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주애, 김정은의 후계자로 보기에는 아직 일러✔ 미사일 발사와 강경한 담화는 북한의 구애 편지✔ 금수산태양궁전 참배를 두고 계속된 물밑 협상✔ DJ의 '다시 합시다'가 만든 두 정상의 역사적 장면✔ 극적 계기 없다면 북한과의 긴장 관계 지속될 것

<박지원의 식탁> 14회 방송 바로 보기

김유정: 박지원의 식탁 가족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저희 완전체가 된 것 같아요.

박지원: 이렇게 다 만나니까 더 반갑네요.

김유정: 오늘 시즌 1이 끝난다니까, 어떠세요?

이관후: 시작할 때는 작년에 겨울 전이었는데, 이제 좀 있으면 봄이 오려고 하거든요. 겨울을 저희가 같이 지낸 것 같습니다.

박지원: 그러게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은 봄인데 아직 안 왔네요.

김유정: 시즌 1 마지막 회는 ‘대통령과 북한’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눠볼까 합니다. 지난 18일 주말이었어요. 그때 북한이 ICBM 화성 15형을 쐈는데요. 국제사회의 비판만 커지고 추가 대북 제재가 지금 심해지고 있는데, 사실 크게 실익도 없으면서 북한이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도발하는지 궁금하고요.

또 지금 이슈가 되고 있는 게 군 관련 행사 할 때마다 딸 김주애를 데리고 등장하고 있잖아요. 최근에는 군 관계 행사 아닌 체육 경기 관람하는 데도 데리고 나타났더라고요. 공식 행사에만 여섯 번 등장을 했다는데, 어떻게 보고 계세요? 후계 구도다, 아니다 말들도 많고요.

김주애는 후계자가 아니다

박지원: 우선 김주애가 후계 구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김정은이 지금 서른일곱이에요. 물론 건강에 대해서는 젊은 사람도 늙은 사람도 자신할 수는 없죠. 그렇지만 서른일곱의 지도자가 벌써 후계 구도를 생각한다는 것도 빠른 일입니다.

두 번째로는 러시아,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에서 아직 여성 지도자가 나온 곳은 없어요. 특히 북한은 남존여비가 강해서 나올까? 이런 생각을 하고요. 김정은의 자식이 아들과 딸 주애, 세 번째 아이는 남성으로 알려졌는데요. 제가 김주애가 나타났을 때 (후계자는) 아니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김정은, 김여정은 김정은의 아들, 김주애의 나이에 스위스에서 유학을 했어요. 거기(행사)에 나타나면 얼굴이 공개되니, 유학을 보낼 수 없죠.

그리고 진짜 붕어빵 김주애가 나타났는데, 공개를 한 것을 보면 최소한 유학은 보내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러나 아들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는데, 그 나이에 김정은과 김여정이 스위스 유학을 갔기 때문에 유학을 보내지 않았는가? 조심스럽게 예측을 해보고요. 김주애는 김정은과 리설주 부부가 엄청나게 예뻐해요. 김정은도 일부에서 얘기한 대로 딸 바보다.

지난 1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딸 김주애가 체육경기를 관람하는 모습. 김주애가 공식 석상에 등장한 것은 이번이 여섯 번째다. (사진: 연합뉴스)

김주애는 핵 개발의 상징적 명분

김유정: 핵 문제는 어떻게 보세요?

박지원: ‘싱가포르 회담’에서 북한 핵 문제가 굉장히 해결됐어요. 그렇게만 갔으면 성공하는 거였어요. 즉 ‘미국이 경제 제재를 이만큼 해제하면 북한의 비핵화는 이만큼 진전시키겠다’는 ‘행동 대 행동’으로 합의가 돼서 굉장히 좋은 방향으로 갔어요. 그 후에 문재인 대통령도 평양을 방문해서 소위 9·19 평양 공동선언, 9·19 군사합의가 이뤄졌잖아요. 그때 제가 특별수행원으로 평양에 함께 갔는데, 5·1 능라체육관에 15만 북한의 인민들이 모인 곳에서 김정은이 처음으로 비핵화를 한다(고 했어요). 그리고 역사적인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도 있었어요. 굉장히 좋은 방향으로 갔고, 하노이 회담에 완전 합의를 하기로 했었거든요. 모든 것이 싱가포르에서 합의됐으니까 거기서 종점을 찍는다, 이렇게.

김정은이 평양역에서 기차로 하노이까지 가잖아요. 인민들에게 연설을 합니다. ‘우리가 고난의 행군을 지나면서 우리의 안보를 위해서 핵을 개발했는데 이제 핵과 함께 경제 발전을 이루어야 된다’는, 어느 정도 핵을 포기하면서 경제 발전을 이루어야 한다는 병행 발전론을 얘기했어요.

