탁>에 ‘선거법 개정, 시민의회로 시민 손에 맡기자’라는 칼럼을 쓰신 곽노현 징검다리교육공동체 이사장님을 모셨습니다. 어떻게 불러드리는 게 편할까요?

곽노현: 교육감은 10년도 넘은 일이니까 이사장이 편하겠습니다.

김보협: 알겠습니다, 이사장님. 칼럼도 쓰셨는데, 지난주에 끝난 국회 전원위원회 꼼꼼히 보셨을 것 아니에요. 만족스러웠습니까?

곽노현: 우선 국회 전원위원회가 사상 두 번째로 열린 거예요. 2003년 이라크전 파병 동의안 논의를 위해 열렸고요. 딱 20년 만에 열렸습니다. 선거제 개편은 국회의원과 다 관련이 있으니까 특정 상임위에서 다루는 건 적절치 않죠. 선택은 잘했는데요. 상호 토론 없이 100명의 국회의원이 하루에 4시간씩 나흘을 발언했어요.

김보협: 정견 발표식으로 말이죠?

곽노현: 네. 만약 주제별로 나눠서 이야기를 했다면 집단지성이 가동돼서 의견이 모일 수 있거든요. 그런데 전혀 아니었어요. 말의 향연으로 끝나고 어떠한 합의점도 만들어 내지 못했어요. 다만 저는 전원위에서 네 분의 말이 귀에 확 들어왔어요.

우선 이탄희 민주당 의원입니다. 도대체 양당 체제에서 국민을 대표하는 의원이 몇이나 되냐. 대표의 다양성을 늘리자. 다당제로 가자는 이야기죠. 또 지역구가 커야 큰 정치인이 나온다며 대선거구제를 주장했어요.

또 김종민 민주당 의원이 인상적이었어요. 양당이 단독 과반수를 노리고 있는데 단독 과반수는 틀렸다. 연합 과반수로 가야 한다고 말했죠. 즉 다당제로 가자는 이야기죠. OECD 삶의 질 지표 상위는 다 다당제 국가입니다. 미국, 영국, 호주, 프랑스, 한국 등 소선거구제 국가는 아래에 있어요. 정치는 사회·경제 발전을 독려하고 이를 민생 지표로 드러내야 하는데, 다 실패하고 있다. 그래서 정치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이야기해서 굉장히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고요.

김보협: 나머지 두 분은 성함만.

곽노현: 강민정 민주당 의원은 오늘 제가 하려는 이야기와 겹칩니다. 마지막으로 용혜인 의원 이야기는 꼭 해야 해요. 전원위 평가라서요. 용 의원은 아무 성과나 합의 없이 끝났는데, 이제부터 합의안을 만들자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어떻게 이 자리에서 의원 정수 줄이고 비례 없애자는 말을 태연하게 할 수 있느냐며 국민의힘을 질타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비례 의석을 배분받으려면 최소 3%를 득표해야 하잖아요. 1%로 낮춰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다당제로 갈 수 없는 현실을 이야기했어요. 이야기에 다 공감을 했죠. 저는 사실 (국회가) 전원위를 했지만, 이제부터는 가망이 없는 것 아닌가 비관적입니다.

곽노현 징검다리교육공동체 이사장(전 서울시 교육감)

국회의원 선거제 셀프 논의’? 제척 사유 있어

김보협: 이사장님이 지난 칼럼에서 주장하신 바는 국회의원들은 당사자니까 당사자는 빠지고 시민들이 논의해서 시민들이 결정한 대로 국회는 통과만 시켜달라. 그 방향으로 선거법 개정을 하자는 주장이시잖아요.

곽노현: 사실 저는 21대 국회가 선거제 개편을 논의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세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첫 번째 개인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국회의원은 제척되게 돼 있잖아요. 모든 국회의원은 선거제도에 대해 개인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어요. 개편 방향에 따라 재선 가능성에 영향을 받고요. 그다음에 소속 정당이 과반수를 차지할지 않을지에 영향을 받죠. 개인적 이해관계가 큽니다. 300명이 다 그렇습니다. 전원 제척 사유예요.

