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 핵탄두 공개로 고조된 위기… 남북의 위험한 질주✔ 핵 개발은 대북 지원 탓? 지원 안 해도 핵 개발은 지속됐다✔ 수십 년 전 낡은 정보로 논평하는 전문가 말 신뢰해선 안 돼✔ 북 핵탄두 소형·경량화? 실체적 진실은 따져 봐야✔ 북핵의 정치학, 북핵 문제 해결은 미국과의 관계에 달려✔ ‘북한 붕괴론’은 허상… 손놓고 기다리는 것 말고는 대북 정책 없어✔ 외교·안보 라인 교체 없이는 대북 정책 부재 기조 이어질 것✔ 윤 정부, 핫라인 열어 우발적 충돌 악화 막아야

<박지원의 식탁> 시즌 2 4화 방송 바로 보기

북한이 3월 2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화산-31’ 등 전술핵탄두를 살펴보는 사진을 여러 장 공개했다. 핵탄두 소형·경량화에 성공했다고 과시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같은 날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북한이 핵 개발을 추진하는 상황에서는 단돈 1원도 줄 수 없다”고 공언했다. 미국 역시 4월 5일,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전개하면서 강 대 강 대치가 이어지고 있다. ‘박지원의 식탁’ 시즌2 4회에서는 제동장치 없이 위험한 질주를 거듭하는 위기의 남북 관계를 짚었다.

연일 터지는 논란, 대통령부터 여당까지 오만하다성공 위해 겸손해야

김보협: 시즌2부터 새롭게 선보이는 코너 ‘이주의 짤’. 주인공은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입니다. 이번 주는 정말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후보군이 넘쳐요. 홍준표 대구시장과 전광훈 목사, ‘밥 한 공기 다 먹기 위원장’ 조수진 의원, 또 한 달 징계받은 김재원 최고위원, 불났는데 골프 친 김진태 강원지사와 술 먹은 김영환 충북지사 이분들이 있지만 그래도 대통령이니까 이주의 짤 주인공으로 선정했습니다. 하고 싶은 말씀이 많으시죠?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사진: 연합뉴스)

박지원: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게, 윤석열 대통령이 양곡관리법 거부권을 행사했더라고요. 보수 대통령은 보통 안보를 강조하는데, 쌀은 우리의 주식이면서 식량 안보 1호입니다. 과거 이승만 대통령도 이를 강조했어요. 과거 김대중 총재가 농어촌 부채탕감법을 주장했을 때 많은 기업과 언론이 도덕적 문제가 있다고 반대했지만 농어촌 부채를 탕감해 줘 오늘의 농어촌이 존재하는 겁니다. 윤 대통령은 식량 안보는 간과하고 230만 농민은 안중에 없다고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김보협: 저는 거부권 행사할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왜 거부권을 행사했는지 친절히 설명하고 우리는 식량 안보를 위해 어떤 대안을 갖고 있다고 제시하든가, 야당과 이견을 줄이기 위해 협상이라도 했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없으니 더 심각한 거 아닙니까?

박지원: 그거야 윤석열 대통령 전문이에요. 대안 없이 본인이 혼자 결정해버리는 건. 사실 이순신 장군도 명량대첩에서 12척으로 왜군 300여 척을 침몰시켰다고 하는데 목포, 무안, 영암, 해남, 완도, 진도 어선들과 지역 주민들이 참전해주고 군량미를 대줬기에 가능했어요. 이렇게 식량이 중요한데 이를 간과하는 것은 굉장히 슬픈 일이고 잘못됐다.

김보협: 이어진 이야기인데, 국민의힘에서 민생119위원회를 만들었어요. 민생에 신경을 쓴다는 의미로요. 최고위원인 조수진 의원이 “양곡관리법 대신에 우리 모두 밥 한 공기 비우기를 하는 게 어떻겠는가” 제안했는데요.