그때 한 얘기가 ‘우리 아이들 머리 위에 언제까지 핵을 가지고 있어야겠느냐’ 이런 연설을 하고 하노이까지 갔어요. 그런데 거기서 트럼프랑 만났는데, 볼턴한테 한 방 맞고 깨져버렸잖아요. 북한의 지도자는 무오류입니다. 그러한 약속을 했는데, 다시 모라토리엄이 해제되고 긴장이 고조되고 핵실험을 앞두고 ICBM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게 되니까, 제가 볼 때는 김주애를 데리고 나와서 ‘아이들을 위해서 우리가 다시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 아닌가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관후: 핵을 멈추려고 했던 것도 계속 개발하는 것도, 그 명분이 ‘다음 세대’를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말씀이시죠?

박지원: 그렇죠. 김정은이 싱가포르 회담을 믿고 하노이 회담을 가면서, 우리가 자식들의 머리 위에 핵을 두고 살 수 없기 때문에 핵을 폐기해가면서 경제 발전을 함께한다고 했는데 그게 하노이에서 결렬되니까, 자식들을 위해서도 우리는 핵실험을 계속해야 하고 ICBM 또는 탄도미사일을 계속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저는 봐요.

김유정: 그러니까 한마디로 하노이 노딜 이후에 완전히 메시지가 바뀌었다.

박지원: 바뀌었죠. 그러니까 그 인민들에게 무오류의 지도자이기 때문에 그 오류를 시정해 간다. 저는 그렇게 보고, 또 한 가지는 북한이 정상 국가를 지향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 가족의 행복한 모습을 인민들과 세계만방에 보여줌으로써 우리도 정상 국가라고 하는데, 나는 좀 달리 봐요. 어떤 나라에서 아무리 자기 딸이 예쁘더라도 공식적인 자리에 가서 옆에 앉혀놓고 국가 행사를 하냐고요. 이건 아직 비정상이다.

김유정: 더군다나 미사일 발사하는데. 열병식도 참여하고. 그 나라에서 10살짜리 딸이 아버지 얼굴 만지고 이런 모습이 어떻게 해석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박지원: 딸 바보라니까요. 제가 손주 바보인 듯이.

그런데 김정은이 김정일로부터 후계자로 교육을 받을 때, 제가 국회 정보위 위원이었는데 굉장히 항의를 했어요. 김정은의 사진 한 장을 못 구하느냐고요. 김정은의 사진은 그때 스위스 학교 다닐 때 클래스메이트들하고 찍은 사진 한 장밖에 없었거든요. 그런데 김정은이 후계자로 본격적으로 활동을 할 때가 벌써 이십대 중반이잖아요. 그동안 사진을 한 장밖에 못 구한 거야. 후계자라면 그 정도로 보안이 철저해요. 그런데 김주애는 아직 열 살. 그래서 저는 후계자까지는 아니라고 봅니다.

김주애의 등장으로 김여정이 밀린 것은 아니다

김유정: 김주애가 김여정을 밀어냈다는 이야기는 어떻게 보세요?

박지원: 지금 보면 ‘김주애가 메인테이블에 앉아 있고 김여정은 저 끝에 있다’ 이런 사진을 내면서 김여정이 밀린 것 아니냐? 그건 아니에요. 북한에서도 김정은, 김여정이 젊은 나이에 스물여섯 살부터 해왔으니까 ‘너무 설치는 것 아니냐’ 하는 여론을 의식하더라고요.

전에 북에 갔을 때, 초대소에서 점심 식사를 하는데 9월이니까 쌀쌀하죠. 들어가는데 입구에 김여정 부부장하고 비서인지 여자 한 분하고 서 있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들어와서 식사할 걸로 알았죠. 그 오찬이 한두 시간 이상 길어졌어요. 내가 화장실을 갔어요. 보니까 또 복도에 거기 서 있어. 그래서 돌아오면서 ‘김 부부장 들어가십시다. 추운데 왜 거기 서 있습니까?’ 나는 거기서 뭘 하는지 알았어요. 그랬더니 김여정 말이 자기는 오늘 이 오찬 행사에 들어가지 않는대요. 자기는 여기 서 있어야 된다고. 그렇게 충성을 하더라고요. 또 하노이 갈 때, 김정은이 기차에서 내려서 담배 피울 때 (김여정이) 재떨이 가지고 받쳤다는 거. 재떨이에서 담배꽁초를 버리면 거기에 타액이 묻어 있기 때문에.

이관후: 정보원들이 담배꽁초를 회수하려고 하죠.

