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밤(현지시각) 진도 6.3의 강진이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접경지역을 다시 뒤흔들었다. 2주 전 발생한 대지진으로 이미 사망자만 4만7000여 명에 이르는데, 말 그대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특히 시리아 상황이 절박하다. 그나마 튀르키예는 어느 정도의 국가 기능과 의료 시스템이 작동하는 나라다. 국제적으로도 100여 개국 이상이 구조대를 파견했고 정부도 적극적으로 구호에 나서고 있다. 반면 시리아 쪽은 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않고 방치되고 있는 난민 거주 지역이다. 구조대는커녕 구호 물자조차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피해 규모도 제대로 확인되지 않는다.시리아 난민들에게 지진은 단순한 하나의 재앙이 아니라, 수없이 밀어닥친 재앙들의 '최종판'과 같다. 전쟁으로 인해 정보마저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는 그곳 현장에서, '국경없는의사회'는 인명피해를 감수하며 10여 년간 꾸준히 활동해왔다.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인도적 지원의 전면적인 확대’가 절실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그 호소에 우리가 응답해야 할 때다. [편집자 주]

✔ 시리아 지진 피해 지역은 내전 이후 피난민이 모인 곳✔ 양적·신속성 측면에서 턱없이 부족한 지진 피해 대응✔ 홍역·코로나 19·콜레라 등 전염병으로 악화한 의료 환경✔ 피난처와 식수, 위생 관련 물자 보급이 우선 순위✔ 인도적 지원 물자 이송을 위한 통로 확보가 필수적

지진 직후 이들리브 (사진: Omar Haj Kadour/MSF)

지진이 덮친 날, 아이샤가 보낸 밤

2월 6일 새벽 4시 17분,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조산사인 아이샤와 가족들이 거주하던 5층 건물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흔들림이 지진이라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서둘러 남편과 세 아이를 데리고 건물 밖으로 대피했다. 아이샤는 폭격이 쏟아지던 알레포에서 이미 첫째 아들을 잃었기 때문에, 남은 아이들을 살려야 한다는 마음이 어느 때보다 강했다.

그러나 이웃의 엄마는 모든 가족이 대피하지 못한 상황 때문에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같은 건물에 살고 있던 사람들 중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부모들은 창문 밖으로 아이들을 내던졌고, 먼저 나와 있던 어른들이 아이들을 받아냈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아이들을 돌봐야 했지만, 아이샤는 이내 자신이 의료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병원으로 향했다. 거기에 자신의 도움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었다. 아이들 역시 그녀의 결정을 이해하고 응원했다.

아이샤가 급히 도착한 병원은 부상자들로 넘쳐났다. 부족한 인력과 물자에 더해 여진의 충격으로 사람들은 공포에 빠져 있었다. 잔해에 깔린 부상으로 절단 수술이 필요한 환자들이 많았지만, 수술이 가능한 인력은 부족했고, 수술실은 치우지 못한 피로 흥건했다.

아이샤는 병원에서 부모와 아내, 아이들을 포함해 모두 13명 이상의 가족을 잃고 쇼크 상태에 빠진 남자를 목도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참담한 상황에 빠진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자정에 이른 시각, 잔해 속에 깔린 여자아이를 꺼내기 위해 발을 절단하는 수술이 필요하다는 연락이 병원으로 들어왔다. 새벽 4시경, 절단 수술을 준비한 의료진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아이는 울부짖고 있었다.

“제 발을 걱정하지 마세요. 발을 잘라서라도 저를 여기서 꺼내주세요! 여기는 너무 어둡고 무서워요!” (영문자료: ‘Don’t worry about my foot, save me without my foot just get me out of here. It’s dark and I’m scared!’)

분쟁의 '조각보'에 갇힌 사람들에게 대지진이 닥치다

이번 지진으로 시리아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북서부는, 이미 지난 12년 동안 이어진 내전으로 엄청난 수의 피난민들이 몰려들어 불안정한 삶을 이어가고 있던 곳이다. 이 지역 인구 약 400만 명 중 절반 이상인 280만 명이 국내 피난민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여기에 최근 악화된 경제 상황과 코로나 19, 콜레라 유행까지 겹쳐서 지진 이전에도 인도적 위기가 만성화되고 있었다.

