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진보·개혁 진영의 ‘회계’ 문제를 꺼내들었다. 윤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노조의 회계장부 제출 등을 쟁점화하며 압박하고 있다. ‘구린 구석이 없으면 뭐가 문제냐’라는 여론몰이도 어김없이 동원된다.보수언론과 한통속으로 진행되는 공세는 어쩐지 낯설지 않다. ‘윤미향 사태’에서 보았던 풍경과 너무나 닮았다. 윤미향 의원은 지난 3년 동안 일본군위안부 할머니의 삶을 사익 추구에 이용했다고 뭇매를 맞았다. 그러나 1심 법원은 관련 혐의에 대해 대부분 무죄를 선고했다. 아직 2·3심이 남아 있지만, 김동춘 필자는 ‘윤미향 사태’의 교훈을 냉정하게 곱씹고 올바르게 대처해야 할 때라고 지적한다. 노동계에 대한 압박에서 보이듯, 진보·개혁 진영의 ‘돈’ 문제를 빌미로 한 공세는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편집자 주]

✔ 검찰이 공소한 7건 중 6건의 혐의 무죄 판결✔ 윤 의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회복 어려워✔ 검-언 합동 작전으로 일거에 부인된 그간의 성과✔ 윤석열 정부, '회계 공개'로 노동계 압박✔ 공익 활동의 대의는 여전해… 심기일전해야

사진: 셔터스톡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 즉 ‘태산이 요동칠 정도로 대지진이 터진 듯이 보였으나, 나중에 보니 쥐새끼 한 마리 튀어나오더라’라는 격언보다 서울 서부지방법원의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윤미향 의원 1심 판결을 더 잘 설명해주는 말은 없는 것 같다. 검찰이 공소한 7건 중 6건의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내려졌고, ‘업무상 횡령’ 건에서만 1700만 원의 사용처가 소명되지 못했다고 유죄가 선고되었으니, 애초 검찰과 언론의 거친 공세를 생각해보면 윤미향 의원은 ‘사실상 무죄’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출처: 연합뉴스

1심에서 ‘태산명동 서일필’로 드러난 윤미향 사태

아직 2심과 대법원 판결이 남았으니 최종 판단은 유보해야 할지 모른다. 그리고 법원 판결이 곧바로 최종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판결을 보면 검찰-언론 합작으로 공인을 완전히 인격살해하거나 만신창이로 만들었던 수많은 사건 중의 하나임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은 10여 년 전의 정연주 전 KBS 사장 배임 사건을 연상케 한다. 당시 정연주 전 사장은 회사에 도움을 주기 위해 법인세 소송을 포기한 것이 오히려 회사에 손해를 끼친 배임 행위였다고 기소되었으며, 언론도 그의 ‘배임죄’를 기정사실화했다.

공인, 특히 제도 정치권에 발탁된 공익활동가에 대한 언론의 검증은 당연히 필요하고, 비리 전력이 있다면 법적 검증이나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검찰이 윤미향 의원을 상대로 여러 비리 의혹을 갖고 있는 다른 의원들과 동일한 기준과 비중으로 수사의 칼을 휘둘렀고, 언론 또한 같은 비중으로 지면을 할애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더구나 한국 검찰과 언론은 법치나 정의의 이름으로 수많은 불의, 불법의 ‘전과’를 가진 집단이 아닌가?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은 한번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거나 정의연 활동을 부각하는 보도를 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들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지만, 윤미향 사건을 철저하게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여론 재판에 기름을 부은 일부 할머니들의 불만 토로는 검찰과 언론의 불쏘시개로 이용되었을 따름이다.