박지원: “여성들 다이어트 하는데, 밥 많이 먹어라.” 얼마나 오만하면 이런 이야기가 나오나요. 또 전광훈 목사는 “홍준표 공천주지마” 이러는 거 보면 목사가 아니라 국민의힘 부총재 같아요. 김진태 강원지사는 퇴근했다고 거짓말하고 골프치러 가고 말이죠. 또 태영호 의원이 “4·3 사태는 김일성 지령이었다”라고 말했잖아요. 태 의원은 북한에서 교육받은 것이 다 맞는다고 하려면 왜 여기 왔어요? 이런 것들을 보면 대통령부터 총체적으로 윤석열 정권은 오만해졌습니다. 대개 권력을 잡으면 집권 세력이 오만해져 국민을 무시하면서 민심이 떠나더라고요. 그러면 정권은 실패한다. 나머지 4년의 성공을 위해 겸손하라. 대표적으로 한동훈 장관부터 건방 떨지 말고 겸손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윤 대통령, 국민통합 이루려면 소외 지역·계층도 고루 품어야

김보협: 이러다 우리 ‘이주의 짤’ 이야기를 못 할 것 같은데요. 아까 보여드린 사진이 대구 서문시장 방문 사진인데요. 이번이 김건희 여사까지 포함하면 5번째 방문이랍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지지율이 떨어지면 대구를 가고 서문시장을 갑니다. 이번에는 프로야구 시구도 했거든요. 제주에서 열린 4·3 추념식은 한미 정상회담 준비로 바빠 못 갔다고 하고요. 정말 바쁘면 대구 갈 시간에 4·3 추념식에 참석했어야 되는 거 아닌가요?

박지원: 그게 윤석열 대통령다운 거예요. 대구 찾아 기를 받으면 좋겠죠. 하지만 대통령이면 소외계층도 찾아가고 자기를 싫어하는 곳에 가서도 국민통합을 이루는 정치를 해야 하는데 서문시장만 가니까 부산 자갈치시장에서도 광주 양동시장에서도 '왜 우리는 한 번도 안 오냐' 이야기하는 거 아니에요.

저는 이렇게 오만하고 편향된 정치를 하면 윤석열 대통령이 성공할 수 없다고 말씀드리고요. 대통령이고 영부인이면 가고 싶은 곳만, 칭찬받는 곳만 찾아가지 말고 가고 싶지 않더라도 (본인들) 배척하는 곳이라도 소외계층을 찾아가 따뜻하게 품어주는 그런 좋은 대통령이 되셨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말씀드립니다.

대북지원금으로 핵 개발? 북한 경제 몰라서 하는 말

김보협: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죠. 공교롭게도 시즌2 들어 계속 외교·안보 이슈를 다뤄왔습니다. 오늘은 위기의 남북 관계를 본격적으로 다뤄보려고 합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 전 장관님 모셨습니다. 두 분 모두 남북 관계 전문가시니 오늘 방송이 아주 알찰 것 같습니다. 3월 28일이 살벌해진 남북 관계를 상징하는 날인 거 같아요. 북은 핵탄두를 공개했고,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북이 핵 개발하면 단돈 1원도 못 준다는 표현을 썼어요. 저는 이 얘기 듣고 궁금해졌어요. 윤 정부 들어 북에 밥 한 공기라도 인도적 지원이라도 한 게 있나요?

북한은 3월 28일, 전술핵탄두 실물을 공개했다. (사진: 연합뉴스)

정세현: 우선 핵 개발하면 1원도 안 주겠다고 말하는 것 보고, 북한 내부 사정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1970년대 중반부터 북한 연구를 하고 통일부에서 오랫동안 일선에서 일하는 과정에서 파악한 북한 경제 특성에 대해 자신 있게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내각에는 인민 경제를 다루는 부서가 많아요. 반면 군수 경제는 내각이 아니라 당에 있어요. 당 소속 군수 담당 비서가 군수공업위원회를 운영하면서 군수품을 생산해 팔아 그 돈으로 미사일·핵 개발하는 경제체제입니다. 인민 경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군수 경제에서 벌어들이는 돈은 절대로 선을 넘어가지 못해요. 군수 경제와 인민 경제의 준별(峻別). 이것이 스탈린 시절에 사회주의 경제를 운영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니까 남한에서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으로 들어간 돈이 핵·미사일로 돌아왔다는 건 북한 경제 운용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북한에 돈 줘서 핵 개발한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북한에 1원도 못 준다? 북한도 안 받는다

박지원: 북한에서는 이미 3년 전부터 우리 남한에서 주는 건 1원도 안 받는다고 말해왔어요.

