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선거법 개정 논의가 본격적으로 국민의 눈앞에서 펼쳐진다. 4월 10일부터 나흘 동안 국회 전원위원회가 열려 비례대표제와 지역구 등을 놓고 토론을 벌인다. 회의는 <국회방송>으로 생중계된다. 현행처럼 의원정수를 300명(지역구 253명, 비례대표 47명)으로 전제한 3개의 개편안이 논의 대상이다.법학자인 곽노현 필자는 세 방안 모두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의원 개개인과 거대양당의 이해관계, 정치적 계산 때문에 올바른 개정안이 도출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본다. 그래서 어설픈 타협 대신 국회가 손을 떼고 ‘추첨시민의회’ 방식으로 선거법 개정을 새롭게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국민의 대표’를 뽑는 시민의 손에 직접 맡기자는 것이다. 필자의 견해에 동의하느냐 여부와는 별개로, 현행 선거법의 문제점과 각 개정안의 함의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선거법 개정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편집자 주]

✔ 윤 대통령, 올해 초 중대선거구제를 대안으로 운 떼✔ 현행 선거법에 위성정당 금지조항 만드는 게 안전해✔ 국회의장 자문위, 의석수 고정한 3개의 입법안 내놔✔ 3개 개편안, 대표성·비례성을 확보하는 데 한계 있어✔ 국회는 손 떼고 민주적 대표기구·시민의회 힘 빌려야

사진: 셔터스톡

오늘(4월 10일)부터 나흘간 국회의원들의 선거제도 개편 논의가 국회 담장을 넘어 전국으로 생중계된다. 선거법 개정안 심의는 통상적으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소관이지만, 국회의장이 국회의원 전원이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도록 전원위원회를 직권 소집한 것이다.

정당별로, 또 무소속에 합의된 배정 비율에 따라 모두 100명의 의원이 발언할 시간을 확보해 놨다. 이렇게 되면 선거법 개정을 놓고 어느 의원이 바른말을 하고 어느 의원이 틀린 소리를 하는지, 어느 정당이 국민을 위하고 어느 정당이 자당을 위하는지 웬만큼 드러날 수 있다. 전국에 TV로 생중계되는 상황이라 국회 밀실 협상 때와 달리 억지를 부리기가 쉽지 않다.

국회의원 셀프 입법은 집단적 제척 사유다

그런데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 우리 국회법은 국회의원의 이해충돌 사유가 있을 때 당해 국회의원의 제척, 즉 논의와 투표에서 배제를 처방한다. 문제는 선거법 개정의 경우 국회의원 전원이 제척사유를 갖는다는 사실이다. 현역 국회의원은 다음 선거를 직접 뛸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현역 국회의원들은 국민 대표로서 대표성과 비례성이 가장 높은 선거제도를 선택하기보다 본인 대표로서 본인과 소속 정당에 가장 유리한 선거제도를 선택할 위험성이 농후하다.

이런 때에는 국회가 제3의 특별대리인을 두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다. 추첨시민의회나 전문가위원회를 구성해서 선거법안을 마련하게 하는 방안이 그것이다. 지금까지 적지 않은 논자들이 제3 기구, 특히 시민의회에 맡기라고 촉구했지만 국회의장과 여야 지도부는 수용하지 않았다.

선거제 개편, 윤 대통령이 운을 떼고 국회의장이 총대를 멨다

선거법 개정 논의의 단초를 연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올해 초 윤 대통령은 2~4명을 뽑는 중선거구제를 대안으로 내놓으며 분위기를 띄웠다. 수도권에서 민주당과 사이좋게 의석을 나눠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누가 봐도 수도권에서 열세를 보이는 국민의힘에 유리한 안이다.

