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방적인 '검사의 말'은 더 이상 통하기 힘들어✔ 집무실 곳곳에 '경청'과 '침묵'을 써 붙였던 DJ✔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한 노무현의 '내 탓이오'✔ 尹, 협치 위해 많이 듣고 준비하고 공부해야

<박지원의 식탁> 12회 방송 바로 보기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의 생각과 말을 쓴 강원국

이관후 : 오늘은 특별한 손님을 모시고 특별한 주제로 말씀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대통령의 말과 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볼 건데요, 강원국 작가님을 모셨습니다.

강원국 : 제가 박지원 실장님한테는 절대 특별한 손님이 아닙니다.

박지원 : 당대의 명연설가 김대중, 국민을 확 휘어잡아버리는 노무현 대통령, 이 두 분의 생각과 말을 썼다고 하면 모두가 알아주셔야지요. 강 작가님, 오늘 제가 영광입니다.

강원국 : (제가) 쓴 게 아니고요. 그냥 받아쓰기했습니다. (웃음)

이관후 : 저 개인적으로는 같은 업종의 선배님이시기도 하세요. 저도 가장 최근에 지냈던 일이 국무총리 연설비서관입니다.

강원국 : 아, 그렇습니까? 반갑습니다.

이관후 : 요즘에 날이 많이 추워졌는데, 그냥 날씨만 추워진 게 아니고 난방비가 너무 많이 나와서 지금 국민들께서 충격을 받으셨는데. 실장님도 난방비 괜찮게 나오셨어요?

박지원 : 관리비가 한 달에 50만 원 미만 나왔는데, 지난달에 102만 원이 나왔더라고요. 딸이 관리소에 잘못된 게 아니냐고 물었는데, 정상이라고, 다 그렇게 나왔대요. 다음 달이 더 걱정이에요. 그래서 난방 좀 줄이자고 했어요. 그런데 대통령 비서실장, 국정원장, 국회의원을 한 박지원이 난방비를 걱정하면, 진짜 어렵게 사는 서민, 노동자, 이분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걱정입니다.

이관후 : 현 정부에서는 ‘문재인 정부 탓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는데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당시 연설비서관실 행정관, 연설비서관으로 일한 강원국 작가

노무현 남 탓하려면 대통령을 하지 말아야

강원국 : 제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모시면서 느낀 그분들의 국정을 대하는 자세는, 남 탓을 안 하는 겁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실제로 이런 말씀도 하셨어요.

“대통령의 임기 5년은 본인이 씨 뿌리고 본인이 열매를 거둘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그 이전에 누군가가 뿌려 놓은 것을 운이 좋아서 거두기도 하고, 그 이전에 저질러 놓은 잘못을 뒤에서 수습하기도 하고, 그런 자리다. 국정이라는 게 다 연속선상에 있는 거지, 딱 그 임기 떼어서 이건 네 탓이고 이건 내 탓이고 (할 수가 없다.) 그런 생각을 하려면 대통령 하지 말아야지”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다 현직에 있는 사람이 책임진다는 거예요. (남 탓하는) 그런 자세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잖아요.

박지원 : 그렇게 탓하려면 왜 단군 할아버지를 탓을 안 해요? 왜 단군 할아버지가 우리 한반도에다 대한민국을 창조하셨냐고요. 난방비 안 드는 베트남 정도에 가서 창조를 해 놓았으면 아무 걱정 없었을 것 아니에요. 그러면 또 겨울이 없다, 스키를 못한다 하고 또 탓하겠지. 어떻게 됐든 남 탓 잘하는 사람이 잘 되는 것 없어요.

강원국 : 그러니까 그 자리에서 제일 중요한 덕목이 책임감 아닙니까? 내가 책임진다는 자세가 기본 아닙니까?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기본이 안 돼 있는 것 같습니다. 검사 오래 하면서 남 탓만 해왔고. 지적질을 잘해야 유능한 검사가 되는 거 아닙니까? 지금도 그 연장선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대통령을 검사하듯 한다

박지원 : 대통령을 검사하듯 한다, 그렇게 봐야겠죠.

