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애. 새해에 한국과 서방의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 관심이 집중된 인물이다. 2013년생으로 알려진, 김정은 북한노동당 총비서의 ‘첫딸’(둘째 아이)이다. 김주애는 지난해 11월 이후 김정은과 함께 신형 ICBM 시험발사 현장, 중거리탄도미사일 ‘화성-12형’과 KN-23 시찰 현장 등에 세 차례나 거푸 나타났다. 매우 이례적이다.김주애가 주목받는 것은 물론 북한 권력의 ‘4대 세습’ 가능성 때문이다. ‘이제 겨우 10살인, 그것도 장남이 아닌 첫딸의 등장을 후계 구도와 연결 짓는 건 지나치다’는 상식적 판단에 대해, 정성장 필자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필자는 북한 언론과 엘리트층이 김주애에게 사용한 호칭, 김정은이 후계자로 자리잡은 과정, 북한 정치문화의 특징 등을 제시하며, 김주애의 후계 가능성을 높게 점친다. 과연 북한에서 ‘4대 세습’ 작업이 시작된 것일까? [편집자 주]

✔ 김정은, ICBM 시험발사 현장에서 둘째 자녀 김주애 공개✔ '존귀하신' 수식어 통해 김정은에 이어 후대 수령이 될 가능성 시사✔ '미래세대'의 표상 김주애 내세워 핵무기 필요성 부각✔ 배짱, 야심 그리고 의지가 있다면 장남 제치고 승계 가능해✔ '비핵화' 신기루에서 깨어나 남북 핵 균형 도모해야

사진: 연합뉴스

북한은 사회주의 체제를 표방하고 있지만, 1대 지도자인 김일성의 권력이 그의 아들 김정일에 의해 승계되었고, 2대 지도자인 김정일의 권력이 다시 그의 아들 김정은에 의해 승계되어 군주제적인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최고지도자에게 어떤 자녀들이 있고, 그들이 어떠한 자질을 가지고 있는지는 외부의 주요 관심사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북한 정치문화의 특징, 후계 문제에 대한 '남성 중심적' 편견

김일성은 김정일이 만 32세 때인 1974년에 북한 지도부에서 그를 후계자로 공식 지명하고 6년 후인 1980년 제6차 노동당 대회에서 그의 모습을 대외적으로 공개했다. 김정일은 김정은의 만 24세 때인 2008년 말경에 북한 지도부에서 그를 후계자로 공식 결정하고, 약 2년 후인 2010년 노동당 제3차 대회에서 그의 모습을 대외적으로 공개했다. 이처럼 김일성과 김정일은 그들의 아들을 후계자로 공식 결정하고서도 한참 지난 후에 공개했다.

그런데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2013년생으로 추정되는 그의 둘째 자녀 김주애를 2022년에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라는 중요한 역사적 현장에 데리고 나와 공개하는 파격을 보여주었다(김주애가 둘째 자녀이지만, 딸로서는 첫째이기 때문에 ‘둘째 딸’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당시 김주애가 만 9세의 매우 어린 나이였고, 아들이 아닌 딸이기 때문에 가부장적 문화가 강한 북한에서 과연 김정은의 후계자가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한국과 국제사회에서 뜨거운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2000년대 초중반에 필자는 북한 내부 자료 등을 근거로 북한이 3대 세습으로 갈 수밖에 없고, 김정일의 후계자는 김정일과 고용희 사이에서 태어난 김정철이나 김정은 가운데 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그런데 당시 대부분의 진보적 전문가들은 ‘21세기에 무슨 3대 세습이냐?’라며 매우 부정적 태도를 보였다. 반면에 당시 보수적인 전문가들 상당수는 김정일의 후계자는 그의 ‘장남’인 김정남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김정일은 2008년 말에 그의 3남 김정은을 후계자로 결정해 북한의 파워 엘리트들에게 통보하고 김정은과 북한을 공동 통치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북한 전문가들 대부분이 과거에 김정일의 후계 문제와 관련해 부정확한 평가를 내렸던 데에는 그들의 ‘희망적 사고’나 장남만이 권력을 승계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한국의 전문가들이 그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김주애가 매우 어린 나이이고 딸이라는 사실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넘어서서 김주애가 어떠한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며 북한 언론매체가 그에 대해 어떻게 선전하고 있는지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신형 ICBM 시험발사 현장에 모습을 드러낸 김주애

