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1년을 넘겼지만, 전쟁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격전지인 우크라이나 동부에선 러시아, 우크라이나 어느 쪽도 뚜렷한 군사적 우위를 점하지 못한 채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전쟁 양상과 비슷하게 미국이 주도하는 경제 제재 역시 러시아에 치명상을 입히지 못하고 있다. 특히 푸틴의 ‘돈줄’을 죄려는 석유 수출 제재가 석유 수입국들의 다양한 이해관계 때문에 제대로 먹혀들지 않는 모습이다. 러시아 석유가 암거래되는 ‘회색시장’이 급격하게 커진 것은 단적인 사례다. 송현석 필자는 미국의 대러시아 경제 제재 전략 속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의미를 분석하는 한편, 석유 회색시장이라는 창을 통해 경제 제재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살핀다. [편집자 주]

✔ 강력한 제재는 미국과 동맹국 간의 외교 협력에서 나와✔ 가격상한제로 러시아 원유 제재에 따른 딜레마 풀어가✔ 서구 수송과 금융 인프라 의존 줄여 제재 벗어난 러시아✔ 러시아 경제를 타격한 제재, 지속적인 인내심이 필요해✔ 힘겨루는 온건론과 강경론… 제재 관철은 쉽지 않을 듯

사진: 셔터스톡

미-중 패권 경쟁과 기술·환경 요인의 변화(디지털 전환과 에너지 전환)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코로나 위기가 더해지면서 경제의 안보화가 전 분야에 걸쳐 전면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이것은 기술, 환경, 에너지, 무역 등 전 분야에 걸쳐서 미국과 중국·러시아의 경쟁이 심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러시아(중국) 분리·고립의 축, 제재

경제 분야에서 미국의 전략은 중국·러시아를 자유주의 시장체제와 분리·고립시키는 것이다. 이런 분리(탈세계화, 디커플링)의 목표는 당연히 장기적인 중국·러시아의 국력 약화와 세계 영향력 축소이다. 그리고 분리·고립의 두 축은 중국·러시아를 세계 가치사슬과 공급체계에서 분리시키는 것과 자유주의 체제와 교역을 축소하는 제재이다.

문제는 미국의 제재가 실효성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제재는 미국 혼자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다른 나라들이 중국·러시아 제재에 대해서 동의하고 동참해야 실효성을 가진다. 즉 제재는 경제안보와 외교안보의 의미를 동시에 가진다. 세계가 중국·러시아 제재에 동참한다면 제재는 중국·러시아를 봉쇄하고 압박하는 강력한 수단이 될 것이다. 특히 유럽, 인도와 같이 세계 시장의 ‘큰손’의 참여 여부는 제재의 실효성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일 것이다.

이미 성숙한 세계화를 경험하고 그 속에서 성장과 성과를 내온 인도와 유럽 등 세계가 러시아 제재에 흔쾌히 참여하고 있을까? 에너지 위기와 고물가로 기업과 가계가 고통을 받는 상황에서 저렴한 러시아 석유와 가스에 대한 유혹을 유럽은 물론 상대적으로 에너지가 더 절실한 후진국과 신흥 산업국들이 참을 수 있을까? 인도와 중국은 물론 아랍에미레이트까지 러시아 석유를 사서 되팔며 이윤을 챙기는 현실과 외교적으로 강한 연대를 요구하는 제재가 양립할 수 있을까?

1. 미국의 대러시아 제재 전략 

미국 제재 원칙 : 외교전략과 경제분석

월리 아데예모 미국 재무부 부장관이 주도해서 만든 보고서 <재무부 제재 보고서 2021>(the 2021 Treasury Sanctions Review)에 따르면, 효과적인 제재를 위해서는 외교전략 맥락에서 제재를 설계해야 하며, 제재의 개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경제분석 고려가 필요하다. 피하기 어려운 강력한 제재는 미국과 동맹국 간의 외교 협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도하지 않은 영향은 최소화하면서 제재 목표를 세밀하게 달성하기 위해서는 부수 효과를 포함한 상세한 경제분석을 제재 계획 수립에 포함해야만 한다. 실제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에게 제재 전략 수립을 지시하면서 러시아 경제에 가장 부담을 많이 주면서도 미국과 동맹국 및 파트너 국가들 및 세계 경제에 영향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주문했다.

