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의 식탁’, 오늘의 소재는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이다. 삼성이 부도설을 핑계로 삼아 대통령 선거에 개입한 이야기, 박지원 실장이 한밤중에 김우중 회장의 전화를 받고, 이건희 회장에게서 90도로 절을 받은 이유, 중국이 한국 휴대폰을 선택한 계기, 현대의 미수금을 김대중 대통령이 받아온 일 등 숨은 이야기 거리가 풍성하다.

그리고 드라마에서 나오는 정치자금은 정말 실체가 있는 것일까? 정치자금법이 없을 때 당선 사례금은 어느 정도 규모였을까? 대통령과 재벌의 재미있는 뒷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재벌들이 왜 국가와 사회에 환원을 해야 하는지, 왜 존경을 받지 못하는지에 대한 따끔한 충고도 덧붙였다. [편집자 주]

✔ DJ "수출로 경제 살리고 채용 많이 하는 것이 애국"✔ 이건희 회장 요청과 DJ의 결단, 전폭적인 과학기술·IT 지원✔ 휴대폰 세일즈, 해외 대금 지급까지 챙긴 DJ의 실용 외교✔ 우리 재벌은 정부 특혜로 성장한 만큼 사회 환원 확대해야

박지원의 식탁 6회 방송 바로 보기

김유정 : 요새 날씨도 춥고 즐거운 일도 없어서 사람들이 참 낙이 없다, 이런 얘기 하는데 요즘 제가 열심히 보는 드라마가 하나 있거든요. 아시죠, <재벌집 막내아들>.

이관후 : 요즘에 시청률 기록을 찍고, 사람들이 틈만 나면 얘기하죠. 드라마 자체도 재밌지만, 나이가 조금 있으신 분들은 과거 역사들이 쭉 이어지면서 ‘아 그때 저랬었구나’, 이런 얘기들도 많이 하신다고 합니다.

김유정 : 그 드라마 속 재벌 이야기인데요. 진짜 재밌는 이야기, ‘대통령과 재벌’ 지금부터 함께 해보겠습니다. 사실 김대중 대통령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바로 재벌 개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드라마에서도 그랬고, 실제로 그렇게 하셨고.

김대중 대통령, ‘친노동 친재벌’이었다

박지원 : 흔히 김대중 대통령을 말씀하면 ‘친노동 반재벌’ 이런 얘기를 하시는데, 저는 ‘친노동 친재벌’ 정책을 쓰신 분이다, 라고 말합니다. 특히 IMF 외환 위기가 와서 개혁을 할 수 있는 천우신조의 기회를 가졌죠. 이때 재벌 회장들에게 ‘정치자금을 내는 시대는 끝났다. 그렇기 때문에 이익을 많이 내서 세금을 많이 내고, 특히 수출을 많이 해서 우리 경제를 (살리고) 노동자들을 많이 채용하는 것이 애국이다’ 이렇게 했고요.

재벌을 없애자, 이런 생각은 절대 없었어요. 선거 과정에서 삼성생명에서 ‘김대중이 대통령 되면 삼성이 부도난다’라고, 보험 판매원들에게 이회창 후보 선거운동을 강하게 하게 했어요. 제가 실제로 선거운동을 한 다섯 분을 만나서 주민등록증을 복사하고 녹음을 했어요. ‘디제이가 되면 삼성 망한다. 부도 난다. 그러니까 창을 찍어라’라고 했다는 거예요.

김유정 :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셨네요.

박지원 :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뒤 실제로 삼성생명 관련 언론 보도가 나왔어요. 20~30%가 해약되고 있다고. 왜? 부도난다고 하니까.

삼성, ‘김대중 당선되면 삼성 부도난다’고 선거운동

삼성의 중요한 분이 저를 만나자고 해서 ‘절대 우리 그런 적 없다’고 해요. 제가 그랬죠. 왜 거짓말을 하느냐. 내가 (증거) 다섯 개를 가지고 있다고.

이관후 : 증거를 가지고 있는데 보여주랴?

