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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윤형 칼럼] 중대선거구제가 아니라 대선거구제가 대안이다

By | 2023년 1월 9일 | 미분류, 정치

대통령이 선거제도 개혁안을 던졌다. 제안의 의도를 의심하거나 진실성을 따지기 전에, 어쨌든 현재의 소선거구제에 대한 ‘개혁안’을 먼저 대통령이 내놓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한윤형 필자는 선거제도 개혁안은 실은 민주당이 먼저 제시했다고 말한다. 당론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중대선거구제를 포함해서 유사한 법안들을 민주당 의원들이 지난해 발의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선거제도 개혁은 어떤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할까? 한윤형 필자는 ‘대선거구제가 답’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이 중선거구제에 대해 제기되는 여러 비판을 극복하고, 중도파 유권자들의 정치적 효능감을 높일 뿐 아니라, 비례제의 다양성까지 포괄하는 현실적 대안이라는 것이다. 왜 그럴까? [편집자 주]

✔ 대통령에 앞서 21대 국회 민주당 의원들이 먼저 제안한 중대선거구제
✔ ‘내각제, 국회의원 정원 확대, 비례대표성 확대’는 한국 유권자의 3대 ‘불호’
✔ 유권자의 효능감 살리고 중도파의 의견 반영할 수 있는 제도가 절실
✔ 양대 정당 탈피하며 다양한 유권자층 대변할 ‘생활권 지역구’ 대선거구제로 

이미지:셔터스톡

윤석열 대통령이 ‘중대선거구제’로 선거제도 개편의 필요성을 느낀다고 말했다. 사실 이 주장은 민주당 의원들이 먼저 했다.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21대 국회 들어 민주당의 김상희·박주민·이상민·전재수·이탄희 의원이 각각 중대선거구제 도입이 포함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제출한 상태다.

중대선거구제 제안, 민주당이 먼저 했다

‘비명계’가 많은 민주당 최대 모임인 ‘더좋은미래’도 중대선거구제가 포함된 3가지 안을 준비해 1월 중 토론회를 거쳐 입장을 정리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수도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제도개혁의 필요성을 느낀다고 한다.

국민의힘에서 수도권 의원들은 윤 대통령의 제안에 별로 비토가 없다고 하지만, 대통령 발언 후 일단 국민의힘은 반대 의사를 밝혔다. 21대 총선에서 많은 의석수를 얻지 못한 국민의힘은 현재 전체 지역구 93석(비례대표 포함 115석) 중 영남권(부산, 대구, 울산, 경북, 경남 합산) 의원이 58명에 달할 정도로 영남 비중이 높다.

정치개혁이라는 딜레마

많은 정치인들, 국회의원과 정당인들은 제도적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느낀다. 이 가운데 권력구조 개편은 ‘개헌’ 이슈에 해당하고, 선거제도 개편은 ‘선거법 개정’ 이슈에 해당한다.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같은 기구가 구성되거나, ‘개헌 연대’가 언급되면 이 논의에 대한 의원들의 집중도는 높아진다.

그러나 정치개혁 의제는 유권자들의 관심에 잘 와 닿지 않는다. 유권자들은 정치인들이 ‘먹고 사는 문제’에 집중해주길 바란다. 이른바 ‘민생’ 문제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민생문제에 대한 의정활동을 하다 보면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느낀다.

정치개혁이 선행되지 않으면 민생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는 것이다. 그래서 민생에 더 열심인 정치인들이 먼저 정치개혁 문제를 꺼내 들게 되는데, 그것이 역으로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정치개혁이라는 딜레마,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상황인 셈이다.

지금도 선거제도 개편 논의가 사람들에게 피부로 와 닿는다고는 볼 수 없다. 크게 보아 세 가지 반응이 있는데, ‘관심 없음. 내가 관심을 주지 않으면 어차피 사라질 논의’라는 반응(주로 중도파와 정치 냉소층), ‘이거저거 다 해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됐잖아. 뭘 또 하려고?’라는 반응(주로 정치 고관여층 및 민주당 지지층), ‘중대선거구제는 대안이 아니고 비례제 확대가 대안’이라는 반응(주로 민주당 내에서도 진보성향이거나 정의당 지지층)이 있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좋을까. 익숙한 제도는 유권자들에게 관성으로 작용한다. ‘경로의존성’이라고도 한다. 유권자들이 현행 제도에서 느끼는 효능감과 불만이 동시에 있기 때문이다.