박지원: 그렇기 때문에 서방 세계에서 특히 미국에서 김정은의 건강을 알아보려면 그런 것을 하니까 없애는 것도 있지만. 점심 식사에 안 들어오고 밖에서 보초처럼 두 시간 이상을 추운 곳에 서 있는 것을 보고 하면, 충성심도 대단해. 그래서 김주애가 여기 앉아 있고 저 옆에 김여정이 앉았다고 해서 김여정이 밀렸다. 이런 것은 아니라고 봐요.

이관후: 한편으로 보면 김여정이 상당히 영리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박지원: 저하고도 좀 얘기를 해보면 아주 경청을 잘하고, 내가 얘기를 하면 제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딱 눈을 맞춰주면서 미소를 짓고, 의견을 말해주라고 하면 간단하면서도 아주 임팩트 있게 잘하더라고요. 그러니까 김여정의 위치는 불변이에요.

폼페이오, 앤드류 킴. 코리아미션센터장 하고 북한에서 김정은, 김영철, 김여정 회담을 했는데 제가 앤드류 킴 코리아미션센터장, CIA 거기서 들은 얘기인데 김정은이 영변 핵 시설 문제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강선’이라는 말이 나왔대요. 지역명이죠. ‘강선 지역’. 지금은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만, 당시에는 생소해서 앤드류 킴이 그걸 기억을 못 했다는 거야. 그런데 굉장히 중요하지 않아요? 어디에 새로운 핵시설이 있다고 하는 거니까.

그래서 김영철한테 ‘지금 위원장이 뭐라고 하셨냐. 좀 물어봐 주라’ 했더니 김영철이 ‘우리는 위대한 장군님의 말씀에 대해서 다시 물어서 확인을 못 한다’ 이렇게 거절하더라고요. 그랬더니 조금 있다가 김여정이 김정은 방에서 나오더래요. 그래서 가서 똑같이 물었더니, 금방 들어가서 확인해서 ‘강선이다’ 말을 해주더라고.

그래서 나는 ‘김주애가 후계자다’ 또는 ‘리설주와 김여정 사이에 불화로 김정은이 김주애를 내세우고 있다’, ‘김주애가 나타나고 김여정은 저 뒤로 물러가 있다’하는 것은 옳은 정보도 아니고 분석도 아니다.

, 북한이 보내는 러브레터

김유정: 올 들어서만 벌써 ICBM 발사하고 미사일 수시로 쏴대고 있는데요. 작년 12월에는 북한 무인기가 몇 시간 동안 우리 상공을 날아다녀도 우리는 모르고 있었고요. 심지어는 ‘용산이 뚫렸다’고 해서, 그 문제 가지고도 문제 제기한 4성 장군 출신의 김병주 의원에게 색깔론까지 제기했는데, 윤석열 정부의 안보에 대해서 우리가 과연 신뢰할 수 있는 것인지 대한 여러 국민의 궁금증이 발생하고 있는 요즘이거든요.

박지원: 색깔론 제기는 생각할 가치가 없어요. 지금 여당이 전당대회 하면서 안철수 후보한테까지 색깔론을 제가 하는 걸 보면, 이건 코미디를 지나서 참 난센스라고 생각하는데. 지금 북한의 핵 문제는 남북 간, 북중 간의 문제가 아니라 북미 간의 문제였어요. 그렇기 때문에 북한의 타깃은 항상 미 대륙 워싱턴, 뉴욕을 겨냥하는 ICBM을 만들어서 핵을 소형화, 경량화해서 ICBM 탄두에 장착하는 것이 목표고, 또 그걸 위해서 많은 실험을 했어요.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핵을 사용하는 목표가 미국이었지, 한국이나 일본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우리 외교는 한미동맹에서 출발을 하는데, 지금 일본과 한국이 너무 미국의 푸들 노릇을 하기 때문에, 이제는 핵도 미사일도 미국보다 대한민국과 일본이 타깃이 됐더라고요. 그래서 일본과 함께 한국이 북한의 핵 공격과 미사일 공격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이 되도록 정책을 가는 것이 굉장히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관후: 제가 보기에는 북한이 이번에도 미사일을 쏜 시점이 ‘뮌헨안보회의’, 외교안보계에서 다보스 포럼이라고 알려질 정도로 가장 큰 회담을 할 때 딱 거기에 맞춰서 쐈거든요. 원래 회의의 최고 의제가 우크라이나 전쟁이었는데, 북한이 자기들이 잊힐까 봐 ‘우리도 있어, 우리도 봐줘’라는 마음으로 맞춰서 쏜 것 같아요.

