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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 칼럼] 애플이 인도로 간 까닭은

By | 2023년 1월 16일 | 경제, 국제, 산업

‘Made in India’. 애플의 아이폰14에 이런 생산지 표시가 붙기 시작했다. 애플이 2022년 말부터 중국 공장의 최신 아이폰 생산 물량 일부를 인도로 돌렸기 때문이다. 저렴한 인건비와 풍부한 인프라, 거대 소비시장을 갖춘 ‘세계의 공장’ 중국에서 애플의 ‘탈출’이 시작된 것이다.
애플의 인도행은 미-중 패권 전쟁 등으로 제기된 ‘중국 리스크’가 기업들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풍경이다. 박현 필자는 이를 두고 “후세 역사가들은 2022년을 글로벌 공급망의 대격변이 시작된 해로 기록할지 모른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새롭게 짜여지는 글로벌 공급망의 윤곽이 2023년 조금씩 드러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새로운 ‘글로벌 공급망’은 어떤 모습일까? [편집자 주]

✔ 90% 이상 중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 프로젝트에 나선 애플
✔ 인도에선 아이폰, 베트남에선 아이팟·랩톱·애플워치 등 생산
✔ 미국 정부 요청대로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약속한 TSMC
✔ 세계의 공장 중국도 이제 옛말, 이를 벗어나려 노력 중인 미국
✔ 우리는 다층적 글로벌 공급망의 새판짜기를 성장의 새로운 기회로

사진:셔터스톡

애플은 현대 미국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대표 기업이다. 시가총액이 2조 달러를 넘어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에서 가장 가치를 높게 평가받는 기업이다. 그래서 애플의 일거수일투족은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애플, 중국 중심 공급망의 재편을 시작하다

애플은 최근 지금의 애플을 있게 한 원동력인 중국 중심의 공급망을 재편하는 프로젝트에 나섰다. 애플은 현재 중국 정저우와 선전 등에 위치한 생산공장에서 아이폰을 비롯한 자사 제품의 90% 이상을 생산하고 있다. 미-중간 전략 경쟁과 중국의 코로나 봉쇄 정책 등의 어려움 속에서도 기존 공급망을 유지해오던 이 기업이 2022년 말부터 공급망을 재조정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미국의 대표 기업일 뿐만 아니라 중국 당국도 사업상 최대한 편의를 봐준 기업이었기 때문에 애플의 움직임은 상당한 함의를 갖는다.

중국 사업을 하는 전 세계 기업들은 미-중 갈등 심화와 중국의 코로나 정책 등 불확실성이 매우 큰 상황에서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데, 애플의 전략이 의미 있는 지침이 될 수 있다. 또한 2018년 무역전쟁이 시작된 이후 미국 행정부가 취해온 대중국 전략이 기업 단위에서도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겨지기 시작했다는 의미도 있다.

애플의 전략 중 최근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애플 제품의 절반 가까이를 중국 이외의 아시아 지역에서 생산한다는 것, 둘째는 애플 제품에 사용되는 핵심 부품인 반도체 칩 가운데 일정 양을 미국에서 조달하는 것이다. 두 가지 모두 ‘중국 리스크’를 줄이려는 포석이다.

폭스콘은 애플의 요청으로 ‘아이패드’와 랩톱 컴퓨터 ‘맥북’의 조립라인을 중국에서 베트남 동북부 박장성으로 이전했다(지도:연합뉴스)

아이폰⸱랩톱·애플워치 생산을 인도와 베트남에서

첫 번째 전략과 관련해 애플은 지난해 4분기에 중국에서 생산하는 외주 전문업체들에게 생산 공장 일부를 중국 밖으로 이전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이전 대상국은 인도와 베트남이다. 인도에선 아이폰, 베트남에선 아이팟·랩톱·애플워치 등을 생산하도록 주문하고 있다. 실제로 애플의 최대 외주업체인 대만 폭스콘은 그동안 중국 정저우 공장에서 최신 아이폰을 생산했으나, 지난해 말부터는 인도에서도 최신 아이폰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인도에서 생산되는 아이폰은 전체의 5% 수준이다. 애플은 2025~26년까지 미국 수요(글로벌 수요의 25~30%)는 중국 이외의 지역에서 공급하며, 장기적으로는 중국 수요는 중국 내 공장에서, 중국 이외 지역 수요(글로벌 수요의 40~45%)는 중국 이외의 공장에서 공급하는 전략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두 번째 전략은 2024년부터 애플 제품에 들어가는 반도체 칩 일부를 대만 TSMC의 미국 애리조나 공장에서 조달한다는 것이다. 이런 방침은 2022년 12월 6일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위치한 TSMC 반도체 공장에서 열린 장비 반입식 행사에서 공개됐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함께 이 행사에 참석해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 이 공장은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인 TSMC가 미국에 짓는 첫 대규모 공장이다.