정세현: 문재인 정부 때 미국이 발목 잡아 남북 관계가 어그러진 이후에 2019년부터는 독감이 유행하는데 타미플루도 못 보내지 않았어요? 돈은 말할 것도 없고, 인도적 물자도 못 갔습니다. 그런데도 그 이후 미사일을 이틀이 멀다 하고 쏘아댔잖아요.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남한에서 돈이 가기 때문에 여유가 생겨서 하는 것이 아님이 분명한데, 거기다 돈을 안 주겠다는 이야기를 하면. 저는 대통령 참모들이 정말 아무것도 모르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박지원: 정세현 전 장관이 말씀하신 대로 군수 경제가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어요. 단돈 1원도 안 보내겠다는 윤 대통령 말은 맞는 말이에요. 그런데 북한도 1원도 안 받는다. 북한 정보가 대통령이 저런 말 할 정도로 어두워졌는가 싶어요. 너무 모르는 거 아니에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왼쪽)과 박지원 실장

하루가 멀다 하고 달라지는 북한, 따라가지 못하는 북한 전문가들

정세현: 아니 북한에 대해서는 실시간으로 정보를 입수해도 대책을 세울 때 부족한 부분이 많은데, 어느 시점에 고정불변으로 고착됐는지는 모르겠으나, 윤 대통령이 그리는 북한의 모습이 있을 겁니다. 그걸 기조로 말하는 것 같아요. 제가 1970년에 통일원에 들어가서 지금까지 쭉 북한을 연구하고 있지만, 70년대 북한 다르고 80년대 다릅니다. 또 90년대와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의 북한이 또 다릅니다. 그런데 통일부 또는 중앙정보부 출신 포함해 전문가들이 본인이 한참 활동하던 시절의 북한의 모습이 지금도 평양에 있다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해요.

김보협: 업데이트가 안 되는 거군요.

박지원: 저도 국정원장을 하면서도 그렇고 지금도 하는 이야기가 미국이나 보수적인 분들에게 김정은 집권 10년으로 변화된 북한의 실체를 보고 이야기해야지, 왜 과거 북한만 갖고 이야기를 하느냐고 말하곤 해요.

사실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에서 기본적인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시작됐거든요. 또 김정은 10년의 변화는 아버지 때보다도 발전된 자본주의와 시장경제가 도입되고 더 많은 정보화가 이뤄졌어요. 지금 (북한에서) 핸드폰이 700만~800만 대가 사용된다고 해요. 북한 인구가 2200만 명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숫자죠. 주로 평양에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정보가 흐르는 거예요. 김정일 시대만 해도 남북 간 이벤트가 있으면 필요에 따라 바로 공개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는 정보가 흐르니까 이벤트를 당일 혹은 그다음 날 녹화해 편집해 발표하잖아요. 이렇게 달라진 것을 생각하지 않아요. 미국 역시 김일성, 김정일 시대의 북한과 지금 변화된 김정은의 10년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 시각의 차이가 생긴다, 저는 그렇게 봅니다.

핵탄두 소형화? 북 발표 그대로 믿어선 안 돼7차 핵실험 여부 지켜봐야

김보협: 장관님, 김정은 위원장이 시찰을 하면서 작아 보이는 핵탄두 공개했잖아요. 어떤 의미로 봐야 할까요?

정세현: 그간 미국에서도 분석하기를 7차 핵실험이 끝나야 핵탄두가 소형·경량화될 것이라고 이야기했어요. 7차 핵실험을 위한 갱도 복구 작업을 이미 2022년 3월 5일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죠. 그로부터 2달이면 갱도 공사가 끝나고, 5~6월 중에 날씨가 좋으면 실험을 하지 않겠냐는 전망을 했었는데 벌써 1년 넘게 안 하고 있어요. 때를 기다리는 것 같아요. 이번에 북이 800m 상공 모의실험을 보여줬죠. 이미 핵탄두가 소형·경량화된 것처럼 보도를 하던데, 그거는 다시 따져봐야 하고 거기에 홀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김보협: 허위일 수도 있다?