2심에서 무죄가 나도 잃을 것이 없는 검찰과 언론

2심에서도 사실상의 무죄 판결이 나오더라도 검찰과 언론은 잃은 것이 없다. 과거 정연주 전 사장도 배임죄 혐의만으로 KBS 사장 자리에서 쫓겨났고, 2년 반 동안 혹독한 세월을 보냈다. 그는 “파렴치범으로 인격 살해를 당했고, 2년 이상 수사를 받고 법정을 오가며 많은 시간과 자원을 낭비했다”고 토로했다. 만우 스님은 정 전 사장의 무죄 판결을 보고 “본디 죄가 없으니, 무죄도 너무 무겁구나”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그렇다. 이번 판결의 ‘사실상의 무죄’도 결코 원상회복이 아니다. 윤미향 의원과 함께 정신대 운동에 신명을 바친 정의연 마포 쉼터 소장 손영미는 다시 살아날 수 없다. 윤미향 의원을 파렴치범으로 여론 재판했던 언론들이 당시의 1면 톱 정도의 비중과 지면을 할애해서 정의연과 윤미향 의원에게 공식 사과를 한다고 해도, 그리고 시민단체의 회계 장부를 먼지 털듯이 뒤져서 티끌 하나라도 있으면 찾아내려고 ‘정치적’ 수사와 기소를 했던 검찰이 공식 사과를 하거나 피의 사실을 흘린 검사를 징계한다고 해도, 윤미향 의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나 무너진 정의연은 다시 살아나기 어렵다.

사진: 연합뉴스

‘위안부 운동’의 업적과 정당성, 마녀사냥에 무너지다

1990년대 초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운동부터 시작해 1500회가 넘는 세계 최장기의 수요집회 등을 통해 성노예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을 국제적인 이슈로 만들고, 일본의 인정과 사죄를 촉구했던 사회운동의 모든 업적과 그 역사적 정당성은 이 검찰-언론 합작의 마녀사냥으로 일거에 부인되었다. 국가는 물론 시민사회조차도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고통에 무관심했던 시대에 몇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걸고 시작했던 일본군 위안부 지원 운동, 특히 왜곡된 한일 과거사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수십 년간의 고투를 ‘횡령 혐의’ 하나로 비웃음거리로 만든 사실, 심지어 그런 활동에 신명을 바친 활동가를 죽음으로까지 몰아간 이후의 ‘사실상의 무죄’ 판결, 그것으로 또다시 드러난 검찰의 정치적 기소와 언론의 여론 재판 사실은 무슨 소용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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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검찰-언론의 ‘윤미향 죽이기’ 공격은 공인 검증이라는 명분 아래 정치적 영향력을 갖게 된 대일 과거사 강경파를 위축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하고, 시민사회 단체, 특히 민족적 사회운동이나 공익활동에 헌신한 세력을 ‘파렴치범’으로 몰아서 그들의 정치⸱사회적 영향력과 위신을 위축시키려는 의도가 보인다. 그 결과 대일 과거사를 바로잡자는 운동 단체를 비롯한 모든 시민단체의 권위는 큰 타격을 입었고, 이들 공익적 단체들의 물적인 기반도 흔들려 존립 자체가 위기로 내몰렸다. 그래서 이제 ‘선한’ 기부자들은 한국에서 사회단체에 기부하거나 펀딩하는 것을 기피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민단체에서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티끌 정도의 흠집이라도 남기면 인생 자체가 매도되기 때문에 장차 이런 일에 나서는 젊은이들은 더욱 드물어질 것이다. 물론 정의연 활동을 눈엣가시처럼 여긴 일본의 우익들이 환호작약하게 된 것은 이 수사가 남긴 최대의 ‘씁쓸한’ 효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건이 온 언론을 도배하고, 윤미향 의원이 정신대 할머니를 이용해서 사익을 추구한 파렴치범처럼 낙인이 찍혔을 때, 1990년대 초부터 월급쟁이 처지에서 매월 수만 원의 회비를 정대협에 꼬박꼬박 냈던 한 지인은 주변에서 입만 열면 정의연과 윤미향 의원을 향해 욕을 하니, “당신들 중 정대협이나 다른 시민단체에 매월 1만 원이라도 회비를 낸 사람이 있느냐? 그러면 정의연을 비판할 자격이 있다”고 외롭게 외치기도 했다. 시민단체의 주먹구구식 회계처리나 부실한 운영은 회원 내부와 시민사회 내부에서 검증되고 바로잡혀야지, 검찰의 칼과 언론의 여론재판으로 단죄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피해 당사자와 활동가들의 간극 역시 시민사회의 공론을 거쳐 조정되고 새롭게 정립되어야지, 피해자가 활동가들에게 갖는 약간의 불평이 검찰과 언론의 단죄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정의가 손해를 가져오고, 불의가 얻는 이익이 더 크다면