명색이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얄팍한 당리당략으로 선거구제 개편을 제안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미 기초의회 선거에서 중선거구제를 채택해서 경험한 바이지만 중선거구제에서도 제3당 후보는 당선되기가 여전히 어렵다. 거대양당의 의석수 차이가 좁혀지고 그만큼 소선거구의 불비례성이 줄어들 수는 있지만, 제3당의 원내 진입이 가로막혀서 거대양당의 적대적 공생문화는 변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라크 파병 여부를 결정한 20년 전의 전원위원회에 이어 사상 두 번째로 선거법 개정 전원위원회를 소집한 데서 알 수 있듯이 김진표 국회의장도 선거구제 개편에 진심이다. 한 석을 놓고 죽기 살기로 싸우고 2등 이하에게 준 모든 표는 사표가 되는 소선거구제를 이번에 반드시 손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 의장은 거대양당에 2월 말까지 국회 정개특위에 선거법 개정안 제출을 요구하며 3월 내내 일주일에 2~3차례씩 전원위원회를 소집해서 법정기한인 4월 10일까지 선거법 개정을 완료하겠다는 시간표를 제시했었다. 김 의장은 내친김에 시민사회, 학계, 정계 대표로 구성된 개헌 논의기구까지 국회의장 자문기구로 띄웠다. 5년 단임의 제왕적 대통령제를 그대로 둘 수 없다는 대전제 아래 사회적 합의가 가능한 개헌안을 만들어내서 내년 총선 때 ‘4년 중임 대통령제’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치자는 입장이었다.

3월 30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선에 관한 결의안 심사를 위한 전원위원회 첫 회의가 열린 모습. (사진: 연합뉴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시큰둥하다

그렇지만 현재의 정치 구도와 여건을 살펴볼 때 선거법 개편과 권력구조 개헌이 국회의장의 일정대로 진행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무엇보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시큰둥하다. 어느 당도 국회의장이 정한 2월 말 시한은 물론이고, 한 달 남짓 지난 지금까지도 선거법 개정 당론을 확정하지 않았다. 3월 30일에야 간신히 4월 10~13일에 전원위원회를 개최하고 3개 개정안을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21대 국회는 무조건 선거법을 개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가만히 있으면 현행법의 연동률 50%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이 다음 총선에 적용된다. 이렇게 되면 국민의힘이 다시 위성정당을 만들어야 하는데 국민이 이번에는 용서하지 않을 게 틀림없다. 국민의힘이 선거법 개정 작업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국민의힘의 속셈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폐기하고 종전처럼 ‘소선거구제 +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돌아가는 데 있다고 알려졌다. 윤 대통령이 중선거구제 지지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도시지역구를 중선거구제로 바꾸자는 전원위 안은 국민의힘이 함부로 무시할 수 없다. 전원위를 앞둔 지난 주말, 국민의힘은 민심이 원한다는 이유를 들어 갑자기 의원정수 30명 감축, 즉, 비례대표의원 30명 감축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번 선거법 개정 논의의 장을 별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자 이번 전원위에서 여야 합의를 바라지 않는다는 뜻으로 읽힌다.

민주당도 일부 소장개혁파 의원들이 소선거구 폐지 선거법 개정에 열심이지만 당 지도부의 입장은 아직까지 정해진 바 없다. 대부분의 민주당 현역의원들도 급격한 선거구제 변경을 원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미 지역구를 다져놓았는데 중선거구든 대선거구든 갑자기 지역구가 확대된다면 당선 불확실성만 커지기 때문이다.

20대 국회의 준준연동형 비례대표제

20대 국회는 선거제 개혁에 진심이었다. 박근혜 탄핵의 여진으로 원내교섭단체가 4개나 되던 시절이었다. 20대 국회의 개혁 모토는 ‘민심 그대로’ 선거제였다. 정당투표에서 각 정당이 올린 득표율에 비례하여 의석수를 배분함으로써 다당제를 촉진하는 목표를 세웠다. 20대 국회는 소선거구 중심 선거제도가 만들어내는 정당 지지율과 의석수의 불비례성을 극복하기 위해 총의석수를 정당 득표율에 연동시키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일대 전환을 도모했다. 다만 연동률을 50%만 인정하고 2020년 총선에 한해 비례대표 의석 47석 중 17석은 병립형 비례의석으로 남겨놓는 조건이었다. 이것이 민주당과 제3당들이 타협한 이른바 ‘준준’연동형 비례대표제였다.

