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윤석열 정부에 불편함을 숨기지 않고 있다. 정권 출범 1년에 만에 미국 주도의 국제 경제·안보 체제에 급속도로 편입되며 ‘안미경중’으로 표현되는 균형외교 전략을 포기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윤석열-기시다 정상회담에 대한 중국 정부와 언론의 거친 비판은 단적인 사례다.

중국의 대외 정책에 밝은 문일현 필자는 한미일 경제·안보 결속이 강화될 경우, 동북아에서 중국과 러시아, 북한이 협력하는 ‘신북방 3각 체제’가 복원될 수 있다고 내다본다. 아울러 중국이 한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해 한국의 대중 무역적자가 상당 기간 지속되는 등 경제적 어려움이 커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2023년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경제·안보 질서에 대한 중국의 생각은 뭘까. [편집자 주]

✔ 노골적으로 한국 때리는 중국 언론, 심기 불편한 중국 정부✔ 미국 압박에 '제3자 변제' 카드 내놨나… 무릎 꿇은 윤 정부✔ 중, 한일 정상회담으로 균형 외교 포기한 한국에 경고 보내✔ 한·미·일 3국이 중국을 겨냥하면 '대칭적' 조치로 반격할 것✔ 한·중 경제협력, 올가을이 관건… 한국 외교 어디로 가는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 셔터스톡)

윤석열 대통령의 일본 방문에 대한 중국 내 평가는 냉소적이다. 특히 중국 언론들의 평가는 경멸에 가깝다. “일본에 무릎 꿇은 한국”, “사라진 한국의 국격(國格)”, “천하의 대역”, “역사의 배신” 등 직접 옮기기조차 힘든 표현들이 대거 등장했다. 중국과 직접 맞부딪친 사드 사태를 제외하면 중국 언론이 한국 외교를 이토록 모질게 비판한 경우는 전례가 없다.

중국, 외교 상식으로 한국 정부의 처신을 이해 못 해

언론처럼 노골적이진 않지만 심기가 불편하기는 중국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주고받기라는 외교의 근본까지 무시하면서 한국이 일방적으로 일본에 양보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역사 문제를 팽개치고 일본과 관계 발전을 외치는 게 과연 공평과 정의에 맞는가?”, “한국의 안보와 국익에 장기적으로 도움은 되는 것인가?”, “피해자인 자국민을 외면하고 가해자 일본 편을 드는 말 못 할 이유라도 있는 건가?” 등등…. 중국 정부 또한 외교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미스터리를 풀 숨은 그림을 찾느라 골머리를 앓는 기색이 역력하다.

중국은 이런 불가사의한 상황이 벌어지는 데는 필경 숨겨진 의도들이 깔려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중국 견제와 긴밀히 연결돼 있다고 확신하는 분위기다. 미국 vs 중국, 중국 vs 일본, 미국·일본 vs 중국 등의 관계에서 한국이 미국, 일본 편을 듦으로써 세력 균형이 파괴됐다고 판단한다. 또 한국의 국익 수호에 그동안 유효한 수단이었던 대국 간 균형외교를 포기함으로써 국제정치 생태계를 교란시켰다고 인식하고 있다. 이는 한국이 중국 견제에 사활을 거는 미일에 가담함으로써 중국의 국익을 심각하게 위협한다는 주장이다.

미국은 자국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중국을 주저앉히려 한다. 그렇지만 중국이 너무 커져서 혼자 힘만으로는 어렵다. 중국과 가까이 있는 한국과 일본, 오스트레일리아와 대만 등과 힘을 합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미국 막후에서 한국 압박, 윤 정부 ‘제3자 변제’ 카드 나왔나

윤석열 정권은 취임 직후부터 지속되는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일본과 연합하려 한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의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일 양국이 역사 문제로 서로 으르렁대고 있다. 이 문제를 반드시 풀어야 한다. 그렇게만 되면 미국은 보다 고차원에서 효율적이고 통일된 한미일 3각 관계를 구축하여 중국을 강하게 압박할 수 있다. 그래서 미국은 막후에서 한국을 압박했고, 그 결과 윤석열 정권은 ‘제3자 변제’라는 카드를 내밀며 일본에 무릎을 꿇었다는 것이다. 요컨대 한국은 북한 대응을 위해, 미국과 일본은 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양측의 전략적 이익을 맞교환 했다는 판단이다.