박지원: 북한의 그러한 미사일 발사나 김여정의 담화는 우리 서방 세계에서, 특히 미국과 한국의 이벤트가 있을 때 하는 거예요. 김여정의 강경한 담화와 미사일 발사는 바이든 대통령한테 보내는 러브레터, 곧 구애 편지예요.

미국에서는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 또는 나토, 인도·태평양에 관심이 있지, 북한에 대해서는 오바마 정부처럼 ‘전략적 인내’를 하고 있어요. ‘(국제사회의 대화의 틀에) 들어와라, 그러면 대화한다.’ 그렇지만 먼저는 안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는 역할이 한국 정부에요. 김대중 대통령도, 노무현 대통령도,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그러한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어찌 됐든 이명박, 박근혜 10년간 정지됐던 남북정상회담도 세 번 했고 21세기 최대의 사건인 ‘북미 정상회담’도 두 번을 가져왔죠.

그럼 대화를 할 때, 그때는 그런 평화가 있었냐? ICBM 안 만들었냐? 만들었죠. 그렇지만 그때는 거의 5년간 북한이 핵 모라토리엄을 해서, ICBM 핵실험을 안 했잖아요. 그런데 ICBM, 탄도미사일을 어제 또 두 발 발사했잖아요. 김정은이 재고 처리를 하는지 아무튼 무지하게 빵빵 쏴대는데, 이건 미국을 움직이려고 하는 거고, 7차 핵실험의 신호탄이다. 어떤 (정치적) 이벤트가 있다고 하면 (도발을) 할 것이다, 이렇게 봐요.

이관후: 북한의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는 군사적인 계기가 아니라, 정치적 계기에 의해서 일어난다.

강 대 강의 종착역은 전쟁

박지원: 평화를 요구하는 거죠. 지금 윤석열 대통령 지지도가 올라가요. 왜 올라가냐? ‘은행들의 돈 잔치를 국민들한테 돌려라. 공공요금 가스 요금, 전기요금, 버스 요금 올리지 마라’. 이렇게 민생으로. 전기 요금, 문재인 대통령이 안 올렸다고 그렇게 비난을 했는데, 지금은 비난을 안 하잖아요.

김유정: 그러니까요. 전 정권 탓이다. 이러더니 또 본인은 또 미루잖아요.

박지원: 그러나 국민은 굉장히 좋죠. 안 올라가니까. 여기다 (윤석열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서 강하게 얘기하잖아요. 강하게 얘기해서 해결될 리가 없는데도, 일단 강하게 얘기하는 거예요. ‘우리도 한번 핵을 갖자’, 여기에다가 더해 ’노조 개혁하자.’ 이거죠. 그러기 때문에 지지도는 올라가는데, 저는 결국 김정은의 강 대 강과 윤석열 대통령의 강 대 강 미국의 강 대 강의 종착역은 전쟁이다, 이렇게 봐요.

이관후: 전직 대통령 비서실장과 국정원장을 지내신 분이 결론은 전쟁이라고 얘기하니까 솔직히 섬뜩합니다.

박지원: 이렇게 가면 그래요. 그런데 제가 볼 때는 한반도의 전쟁은 쉽게 안 일어나요. 북한이, 또 미국이 전쟁을 무서워하는 거야. 그러니까 ICBM 쏘더라도 우리나라 동해상에, 영해상에 떨어지게 하지, 일본도 일본 열도를 관통하게 하고. 미국은 안 건드려요. 미국을 굉장히 무서워하거든.

그렇기 때문에 북한은 미국이 무서워서 전쟁을 못 일으키고. 우리나라는 윤석열 대통령이 강경파들이 뭐라고 얘기하더라도 전작권을 미국이 가지고 있는 거 아니에요. 실질적으로 모든 조정은 미국이 하기 때문에 전쟁을 못 한다. 그렇지만 국지전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그러다가 전쟁으로 붙어버릴 가능성은 있다.

그런데 제가 볼 때는 미국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발전한 나라라 전쟁을 해도 승리했을 때 거기에서 원가를 뽑아 먹을 수 있는 가치가 있는 곳에서 해요. 중동, 우크라이나 이런 데는 자원과 곡물, 석유 등이 엄청나게 매장돼 있잖아요. 북한은 (미국이) 전쟁 이겨 봐야 돈이 나올 게 없으니, 전쟁은 하지 않는다고 생각을 해요.

삭도가 뭡니까?”

김유정: 북한에 여러 번 다녀오셨잖아요. 6·15 정상회담 전에는 대북 밀사로도 다녀오셔서 정상회담 성사도 시키셨고, 김정일 위원장도 만나셨죠. 김정은 위원장과는 백두산도 함께 다녀오셨죠. 또 김여정은 네 번이나 만나셨다고요? 다양한 에피소드가 많으실 것 같은데 말씀 좀 해주세요.

