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뾰족수가 마땅치 않다.’ 미국의 거센 반도체 공세에 중국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이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분업체계를 거부하고 자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에 나서며 동맹국에까지 중국 압박을 위한 ‘신질서’를 요구하고 있지만, 이에 맞설 확실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권석준 필자는 중국이 시진핑 3기 체제 확립 이후 일단 ‘양날개 전략’을 선택한 것으로 분석한다. 한쪽 날개는 자국내 반도체 산업 생태계를 강화하는 ‘덩치 부풀리기’이고, 다른 날개는 미국 중심의 기술 표준에서 벗어나는 독자적인 반도체 기술 개발이다. 일종의 자강 전략인데, 이 고육책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한국은 이런 반도체 산업 환경 및 기술의 급변 상황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편집자 주]

✔ 중국식 국가발전 개념 재정립: 과학, 인재, 혁신✔ 국내 산업의 덩치를 키워 미국 압박에 맞서는 중국✔ 미국의 기술·무역 제재로 중국 펩리스 업체 줄도산✔ 성공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 중국의 신기술 전략

사진:셔터스톡

지난 10월 16~22일 중국 베이징에서는 제20차 당대회가 개최되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 대회의 가장 큰 의미는 시진핑 현 주석의 3 연임이 확정되었다는 것이다. 중국의 최고 지도부인 상무위원 7인은 시진핑과의 그의 측근들로 구성되었다. 이는 시 주석의 향후 국가 정책 장악력이 더욱 강화될 것임을 의미한다. 이런 정치적 뉴스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덜 주목을 받은 뉴스는 당대회 업무보고 내용이다. 그 키워드 가운데 하나가 중국의 ‘현대화’다.

‘과학’ 제1 생산력, ‘인재’ 제1 자원, ‘혁신’ 제1 동력

이미 기술적으로 많이 진보했고, 대부분의 산업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해마다 높여가고 있는 중국이 이 시점에 새삼 ‘현대화’라는 키워드를 꺼낸 것은 흥미롭다. 업무보고에서 주로 언급된 산업은 우주, 교통, 디지털, 농업, 무역 등으로, 이미 기반이 잡힌 산업들이다. 그러나 이 산업들에 대해서도 수식어로서 ‘고품질 발전’과 ‘신발전구도 구축’이라는 개념이 추가된 것에 주목해야 한다. 총 15장으로 구성된 중국 당대회 업무보고서 중, 제4장과 5장이 이를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특히 제5장은 과학기술/교육흥국 전략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과학을 제1 생산력, 인재를 제1 자원, 혁신을 제1 동력으로 지칭하며 중국식 국가발전의 개념을 재정립하고 있다.

중국이 계획하고 정의하는 국가발전 개념에서 역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자국의 산업 경쟁력 강화다. 이를 위해 이미 추진하고 있던 ‘중국제조 2025’이나 ‘반도체 굴기’ 같은 정책은 중단 없이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주목할 점 중 하나는 중국이 각 지역에 지역 고유의 경제 발전 모델을 설정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이미 반도체 클러스터가 자리잡고 있는 지역들 외에, 다른 지역들을 새로운 ‘과기 클러스터’ 중심지역으로 새롭게 지정하려는 계획이 있다. 이는 각 지역의 클러스터에 속한 첨단제조업을 담당할 기업 육성 정책을 천명하는 것과 맞물린다. 또한 중국 동부를 중심으로 하는 제조업 벨트를 강화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될 수도 있다.