윤 대통령이 미국보다 먼저 일본을 방문한 것도 ‘일본과 먼저 화해하고 미국에 오라’는 바이든 대통령이 낸 숙제를 푼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제3자 변제’안을 발표하자마자 미국 대통령과 국무장관이 거의 실시간으로 ‘심야 환영 메시지’를 낸 것도 같은 맥락에서 파악한다.

중국은 윤 대통령의 이번 방일이 친미반중 성향을 갈수록 노골화하는 징표로 받아들이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이미 중국에 첨단 반도체 공급을 차단하기 위한 ‘칩4’ 동맹, 중국을 배제하고 미국 주도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에도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일본과 경제, 과학기술 협력 강화에 합의했다. 반면 중국에 대해서는 양국 간 경제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는 이른바 ‘안미경중’(安美經中) 기조마저 포기한 것 아닌지 중국은 의심하고 있다.

지난 16일,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한일 확대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한국이 ‘안미경중’ 기조마저 포기한 것으로 의심

중국은 윤 대통령이 중국을 멀리하고 일본과 밀착하려 한다고 우려한다. 문재인 정부까지만 해도 일본과 걸린 역사, 영토 문제에 있어 한중 양국은 비교적 비슷한 입장을 취했고 한국은 중일 간에 시종 중립적 태도를 견지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한국이 중국에 다소 우호적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한국은 그동안 미중은 물론 미일-중국 사이에서 일방적으로 한쪽 편을 들지 않는 ‘균형외교’를 통해 모두를 배려해왔다. 중국은 이런 한국 외교를 내심 높이 평가했다. 그러던 한국이 정권이 바뀌자마자 과거와는 정반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 외교부가 한일 정상회담에 대해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소그룹을 만드는 데 반대한다”며 대놓고 불만을 표출한 것은 균형외교를 포기한 한국에 보내는 경고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한미일 안보 협력에 맞선 북중러 ‘신북방 3각 체제’ 복원 가능성

중국은 군사 안보 분야에서 한국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일 정상이 인도태평양전략 연계 등 안보 협력을 강조한 대목이 예사롭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한일 양국이 합의한 외교, 국방장관이 참석하는 안보대화는 동맹국이나 준동맹국이라야 가능한 높은 수준의 기제이다. 양국은 또 군사정보보호협정을 다시 가동시키기로 합의했다. 북한 미사일 발사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면서 공동 추적에 나선다는 것이지만 그다음 수순은 공동 격추일 것으로 전망한다. 이런 추세라면 종국적으로 한일 군사동맹 또는 한미일 3국 군사동맹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는 중국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다.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한미일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은 러시아, 북한 등이 참여하는 신북방 3각 체제를 복원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진: 셔터스톡

그렇다면 이제 막 출범한 시진핑 3기 체제는 한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관리하고 한미일 3국의 중국 견제에 어떻게 대응할까? 여러 가지 추론이 나오지만 분명한 것은 중국 역시 전방위에 걸쳐 정면으로 대응할 것이란 점이다. 시진핑 주석은 미국이 주도하는 현 국제질서는 근본적으로 변화 중이고 국제사회 역학 관계도 서열이 뒤바뀌는 대변혁을 겪고 있다고 인식한다.