팀 쿡 “애플 실리콘 칩에 ‘메이드 인 아메리카’ 새긴다”

TSMC는 대부분 대만에서 칩 제조를 해왔으나 미국 정부의 요구로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약속한 바 있다. 쿡은 이 행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연설을 했다. 애플은 지금은 모든 반도체 칩을 TSMC 대만 공장에서 수입해오고 있는데, 애플 제품에 사용되는 ‘애플 실리콘 칩’ 일부를 2024년부터 애리조나 공장에서 납품을 받는다고 발표했다. 쿡은 “자랑스럽게도 애플 실리콘 칩에 ‘메이드 인 아메리카’가 새겨지게 됐다”며 “믿을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순간이다. 미국이 첨단 제조의 새로운 시대를 열 기회”라고 말했다.

백악관이 전한 연설문을 보면 바이든 대통령도 이날 꽤나 고무된 듯 보였다. 그럴 만도 했다. 2021년 취임 이후 대중국 견제와 첨단 제조업의 미국 내 부활이라는 대선 공약 실현에 심혈을 기울여왔는데, 그 결실이 맺어지는 장면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이든은 연설에서 TSMC의 미국 내 반도체 생산을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대부분의 미국 IT 기업들은 애플처럼 반도체 칩 생산을 TSMC 대만 공장에 거의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만약 미-중간에 우발적인 충돌이나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 미국 기업들의 핵심 부품 조달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미국 경제가 마비되는 지경에 처해지지는 않는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런 움직임은 애플만 보이는 게 아니다. ‘중국 리스크’를 줄이려는 움직임은 국가안보와 관련된 전략 산업과 기술 업체들을 넘어 전자제품과 자동차, 의류 등 일반 산업으로까지 점차 확산하는 형국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중국에 무역전쟁의 포문을 열 때만 해도 반신반의하던 경영자들이 코로나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갈등 장기화, 중국의 코로나 봉쇄 정책 등을 겪으며 공급망 재편의 실행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도 후세 역사가들은 2022년을 글로벌 공급망의 대격변이 시작된 해로 기록할지 모른다. 2023년은 이것이 본격화되며 새롭게 짜여지는 글로벌 공급망의 윤곽이 조금씩 드러날 것이다.

대만 반도체 업체인 TSMC 미국 사옥 (사진:셔터스톡)

글로벌 공급망의 대격변이 시작된 2022년

공급망은 제품과 서비스의 기획부터 부품·원재료 조달, 생산, 유통을 거쳐 소비자에게 판매되기까지 전 과정을 말하며, 글로벌 공급망은 이것이 다수의 국가에 걸쳐 이뤄지는 것을 뜻한다. 이런 글로벌 공급망이 세계 경제의 중앙 신경 시스템 역할을 하면서 세계화가 진전됐다. 주로 비즈니스계와 학계에서 전문용어로 사용되던 것이 미-중 패권 경쟁과 코로나 팬데믹을 계기로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해졌다. 우리나라에선 2021년 요소수 사태를 거치면서 공급망이 일상생활과 밀접히 관련돼 있다는 걸 체감했다.