정치영역에서 ‘효능감’이란 ‘나의 정치적 선택이 정치인 및 정치세력을 움직이고, 이를 통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는 신념 혹은 기대감’에 해당할 것이다. 이때, 정치개혁론자들이 내세우는 제도가 그 ‘효능감’의 부분을 수정하겠다고 나온다면 그 제안은 외면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유권자들의 ‘효능감’과 ‘불만’을 섬세하게 분석하고, 효능감을 유지하면서 불만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제도개혁 안을 제출해야 한다.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그렇게 해야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고 설득의 대상을 점점 더 넓혀서,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어려운 과업을 성취할 수 있다.

3가지 ‘불호’로 살펴본 한국 유권자의 효능감과 불만

현시점에서, 한국 유권자들이 ‘정치개혁론자들’의 주장 가운데 바라지 않는 세 가지가 있다. 이것은 논리적인 분석이 아니라 경험적인 분석이다.

첫째, 한국 유권자들은 적어도 현시점에선 내각제를 원하지 않는다. 둘째, 한국 유권자들은 아직까지는 국회의원 정수 확대를 용인할 생각이 없다. 셋째, 한국 유권자들은 비례대표성을 강화하는 일에도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다.

이 3가지 ‘불호’ 주장에 대한 이유를 분석하면 유권자가 현 제도에서 느끼는 효능감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한국 유권자들이 대통령제를 내각제보다 선호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통령은 유권자가 선출하지만, 내각제의 총리는 의원들이 뽑기 때문이다.

한국 유권자들은 내각제로의 전환을 ‘국회의원들이 내게서 대통령을 뽑을 권리를 박탈하는 것’으로 느낀다. 여기에 대고 ‘합의제 민주주의 / 다당제 / 내각제’의 가치를 선호하는 ‘정치개혁론자’들이 “그래서는 안 돼요. 대통령제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우리는 더 아름다운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해요”라고 해봤자 설득이 되지는 않는다. 대통령 직선제에서 느끼는 막대한 ‘효능감’ 때문이다. 우리는 적어도 이 조건을 인정하고 시작해야 한다.

국회의원 정수 확대에 반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국 유권자들은 국회의원이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에 대해선 내가 뽑은 대통령이 선출될 경우엔 막대한 효능감을 느끼지만, 국회의원에 대해선 그만한 신뢰나 기대가 없기 때문에 그 영역을 확장하는 것 자체에 반대한다.

심지어 과거 정의당에서 ‘국회의원 1인당 보좌진 수를 줄여서 인건비 총액은 지금 수준으로 유지한다는 전제 하에 의원수 정수 확대’라는 우회로를 시도해봤는데도 잘 먹히지 않았을 정도다. 우리는 이 조건도 인정하고 시작해야 한다.

비례대표제에 대한 불호는 위의 두 불호에 비해서는 약한 편이다. 사람들이 비례대표제 확대에 비판적인 이유는, 비례대표제 자체가 몹쓸 것이라 생각한다기 보다는 현실적으로 비례대표제 강화 주장이 ‘국회의원 정수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짐작된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비례대표제 자체에 대한 불호의 감정도 상당히 깊어지고 있다. 한국 유권자의 비례대표제에 대한 불호의 감정은 ‘유권자인 내가 선출하는 국회의원이 아니라, 정당이 지명하는 국회의원’이라고 느낀다는 데에 있다. 이렇게 본다면 이 불호의 감정의 근원도 내각제에 대한 불만과 상당히 유사한 것이 된다.

거듭 말하지만, 현실적으로 정치개혁이란 것이 성립하려면 ‘이상적인 민주주의 원칙’이 아니라 ‘우리 유권자의 인식과 욕망을 설득할 수 있는 제안’을 내놓아야 한다. 개헌안에 대해서도 그러하고 선거법 개정 문제에 대해서도 그러할 것이다.

