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진의 남편이 재벌 말고 검사였다면 결말이 어떻게?’ 드라마 <더 글로리>에 대한 SNS 댓글 중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댓글이다. 얼마 전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됐다 물러난 정순신 전 검사와 그 아들이 사는 현실 세계와 <더 글로리>의 가상 세계가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주인공 동은이 “존엄이라곤 없는, 이미 더없이 폐허”라고 말하는 드라마 속 세상은 2023년 한국 사회와 조금도 낯설지 않다.김도훈 필자는 <더 글로리>가 조명한 한국 사회를 ‘평범한 악인’들의 권력 놀이와 타인에 대한 착취가 일상이 된 곳이라고 진단한다. 그리고 인간 존엄성의 회복을 위해 ‘성숙한 어른’들이 어떤 ‘영광스런 가치’(glorious value)를 함께 욕망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더없이 폐허인 현실 세계는 영광스러워질 수 있을까? [편집자 주]

✔ 조폭 누아르 대신 등장한 새로운 게임의 법칙✔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이 권력이 되는 사회✔ 강한 공권력에 대한 소구가 검찰 정권 창출해✔ 사법 권력을 방패막이 삼아 가족 단위로 버텨✔ 성찰 없다면 인간 존엄이 없는 폐허는 그대로

<더 글로리>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가 연일 화제다. 학교 폭력을 당한 사회적 약자였던 문동은이 십수 년간의 절치부심 끝에 보다 우월한 강자였던 가해자들에게 복수하는 내용이다. 시즌2가 나오자마자 언론 기사와 평단, 소셜미디어에서 다양한 관람평이 쏟아지고 있다. 대부분의 영상 콘텐츠가 그러하듯, 이런 열풍은 금세 잊힐 것이다. 휘발성이 강한 연출이나 드라마적 장치보단, 작가가 그려낸 현실의 모습을 통해 대중이 소구하는 가치와 감성의 변화를 조망하는 일이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폭력의 기억과 변모한 영광

<더 글로리>는 필자에게 2001년 영화 <친구>가 개봉되었을 당시 한국 사회의 풍경을 상기시킨다. 고등학생들이 자라서 조폭이 되고, 나와바리(구역)와 권력을 놓고 경쟁을 하다 친구를 배신해 칼로 찔러 죽이는 영화에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열광했던 기억이 생생하다(개봉 80일 만에 전국 관객 수 800만 명을 기록했다). 당시의 대중적 열광은 오늘날의 MZ세대들에겐 다분히 생경하고 이해불가한 문화 코드인 듯하다. 오늘날 어느 누구도 조폭 두목으로 분한 배우 유오성의 모습이 남자답고 멋있다고 찬탄을 하거나, 깡패 사이의 우정과 의리에 감동하지 않는다.

영화 <친구> (사진: 네이버)

국가 폭력을 독점한 군부 독재의 문화가 켜켜이 쌓인 한국 사회에서 조폭의 느와르는 오래도록 인기를 누렸다. 그들은 군부 독재가 사회정화 명목으로 수행한 정치적 탄압(?)의 희생자이면서도, 일상의 하위 문화 속에서 군부 엘리트가 독점한 폭력을 가장 성공적으로 모방하고 구현한 주체이기도 했다. 대중은 한때 ‘조폭’이라는 단어에 반사적으로 ‘의리’라는 가치를 부여하고 칭송했으니, 폭력을 수반한 권력에는 사회적으로 학습된 환호와 정당화 기제, 국가 권력 앞에 주눅든 재벌가의 재력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영광’(glory)이 뒤따랐다. <더 글로리>에선 여러 화자들이 변모한 권력과 영광을 위한 새로운 게임의 법칙을 보여주는데, 물질적 풍요와 스타일리시함, 그것이 수반하는 섹슈얼리티와 관계의 우위, 가족의 우월함을 타자 앞에 전시하고 인정받는 것이다.

학폭과 계층론을 넘어서 : 평범한 악인들의 권력 놀이와 타인의 착취

<더 글로리>가 흥행하면서, 드라마의 모티브가 되었던 ‘고데기 사건’이 다시금 조명받았다. 유튜브 채널 <진격의 언니들>에서는 이제 성인이 된 실제 사건의 피해자가 나와서 지옥 같은 경험을 증언하고 고데기로 지져져 흉터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몸을 드러냈다. 학교에서 수년간 집요하게 언어·신체 폭력을 일삼은 두 명의 가해자들은 이제 사회에서 사회복지사,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그중 한 명은 같은 대학에서 마주치기까지 했는데, 대학생이 된 가해자는 피해자와 얼굴이 마주치자 과 동기들을 돌아보며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아, 쟤 내가 잘 아는 애야”라며 웃었다고 한다.

사진: 유튜브 '채널S' <진격의 언니들> 12화 갈무리

과거의 학교 폭력은 공부하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이들 사이에 구분선이 있었다. 가정 환경이나 학교 생활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 일진이 되어 튀거나 약한 학생을 괴롭히는 경우가 많았다.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요즘 풍경은 사뭇 다르다. 이른바 모범생, 우등생, 학생회 간부 등이 일진이 되거나 그들 사이의 네트워킹을 통해 사회의 작은 복제판과도 같은 세계 안에서 촘촘한 권력 카르텔을 형성한다. 싸움 뿐만 아니라 부모의 재력, 사회적 지위, 학업 성적, 교사와의 관계 등 모든 가용한 자원이 곧 권력이 된다. 변모하고 확장되는 권력의 장 안에서, 갈수록 물리적이고 가시적인 폭력보다는 타자를 심리적으로 지배하려는 오만함과 잘근잘근 짓밟는 미시적이고 교묘한 가학성이 발현된다.