정세현: 그렇죠. 그들은 허허실실, 허장성세가 굉장히 많습니다. 북한의 이야기가 실체적 진실이라고 믿고 대처하면 백전백패에요. 그러니까 무시할 필요도 없지만 항상 철저히 따져봐야 해요. 저는 아직은 소형·경량화까지는 달성이 안 됐고, 고도 조절을 해가며 소형화·경량화됐을 때 그렇게 터질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것으로 봐요. 우리가 이미 소형·경량화된 것처럼 이야기하면 북한이 노리는 바에 홀려서 끌려가는 겁니다.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김보협: 7차 핵실험 여부를 봐야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다는?

박지원: 그렇죠. 정 장관이 말씀하신 대로 소형·경량화된 핵실험을 해봐야 돼요. 이번에 갱도가 복구됐다는 게 소형·경량화 핵실험용 갱도가 복구된 거니까 사실 거기에서 실험해 봐야 하는데, 이번에 북한에서는 “직경 50cm까지 됐다”라고 하는데, 이는 깜짝 놀랄 핵무기가 된 거예요. 그러나 아직 한미 정보당국에서 사실 여부는 확인하지 못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는 북한의 그러한 발표를 마냥 믿어서도 안 되고, 또 그런다고 너무 과소평가해서도 안 되는 상황입니다.

정세현: 북한에서 고위직을 지낸 사람들이 와서 하는 이야기는 사실인 것처럼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황장엽 노동당 비서가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7년 4월에 서울로 망명했습니다. 그때 제가 민족통일연구원 원장하고 있을 때예요. 당시 안기부에서 황장엽 씨를 만났는데, 그가 “우리 군수 담당 비서관에게 들었는데, 내가 이쪽으로 오기 전에 이미 북은 핵폭탄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아니, 핵실험도 안 하고 어떻게 핵폭탄을 개발한다고 말씀을 하십니까”라고 하니, 황 비서가 “우리 군수 비서가 그러는데 그 말도 못 믿습니까?”라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제가 "이 양반아 정신 차려. 당신 1995년 가을부터 청와대 비서관이 노동당 비서하고 같은 급인 줄 알고 베이징에서 나를 만나자고 연락하지 않았느냐”고 했죠.

1997년 4월, 서울공항에 도착한 북한 노동당의 황장엽 전 국제담당 비서와 측근인 조선여광무역연합총회사 김덕홍 전 총사장. (사진: 연합뉴스)

1994년에 김정일이 들어서면서 황 비서가 노동당 사상 담당 비서에서 국제 비서로 강등당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남한으로 올 결심을 하고, 95년에 당시 통일안보비서관이던 저에게 연락이 왔는데, 거절했어요. 나는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고 말이에요. 그런데 96년에 또 요청이 왔어요. 그래서 제가 '대통령한테 직보할 수 있는 분을 모시고 가십시오' 했어요. 당시 통일비서관은 직보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으니까. 그런 식으로 여기 오려고 두 번이나 발버둥 쳤던 사람이 와서 뻔뻔하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서, 기가 찼어요.

북이 이번에 핵탄두 소형·경량화됐으니 까불면 죽는다는 식으로 겁주는 건데, 박 실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무시할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그걸 곧이곧대로 듣고 대처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미국이) 북한의 군사 관련 정보를 사실 이상으로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고 봅니다. 무기시장 관리 방법론이에요. 북한이 군사적으로 위험하지 않으면 무기 팔아먹는 데 지장이 있거든. 미국이 이야기한다고 다 믿을 건 못 됩니다.

김보협: 소형·경량화 문제는 7차 핵실험 때까지 지켜보도록 하고요.