민주당이 4당 입법 연합을 결성해서 패스트트랙에 태워 간신히 입법에 성공한 개정선거법의 준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2020년 총선 당시 시행되지도 못하고 무력화되는 비운을 겪는다. 국민의힘이 끝내 개정선거법을 인정하지 않고 개정선거법의 약점을 파고들어 제3당들을 위한 연동조정 의석 30석을 노리고 비례용 위성정당을 급조했기 때문이다. 10석 이상 차이를 눈뜬 채로 당할 수 없다는 이유로 민주당마저 위성정당을 만들어 대응하는 바람에 준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탄생과 동시에 완전히 무력화됐다. 2020년 4월 총선은 선거법 개정 이전 방식으로 즉, 소선거구제 253석과 병립형 비례대표 47석의 혼합형으로 치러진 것과 다르지 않다.

결과적으로 국민의힘은 2018년 지방선거에 이어 궤멸 수준의 참패를 겪었다. 소선거구제에 고유한 불비례성이 극단적으로 현실화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2018년 지방선거와 2020년 총선에서 소선거구제의 불비례성으로 엄청난 불이익을 겪었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은 여전히 2020년의 준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고 불비례성을 이유로 소선거구제를 교정하려는 어떤 선거법 개정에도 반대하는 입장이다. 소선거구제가 가장 자연스럽고 알기 쉬운 선거제도이고 비례대표 의원은 국민이 싫어하는 ‘임명직 국회의원’이라는 인식이 강한데다, 2018년과 2020년 연속으로 호되게 당한 탓에 이제는 그 반동으로 국민의힘이 수혜자가 될 차례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20대 국회의 준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 지지율과 의석수의 괴리를 50%만큼이라도 완화할 목적으로 도입됐기 때문에 불비례성을 그 이상으로 완화하지 못하는 어떤 대안도 현행법보다 낫기가 어렵다. 더군다나 21대 국회는 다당제 20대 국회와 달리 압도적인 양당제 국회(양당의 의석 점유율이 전체의석의 95%로 역대 최대급)라서 소선거구 양당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현실적으로 관철할 수 있는 원내 정치주체가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정의당이 제3당들의 입장을 대변하겠지만 6석밖에 없는 데다 지지율이 바닥을 기고 있어서 얼마나 힘을 발휘할지 의문이다.

필자는 국회의장 자문위의 3개 방안 중에 위성정당 금지조항을 신설해서 현행법의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사용하자는 확실한 대안이 빠져 있어서 무척 놀랐다. 지난 2020년 개정선거법은 20대 국회가 무려 2년간 수고하고 타협해서 만들어낸 일대 개혁안이었다. 위헌탈법적인 위성정당 출현을 막지 못해 무력화되고 말았지만 한 번도 시행된 적이 없는 나름 개혁적이고 혁신적인 선거법이다. 그렇다면 위성정당 금지조항만 신설해서 다음 총선에서 그대로 사용하면 된다. 이것이 우리 앞에 놓인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선택지이다. 이것을 지금처럼 선택지가 아닌 것처럼 몰아가면 안 된다.

소선거구제의 장단점과 불비례성

국회의장 자문위가 낸 3개의 입법안은 모두 지금과 똑같이 의원 정원을 300명으로, 지역구 의원수를 253명으로, 비례대표 의원수를 47석으로 고정한다. 숫자의 분할과 증감을 둘러싼 논란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3개 안은 첫째, 도농복합선거구 + 권역별 비례대표제, 둘째, 대선거구별 개방명부 비례대표제 + 전국병립형 비례대표제, 셋째, 소선거구제 + 권역별 비례대표제다. 추가적인 현실적 대안으로는 위에서 설명한 현행 선거제도 즉, 소선거구제 + 준연동형 전국비례대표제를 들 수 있다. 각각의 장단점을 간단히 설명하기 전에 소선거구제의 장단점을 먼저 살펴보자.