대부분의 공급망 활동은 20세기 초반만 해도 미국에서도 주로 기업 내부에서 이뤄졌다. 당시 대표적 기업이던 포드자동차의 경우 한 공장에서 철강·유리·고무 등 원자재 생산에서 자동차 조립까지 모든 걸 해결했다. 포드는 심지어 고무 농장과 석탄 광산, 그리고 원재료 수송을 위한 철도 차량까지 소유했다. 이를 ‘수직통합형’이라 부르는데, 한국 재벌의 수직계열화가 이와 비슷하다. 생산의 전 과정을 직접 통제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지만 1930년대 대공황이라는 불경기에도 고정비용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공급망은 아웃소싱(상품·서비스를 외부 공급업체에서 조달)과 오프쇼어링(생산 과정 일부를 해외에 위탁)을 통해 점차 전문화와 글로벌화의 길을 걸었다. 이른바 ‘글로벌 공장 모델’이다. 다국적 기업들은 저렴한 노동력을 사용하고 시장 접근도를 높이기 위해 여러 나라에서 상품 조립을 비롯한 대부분의 생산 활동을 수행했다. 세계화가 1960년대 중반부터 모멘텀을 받으면서 다국적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노동집약적인 제조업을 동아시아 지역에 오프쇼어링하는 게 흔해졌다. 특히, 냉전 종결과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계기로 이런 세계화 물결은 가속도가 붙었다. 동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중국은 저렴한 인건비와 풍부한 인프라, 거대 소비시장을 기반으로 글로벌 공급망의 중추 국가로 부상했다.

중국, 2010년대에 ‘세계의 공장’이 되다

중국은 1990년대 초반부터 20여 년간 고속성장을 지속하면서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잡았다. 세계 제조업 생산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1년 3.1%에서 2015년 17.6%로 급격히 높아졌다. 중국은 미국의 제조업 기반을 쇠퇴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 일본의 지위마저 대체했다. 아시아개발은행(ADB) 자료를 보면, 2005년에만 해도 제조업 분야 글로벌 공급망의 중심은 독일, 일본, 미국이었다. 이 나라가 각각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의 공급망 중심지였다. 그런데 2017년에는 세 나라 중 독일만 건재했다. 중국은 아시아에서 일본을, 아메리카에서 미국을 대체했다. 또한 세계 제조업의 부가가치 점유율에서도 독일을 앞질러 명실상부한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매김했다.

미국은 서비스 분야에서는 여전히 글로벌 공급망의 중심이지만, 제조업 분야에서는 주변부로 전락했다. 미국은 2005년에는 제조업 공급망을 주로 독일에 의존했으나 2017년에는 중국에 의존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미국과 일본이 2010년대 중반부터 대중국 견제에 힘을 합하고 있는 것은 안보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이런 경제적 이해관계가 깊게 개입돼 있다.

2000년과 2017년 글로벌 공급망 변화(자료: ADB)

제조업 분야 글로벌 공급망의 중추 국가가 되기 위해선 이것을 가능케 하는 조밀한 산업 생태계가 뒷받침이 돼야 한다. 원자재와 부품의 신속한 공급과 개발·조립 능력, 우수한 기술자와 노동력, 안정적인 전력·물류망 같은 인프라 등이 갖춰져야 한다. 예컨대, 중국 광둥성 선전시가 ‘중국판 실리콘밸리’로 성장한 것도 인근 둥관시와 함께 그 어느 나라도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신속하게 전자제품들을 개발·생산해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전 시내에 위치한 화창베이는 전자제품과 부품 유통의 장(場)이자 인근 공단 지역과의 연결 통로 구실을 하는데 웬만한 전자제품은 주문하면 며칠 안에 수천 개를 공급할 수 있다. 풍부한 개발인력을 갖춘 외주 공장들이 포진해 있어 가능한 일이다.

과거 섬유·완구 모조품을 생산하는 ‘짝퉁 천국’이었던 선전은 20여 년에 걸쳐 이렇게 IT 혁신의 중심지로 변신했다. 다국적 기업들이 선전을 비롯한 중국 주요 도시에 공장을 설립한 것도 이런 이점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다국적 기업들은 본사에서 상품을 설계한 뒤 여러 층위의 외주 업체들에 생산을 지시하는 식으로 움직인다. 제품의 변동 주기가 매우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단시일 안에 대규모 생산을 해낼 수 있는 이런 능력을 다국적 기업들이 높이 사는 것이다.