이곳은 또한 시리아 정부가 통제하지 않는 지역이라 정부의 지원이 끊긴 곳이다.  접근성 등의 문제로 국제 구호의 손길에서도 소외된 곳이다. 그런데 여기에 지진까지 겹쳤다. 전쟁, 전염병, 자연재해가 연이어 이들을 덮친 것이다.

지진 발생 후 약 일주일이 지난 15일경, 국경없는의사회가 입수한 시리아 정부 측 보고서에 따르면, 이번 지진으로 북서부에서 1764채의 건물이 붕괴되었고, 5771채의 건물이 손상을 입었다. 그리고 1만 가구 이상이 피해를 입어 주민들이 거주할 곳이 없는 상태에 놓였다. 가장 피해가 심한 지역은 큰 건물들이 몰려있는 도심지역이었으며, 가장 사상자가 많았던 곳은 하림(Harim), 아프린(Afrin), 그리고 제벨 사만(Jebel Saman) 순으로 파악되고 있다.

지진 직후, 시리아 정부가 통제하지 않는 북서부 지역에 물자를 지원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시리아-튀르키예 국경에 위치한 ‘밥 알 하와'(Bab Al-Hawa) 국경 검문소였다. 2014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시리아 정부가 통제하고 있지 않은 지역에 대한 인도적 지원의 필요성을 인지했고, 총 4곳의 국경 검문소를 통로로 승인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하지만 2020년 1월, 러시아와 중국의 반대로 두 곳의 국경 검문소가 승인 목록에서 제외되었고, 2021년 7월에 또 한 곳이 추가로 제외되었다. 결국 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경로로 ‘밥 알 하와’만 남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단 하나의 검문소를 통해 전달할 수 있는 물자는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약 40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 모두에게 닿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다. 그래서 시리아 북서부 지역에는 이미 구호 물자와 의료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였다. 그런데 이런 열악한 조건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엄청난 규모의 강진이 닥쳤다.

3일 만에 모든 의료 자원이 바닥나다

지진이 일어난 직후부터 국경없는의사회는 체온 유지에 필요한 담요와 연료, 응급수술 키트와 위생 키트 등을 서둘러 제공하고, 수술 중 산소 공급을 위한 장비도 공급했다. 특히 피해가 가장 심한 지역 중의 하나인 이들리브(Idlib) 행정구역 내에는 이재민들을 위한 이동진료소 운영을 시작했다. 내전으로 대부분의 기반시설이 파괴된 것으로 알려진 알레포(Aleppo)의 진디레스(Jindires) 지역에서도 이동진료소 활동을 개시했다.

이외에도 현지 단체와 공조하여 이들리브 행정구역 및 알레포 지역의 가정을 대상으로 담요, 매트리스 등을 제공했으며, 국내 피난민 수용센터에서는 위생 키트, 텐트를 제공했다. 이 과정에서 2월 6일과 12일 사이에만 7600명의 부상자들을 치료했고, 앰뷸런스를 증편하여 운영하면서 부상자들을 긴급하게 이송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문제는 절대적 자원이 부족하다는 데 있었다. 지진 발생 후 단 3일 만에 국경없는의사회가 이 지역에서 보관하고 있던 긴급 구호 물자는 바닥이 났다. 총 12t 규모로 보관되어 있었던 수술 장비나 의약품이 지진으로 상처를 입은 환자들을 치료하는 병원에 보내면서 다 떨어진 것이다.