박지원: 김정은이 핵실험을 작년 미국 중간선거 전에 할 것이다, 미 정보당국에서도 우리 국정원에서도 예측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왜 안 했냐? 7차 핵실험을 통해 바이든 중간선거를 실패로 유도하려 했는데, 미국 여론조사와 언론들이 “상원도, 하원도 바이든이 패배한다”고 말했거든요. 그러니까 북한이 핵실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안 했어요. 그런데 미국 중간선거에서 상원은 바이든이 승리했고, 하원도 선전했잖아요. 따라서 지금 북한은 바이든 대통령의 여러 가지 정치 일정을 보면서 가장 가까운 시점을 고르고 있을 겁니다. 따라서 저는 7차 핵실험은 미국 정세에 따라서 굉장히 가까워져 오고 있다, 그렇게 봅니다.

김보협: 그게 북핵의 정치학이죠. 북핵 문제 해결에 가장 중요한 건 미국과의 관계다. 이를 상징하는 말씀인 것 같아요.

정부 대북 정책 부재 이유? ‘북한 붕괴론환상에 빠졌기 때문

김보협: 윤석열 정부의 남북 관계를 다루는 방식, 정책을 더 이야기해보고 싶은데요. 이전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도 초반에는 남북 관계를 개선하려는 시늉이라도 했잖아요? 윤석열 정부처럼 초반부터 북을 적대시한 정부가 있었던가요?

정세현: 아무런 대책이 없는 이유가 있어요. 북한 붕괴를 기다리는 겁니다. 그 증거는 뭐냐. 통일미래기획위원회가 지난 2월 28일 발족했는데요. 제가 그걸 보고 박근혜 정부 통일준비위원회와 같다고 평가했어요. 통일준비위원회라는 게 북한의 붕괴가 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이후 북한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분야별로 대책을 세웠던 기구 아닙니까? 그거를 이번에 또 만들었단 말이에요.

이명박 정부에서도 '비핵개방 3000'이라는 정책을 발표했죠. 만들었던 사람이 지금 윤석열 정부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에요. 당시 김태효 국가안보전략비서관이 통일교육원에서 비핵개방 3000을 설명을 했는데, “이 비핵개방 3000 정책으로 여름이 지나기 전에 북한이 붕괴해서 우리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다”라고 했다는 거예요. 나중에 기자들이 그 이야기를 알고, “여름이 지나도 북한이 붕괴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된 거냐?” 그랬더니 “첫눈이 오기 전에 무릎 꿇을 겁니다” 이랬다는 거예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김보협: (인디언) 기우제 지내는 겁니까?

정세현: 몰라요.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다 북한 붕괴론자들이 대통령 주변에 있었습니다. 다시 지금 붕괴론자가 윤석열 대통령 주변에 있는 거죠. 미국의 힘을 빌려 군사적으로 계속 압박하면, 거기에 대응하며 군사력과 경제력을 탕진해 붕괴할 것이라는 기대죠.

김보협: 예전에 미국-소련 간 군비 경쟁 당시에 소련이 결국 쫓아가지 못하고 붕괴한 것처럼?

정세현: 그렇죠. 그 일이 다시 일어나리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지금 대통령 주변에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로드맵, 액션 플랜이 필요 없다고 보는 거예요. 곧 붕괴할 거니까. 대북 정책이 없는 이유는 북한 붕괴가 임박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건 이뤄질 수 없는 꿈입니다. 간단치 않아요. 북한 붕괴 요인도 있지만, 체제 지탱 요인도 만만치 않게 강해요. 북한이 독재정권이고 세습하려고 무리하는 것들 때문에 붕괴한다고 믿고 싶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북한 체제가 지탱이 되는 측면도 있는 겁니다. 경제 어렵다고 체제 붕괴가 되는 게 아닙니다.

붕괴론은 미국제, Made in USA입니다. 1991년 12월 13일, 남북 총리급 회담에서 남북 기본합의서를 만들지 않았어요? 그걸 보고 미국에서는 '이게 지금 동구권이 흔들리는 걸 보면서 북한도 체제 붕괴 공포심을 가지고 있구나. 그러면 저건 멀지 않았다'라고 인식했지요. 그래서 북한 붕괴를 기다리고 있었죠. 미국에서도.

