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에 삽니다.’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순천만 국가공원에서 2023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시작됐다. 7개월 동안 정원이 있는 미래 도시의 모습을 제시할 박람회는 올해 방문객 목표가 800만 명일 정도로 인기가 높다.박람회는 축구장 200개가 넘는 크기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만큼, 후회없이 즐기려면 나름의 노하우가 필요하다. 국가정원 식물원의 식재를 설계한 서정완 필자는 기후 위기 느끼기, 정원에서 살아보기, 이야기 나누기 등 세 가지를 정원 여행의 테마로 제안한다. 그의 안내를 따라 내 발로, 느리게 정원을 걸어보자. [편집자 주]

✔ '정원에 삽니다' 주제로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열려
✔ 순천의 산·하천을 모티브로 구성된 국가정원 식물원
✔ 특별한 하룻밤을 위한 가든 스테이 프로그램 '쉴랑게'
✔ '어싱길', 환경의 가치를 생각하고 건강을 되돌아보다
✔ 찌르는 꽃향기… 다양한 꽃이 만드는 환상적인 풍경

 

국가정원 권역 전경 (사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제공)

 

국내 제1호 국가정원으로 지정된 순천만 국가정원이 ‘정원에 삽니다’라는 주제로 지난 4월 1일 새롭게 개장했다. 10월 말까지 쉼 없이 펼쳐지는 정원박람회에는 벌써 많은 관광객이 다녀갔는데, 4월 15일 하루에만 입장객이 19만 명이라고 한다. 이런 추세라면 순천시가 목표한 800만 명을 넘어서는 것도 어렵지 않아 보인다.

국내에 민간정원으로 지정된 정원들의 경우 축구장 1개 크기보다 작은 곳이 많은데, 순천만 국가정원 박람회는 축구장 200여 개를 모아 놓은 규모이니 계획 없이 돌아다녔다가는 낭패를 보기 쉽다. 오래 걷는 것이 불편한 분은 박람회장 내부를 순환하는 관람차를 이용하면 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되도록 자신의 발로 정원을 보는 것이 좋다.

자가용을 이용해 이곳을 찾는 사람은 박람회장 내부가 아닌 외부에 주차해야 한다. 이때 서쪽보다 동쪽 입구에 가깝게 주차하는 것이 좋다. 동쪽 지역에는 여전히 순천만 국가정원의 상징이 되는 호수공원이 자리잡고 있는 데다, 이번 박람회 주제에 맞춰 신설된 장소들이 주로 이쪽에 있기 때문이다. 주차장만 하더라도 상당한 크기이니 주차한 위치를 잘 기억하고 동문으로 이동한다. 평일의 한산한 시간을 제외하고 매표소 앞에는 긴 줄이 있을 확률이 크기 때문에 인터넷을 통해 사전 예매를 하는 것이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이다.

 

호수공원에 위치한 찰스 젠크스의 인공지형 (사진: 필자)

 

동문을 통해 박람회장을 진입하면 탁 트인 전망을 한 호수공원이 우리를 맞이한다. 호수공원 중앙에는 미국의 건축 이론가이자 조경가인 찰스 젠크스가 2013년에 디자인한 산 모양의 지형에서 순례하듯 걷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이제 당신은 내부가 그려진 지도를 한 장을 쥐어 들고 효율적인 관람 동선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다. 다음 여러 주제 중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해 정원여행을 떠나보자.

1. 기후 위기의 메시지를 느껴볼까 (국가정원 식물원 & 시크릿가든)

전 세계적으로 기후 위기로 인해 사람들이 신음하고 있는 시기다. 이 다급한 메시지를 공간으로 체험하고 싶은 사람은 호수공원을 기준으로 동쪽으로 조금만 이동해 보자. 거대한 솥 모양을 한 대형 온실이 나오는데 이 국가정원 식물원 내부는 열대 및 아열대 기후의 다양한 식물들이 자신이 주인공인 것처럼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국가정원 식물원 실내 (사진: 필자)

 

순천의 3개의 주요 산과 2개의 하천을 모티브로 디자인된 이 실내 공간에 들어서면 높은 천장을 향해 치솟은 거대한 나무들과 그 아래에 풍성하게 자리 잡은 다양한 초화류를 만나볼 수 있다. 15m 높이에서 떨어지는 폭포의 싱그러움을 느끼다 동굴 안에 들어서면 갑자기 분위기가 서늘해진다. 천장에 설치된 인공제설기에서 진짜 눈이, 벽에 설치된 미디어월에서는 가짜 눈이 내리기 때문이다.

국가정원 식물원과 연결된 시크릿가든의 지하에 조성된 공간에서는 더욱 적극적으로 빙하 시기를 체험할 수 있다. 데스크에서 건네주는 모포를 등에 두르고 얼음동굴 안으로 들어가면 영하 14도의 추위를 잠깐 경험한다. 온통 새하얀 그곳에서 우리는 극히 소수의 식물만이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남은 것을 본다.

