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혁이 화두다. 대통령이 3대 개혁 과제 가운데 하나로 천명하고, 국회의장도 개헌과 함께 연금 개혁 논의를 국회의 중요 의제로 제시했다. 가장 많은 논란은, 국민연금이 미래세대에게 짐을 지운다는 것이다. 또 수익률이 지급 시기에 따라 차이가 나서 불공평하다는 주장도 자주 제기된다. 그런데 이런 자극적인 주장들은 과연 얼마나 합리적인 문제제기일까?재정 전문가인 이상민 필자는 연금 개혁을 둘러싼 많은 논란이 상당 부분 왜곡되었거나 과장됐다고 말한다. 특히 연금을 세대 문제로만 보는 것은 오히려 진실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연금 개혁이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알아야 제대로 된 개혁도 할 수 있다. 연금 개혁, 과연 어떤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나. [편집자 주]

✔ 노인 여성의 국민연금 수급 비율은 20%가 채 안 돼✔ 프랑스 젊은 세대는 연금 갈등을 계급 갈등으로 봐✔ 국민연금 기금은 2049년 기금 소진을 이미 계획해✔ 2055년 기금 소진 전망은 일종의 '스트레스 테스트'✔ 기여금 인상 합의를 위해 소득대체율 인상도 필요해

(사진: 연합뉴스)

국민연금, 세대가 아니라 젠더가 문제?

‘국민연금 제도는 세대 간에 불평등한 제도’라는 지적이 많이 나온다. 미래세대를 ‘착취’하는 제도라는 말까지 있다. 그런데 도대체 우리 중 ‘누가’ 미래세대를 착취하는 것일까?

현재 65세 이상 남성 노인은 320만 명, 여성 노인은 430만 명이다. 이건 상식과 일치한다. 여성 수명이 더 길기 때문이다. 그중 기초연금 수급자 비율은 남성은 60%, 여성은 73%다. 이건 그러려니 한다. 기초연금은 하위 70%만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 비율은, 여성 노인이 하위 70%에 속하는 비율이 더 높다는 뜻이다. 남성 노인 사망 후, 혼자 사는 여성 노인이 하위 70% 속하는 비율이 좀 더 높을 수 있겠다.

이제 국민연금 수급자를 보자. 남자 노인은 54%, 여성은 19.5%다. 이건 꽤 안타깝다. 남성 노인은 절반 이상 국민연금을 받지만, 여성 수급자 비율은 20%가 채 안 되기 때문이다. 이는 ‘명함 없는 노동’에 종사한 여성 노인에 국가가 국민연금을 지급하는 체계를 만들지 못했다는 뜻이다.

가장 놀라운 것은 기초연금은 받지 않고 국민연금만 받는 비율이다. 가장 행복한 노년 생활을 보내는 계층이다. 상위 30%에 속하면서, 국민연금의 권리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 노인의 24%가 여기에 속한다. 그런데 여성 노인 중에서는 단 0.2%만 여기에 속한다. 전국에 있는 430만 명 여성 노인 중, 단 7000명만 해당한다. 극소수다.

그럼, 답은 나왔다. 만약에 현재의 국민연금이 현세대가 미래세대를 착취(?)하는 구조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여성 노인은 예외다. 국민연금 수급자는 전체 여성 노인 중, 19.5%밖에 되지 않는다. 특히, 이들 거의 모두는 하위 70%에 속하는 노인이다.

그래서 만약 미래세대가 조금만 아량이 있다면 최소한 하위 70% 노인이 받는 국민연금 정도는 눈감아 줄 수 있어야 한다. 받는 국민연금 액수도 많지 않으니 좀 봐줄 수 있다. 전국의 상위 30%에 속하는 여성 노인 중 국민연금 수급자는 단 7000명(0.2%)이니 최소한 여성 노인은 국민연금으로 미래세대를 ‘착취’하는 집단은 아니다. 그럼 국민연금의 핵심 문제는 세대 갈등이 아니라 젠더 갈등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석재은, 김용하 (2019) <저출산 고령화와 한국의 연금개혁>

젠더가 아니라 계급?