강원국 :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5년 차 때 계속 하신 말씀이 있어요. 대연정 제안도 그런 바탕에서 나온 말씀이신데, 대화와 타협의 정치죠. “우리나라가 정말 모든 면에서 우수한데 서로 대화하고 타협하고 절충하고 합의하는 문화가 없다. 특히 정치권에서부터 반목과 대립과 대결 위주니까 뭔가 결론도 안 나고 합의도 안 되고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정권을 내주는 한이 있어도 서로 대화하고 공존하고 상생하는 문화로 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죠. 지금은 그때보다도 훨씬 뒤로 후퇴해서 모두 다 적으로 두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승부사인지 모르겠으나,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포용력이 있어야 하는데.

박지원 : 당연하죠.

강원국 : 적도 좀 끌어안고 당연히 그래야 하는데, 전혀 그게 아니고.

이관후 : 그런데 검사라는 직업이 또 그렇지 못한 직업이잖아요?

대통령은 법치를 강조해선 안 되고 정치를 해야

박지원 : 검사는 단세포적이에요. 죄가 있냐 없냐만 따지기 때문에, (죄가 있다고 생각되면) 만들어낸단 말이에요. 죄가 있다고 전제하고, 만드는 거죠. 우리나라 옛날 원님들이 사람 잡아다가 ‘네 죄를 네가 알렸다!’ 하고 곤장을 치면 불게 돼 있어요. 그 잔재가 남아 있어서 그러는 것은 아니겠지만, 21세기 대한민국 검찰 검사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보면 잘 알게 될 거예요. 그래서 대통령이 법치를 강조해서는 안 됩니다. 공자님도 법치가 맨 마지막이에요. 법치가 아니라 정치를 해야 해요.

강원국 : 법치가 아니고 정치가 돼야 한다, 정말 옳은 말씀인 게, 여기서 얘기하신 정치가 바로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가 뭐예요. 대화와 타협, 상생과 공존 이거 아닙니까. 정 안 되면 다수결로 하고, 대신에 서로 무력을 행사한다거나 이런 걸 하지 않는 게 민주주의죠. 그러니까 말씀하신 정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민주주의를 안 하는 거죠.

박지원 : 윤 대통령이 최근에도 아랍에미리트에 가셔서 “아랍에미리트의 적은 이란이다”라고 얘기하셨죠. 그런가 하면 자꾸 “핵무장을 해야 된다. 선제공격하겠다”라고도 하셨고요. 그래도 한 8개월 공부를 하셨는지, 최근에는 NPT(핵확산금지조약)를 존중한다고 했고, 또 최근에도 흡수통일을 의미하는 남한식 통일을 하겠다, 라고 하니까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우리는 흡수 통일이 아니다. 평화 통일이다”라고 정정을 했죠. 대통령의 말씀은 검토되고 또 검토되고 정제되어야 합니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은 좀 똑 부러진 소리 잘하셨죠. 직설적으로.

강원국 : 그런데 어쨌든 그게 국민을 불안하게 하지는 않았어요. 지금 대통령은 너무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고, 말을 꼭 하고 나면 뭔가 해설을 하고 수습해야 하는 그런 상황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사실 국민이 기대하는 어떤 대통령다운 말이 있거든요. 그게 뭐라고 딱 정의를 내릴 수는 없지만, 대체로 국민 머릿속에 모름지기 대통령은 저래야 해, 대통령 말은 어때야 해, 그게 있는데 거기서 완전히 어긋나서 계속 가기 때문에, 그냥 윤석열답기는 해요. 그런데 대통령 같지 않아요.

아크부대를 방문해 장병들을 격려하는 윤석열 대통령 (사진: 연합뉴스)

윤 대통령, 해야 할 말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말을 한다

강원국 : 노무현 대통령을 보면 사실 자기가 하기 싫은 말인데도 대통령으로서 해야 하는 말이기 때문에 하시는 경우도 많았어요. 예를 들어 이라크 파병을 할 때라든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를 할 때라든가, 개인적으로는 자기 철학과 안 맞았어요. 그렇지만 대통령의 말이기 때문에, 대통령 자리에 앉아 있기 때문에, 싫지만 해야 할 말은 했죠. 근데 (윤 대통령) 이분은 해야 할 말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말을 하는 거죠.