중국을 뿌리치려는 미국의 안간힘

미국은 이런 공급망을 인위적으로 재편하는 새판짜기 프로젝트를 본격화하고 있다. 중국을 배제하고, 그 자리에 인도와 ASEAN(동남아국가연합)을 배치하겠다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하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가 바로 그것이다.

미국은 냉전 초기 소련에 맞서기 위해 ‘먀셜 플랜’(Marshall Plan)을 통해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을 일으켜 세웠다. 아시아에선 일본 경제를 부흥시켜 대항마로 키웠다. 그리고 그렇게 성장한 일본이 1980년대 제조업에서 미국을 추월하려 하자 일본 견제에 나섰으며, 중국을 파트너로 삼았다. 이제 중국이 그 어느 경쟁자보다 강력한 세력으로 부상해 미국의 패권적 지위마저 위협하자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렇다면 새롭게 짜여질 글로벌 공급망은 어떤 모습을 띨까? 과연 이 공급망에서 중국은 완전히 배제되는 것일까? 그리고 그것은 현실에서 가능한 일일까?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의 발언을 주목해보자. 그는 2022년 11월 11일 인도 뉴델리에서 행한 연설에서 미국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 전략의 일단을 설명했다.

옐런은 특정 국가들이 무역을 지정학적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면서 미국은 공급망 취약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프렌드쇼어링’을 추구한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의 공급망에 지정학적, 안보적 리스크를 제기하는 국가들로부터 다변화하기 위해 프렌드쇼어링이라 불리는 접근법을 추구하고 있다”며 “인도 같은 믿을 만한 무역 파트너들과 경제통합을 깊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미 서방 국가의 기업들이 공급망을 중국을 넘어 다변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옐런은 구체적으로 아마존과 구글이 인도와 베트남에 투자를 하고, 애플이 아이폰 생산 일부를 중국에서 인도로 전환하는 사례를 들었다. 다만, 그는 이런 움직임이 중국 경제를 무너뜨리려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옐런은 연설 하루 뒤 인도네시아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뉴욕타임스>와 인터뷰를 하면서 미국의 대중국 첨단 반도체 장비 수출 금지 조처를 예로 들며 “우리가 왜 이런 조처들을 취하는지, 이것이 어떻게 경계선이 그어지는지 설명하는 게 중요하다. 이것은 중국 경제를 완전히 마비시키고 중국 경제 발전을 중단시키려는 시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하루 전 연설에서 사실상 미국 기업들의 탈중국을 독려하는 듯한 인상을 줬는데, 이를 톤다운시키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말을 종합해보면, 미국은 공급망 취약성을 보완하기 위해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중국과 관련해서는 과도한 의존을 줄이려는 차원이지 중국 경제를 와해시키려는 의도는 아니라는 설명인 셈이다.

사진:셔터스톡

미-중간 완전한 디커플링 단시일 안에 어려워

실제로 일각에서 거론되는 미-중간의 완전한 디커플링은 단시일 안에 현실화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미국 상무부 통계국 자료를 보면,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국 강공책이 이어진 2022년에도 1~11월 중 미국의 대중국 상품 수입액과 수출액은 각각 4995억 달러, 1401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9.7%, 1.4% 증가했다. 미-중간 교역은 무역전쟁이 시작된 2018년부터 일시적으로 감소했다가 2년 전부터 다시 증가했다. 무역전쟁이 시작되기 바로 전 해인 2017년 1~11월 중 미국의 대중국 상품 수입액과 수출액이 각각 4607억 달러, 1164억 달러였다. 그만큼 두 나라의 경제적 상호의존성은 깊고 넓다.

반면에 미국 기업들의 대중국 직접투자는 현격히 줄어들고 있다. 로디움(Rhodium) 그룹 자료를 보면, 2021년 미국의 대중국 직접투자(FDI)와 인수합병(M&A)을 합한 금액은 약 85억 달러로 2004년 이후 최저치였다. 미-중 갈등과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추정된다.