최근 프랑스에서는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국민들의 시위가 한창이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이 하려는 연금개혁의 핵심은 연금 수령 시기를 62세에서 64세로 늘리는 것이다. 연금제도를 개혁하지 않으면 지나치게 국가 부채가 쌓이고 미래세대가 불리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크롱의 연금 개혁을 반대하는 시위자를 보면 젊은 세대도 많이 나온다. 미래세대를 위해 연금 개혁을 한다는데 왜 프랑스 젊은 사람들은 이를 반대하는 시위를 할까? 그것은 프랑스 젊은 세대가 연금 갈등을 ‘세대 갈등’이 아니라 ‘계급 갈등’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현재 프랑스 연금제도에서 막대한 적자가 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마크롱의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 적자를 미래세대가 메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부자와 법인이 내는 세금에서 메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세대든 미래세대든 언젠가는 노인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 노인의 연금 수급 연령을 미루면 미래세대가 노인이 될 때 마찬가지로 그 피해를 보게 된다. 그래서 부자와 법인이 세금을 내면 될 것을 미래세대가 추가로 부담하게 된다고 설명하는 정부의 말을 믿지 않는다.

통치자의 가장 중요한 기술은 분노의 대상을 계급이 아닌 다른 곳에 두게 하고 분열시키는 것이라고 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프랑스 젊은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연금 갈등의 핵심은 세대 갈등이 아니라 계급 갈등인 것만 같다.

국민연금은 '폰지사기'가 아니라 계획된 적자

연금 갈등의 핵심은 무엇일까. 젠더 갈등일까, 아니면 계급 갈등일까. 또는 세대 갈등일까. 나는 이들 중 어느 하나만이 옳고 나머지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모두가 부분적 진실만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사회적 모순과 갈등을 너무 한쪽 측면만 바라보고 납작하게 평가하고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제 국가 정책과 제도는 다양한 모순과 장단점이 얽혀 있게 마련이다. 특히 국민연금처럼 무려 1000조 원의 적립금을 통해 매년 30조 원을 지출하는 대형 재정 사업은 더욱 다층적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국민연금이 세대 갈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가장 극단적인 논리는 국민연금은 인구구조 때문에 적자가 될 수밖에 없고 결국 기금이 소진되어서 미래세대는 연금을 받을 수 없게 되는 일종의 ‘폰지사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완벽하게 잘못된 생각이다. 국민연금은 저출생 고령화라는 인구구조 때문에 적자가 발생하게 된 것이 아니다. 국민연금 가입자가 낸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받아 가기 때문에 발생하는 ‘계획된 적자’다. 실제로 저출생 고령화 현상이 생기기도 전인 1988년 국민연금이 출발할 때부터 이미 국민연금 기금은 2049년에 기금이 소진될 것을 이미 ‘계획’했다.

그런데 국민연금과 같은 사회보험은 국가가 돈을 벌기 위해서 만든 제도가 아니라, 국민의 노후를 보장하고자 만든 제도다. 국민의 노후를 위해서 국가가 국민연금이라는 사실상 강제저축 제도를 고안한 것이다.

강제로 국민에게 저축하게 하고 국민이 낸 돈보다 적은 돈을 준다면 그것은 국가가 아니라 ‘깡패’다. 국민은 국민의 노후를 위해 가입자가 낸 돈보다 더 많은 돈을 가입자에게 주고 가입자의 이득만큼 국가는 적자를 보게 된다. 그리고 적자가 누적되면 당연히 기금은 소진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결국 국민연금 기금이 소진되지 않으려면 흑자가 나야 하고 국민연금 기금이 흑자라는 얘기는 그만큼 가입자는 손해라는 뜻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손해는 가입자가 낸 돈에서 생기는 수익금까지 포함한 개념이다. 가입자가 지불한 돈에서 발생한 수익금도 기금 운용비를 제외하고는 가입자의 기회비용이다.

일례로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국민건강보험에는 매년 국가가 약 10조 원의 적자를 보전해 주고 있다. 국민건강보험이 적자인지 흑자인지 따지면서도, 이미 국가가 보전해 주는 10조 원의 수입을 상수로 한 이후에 재정 건전성을 논의한다. 국민건강보험법에도 국가는 14%를 재정 지원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럼 국가가 국민의 건강을 위해 매년 10조 원의 세금을 보전해주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국민의 노후를 위해 매년 일정 부분의 세금을 지출하는 것 또한 당연한 것이 아닐까?. 아니, 국가가 국민의 건강, 실업, 노후 등의 위험에 국민인 낸 세금을 지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세금을 왜 내고 있으며 국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그래서 국민연금 기금이 소진된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국민연금이 지급되지 않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맞다!