박지원 : 그러니까 잘못했대요.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한테 그 말씀을 드렸어요. “이런 적이 있어서 제가 혼을 내놨습니다”라고.

나는 칭찬을 받을 줄 알았더니 (당선자께서) ‘자네 왜 그런 짓을 했나. 선거운동을 할 때 그런 일을 했다고 해도 우리가 당선됐으면 모든 것을 용서하고 통합으로 가야 된다. 삼성생명이 해약돼서는 안 되고, 삼성이 돈을 많이 벌어서 세금을 많이 내면 그것이 애국의 길 아니냐’라고 얘기하시더라구요.

이관후 :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을 그렇게 방해하는 일들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너그럽게 용서하고.

박지원 : 우리는 그때 (대통령 당선자를) 그냥 총재님이라고 불렀어요. 총재님이 저한테 소위 5대 재벌 삼성, 엘지, 현대, 에스케이, 한화의 (회장) 다섯 분하고 월요일에 식사를 하시자며 저한테 연락을 하라는 거예요.

그런데 확실히 삼성은 달라요. 제가 비서실로 전화할 때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 대변인 박지원입니다’라고 하면 복잡하잖아요. 세상에 당선자도 어려운데. (하지만) ‘당선자 대변인’을 삼성만은 알아듣더라고.

이관후 : 중요한 전화가 왔구나, 이렇게.

박지원 : 딱 바꿔줘. 그래서 이렇게 오시라고. 하지만 다른 회사들은 비서실에 전화를 했더니 박지원을 몰라. 계속 전화를 돌려.

김유정 : ‘누구시라고요?’ 뭐 이랬겠네요.

2001년 5월 12일 청와대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악수하는 이건희 회장(사진:연합뉴스)

한밤중에 걸려온 김우중 회장의 전화

박지원 : (대우) 김우중 회장의 비서실장이 그때는 상무더라고요. 그 양반한테 “월요일에 이렇게 다섯 개 그룹 회장들하고 대통령님하고 식사를 하시는데 나오시라고 하십시오”라고 했더니, ‘김우중 회장이 수출 때문에 동구권에 가셨는데 지금 바로 연락해 주말에 귀국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오시지 말라고, 수출이 제일 중요하니까, 수출하고 들어오시라”고 했지요. 그런데 제가 밤에 집에 들어가니까 제 아내가 ‘여보 어떤 사기꾼이 당신을 찾더라. 자기가 김우중 회장이라고 하면서 당신을 찾더라’는 겁니다. 그리고는 밤 12시가 15분쯤 지났는데 (김우중 회장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그래서 제가 오시지 말라고 그랬더니 (직원들이 전화 돌린 것) ‘사과한다’고.

제가 “수출 때문에 나가 계시면 수출을 많이 하고 오십시오. 오시면 제가 단독으로 당선자를 만나게 해드리겠습니다”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재벌들은 권력 앞에 오면 고양이 앞에 쥐지, 돌아가서는 황제야.

이관후 : 그러면 국회 귀빈식당에 실제로 오셔서 식사를 같이 하셨어요?

박지원 : 그렇죠. 식사를 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이 그건 강조했어요. 문어발식으로 재벌들이 다 먹어버리는 이런 산업구조는 개편돼야 된다. 서울에서 밤에 보면 빌딩의 5분의 3이 전부 5대 재벌 빌딩 아니냐. 이런 나라가 어디 있느냐. 미국, 일본도 그렇지 않잖아요.

김유정 : 그런데 당시에 보도된 것은 시종일관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만남이) 진행됐다(고), 했는데 실장님이 그 현장에 계셨으니.

박지원 : 그 자리 가기 전에 제가 삼성을 야단친 게 있으니까. 20~30%가 삼성 보험을 해약하고 있으니 어떻게 할까요, 라고 보고한 게 있잖아요. 그랬더니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회장 회동 때) 나한테 그 말을 해라. 그러면 내가 얘기를 하겠다’(고 하셨어요).