‘독일식 정당명부제’라는 모범답안이 맞닥뜨린 ‘위성정당’의 난관

선거법 개정 문제에 대해선 ‘지금까지의 모범답안’이 존재한다. 정치학계와 진보 진영의 합의에 가까웠던 ‘독일식 정당명부제’가 그것이다. 이는 현행 ‘소선거구제 단순다수대표제’라는 경로는 인정하되, 여기에 정당명부 투표의 비례대표성을 강화하여 다당제 요소를 끌어들인다는 것이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필두로 한 친노친문 그룹은 지역주의를 깨뜨리겠다는 목적을 위해 중대선거구제를 고려하기도 했으나, 그러한 의견은 ‘일본적 보수성’(자민당 중심의 보수정치, 지역구 세습 등)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비판을 흔히 받았다. 물론 당시 친노친문 그룹의 중대선거구제 제안이 당면한 지역주의 타파라는 목표에만 매몰되어 있는 등 세련되지 못한 면도 있었다.

그런데 ‘독일식 정당명부제’ 등 소선거구제 단순다수대표제를 유지하면서 정당 투표의 비례성을 강화하는 길에서 만나게 된 난관이 바로 ‘위성정당’ 논란이다.

위에서 지적했다시피 한국 유권자들은 ‘표의 비례성’을 강화한다는 명목으로라도 ‘국회의원 정수 확대’를 용인할 의사는 없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비례성을 강화하기 위해선 254석의 지역구를 200석 정도로까지는 축소했어야 했는데, 이는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이해관계를 심하게 저해하는 것이므로 실현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준연동제’라는 발상이 생겼고, ‘준연동제’라도 46석밖에 안 되는 비례 의석으로 실현될 경우 거대 양당의 손해가 막심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캡’을 씌워야 하는 우회로가 고민됐다. 그리고 46석을 나눠서 ‘캡’을 씌우는 이 복잡한 계산 방식을 취하게 되니, 여기서 맞이하게 된 ‘필연적인 제도적 꼼수’가 바로 위성정당이었던 셈이다.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은 국민의힘의 위성정당을 비판하다가 결국 자신들도 위성정당을 만들게 됐다. 이른바 ‘내로남불’ 논란이 심해질 수밖에 없었고, 이재명 대표는 대선후보 시절 위성정당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그러나 정당이 선거 과정에서 의석수에서 손해가 날 수밖에 없는 선택(상대방은 위성정당을 만드는데 우리는 만들지 않는 것)을 다만 윤리적인 결단으로 매번 내릴 수 있다고 믿기는 어렵다. 한 번 정도는 손해를 감수할 수 있을지 모르나 언제나 제도 내부에서 위험성과 파탄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사실 이는 위성정당 방지법을 만들어도 마찬가지인데, ‘위성정당이 아닌 척하는 위성정당’을 감별해낼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양당을 지지하는 시민사회 진영에서 ‘상대 당파가 1당이 되면 나라가 망하기 때문’이란 우국충정에서 ‘구국의 결단’을 내리는 식으로 창당을 선언하면, 양당 마이너리거와 시민사회 진영이 결합한 ‘사실상의 위성정당’이 만들어지는 것은 순식간의 일일 것이다.

따라서 ‘유권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경쟁한 정당’이 의석수에서 이득을 얻을 수 있는 방향으로의 제도 개선을 도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위성정당 방지법’을 만들어도 소용이 없다면, 오히려 46석 비례 의석에서 그런 장난을 치면 그보다 훨씬 규모가 큰 지역구 의석에서 유권자들의 징벌을 받을 수 있는 선거제도를 고민해보는 것이 더 실질적인 일이다.

사진:셔터스톡

중도파의 불만을 수용하기 위한 정치개혁의 필요성과 가능성

선거제도 개혁에서 또 하나 심각하게 감안해야 할 문제는 중도파 유권자들의 불만이다. 최근에 나타나는 한국 정치권의 관성적 무력을 극복하기 위해선 중도파 유권자들의 의사가 관철되는 정치지형을 복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과거의 한국 정치, 구체적으로 1997년 대선에서 2012년 대선까지의 한국 정치는 양당의 강성 지지층 사이에서 중도파와 연성 지지층이 승자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타협적인 정치 구도에 불만을 가진 급진주의자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이 방식은 사회통합에 기여하는 긍정적 면이 있었다.

그런데 2022년 대선 이후부터는 새로운 상황이 펼쳐지게 됐다. 미국 등의 사회에서도 관측되고 있는 것처럼, SNS와 유튜브로 뉴스를 소비하는 시대에서 나타난 ‘필터 버블’ 현상이다. 이를 통해서 정보를 편식하는 경향이 심화되고 ‘믿고 싶은 것을 믿게 되는’ 이들이 늘어나게 됐다. 한 사회를 살고 있지만 전혀 다른 정보 생태계 내부에서 각자의 신념을 강화하는 이들의 숫자가 늘어난 것이다. 미국에선 민주당 지지층과 공화당 지지층 사이에 생각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데, 한국 사회의 민주당 지지층과 국민의힘 지지층 사이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펼쳐지게 됐다.