박지원: 왜 서울은 뉴욕처럼 그렇게 복잡하게 디자인해서, 사람이 못 살게 만들어 놨냐? 평양은 워싱턴 D.C.처럼 아름답게 디자인해서 관광지로 활용하겠다. 그러면서 평양, 원산, 금강산, 개성, 묘향산, 백두산 여기를 관광지로 개발하면 로마처럼 연간 2천만 이상의 관광객이 오면 북한은 관광만 가지고도 살 수 있다. 이렇게 자랑을 하더라고요.

김유정: 백두산은 어떠셨어요? 2000년인가요?

박지원: 김정일 위원장이 저한테 백두산 천지를 한번 구경하라고 해서 갔어요. 김정일 위원장이 천지에 ‘삭도’를 타고 내려가라고. 그런데 ‘삭도’가 무슨 말인지 몰랐어요. 누가 와서 ‘케이블카’라고 (하더라고요.) 김정일 위원장이 (박지원) 선생은 주체성이 없어서 외국말만 쓴다고 뭐라 하더라고. 그래서 거기를 삭도를 타고 내려가는데요, 덜컥덜컥 진짜 무섭더라고요. 사고 날 것 같아. 백두산 천지에서 내가 죽나, 가는 동안은 이런 생각을 했는데, 꼭대기에 가니까 고무 보트를 내줘가지고 천지를 한 번 돌았어요.

이관후: 천지에서 배를 타셨어요?

박지원: 아마 (천지에서) 고무보트 타본 사람은 대한민국에 저밖에 없을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불신이 많아서 ‘여기 싣고 가다가 밀어버리면 나는 간다 (죽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중국 쪽에 있는 백두산 밑으로 가니까 진짜 천지가 무섭더라고요. 시커멓게 그늘지니까.

그리고 천지에 산천어가 살아요. 우리도 산천어 축제하잖아요. 깨끗한 물에서 사는데 ‘위대한 장군님이 산천어를 여기서 키워라’ 했다고 해서 엄청나게 많아. 이렇게 그냥 건져요.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그걸 떠가지고 회도 해주고, 죽도 먹었는데. 아무튼 그다음에 올라가면서는 또 삭도를 타라고 해서, 나는 등산 겸해서 걸어 올라갔어요. 사실은 무서워서 그런 거야. 그렇게 한 20분 걸어 올라가면 돼요.

2019년에는 문재인 대통령, 김정숙 여사랑 모시고 우리가 천지에 갔잖아요. 10년 만에 간 거죠. 그리고 김정은 내외와 같이 갔는데 삼지연에서부터 도로가 다 포장돼 있더라고요. 이전하고 달라졌어요. 그리고 백두산 천지까지 올라가는데 군데군데 빌딩이 세워졌어요. 아마 휴게소가 아닌가 들어가서 보니까는, 안에는 아무것도 없더라고.

그리고 백두산 천지에 가니까 옛날 삭도가 아니라 케이블카가 새 걸로 놓아졌더라고요. 그래서 그걸 타고 내려갔는데 안전해요. 그때는 대통령이 가셔서 그런지 모르지만 국가 원수들한테는 검식관이 들어가고 요리도 상당히 어렵게 하잖아요. 그래서인지 산천어는 안 주더라고요. 그런 거 보면 나한테 대접을 더 잘했어.

2000615

김유정: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은 말할 수 없는 온 국민적 기쁨과 추억으로 지금 남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당시에 제가 둘째를 5월에 출산을 하고 집에서 산후조리 하면서 TV 보면서 눈물 흘렸던 기억이 나는데, 이 박사님은 2000년 6월 15일쯤에 뭐 하셨어요?

이관후: 그때 저는 아직 대학원생이었는데요. 그때 가장 깜짝 놀랐던 게 평양 순안공항에 김대중 대통령이 내렸을 때, 김정일 위원장이 공항에 직접 마중을 나왔지 않습니까? 그게 굉장히 저는 충격이었어요. 보통 그런 일이 없지 않습니까. 이렇게 외국 정상이 왔을 때 공항에 나오는 건 보통 외교부 장관이라든지 이런 사람들이 나오는데, 김정일 위원장이 거기에 직접 나와서 나중에 또 차를 같이 타고. 어떻게 보면 깜짝 놀랄 만한 환대죠. 파격이었죠. 그래서 저는 그 장면을 딱 보고 ‘이거는 잘 되겠구나’ 그런 걸 좀 느꼈었어요.