당선 사례금 받지 않은 첫 대통령

이관후 : ‘김대중이 됐다고 삼성이 부도나는 일은 없다’는.

박지원 : 대통령에 당선되리라고는 나도 몰랐어. 그러니까 재밌는 게 그때는 정치자금을 많이 낼 때에요. DJ도 받았어요. 1997년 대통령 당선되는 해에 정치자금법이 개정돼서, 그제서야 후원회 제도가 처음 생긴 거예요. 그때부터 정당 후원에 법인은 2억원, 개인은 1억원, 이렇게 합법적으로 내게 돼 있으니까.

사실 ‘X파일’ 그때도 (돈을) 가져왔는데 다 돌려줬어요. 안 받았어요. 대통령이 당선되니까 엄청난 기업들에서 당선 사례금을 가져왔는데, 이게 수백 억 원이야. 하나도 안 받았어.

이관후 : 그러면 <재벌집 막내아들>에 나오는 내용이 사실이군요. 어쨌든.

박지원 : 받았어야 되는데. 그러면 감옥은 조금 더 살더라도 (웃음). (그렇게 큰돈을 가져오니까) 제가 하도 겁이 나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에게 보고를 했어요. 그랬더니 '받지 마라' 그러셨어요.

대통령 당선자가 당선되면 모든 전화나 면담이 차단되고, 못 만나잖아요. 그래서 '박지원 당신이 안 받으면 나한테는 가져올 리 없고, 그러면 또 한번 새로운 역사를 쓴다. 당선 사례금을 안 받는 최초의 대통령이 되자', 이러시더라고요.

그런데 그 식사 자리에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삼성 이야기를 미처 못 했어. 경제비상대책위원장 박태준, 부위원장 김용환 두 분하고 따로 이야기하신다고 옆으로 옮겨가더라고. 그래서 세 분이 얘기하는데 가서 “총재님, 이건희 회장한테 말씀할 삼성생명 해지 건을 얘기 안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 내가 깜빡 잊어버렸는데, 지금 가서 자네가 이야기해', 이러세요. 그래서 제가 그 회장들이 서 있는데 가서 이건희 회장한테 ‘대기업들은 이익을 많이 내서 세금을 많이 내고 수출을 많이 하는 것이 애국의 길이기 때문에, 선거 때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해서 보복을 하지 않겠다’, 이랬어요.

그런데 거기 문을 열어 놨잖아요. 그러니까 기자들이 다 들여다 보고 있죠. 그런데 이건희 회장이 90도로 저한테 절을 하는 거야. 같이 옆에서 최종현 SK 회장님도 90도로 절을 하더라고요. 전경련 회장으로서 보복을 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김유정 : 감사의 뜻이죠.

이건희 최종현 회장한테서 90도 절을 받다

박지원 : 그런데 (기자들에게 내용은 안 들리는데) 느닷없이 이건희 회장하고 최종현 회장님이 저한테 90도로 절을 하니까. 이게 뭐냐 하는 거지.

이관후 : 플래시가 터지고 기자들이 웅성웅성.

박지원 : 그때 김대중, 박태준, 김용환 세 분이 얘기가 끝났어요. 그런데 회장님들이 대통령이 아직 거기 있는데 못 나가죠. 그래서 당선자가 이건희 회장을 보시고, ‘내가 아까 대변인을 통해서 얘기를 했지만 절대 그럴 일 없다. 흑자 내서 수출 많이 해서 세금만 많이 내주라’고 하니까 이번에는 이건희 최종현 회장 두 분이 김대중 대통령한테 90도로 절을 해요. 그러고 끝나서 나갔단 말이에요.

그런데 기자들이 내가 내용 얘기를 안 하니까, ‘왜? 정치자금 안 가져왔냐고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야단을 치니까, 가져오겠습니다. 잘못했습니다’라고 인사를 한 것 아니냐고 상상의 춤을 추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얘기해줬죠. 그게 신문에 났어요. 재벌들에게 보복을 하지 않는다.