예를 들어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이해충돌 사안을 어떻게 의원이 직접 정하냐는 문제의식에서 국민발안권을 통해 헌법 같은 걸 만들었어요. 새로운 법률 장 이름이 ‘이해충돌 장’인데요. 그에 따라 ‘시민 보수위원회’가 모든 선출직 공무원의 세비를 정합니다.

김보협: 지극히 당연한 말씀이네요. 어떤 스포츠도 실제 경기를 뛰는 선수들이 룰을 정하는 법은 없잖아요? 논리적으로는 맞는데 실현 가능성이 있을까요? 실장님은 어떻게 보세요?

박지원: 저는 처음부터 선거구 조정은 안 될 것이라는 부정적 견해를 갖고 있었지만, 김진표 국회의장이 의욕을 갖고 전원위를 성사시킨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다만 지금 대통령 중심제를 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국회에서 논의해 합의점을 도출한다? 그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만큼 어려울 거예요.

그런데 지금 곽 이사장께서 말씀하신 외부에서 전문가 혹은 학자, 국민 대표들이 합의한 것을 국회에서는 법만 통과시켜라, 이게 나오면 아마 가능할 거예요. 실제 과거에 선거구 획정할 때 그렇게 한 적이 있어요. 국회의원은 당사자기 때문에 아무래도 팔이 안으로 굽잖아요. 만약에 김진표 의장이 할 수 있다면 그것을 교섭단체와 합의해서 외부에서 합의안이 도출되면 국회에서 통과시킨다고 하면 돼요. 그렇게 하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국회는 손 떼고 시민의회가 선거제 개편 방향 결정해야

김보협: 이사장님 첫 번째 제척 사유 이외에 나머지 두 개도 말씀해주세요.

곽노현: 소선거구제에서 100명 투표하는데 51명이 뽑은 사람이 당선되죠. 49명의 표는 사표가 됩니다. 즉 소선거구제에서는 이론적으로 51% 정당 지지율만 확보하면 전 지역에서 다 이길 수 있어요. 이것은 불비례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 현실이 우리나라 수도권 광역의회에서 드러납니다. 서울, 경기, 인천 다 제1당 의석 비율이 95%였습니다. 하지만 서울, 경기, 인천 정당 득표율과 지역구 총득표율에선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10%포인트 차이도 안 나거든요. 이게 30년째 되풀이되고 있어요.

국회의원들도 이 사실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걸 방치했습니다. 본인들 기득권이 침해돼서 그래요. 국회의원이 이를 손대려고 하면 당장 국회의원 총선 제도도 바꾸라는 논의로 확산되니, 4년마다 민주당이 다 먹거나 국민의힘이 다 먹게 하자? 정말 무자격입니다. 직무유기가 이렇게 심할 수가 없어요. 광역의회는 일당독재도 이런 독재가 없는 수준입니다. 이게 두 번째 이유입니다. 마지막 이유는 2020년에 20대 국회가 2년 동안 논의해서 패스트 트랙에 태워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만들었어요. 대표성도 비례성도 다양성도 살리려고 한 겁니다.

김보협: 이전 제도보다 훨씬 나은 방향으로.

곽노현: 굉장히 나아진 거죠. 그런데 국민의힘이 위성정당을 만들었습니다. 그것도 공공연하게 탈법 행위를 한 거 아닙니까? 여기에 민주당도 따라가 버리면서 선거제도가 개판 났잖아요. 그러면 21대 국회에서 위성정당 금지 조항을 바로 신설해야 맞습니다. 그런데 안 합니다. 민주당이 이기적으로 계산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지금 연동형 비례제가 그대로 갈 경우 비례 의석 47석 전 석이 연동형 조정석이 돼요. 그럼 지역구에서 당선자를 많이 배출할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비례대표에서는 한 석도 못 가져갈 가능성이 굉장히 높습니다. 즉 민주당이 과반수 의석 달성하기 굉장히 어려워진다는 거죠. 이 생각 때문에 못한 거예요.

정리하면 세 가지. 첫째, 당리당략과 재선 가능성이라는 국회의원 개인 이해관계, 둘째, 광역의회 문제도 국회 이해관계로 모른 척하는 일, 셋째, 위성정당 금지조항을 민주당이 자당의 당리당략으로 눈 감고 있는 일입니다. 무슨 자격이 있습니까? 이런 국회에다 선거 제도 정하라고요?