북한은 2022년 11월 19일자 <로동신문>을 통해 전날 김정은의 신형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포-17’형 시험발사 현지 지도를 소개하면서 파격적으로 그가 자신의 딸과 다정하게 손을 잡고 ICBM을 근처에까지 가서 관찰하고 발사 장면을 참관하는 사진을 공개했다.

<로동신문>은 김정은이 “공화국 핵무력 강화에서 중대한 이정표로 되는 역사적인 중요 전략무기 시험발사장에 사랑하는 자제분과 여사와 함께 몸소 나오시여 시험발사 전 과정을 직접 지도해주시며 국방과학자, 전투원들을 열렬히 고무해주시고 국가핵전략 무력 강화를 위한 힘찬 진군길에 더 큰 힘과 백배의 용기를 안겨주시면서 영원한 승리의 진로를 밝혀”주었다고 발표했다. 북한이 신형 ICBM 시험발사 성공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김정은의 딸 사진을 공개한 것은 그가 앞으로 김정은의 핵무력 강화 노선을 이어갈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었다.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7형 시험발사 현장에서 김정은의 손을 잡고 걷는 김주애 (사진: 연합뉴스)

김주애에 대한 매우 특별한 존칭, ‘존귀하신자제분

북한은 지난해 11월 27일자 <로동신문>을 통해 다시 김정은과 김주애가 손을 꼭 잡고 걷는 모습을 공개하고 김주애에 대해 ‘존귀하신’ 자제분이라는 매우 특별한 존칭을 사용했다. <로동신문>은 김정은 총비서가 신형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포-17’형 시험발사 성공에 기여한 공로자들과 함께 ‘역사에 길이 남을 뜻깊은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김정은이 ‘존귀하신’ 자제분과 함께 촬영장에 나왔다고 보도함으로써 김정은의 둘째 자녀인 딸 김주애에 대해 ‘존귀하신’ 자제분이라는 존칭을 사용했다.

<로동신문> 사이트에서 ‘존귀’라는 단어로 검색을 해보면, 이 용어는 김일성, 김정일과 같은 ‘선대 수령’ 그리고 김정은과 같은 ‘현재 수령’에게만 사용되어 왔다. 그런데 이처럼 북한의 절대권력자를 의미하는 ‘수령’에게만 사용된 용어를 김주애에게 사용한 것은 곧 그가 북한의 ‘후대 수령’이 될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해석하지 않을 수 없다. 참고로 ‘존귀’라는 표현은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에게도, 북한의 ‘사실상 2인자’로 간주되는 김여정에게도 지금까지 사용된 적이 없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19일자 <로동신문>에서 김주애에 대해 ‘사랑하는 자제분’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27일자 <로동신문>에서는 김정은이 ‘제일로 사랑하시는 자제분’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김주애가 앞으로 김정은의 후계자가 될 것임을 보다 명확히 시사했다. 왕에게 여러 명의 자녀가 있을 경우 그가 가장 사랑하는 아이를 후계자로 선택하는 것은 당연하다.

27일자 <로동신문>은 여기서 더 나아가 ‘백두혈통’인 김주애에 대한 충성 맹세까지 소개했다. 이 신문은 김정은이 신형대륙간탄도미사일 최종 시험발사 준비사업을 매일매일 구체적으로 지도해주고 “발사 당일에는 직접 화선에까지 자신께서 제일로 사랑하시는 자제분과 함께” 찾아오는 ‘남부러워할 특전’을 안겨줌으로써 신형 ICBM 최종 시험발사에서 완전 대성공할 수 있었다는 국방과학원 미사일 부문 과학자, 기술자, 노동자, 간부들의 ‘충성의 결의 편지’를 소개했다. 국방과학원 미사일 부문 관계자들은 이 편지를 통해 신형대륙간탄도미사일 최종 시험발사장에서 받아안은 ‘남부러워할 특전’을 최상 최대의 영광, 크나큰 긍지와 자부로 소중히 간직하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백두의 혈통만을 따르고 끝까지 충실할 것을 맹세했다.