단 IMF에 한 이야기가 있고, 재벌 개혁의 호기를 만났기 때문에 여러 가지 정리를 해야 됐는데, 최종현 회장이 건강 때문에 물러나시고 김우중 회장이 전경련 회장이 된 겁니다. 여기서부터 김대중의 재벌 구조조정 개혁이 시작되는 거예요.

김유정 : 재벌 개혁과 구조조정, 외환위기 상황에서 필수적으로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기도 합니다만 당시 재벌들의 반응이 궁금하거든요. 협조적이었는지 저항은 없었는지.

박지원 : 김우중 회장이 인수위원회로 오셔서 당선자실로 내가 안내를 했어요. 노란 봉투를 가지고 들어왔어요. 그 노란 봉투에서 꺼낸 것이 수출만이 외환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런 거에요. 그래서 어떻게 수출을 전경련이 해나가겠다는.

그렇게 하기 위해서 구조조정안을 전경련에서 가져오라고 했거든요. 구조조정을 이렇게 하겠다,라고 하는. 김우중 회장이 ‘상호 중복 투자된 업종을 재벌별로 단일화하자’고 (보고했죠). 그러니까 전자는 삼성과 대우, 석유화학은 어디, 이런 식으로.

제가 볼 때 그때 가장 손해 보는 곳이 LG야. 내가 원래 럭키에 공채로 들어갔거든요. 그래서 나는 럭키에 애정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LG전자를 대우전자랑 합쳐버리자는 거야. 그걸 내가 구본무 회장한테 얘기해 줄 수는 없잖아요. 그 말을 못하죠. 당선자 대변인인데. 그런데 그런 식으로 자율성을 주면서, 전경련 대기업들이 합의를 해서 구조조정을 했다. 그렇게 생각해요.

1996년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서 당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함께 환담을 나누는 최종현 SK 회장. (사진:연합뉴스)

삼성자동차 구조조정은 삼성이 바랐던 것

김유정 : 당시에 생각하셨던 그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고 보세요?

박지원 : 만족은 하지 않지만 외환위기에서 경제를 죽이지 않고 구조조정 개혁은 성공했다, 그렇게 봐요. 특히 삼성자동차 구조조정을 하면서, 이건희 회장한테 빼앗아서 김우중 줬다, 그렇게 밀어줬다고 하는데, 그건 아니에요.

사실 삼성자동차는 처음부터 부산이 아닌 광주 기아자동차 있는 쪽으로 가기로 돼 있는데 YS가 대통령 되면서 부산에다 앉혀버린 거예요. 제 기억으로 삼성자동차 공장 터가 간사이 공항처럼 매년 침하가 돼요. 이걸 유지하는데 돈이 많이 들어. 그리고 삼성은 자동차를 구조조정하기를 굉장히 바라더라고. 대구에 상용차 트럭 공장도 있었어요. 이것부터 정리해 달라고 저한테 많이 부탁했어요.

그래서 르노자동차가 인수를 했는데, 르노자동차가 삼성이라는 브랜드는 필요하다, 그래서 삼성은 돈 한 푼 안 내고, 르노삼성이 탄생되고. 그래서 사실상 구조조정을 통해서 삼성이 상당한 효과를 봤지.

이건희 회장, 과학기술에 투자해 달라고 청하다

이관후 : <재벌집 막내아들> 보면 진양철 회장이 당시에 노태우 대통령을 만나서, 반도체 사업 독점권을 달라, 이렇게 얘기하는 장면이 있거든요. 이런 일들이 실제로 있습니까?

박지원 : 저는 몰라요. 다만 다른 이야기들은 있었어요. 김대중 대통령은 대통령 재임 시에 일주일에 딱 한 번만 가족하고 식사를 해요. 나머지는 다 외부 인사, 내부 인사. 5대 재벌 회장들 하고도 식사를 많이 했어요. (식사 자리에 오면) 재벌 회장들한테 다 한 마디씩 의견을 내라고 그래요. 그러니 다 준비를 해가지고 오는 것 같아. 그 중에서도 뭐가 좀 ‘썸씽’이 있는 분은 이건희 회장이에요.