시리아 밖에서 지원을 보내고 싶은 마음들이 간절해도, 그것이 물질적인 형태로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시리아 북서부 지역에 닿을 수 있는 길이 현재로서는 매우 제한적이다. 그래서 국경없는의사회 역시 긴급 물자를 보충할 방법을 찾아 많은 직원들이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2월 19일, 국경없는의사회의 텐트와 담요를 실은 14대의 트럭이 튀르키예에서 시리아 아프린(Afrin) 인근의 ‘알 함맘'(Al-Hammam) 검문소를 통과했다. 이는 유엔이 승인한 검문소는 아니었으나, 시리아 내에서 국경없는의사회와 협력하고 있는 NGO인 ‘알 아민'(Al Ameen)의 도움으로 물자 운송이 가능했다. 하지만 트럭 14대 분으로는 현재 국경없는의사회가 지원하고 있는 38개의 의료 시설과 피난민 캠프에 몰려든 사람들을 지원하는데 턱없이 부족하다.

14대의 트럭에 실린 물자로 실향민들을 지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사진: Rami Alsayed/MSF)

지진 발생 후 5일이 지나는 동안에 ‘밥 알 하와’ 검문소를 통과한 트럭은 유엔의 지원 물자를 실은 단 10대 뿐이었다. 지진 발생 후 11일이 지난 2월 17일을 기준으로 6개 유엔 기구의 물자를 실은 총 178대의 트럭이 검문소를 통과했는데, 지진 발생 이전인 2022년에 평균 277대의 트럭이 물자를 이송한 것과 비교하면,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지난 1년간 총 7566대의 트럭이 통과했던 수치를 11일 기준으로 환산)

그래서 지금 시리아에 대한 지원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수준이다. 지진이 발생하지 않았던 때보다 훨씬 적은 양의 물자만이 시리아 북서부로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부분은, 통과한 178대의 트럭에 실린 일부 물자들이 지진 대응과 관련된 물자들이 아니라 이미 계획되어 있던 지원 물자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결국 현재 시리아 북서부를 대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지진 피해에 대한 지원은, 양적인 수준과 신속성 측면에 모두 매우 심각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12년간 국제적으로 외면당했던 시리아의 고통

2011년 3월, 대규모 시위가 내전 수준의 갈등으로 번지자 시리아 내의 많은 주민들이 다른 지역이나 이웃 국가로 피난을 떠나기 시작했다. 국경없는의사회가 시리아에서 긴급 구호 활동을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무렵부터였다.

분쟁 초기부터 시리아 정부 통제 지역에서는 활동 허가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국경없는의사회는 정부 통제 밖에 있는 지역에서 직접적 의료 활동을 집중했다. 시리아 현지에서 분투하고 있는 의료진 네트워크나 인도적 의료 지원을 하는 시리아의 ‘적신월사’(적십자사)를 지원하고, 야전병원과 진료소에 의료 및 구호 물자를 지원하기도 했다. 이 시점에 레바논과 요르단 등 주변 국가에서도 급증하는 시리아 난민을 돕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2012년에는 구체적으로 전쟁의 위기가 본격적으로 고조되면서 전국적으로 사망자와 부상자 수가 급격히 증가했다. 이에 따라 국경없는의사회도 시리아 북부 전역에 병원을 열고 긴급 구호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많은 의료 시설이 군사적 공격을 받고 파괴되면서, 주택이나 학교, 건물 지하 등의 장소에 병원을 설치해야 했다. 양계장 건물에서 응급수술을 진행하기 위한 무균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공기주입식 수술실을 설치하여 환자들을 치료하기도 했다.

양계장에 설치한 수술실 (사진: Robin Meldrum/MSF)

시리아 내전이 확대되면서, 2013년경에는 사회 기반시설의 기능까지 마비되었고 의료 시스템 자체가 붕괴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일반적 상황이라면 나타나지 않을 질병들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시리아 제2의 도시 알레포(Aleppo)에서는 아동 홍역이 유행했고, 14년 만에 소아마비 발병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국경없는의사회는 시리아 북동부에서 대규모 예방접종 캠페인을 펼쳤다.

