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그런 소주가 아니다!’ 중장년층의 술, 소주가 MZ 세대에게 호응을 받고 있다. 그런데 삼겹살과 함께 떠오르는 쓰고 독한 뒷맛의 그 소주가 아니다. 젊은 층의 개성과 취향, 특히 젊은 여성들의 기호에 부응하는 특색을 지닌 소주다.술 평론가이자 막걸리학교 교장인 허시명 필자가 MZ 세대 음주문화에서 달라지고 있는 소주의 현주소를 여러 각도로 살핀다. 그 변신의 양상과 함께, 변화의 밑바탕에 깔린 MZ 세대의 특성을 간접적으로 들여다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편집자 주]

✔ 독주의 상징 '소주', 달콤한 맛으로 신분 세탁✔ 한국술 바틀샵 '술술상점', 직장인들에게 인기✔ 하이볼, 츄하이, 소토닉… 내가 만드는 칵테일✔ '원소주', '화요'와 쌍벽을 이루는 소주가 되다✔ 다양한 향기와 색깔로 차별화를 시도하는 '진'

 

사진: 셔터스톡

 

소주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날, 소주는 독주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소주는 집에서 마시지 않고 술집이나 단체 회식 자리에서 안주와 함께 격렬하게 즐겼다. 그런데 소주가 변신을 거듭하며, 한없이 도수를 낮춰 순하고 달콤한 맛으로 ‘신분 세탁’을 했다.

달콤함이 심했던지 희석식 소주는 현재 제로 슈거, 무가당을 선언하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2022년 9월에 출시된 롯데의 ‘새로’는 4개월 만에 5000만 병이 팔렸다. 놀랍다. ‘원소주’와 ‘화요’는 희석식 소주의 대척점에서 증류식 소주의 시장을 이끄는 쌍두마차가 되어 2022년에 매출 1000억 원을 넘겨, 증류식 소주 시장의 신기원을 열었다.

코로나가 초대한 홈파티, 홈술

지난 3년, 코로나로 주점들이 힘들었다. 단체 손님, 단체 소비가 줄어들고, 영업시간도 줄어드는 날들이 길었다. 그렇다고 술의 소비가 준 것은 아니었다. 동네 편의점들이 술로 한쪽 벽면을 채우고 매출을 올렸다. 편의점에서 위스키와 와인의 매출이 올라가고, 수입맥주 캔 냉장고가 늘어나고, 기획 상품 ‘곰표맥주’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홈술, 혼술의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면서 벌어진 일이다. 홈파티의 음식도 나눠서 준비하고, 참여 인원 숫자만큼 배달 음식을 주문하고, 비용 분담도 카카오톡으로 공유한다. 누가 한턱 내는 것도 부담스럽고, 그럴 필요도 없는 문화가 생겨났다.

자연스럽게, 대량 생산 제품보다는 수제품을, 많은 양보다는 좋은 질을, 취하기 위해서보다는 즐기기 위한 술을, 익명의 술보다는 출신지가 분명하고 스토리가 많은 술들을 즐기는 세대들이 등장했다. 자기에 주는 선물로 술을 고르고, 그 술을 통해서 가까운 사람과 함께 특별함을 누리고자 하는 세대가 등장한 것이다.

한국술을 선택할 수 있는 바틀샵, 술 소매점도 제법 생겼다. 코로나가 한창인 2020년 여름에 술 교육기관인 막걸리학교에서 충무로 한옥마을 앞에 선도적으로 바틀샵 술술상점을 만들었다. 그때 막걸리학교의 각오는 이랬다. 서울 복판에 한국술 소매점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주류백화점이나 와인 전문매장은 많은데, 한국술을 모아두고 파는 매장이 없다니, 쓸쓸한 일 아닌가? 그런데 2년이 지나고 바틀샵들이 홍대, 강남, 성수동 젊은이들의 거리에 들어서고, 체인점이 생겨나고, 주류도매업체들에서 창고에 바틀샵을 열었다. 이제는 바틀샵이 많은 것 아니냐는 얘기가 들려올 정도다.