친강 외교부장 “미국이 바뀌지 않으면 충돌과 대항은 필연적”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는 더 이상 과거에 누렸던 국제 지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됐다. 중국과 러시아 관계도 역전됐다. 특히 미국이 전방위적으로 중국을 포위, 봉쇄, 압박하는 게 현실이다. 중국은 미국 주도의 현 질서를 결코 수용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친강 중국 외교부장은 “미국이 현 정책을 바꾸지 않으면 충돌과 대항은 필연적”이라고 강조한다. “미국이 중국을 비난하고 압박하는데 중국이 침묵하고 반격하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중국은 이런 기조 위에서 한국과의 관계도 처리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한중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유지하면서 미중 사이에 낀 한국을 최대한 중간지대로 묶어 두기 위해 노력하고 협력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미, 한일, 한미일 3국이 중국을 겨냥하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칭적’ 조치로 반격한다는 방침도 명확히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중국의 한 고위 당국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중국 정부에서 북한을 동맹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지만 한미, 한일, 한미일이 합동으로 중국에 칼끝을 겨누면 중국 역시 달리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앞서 얘기한 중국-러시아-북한의 북방 3각 부활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중국은 2005년 러시아와 첫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한 이래 훈련의 규모와 실시 장소를 계속 확대하고 있다. 2012년 이후에는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최근엔 이란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참가하는 다국적 합동훈련을 오만해협과 남중국해에서 실시했다. 2021년 말 서태평양에서 처음으로 이뤄진 합동훈련에서는 군함들이 일본 주변 주요 수로를 지나갔다. 작년 5월 바이든 대통령의 한국, 일본 방문 때는 중러 폭격기가 한국의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하는 일도 벌어졌다.

한국과 마찰을 최소화하기보다 불만을 직설적으로 드러내

중국은 또 한국과 일본이 동시에 관련된 사안은 대응 수위나 방식을 달리하는 분리 대응으로 양국 공조를 와해시키려 할 것이다. 아울러 한중 양국 간 마찰을 최소화하려 했던 과거와는 달리 자국의 불만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올해 초 한국이 코로나 방역을 이유로 중국발 입국자를 제한하자 이에 반발해 한국인 비자발급 중지로 직접 보복한 게 대표적이다.

안보와 경제 분야에서 한국에 협력하지 않을 가능성도 많다.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거나 유엔 안보리에서 대북 제재 결의안에 동참해 달라는 요청 등도 중국의 협력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 100억 달러를 훌쩍 넘어선 대중 무역적자는 양국 관계가 개선되지 않는 한 상당 기간 지속되고 확대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또 요소수와 유사한 공급대란이 벌어지더라도 그때처럼 적극 협력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2021년 요소수 품절 대란 당시, 한 주유소에 요소수 품절 안내문이 놓여있는 모습. (사진: 연합뉴스)

올해 봄은 한중 관계의 결정적 분수령

올들어 한중 관계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 한국은 물론 중국에서도 그렇다. 베이징 외교가는 금년 봄이 한중 관계를 결정짓는 분수령이라고 전망한다. 이번 방일에 이어 바이든 대통령과 윤 대통령 등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3월 말 민주주의 정상회의, 4월 한미 정상회담, 5월 도쿄 G7 정상회담 등 굵직한 회담들이 줄줄이 열린다. 이곳에서 중국이 주된 의제로 논의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윤 대통령이 여기서 어떤 입장을 취할지 중국은 모든 신경을 곤두세워 예의주시 중이다.

한중 경제협력은 올 가을이 관건이다. 삼성, SK하이닉스의 중국 내 반도체공장에 첨단 설비 반입을 금지한 조치의 유예기간이 10월로 끝난다. 연장되지 않으면 삼성과 하이닉스는 중국 내 반도체 공장을 철수하거나 매각하는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엄청난 후폭풍이 몰아칠 것이다. 한중 관계에 정통한 중국 고위당국자는 이렇게 말했다. “삼성과 하이닉스가 철수한다면 한중 관계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최저점으로 추락할 우려가 있다.”

“한국 외교는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가?” 냉정하게 묻고 신중하게 해법을 찾아야 한다.


글쓴이 문일현은

대학에서 스페인어를 전공했으나 현실에서는 독학으로 배운 중국어로 사회생활의 꽃을 피웠다.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로 있다가 1996년 아시아 기자로서는 처음으로 중국 국가주석 장쩌민을 단독 인터뷰했다. 1997년 중국 지도부가 비공개에 부친 ‘덩샤오핑 사망’을 전 세계에서 최초로 특종 보도했다. 이후 한국 김대중 정부의 언론개혁을 지원하는 문건을 작성해 관계기관에 제언했다는 이른바 '언론개혁 문건' 작성 의혹에 휩쓸려 언론계를 떠났다. 베이징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마치고 중국 엘리트 대상의 고등교육기관인 정법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