실장님도 아실 텐데, 보통 대통령이 순방을 나가시면 아무래도 좀 자유로워집니다. 국내 정치에서 풀려나서 순방을 나가면 그런 기분을 느껴요. 평소에 워낙 스트레스를 받다가 해외에서 약간 긴장이 풀어지는 게 있죠.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은 나가서 동포 간담회를 하면 좀 안 하셔야 할 말, 물론 문제가 되는 말은 아니지만 (그런 말을) 이제 하시곤 했죠. 반면에, 김대중 대통령은 어떤 상황에서도 흐트러짐이 없으셨던 것 같아요.

박지원 : (김대중 대통령은) 외교적 문서는 반드시 원고를 작성하게 합니다. 예를 들면 클린턴 대통령과 전화를 하신다 하면, 사전에 비서실에서 다 조율이 돼서 하는 거예요. 클린턴 대통령이 “각하, 안녕하십니까?”라고 하면, 김대중 대통령님도 인사말부터 준비한 대로 딱 읽어요. 그래서 상대가 뭐라고 하면, 또 그대로 말씀하고. 그러니까 정상외교는 항상 성공해요. 외국 나가면 정상이 성공하는 게 미리 물밑 조율을 해서 다 합의된 것을 확인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께 내가 “(왜) 그렇게까지 하십니까”라고 하는데도 그렇게 하세요. 그래서 대통령의 말씀은 잘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실수를 안 해야 해요. 실수를 하면 결국 외교라는 게 국익인데 엄청나게 큰 국익이 손실이 나는 거죠.

이관후 : 이전 정부에서 대통령과 총리가 외교를 조금 나눠서 했었기 때문에 저도 중요한 외교 관련 회의 발언을 작성하고 보고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아니라 국무총리도 그렇게 조심을 했거든요. 어떤 말씀 하고 싶은 게 있단 걸 제가 알아요. 그러면 저도 “하고 싶으신 얘기가 있으시겠지만 조금 참으셔야 합니다”라고 말씀드렸어요. 총리도 이렇게까지 준비를 하는데, 대통령의 말은 얼마나 외교적으로 중요합니까?

대통령의 말은 우리끼리하는 게 없어

강원국 : 그러니까 ‘외교적’이라는 말은 상대가 있다는 말이거든요. 그런데 (윤 대통령) 이분을 보면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상대를 두고 누군가를 설득하고, 이런 걸 별로 안 해보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일방적인 말만 해 오셨어요.

이관후 : ‘검사의 말’이네요.

강원국 : 그렇게 일방적인 말만 해 오셔서, 국내에서도 지금 상대를 인정하는 말을 안 하시거든요. 야당을 향해서 뭔가 이야기를 안 해요. 자기편들끼리만 모여서 얘기를 하고. 그런데 국제무대에 나가면 그게 안 통하거든요.

(행사) 끝나고 나오는 길에 바이든에 대해서 자기들끼리 얘기하는 것 보세요. 거기는 상대가 있는 건데. 이번에도 이란이라는 상대가 있는데, 우리 장병들 있으니까 ‘우리끼리 얘기야’ 하면서, 또 얘기하고. 기본적으로 상대를 염두에 두지 않는 게, 저는 큰 문제라고 봅니다.

이관후 : 내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하고만 얘기한다고 생각하지만, 대통령의 말은 애초에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이군요.

대통령은 말하는 사람 아니라 듣는 사람

강원국 : 김대중 대통령님은 집무실 곳곳에 ‘경청’, ‘침묵’이라고 써서 붙여 놓으셨다던데요. 저는 말로만 들었는데, 이렇게 써 놓으셨다고.

박지원 : 평소에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데도, 또 잊어버리니까. 그렇게 써서 붙여 놓기까지 한 거예요. 김대중 대통령은 비서나 측근이 보고하면 가만히 듣고 계세요. 아무 소리 안 하고 계셔서 보면 ‘당신이 보고하는 사람이고 나는 듣는 사람이다’라고, 그런 자세이신 거죠.