일부의 진실과 일부의 거짓

세대 갈등론으로 돌아가서, 국민연금으로 미래세대가 피해를 본다는 것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자. 미래세대의 피해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첫째, 미래세대가 국민연금의 적자를 메우느라 지나치게 많은 세금 또는 기여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미래세대의 국민연금 수익비가 전 세대보다 하락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주장에서는 부분적으로 진실인 부분도 있다. 국민연금의 모순이 젠더 갈등이라는 말도 부분적으로 맞고, 계급 갈등이라는 말도 부분적으로 맞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럼 미래세대가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어떤 구체적 정책이 필요할까?

국민연금이 아니라 기초연금이 문제

첫째, 국민연금을 폐지하거나 수급 금액을 낮추는 방법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를 통틀어서 노인빈곤율과 노인 자살률이 압도적으로 1위인 국가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정부의 노인 연금 지출액은 GDP 대비 3% 남짓에 불과하다. OECD 국가의 노인 연금 지출액 8%의 절반도 채 안 된다. 여기서 노인 관련 지출을 더 이상 줄이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국민연금을 줄이면 어쩔 수 없이 기초연금을 늘려야 한다. 우리나라 노인 연금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초연금은 국민연금보다 세대 간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킨다. 국민연금은 아직은 100% 가입자의 기여금에서 지출된다. 2055년 이후부터 세금을 통해 재정 지원을 하게 된다. 그러나 기초연금은 지금도 매년 20조 원을 세금을 통해 재정 지원하는 제도다. 즉 국민연금은 2055년도에 기금이 소진되지만, 기초연금은 지금도 이미 적립된 기금이 전혀 없이 국민 세금으로 100% 지원된다. 결국 매년 기초연금 지급 금액 20조 원만큼 국가의 추가 부채가 발생하게 된다. 미래세대 부담이 될 수 있다.

결국 미래세대를 위한다면 100% 세금으로 운영하는 기초연금보다는 상당 금액을 가입자 기여금으로 운영하는 국민연금이 더 좋다. 기초연금도 깎고, 국민연금도 깎는다면, 우리나라 노인의 빈곤율과 자살률은 더욱 극단적인 OECD 1위 국가가 되고, 우리나라 연금 지출 규모는 더욱 완벽한 OECD 꼴찌가 될 수 있다.

결론은 분명하다. 노인 지출을 더 이상 낮출 수는 없다. 그래도 만약 세대 간 형평성을 위해 낮춰야 한다면, 국민연금이 아니라 기초연금을 낮춰야 한다.

계획되고 불가피한 수익비의 차이

둘째, 현재 국민연금 가입자의 기여금 비율을 높이는 방법이다. 현재는 국민연금 가입자가 소득의 9%(가입자가 절반, 사용자가 절반)를 40년 동안 지급하면 자기 소득의 약 40% 이상을 65세부터 늙어 죽을 때까지 받을 수 있는 구조다.

이는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어떠한 원금 보장이 되는 연금 상품보다 수익금이 유리한 구조다. 국민연금 지급액은 물가 인상률을 반영한다. 아무리 수익이 높아 보이는 연금 상품도 물가 인상을 고려해 보면 국민연금보다 매력적일 수 없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최고의 재테크 상품은 국민연금에 한 푼이라도 더 많은 기여금을 납입하는 것이다. 물론 가입자가 많은 돈을 낼수록 국민연금공단은 손해를 보고 가입자는 지나치게 많은 이익을 보게 되니 납입할 수 있는 금액이 제한되어 있다.

그런데 1988년 연금 출범 시의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보면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이익률이다. 월급의 3%만 내면 월급의 70%를 받을 수 있는 엄청나게 높은 수익비를 자랑한다. 그러나 이후 납입 보험료율은 6%를 거쳐서 현재는 9%가 되었다.

이렇게 보험료율이 올라가는 것은 1988년 국민연금 출범 때부터 계획된 로드맵이다. 앞으로는 보험료율이 9%에서 10%, 11%, 12%로 단계적으로 올라갈 것으로 예측된다. 이는 국민연금 설계 때부터 상당 부분 계획된 바다. 그렇다면 결국 과거세대는 지나치게 많은 혜택을 보고 미래세대는 점점 국민연금의 수익비가 나빠질 것이라는 세대 간 불평등은 사실로 보인다.