충무로 술술상점을 주로 찾는 이들은 젊은 직장인들이다. 남성들보다 여성들의 방문율이 높다. 오늘 밤 모임에서는 어떤 술로 이야기를 풀어볼까? 낯설고 특별한 술을 찾으려는 시선들이 늘었다. 원료를 이해하고, 제조 방법을 알고, 술 이름에 대한 스토리도 알고 싶은데, 시간이 없다면 우선 눈에 띄는 세련된 디자인의 술병을 집어 들고 결제한다. 아무 술이나 무작정 마시려 들지 않는 소비자들이 늘었다. 한두 병 들고 가도 충분한 도수 높은 술도 제법 나간다. 소줏값이 높기도 하고, 상하지 않으니 재고 부담도 없고, 냉장실에 넣지 않아도 되니, 바틀샵 운영을 위해서도 소주가 주력상품으로 전진 배치된다. 소주는 어느덧 홈술 파티 용품으로 자리잡았다.

 

충무로 술술상점 (사진: 네이버 업체 사진)

 

하이볼이라는 칵테일

증류주의 맛을 생산자에게만 맡겨둘 수는 없는 일이다. 바텐더들이 마주 앉은 고객을 위해, 오직 하나뿐인 맛을 창조해내는 모습은 멋지다. 그렇지만 바텐더는 귀한 존재다. 호텔이나 고급 바에 가야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유튜브 속에 바텐더들이 등장하여, 칵테일을 시연하는 것을 쉽게 지켜볼 수 있다. 그들 덕분에 홈술, 홈파티를 위한 칵테일이 더는 어렵지 않게 되었다. 칵테일 중에서도 가장 쉽게 손이 가는 게 하이볼이다. 하이볼은 얼음과 탄산수에 위스키나 브랜디를 섞어 만든다. 위스키나 브랜디는 50㎖ 소주 한 잔 분량만 사용하면 된다. 녹게 될 얼음까지 환산해서 한 컵 200㎖ 정도의 탄산수를 부으면 된다. 조금 멋을 부리면 레몬 반 조각을 썰거나, 민트 잎 한 장으로 장식하면 된다. 증류주의 농도는 아메리카노 원샷이나 투샷처럼 적절히 조절하면 된다.

하이볼은 증류주의 판촉 효과를 높이기 위해 증류주 회사에서 보급했다. 위스키와 브랜디는 물론이거니와 일본 산토리도 일본 내수시장에서 하이볼로 매출을 높였고, 한국 이자카야를 공략했다. 일본 쇼츄-일본은 소주를 복모음을 더해 발음한다-는 하이볼과 만나 ‘츄하이’(쇼츄하이볼에서 앞뒤 글자를 떼고)로 새로운 술인 양 시장을 공략했다. 화요도 하이볼과 만나고, 안동소주도 바텐더의 손에서 하이볼로 각색되었다.

저도주 소주라고 해서 하이볼을 비껴가는 것은 아니다. 소주와 토닉워터가 만나, ‘소토닉’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그 덕분에 매출을 올린 것은 토닉워터다. 2023년에 하이트진로는 토닉워터 출시 47년 만에 최대 매출을 올렸다고 환호성을 질렀다. 2022년 토닉워터 매출이 337억 원을 달성했는데, 5년 전에는 매출액이 59억 원에 불과했으니 5년간 6배 넘게 성장했다.

 

하이볼은 얼음과 탄산수에 위스키나 브랜디를 섞어 만든다. (사진: 셔터스톡)

 

인터넷을 달구고 편의점으로 입성한 원소주

2021년 국내 양조장의 술 출고액은 8조8345억 원, 그중에 맥주가 41%로 1위이고, 희석식 소주가 3조5450억 원으로 40%를 차지했다. 증류식 소주 시장 점유율은 646억 원으로 0.7%이고, 전체 소주 시장에서 1.8%에 불과했다.