제가 거기에서 눈에 들 수 있었던 것은, 어떤 팩트를 보고하고 ‘제 생각에는 이렇게 해결했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대안을 제시한다고요. 그러면 ’아, 그게 좋겠다‘ 하고 그 자리에서 얼른 결정을 해줘요. 안 그러면 ’그것도 좋지만 내 생각에는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또 제가 그게 좋습니다, 혹은 아니요, 이렇게 대화가 이어지지요. 늘 토론해서 가장 합리적인 안을 도출하고 그걸 시행해요.

김대중 대통령이 연설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데, 원고를 당신이 꼭 써요. 써서 그걸 몇 번이고 읽어서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요.

강원국 : 장옥추 씨를 앞에 두고 읽으셨어요. 20대 여성 비서관.

박지원 : 그리고 그 연설문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고는 찢어버리고 가서 얘기를 하시는 거야. 또 중요한 연설문은 녹음을 해서 이훈 비서관한테 넘겨주고 그랬지.

연설비서관실에 폭탄이 떨어지다

강원국 : 그걸 우리가 ‘폭탄’이라고 그랬죠. 그거는 우리가 써드린 연설문이 전혀 마음에 안 드시는 거예요. 이게 고칠 수 있는 수준이 아닌 거예요. 그러면 처음부터 끝까지 구술로 해서 테이프가 와요. 근데 놀라운 게 그 녹음을 들어보면, 그냥 완벽한 글이에요.

우리가 감히 손도 못 대지만, 고칠 데가 없어. 중복도 없고, 누락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그대로 글로 옮기면 돼요. 그러니까 그거를 보면, 읽으신 건지 그냥 말씀하신 건지. 그렇게 뺄 것도 없고 빠진 것도 없는 이유가, 아마 실장님 말씀대로 몇 번 해보시고 완벽하게 정리가 됐을 때 녹음을 하시지 않았나 싶네요.

이관후 : 감탄도 하시겠지만, 한편으로는 ‘우리는 뭐 하는 사람들인가’ 싶겠네요. (웃음) 박지원 실장님도 요즘 강연, 인터뷰 많이 하시는데, 대통령님 하신 것을 보신 게 도움이 되시나요?

박지원 : 그렇게 배웠으면, 그렇게 노력을 해서 하면 돼요. 저도 방송 인터뷰도 하고, 요즘은 매주 강연 한 번씩 다닙니다만. 질문 원고를 일주일 전에 주면, 그때부터 계속 생각해나가는 거예요. 생각나는 걸 모두 메모해 놨다가 하루 전에 딱 정리를 해서 얘기를 해요.

아무튼 김대중 대통령은 그런 철저한 메모와 준비를 하시는데, 거기다 엄청난 기억력을 가지고 계세요. 예를 들어, 저한테 전화 와요. ‘작년 12월 24일 <경향신문> 사설 같은데 이런 내용이 있었어. 그러니까 내가 연설문을 쓰는데 거기를 참조할 테니까 그걸 좀 보내줘.’ 그때는 지금처럼 인터넷이 안 돼서, 저는 또 이제 비서관들한테 종이 신문을 찾으라고 시키죠. 찾아보면 하루 이틀 날짜 정도만 차이가 있지, 다 맞아요. 그리고 경향신문이면 경향신문, 한국일보면 한국일보. 중앙일보면 중앙일보, 딱 맞아요. 말 잘하는 사람은 기억력도 좋고 자기가 공부를 해야 한다, 이걸 배웠지요.

강원국 : 저도 듣기만 했는데, 누가 보고를 할 때 메모를 많이 하시잖아요. 김대중 대통령이 다이어리 같은 걸 들고 다니시는데요. 뒤적뒤적해 보시면서 보고하는 내용과 본인 기억과 다르면 확인을 해보시는 거죠. 대통령이 다이어리 뒤적뒤적하기 시작하면, 보고하는 사람이 그때부터 멘붕이 오는 상황이죠. 보고 내용이 이분의 기억과 뭔가 좀 다르구나.

박지원 : 장관들이나 수석들이 보고를 하면, 저는 비서실장이니 옆에 배석을 하잖아요. 대통령을 속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 보고서를 놓고 대통령 얼굴을 쳐다보면서 보고를 해 나가는데, 그게 완벽한 원고가 아니잖아요. 개조식으로 써와서 보고하는데 통계 숫자 같은 걸 틀리게 얘기하는 거예요. 그러면 대통령이 저한테도 그걸 한번 보라 하고, 제가 보고받기로는 이거 아닌데요, 그러면 ‘전화로 한번 확인해보세요’ 하세요. 그런데 딱 전화해 보면 틀려요. 대통령이 맞은 거지. 그렇게 하셨죠.