김보협: 시민의회 말씀하셨는데,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자면, 문재인 정부에서 시도한 공론화위원회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신고리 5·6호기 건설 문제, 대입 제도 변경 문제 등에 대해 한 적이 있잖아요?

곽노현: 네. 공론화위원회와 방식이 같지만 약간 다릅니다. 공론화위는 여론조사와 숙의 방식을 결합한 거죠. 여론조사는 보통 선택지로 2~3가지를 두고, 숙의를 진행하는 방식이 공론화위원회죠. 예를 들어 신고리원전 공론화위원회는 가부(可否)를 물었잖아요. 대입제도 변경 공론화위는 수능 정시 비율을 입학생의 30%, 40% 두 가지 선택지 중에 정한 겁니다.

반면 시민의회는 여론조사처럼 랜덤 샘플링해서 200명 정도 구성한 후에 숙의를 붙입니다. (공론화위와) 차이점은 오픈 퀘스천이에요. 우리나라에 가장 적합한 선거 제도는 어떤 구성 요소를 갖춰야 하고 어떤 원칙 하에 선거 제도를 바꾸는 게 좋고, 가장 합목적적인 선거 제도는 어떤 모습이 될까요, 라고 묻는 식이죠. 선거 제도는 단순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그 안에서 유력한 모델 몇 개를 갖고 의논을 하면서 각각의 장점을 믹스하자는 겁니다. 그래서 시민의회인 겁니다.

다당제 국회, 합의 이끌어낸 좋은 경험... 양당제는 진검승부 조장

박지원: 아무튼 전원위원회에서 긍정적인 부분은 다당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양당에서 다 나왔다는 겁니다. 한국 정치에서 다당제 경험은 노태우 정권 4당 체제가 처음이었습니다. 당시 90% 이상 법안들이 신속하게 4당 합의로 통과됐어요. 상당한 효과를 봤었고요.

최근에 와서는 박근혜 대통령 때 민주당, 새누리당, 국민의당 3당 체제가 있죠. 저는 당시 국민의당 원내대표를 하며 “우리는 캐스팅 보트가 아니라 리딩 파티(leading party)다”라고 말했습니다. 보통 개원 전에 양당 합의가 안 돼서 개원까지 한 달, 두 달 걸렸습니다. 그런데 3당 체제에서 이틀 만에 합의해서 개원이 됐거든요. 당시 박근혜 대통령도 저한테 감사해 하더라고요. 우리는 양당제의 폐해가 너무 커요. 그렇기 때문에 진검승부를 하는 겁니다.

김보협: 상대 당을 죽여야 내가 산다?

박지원: 사실 양당제는 군사정권의 산물입니다. 원래 교섭단체 구성 요건이 10석이었는데, 유신 때 소수당을 없애버리기 위해 교섭단체 기준을 20석으로 늘려버렸어요. 저는 개헌을 통해 권력 체제나 양당제의 폐해를, 또 사표를 줄일 수 있는 다당제로 가야 국회가 전투장이 아니고 타협의 장이 된다, 정치의 장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런 내용이 논의된 전원위는 상당히 효과가 있었다고 평가합니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

국회가 자진해 특권 내려놔야 선거제 개편 열매 맺을 것

곽노현: 사실 김진표 국회의장께서 선거제 개편에 굉장히 의욕을 갖고 전원위를 개최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해드릴 수 있어요. 그리고 내친김에 개헌까지도 완수하는 국회의장을 해보자. 개인적으로 얼마든지 가질 수 있는 원대한 야심이고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가능하려면 선행 조건이 많습니다. 시대를 뚫어볼 뿐만 아니라 비우고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하고, 사람을 끌고 갈 수 있어야 해요. 이번 선거제 개편이 성공하려면 국회의원 특권을 내려놔야 해요. 국민이 국회의원, 국회 다 불신하지 않습니까? 싸움만 하고 할 일은 안 한다고… 이때 최소한 국민들이 바라는 건 특권을 내려놓으라는 거예요. 임기 보장 특권과 세비 책정 특권입니다.