이 무렵 시리아의 의료 기관들은 대량 사상자 발생에 대한 대응이나 긴박한 응급 상황 대처에 집중했기 때문에, 주민들을 위한 일상적인 진료를 진행할 역량이 부족했다. 시리아 남부에서 전투가 격렬해지자 국경없는의사회는 시리아 접경지역인 요르단 북부 람타(Ramtha)에서 긴급 수술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남서부 다라(Dara’a)에 있는 14개 야전병원에서 전쟁 부상자를 치료했다.

2014년, 시리아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유엔은 650만 명의 국내 피난민이 발생하고 300만 명 이상이 시리아를 탈출한 것으로 추산했다. 불안정한 정세 속에 포위와 포격이 심화되던 이 시점에 국경없는의사회가 활동할 수 있는 운신의 폭도 매우 좁아졌다. 심지어 의료 시설과 의료 종사자에 대한 공격이 계속되기도 했다. 이 해에는 국경없는의사회 직원이 납치되는 일이 일어났고, 또 이슬람국가(IS)의 영향력이 급격히 증대함에 따라 해당 지역에서는 국제 구호 활동가들이 철수해야 했다. 그 대신 시리아에서의 일부 활동을 유지하면서 의료시설에 대한 원격 지원을 증대하는 방법을 취했다.

목숨을 걸고 지중해를 건너는 난민들

2015년, 시리아 상황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난민 위기로 가고 있었다. 해외로 떠난 난민의 수가 400만 명을 넘어섰고, 국내 피난민 수는 600만 명에 달했다. 특히 지중해를 건너는 위험천만한 탈출 행렬이 급증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지중해에서 난민 수색 및 구조 활동을 전개하고 유럽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등 대응 활동을 확장했다.

지중해에서 전개된 국경없는의사회의 난민 수색 및 구조 활동 (사진: Michela Rizzotti/MSF)

또한 2015년에는, 초기 공격 이후 구조대와 부상자를 치료하는 의료 시설을 겨냥해 2차 공격을 가하는, 실로 잔인무도한 '더블탭'(double-tap) 공격이 시작되었다. 2015년 한 해 동안 국경없는의사회가 지원한 시리아 의료진 23명이 사망하고 58명이 부상했으며, 94차례에 걸쳐 지원대상 병원 및 진료소 63곳이 폭격이나 포격을 당한 결과 이 중 12곳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 결과 150만 명 이상의 주민이 인도적 지원이나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한 채, 의무 후송도 받을 수 없는 포위된 지역에 고립되었다. 시리아 내전 중, 국경없는의사회가 가장 많은 숫자인 150여 개 의료 시설에 지원을 시작한 것도 이 시점의 일이다. 하지만 이런 노력만으로는 의료시설이 직접적인 피해 대상이 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의료시설과 의료인들의 피해는 2016년에도 계속되었다. 포위된 알레포 동부의 한 병원에서는 4월의 한 공습으로 의사 1명이 사망하고 간호사 여러 명이 부상을 입었다. 11월에는 이 지역에 50회 이상의 공격이 있었고, 2개의 병원이 공습을 받았다. 그중 한 곳은 지역의 유일의 ‘아동 전문 병원’이었다.

병원 직원들의 목숨을 건 노력으로 신생아를 포함한 아동 환자들을 병상과 인큐베이터에서 건물 지하로 옮긴 덕분에 겨우 인명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포위전이 벌어지고, 의료시설이 파괴되고, 민간 지역에는 무차별 폭격이 이어지고, 전쟁의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들이 알레포를 뒤덮고 있었다.

폭격을 받은 알레포 동부의 한 병원 (사진: Karam Almasri/MSF)

국제분쟁, 경제위기, 코로나 19와 콜레라까지

2017년부터, 영토와 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한 정부군과 이슬람국가(IS), 시리아 민주군의 전투는 내전을 넘어 국제적 지정학의 변수로 떠올랐다. 2018년에는 정부군과 러시아를 비롯한 동맹국들이 마지막 반군 거점인 북서부의 도시 이들리브 공세를 시작하면서 수십만 명의 피난민이 일시에 발생했다. 북동부에서는 이슬람국가(IS)의 마지막 거점인 데이르 에즈-조르(Deir ez-Zor)를 떠난 6만 명 이상의 피난민이 알홀(Al-Hol) 난민 캠프로 한꺼번에 유입되었다.