소선거구제에는 이런 장점이 있다. 첫째, 지역구가 작아서 ‘우리 지역’의 대표선수를 ‘내 손으로 뽑는’ 효능감이 있다. 둘째, 여러 사람이 겨룬 끝에 제일 나은 사람이 승자가 되기 때문에 유능한 대표자를 뽑는 인물선거의 본질적 성격에 부합한다. 셋째, 유권자가 모두 한 표씩을 던져서 한 표라도 더 받은 사람이 당선되기 때문에 유권자가 이해하기 쉽다. 넷째, 결과적으로 거대양당제가 뿌리내리기 쉬워서 거대양당이 교대로 집권하며 정치 안정에 기여한다. 한마디로 유권자의 관점에서 이해하기 쉽고 효능감이 높은 게 장점이다.

반면 이런 단점도 있다. 첫째, 대표성의 관점에서 볼 때 거대양당제로 귀결되기 쉬워서 주권자의 정치적 다양성과 대안 선택권이 제한되고 ‘그놈이 그놈’이라는 정치 불신이 자라기 쉽다. 둘째, 개인 유권자의 관점에서 볼 때 지역구에서 2등 이하에게 주어진 표는 대표자로 연결되지 못해 사표가 너무 많이 발생한다. 셋째, 정당의 관점에서 볼 때 이론적, 경험적으로 모든 선거구에서 49%를 고르게 득표하고도 51%를 고르게 득표한 정당에 밀려 단 한 석도 건지지 못하는 제2당이 있을 수 있어서 총득표율과 의석수의 비례성이 현저히 약하다. 넷째, 대표자의 관점에서 볼 때 소지역 대표성이 강해서 국가적 차원의 국익에 신경 쓰기보다 지방의원처럼 소지역적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않을 수 없다. 요컨대, 소선거구제는 사표를 양산하고 불비례성을 드러내며 양당제를 고착화하고 양당의 적대적 공생 정치문화를 만들어낸다.

소선구제 아래서는 이론적으로는 51% 지지를 받는 정당이 49% 지지를 받는 정당을 거의 모든 지역구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 이 경우 51% 득표율로 모든 의석을 100% 독점하는 정당과 49% 득표율에도 불구하고 의석을 한 석도 갖지 못하는 정당이 생긴다. 극단적인 주장처럼 보이겠지만 소선거구제 아래서는 어느 나라에서나 드물지 않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캐나다의 BC주에서는 소선거구제로 치러진 2001년 총선에서 정당 득표율은 7%포인트 차이가 났지만 의석수에선 77석 대 2석(97.5% 대 2.5%)의 차이가 나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런 불비례성의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 선거구제 개편 논의가 본격화됐고 2004년에 시민의회를 조직해서 일반시민의 집단지성에 선거구제 개편 임무를 맡기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지금까지 불비례성의 피해를 국회의원 선거에선 제3당(민주노동당, 정의당, 국민의당 등)이 항상적으로 받은 반면, 시도의원 선거에선 거대양당이 돌아가며 받아왔다. 소선거구제로 치러온 서울, 경기, 인천의 광역의회 선거에선 거의 언제나 양당이 교대로 90% 안팎의 의석을 독점했다. 일당독재 현상은 촛불탄핵 1년 후에 치른 2018년 광역의회 선거에서 가장 두드러지는바, 민주당은 서울, 경기, 인천의 광역의회 의석을 95% 넘게 싹쓸이했다. 하지만 서울, 경기, 인천의 정당 득표율이나 지역구 총득표율에선 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이 10%포인트 차이도 나지 않았다.