미국 제재 전략 : 명확한 대상 설정과 세밀한 타격 전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 주도의 러시아 제재 전략을 살펴보자. 미국은 러시아 제재를 설계함에 있어서, 러시아의 전쟁 능력의 축소를 분명한 목표로 설정했다. 그리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미국은 동맹국과 파트너 국가들의 협력과 함께 경제 제재 대상을 분명히 했다. 미국은 제재 대상에 대한 면밀한 경제분석 결과 러시아 금융시스템, 러시아 엘리트, 그리고 러시아 군산복합체를 제재 대상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세 제재 대상에 대한 제재를 크게 두 방향으로 접근했다.

하나는 금융과 외환에 관한 경제 제재이다. 전쟁이 발발한 2022년 2월에 미국과 동맹국 및 파트너 국가들은 러시아 중앙은행 자산 동결, 세계 러시아 자산 추적 및 동결하기 위한 국제 태스크포스 구성, SWIFT 결제망에서 러시아 금융기관 퇴출, 러시아 엘리트의 자산 식별과 압수 등 금융과 외환에서 강력한 제재를 단행함으로써 푸틴 정권과 전쟁에 필요한 자원을 차단했다. 유럽연합은 핵심기술과 산업제품 그리고 러시아군에 공급될 수 있는 건설 부문 장비와 러시아 무기 시스템에 사용되는 전자 부품 수출 금지, 러시아산 아스팔트와 합성고무 수입 금지, 두 개의 미디어 매체(RT Arabic and Sputnik Arabic)의 방송 라이선스 정지, 러시아 국적자에게 가스 저장 시설 제공 금지, 87명의 개인과 34개의 법인 제재 리스트 등을 포함한 10개 제재 수단을 패키지로 묶은 추가 제재안을 2023년 2월 25일 시행했다.

실제로 러시아는 지난 8년간 서방의 제재에 대비하여 6300억 달러의 국부와 중앙은행 자산을 축적했는데, 제재로 상당 부분의 자금을 전쟁 비용으로 사용할 수 없게 만들어 러시아의 예봉을 약화시켰다. 러시아 중앙은행에 따르면 2022년 러시아로부터의 자본 유출은 251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 중앙은행 (사진: 연합뉴스)

다음은 무역과 기술 측면의 경제 제재로 러시아의 군산복합체와 중요한 공급망을 타격 목표로 설정했다. 무역 제재의 가장 중요한 의도는 러시아 군산복합체 공장이 계속 가동하는 데 필요한 수입 물자를 끊음으로써 러시아가 신식 무기가 아닌 구식 무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다. 즉 러시아의 군사 능력을 잠식하는 것이다. 첨단 기술 생산국인 한국, 대만, 일본이 러시아 제재에 참여함으로써 반도체와 같은 중요 자원을 러시아로부터 차단했다. 미국 국가정보국의 추정에 따르면, 이런 군수 공급망 타격 결과, 6000개 이상의 군사장비 교체 능력을 제거했고, 주요 방위산업 시설이 가동을 중단했으며, 탱크·항공기·잠수함의 핵심 부품 부족을 유발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강력한 항전은 러시아의 현대 무기를 소모시켜 구소련 지역의 낡은 무기나 북한과 이란의 저품질 무기로 대체시켰다. 그 결과 러시아의 군사력은 크게 저하했다.