김유정: 그러니까 정주영 회장의 소 떼 방북 또 이산가족 상봉, 우리가 그 감격과 눈물을 잊을 수가 없는데 (박지원 실장님은) 그걸 직접 또 성사한 주인공이시잖아요.

박지원: 결정적 역할은 역시 현대 정주영 명예회장이 했어요. 또 그전에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게, 대우 김우중 회장도 노태우 정권 때 사실상 대북 특사 역할을 한 거야. 김우중 회장은 그 후 저랑 같이 감옥 생활도 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눠봤는데, 두 분의 공로가 정말 컸어요. 그리고 그러한 것에 계속 관심을 두던 김대중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그런 통로로 (북한과의 교류 등이 있었지) 않았는가.

제가 특사를 하면서 평양에 가서 세 번 울었어요. ‘6·15 남북정상회담’ 전에 제가 싱가포르, 상하이, 베이징 등에서 특사를 할 때 ‘4·8 합의서’를 만들었어요. 6·15 정상회담을 하기 위한 특사 간에 합의가 된 거예요. 그때 일이에요.

북한에서 국정원 빼고 김대중 대통령과 가장 측근이고 정치, 운명 공동체의 사람을 보내라 해서 제가 갔던 건데. 김대중 대통령께서 평양에 가면 금수산태양궁전 소위 ‘김일성 시신에 참배할 것이냐’가 상당히 논쟁이 됐습니다.

북한 금수산태양궁전.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다. (사진: 셔터스톡)

김일성 시신에 참배할 것이냐

박지원: 제 기억에 제일 인상적인 게, 지금은 작고하신 민관식 국회 부의장께서 문화관광부 장관 방으로 오셨더라고요. ‘선생님 웬일이십니까?’ 했더니 그분은 좀 직설적인데, ‘박 장관, 김대중 대통령 (평양) 가서 김일성 시신에 참배하냐 안 하냐’ 물으셔서 ‘절대 안 합니다.’ 그랬더니 대한민국 만세를 세 번 부르고 가시더라고요. 절대 하지 말라고.

그런데 어떻게 됐든 그 문제가 매듭이 안 풀렸어요. 안 풀리고 이제 북한에서 요구를 하는 거야. 그래서 평양에 도착했는데, 북한 측에서 우리나라의 도착 성명을 발표하지 말라는 거야. 그래서 나는 김보현, 서훈 두 분을 불러서 ‘우리나라 대통령이 평양에 도착해서 도착 성명을 발표하지 말라는 것이 뭐냐?’ 했더니, 서훈, 김보현 이분들은 대북 문제에 대해서 국보급이에요. 그분들한테 물으니까 ‘도착 성명을 발표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김정일 위원장이 공항에 나온다는 신호입니다’ 이렇게 분석을 하더라고요.

김유정: 정확한 분석이네요.

박지원: 평양에 도착했는데, 우리 공식 수행원들은 뒷문으로 내려서 도열을 하고 무장대도 나와 있고, 북한 인민들이 많이 나와 있어요. 그런데 이따가 보니까는 김정일 얼굴이 안 보이고 이만한 배가 먼저 보이더라고요. 보니까 딱 김정일이 나오는 거야.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과 거기서 만난 거예요.

그런데 흔히 처음에 포옹했다는데, 포옹 안 했어요. 그 사진은, 헤어질 때 우리나라로 올 때 포옹을 했죠. 4·8 합의서에 보면 ‘두 정상은 역사적 상봉을 하고 회담을 한다’, 이렇게 돼 있는데 저게 이제 1차가 된 거예요. 상봉이 된 건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건 됐다’ 해서 진짜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런데 이제 또 다른 걱정이 시작돼. 그러면 상봉만 김정일과 하고 회담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의장하고 할 것인가? 또 그게 걱정이 됐어요.

이관후: 회담에서는 실세가 빠져버릴까 봐?

박지원: 네. 그래서 차를 타고 가는데, 김정일 위원장이 ‘여사님은 앞에 타시고 제가 대통령님 옆에 타겠습니다.’ 하면서 본인이 밀어버리고 타더라고요. 이것도 국제 의전에 있을 수 없는 일 아니에요? 백화원 초대소에 갔는데, 김정일 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한테 ‘대통령님 참 겁도 없이 여기 오셨습니까?’ 그러면서 ‘우리 공화국 간부들은 제가 백화원 초대소로 와서 내일 아침 회담을 하겠다고 하니까 다 반대합니다. 그러나 내가 여기 와서 회담을 하겠습니다.’