한편 11월 19일자 <로동신문>은 2면과 3면에서 김정은과 김주애가 함께 있는 사진을 5~6장(팔만 나온 사진을 포함하면 6장) 공개했다. 그런데 27일자 <로동신문>은 1면과 2면에 김정은과 김주애가 함께 있는 사진을 무려 15장이나 게재했다. 북한 언론이 이처럼 ‘김주애 띄우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김주애의 공개가 ‘즉흥적인 결정’일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북한과 같은 군주제적 스탈린주의 체제에서 김정은의 딸 사진이 <로동신문> 1면과 2면, 3면에 공개된 이후 그가 일반적인 북한의 청소년처럼 평범하게 살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북한 체제에서 김정은의 자녀는 왕조 체제에서 왕자나 공주와 같은 지위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김정은과 리설주의 얼굴을 합성해놓은 것처럼 빼닮은 김주애의 사진이 <로동신문>에까지 공개됨으로써 그는 앞으로 특별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지난해 11월 18일 김주애는 김정은과 함께 신형 ICBM 시험발사를 참관했을 때 흰색 겨울 패딩점퍼를 입고 등장했다. 그런데 11월 26일 김주애는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고급스러운 모피를 덧댄 검은 코트를 착용하고 리설주와 비슷한 옷차림을 했다. 2013년 초에 태어난 것으로 알려진 김주애가 ICBM 시험발사 성공에 기여한 공로자들 앞에 김정은과 함께 당당하게 박수를 치는 모습에서 그녀가 특별한 위상을 가지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로동신문>이 공개한 사진들에서 김정은과 김주애는 계속 손을 꼭 잡고 있거나 김주애가 김정은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있어, 국방과학원 미사일 부문 관계자들이 「충성의 결의 편지」에서 ‘제일로 사랑하시는 자제분’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처럼 김정은이 김주애를 끔찍하게 사랑하고 있음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아들이 아닌 딸을 4대 지도자로 내세우는 것에 대해서는 김정은도 부담을 느낄 수 있어 신형 ICBM 시험발사 성공 현장에 김주애를 대동하고 나옴으로써 그에 대한 북한 간부와 주민의 충성심이 그의 딸에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치밀하게 준비한 것으로 판단된다.

화성-12형 미사일과 KN-23 시찰의 동행 의미

북한은 2023년 새해 첫날 <조선중앙TV>를 통해 노동당 중앙위원회 8기 6차 전원회의 결과를 보도하면서 김정은 총비서가 김주애와 함께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과 ‘북한판 이스칸데르 미사일’로 불리는 KN-23을 시찰하는 사진을 공개했다. 북한이 김정은의 둘째 자녀인 김주애의 사진을 공개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새해 첫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딸 김주애와 KN-23을 시찰하는 모습(사진: 연합뉴스)

이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김주애를 ‘미래세대’를 상징하는 표상으로 내세우면서 미래세대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서 핵무기의 필요성을 부각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런 해석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왜 김정은이 다른 자제도 아니고 김주애의 사진을 세 번째로 그것도 새해 첫날 공개했는지, 왜 ‘화성-12형’ 미사일과 KN-23 시찰 사진을 공개했는지에 대한 그들의 설명은 충분하지 않다.

북한이 새해 첫날 <조선중앙TV>를 통해 김정은이 김주애와 함께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중거리탄도미사일 ‘화성-12형’과 KN-23 시찰 사진을 공개한 것은 크게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김정은의 ‘가장 사랑하는 자제’ 김주애가 미래에 후계자가 될 것임을 북한 주민들에게 다시 한번 간접적으로 각인시키기 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김여정이 부부장으로 있는 노동당 선전선동부가 새해 첫날 방송을 위해 미리 치밀하게 김정은과 김주애의 시찰 사진을 준비한 것으로 판단된다.