보고서 읽는 걸 제일 재미있어 한 대통령들

박지원 : 지금은 어찌 됐든 윤석열 대통령이 잘하시는 게 제일 중요하잖아요.

강원국 : 윤석열 대통령 아래에도 우리 실장님 같이 좀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없는 것 같아요.

박지원 : 비서실장은 전 세계에서 제가 제일 잘해요. (웃음) 그런데 내가 윤석열 대통령 비서실장은 할 수 없으니까. 어쨌든 지금은 윤석열 대통령이 잘해야 해. 잘하려면 '박지원의 식탁'을 보시고, 또 대통령실 참모들도 대통령이 공부를 하게끔 해줘야 해요. 김대중 대통령 같은 분은 독서를 좋아하시니까. 각 부처와 수석실에서 올라간 보고서를 다 읽어요. 그걸 읽는 걸 재미있어 해. 그래서 밤 11시쯤 전화가 와요. 더 읽을 보고서 없냐고. 노무현 대통령도 그러고.

강원국 : 새벽 2시까지 보고서 보시고. 보고서 보는 게 무슨 취미라니까요. 재미로 생각하시고. 정책을 개발하고 그런 걸 재미로 생각하고 국정을 하셔야 하는데. 그런 걸 재미없어 하고, ‘야, 됐고, 내가 알아서 할게’ 이러는 것 같아요. 그래도 보셔야 합니다.

박지원 : 여러 얘기를 하고 다니다가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성격을 알 수 있는 에피소드를 한 번 얘기했어요. 다 웃더라고요. ‘김대중 대통령은 주말 밤 10시 넘은 자정까지 보고서 읽는 재미로 살고, 노무현 대통령은 인터넷 잘하니까 인터넷 읽으며 댓글 다는 재미로 산다’고.

강원국 : 그게 무슨 인터넷 포털 기사 이런 게 아니고, ‘이지원(Easy One)’이라고 청와대 내부에서 보고서를 올리는 전산망에 댓글을 다신 거예요. 이지원에 보고서가 다 올라오는데, 그걸 대면보고를 다 못 받으시니까, 온라인에서 보고 답을 하신 거죠. 그런데 이 시스템이 댓글 단 시간이 딱딱 나와요. 보면 시간이 한밤중이에요. 보고서 보고 답을 하시는 것을 재미있어 하셨어요. 보고서 올라온 거 보고 거기에 대통령이 의견을 다니까, 그날 그날 소통이 바로바로 되죠. 이지원으로 되니까.

박지원 : 김대중 대통령은 댓글을 안 달았거든요. 제가 국정원장을 할 때, 내부 소통망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원장이 지금까지 댓글이나 글을 올린 적이 없대요. 그래서 내가 댓글도 한 번씩 달고, 이런저런 얘기 올리면 직원들이 굉장히 좋아하더라고요. 그런데 윤 정부는 직원이 좋아하는 원장을 고발해 버리니 되나? (웃음)

임기 초에 중간평가를 받자고 했던 노무현

이관후 :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님은 어쨌든 보고를 듣는 것도 굉장히 좋아하시고, 그만큼 준비를 많이 했다는 거죠. 그런데 한편으로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님은 사과도 자주 하셨던 것 같거든요.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도 잘하셨던 것 같은데요.

강원국 : 제 기억으로 대통령 모시고 인도네시아가 순방 다녀오는 길에, 총무비서관이 돈을 받았다는 내용을 보고 받으셨어요. 그랬더니 기내에서 즉시 기자들을 불러서 사과를 하시고, 또 내리자마자 사과를 하시겠다고 비행기에서 사과문을 준비하라고 하셨어요. 어느 수준까지 얘기를 하시냐면, ‘참여정부는 다른 거 없다, 도덕적 명분 하나로 세워진 정부인데 청와대 비서관이 그런 일을 했다고 그러면 도덕적 기반이 무너진 거다. 그래서 갑자기 재평가를 묻겠다’는 거예요. ‘국민들께 나 이대로 대통령이 해도 되냐?’ 이렇게요.