2020년 총선 결과의 불비례성

역대 총선 중 결과의 불비례성이 제일 도드라진 총선은 2020년 총선이었다. 이번에는 민주당이 불비례성의 최대수혜자였다. 전국단위 정당투표에서 득표율이 33.35%에 그친 민주당은 지역구에서 163석, 비례 17석, 총 180석(60%)을 획득했다. 반면 정당 득표율이 33.84%로 민주당보다도 높은 미래통합당은 지역구 84석, 비례 19석으로 총 103석(34.33%)을 얻었다. 정당 득표율 9.67%를 득표한 정의당은 총 6석(2%)에 그치면서 불비례성의 가장 심한 피해자가 됐다.

사진: 연합뉴스

지역별로 나눠서 보면 2020년 총선 결과의 불비례성이 위의 평균 수치보다 훨씬 강렬함을 알 수 있다. 특히 수도권에서 그렇다. 민주당은 서울의 49석 중 41석(83.67%), 인천의 13석 중 11석(84.62%), 경기도의 59석 중 51석(86.44%)을 얻었다. 반면 민주당의 정당 득표율은 서울 33.20%, 인천 34.57%, 경기도 34.72%에 지나지 않았다.

수도권 지역구 선거에서 양당의 득표율 차이도 의석수 차이만큼 크지 않았다. 민주당은 서울에서 유효투표 총 5,696,056표 중 3,049,272표(53.53%)를 얻었고 미래통합당은 2,386,630표(41.90%)를 얻었다. 인천에서 민주당은 유효투표 총 1,562,874표 중에서 826,627표(51.89%)를, 미래통합당은 610,044표(38.30%)를 얻었다. 경기도에서도 유효투표 총 7,114,083표 중에서 민주당은 3,836,642표(53.93%), 미래통합당은 2,925,564표(41.12%)를 얻었다. 요컨대, 민주당은 수도권의 지역구 득표율에서도 11~13%포인트 앞섰을 뿐이었다. 정당 득표율 차이보다는 지역구 득표율 차이가 크게 났지만 의석수 차이를 정당화할만한 득표율 차이는 전혀 아니라는 사실을 재확인할 수 있다.

대선거구 개방명부 비례대표제 + 전국병립형 비례대표제(47)

소선거구제 폐지를 기치로 여러 의원이 입법안을 발의하였는바,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대표 발의한 선거법 개정안인 ‘대선거구 개방명부 비례대표제 + 전국병립형 비례대표제’가 두 번째 결의안의 토대다. 이에 따르면 1인 선거구 253개를 6~12명의 대선거구(30여 개)로 바꾸고 대선거구별 정당 득표율에 따라 대선거구별 정당 의석수를 결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선거구별 비례대표제라고 할 수 있다.

비례대표제 아래서는 한 선거구에서 정당투표로 뽑는 대표자 수가 많을수록, 예를 들어 5인 이상 대선거구, 17개 시도별 대선거구, 6개 권역별 대선거구, 전국적인 하나의 대선거구 순으로, 비례대표성을 잘 구현하는 게 가능하다. 이를테면 하나의 선거구에서 10명 넘게 뽑으면 정당 득표율 10% 군소정당도 대표자를 낼 수 있고 20명 넘게 뽑으면 정당 득표율 5% 군소정당도 대표자를 낼 수 있다.