둘째, 김정은이 김주애를 ICBM 시험발사 현장 참관에 이어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미사일 무기고 시찰에까지 동행하고 그 사진을 공개한 것은 북한이 ‘절대로’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은 김주애 시대에도 계속 이어질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김주애도 김정은의 그런 의지를 계승할 의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셋째, 김주애가 지금은 비록 ‘후계수업’ 단계에 있지만, 미래에 후계자로 공식 지명되어 김정은을 보좌하게 되고 결국 권력을 승계하게 되면 핵 버튼까지도 물려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김정은은 나중에 김주애가 북한의 가장 중요한 전략자산인 핵․미사일을 확고하게 지휘 통제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서서히 그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은이 미국 본토 타격이 가능한 화성포-17형 ICBM 시험발사 현장에 김주애를 동행시킨 것을 시작으로, 괌과 일본 본토 타격이 가능한 화성-12형 중거리탄도미사일 그리고 남한 전역 타격이 가능한 KN-23 시찰에까지 동행시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대미, 대일, 대남 군사전략에 대한 ‘후계수업’ 차원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김정은의 후계자 내정 시점과 후계자의 조건

김정은이 북한 지도부에서 김정일의 후계자로 공식 결정된 것은 2008년 말이었다. 그런데 김정일이 그의 최측근 간부들에게 김정은이 자신의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 말하기 시작한 것은 김정은의 만 8세 생일인 1992년 1월 8일부터였다. 필자가 2021년 3월 미국에서 만난 김정은의 이모(고용숙)와 이모부(리강)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은의 8세 생일날(1992년, 김정일이 만 50세 때) 그에 대한 찬양가요인 ‘발걸음’이 김정일과 그의 핵심 측근들 그리고 김정은 앞에서 공연되었고, 김정일은 이때부터 “앞으로 내 후계자는 정은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김정은의 친형) 김정철은 온순해서 후계자감이 아니라고 언급했다.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세우기에는 너무 이르지 않느냐는 김정은 이모부의 지적에 대해 김정일은 계속 “나를 닮아서”라고 대답했다.

2010년 북한 열병식 당시 김정일과 김정은의 모습(사진: 연합뉴스)

2009년 초까지 한국 사회에서 다수의 보수적인 전문가들은 김정일이 그의 ‘장남’ 김정남을 후계자로 내세울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고용숙 부부의 증언에 의하면 김정일의 후계자는 이미 1992년에 김정은으로 내정된 상태였다. 김정일이 그의 장남이나 차남을 제치고 자신의 성격을 가장 빼닮은 3남 김정은을 매우 이른 시기에 후계자로 선택한 것처럼, 김정은도 자신을 가장 빼닮은 딸을 후계자로 염두에 두고 있을 수 있다. 북한은 2021년 노동당 8차 대회에서 “조선로동당 총비서의 대리인”인 ‘당중앙위원회 제1비서’직을 신설했는데, 유사시 체제 안정성과 4대 권력세습을 포함한 ‘백두혈통’에 의한 권력승계를 뒷받침하기 위해 이 직책을 신설한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에서 여성은 수령의 후계자가 될 수 없을까?