어느 날 딱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대통령님이 IT, 정보통신을 지원해서 우리가 25년, 30년은 먹고 살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먹고 살 게 아직 없으니까, 과학기술에 투자와 개발을 해주십시오.' 지금 지나고 보니까 제일 정확한 말씀을 했어요. 25년 30년을 진짜 IT로 먹고 살았잖아요.

그날 이후로 김대중 대통령이 과학기술부에 엄청난 투자를 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정보통신부도 없애고 과기부도 없애가지고. 그 후로 무슨 로봇이다, AI다 하는 것을 못 따라 갔잖아요.

과거에 우리에게 위기가 왔을 때 핸드폰이 나왔잖아요. 아이폰이 나왔단 말이에요. 삼성이 처음에는 안 됐는데, 빨리 추격을 해 가지고 핸드폰으로 세계 시장을 지배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삼성전자 훌륭하다, 어른폰을 만들어서 아이폰을 잡아버렸다, 이렇게 칭찬했죠.

중국은 왜 한국 휴대폰을 쓰게 되었나?

핸드폰이 막 나왔을 때, 장쩌민 주석 초청으로 김대중 대통령이 중국을 국빈 방문합니다. 그런데 중국에서 우리식 CDMA 방식 핸드폰이 아니고 유럽식 GSM인가 그걸 도입하려고 한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정상회담을 하시면서 어떤 경우에도 중국이 CDMA로 하도록 해줘야 한다고 제가 김대중 대통령한테 보고했습니다.

논리는 CDMA는 도청이 안 되고 유럽식은 도청이 된다고. 그랬더니 경제수석이 무슨 전화기까지 대통령이 이야기를 하냐, 그래요. 김대중 대통령이 ‘그게 무슨 소리냐? 해야 된다’고 하시는 거야.

이관후 : 이거 중요한 일이다.

박지원 : 팔아야지. 그러니까 저한테 ‘내가 만약 정상회담 할 때 그 얘기를 하지 않으면 자네가 와서 나한테 얘기를 해라’고 하시는 거예요.

중국 정상회담은 장쩌민하고도 하고 주룽지 총리하고도 해요. 경제 쪽은 주로 총리가 하니까, 딱 회담장으로 들어갈 때 ‘대통령님 CDMA요’라고 하니까, ‘알았어’ 하시더라고.

이관후 : 그렇게 챙기셨군요.

박지원 : 정상회담에서 주룽지 총리한테 CDMA 방식, 우리 걸 써주라, 핸드폰이 우리 게 최고다, 그랬더니 주룽지 총리가 김대중 대통령을 진짜 존경해요. 자기도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 때 많은 핍박을 받았는데,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그 핍박을 어떻게 견디고 살았느냐, 그래요. 장쩌민 주석도 김대중 대통령한테 ‘형님, 따거’ 이렇게 부르는데.

김대중 대통령님께서 휴대폰 말씀을 하시니까 주룽지 총리가 'CDMA로 하겠습니다'라고. 이렇게 해서 따왔다니까. 그 후로 입찰을 했는데 삼성하고 LG하고 했는데, LG가 떨어져 버렸어. 너무 비싸게 써 가지고. 김대중 대통령이 화를 확 내시더라고. '세상에 내가 그렇게 이걸 따다 줬는데, 삼성은 됐지만 LG도 했어야 될 것 아니냐', 하시는 거야. 그런데 삼성이 그렇게 핸드폰을 중국에 많이 팔았으면 나한테 핸드폰 하나라도 줘야 될 거 아니야? (웃음)

그런 것이 대통령이 해줘야 될 일이고, 또 그러한 열매를 먹고 자란 것이 재벌 대기업이라고 하면, 자기들이 돈을 벌면 사회 환원도 해야 되요.

브루나이 현대의 2000만 달러 미수금을 받아주다

이관후 : 국가와 사회에 환원을 해야죠.