제가 만약 김진표 의장이라면, 첫 번째 국민소환권이 있죠. 지금 지자체장, 지방의원 다 주민소환 대상이에요. 그런데 국회의원들이 입법하며 자기들은 뺐습니다. 이미 21대 국회에서도 여러 의원들이 법안을 내놨어요. 저라면 이거 하겠다고 하고 여야를 설득할 겁니다. 그거 안 하고 선거제 개편 같이 복잡한 이야기하면 국민들 짜증만 나는 거예요. 두 번째로 세비 줄이겠다. 그런데 자신들의 이익이 걸려 있으니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안 합니다. 예를 들어 세비를 우리나라 중위소득의 두 배를 넘지 않게 하겠다고 하면 국민들이 박수칩니다. 믿게 됩니다. 저 사람들이 진짜 정치 개혁할 생각이 있구나. 그런 의미에서 기득권을 내려놓는 선거제 개편을 기대할 수 있거든요.

김보협: 소위 밑밥을 깔아 놓고 시작했어야 된다는 말이죠?

곽노현: 내려놓는 진정성과 역량을 보여줄 때만, 선거제 개편이 열매를 맺는 것이지 몇 사람 불러 모아서 하려 하면 국회의장 할아버지가 와도 안 됩니다. 각자 당리당략이 있고 재선 의지가 있는데 이것들을 더 큰 의의를 위해 내려놓을 수 있게 하는 설득력을 가져야 합니다. 그게 의장이 할 일입니다.

박지원: 이사장님 말씀이 일리가 있고, 과거 입법 활동을 통해서도 그런 움직임이 있었지만 성공하지 못했죠. 그렇지만 김진표 의장이 선거구제 개편이나 개헌 의지를 갖고 있는 것은 높게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새 개편안보다 위성정당 금지 조항 신설한 현행 연동형 비례제가 낫다

김보협: 두 분 모두 다당제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곽노현: 중요한 것은 다당제를 해야 한다는 당위는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다당제를 추동할 주체가 없거든요. 최근에는 20대 국회에서 있었습니다. 네 개 원내 교섭단체가 있었는데요. 이들이 선거법 합의를 했습니다. 당시 국민의힘의 전신 자유한국당이 선거법 논의를 보이콧했어도 거대 양당의 하나이기 때문에 민주당과 이해관계가 같아요. 그들의 이해관계는 민주당이 대변했습니다.

김보협: 논의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내용적으로는 반영됐다?

곽노현: 20대 국회 4당 교섭단체 중에 두 당은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이었어요. 30~40석씩 갖고 있었습니다. 정의당은 교섭단체가 아니었어요. 거대 양당을 대표해서 민주당, 중간 규모 당을 대표해서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그리고 군소정당을 대표해서 정의당이 논의에 참여한 거죠. 이 정도면 굉장히 어렵고 멋진 일을 한 겁니다. 그 정도 통과됐으면 사회적 합의가 된 거고, 국민의 뜻인 거예요.

그래서 저는 사실 김진표 의장이 망가진 현행법에서 위성정당 금지 조항 신설해 되살리는 것을 첫 번째 옵션으로 했어야 맞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합의로 도출된 제도인데, 위성정당으로 능멸당했죠. 위성정당 금지하자는 데에 국민이 반대하겠습니까?

김보협: 정리하자면, 전원위원회 3개 안 중 하나로 바꾸느니 차라리 현행 제도대로 하되, 위성정당은 금지하자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게 훨씬 낫다고 보시는 거군요.

김보협 진행자

의원정수 축소는 선거구제 개혁 안 하겠다는 것

김보협: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전원위원회 시작쯤에 느닷없이 국회의원 숫자를 30명 가량 줄이자고 했어요. 이것은 사실상 논의의 장을 걷어차자는 것 아닌가요?

박지원: 윤석열 대통령이 의회주의자가 아니에요. 검사로 일하며 정치인을 소모적이고 비리나 일으키는 사람이라고 보기 때문에, 국회의원 수를 줄이자는 주장이 나오는 거죠. 또 그런 이야기를 하면 국민들이 제일 좋아해요. 김기현 대표가 궁지에 몰리니 자다가 봉창 두드린 거예요. 실제로 단원제 채택 국가에서 인구 5000만 명에 이 정도 경제 규모에서 300명의 국회의원은 적어요. 하지만 300석에서 한 석도 늘어나선 안 된다는 국민 정서가 있잖아요. 그래서 못 늘리고 있는데 느닷없이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건 선거구제 개혁을 하지 않겠다는 거죠.