북한 붕괴 실현되면? 더 위험하다.. 친중 정권 들어설 우려

김보협: 박 실장님도 ‘윤석열 정부에서 대북 정책이라는 게 없다’,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비슷한 견해네요.

박지원: 비슷한 의견이에요. 현실적으로 북한에서 미국에 가장 크게 느끼는 위협이 암살 위협입니다. 제가 김대중 대통령 서거 5주기(2014년)에 김기남 비서하고 만났어요. 그때 “이번에 비핵화하지 않으면 큰일 난다”는 미국의 메시지를 전달하니까, 김기남 비서가 “절대 우리는 미국을 믿지 못한다. 미국은 결국 우리를 참수하려고 한다. 그게 카다피, 후세인 사례에서 나오는 것 아니냐?”라고 말하더라고요. 북한이 최근에 드론이 나오니까 굉장히 위협을 느끼고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북한도 대비하고 있는 겁니다. 만약에 지금 북한이 붕괴된다고 해서 우리가 통일되느냐? 저는 그렇게 안 봐요.

김보협: 오히려 북한 붕괴론이 더 위험한 거 아닙니까?

박지원: 만약 북한이 붕괴하면 통일되는 게 아니에요. 중국으로 갑니다.

김보협: (북한 붕괴론자들은) 북한이 붕괴하면 (남한이) 흡수 통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에요?

정세현: (흡수) 안 돼요. 북한 붕괴론자는 북한이 경제난, 미국의 군사적 압박 때문에, 또는 체제 불안이 커져서 김정은을 권력에서 쫓아내면 우리가 올라가서 접수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건데, 그걸 막으려고 북한이 1991년 유엔 가입신청서를 냈던 겁니다. 사회주의 동구권이 흔들리고 무너지고 하는 걸 보면서 자신들도 동독처럼 흡수 통일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떨기 시작했고, 그걸 막기 위해 남북 동시 가입을 신청했어요. 유엔에서는 받아줬고요. 이제 국제법적으로 두 개 국가가 된 거예요. 함부로 손대면 침략이 돼요.

반면에 중국이 압록강이나 두만강을 넘어 북한에 손을 뻗치는 게 우리가 철조망을 넘어 올라가는 것보다 더 쉽습니다. (붕괴 시) 새로운 친중화(親中化)된 정권이 들어설 가능성이 높고, 남한과 어떤 관계를 수립해나갈지는 예단할 수 없는 거죠. 이명박 정부 때나 박근혜 정부 때나 붕괴를 기다리는 사람은 우리가 북진해서 접수하면 인민이 환영할 것으로 보는데, 아닙니다.

박지원: 반대로 남한이 만약에 붕괴한다고 하면, 북한이 가져가겠어요? 미국화된다고요. 마찬가지로 북한도 그래요. 북한도 중국화되는 거지. 따라서 지금은 교류·협력을 통해 평화를 지켜나가는 것이 최상의 길이지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김보협: 김정은도 후계자가 되자마자 북한 내에서 불만이 있어 붕괴할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했었죠.

김보협 진행자

박지원: 집권 10년 동안 자기 아버지 때보다 더 좋아졌어요. 3년 간 코로나로 국경을 봉쇄해 개미 새끼 하나도 나가지도 들어오지도 못하게 총살시켰지만 끄떡없잖아요. 요새 리설주, 김여정 권력 투쟁설로 김주애를 내세운다? 이런 것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소리로 우리 국민들을 현혹시키고 있다고 봅니다.

외교·안보라인 교체 없이는 대북 정책 부재 기조 이어질 것

김보협: 윤석열 정부의 '북한 붕괴론'에 기반해 아무런 대북 정책을 내지 않는 기조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세요?

정세현: 저는 그렇게 봅니다. 그리고 4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미 동맹을 강화하며 전략자산을 투입하면 북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질 수밖에 없을 거라는 환상에 빠져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 대북 정책이 구체적으로 나오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북한을 적대시했던 전두환 정부 시절을 생각해보면 정권마다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무언가 꼭 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는 생각을 요즘 합니다. 어차피 기대할 것이 없다면 차라리 포기하고 기다리는 게 낫다는 말입니다.