미국은 전략 산업과 기술 등 분야에서 중국과 부분적·선별적으로 디커플링을 함으로써 중국의 추격을 저지하는 한편으로, 위기 시 핵심 공급망을 신속히 회복하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글로벌 공급망은 과거 냉전 때처럼 두 개로 완전히 쪼개지는 게 아니라 상호의존과 배제가 병존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세계화의 종언’이라기보다는 ‘세계화의 부분적 해체’ 또는 ‘세계화의 조정’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미-중 두 강대국이 경쟁하면서 만들어갈 새로운 글로벌 공급망은 다층적인 체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는 특정 국가에 개의치 않고 생산 효율성 중심으로 짜여졌다면, 앞으로는 효율성보다는 공급 안정성이 핵심 기준이 될 것이다. 미국이 신뢰할 수 있는 국가와 교역하는 프렌드쇼어링 기치를 내걸고 나섬에 따라, 중국도 여기에 응전을 할 것이다. 미국은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우방국 중심으로, 중국은 ‘일대일로’ 참여국 중심으로 각각 세력권을 넓혀가는 경쟁을 치열하게 펼칠 것이다.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은 NYT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인권 문제를 거론하며 애플이 아이폰 생산 시설 일부를 중국에서 인도로 옮긴 것을 칭찬했다. (사진:연합뉴스)

미국 ‘프렌드쇼어링’ VS 중국 ‘일대일로’

일대일로는 시진핑 주석이 2013년부터 아시아·아프리카·유럽을 육로와 해로로 연결해 거대 경제권을 형성하려는 정책이다. 이를 위해 중국이 양해각서(MOU)를 맺은 국가가 지금까지 140여 곳에 이른다. 미국으로서도 만만치 않은 상대인 셈이다. 결국 첨단 기술 산업은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을 중심으로 두 개의 산업 생태계로 갈라질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완전히 갈라지는 게 아니라 산업별, 그리고 같은 산업 내에서도 고기술과 중·저기술을 구분하는 식으로 상당히 복잡하게 연결된 구조가 될 전망이다.

조금 단순화해 말하자면, 크게 3개 층위로 구성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기준으로 보면, 제1선 파트너는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우방국 중심으로 민군 겸용 기술들을 공유할 것이다. 제2선은 그 다음으로 미국에 리스크가 적은 나라들로 구성돼 이 공급망의 하위 파트너로 참여할 것이다. 제3선에 속하는 국가(예컨대 중국)은 미국의 패권을 지탱하는 전략 산업의 경쟁력과 국가안보에 위험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공급망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이 반도체와 배터리, 핵심 광물 등 전략 산업에서 취한 일련의 조처들에서 그 일단을 볼 수 있다. 미국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산업과 기술에 대해서는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공급망을 짜면서 중국을 배제하려 하고 있다. 다만, 일반 산업에 대해서는 중국과 교역을 지속하고, 전략 산업에서도 구세대 기술은 미국의 국가안보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범위에서 교역을 계속하는 방향을 취하고 있다.

이런 전환 과정은 상당 기간에 걸쳐 진행되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비용이 소요될 것이다. 배터리 산업의 경우, 골드만삭스는 미국과 유럽이 중국에 대한 배터리 의존도를 탈피하기 위해선 2030년까지 부품, 소재 채굴과 제련 등에 1600억 달러(약 200조 원)를 투자해야 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렇게 돈만 투입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다국적기업들은 지난 20여 년에 걸쳐 중국에 매우 효율적인 생산·유통 시스템을 구축해 놓았는데 이를 다른 나라에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게 양질의 노동력과 신뢰할 만한 거래선(외주업체) 확보, 그리고 전력·물류 등 인프라다.

애플의 경우 대안으로 선택한 인도와 베트남이 급성장을 하고 있으나 아직 여러 면에서 중국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인도는 노동력의 질과 인프라 측면에서, 베트남은 규모 측면에서 그렇다. 물론 돈과 시간을 들이면 성공하지 못할 일은 아니다. 삼성전자의 경우 2012~13년에 휴대폰 공장을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이전하는데 2~3년이 소요됐다. 다만 삼성전자는 자체 공장을 이전하고 핵심 거래선도 한국 업체들이 대부분이어서 이전이 비교적 신속하게 이뤄졌다.

간단치 않은 애플의 고민

반면에 애플은 폭스콘 등 외주 전문업체들이 공장을 옮겨야 하는데다, 핵심 거래선에 중국 업체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순탄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애플이 의도한 일정대로 공장을 이전하기는 쉽지 않으며, 인도·베트남으로 생산 공장을 옮기더라도 중국과 완전한 단절이 어려울 거라는 분석이 일각에서 나오는 이유다.