현재 한국의 북한 전문가들 상당수는 남존여비 사상이 강한 북한에서 여성이 후계자가 될 수 있겠는지 의구심을 표시하며 김정은의 장녀 김주애가 후계자가 될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북한의 후계자론에 의하면 후계자의 조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수령에 대한 충실성’과 자질이다. 북한의 후계자론에서 수령의 후계자가 남자인가 여자인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10대에 스위스에서 4년 반 조기 유학 생활을 한 김정은은 그의 아버지 김정일처럼 남존여비 사상이 강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김정은도 비슷한 조건이라면 ‘장남’을 선호하겠지만, 그의 장남이 김정철처럼 온순하고 정치에 관심이 없으며 예술에만 관심이 보인다면 그런 장남을 후계자로 결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반면에 김정은의 ‘장녀’ 김주애가 비록 여자이기는 하지만, 김정은처럼 배짱이 있고, 정치적 야심이 있으며, 김정은의 권력과 정책을 승계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면 김정은으로서는 김주애를 자신의 후계자로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1988년부터 1996년까지 그리고 1998년부터 2001년까지 김정일의 요리사로 북한에서 11년간 일했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는 필자와의 2003년 인터뷰에서 북한의 당과 군부 간부들이 김정일을 대하는 태도와 그의 여동생 김경희를 대하는 태도가 거의 비슷했다고 증언했다. 남존여비 사상이 강했던 북한에서도 ‘백두혈통’인 김경희가 일반 간부들보다 우월적 지위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김정일 시대에는 그것이 대외적으로까지 표출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김정은 시대에 김여정은 백두혈통으로서의 그의 공식적 직책인 당중앙위원회 부부장직을 넘어서는 영향력을 대외적으로 과시하고 있다. 김여정은 2018년 2월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일원으로 한국을 방문하면서 명목상의 단장인 김영남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 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제치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김정은의 친서를 직접 전달한 바 있다.

2018년 2월, 문재인 대통령이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에게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받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그런 김여정이 2020년 6월 13일에는 담화를 발표해 자신이 “위원장 동지[김정은]와 당과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나의 권한을 행사하여 대적사업(對敵事業) 연관 부서들에 다음 단계 행동을 결행할 것을 지시하였다”고 밝히면서 “멀지 않아 쓸모없는 북남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그러자 북한은 6월 16일 ‘4·27 판문점선언’의 중요한 성과 중 하나로 간주되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통일연구원에서 발간한 <북한인권백서 2022>는 2018년 이후 김여정(당중앙위원회 부부장), 최선희(현 외무상), 현송월(당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부부장) 등 여성들의 고위직 진출이 늘어난 점에 주목하고 있다. 최선희의 외무상 발탁은 북한 여성 최초의 장관급 간부 임명으로, 여성 사회진출의 상징적 역할을 하고 있다. 북한 이탈주민의 증언에 의하면,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의 정치적, 공적 영역에서 여성의 진출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당증을 가진 여성은 무조건 간부로 등용되며 판사, 보위부, 보안원을 하는 여성들도 많고, 여성 군관도 많아졌으며, 여성 대의원도 늘어났다고 북한 이탈주민들은 증언하고 있다. 또한, 기업소와 협동농장 등에서 지배인, 작업반장, 분조장을 하는 여성들이 많으며 능력만 있으면 다 할 수 있다는 증언도 다수 수집되고 있다.

이처럼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에서 여성의 지위가 눈에 띄게 높아지고 있고, 여성이라도 ‘백두혈통’은 다른 간부들보다 우월적인 신분/지위와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성은 무조건 ‘수령의 후계자’가 될 수 없다는 평가는 북한의 현실과 괴리된 ‘남한 중심적’ 편견일 수 있다. 북한과 비슷한 유교문화를 가진 한국에서도 박정희 대통령의 장녀인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사진: 셔터스톡

김주애 공개와 북핵 문제의 함의, 한국의 과제

이처럼 북한은 지난해와 올해 김주애 공개를 통해 앞으로도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핵과 미사일 개발은 김정은 이후 시대에도 계속될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과 미국 정부 그리고 야당은 여전히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신기루를 좇고 있다. 북한이 미래세대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서 핵무기의 필요성을 부각하기 위해 김정은이 김주애와 함께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미사일 보유고의 시찰 사진을 공개했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이 한국의 미래세대를 위한 독자적 핵 보유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현시점에서 한미가 추구해야 할 현실적 목표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아니라 ‘완전한 북핵 억지’와 ‘남북 핵 균형’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한국 정부도 미래세대에 보다 안전하고 평화로운 국가를 넘겨줄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 정성장은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이다. 프랑스 파리 낭떼르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청와대 국가안보실, 통일부, 국방부, 한미연합군사령부의 정책자문위원과 외교부의 자체평가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과 민화협 정책위원 등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