중국 주석하고 백화원 초대소에서에서 회담을 했대요. 그러니까 나는 그때 눈물이 ‘야, 회담까지는 됐다.’ 그다음에 내용은 잘 되고 못 되고, 난 그것까지는 생각이 없어. 두 가지가 딱 됐잖아요.

마지막에 계속 참배를 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길이 없잖아요. 그런데 밤에 북한 측의 송호경 대남 특사가 차를 보내서, 당사에서 둘이 얘기를 하자(고 했어요). 초대소에 내려가니까 김대중 대통령님, 이희호 여사님, 임동원 원장 셋이 앉아 계시면서, 임동원 원장은 임동욱, 곧 임춘길이라고 알려진 북측 부부장이 만나자고 하니까 간대요.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특사들끼리 시신 참배 문제를 해결해라’ 하셨어요.

결국 가서 계속 얘기를 한 거야 ‘참배해라’, ‘우리는 못 한다’. 그러면 ‘내가 대통령의 특사니까, 대통령 허락 안 받고 참배하고, 내가 대통령한테 사표 내고 내일 평양으로 가서 중국 통해서 한국 가서 (국보법 위반으로) 구속당하겠다’ 했어요. 생각해보니까 내가 그때 구속 얘기해가지고 대북송금 특검으로 구속된 거네.

어떻게 됐든. (북한 측은) 그래도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 한광옥 비서실장이 같이 북에 갔었거든요. ‘대통령 비서실장은 대통령을 대신하는 사람이니까 대통령 비서실장 한광옥하고 하고, 특사 박지원 장관이 둘이 하겠다.’ (북한이) 그것도 안 된다고 거의 1시쯤까지 싸웠어요. 새벽까지. 그랬더니 갑자기 알았다고 그러면서, 장관 선생의 그 열정에 대해서 그 마음을 고위층에 보고하겠습니다, 하는데 부드러워. 그래서 이게 참배 안 해도 되겠구나 하고 이제 헤어지고 돌아가니까 1시 반, 2시 가까이 됐더라고.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 내외분이 안 주무시고 기다리고 계시더라고요. 제가 큰소리를 본래 잘 치잖아요. ‘대통령님 사모님 내일 참배 안 해도 됩니다’. 그러고는 올라가서 내 방에 가니까, 우리가 가지고 간 진로 소주, 북한의 맥주 이걸 냉장고에다 채워놨더라고요. 그런데 마음이 지금 불안하잖아요. 불안하니까 내가 소폭을 혼자 몇 잔 먹고 임동원 원장 방에 가니까 거기서 문정인 교수랑 얘기하고 있대요. 내가 그 방으로 갔어요. 혼술에 이렇게 취해서. 취해서 보니 일을 이만큼 만든 임동원 원장이 자랑스럽잖아요. 이런 것을 전부 만들어 냈으니까. 나는 심부름만 한 거고.

그래서 임동원 원장한테 ‘진짜 존경합니다. 이런 역사적인 회담을 성사한 것은 원장님입니다’ 하고, 우리 시골 사람들은 또 감사 표시를 큰절로 잘해. 그래서 내가 큰절을 올린 거야. 그랬더니 문정인 교수가 이게 뭐냐고 하면서 또 거기서 술을 또 엄청나게 먹고, 이제 방에 와서 잤는데 새벽에 내가 일어나서 또 운동을 하는 거야. 나는 운동을 하니까. 문정인 교수가 그러더라고요. 박지원 장관 진짜 독한 사람이더라. 그렇게 술을 마시고 아침 5시부터 운동을 하더라.

내가 운동하고 있는데 송호경 씨가 또 차를 보내서 아침 식사를 같이 갔어요. 가서 밥 먹기 전에 ‘참배 안 해도 되냐?’ 물었죠. 그랬더니 ‘이번만은 안 해도 된다’고 상부에서 얘기했다. 그래서 ‘나 밥 안 먹고 갈란다. 나 그것만 들었으면 됐다’ 했더니, 그래도 식사를 하고 가라고. 그래서 둘이 얘기를 하고 초대소로 갔더니, 이미 김대중 대통령은 김영남 위원장하고 회담을 하는데, 제가 중간에 들어가서 얘기를 했더니 잘했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그날 저녁 만찬을 할 때 김정일 위원장이 임동원 국정원장 손을 잡고 ‘저쪽으로 가자’해서 갔더니, ‘대통령께서 참배를 안 해도 된다’라고 공식 통보해 주더래요. (근데 그게) TV에 잡히니까 ‘우리 국정원장이 김정일 위원장하고 귓속말한 게 뭐냐.’ 해가지고 야단맞았는데. (아무튼) 저하고 (북한 측이) 아침에 합의해서 김대중 대통령한테 (참배 안 한다는 사실이) 보고는 됐지만, 그날 저녁에 김정일 위원장이 국정원장한테 공식 통보를 해서 (참배를) 하지 않은 거죠. 그때 눈물이 났지.