요컨대, 현재의 253개 소선거구를 더 큰 대선거구로 통합할수록 더 확실한 ‘비례’대표제로 가는 것이다. 전국적인 비례대표제를 하면 3~10% 지지를 받는 군소정당도 의석으로 대표되기 때문에 대표성과 다양성이 그만큼 늘어난다.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연동률(비례성)을 50%로 축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소선거구제의 불비례성을, 특히 군소정당의 관점에서, 상당 부분 없앨 뿐 아니라 다당제로 가는 징검다리를 놓았다는 점에서 현시점에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그럼에도 국회의장 자문위가 위성정당 금지조항 신설을 전제로 현행법 유지를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대안의 하나로 제시하지 않은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6~12인을 뽑는 대선거구 비례대표제 안은 전국을 30개 안팎의 대선거구로 나누자는 안인데, 거대양당에게 입법권이 있는 이상 제3당들의 진입을 최대한 막고 거대양당의 기득권을 최대한 지킬 수 있도록 6~7인 대선거구만 만들어낼 가능성이 거의 100%다. 6~12인 대선거구 비례대표제의 가장 큰 약점이 여기에 있다.

물론 이렇게 작은 대선거구로 나눠야 그나마 나름의 특색이 남아 있는 지역대표성이 유지되고 유권자의 투표 효능감이 존중된다는 사실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유권자들도 가까운 지역대표를 내 손으로 뽑는다는 투표 효능감이 중요한지, 국가 차원에서 투표 결과의 전체적인 대표성과 비례성이 중요한지 신중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

6~7인 대선거구만 돼도 제3당 후보들에게 숨통이 트이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거대양당은 후보를 4~5인씩 내겠지만 군소정당은 1인만 내기 때문에 승산이 있지 않으냐는 것이다. 이런 예측은 유권자에게 당선자 수만큼 표를 주고 선호 후보에게 몰아주는 걸 허용하는 집중투표제나, 대선거구의 유권자가 1표를 행사하되 선호 정당(정당명부의 후보군)을 뽑는 게 아니라 제일 선호하는 후보 1인을 뽑는 투표방식(단기비이양식투표, single non-transferable vote)에서만 맞는 말이다.

집중투표제를 도입해도 거대양당은 후보를 다수 내기 때문에 표가 분산되는 반면 군소정당은 후보를 1인만 내서 표를 집중시킴으로써 당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후자의 경우 6,7 순위 당선자는 10%도 안 되는 득표율로 당선되는 문제가 있지만 1순위부터 6,7 순위 당선자에게 던진 표가 대체로 유효표의 80%가 넘을 것이라는 점에서 사표율이 매우 낮고 제3당의 원내 진입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결의안의 대선거구 비례대표제에서는 유권자가 정당투표만 할 것으로 예정돼 있기 때문에 경우가 다르다. 인물은 매력적인데 정당이 별로라고 평가받는 제3당 후보들이 당선될 길이 없다시피 한 것이다.

결의안의 대선거구 비례대표제는 이른바 개방명부식으로 운영된다. 다시 말해서 유권자들은 정당투표를 하되 정당명부의 후보 순위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 물론 특별히 표시하지 않으면 정당명부에 동의한 것으로 본다. 일반유권자들에게 별도로 후보 순위를 매기는 것은 매우 성가시고 힘든 일이 되겠지만 정당 지도부와 공천과정의 공정성을 믿지 않거나 특정 후보에 대해 많은 정보나 뚜렷한 선호를 가진 적극적 유권자들에게는 정당명부의 당선 우선순위를 자기 손으로 바꿀 수 있는 선택권과 효능감을 준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선거제도가 될 수 있다.

대선거구에서 유권자가 한 표만을 행사하되 단기비이양식 투표제와 달리 순위 투표를 허용하는 투표방식(단기이양투표제)도 있다. 이 방식에 따르면 유권자가 정당을 가로질러 후보 면면으로 우선순위를 매길 수 있다. 이 경우 제3당의 인물경쟁력이 있는 후보는 1순위가 아니더라도 2순위 표를 다수 기대할 수 있어서 2라운드 집계에서 당선될 가능성이 생길 것이다.