(사진: 이상민 제공)

왜 국민연금을 처음 설계했던 사람들은 초기에는 3%를 내고 70%를 받는 ‘벨런스 붕괴’의 수익비를 설계했을까? 이들은 미래세대를 착취하는 비도덕적인 사람이었을까?

가상의 제안을 하나 해본다. 나에게 1000원을 주면 그 두 배(200%)인 2000원을 바로 준다. 또는 나에게 1만 원을 주면 150%인 1만5000원을 준다. 그럼 나에게 얼마를 투자할 것인가? 당연히 1만 원을 투자해서 1만5000원을 가져가는 것이 더 좋다. 1000원을 투자하면 수익비는 좋지만, 벌 수 있는 돈이 1000원 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처음 국민연금을 신설했을 때 정년이 얼마 남지 않는 세대는 국민연금에 납입할 수 있는 돈 자체가 적다. 40년을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록 수익비는 높지만 받을 수 있는 금액은 대단히 적다. 노후 생활을 영위하기에는 너무 적은 금액이며 거꾸로 말하면 국민연금의 기금 건전성에 미치는 악영향도 제한적이기 때문에 높은 수익비를 줄 수 있었다. 그리고 이후에는 점점 국민연금이 신뢰를 확보함에 따라 보험료율을 순차적으로 높이기로 계획되었다. 현재 국민건강보험이나 고용보험이 국민적 신뢰를 확보하면서 점점 보험료율을 높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국민연금도 국민적 신뢰를 확보하면서 점점 보험료율을 높여가야 한다. 그런데 현재 국민연금의 신뢰를 훼손하는 발언을 하는 사람이 있다. 국가가 망하지 않는 이상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법적으로나 기금이 지급될 것은 너무나 당연한 상황에서 기금이 소진되면 연금 지급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괴담을 퍼트린다. 이를 통해 국민연금의 신뢰가 훼손된다. 국민연금 신뢰가 훼손되면 국민연금 보험료율 인상은 더욱 어려워지고 그렇다면 국민연금 재정의 지속가능성은 더욱 나빠질 수밖에 없다.

우리의 연금은 아직 젊다

그래도 전 세대는 3%, 또는 9%만 냈지만 미래세대는 10%, 11%, 12%를 납부하는 것은 세대 간 형평성을 위배하여 정의롭지 못하다고 느끼는 감정은 충분히 이해된다. 논리적으로도 타당해 보인다. 그럼 만약에 1988년 국민연금 출범 시부터 12%를 납부했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미래세대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

현재 국민연금 기금에 적립된 돈은 약 1000조 원 가까이 된다. 우리나라 GDP(국내총생산)가 약 2000조 원이 넘으니 우리나라 GDP 대비 무려 45%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다. 전 세계에서 GDP 대비 40%가 넘는 엄청난 규모의 돈을 연금에 묶어 두는 나라는 없다.

왜 우리나라는 이렇게 엄청난 규모의 돈을 연금에 적립해 놓고 있을까? 이는 우리나라 국민연금이 연금치고는 상당히 젊기 때문이다. 처음 국민연금을 만들고 원칙적으로는 15년간 돈을 적립한 사람만 수급자 자격을 주었다. 15년 동안 돈을 내기만 하고 받지는 않으니 기금에 돈이 적립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현재는 인구구조 때문에 기금에 내는 사람은 많고 받는 사람은 적으니 돈이 엄청나게 쌓이고 있다. 그리고 2041년 무려 1800조 원의 국민연금 기금이 최대로 적립된 이후 조금씩 줄어들다가 2055년에 기금이 소진될 것으로 알려졌다(제5차 재정 추계 시산 결과)

그런데 GDP의 약 절반에 가까운 돈이 국민연금 기금에 묶여 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바람직하지 않다. 국민연금 기금에 적립된 만큼 소비와 투자가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GDP의 약 절반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의 국민연금 기금은 흔히 ‘연못 속의 고래’에 비유된다. GDP에 비해 너무 많은 돈이 적립되어 있다는 의미다.

국민연금을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

돈은 더욱 생산적인 곳에 투자되어야 한다. 때로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는 격언대로 위험자산에 투자해서 많은 부가가치와 경제 성장을 이끌어야 우리나라 경제가 발전하고 보다 효율적으로 된다. 그런데, 1000조 원이라는 국민연금 기금 적립금은 2000조 원이라는 연못에만 투자하기에는 너무 큰 금액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전 세계 많은 나라 곳곳에 투자하고 있다. 이는 GDP의 무려 절반에 이르는 우리나라의 자금을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 투자해서 투자한 나라의 부가가치를 높이는데 국민연금 기금이 기여하고 있다는 뜻이다.