2019년에는, 시리아 반군과 이를 지원하는 튀르키예군이 '평화의 샘'(Peace Spring) 작전을 개시했다. 튀르키예-시리아 국경을 따라 난, 길이 30km, 폭 440km의 땅에서 쿠르드족 인민 수비대를 내모는 작전이었다. 이렇게 시리아 북부는 서로 다른 목표를 가진 정부 및 반군 무장세력, 또 이 틈을 타서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나라들이 그려내는 조각보와도 같은 복잡한 전쟁 상황 속에서 민간인들이 속수무책으로 희생당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었다.

여기에 2019년 시리아는 최악의 경제위기를 맞이했다. 시리아 파운드화는 암시장에서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며 시리아 주민들의 삶을 극한으로 밀어붙였다. 2020년 초에 시리아 북서부에서 대규모 군사 공세가 계속되면서 약 100만 명이 피난길에 올랐다. 이 중 상당수의 사람들은 이미 과거 몇 년 혹은 몇 개월 사이에 피난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들이닥친 코로나 19 팬데믹은 이미 위태로운 시리아의 상황을 극도로 악화시켰다. 2020년 3월 공식적으로 팬데믹이 선언된 지 4개월 후인 7월 9일, 시리아에서 첫 코로나 19 확진 사례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이들리브 전역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특히 의료진들의 감염은 코로나 19 이전에도 이미 빈약했던 의료 자원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여러 병원에서 동시에 일했던 의료진들이 일시에 감염되어 격리되는 것만으로도 보건의료 접근성에 큰 타격이 되었다.

2022년 9월, 시리아 북부에는 또 다른 위기가 들이닥쳤다. 콜레라였다. 유프라테스강 유역의 식수 오염과 북부의 극심한 물 부족 사태로 콜레라가 창궐했다. 콜레라는 오염되거나 고인 물에서 발견되는 콜레라균을 통해 감염되며 전염성이 매우 강하다. 감염되면 설사, 구토, 급성 탈수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데, 즉시 치료받지 않으면 수 시간 내에도 사망까지 이를 수 있는 무서운 질병이다.

시리아에서 마지막으로 콜레라가 발생한 것은 15년이나 지난 일이었기 때문에, 전쟁과 경제위기로 파괴된 현지의 의료 역량으로 콜레라 같은 대규모 전염병에 대응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우선 라카(Raqqa)에 위치한 40병상 규모의 콜레라 치료센터에서 의료 지원을 시작했고, 곧 병상을 65개로 증설했다. 또한 현지 단체와 협력하여 수질 관리, 급수 트럭 및 폐수 시설에서의 염소 처리 과정 등을 지원하며 식수 위생 개선도 서둘렀다.

현지 및 국제 인도주의 구호단체는 시리아 북부에서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깨끗한 식수 접근성을 전반적으로 확대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문제이다. 2021년 시리아에서 식수 위생 개선에 집행된 예산은 인도적 대응 예산 총액의 단 4%였는데, 이는 2020년 대비 3분의 2 이상 줄어든 규모였다.

콜레라는 오염된 물에서 발견되는 콜레라균을 통해 감염되며, 전염성이 매우 강하다. (사진: Abd Almajed Alkarh/MSF)

끝나지 않는 재앙, 대지진

시리아 정부의 통제 밖에 있는 북서부 이들리브 지역. 여기서 거주하고 있는 아부 파델은 다른 270만 명의 시리아인들과 마찬가지로 전쟁 속에 여러 차례 피난을 가야 했고, 이들리브까지 오게 되었다.

튀르키예 국경을 등진 이 도시에는 전쟁으로 삶이 산산조각 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모여 있다. 아부 파델은 이들리브 주 ‘마라앗 알 누만'(Maarat Al-Numan)에서 5km 떨어진 작은 마을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었다. 지금 아부 파델은 아내와 자녀 5명을 데리고 난민 캠프에서 텐트 생활을 한다.