결의안에 따르면 현재의 비례대표 의석 47석은 종전과 같이 전국단위 정당투표에서의 정당 득표율에 따른 병립형 비례의석으로 사용한다. 박주민 안은 국회의원 증원을 하지 않고도 선거제 개혁의 여러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대선거구별 당선자는 일단 대선거구별 정당 득표율에 의해 결정된다. 개방명부식이기 때문에 유권자의 선호투표에 따라서는 당선권 밖 후순위자도 순위가 올라가 당선될 수 있고 당선권 내 선순위자도 내려가 떨어질 수 있다. 여기에 정당들의 선거연합만 가능하게 열어주면 거대양당의 하위파트너가 되는 군소정당까지 포함해서 다당제의 길이 열린다. 현행법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겨룰만한 대안은 박주민 안이 유일하다.

2월 1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2024 정치개혁공동행동 선거제 개혁 촉구 기자회견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선거개혁을 촉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소선거구 + 병립형 권역별 비례대표제

소선거구를 지금처럼 253개 그대로 유지하되 비례대표 의석 47석을 인구수나 의석수에 비례해서 6개 권역별로 배정한 후 권역별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나눠주자는 안이다. 이 안의 장점은 영호남에서 지역주의 구도를 깰 수 있다는 데 있다. 민주당은 영남권역에서, 국민의힘은 호남권역에서 정당 득표율에 비례해서 비례대표 의석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확보된 비례대표 의석은 대선거구에 출마하지 않은 별도의 지역대표 후보들로 채우든가 당해 권역의 대선거구에서 가장 아깝게 떨어진 지역구 후보들을 구제하는 데 쓰든가 할 수 있다. 물론 석패율제 도입은 법 개정을 요한다.

권역별 비례대표를 하면 전국단위 비례대표제보다 제3당 진입이 불리하다. 현행 준(50%)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아래서는 지역구에서 다 떨어지더라도 전국단위 정당투표에서 정당 득표율 5%를 기록하면 7~8석이 생긴다. 하지만 각각 10인도 못 뽑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아래서는 정당투표에서 5%를 고르게 득표해도 단 1석도 안 생긴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정당 지지율이 10% 미만 제3당의 원내 진입을 사실상 봉쇄하는 안이다. 그런 의미에서 2024년 총선부터 비례대표 의석 모두를 연동형 조정의석으로 군소정당에 내놓는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만 못하다.

도농복합안, 거대양당의 나눠먹기로 귀결될 최악의 안

도시는 중선거구제로 바꾸고 농촌은 소선거구제를 그대로 유지하되 비례대표는 권역별 정당 득표율로 배분하는 이른바 도농복합안은 국회의장이 선호하는 안으로 알려졌다. 이 안에 따르면 거대양당이 도시 중선거구에서 나란히 붙기 때문에 지금보다 거대양당 간에 발생하는 불비례성은 완화될 수 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하면 양당이 취약지역에서 비례대표 의석을 차지할 수 있어서 지역주의 극복에도 다소 도움이 된다.

결의안에 따르면 특이하게도 도시에서는 2~5석을 뽑는 중선거구를 하겠다는 건데 2~4석의 중선거구를 하면 100% 거대양당에만 유리하기 때문에 제3당이 한 석 정도 엿볼 여지를 갖도록 5인 선거구도 끼워 넣겠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도농복합안에는 강력한 명분이 하나 더 붙었다. 농어산촌의 경우 지금처럼 소선거구를 그대로 인정함으로써 멸종 위기인 농어산촌 지역의 지역대표성을 확보한다는 게 그것이다. 만약에 농어산촌 지역구를 2~5인을 뽑는 중선거구로 묶든가 17개 시도별 대선거구나 호남권, 영남권 등 권역별 거대선거구로 묶는 경우 농어산촌 지역대표성이 손상당할 수 있기 때문에 농어산촌 지역은 지금처럼 소선거구를 그대로 유지해서 확실한 지역대표를 갖게 하겠다는 뜻이다.