이관후 : 재평가를 받겠다는 것은 정말 큰 일 아닙니까?

강원국 : 그게 임기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는데, 이게 이분의 진심이라는 게 느껴졌어요. 이분은 탄핵당할 때도 야당이 ‘사과하면, 탄핵 안 시키겠다’고 대놓고 사과를 요구하는데도 안하고 탄핵을 당했거든요. 이분에게 사과는 뭐냐면, 내가 뭔가 잘못했다는 생각을 기반으로 그걸 인정한 상태에서 하는 게 사과인데, ‘사과하면 나 탄핵 안 시킨다’고 해서 하는 사과는 그게 어디 사과냐, 그런 사과는 못 하겠다, 이렇게 생각을 하신 거죠. 그러다 국회에서 탄핵당하신 거고.

또 이런 사과도 안 하시려고 그랬어요. 사과해 놓고 똑같은 일을 또 하는 거. 예를 들어 정치자금 문제로 해서 국민께 사과드리고 그런 일이 재발하는 구조, 그러니까 제도는 바꾸지 않고 말로만, 사과하고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사과도 의미가 없는 사과다 이런 거죠.

그런 형식적인 거 말고는 정말 사과를 너무 많이 했어요. 그런데 그게 그분의 진심이에요. 농민들 시위 때 돌아가신 분에 대해서도, 정말 마음으로부터 반성하고 사과하고 다 자기 책임이라고 생각하셨어요. 요즘 같으면 경찰 혼내고 그러셨을 텐데요. 제가 경찰들의 책임이라는 내용의 초안을 잡아 갔는데, 저한테 그러는 거예요. ‘이게 경찰만의 책임인가, 경찰은 사기를 먹고 일하는 조직인데, 이렇게 해 놓으면 경찰들이 어떻게 자기 일을 하겠나’라고 말이지요. 그래서 다시 구술을 해주시는데요. 책임을 다 자기한테 돌리는 거예요. 경찰이야말로 대통령의 명을 받아서 하는 사람인데, 잘못되면 대통령 책임이지 어떻게 경찰의 책임이냐는 거예요. 그분은 그게 진심인 거예요.

이관후 : 이태원 참사가 생각나네요.

용기와 책임을 가진 지도자만이 진솔한 사과 할 수 있다

박지원 : 진정한 용기를 가지고 있는 책임 있는 지도자만이 진솔한 사과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봤잖아요. 세월호로 몇 년간 우리가 얼마나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했습니까? 그런데 박근혜, 끝까지 사과 안 했잖아요. 그런데 10.29 이태원 참사에서도 윤석열 대통령, 사과 안 하고 오히려 이상민 장관 어깨 두드려주고.

김대중 대통령은 자제분들의 비리 같은 문제를 가지고 사과를 많이 하셨는데요. 김대중 대통령이 늘 저한테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누구나 잘못할 수 있다. 언론에서 보도가 되면 그것이 사실이면 빨리 사과를 해라. 그래도 언론이 공격을 하면 빨리 물러가 버려라. 그리고 만약 보도가 사실이 아니면, 끝까지 싸워라’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사과를 잘해요.

강원국 : 검찰은 사과를 하면 또 안 되는 조직이라.

박지원 : 검찰이 사과를 하면 무죄가 되니까 안 하는 거도 있죠.

강원국 : 그런데 이제 검사가 아니라 대통령이 됐으면 사과를 해야죠. 아니 이태원 참사 피해자 가족들이 그렇게 대통령의 사과를 원하는데, 그들의 한을 좀 풀어주고 그런 한마디 하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박지원 : 이상민 장관도 물러나게 하고요. 그 양반이 정 그렇게 유능하면 나중에 총리를 시키든지. 김대중 정부 5년간 제가 일곱 번 대통령 임명장을 받았어요. 이건 우리 헌정사 기록입니다. 그건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제가 여섯 번 물러간 거예요. 당에서 잘못해도 청와대 수석인 제가 책임지고 물러갑니다, 하면 그냥 정리가 돼요. 그래서 나가면 또 쓰고.