에탄올 95%의 주정에 물을 희석해서 만든 게 희석식 소주다. 주정에서 올라오는 냄새를 걸러내기 위해서 숯이나 필터로 걸러내고, 구연산으로 신맛을, 아스파탐이나 아세설팜칼륨이나 수크랄로스로 단맛을, 아미노산으로 구수한 맛을 재구성해낸다. 소주 회사에서 하루에 100만 병 이상씩 만들어내고 있으니, 공산품이나 다름없다. 소주 가격이 10원 오를 때마다 언론에서 화들짝 놀라지만, 그래도 소주 한 병에 2000원이 안 되니, 여전히 세상에서 알코올 용량 대비 가장 깔끔하고 저렴한 술은 소주다.

그런데 이런 희석식 소주만 마시고 있을 것인가? 2000원의 소주로 삶이 위안받을 수 있을까? 그건 아니지 않나? 다른 소주, 특별한 소주는 없을까? 누가 어디서, 무슨 재료로 어떻게 만들고 있다는 소주는 없나? 그런 갈증이 깊어진 순간에, 원래 소주는 희석식 소주가 아니라 증류식 소주라는 소리를 K-POP의 리듬에 싣고 등장한 술이 있다.

2022년 봄, 원소주가 온라인 판매를 시작한 지 26분 만에 6만 병을 팔았다. 카카오톡 선물하기에 입점해서는 1주일 만에 전체 상품 3위, 식품 부문 1위를 차지했다. 품귀 현상이 벌어지자, 당근마켓에서 원소주의 빈 병이 5000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빈 병들은 주점의 창틀에 세워져, 우리 주점이 K-POP의 인기곡을 들려줄 줄 알아요, 라는 전시 효과를 발휘했다. 오리지널 원소주 22도는 인터넷으로만 판매되어, 손 빠른 엄지족들의 차지가 되었다. 여세를 몰아, 전국에 1만5000개의 점포를 가지고 있는 편의점 GS25와 손잡고 원소주 스피릿 24도를 출시했다. 원소주는 단숨에 400만 병을 넘어섰고, 20년 동안 그 길을 걸어온 화요와 쌍벽을 이루는 증류식 소주 회사로 성장했다.

 

가수 박재범이 출시한 원소주. (사진: 연합뉴스)

 

지역 농산물로 빚어 전통주의 범위에 들어오는 술들을 인터넷으로 판매 가능해진 것은 2017년 일이다. 그 덕을 원소주가 본 것이지만, 달리 해석하자면 원소주로 해서 MZ세대들이 소주를 휴대전화로 주문하는 큰 길에 들어섰고, 인터넷 술 구매의 관성이 강화되었다.

인터넷 판매의 파급 효과는 다른 술로도 이어졌고, 사회적 논란까지 낳았다. 인터넷에서 팔지 못하는 장수막걸리, 백세주, 화요는 전통주가 아니란 말인가? 어제 나온 원소주는 전통주로 인터넷에서 팔리고 있는데, 오래전에 나온 장수막걸리와 백세주와 화요는 인터넷에서 왜 팔지 못하는가? 이런 반문이 일며, 국회에선 전통주 범주에 대한 토론의 불이 지펴졌다.

원소주는 단순하게 연예인의 팬덤 마케팅으로 치부할 수 없는 요소를 지녔다. 임창정의 ‘소주한잔’, 김보성의 ‘의리남소주’가 뒤따라 나왔지만, 임창정과 김보성이 소주 모델이 될 뿐이었지, 소주 문화를 만들고 있지 않다는 것을 소비자들은 눈치챌 줄 안다. 그건 그냥 ‘펀슈머’, 재미난 소비일 뿐이다. 박재범의 원소주는 좀 다르다. 충주의 고원정, 원주의 모월협동조합으로부터 OEM 생산을 하지만, 한국 소주의 비어 있는 구석을 보고 있다. 그 빈구석에 놓여있어야 할 술이 증류식 소주라는 것을 알고 있어 보인다.

불어오는 진의 바람, 그 독특하고 다양한 향기와 맛

징후는 늘 바로 보이지 않고 엿보인다. 그 바람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그 바람이 어디까지 불어갈 것인지 무심코 지나가는 사람은 알아채기 어렵다.