만약 3%, 9%가 아니라 처음부터 12%를 적립했다면 이미 우리나라 국민연금 적립금 규모는 GDP의 절반을 훌쩍 넘어가게 된다. 2040년에는 1800조 원이 아니라 2000조 원, 3000조 원이 넘는 돈이 국민연금 기금에 묶여 있게 될 수도 있다. 이는 미래세대에 형식적 세대 형평성을 선물하는 대신 실질적 가난을 물려주게 된다는 의미다. 낮은 경제성장률, 적은 SOC 자산을 물려주는 것은 미래세대를 위한다면 택하지 말아야 할 선택지다.

모든 국가 정책은 장단점이 존재한다. 형식적 세대 형평성을 물려줄 때 어떤 부작용도 같이 물려줄지 따져봐야 한다. 마찬가지로 미래세대에 빚을 물려줄 때 그 빚과 함께 어떤 자산을 같이 물려줄지도 따져봐야 한다.

국민연금 수익률을 높이는 방법은?

셋째, 기금이 높은 투자 수익을 올리는 방법이다. 국민연금 투자수익률에 대한 부정적 기사가 많이 보인다. 특히 최근 <한국경제>는 우리나라 국민연금의 최근 10년 투자수익률이 세계 주요 연기금 중 꼴찌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민연금 투자수익률은 생각보다 낮지 않다. 그리고 투자수익률은 평가 시기를 어떻게 끊느냐에 따라 매우 달라질 수 있다. 내가 보유한 주식은 올랐을까, 떨어졌을까? 어제보다는 올랐고 일주일 전보다는 떨어졌고 한 달 전보다는 올랐다. 마찬가지로 1년 전보다는 떨어졌고 10년 전보다는 폭등했다. 이렇게 끊는 시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실제로 국민연금의 지난 2021년 수익률은 무려 10.8%다. 운용 수익금만 91조 원을 초과한다. 반면, 2022년 수익률은 -4.9%다. 그래서 가장 정직한 수익률 평가는 1988년 기금 출범 이후 현재까지의 전체 수익률이다. 국민연금 역사상 수익률은 연평균 6.8%다. 연평균 6.8%는 나름 나쁘지 않은 수익률이다. 그 결과, 현재 국민연금 기금에 쌓인 1000조 원 중에서 무려 300조 원은 기금 운용 수익금이다. 즉, 기금 가입자는 700조 원만 납입했지만 기금이 운용해서 얻은 수익이 300조 원이다. 이만큼 미래세대의 부담은 줄어들게 되었다.

일부 보수 언론은 특히 국민연금 수익률을 올리고자 정치적 개입을 막고 특히 ‘연금 사회주의’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기금의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서라도 국민연금 기금의 적극적인 의결권은 더욱 필요하다. 국민연금 수익률을 낮춘 가장 유명한 사례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적극적인 반대를 하지 않아서 발생한 손실이다.

부적절한 합병 과정에서 삼성물산의 가치를 하락시키고 국민연금은 큰 규모의 손실을 보았다. 최근 국민연금이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동아제약의 ‘박카스 분할’을 막고 퇴직금 인상을 반대하는 것은 ‘연금 사회주의’가 아니라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정당한 주주권의 행사로 이해해야 한다.

모든 정책에는 장단점이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세상에 완벽한 제도는 없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수반되는 부작용이 있으며, 정당해 보이는 문제 제기의 이면에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사연’도 있게 마련이다.

국민연금을 젠더 갈등으로 보면 그렇게 보인다. 계급 갈등으로 봐도 합리적으로 보이고 세대 갈등으로 보아도 맞는 말 같다. 그러나 이 모든 갈등은 서로 얽히고설켜서 부분적 진실만을 설명할 뿐이다.

국민연금이 적자가 나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 국민연금 가입자에게 주는 혜택만큼 국가가 손해를 보니 ‘의도된 적자’이며 이런 의도된 적자는 필연적으로 기금 소진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2055년에 기금이 소진된다는 사실도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사실 2055년이 되어도 기금은 소진되지 않는다.