2020년 국경없는의사회 직원을 만나 이야기를 털어놓던 그는 가끔 눈을 감고 그가 태어난 마을로 돌아가는 상상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이따금 폭격했던”, 그러나 아직 “위협하는 지상군은 없었던” 이전의 고향으로 차라리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때는 최소한 집에서 생활할 수 있었고,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리아 북부에서 반군 통제 지역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국경없는의사회가 지원하는 난민 캠프에서 빈곤한 상태로 삶을 겨우 지탱하고 있었고, 이들이 대피할 수 있는 지역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었다. 정부군은 이들리브 지역의 난민들을 공습의 대상으로 봤다. 공중에서 퍼붓는 폭격은 이제 난민들의 일상처럼 자리 잡았다.

일상이 되었다고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다. 비행기 소리가 들리면 아이들은 공포에 질린다. 전쟁 속에 태어나 공습을 피해 살아남은 아이들은 전쟁 이외의 기억이 없는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아부 파델과 같은 부모들의 마음속에는 그런 아이들을 지켜봐야 하는, 두려움보다 더한 고통이 함께 퍼져온다. 그들 모두가 생활의 터전을 잃었고, 가족 중 누군가의 죽음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런 충격과 상처를 안고 삶의 뿌리가 송두리째 뽑힌 상태로 난민 캠프에 도착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대지진이 일어났다. 전쟁만을 기억한 아이들,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폭격과 콜레라, 코로나 19도 용케 피했던 아이들이 끝내 지진으로 희생되었다. 지진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아이들이 얼마나 많을지, 그리고 잔해 속에서 발을 절단해야 했던 소녀처럼, 만약 살아남았다 해도 그 아이들의 기억에 어떤 절망이 더해졌을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총상을 입은 시리아 어린이 (사진: Eddy Van Wessel/MSF)

의료진에게까지 트라우마로 남은 참상

2021년 12월 11일, 시리아 북서부 이들리브 지역에서 국경없는의사회가 지원하는 병원. 15명의 부상자들이 한꺼번에 이송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의료진들이 다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폭격으로 부상당한 사람들이었다. 이들 중에는 두 명의 여성과 14세 미만 아동이 11명이나 포함되어 있었다. 그중에는 특히 심각한 부상을 입은 4세 환자도 있었다. 또 다른 두 명은 병원으로 이송되던 도중에 사망했다.

당시 이 병원에서 국경없는의사회의 의료 활동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었던 이스마일은 4세 여자아이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아이는 작디작은 몸 곳곳에 포탄 파편이 박힌 채로 고통스러워하며 병원에 도착했다. 의료팀이 가까스로 아이의 상태를 안정시키기는 했으나, 어린아이가 감당하기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부상이었다.

당시 시리아 북서부에서는 폭격이 잦았고,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들이 수많은 부상자를 한꺼번에 치료해야 했던 상황은 종종 발생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고작 2세나 4세인 아동까지 포함된 어린 환자들이 그렇게 많은 경우는 흔한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당시 현장에서 목격한 참상을 전하면서 이스마일은 “태어나자마자 전쟁을 겪은 어린아이들이, 단지 폭력의 목격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희생자가 되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일이 참담했다”는 말을 남겼다. 이스마일이 목격한 아동들의 고통은 이번 강진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기 전까지, 국경없는의사회가 매일 같이 목격하고 있는 시리아 북서부의 ‘일상’이다.