‘순하리 처음처럼’이 나온 게 2015년이었다. 유자즙과 유자향이 들어간 칵테일 소주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 알코올 도수는 처음처럼 17.5도보다 3.5도를 낮춘 14도였고, 출시 100일 만에 4000만 병을 팔았다. 그 바람의 시작을 1990년대에 등장해 몇몇 주점에서 꾸준히 팔아왔던 오이 소주나 레몬 소주에 두기도 한다. 순하리 처음처럼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추격해온 경쟁 제품이 자몽에 이슬, 청포도 이슬, 자두에 이슬, 딸기에 이슬이고, 무학에서 나온 좋은데이 석류, 블루베리, 파인애플, 민트초코다. 순하리도 복숭아, 사과, 청포도, 소다, 레몬진의 자매품을 쏟아냈다. 무엇이 먼저이고, 나중인 줄 모르는 홍보전이 펼쳐지고, 미풍이 태풍이 되고 이내 진공 상태와 같은 무풍지대가 되고 만다. 꼭 술만이 아니라, 시장의 생리란 그러한 것이니 어찌할 수가 없다.

그 과일 소주, 허브 소주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진(Gin)이다. 진의 바람은 17세기 중반에 네덜란드 홀랜드에서 시작해 런던에 상륙하여 18세기 초에 대중의 술로 자리잡게 되었다. 진은 다양성의 세계를 추구한다. 주정과 허브와 약재가 만나는 곳에 진이 있다. 진은 그 다양성 때문에, 신생 양조장들이 가담하기 좋은 영역이다. 위스키는 텃세가 심하다. 기본이 12년산이고, 조금 세월을 더해 18년산, 21년산이라며 나이를 따지며 신분증을 요구한다. 위스키를 생산하는 이들은 다음 세대를 위해서 술을 빚는다는 고상한 이야기를 한다. 그의 아버지 덕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다.

 

다양한 브랜드의 진(Gin) 병이 있는 네덜란드 주류 매장. (사진: 셔터스톡)

 

그런데 신생 양조인들은 운명을 다음 세대에 맡겨둘 수가 없다. 그래서 증류주에 색깔과 향기를 입혀, 위스키와 차별화시키고 증류주의 한 지분을 차지하려든다. 따지고 보면 위스키도 참나무 침출주 아닌가, 라고 반문하면서 진은 다양한 향기와 색깔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마치 머리를 현란하게 염색한, 아버지와 다른 길을 가는 젊은 세대를 보는 듯하다.

우리에게도 진이 있다. 매실과 노간주나무의 열매 주니퍼베리를 넣어 증류한 ‘서울의밤’, 양평에서 허브 농사를 지으면서 증류한 ‘부자진’, 홉 농사를 짓는 문경주조에서 만든 ‘폭스진’, 충주에 터잡고 토끼소주를 만들어내는 팀들이 만든 ‘선비진’ 등이 출시되고 있다. 전통에 기반을 둔 진 계열의 술로, 증류주에 인삼이 들어간 ‘금산 인삼주’, 진안 태평주가의 ‘홍삼주’, 지초에 증류주를 흘려보내 붉어진 ‘진도 홍주’가 존재한다.

젊은 세대의 다양한 소비 욕구에 응할 수 있는 다양성을 진은 지니고 있다. 우리 안에서도 진의 바람이 시작되고 있다. 소주를 가르치는 교육기관들도 생기고, 술을 배우는 젊은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한국 문화의 인기와 함께 동남아에 한국술의 수출이 늘어나고, 미국 뉴욕에서 한국어가 적힌 소주가 빚어지고 있다. 소주로 상상할 수 있는 일들이, 벌일 수 있는 사업 아이템들이 늘어나고 있다. MZ세대가 소주를 즐기는 것은 그런 복합적인 매력이 소주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글쓴이 허시명은막걸리학교 교장이자 사단법인 한국술문화연구소 소장이다. 막걸리학교에서 막걸리 강좌와 증류주 강좌, 양조장 창업과정 등 다양한 술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 <막걸리, 넌 누구냐?>, <술의 여행>, <맛이 통하면 마음도 통한다>, <조선문인기행>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