플라톤이 <국가>에서 강조했듯이, 정의를 지키려는 노력이 손해를 가져오고, 불의를 저지르고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더 크다면, 불의를 막을 방법이 없다. 검찰이 ‘피의사실 공포죄’를 계속 저질러도 관련자 아무도 처벌조차 되지 않고, 언론이 검찰이 슬쩍 흘리는 확인되지 않는 수사 내용을 따옴표(“ ”) 달린 큰 활자로 뽑아서 피의자를 천하의 몹쓸 인간으로 매도하거나 심지어 죽음으로까지 몰아도, 검찰-언론의 ‘선출되지 않은 권력’ 책임자 그 누구도 징계나 처벌조차 되지 않는다면, 이런 부당하고 부정의한 일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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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의연의 회계상 결함을 들춰내서 조직의 활동 자체를 무너뜨리려는 공세는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2000년대 이후 정치적 반대 세력, 특히 정부의 지원을 받는 시민사회단체를 공격하기 위해 여러 번 시도된 것이다. 과거에도 그러했지만 민주화 이후 보수 정부는 과거처럼 각종 형사법을 동원해 진보세력을 공격하는 것이 어려워지니, 공안기구나 검찰로 하여금 그들이 은밀하게 수집한 정보를 활용하여 활동가나 정치가들의 사생활, 특히 여성 문제 등을 들추어내거나 진보적인 단체의 회계 관리 문제를 들추어내서 중요한 활동가나 정치가 개인과 그가 속한 단체에 도덕적 치명상을 입히도록 했다.

본말이 전도된 윤석열 정부의 노조 회계 공세

특히 지금 윤석열 정부는 회계 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노조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하면서 노조 및 정부 지원 시민단체에 칼을 빼들었다. 국정원이나 검찰의 특수활동비 등은 물론 법무부 장관의 미국 출장비 지출까지도 국가기밀이라고 공개를 거부하는 것은 물론, 정부 각 부처의 예산과 지출의 세세한 내용조차도 일반인의 접근을 어렵게 한 정부가 자발적 사회조직이 관리하는 극히 약소한 규모의 회비까지 들여다보겠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정치적 공격이 아닐 수 없다.

대기업이나 전경련 등의 지원을 받아서 세월호 유족들에게 혐오 선동을 한 우익단체를 상대로 검찰이 조사를 벌이거나 관련자들을 처벌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무엇보다도 정부 각 기관의 재정과 회계, 그리고 지출에 대한 시민의 감시나 검증이 우선되어야 한다.

비록 정의연과 여러 공익적 시민단체, 그리고 이 ‘이기적 세상’에서 모두가 기피하는 공익 활동에 나선 시민운동가 모두가 정의연과 윤미향 의원 ‘사태’로 큰 상처를 입기는 했으나, 공익적 활동의 대의나 사회적 중요성은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에, 이런 일로 더 위축되거나 활동을 접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오랫동안 임의단체로 활동해 온 많은 시민단체가 재정⸱회계상 부실한 점이 있었다면 이번 기회에 내부 관리를 더 투명하게 해서 피해자나 기부자들의 뜻을 잘 받들고 새롭게 일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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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의 공익적 활동 위축돼선 안 돼

정의연처럼 국가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한 단체의 활동은 더욱 격려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지금 정부 지원을 받아온 단체들이 많지만, 그것은 윤석열 정부가 생각하듯이 과거의 ‘민주’ 정권이 특혜 방식으로 단체를 지원한 것이 아니라, 국민의 세금으로 국가의 공적 활동에 대한 역할 분담 혹은 정부 감시 기능을 수행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노조나 시민단체가 정부 지원을 받는 것은 당연하고 앞으로도 지속되어야 한다.

물론 시민사회의 입장에서 보면, 시민단체는 앞으로 시민의 자발적 기부에 더 많이 의존하고 정부의 지원을 가능한 줄여야 한다. 아울러 시민사회연대회의 등 시민사회 단체들의 연대기구는 영세한 시민단체의 회계 처리 등을 지원하고, 시민단체 내부에서 예산 집행이 투명하게 이루어지는지 검증해야 할 것이다.


글쓴이 김동춘은

참여사회연구소 소장, 진실화해위원회(1기) 상임위원을 역임했고, 현재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시민단체인 좋은세상연구소(준) 대표도 맡고 있다. <시험능력주의>, <고통에 응답하지 않는 정치> 등 다수의 저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