2010년대부터 지금까지 형성된 중국의 반도체 클러스터는 크게 네 지역으로 나뉜다. 서부에는 시안(삼성전자 메모리반도체 생산 시설이 위치)과 청두, 그리고 우한을 중심으로 하는 클러스터, 북부에는 톈진과 베이징, 다렌(SK하이닉스가 2020년에 인수한 인텔의 낸드 플래시 공장이 위치)을 중심으로 하는 클러스터, 동부에는 상하이, 쑤저우와 우시(SK하이닉스의 메모리반도체 생산 시설이 위치)를 중심으로 하는 클러스터, 그리고 남부에는 선전과 샤먼을 중심으로 하는 클러스터가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이번 20차 당대회를 전후로 중국 정부가 새로 설정하려는 첨단산업 클러스터는 이들 클러스터 사이의 지역을 절묘하게 커버한다. 안후이, 허난, 장시, 산시성은 중국 동부 해안 지역과 중서부 내륙 지역 사이의 벨트를 남북으로 길게 연결하는 띠를 이루고 있는데, 중국 정부는 바로 이 지역에 새로운 첨단산업 클러스터, 특히 제조업을 중심으로 하는 기업 집단의 생태계를 형성하겠다는 계획을 천명한 것이다. 이 지역은 그동안 중국의 제조업 육성 정책에서 상대적으로 덜 고려된 지역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면, 중국 정부가 이 지역에 첨단 제조업 클러스터를 새로 형성하려는 의도는 흩어져 있던 중국 전역의 제조업 클러스터를 연결하겠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중국 동부 장쑤(江蘇)성 우시(無錫)시에 있는 SK하이닉스반도체 우시공장 (사진:연합뉴스)

중국, 국내 산업 덩치를 키워 미국 압박에 맞선다

제조업 중심의 신규 클러스터 형성 전략은 일차적으로는 중국의 제조업 분야 자급률 제고를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장기적 관점에서는 앞으로 미-중 두 나라 사이의 반도체를 위시로 한 첨단 제조업 분야에서의 기술 패권 경쟁에 대비하기 위함으로 풀이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미국의 대중 반도체 무역 및 기술 제재는 반도체 팹리스 업체들이 활용하는 칩 레이아웃을 위한 설계 IP부터 제조를 위한 공정 장비까지, 또한 소재나 소자 구조에 대한 기술 실시권부터 장비 유지보수 인력까지, 그야말로 반도체 산업 전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이는 중국의 반도체 산업의 성장을 더디게 만드는 주요 원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를 통해 미국은 중장기적으로는 중국의 반도체 기술 발전 속도를 더 늦추고자 하며, 동시에 미-중 사이의 첨단 산업 분야 기술 격차를 벌리기 위한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전방위적인 통제에 직면한 중국 입장에서 반도체 산업 분야에서의 자급률 제고는 이제 국가적 차원의 정책 수준을 넘어,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방향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중국의 반도체 산업 규모 확장과 더불어 생태계 구축을 근본적으로 다시 설계하는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그 결과 중 하나가 바로 새로운 클러스터들의 신규 확장과 부품, 장비 기업들의 창업 지원, 그리고 규모 확장이다.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공격적인 반도체 산업 육성 정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중국 반도체 산업 입장에서 가장 골치 아픈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핵심 제조 기술을 틀어막힌 현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지난 8월, 중국을 대표하는 파운드리 업체인 SMIC(중신궈지)는 7 나노 공정을 이용한 시스템반도체 칩 생산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발표했다. 10 나노 공정의 벽을 못 넘고 있던 중국 반도체 제조 기술에 있어 상징적인 돌파구처럼 보일 수 있는 소식이었다. 그렇지만 이는 SMIC 입장에서는 무리하게 기존의 DUV 기반 리소그래피 공정을 반복하여 집약한 결과물일 뿐이다. 다시 말해 높은 공정 원가와 안정적 수율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한계로 인해 글로벌 시장은 물론, 중국 내수 시장의 수요조차 대응하기는 매우 어려운 수준에 머무는 것이다.