이것은 러시아 제조업에 강력한 타격을 입히는 부수 효과도 얻게 된다. 현대 경제가 데이터 기반 지식경제로 전환하고 있지만, 이것이 가능한 것은 반도체를 포함한 첨단 기술 관련 공급망과 세계 가치사슬에 따른 무역이 있을 때이다. 미국은 전쟁 발발 이후 반도체 및 첨단 기술과 관련해 러시아와의 무역을 단절시켰고, EU는 가스를 포함해서 러시아 제품을 수입 금지했다. 그 결과 제재로 러시아 제조업이 타격을 받고 러시아 경제는 전쟁 전보다 30~50%가량 축소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아데예모 재무부 부장관은 러시아가 수년 또는 수십 년간 경제 침체에 직면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2. 러시아 원유 제재

러시아 원유 제재 원칙과 접근 : 가격상한제

러시아 원유 제재는 상충하는 딜레마를 풀어야만 했다. 하나는 전쟁 발발에 따른 에너지 위기와 가격 인상으로 미국과 서방의 기업과 가계 고통이 극심한 상황에서 러시아가 원유를 무기화하는 것을 막고 시장에 원유를 공급하게 해서 시장 안정에 이바지하게 하는 것이다. 동시에, 원유 수출 수익이 푸틴 대통령 금고로 들어가 전쟁 비용과 폭력적 통치 비용으로 사용되는 것을 막아야 했다.

전통적인 제재 방식인 전면적인 엠바고로는 이런 딜레마를 풀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새로운 접근이 필요했고, 이 딜레마를 풀기 위해 고안한 제재 전술이 2022년 12월 미국과 유럽연합, 오스트레일리아 등이 참여한 배럴당 60달러의 ‘가격상한제’이다. 가격상한제는 러시아 원유를 시장에서 거래하되, 일정 가격이 넘는 원유 수입을 금지해서 에너지 가격 상승을 억지하고 러시아 정부의 과도한 수익을 막겠다는 것이다.

가격상한제와 두 개의 시장

가격상한제는 러시아 원유 시장을 두 개로 만든다. 하나는 가격상한제 이하 가격으로 거래하는 시장으로, 러시아 원유가 계속 시장에서 유통되게 한다. 다른 하나는 가격상한제 이상 가격으로 거래하는 시장으로, 더 비싸지만 신뢰가 떨어지는 배급자를 찾아야 한다.

가격상한제는 제재에 동참하는 구매자들에게 가격 상한을 설정함으로써 러시아 원유 할인을 제도화한다. 그리고 제재에 참여하지 않는 구매자들에게 더 큰 협상력을 부여한다. 그 결과 석유 수입국과 소비자들은 저유가로 혜택을 보는 반면, 러시아의 이익은 줄어든다. 가격상한제의 부가적 효과는 값싼 석유가 절실한 후진국과 중진국이 큰 수혜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가격상한제 효과

현재 러시아는 러시아 원유를 카자흐 원유와 섞어서 수출하고 있는데, 2023년 들어 1월 29까지 4주 동안 하루 평균 370만 배럴에 달하고 있다. 이것은 지난해 6월 이래 가장 많은 양으로, 2021년 내내 4주간 수출량보다 많다.

가격상한제 옹호자들은 러시아가 이렇게 많은 석유를 수출하는 것이 제재가 성공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제재의 목적이 러시아 석유가 시장에 들어오되 그 수익이 푸틴 대통령에게 들어가지 않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격상한제는 구매자들의 협상력을 높여준 결과, 수출 루트가 길어져 인상된 수송비에 대해서 러시아가 부담하게 했다.

가격상한제가 효과를 내고 있다는 또 다른 증거는 세계 원유가격 기준인 브렌트유와 러시아 우랄 원유의 가격 차이이다. 지난해 한때 러시아 원유는 배럴당 100달러를 넘기도 했고, 여름 동안 러시아 원유가격은 전년 대비 배럴당 60%나 높은 가격을 받았다. 이것은 수출 감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더 많은 돈을 벌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가격상한제 효과로 현재 러시아 우랄유는 브렌트유 대비 38% 할인된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 지난 1월 10일 옐런 재무부 장관과 가격상한제 설계자들은 제재안이 목표를 향해 잘 가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 셔터스톡

3. 러시아 제재 무용론

하지만 서방의 러시아 석유 제재가 먹히지 않는다는 제재 무용론도 나오고 있다. 1월 29일과 2월 1일 <이코노미스트>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의 수입 금지와 가격상한제 정책(The December ban-and-cap policy)은 러시아 원유 판매 제한에 성공적이지 못했다. 제재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유럽 기업들은 새로운 가격상한제에 맞춰 일하는 방법을 강구했고, 수송은 유럽 직항이 아니라 중국과 인도를 경유하면서 회복했다.