기금이 어느 정도 줄어들면 정부가 재정을 통해 기금에 기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도 기초연금에 20조 원의 재정을 매년 넣고 있고, 국민건강보험에 10조 원의 재정을 넣고 있는데 국민연금에만 국가가 재정을 투여하지 않을 아무런 논리적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국가 국민연금에 재정을 넣지 않는 이유는 지나치게 많은 기금 적립금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2040년 이후에 기금 적립금이 줄어들게 되면 적절한 기금 규모를 유지하고자 재정을 넣을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 기금이 보유한 주식을 모두 예정된 기금 소진 로드맵에 따라 처분한다면 큰 손실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2055년에 국민연금 기금이 소진된다는 전망은 일어나지 않을 가상적 상황을 전제한 일종의 ‘스트레스 테스트’일 뿐이다. 앞으로 30년이 넘도록 국가가 단 한 푼의 재정 지원을 하지도 않고 가입자가 전혀 기여금을 인상하지 않을 것이라는 존재할 수 없는 미래를 가정한 ‘스트레스 테스트’인 것이다.

다만, 국가의 재정이 화수분이 아닌 이상 국민연금의 적자 규모는 ‘지속가능한 적자’여야 한다. 국민연금의 중장기 재정 목표는 그래서 ‘지속가능한 적자’다. 그리고 그 지속가능한 적자를 위해 국민연금 기여금은 아주 조금씩 단계적으로 인상해야 한다. 이는 국민건강보험, 고용보험 기여금이 국민적 합의를 통해서 조금씩 인상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에 기여금을 조금 더 내고 보장성이 확대된다면 실손보험 지출 규모는 적어지게 된다. 이렇게 하면 국민의 가처분 소득은 오히려 늘어난다. 마찬가지로 국민연금 기여금을 조금 더 내고 보장성이 확대된다면 사적인 연금 저축액이나 부모님에게 드려야 할 용돈이 줄어들게 된다. 국민의 가처분 소득은 더욱 늘어나게 된다. 또한, 기초연금에 지금도 매년 20조 원, 국민건강보험에 매년 10조 원의 재정이 지원된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국민연금에도 그 정도의 재정 지원은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국민적 합의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국민연금의 신뢰다. 이에 미래세대를 걱정한다면서 국민연금의 신뢰를 깎는 발언은 국민연금 기여금 인상을 더디게 해서 오히려 미래세대에 부담을 주는 행위가 된다.

그리고 국민연금 기여금 인상에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적절한 수준의 소득대체율 인상도 뒤따라야 한다. 예를 들어 현재 내 월급의 9%를 내고 40%를 받게 되는 구조에서 1%p를 더 내는 대신 1%p를 더 받는 것은 어떨까? 즉 10%를 내고 41%를 받으면 기금 소진 시점이 약 4년 이상 늦춰지게 된다. 그리고 또 다음 정부에서 11%를 내고 42%를 받으면 또다시 기금 소진 시점이 늦춰지게 된다. 이런 방식의 미세조정(모수 개혁)을 통해서 국민적 신뢰와 ‘지속가능한 적자’를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과연 41%, 42% 등의 지출이 지속가능할 것인지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런데 40%를 받는 현 제도로도 2080년 우리나라 노인 지출은 GDP의 9.4% 정도다. 현재도 유럽 국가들은 GDP의 10% 정도를 연금으로 지출하고 있다. 적어도 2080년까지는 지속가능해 보인다.

일부는 유럽 국가는 연금 지출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자동으로 지출액을 줄이는 ‘자동조정 장치’가 있는데 우리나라 국민연금에는 없기 때문에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건 나중에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추계상으로 보면, 연금 지출액을 조정하는 ‘자동조정 장치’ 도입 논의는 2060년에 해도 전혀 늦지 않다.

세대 갈등도 중요하지만 젠더 갈등, 계급 갈등도 중요하다. 그리고 전 세계 압도적 1위인 노인 자살률의 해결도 중요하다. 연금도 사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지, 일어나지 않을 고갈 문제 때문에 지금 불필요한 고통을 받아야 한다면 연금을 애초에 왜 만들었겠나?

Source: OECD Income distribution(database).


글쓴이 이상민은

분석하는 게 일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예산서, 결산서, 집행 내역을 매일 업데이트하고 분석한다. 참여연대 간사, 국회의원 보좌관을 거쳐 현재는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