시리아에 인도적 지원의 전면적인 확대가 필요하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시리아 북부에서 10년 넘게 꾸준히 활동해 온 거의 유일한 국제 구호단체다. 그래서 대지진 이후, 각국 지부에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담당자들은 시리아의 지진 피해 상황에 대한 문의를 많이 받고 있다. 특히 이미 100개국 이상의 정부가 공식 구호대를 파견하고 많은 구호 인력이 투입된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피해 규모를 비교해 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현장에서 인도적 위기에 대응하는 활동가들은 피해의 규모를 상대적인 수치로 비교하는 대신 상황의 맥락에 주목해달라고 강조한다. 어느 정도의 국가 기능과 의료 시스템이 작동하는 튀르키예와, 절대적으로 열악한 수준에 있는 난민 캠프가 위치한 시리아의 피해는 산술적으로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국내 피난민(IDPs: internally displaced persons)이 가장 많은 나라. 12년간 이어진 내전으로 약 2100만 명의 인구 중 절반이 넘는 1460만 명의 인구가 인도적 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는 나라. 내전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코로나 19에 더해 15년 만에 창궐한 콜레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전염병 위기에 노출되어 있는 나라가 바로 지금의 시리아다. 바로 그곳에서 지진이 일어난 것이다.

따라서 지금 시리아 북서부가 겪고 있는 지진 피해는, 많은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들이 세계 곳곳에서 강조하고 있듯 “another emergency on top of an ongoing emergency,” 곧 “현재진행형인 만성적인 위기를 덮친 또 다른 긴급 상황”이다. 긴급 상황 앞에 놓인 시리아 사람들의 삶은, 이제 지진으로 파괴된 건물의 모습처럼 붕괴할지도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이다.

현장에서 피해 상황을 눈앞에서 지켜보고 있는 활동가들은 사람들이 지치고 다친 몸을 누일 수 있는 피난처와 식수, 그리고 위생과 관련된 물자의 보급이 가장 우선적인 문제라고 말한다. 수술 환자에게 후속 치료를 제공하고 치료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의료 물자도 계속적으로 보충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더 많은 인도적 지원 물자들이 신속하게 이송될 수 있는 통로의 확보가 필수적이다. 폭격과 피난, 그리고 전염병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지진까지 더해진 시리아의 맥락을 이해하는, 국제적 행위자들의 적극적인 의사 결정과 인도적 지원의 전면적인 확대(scale-up)가 시급하다.

[box] 국경없는의사회(Médecins Sans Frontière)는 1971년 프랑스 의사들과 의학 전문 언론인들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활동’과 ‘발언’, ‘치료’와 ‘증언’은 설립 당시 중시했던 가치관이었으며 이는 오늘도 여전히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중립성과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하며 인종이나 종교, 성별,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인도적 위기에 처한 사람들의 필요에 기반해 지원을 제공합니다. 또한, 운영의 독립성과 유연성을 지키기 위해 민간 기부금을 2021년 기준 97%에 가까운 높은 비율로 유지하고 있으며, 모금 활동과 행정 운영 비용을 최소화하고 전체 후원금의 80%를 구호 프로그램을 위해 사용합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활동 범위와 규모를 설정하는 것은 모든 활동을 운영 및 관리하는 5개의 ‘운영센터’에서 이루어집니다. 철저한 현장 조사를 거쳐 현장의 의료적/인도적 필요에 따라 꼭 필요한 지원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현장의 수요에 따라 어떤 활동을 하게 될지 운영센터에서 결정해 실행하면 한국사무소를 포함한 전 세계 국경없는의사회 지부에서는 필요한 종류의 활동가 파견, 모금 액수 등을 확인하며 어떻게 현장 활동을 지원할 수 있을지 검토하고 시행하게 됩니다. 튀르키예-시리아 지진 대응을 위해 모금된 지정기부금액 중 한국사무소가 목표로 한 금액은 이미 마감된 상태이며, 이 후원금은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스위스, 그리고 스페인에 있는 국경없는의사회의 5개 운영센터가 현장 조사를 통해 계획하는 지원 활동에 전적으로 사용될 예정입니다. 또한 이번 튀르키예-시리아 지진과 같은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비지정’ 후원은 상시로 진행되고 있습니다.[/box]


글쓴이 김태은은한국에서 정치학 학사  석사과정을 마치고 미국에서 문화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국제협력단>의 인도적 지원 부서에서  3년간 근무했으며,  현재 <국경없는의사회> 한국사무소에서 홍보(advocacy)  대외협력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