과거의 여론 지형은 일종의 ‘단봉 낙타’ 형태, 즉 ‘U’를 뒤집은 형태였다고 볼 수 있다. 이 경우엔 거대 양당이 경선 단계에서부터 중간 봉우리에 존재하는 유권자들이 선호하는 후보를 선호할 수 있었다. 경선 과정에서 중간 봉우리를 만족시키는 후보가 나오고, 그렇게 선출된 거대 양당의 두 후보 중에서 중간 봉우리 유권자들이 당선자를 결정했다.

2022년 대선 이후의 여론 지형은 일종의 ‘쌍봉 낙타’ 형태, 즉 ‘W’를 뒤집은 형태가 됐다. 중간 봉우리는 약해졌고 ‘왼쪽 봉우리’와 ‘오른쪽 봉우리’가 갈라서서 극단적 지지층이 원하는 후보가 선출됐다. 중도파가 2022년 대선에 싫증을 내면서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고 말하게 된 원인은, 이들이 ‘누구를 더 견딜 수 없는지’라는 굉장히 정서적인 잣대로 투표하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당의 선거 캠페인도 합리적인 방식으로 진행될 수 없었고, 서로에 대한 미움과 경멸의 감정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사회통합에서 가장 거리가 먼 방식의 선거 캠페인이 진행됐으며,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승복의 과정이 일어나지 않고 강성 지지층에 휘둘리는 두 정당이 관성적으로 대립하는 구도가 반복되게 됐다.

이것은 유권자의 1/3에 해당하는 중도파들의 정치적 효능감을 심각하게 박탈하는 지형도이기도 하다. 중도파들은 최근 한국 정치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고 있으며, 민주주의 제도가 있더라도 선거나 투표 자체가 거의 무의미하다고 느끼고 있다.

발상의 전환, 5인 이상 당선자가 나오는 ‘생활권지역구’ 선거제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국회의원이나 정당의 선택이 아니라 유권자들의 선택으로 당선자가 결정되는 효능감을 뺏지 말아야 한다는 점, 그러면서도 중도파들에게 ‘상실한 선택권’을 돌려줘서 사회통합에 기여하는 선거 캠페인을 복원해야 한다는 점 등을 두루 고려할 때, ‘5인 당선자를 배출하는 대선거구제’가 오히려 대안이 될 수 있다.(흔히 중대선거구제라고 말할 때, 2~4인의 당선자가 나오는 지역구를 중선거구제, 5인 이상 당선자가 나오는 지역구를 대선거구제로 본다)

2인 당선자 중선거구제를 시행할 경우 ‘보수 양당의 의석 나눠먹기’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지만, 대선거구제의 경우 그러한 비판으로부터 자유롭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의 뭉뚱그린 ‘중대선거구제’라는 제안과도 다른 것이다.

일단 간단하고 거친 계산으로 ‘5인 당선자 대선거구제’를 상정해 보면, 전국의 선거구는 ‘100만 인구의 50개 정도의 지역구’로 재편되게 된다. 이 점에서 ‘대선거구제’라는 표현보다 ‘생활권지역구’와 같은 표현을 제시하는 것도 고려해 봄직하다.

인구가 많은 수도권에서 시민들의 생활권은 서울의 2~3개의 구나 거주하는 시의 영역에 있는 반면, 국회의원 선거구는 구도 아닌 동 단위로, 더 잘게 나뉘어져 있는 경우가 보통이다. 지역은 반대다. 강원도나 전남, 경북의 경우 도농복합선구가 지렁이처럼 길게 늘어져 있다. 이 과정에서 인구 변동으로 인해 지역구가 새로 획정되는 과정에서 사회 교과서에 나오는 전형적인 ‘게리멘더링’의 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와 같은 폐해를 방지하는 ‘생활권지역구’로의 전환이라는 수사가 필요할 수 있다.