그래서 저는 윤석열 대통령이 말씀도 좀 검토되고 정제된 말씀을 하시고. 적극적인 말씀, 똑 부러진 말씀 대신에 외교적 수사를 사용하셨으면 좋겠고. 잘못한 것이 있으면 국민이 감동하도록 사과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말의 빈곤은 철학의 빈곤

이관후 : 이런 평이 있지 않습니까. 김대중 대통령님은 글을 잘 쓰셨고, 노무현 대통령님은 말씀을 잘하시고. 그래서 스타일이 좀 다르다. 실제로 그런가요?

강원국 : 그렇지 않아요. 김대중 대통령이 젊으셨을 때를 사람들이 못 봐서 그렇지, 말을 진짜 잘하시고요. 노무현 대통령은 글을 얼마나 잘 쓰시는데요. 말과 글은 떼 놓을 수 없는 거고. 말을 잘한다는 건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거고, 같이 가는 거죠.

김대중 대통령님은 늘 ‘반보만 앞서가라’, ‘선비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 감각이 필요하다’, 이런 입장에서, 과격하거나 단호한 주장은 대통령이 되셔서는 거의 안 하셨어요. 그래서 주로 말씀과 글이 설명에 가까워요. 조곤조곤 설명해 주시는 쪽이고.

노무현 대통령은 그런 면에서 좀 색깔이 다르죠. 하지만 근본적으로 두 분 다 결국 말과 글이 철학이고 생각이고, 그게 바탕에 있지 않습니까. 현 대통령님의 말이 좀 빈곤해 보이는 것은, 저는 철학의 빈곤이라고 생각합니다. 입만 열면 자유만 얘기하지 다른 얘기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콘텐츠가. 그런 점에서는 (김대중·노무현) 두 전 대통령이 다 독서광에 활자 중독자들이란 게 중요하죠.

사실 노무현 대통령 초기에 ‘이거 못 해 먹겠다’는 말을 했다고 이슈가 됐는데, 그 말의 진짜 뜻은 ‘대통령 잘하고 싶은데, 내가 이 자리에서 이걸 (제대로) 못할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든다’는 얘기거든요. 대통령의 자리가 해보니 너무 엄중한 자리고, 그래서 정말 내가 이걸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이게 걱정이 된다는 거예요. 원래 풀 버전은 ‘대통령 못 해 먹겠다’가 아니고 ‘못 해 먹을지 모른다는 걱정이 된다’예요. 워딩이 앞뒤 빼고 나온 건데. 지금 대통령님이 그런 걱정 좀 했으면 좋겠어요.

YS, 사인펜으로 그은 한 줄이 늘 기사가 됐다

박지원 : 그런데 YS, DJ를 비교해야 재미있어요. 좌우지간 정치적 동물 감각은 YS가 최고. YS는 무시할 수 없는 천재적 동물 감각이 있는 분이셨어요.

강원국 : YS는 사실 고치는 실력은 없으시죠. 그런데 연설문 딱 올려드리면 굵은 사인펜으로 한 줄 쫙 긋는대요. 근데 다음 날 조간들을 보면, 다 그 한 줄을 쓴대요. 기자가 뭘 받을 줄을 아시는 거야. 일본말이라 좀 그런데 소위 ‘야마’가 뭔지를 YS는 아는 거예요. 동물적 감각이 실장님 말씀대로 있으신 거죠.

대구 서문시장 주차장 문제 해결 부탁해요~”

이관후 : YS 말고도, 말을 잘하는 정치인들도 있을 것 같은데요. 기억나는 정치인들 좀 있으세요?

강원국 : 계시죠. 박지원 실장님. 이제는 거의 통찰과 혜안의 수준에 이르신 것 같아요.

박지원 : 제가 고래입니다. 칭찬하면 또 여기서 춤춰.

강원국 : 아니, 정말로요. 여기 계셔서가 아니고 그야말로 촌철살인, 꿰뚫어 보시는 게 옛날에 비서실장 하실 때도 정말 높은 수준이셨는데요.

박지원 : 저는 김대중 대통령한테 배웠기 때문에, 늘 그 속에서 살아가요. 메모도 그렇게 하고요.