베일에 가려진 러시아 석유 무역

<이코노미스트>는 러시아 석유 수출가격과 운송비용을 서방 세계가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을 문제점으로 제시하고 있다. 유럽의 정유업과 무역업체는 가격추적기(price-trackers)를 사용하여 공개된 가격 정보 데이터를 공유하지만, 인도는 이것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유럽 정유업과 무역업체들은 러시아 서부 항구와 유럽 석유 터미널 간 운임비용을 지표로 사용하는데, 러시아-아시아 운임은 비공개이다. 이런 모호성으로 서방 당국이 말하는 러시아 석유 가격 할인은 정확하지 않으며 종종 과장되어 있다. 인도와 중국은 러시아 우랄 원유에 생각보다 많은 가격을 쳐줬다는 정보도 있다.

실제 가격을 알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가격이 낮은 척하는 것이 이익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러시아 석유회사들은 세금을 최소화할 수 있고, 인도 정유업체들은 다른 석유 공급자들을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격상한제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중국 경제 회복

세계 원유가격 기준인 브렌트유 가격은 한때 100달러에서 내려 현재 배럴당 83달러이다. 반면 가격상한제(배럴당 60달러) 이전에도 러시아 우랄유는 약한 협상력과 높은 물류비로 인해서 60달러 이하로 거래되었다. 그러나 많은 분석가들은 중국의 경제회복에 따른 수요 증가로 2023년 중반에 이르면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다시 100달러를 회복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런 경우 러시아 우랄유 가격도 상승할 것이고, 고유가 고통을 회피하려는 일부 구매자들은 그림자 무역으로 방향을 돌릴 수 있다.

세계 에너지 체계를 이탈하는 러시아

더 충격적인 것은 러시아가 서구 수송과 금융 인프라 의존을 줄여 제재의 범위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이다. 러시아는 지난해 세계 석유시장의 10% 이상을 차지했었지만, 지난해 12월 제재 이후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불과 2달 만에 지난해 6월 수준을 회복했다. 금수 조치된 석유 대부분은 중국과 인도로 향했지만, 놀랍게도 목적지 불명의 화물량이 급격히 늘었다. 한때 추적이 쉬웠던 러시아 석유는 이제 어둠의 채널을 통해 이동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림자 무역은 호황을 맞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한때 러시아 석유 무역, 수송과 보험을 지배했던 서구 회사들은 지난해 11월 이전까지 러시아 서부 원유의 절반 이상을 담당했었는데, 11월 이후 36%까지 떨어졌다. 1월 1일부터 세계 최대의 재보험사(보험회사의 보험사)들은 더 이상 러시아 항구에서 오는 운송을 보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서구 보험사들은 사업을 철수하거나 늘어난 위험으로 인한 추가 비용을 보험계약자에게 전가해야 한다. 그리고 서구 회사가 물러간 자리에 과거에 석유를 거래하지 않았던 정체불명의 신흥업체들이 대신하고 있다. 이들은 제네바가 아니라 홍콩이나 두바이를 근거지로 두고 있다. 한마디로 기존 세계 에너지 체계가 분리되고 위험에 빠지고 있다.

늘어나는 암거래(black trade)

이란과 베네수엘라와 같은 나라들이 시도했던 암거래가 점점 커진다. 비밀 고객에게 가는 매우 낡은 유조선은 몇 번 이름과 도장을 바꾸고 여러 번 여행한다. 이들은 종종 바쁜 터미널에서 다른 나라 원유와 섞이면서 추적을 어렵게 한다. 최근에 걸프만에 정박한 대형 유조선들이 지브롤터해협에서 작은 러시아 선박으로부터 화물을 인수하는 모습이 관측되었다.

오만과 UAE는 러시아 석유를 수입해서 다른 석유와 섞은 뒤 이 가운데 일부를 유럽으로 판매했다. 2022년 10개월 동안 오만과 UAE가 러시아로부터 수입한 석유량은 그 이전 3년 동안 수입한 양보다 많다. 말레이시아는 중국이 생산할 수 있는 양보다 2배 많은 석유를 중국으로부터 수입했다. 아마 이 석유의 대부분은 이란산이겠지만 러시아 석유도 섞여 있을 것이다.