다수의 평자들은 <더 글로리>에서 학교 폭력의 심각성을 환기하거나 종국에 파멸한 이들의 사회적 권력이 충분히 강했는지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듯하다. 이를테면, 박연진의 나르시시즘을 충족시켜주는 배우자이자 재력을 가진 방패막이였던 하도영이 ‘만약 검사였다면 연진은 구속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같은 물음은 작금의 사회 환경을 반영할 것이다. 그러나, <더 글로리>에서 학폭과 기득권 집단은 하나의 소재에 불과하다. 드라마의 시선은 맨 위가 아닌, 우리 주변을 공정하게 응시한다.

<더 글로리> (사진: 넷플릭스)

강하다면 강하고, 애매하다면 애매한 대로 극 중의 ‘평범한’ 인물들은 기득권에 대한 욕망과 속물근성, 오만한 허세와 위악스런 무시, 섹슈얼리티의 활용과 변태적 지배, 공적인 역할을 빙자한 권한 남용, 타자의 억압과 착취 등 몸에 흐르는 갈망의 에너지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낸다. 그들은 오만한 재력가, 교조적인 목사, 부패한 공무원, 변태 교사, 비열한 부모 등 일상 세계의 다양한 얼굴로 나타난다. 학생 시절부터 성인이 되어서까지 내내 짓밟히고 압살당했을 수많은 영혼들에게, 사회 속의 나는, 우리는 어떤 존재였을까?

<더 글로리> (사진: 넷플릭스)

어른들의 사회를 위한, 영광스러운 가치의 복원

“존엄이라곤 없는, 이미 더없이 폐허죠. 그러니까 돌아가요. 난 분노와 악에 더 성실하고 싶거든요.”(문동은) 인간의 존엄을 얘기하는 것이 생경한 사회에서 개인이 성실하게 몰입할 수 있는 감정은 분노와 악뿐인지도 모른다. 2021년 9월, 대선을 앞두고 아르스 프락시아가 <시사IN>과 수행했던 대중 정서에 대한 빅데이터 분석(시사IN, ‘[나는 분노한다] 촛불혁명 이후, 대중의 분노는 어디서 왔나’)은 폐허의 모양새를 선명하게 드러낸다([그림 1]). N번방, 학교 폭력, 정인이 사건에서 국민들은 공권력과 사법기관의 무능을 지켜봤고, 이기적이고 자기 보신에만 급급한 단체, 조직들의 행태에 분노했다. 사적 제재에 대한 욕구와 강력한 공권력에 대한 국민적 소구는 검찰 정권의 창출로 이어졌다.

[그림 1]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데 실패한 국가…공권력의 미래는?

제도는 사람을 바꾸지 못하고, 권력의 실패는 사회를 변화시키지 못한다. 작금의 정치적 대립과 계층 양극화에 대한 틀에 박힌 비평은 우리가 어떤 욕망을 가진 인간을 양육하고 있고, 사회에서 권력(폭력)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간과한다. 2022년 12월 <서울신문>과 수행한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이하 학폭위)의 처분 내용에 대한 분석(서울신문, 반성문만 쓰면 ‘솜방망이’…피해자 울리는 ‘고무줄’ 학폭 처분[학폭위 10년, 지금 우리 학교는]) 결과를 보면, 학폭위에서 ‘과소처분’으로 유야무야된 경우 중 유독 언어 폭력, 사이버 성폭력의 비중이 크다. 이들 경우는 ‘통상적 갈등’으로 치부되거나, ‘입증 증거 부족’, ‘진위 파악이 어려움’으로 종결된다([그림 2]). 지배와 폭력의 비가시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반성을 거부하는 아이와 학부모들이 가족 단위로 똘똘 뭉쳐 사법 권력의 방패막이 뒤에서 오만하게 버티고 있다.

[그림 2] 학교 폭력의 진화(사이버, 성폭력)가 시사하는 미래상?

권력의 작동 방식은 변하고, 사람들의 욕망도 시나브로 변모한다. 과거 정치 권력과 물리적 폭력은 오늘날 재력과 허영의 전시에 영광 없는 욕망의 자리를 내주었다. 폭력이 분노를 야기하고, 욕망의 대상이 이동하면 게임의 법칙은 또다시 변할 것이다. 다만, 현재의 권력과 욕망의 작동 방식에 대한 성찰이 없다면 인간의 존엄이 없는 폐허는 그대로일 테다. 오래된 폭력의 잔재와 으스대는 상징권력이 뒤엉킨 소인배들의 사회에서, 앞으로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인간 존엄성의 회복을 위해, 성숙한 어른들이 어떤 ‘영광스러운 가치’(glorious value)를 함께 욕망할 수 있을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늙은 애’들의 추잡한 욕망이 복제되는 사회를 넘어, 어른다운 사회를 바로 세우기 위한 젊고 참신한 권력의 네트워킹이 필요하다.


글쓴이 김도훈은사회학을 공부한 학자이자 데이터 전문가이다. 데이터를 분석하지만, 숫자와 도표 안에서 시민을 읽는다. 데이터 분석 자체를 사람을 이해하는 실용적인 예술이라는 생각에 회사 이름도 라틴어로 이를 뜻하는 ‘아르스 프락시아’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