또한 애플이 반도체 칩 일부를 미국 내에서 조달할 수 있겠지만, 최첨단 칩은 여전히 대만에서 수입해야 한다. TSMC는 애리조나 공장에서 2024년부터 4나노, 2026년부터 3나노 칩을 생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2026년이 되면 최첨단 칩은 2나노대로 진화해 있을 것이다. 최신 아이폰에 들어가는 칩은 대만에서 수입해야 해 중국 리스크는 여전히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대한민국, 글로벌 공급망의 새판을 성장 기회로 삼아야

그렇다면 한국은 여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미-중 간 첨단기술의 디커플링이 가속화할 경우 우리나라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 타격이 클 것임이 분명하다. 국제 IT 산업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지위와 주요 산업의 높은 대중국 의존도  때문이다.

기업 차원에선 애플의 대응 방향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중장기적으로 중국 시장과 중국 이외 시장의 공급망을 분리하는 작업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중국+1’ ‘중국+2’ 전략으로, 중국 이외 지역에 한 두 개 공급망을 더 구축하는 것이다. 비용이 두 배로 들겠지만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을 떠날 수도 없지만,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선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때일수록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미-중 어느 한쪽에 섣불리 편승하는 것은 단견이다. 미-중 지도부도 두 나라간 관계가 중장기적으로 어떤 경로로 갈지 쉽게 갈피를 잡기 어려울 만큼 불확실성이 매우 높은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는 다층적으로 구성될 글로벌 공급망의 새판짜기를 성장의 새로운 기회로 삼아야 한다.

미국이 1980~90년대 일본을 견제할 때 우리나라는 중국의 거대 시장을 발판으로 일본을 상당 부분 대체하면서 급성장한 경험이 있다. 이번엔 턱밑까지 따라온 중국의 기술 추격을 따돌리면서 미래 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는 한편으로, 새로운 글로벌 성장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인도+아세안 시장’ 개척에 나서야 할 것이다.


글쓴이 박현은
두 군데 신문사에서 서른 해 남짓 일간지 기자로 살아왔다. 《한겨레》 국제부장·경제부장·부국장을 지냈다. 현재는 논설위원으로 재직하며 경제와 국제 문제를 다룬 사설과 칼럼을 쓴다. 워싱턴 특파원 시절인 2013년 오바마-시진핑 정상회담을 취재하며 미·중 관계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두 지도자의 만남에서 비롯된 관심은 알리바바·화웨이 등 중국 첨단 기업들의 발전상을 취재하며 양국의 빅테크 경쟁, 나아가 반도체·배터리를 비롯한 첨단기술 경쟁 전반으로 가지를 뻗었다. 저서로 <기술의 충돌>(서해문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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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탄소중립은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환경 이슈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미국과 EU는 이미 기후위기 대응을 통해 무역장벽을 쌓아가고 있다. 향후 10년 안에 친환경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은 제품들은 수출이 불가능하다. 최종 생산재 뿐 아니라 하청기업이 배출하는 탄소도 예외가 아니다. 이제 탄소중립은 세계 경제의 최대 이슈가 되었다. 그런 변화에서 한국만 예외가 될 수 있을까? 우리만 기준을 낮추면 한국 기업들이 자유로울까? 이유진 필자는 탄소중립을 게을리할 경우,...

[구본권 칼럼] 챗GPT, 신세계의 문을 열었나

‘ChatGPT’(챗GPT)가 도대체 뭐야? 새해 벽두에 챗GPT가 화제다. 특히 학계, 지식인 사회, IT 산업계 등에서 탄성과 불안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일부에선 ‘앞으로의 세상은 챗GPT 이전과 이후 시대로 나뉠 것’이라는 성급한 전망마저 내놓고 있다. 챗GPT는 지난해 말 미국에서 공개된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다. 코딩이나 명령어 조작 없이 사람이 텍스트로 입력을 하거나 말을 하면 인공지능이 그 명령을 수행한다. 인공지능이 사람의 자연언어를 이해하고 소통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