정유 제재는 회색시장 확대만 부른다

러시아 정유 제품에 대한 제재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까? 러시아 전체 석유 수출액의 1/3을 정유가 담당하고 있는데, 2월 5일부터 유럽은 러시아 정유 제품 수입을 금지했다. 얼핏 중국과 인도는 자국 정유사가 있으므로 러시아 정유 제품 수출지를 찾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러시아는 그림자 무역을 활용하여 정유 제품 대신 원유를 더 많이 수출할 것이다. 그러면 유럽은 디젤 확보를 위해 중국과 인도를 찾아야 한다. 그 결과 러시아 원유 수출은 늘어나고 러시아 석유 수출 흐름이 서구의 통제에서 벗어나면 통제는 무력화될 것이다. 제재가 우크라이나에 더 많은 자금과 무기 지원을 대신할 수 없다는 교훈처럼 러시아 석유 기피로 전쟁에 승리할 수 없다. 2월 러시아 정유 제품에 대한 제재는 러시아 석유의 회색시장을 확대할 것이다.

12월에 유럽은 하루에 100만 배럴의 디젤과 다른 정유를 수입했는데, 이것은 러시아 수출의 55%에 상당한다. 지금 러시아는 새로운 구매자를 찾아야 한다. 중국과 인도는 수요가 적고 세계 시장은 해체되었다. 따라서 러시아의 최고의 선택은 미국의 유럽 수출 확대로 미국으로부터 수입량이 줄어든 브라질과 멕시코이다. 그러나 브라질과 멕시코로 가기에는 너무 멀고 수요가 적다. 결국 러시아는 정유 대신 회색시장에서 원유를 파는 쪽을 선택할 것이고, 회색시장 중개인들은 크렘린의 영향 아래에 있는 역외 회사 계좌로 송금할 것이다.

회색무역은 성장 가능성이 있다. 중국과 인도의 원유 탱크는 1/3 이상 비어 있어서 더 많은 러시아 원유를 살 여유가 있다. 1월 3일 중국은 정유 수출 할당량을 전년 대비 거의 50%가량 확대했는데, 아마 러시아 원유를 수입해서 정유 제품을 생산해서 해외에 팔 계획으로 보인다.

그 결과 석유 무역은 지정학에 따라 분화될 것이다. 그리고 노후한 선박 이용이 늘어날 것이고 사고를 대비할 보험사는 손을 뗄 것이다. 서방이 러시아 석유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많다.

러시아 유조선 (사진: 연합뉴스)

4. 제재 무용론에 대한 반론

러시아 제재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분석과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 또한 만만치 않다.

제재 무용론은 잘못된 데이터에 기초했다

러시아 제재에도 불구하고 루블화는 강하고, 러시아 GDP도 나름 괜찮으며, 실업률도 낮다며 제재의 효과가 미미하다는 주장이 적잖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의 에너지부 차관을 역임했던 블라디미르 밀로프는 미국과 서방의 러시아 제재가 효과가 없다는 주장은 틀린 데이터에 기초하고 있으며, 이런 제재 무용론은 서구의 정책 결정자들로 하여금 제재를 중단하게 자극함으로써 푸틴의 생명만 연장시킬 뿐이라고 강력히 비판한다.

실례로 러시아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러시아 실업자는 겨우 270만 명, 실업률은 3.7%로 양호하다. 그러나 블라디미르 밀로프에 따르면, 실질실업률은 10% 수준으로, 실업률이 최악(10~13%)이었던 1990년대에 육박한다.

또 다른 통계 오독은 루블화 환율이다. ‘강한 루블화’는 러시아 정부가 개인과 기업의 외환거래를 어렵게 했기 때문이다. 강한 루블화는 가혹한 통화 통제, 수입 급락과 연결되어 제강 분야와 같은 산업 부문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 2022년 철강 완제품 생산량은 7% 이상 감소했다.