김보협: 이사장님은 어떻게 보세요?

곽노현: 저는 국민의힘 주장이 재밌는 게 게임의 룰을 정하는 데 주전선수 빼고 뭘 정하냐,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 아니에요? 지금 비례성 높이자고 판을 벌렸는데, 비례 의원 30명 줄이자고 하면서 비례성을 높일 가능성을 봉쇄하며 깽판을 친 거죠.

김보협: 내년 4월 총선인데, 원래 법에는 1년 전에 선거법을 결정해야 된다고 규정합니다. 이미 넘겼어요. 김진표 의장은 5월 말, 늦어도 상반기 중에는 결론 내겠다고 했거든요. 실장님 언제쯤 될 거라고 보세요?

박지원: 과거 경험을 보면 선거구 획정은 선거 한 달 전에 된 경우도 많아요. 따라서 저는 금년 말, 내년 1월까지라도 토론해서 좋은 제도가 나오면 되지, 시한에 쫓길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김보협: 결론은 어떻게 날 것으로 보세요?

박지원: 약간의 개선 정도가 될 것 같아요. 최소한 교섭단체의 등록 요건을 유신 전으로 10석 정도로 내려주는 것이 그나마 진보 정당들의 사표를 방지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획기적인 변화는 없겠지만 위성정당 문제는 해결될 것이라고 보고… 보다 중요한 것은 다당제 길을 만들기 위해서는 유신 전 10석으로 내려줘야 한다고 봅니다.

민주주의 제도 혁신해야 사회 개혁 실현 가능… 선거제 개편은 시대적 과업

김보협: 향후에 또 관련 논의를 할 것 같습니다. 오늘은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 지으려고 하는데, 이사장님 더 하시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곽노현: 우리나라 대통령제는 개혁을 원하는 사람일수록 매력적이라고 느낍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제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끝판왕이거든요. 또 양당제이기 때문에 보통 과반수 여당을 끼고 있습니다. 파워가 막강해요. 그 파워를 갖고 사회가 요구하는 개혁과 혁신을 정치가 뒷받침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건데…

김보협: 그건 거꾸로도 가능하잖아요. 지금 윤 대통령만 봐도…

곽노현: 그러니까요. 대통령제와 양당제 아래 강한 여당이 혁신과 개혁에 좋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는 세상이 복잡해져서 개혁과 혁신은 영구적으로 빨리 해야 됩니다. 이제 다른 방식을 찾아야 해요. 정치의 온도와 속도를 높이는 거죠.

정치의 온도를 높이려면 시민 참여의 제도적 장이 많아져야 해요. 시민의회, 국민발안권, 국민소환제 입법 등을 통해 일반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장을 늘려야 해요. 그러려면 제도 혁신이 필요하고요. 정치의 속도를 높이자는 건 여야가 교착 상태에 빠졌을 때 돌파구를 마련하자는 건데요. 국민투표라든가 시민의회 등이 있겠죠. 민주주의 제도는 끊임없이 혁신해야 합니다. 그중 하나가 선거제 개편이에요. 민주주의의 제도적 확장과 혁신 없이는 이상이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선거제 개편도 절체절명의 시대적 과업이라는 걸 인식하고 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보협: 알겠습니다. 오늘은 내년 총선 선거제를 어떻게 하면 민심이 반영되는 제도로 만들 수 있을까 이야기를 나눴고, 국회 논의 과정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짚어봤습니다. 감사합니다.

※ 본 텍스트는 <박지원의 식탁> 방송 내용을 읽기 쉽게 정리한 것으로, 출연자의 실제 발언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보다 정확한 내용은 영상(메디치미디어 유튜브)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초대 손님 곽노현은법학 교수 출신으로 서울시교육감과 국가인권위 사무총장을 역임했으며 선거제도와 정치개혁을 주제로 많은 글을 썼다. 재벌 편법상속 근절을 위한 스탑삼성운동, 비밀정보기관의 불법사찰 금지를 위한 내놔라내파일운동, 교육정치의 전문성 강화를 위한 교사 정치기본권 쟁취운동에 앞장섰다. 민주시민 교육을 위한 징검다리교육공동체 이사장과 노숙인 재활을 위한 성프란시스대학 학장,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BIKY) 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