최근에 제가 메모를 한 것이요, 지난달 8일에 제가 대구에 갔어요. 민주당 대구시당 강민구 위원장이 초청을 해서 갔습니다. 제가 보수의 심장인 서문시장을 한번 가자 했더니, 강민구 위원장이랑 민주당 지역위원장들이 깜짝 놀라서 ‘거기 못 갑니다. 민주당 가면 당합니다.’ (그래서 제가) ‘아니 정치인이 어떻게 환영만 받냐. 당하면 왜 당하는가를 알아보자, 부딪혀보자.’ 그래서 갔어요. 갔더니 거기 상인번영회 회장 등이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더라고.

서문시장이 그렇게 큰지 몰랐어요. 노점상까지 8000개의 가게가 있고, 종사자가 1만2000명이고 하루에 3만여 명의 쇼핑객이 온대요. 외국 관광객들도 버스를 타고 많이 오는 거예요. 그런데 상인번영회장이 나보고 ‘홍준표 시장하고 가깝다는데, 우리나라 전통시장의 가장 큰 문제점인 주차장 시설을 대성중학교 지하에다 만들어주기로 했으니까, 온 김에 그걸 좀 (부탁)해달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내가 전화해서 ‘홍 시장, 내 대구 왔다’, 그랬더니 ‘형님 웬일이여’ 그래서 ‘너 잡으러 왔다’ 그래서 웃었습니다.

이관후 : 대구 출마 선언하신 거지요. 지금? (웃음)

박지원 : 아니, 아니지. (상인번영회장님께) “홍준표 꽉 붙들고 (주차장 만들어달라고) 부탁하겠다. 그리고 대구 서문시장 몰표를 받아서 대통령 당선된 윤석열 대통령이 (서문시장에) 주차장 하나 만들어 주시라고 방송국에 말하겠다” 했더니, 꼭 해주래요. 이건 편집에서 꼭 살려서 대구에 나가야 합니다.

많이 듣고 준비하고 공부해서 말하라

이관후 : 오늘 '박지원의 식탁'에서는 ‘대통령의 말’에 대해서 얘기를 해봤습니다. 마지막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앞으로 어떻게 말을 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한 말씀 해주세요.

박지원 : 자꾸 제가 강연하면서 빼놓고 하는 얘기가 있는데, 대통령 선거 때는 치열하게 경쟁을 하더라도 일단 대통령에 당선되면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된다. 민주당도 대통령의 발목만 잡지 말고 협력할 것은 과감하게 협력하고 반대할 것은 딱 부러지게 반대하고. 대신 개혁과 혁신에 대해서는 앞장서서 해나가야 된다. 이게 김대중 대통령이 (말하는) ‘행동하는 양심’이고 노무현 대통령의 ‘깨어 있는 시민’ 정신이다. 두 대통령의 말씀대로 하면 민주당이 성공한다 하는데, 민주당도 좀 못 하고 있어요. 모든 원인은 대통령이야. 이분이 마음을 검사들한테만 열어요.

강원국 : 자기 쪽인 여당도 끌어안지 못하는데, 야당을 끌어안아 달라는 게 무리죠.

박지원 : 그러니까 이준석, 나경원, 유승민 보세요. 다 당해버렸잖아요. 그래서 제가 그 얘기를 해요. 김대중 대통령은 ‘백성이 하늘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이 먼저다’ 했는데 윤석열 대통령은 ‘윤핵관이 먼저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강원국 : 실장님께서 다 말씀을 해 주셨는데요. 많이 듣고, 많이 준비하고, 공부하고. 그런 후에 좀 말씀을 하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박지원 : 이하 동문입니다.

이관후 : 오늘 강원국 작가님 그리고 박지원 실장님 얘기를 대통령실에서 잘 들어서, <MBC> 기자 전용기 문제도 해결됐던 것처럼 이 문제도 해결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럼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박지원 : 감사합니다.


초대 손님 강원국은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8년 동안 대통령의 말과 글을 쓰고 다듬었다. 김대중 대통령 때는 연설비서관실 행정관, 노무현 대통령 때는 연설비서관으로 일했다. 저서로는 <대통령의 글쓰기>, <회장님의 글쓰기>, <강원국의 글쓰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