김유정: 그게 세 번째 눈물이셨네요.

배우 한 번 하죠.”

박지원: 그다음부터는 합의가 되건 말건 ‘It’s not my business.’ 그런데 하나 더 에피소드. 만찬을 저녁에 하는데, 두 분이 나가서 이렇게 손을 잡고 드는 거 있잖아요. 유명하고 상징적인 사진인데, 그때 사진 기자가 없었어요. 이걸 못 찍은 거야.

박준영 전남지사가 당시 공보수석이었어요. 나한테 와서 ‘형님 사진을 못 찍었습니다.’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같이 가서 말씀드렸죠. ‘사진을 못 찍어서 사진 기자를 불러가지고 다시 찍어야 됩니다.’ 그러니까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가서 ‘다시 합시다’ 하신 거예요. 그러니까 김정일 위원장이 ‘그럼 배우 한 번 하죠’ 해서 두 분이 사진을 찍었는데, 그러니까 그건 연출한 사진이에요.

그리고 또 하나 사진이 마지막 헤어질 때 오찬 때 다 일어서서 ‘우리에서 오는 통일’ 그 노래를 부르는 것. 나는 헤드 테이블에 앉았는데 김정일 위원장도 그렇지만 김정은 위원장도 대북 투자 기업인들한테 굉장히 잘해요. 그러니까 그 김정일 위원장이 삼성 윤종영 부회장, SK 손길승 회장, LG 구본무 회장 등 기업인들한테 ‘이리 오시라고 자기가 술 한 잔 따른다’고 하니까는 김한정 부속실장이 나한테 와서 ‘장관님, 저 일어섰을 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한 번 부르게 하자’고 그랬어요. 그건 김한정 부속실장 아이디어를 내가 써먹은 거예요. 상징적인 사진이 됐죠. 그런데 김정일은 노래를 못하더라고요. 안 하더라고, 모를 수도 있지. 그래서 그 두 사진은 박준영 지사와 김한정 부속실장의 아이디어에서 나왔지만 내가 허락을 안 했으면 안 되었다. 이말을 하고 싶네.

김유정: 실장님은 말씀하신 것처럼 대북 정책, 남북관계의 역사적 산증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박지원: 그래서 감옥도 갔다 왔어요. 또 감옥 보내려고 하지 마세요.

북한은 미국 무서워서, 한국은 미국이 못하게 하니까

김유정: 지금 남북관계가 교착 국면이고 아까도 말씀 나눴듯이 미사일이 수시로 날아오고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요?

박지원: 지금 바이든 정부는 (남북문제에) 관심이 없고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에(만 관심이 있다.) 그리고 윤석열 정권에서 극적인 계기를 만들지 않고서는 긴장 관계로 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역대 남북관계 개선은 실질적으로 보수 정권에서 더 크게 했습니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이 강 대 강으로 나가면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윤석열 대통령은 보수 정부가 세운 업적을 한번 만들어 봤으면 기대를 하지만, 굉장히 어려울 것 같아요. 전쟁은 북한은 미국이 무서워서, 한국은 미국이 못하게 하니까 전쟁은 없다. 그러나 국지적인 도발은 있을 것이다. 거기에 일본이 미국 말만 듣고 너무 강경하면 큰일 난다. 한·미·일 블록으로 심한 공격을 하면은 북한은 북·중·러 블록으로 대결한다. 그렇게 봅니다.

김유정: <박지원의 식탁> 시즌 1 큰 주제가 ‘대통령의 자격’이었습니다. 다양한 소주제들을 가지고 말씀들을 나눠봤는데요. 오늘은 ‘대통령과 북한’이라는 주제로 향후 우리의 남북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지 전망해봤습니다. 아쉽네요. 저희가 3개월 열심히 달려왔는데 시즌 1을 마무리하면서 소회 한 말씀씩 부탁드릴게요.

박지원: 우선 두 분이 협력해 줘서 박지원 식탁이 오늘 여기까지 왔다는 감사의 말씀을 드리면서요. 저로서는 ‘구독’, ‘좋아요’를 계속 눌러줘야 시즌 2가 열린다. 다음에는 한겨레 신문에서 일했던 김보협 기자와 해요. 정치부 기자하면서 한겨레 TV도 하고 그랬는데, 저를 많이 조진 분이에요. 시즌 2에서는 어떤 전개가 될지 모르지만, 김보협 진행자가 신랄하기 때문에 저는 아주 좋습니다. 훨씬 기대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