물론 수도권과 광역시를 제외하면 ‘100만 인구의 지역구’를 엮어내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지역에서 ‘보수 양당의 의석 나눠먹기’라고 비판받지는 않을 최소한의 선거구 크기는 ‘60만 인구의 3인 당선자 중선거구’가 섞여야 할 것이다. 이런 선거구를 전국으로 거칠게 나눠보면, 수도권과 광역시 거주민의 총합이 약 3560만 명, 그 외 지역 거주민 총합이 약 1580만 명이다. 전자를 5인 당선자 35개 지역구, 후자를 3인 당선자 26여 개 지역구로 나눌 경우 지역구와 지역구 의원 숫자는 61개 지역구의 253인이 된다.

먼저 이 경우 거대 양당은 한 지역구에 적어도 3인 정도의 후보를 공천할 것이고, 되도록 많은 수를 당선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러려면 강성 지지층이 지지하는 후보와 연성 지지층이 지지하는 후보, 그리고 중도파가 지지하는 후보를 두루 배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정당 내부의 다양성이 살아나고, 중도파들의 정치에 대한 효능감도 부활할 것이다.

물론 이것은 매우 단순하고 거친 계산이지만, 이 대안을 섬세하게 보완해서 적용한다면 현재 한국 정치의 여러 문제점도 해결하고, 가치론의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결과를 산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래서 이런 대선거구는 중도파뿐만이 아니라 전체적으로도 유권자들의 효능감을 증대시킬 것이다. 소선거구제의 직관적인 효능감을 무시할 수는 없으나, 다른 방향의 설득이 가능할 것이다. 왜냐하면 영호남 지역구로 대변되는 한 정당의 지지율이 압도적 우위인 지역구에서도 유권자를 만족시키기 위한 경쟁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전국 1/3 가량의 지역구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정치적 경쟁이 평소에도 더 치열한 형태로 발생할 것이다. 경선뿐 아니라 본선에서도 당내 주자들끼리의 경쟁이 전체 유권자를 대상으로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또 정치적 효능감을 넘어 민주주의의 가치 실현이라는 측면에서도 장점이 있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수도권과 광역시에서의 선거 양상이 과거의 복싱 시합(1 대 1 대결)에서 농구 시합(5 대 5 대결)으로 변하게 되면 직능/세대/젠더 등 다양한 요소들이 더 잘 대표되는 것도 기대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자기 당의 열혈지지자뿐 아니라 여러 성격을 가진 지지층의 눈치를 더 보도록 만들고, 소수정당들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생길 것이다. 비례대표가 늘어나지 않더라도 비례대표에서 기대하는 다양성이 나타나는 것이다.

사진:연합뉴스

유권자들의 거부감이나 박탈감을 피하기 위해 노력해야

‘좋은 정치’는 제도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제도가 작동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좋은 사람’이 선발되어야 가능하다. 제도는 제각각 장단점을 가진다. 그 자체로 좋은 제도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한국 정치의 실정에서는 적어도 당분간은 수도권에서는 물론 특정 정당 우위의 지역 정치에서도 당내 주자들끼리의 경쟁이 일어나는 것이 더 ‘좋은 사람’을 선발하는데 기여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된다면 이러한 제도변혁은 실질적으로 정당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결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할당제는 비례대표제가 아니라 지역구에 결합해서 더 큰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청년 할당’과 ‘여성 할당’은 현실적으로 비례대표 의원에 결합될 수밖에 없었고, ‘유권자가 아니라 정당이 지명한 할당제 청년/여성’이란 범주는 유권자들에게 환영받을 수 없었다. 양질의 인사가 공천되기보다는 당권을 쥔 양당 주류 정치인에 순치된 인사가 공천되고 있다는 의심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할당제가 지역구 후보를 향할 경우 이런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다. 특히 지금까지는 가장 보수적이고 나이 많은 후보가 출마하던 영호남 지역에서 청년 할당 공천이 긍정적인 역할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상대 당에 대한 비토가 가장 강한 영호남 지역에서 오히려 소수정당 출신 청년 후보가 바람을 일으켜 3인 이내의 당선자가 되는 일도 충분히 상상해볼 수 있다. 이러한 조류가 온다면 ‘지방소멸’이 현실화하는 이 시기에 지역사회에 새로운 활력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결과가 나타나면 중앙정치와 지역 정치의 관계 설정에도 긍정적인 결과를 줄 것이다.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우리 동네에 편의시설을 유치하고, 혐오시설을 반대하는 것보다 좀 더 넓은 시각에서 정치를 하게 될 것이다. 지방자치의 자율성이 증대되고, 국회의원이 시도의원들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현실을 타파하는 파생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무엇보다 메가시티끼리의 경쟁, 지방소멸을 극복하기 위한 지역 거점도시의 설정 등이 필요한 현 시국에 대처하기에도 적절할 것이다.