김보협: (남북 관계를) 악화시킬 바에는 아무것도 하지 마라?

박지원: 결국 정권이 교체돼야 한다는 말씀을 하시네요. 저도 지금 하는 것 보면 아무 진전이 없을 것 같아요. 미국은 어떤 경우에도 공짜 점심을 주지 않는 나라입니다. 블랙핑크, 레이디 가가 공연비 갖고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핸드폰 같은 조립품 팔아 수출하지만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무기를 수입하는 비용은 잡히지 않습니다. 아마 막대할 겁니다.

사실 역대 보수 정권에서 남북 관계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계기가 많아요. 박정희 7·4 공동성명이나, 노태우 남북 기본합의서 등이 대표적이죠.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이 2002년 미래연합 대표일 때 평양을 방문했는데요. 그때 김정일과 만나서 “박정희, 김일성 2세들이 손잡고 잘해보자”(했는데). 그 후에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남북 축구 경기를 하는데 박근혜가 갔어요. 응원하는데 태극기가 등장하니까, 당시 정몽준 축구협회장을 불러서 “왜 한반도기를 쓰지 않냐. 남북합의를 지켜라”라고 그랬다고 해요. 윤석열 대통령도 정신 차리면 남북 관계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그런 모멘텀이 오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만, 이건 제 개인적인 기대고 그냥 X판(개판) 될 거예요.

김보협: 외교·안보 전문가와 시민들이 걱정하는 게 남북 간 완충 장치가 없다는 거잖아요? 최소한 우발적 충돌이 전쟁으로 비화하는 것 정도는 막을 수 있는 소통 창구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 이런 말씀을 하는 분이 많거든요. 어떻게 보십니까?

정세현: 글쎄요. 윤 정부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참모를 바꾼다면 모르겠습니다. 그 멤버 그대로는 기대할 수 없다고 봅니다. 북한 붕괴를 믿지 않는 사람이 대통령 주변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든 완충지대를 만들든 인도적 지원 문제를 레버리지(지렛대)로 삼든 전쟁을 막을 길을 찾을 텐데 지금은 마주 보고 달리는 기관차끼리 언제 충돌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운전자를 바꿔야 합니다.

박지원: 김태효 안보실 1차장은 당연히 바꿔야 해요. G20 정상회의 때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과 정상회담에서 북한 핵 문제에서 중국의 역할을 요구했어요. 윤석열 대통령도 한중 정상회담에서 그러한 이야기를 했더라고요. 저는 윤석열 대통령이 4월 말 한미 정상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중국의 역할을 잘 논의해서 그래도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강력하게 요구합니다.

일촉즉발 전쟁의 위협이 있지만, 저는 늘 강조합니다.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고. 북한은 미국이 무서워서 못 하고, 한국은 미국이 못 하게 하니까 못 한다고. 그리고 미국은 북한을 공격하려고 하는데 공격해봐야 원가가 안 나와요. 중동은 석유 팔면 되고, 우크라이나는 곡물, 자원이 많으니까 하는데, 북한은 원가가 안 나오는 곳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공격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국지적인 도발은 있을 겁니다.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핫라인을 활용해야 합니다. 그래도 유엔사에는 북한과 통화되는 핫라인이 있기 때문에, 그 범위 안에서라도 잘 조정해나가면 전쟁은 없을 것이다, 핫라인을 계속 유지·소통하면 그래도 남북 간 대화는 이뤄진다, 저는 그렇게 봐요.

박지원 실장

김보협: 알겠습니다. 마주 달리는 기관차 같은 남북 관계 풀려면 '북한 붕괴론'이라는 헛된 꿈에서 깨어나라, 그리고 남북 간 대화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하라, 이 두 가지 정도를 두 분의 고견으로 정리하겠습니다. 오늘은 윤석열 정부의 남북 관계를 집중적으로 살펴봤습니다. 두 분의 조언을 들을지 저는 걱정이 됩니다. 최소한 윤 대통령의 귀를 붙잡고 있는 사람이 바뀌기 전에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 같네요. 말씀 잘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