또 하나의 통계 오독은 GDP이다. 러시아 재무부는 GDP가 2.7%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하나, 여기에는 군사 관련 생산이 포함되어 있다. 새로 생산된 탱크는 즉시 전선으로 보내졌고, 우크라이나군의 재블린 미사일에 맞았지만 여전히 러시아 GDP에 명목상 기여로 계산된다. 2022년 10월 오일과 가스 수출은 전년 대비 20% 줄었고, 서구 기술과 부품에 의존하는 러시아 제조업은 제재로 가장 큰 타격을 받았으며, 러시아 350만 명 일자리를 책임지는 자동차 산업은 2022년에 2/3로 급감했다.

사진: 셔터스톡

필요한 것은 인내심

제재는 러시아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러시아는 서방의 제재를 피하기 위해 튀르키예를 통해 반도체와 다른 상품을 우회시키고 있으며, 무역과 투자 흐름을 아시아로 돌리고 있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러시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것은 결국 독점기업에게 의존하게 되는 것인데, 이것은 비싸고 나쁜 제품으로 이어지지 혁신과 좋은 제품 제조로 이어지지 않는다. 중국과 인도 같은 아시아 국가들은 러시아의 오일, 가스, 석탄, 원목과 같은 값싼 원자재를 더 크게 할인해서 구매하는 데만 관심이 있을 뿐 러시아의 제조업 발전에는 관심이 없다.

제재에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제재가 작동해서 러시아의 공격적인 행동을 억지할 시간이 필요하다. 즉각적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비생산적이다. 서구 정책 입안자들은 편협한 조작된 지표들 대신 제재의 영향에 대한 상세한 분석을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5. 제재의 향방

미국의 제재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주장과 효과가 없다는 주장이 미국과 서방 안에서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제재 성공론과 강경론 vs 제재 무용론과 온건론

전자의 관점은 제재와 함께 우크라이나 전쟁에 더 많은 지원을 해서 러시아를 봉쇄하고 러시아 국력을 소모시켜야 한다는 강경론과 맥락을 같이 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후자의 관점은 러시아와 협상을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고 에너지 공급망을 안정화시키는 온건론과 맥락을 같이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세계 형세를 보자면, 전자는 미국 정부와 석유자본의 목소리를 강하게 드러내고 후자는 유럽 기업과 자본, 주민의 목소리를 강하게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사진: 셔터스톡

제재 성공 여부는 미국 패권 질서에 큰 영향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예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상당 기간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될 것이며, 올해 봄에 러시아의 강력한 공세가 예상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을 중심으로 제재의 목소리가 여전히 강력한 힘을 가질 것이라는 점이다. 러시아는 계속 석유를 팔 것이며, 중국과 인도, 튀르키예 등은 계속 러시아 석유를 살 것이다. 그리고 이 석유 중 상당수는 브랜드를 바꾸거나 정유 제품으로 변신해서 비싼 가격으로 유럽으로 팔려 갈 것이다. 따라서 이것에 대해 부담을 져야 하는 유럽이 어디까지 희생을 감내할 수 있는지도 향후 향방에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

미국은 중국과 인도 등 세계의 큰손이 러시아 석유를 기피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이것이 쉽지 않다. 미국 제재를 회피하는 방법이 개발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이 거대한 시장으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제재가 사실상 쉽지 않다. 미국이 제재에 대한 접근을 보다 전략적이고 세심하게 하려는 것은 이런 어려운 현실에 직면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 인도, 러시아 등 세계 무대의 주요 행위자들이 자국 이기주의를 강력한 모티브로 삼는 전환기임을 고려하면 미국의 제재가 쉽게 관철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참고 자료>


글쓴이 송현석은

한양대에서 철학과 정치외교학을 공부하고, 교원대에서 교육정책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교육감 정책비서와 국회 보좌관, 교육부 장관 보좌관으로 근무했다. 지금은 민생경제연구소 공동소장과 (사)돌바내 이사이다. 2021년에 포스트 86세대 연구자들과 함께 공공정책에 초점을 맞춘 정책연구네트워크 넥스트브릿지를 만들고 운영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