여러 장점이 있는 제안이지만 유권자들의 거부감을 피하기 위한 전략적인 대응도 중요하다. 먼저 기존 소선거구제 단순다수대표제의 직관적 단순성을 지나치게 훼손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대선거구제가 논의되면 한 지역구에서 2~3표를 행사하는 방안이나 ‘선호투표제’에 대한 상상력이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일단은 유권자 1인 2표(후보 1표, 정당 1표)의 틀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해 보인다. 너무 많은 표를 제도적으로 허용하면 유권자들의 계산이 복잡해질뿐더러, ‘내 손으로 직접 승자를 선택한다’는 효능감을 사실상 뺏어가는 제도라는 반발에 부닥칠 가능성도 크다.

인구밀도가 낮은 농어촌 지역의 지역성을 탈색시키면서 생기는 박탈감 역시 별도로 섬세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만약에 수도권과 광역시 외의 지역구는 ‘60만 인구의 3인 당선자 중선거구’로 묶는 것조차 농어촌 여론이 납득하지 못한다면, 수도권과 광역시의 대선거구와 그 외 지역의 소선거구를 병립하는 제안도 고려해 봄직하다.

이런 결과라면 현재 다수당인 민주당에게 불리한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거제도 개혁은 ‘다수당이 (많은 손해는 곤란하고) 약간의 손해를 입을 전망’으로 추진되는 것이 가장 설득력이 높을 것이다. 254석의 지역구를 200석으로 줄인다는 식의 다수 국회의원이 내심으로는 반대를, 그래서 소수의 ‘정의파’ 국회의원들이 ‘어차피 통과되지는 않을 테니 나는 정의를 추구하겠다’는 생각으로 일부 찬성하는 대안(국회의원 정수를 확대하지 않으면서 비례대표성을 강화)으로 매번 논의가 공전하는 것보다는 훨씬 실천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논의가 될 것이다.

현재의 정치 지형에 크게 낙담하고 실망하는 중도파 유권자들이 이 제안의 장점을 깨닫고 더 큰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면, ‘거대 야당 민주당의 약간의 손해’와 ‘대통령의 나름의 소신’이 결합하여 이번 총선을 다른 ‘룰’로 치르게 될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글쓴이 한윤형은
한국 사회의 청년세대 문제, 미디어 문제, 그리고 현실정치에 관한 글을 써왔다. 매체비평 전문지 <미디어스>에서 2012년부터 3년간 정치부 기자로 일했다. 이후 몇몇 여론조사기관과 선거컨설턴트 업체에서 일했다. 주요 저서로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2013), <미디어 시민의 탄생>(2017)이 있다. 2020년에 1980년대 출생 저자들과 함께 <추월의 시대>를 출간했다. 현재 넥스트브릿지 기획위원, 새로운소통연구소 조사분석실장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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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칼럼] 탄소중립 게을리하면 ‘수출 한국’ 무너져

그동안 탄소중립은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환경 이슈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미국과 EU는 이미 기후위기 대응을 통해 무역장벽을 쌓아가고 있다. 향후 10년 안에 친환경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은 제품들은 수출이 불가능하다. 최종 생산재 뿐 아니라 하청기업이 배출하는 탄소도 예외가 아니다. 이제 탄소중립은 세계 경제의 최대 이슈가 되었다. 그런 변화에서 한국만 예외가 될 수 있을까? 우리만 기준을 낮추면 한국 기업들이 자유로울까? 이유진 필자는 탄소중립을 게을리할 경우,...

[구본권 칼럼] 챗GPT, 신세계의 문을 열었나

‘ChatGPT’(챗GPT)가 도대체 뭐야? 새해 벽두에 챗GPT가 화제다. 특히 학계, 지식인 사회, IT 산업계 등에서 탄성과 불안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일부에선 ‘앞으로의 세상은 챗GPT 이전과 이후 시대로 나뉠 것’이라는 성급한 전망마저 내놓고 있다. 챗GPT는 지난해 말 미국에서 공개된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다. 코딩이나 명령어 조작 없이 사람이 텍스트로 입력을 하거나 말을 하면 인공지능이 그 명령을 수행한다. 인공지능이 사람의 자연언어를 이해하고 소통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