도농복합안은 거대양당의 입장에선 특별히 불리할 게 없다. 기초의회에서 이미 경험했듯이 중선거구를 하면 거대양당이 사이좋게 나눠먹기에 딱 좋다. 반면에 제3당 후보는 농어산촌 지역의 소선거구는 물론이고 대도시의 중선거구에서도 살아나기 어렵다. 자문위의 도농복합안에 따르면 비례대표 의석(47석)은 영남, 호남을 포함한 6개 권역별로 정당 득표율에 따라 배분된다. 권역별 비례대표를 하면 거대양당은 영호남에서 각각 1~2석씩 확보할 수 있겠지만 제3당이 진출하는 건 그만큼 어렵다. 예를 들어 제3당이 권역별로 고르게 10%를 획득한다고 가정해도 10석 안팎이 배정될 서울권역이나 경기·인천권역에서나 1석씩을 바라볼까 다른 권역에선 어림도 없다. 요컨대, 도농복합안은 거대양당제를 강화할 뿐으로 정치발전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원위 불발 시 현행 선거법 적용하고 향후 시민의회에 맡겨야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국회 전원위원회가 다루는 세 개의 개편안은 모두 선거제도의 대표성과 비례성을 확보하는 데 단점과 한계가 많다. 필자는 국민의힘의 의원정수 감원 주장을 볼 때 전원위를 통해 여야 합의안이 나오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국힘당은 현재의 소선거구제 아래서는 영남 의석이 65석인 반면 호남 의석은 28석에 지나지 않아서 현행 소선거구제가 제1당이 되는 데 절대적으로 유리할 뿐 아니라 분당 사태나 다른 제3당 출현을 막는 데도 제일 유리하다고 본다. 선거구제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예측하는 이유다.

여야 합의 불발 시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할 일이 있다. 먼저 위성정당 금지조항을 입법하고 현행 선거법의 연동률 50% 비례대표제를 다음 총선에 적용하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국민의힘이 반대하겠지만 설득력이 없고 다시 위성정당을 만들지도 못할 것이다. 내친김에 선거제도 등 정치개혁은 국회가 당사자성을 갖기 때문에 향후 추첨시민의회를 통해 추진할 계획을 밝히고 필요한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 이것도 국민의힘이 반대할 명분이 없다.

현역 국회의원의 집단이기주의가 작동하기 쉬운 입법 분야에서 국회의원들한테 입법을 맡겨서는 마냥 지체되고 왜곡될 가능성이 높다. 헌법, 선거법, 정당법, 정치자금법, 국회법 등 정치관계법이 특히 그렇다. 예를 들어, 국회의원 정수 확대는 의원 값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원외 위원장 정치후원회 허용은 선거 라이벌을 지원하기 때문에, 연임 선수나 재임 기간 제한은 현역의원의 기대권을 해치기 때문에 설령 국민들이 강력하게 원하는 경우에도 국회의원들은 온갖 반대 논거를 들이대며 최대한 버티게 마련이다.

요컨대, 이번 전원위원회는 국회의원의 셀프 입법 성격을 갖는 정치관계법 사안들에서는 국회가 손을 떼고 추첨에 의한 민주적 대표기구, 시민의회에 맡겨야 한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기대한다. 전원위원회가 어떤 합의도 만들어내지 못할 경우 김진표 의장과 이재명 대표가 여기에 합의하고 대의민주주의의 신기원을 열기를 촉구한다.

21대 국회의원 배지. (사진: 연합뉴스)


글쓴이 곽노현은법학교수 출신으로 서울시교육감과 국가인권위 사무총장을 역임했으며 선거제도와 정치개혁을 주제로 많은 글을 썼다. 재벌 편법상속 근절을 위한 스탑삼성운동, 비밀정보기관의 불법사찰 금지를 위한 내놔라내파일운동, 교육정치의 전문성 강화를 위한 교사 정치기본권 쟁취운동에 앞장섰다. 민주시민 교육을 위한 징검다리교육공동체 이사장과 노숙인 재활을 위한 성프란시스대학 학장,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BIKY) 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