박지원 :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보세요. 워렌 버핏, 조지 소러스는요, 주식 투자꾼들이에요. 그렇지만 그 사람들은 막대한 돈을 벌어서 거의 49% 정도 사회에 환원했잖아요. 그러니까 존경을 받는 거야.

우리 재벌들은 100% 특혜 받아 돈 벌어서, 다 먹어버리니까 존경 못 받지. 요즘에서는 사회 환원도 많이 하지만 아직도 그거 가지고는 안 돼요. 과감하게 해줘야 돼.

김유정 : 말씀 듣고 보니까 김대중 대통령님이야말로 세일즈에 진심을 보여주신 분 아니었나,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데요.

박지원 : 현대가 브루나이 국왕 동생한테 사업 대금을 2000만 달러를 못 받은 게 있었어요.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님이 브루나이에 가셔서 왕이랑 정상회담 하면서 ‘우리 한국 회사가 2000만 달러를 동생 회사에서 못 받고 있는데 좀 도와주십시오’, 그러셨어요. 브루나이 왕이 ‘동생 회사는 형편 없으니까 내 재산으로 갚아주겠습니다’라고 해서 돈 받았다니까요.

재벌 혼맥도 이제는 옛날 이야기

김유정 : <재벌집 막내아들>을 보면 진양철 회장 손자하고 현성일보 딸하고 혼인을 하거든요. 마치 이건희 회장하고 홍라희 여사의 결혼 이런 것을 떠올리게 하는데요.

박지원 : 이건희 회장 따님하고 <동아일보> 김재호 회장 동생도 결혼했잖아요. 지금도 (김재호 회장 동생인) 김재열 사장이 아주 잘하고 있어요. 재벌들이 혼맥 같이 하는 것이 저는 뭐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잘하면 좋은데 잘못하면 문제가 있지. 과거에는 재벌들이 정계나 관계의 거물들하고 사돈을 했어요. 지금은 달라졌어요. 국회의원 정치인들 딸, 아들 결혼시키기 굉장히 힘듭니다.

나도 아주 부자인 내 친구가 우리 딸을 자기 며느리 삼자는 거야. 그래서 "나는 안 한다. 너희 집은 부자고 우리 집은 가난한데, 얼마나 고생하겠냐" 그런 말 하면서 안 했는데, 짝은 옛날부터 헌 짚신도 짝이 있다는 거 아니에요? 하늘이 맺어주는 인연대로 해야 되고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하고 해야 돼.

저도 재벌 사위 될 뻔했는데 안 했어요. 나는 우리 와이프하고 7년 연애 했는데 우겨서 결혼했죠. 그런데 나보다 더 잘 된 사람이 어딨어요? 그거 다 몰라요. 내가 요즘 검찰 조사 받고 (민주당에) 복당해서 치고 박고 하는데 이게 다 사주 팔자에 나와 있는데. 또 잘 헤쳐나가는 그런 운명도 있으니까, 저는 앞으로도 희망이 창창한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해요.

우리 큰딸이 시집을 갔는데 자기 사촌 동서가 아주 정계 거물 딸이야. 딸이랑 동서랑 둘은 굉장히 친해. 그런데 내가 그 사람을 모르고 엄청나게 조졌는데.

이관후 : 알고요, 모르고요?

박지원 : 처음에는 몰랐지. 그런데 <조선일보>가 썼더라고요. <조선일보>가 혼맥을 잘 써요. 내가 우리 딸한테 "야, 아빠가 이렇게 자기 친정 아버지 조진다고 말하든?’ 하니까 절대 그런 거 없대. 인연대로 살아야지. 진양철 회장 그렇게 한 것도 옛날이지 지금은 못 그래요.

김유정 : 사랑을 선택하시길 바라실 거예요.

박지원 : 사랑하면 무엇이 아까워. 왕관도 버리는데. 그렇게 계산해서 재벌 딸, 권력자 딸이니까, 이렇게 결혼한 사람 치고 잘 못 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