 

시크릿가든 얼음동굴 내부 (사진: 88스노우)

 

얼음동굴을 나와 햇빛정원에 들어서면 햇빛과 광합성을 하는 푸릇한 식물이 반갑게 느껴진다.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를 몸으로 체험하고 나니 식물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 시크릿가든의 출구는 자연스럽게 외부 공간과 이어지기 때문에 별다른 고민 없이 관람 동선을 따라가면 된다.

2. 정원에 살아볼 수는 없을까 (가든 스테이 & 어싱길)

국가정원 내에서 하룻밤을 보내도록 기획된 가든 스테이 프로그램 ‘쉴랑게’는 박람회장의 가장 남부에서 진행된다. 35개 동의 캐빈이 넉넉한 간격으로 배치된 이곳에서 숙박하는 경우, 순천에서 생산된 식재료로 만들어진 저녁과 아침 식사를 제공받는다. 숙박자만을 위한 별도의 공간이 있고 캐빈 옆 테라스에 앉아 오랫동안 정원을 바라보는 것도 가능하다.

약 50만 원이라는 가격이 부담스러울 법하지만, 현재까지 쉴랑게의 인기는 높은 편이다. 대규모의 정원이 눈앞에 펼쳐진 곳에서 특별한 하룻밤을 보내고 싶은 사람들의 열망이 많다는 방증일 것이다. 박람회의 또 다른 자랑거리인 야간 경관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것도 높은 인기의 이유로 보인다.

 

가든스테이 전경 (사진: 필자)

 

숙박시설에 묵지 않고도 박람회를 전세 내는 듯한 기분을 내는 방법이 있다. 어싱길을 걷는 것이 그것인데, 어싱(Earthing)은 맨발로 지면을 걷는 행위를 말한다. 순천만 습지로 향하는 길이 백미지만, 멀리 가는 게 어렵다면 국가정원 내에 있는 어싱길을 이용할 수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1단계, 신발과 양말을 벗는다. 2단계, 길을 걷는다.

맨발로 걸으면서 환경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의 건강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얻게 만드는 것이 어싱길의 목적이다. 발에서 땅의 촉감을 느끼면서 바라보는 정원은 더욱 아름답게 느껴질 것이다. 더럽혀진 발을 닦고 싶다면 어싱길 옆에 있는 개울길에 앉아보도록 하자.

 

개울길 옆 어싱길 (사진: 필자)

 

3.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눠보자 (오천그린광장 & 물 위의 정원 & 그린아일랜드 & 경관정원)

홍수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저류지가 녹색의 오픈 스페이스로 변신한 오천그린광장. 기존 저류지의 기능을 그대로 유지한 채 시민들이 마음껏 피크닉과 운동을 즐길 수 있도록 조성된 곳이다. 특히 주말이면 북적일 정도로 많은 사람은 이곳을 찾아 돗자리를 펴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앉아 있는 게 지루해지면 바로 옆에 위치한 오천언덕을 잠시 올라가자.

 

오천그린광장 (사진: 필자)

 

동천의 물 위에 떠 있는 ‘물 위의 정원’은 플로팅 공법을 이용해 인공적으로 만든 공간이다. 이곳에 설치된 세계적인 작가 카림 라시드의 작품이 멀리서부터 눈길을 끌지만, 가까이 다가서서 보면 작품의 마감 품질이 조금은 아쉽다. 물 위의 정원 내에 있는 벤치에 앉아 있으면 물결을 따라 몸이 흔들거린다. 가끔 배가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정원드림호라 불리는 이 배는 동천과 국가정원을 왕복하며 주변 경관을 감상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

오천그린광장과 물 위의 정원을 가로지르는 녹색의 잔디 길은 놀랍게도 기존에 도로였던 곳이다. 순천 도심의 4차선 도로를 씽씽 달리던 차를 대신해 오직 천천히 걷는 사람들만 볼 수 있다. ‘그린아일랜드’ 내에 위치한 속도제한 표지판 등 도로 시설물만이 이곳의 과거를 증명한다. 인근에 있는 주제 공연장에서 행사가 펼쳐지는 경우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대로 앉아 공연을 즐기는 것이 가능하다.

출렁다리를 건너 서쪽으로 조금 이동하면 경관정원에 이르게 된다. 경사를 따라 2층 높이의 전망대에 올라서면 가장 먼저 꽃향기가 코끝을 진하게 자극한다. 그리고 대규모 농업 경관이 눈 앞에 펼쳐지는데, 노란 유채꽃을 배경으로 다양한 꽃의 색이 환상의 풍경을 만들어 낸다. 전망대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잠깐 후각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보는 것은 어떨까.

 

경관정원 풍경 (사진: 필자)

글쓴이 서정완은
서울대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베르사유 국립조경학교 최고조경가 전문과정을 수료했다. 삼성물산, 본시구도 등에서 실무를 익혔고 정원 설계 및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순천만국가정원 국가식물원 식재설계, 장성 생활밀착형 숲정원 기본구상 등을 수행했다. 전남대학교에서 정원전문가를 양성하고 있으며, 탄소중립을 위한 정원을 주제로 강연하기도 한다. 월간 <가드닝>에 정원과 여행에 대한 칼럼 'Road to Garden'을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