중국최대 반도체 회사인 중신궈지 본사 (사진:연합뉴스)

미국의 기술·무역 제재로 중국 팹리스 업체 줄줄이 도산

중국 반도체 산업은 2010년대 들어 전 분야가 성장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더욱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분야는 바로 다양한 산업에 활용될 수 있는 칩을 설계하는 팹리스 분야다. 다만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기세만큼이나 폐업률 또한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예를 들어 2017년 500개 정도였던 중국의 반도체 팹리스 폐업 건수는 2021년 3500건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났으며, 2022년 9월 현재는 5500건에 달할 정도로 급증세다. 팹리스는 산업 특성상, 초기 자본이 반도체 제조업처럼 집약적으로 필요하지는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적은 자본으로도 창업이 가능하다. 따라서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중국 정부의 반도체 펀드를 뒤에 업은 팹리스 업체들이 급증할 것임은 예견된 일이었다.

그렇지만 팹리스의 비즈니스 모델은 설계의 정합성, 그리고 혁신과 더불어 그것이 제때 제대로 생산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모든 시스템반도체 칩들이 반드시 10 나노 이하급의 초미세 패터닝 공정을 이용한 파운드리를 거쳐야만 제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공지능 전용칩, GPU, NPU 같은 고부가가치 칩일수록 10 나노 이하급의 파운드리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 기술이나 마찬가지다.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 분야 중 하나가 바로 이러한 10 나노 이하 급 파운드리를 위한 공정 장비 기술 제재이며, 다른 하나는 중국 팹리스 업체들이 대만의 TSMC나 UMC 같은 파운드리와 거래를 하지 못하게 하는 무역 제재다.

이로 인해 2020년 이후, 중국의 팹리스 업체들은 14 나노 이하급 파운드리를 위해 결국 자국의 SMIC 같은 파운드리 업체들로 주문량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SMIC의 14 나노 혹은 그 이하급 파운드리 월 제조 규모와 기술 수준은 여전히 글로벌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제때 그리고 설계대로의 성능대로 생산되지 못한 팹리스 업체들의 칩은 고객사로부터 외면당하며 결국 글로벌 시장에서 밀려나게 된다. 이로 인해 신뢰도가 저하되며 수익성이 악화되는 중국 팹리스 업체들의 부도 위험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고, 이는 급증세의 폐업률로 확인된다. 팹리스 업체들의 창업자금 대부분은 앞서 언급했듯, 중국 정부의 반도체 펀드에서 비롯된 것인데, 그 자금은 업체들이 수없이 난립하고 폐업하는 과정에서 대부분 회수되지 못한다.

불안정한 재무 안정성과 수익 구조, 그리고 파운드리가 충분하게 제조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 입장에서 팹리스는 중국 반도체 산업의 생태계 형성을 고려할 때 투자를 줄이기 어려운 산업이다. 전통적인 장비, 부품, 소재 등의 분야는 상대적으로 육성하기 어려우며, 글로벌 수준의 기술 진입 장벽이 높기 때문에 투자 효과가 더디고 성장세도 느리다. 그래서 신규로 시장에 진입한 기업이 오래 살아남을 확률이 높지 않다. 반면 팹리스 업체는 상대적으로 자본 집약도가 낮아 창업이 용이하며, 설계 인력의 확충을 통해 인적 자본을 집중할 경우, 선두 업체를 따라잡을 가능성이 다른 반도체 산업 분야보다는 높다. 특히 칩의 설계에 있어 ARM RISC 중심의 현재 방식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오픈소스인 RISC-V 기반의 칩 설계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다. 중국 팹리스 업체들을 중심으로 RISC-V 기반 커뮤니티가 성장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알리바바, 바이두, 텐센트 같은 중국의 거대 IT 대기업들과 협업하여 새로운 아키텍처를 도입하고 설계를 최적화하는 방향으로 칩 성능을 높이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그럼에도 앞서 말했듯, 팹리스의 수익은 설계된 반도체 칩이 제때 그리고 제대로 제조될 때만 보장된다. 설계한 칩의 복잡도나 집적도, 그리고 요구되는 성능이 높아질수록, 단위 칩당 수익률은 높아진다. 그러나 동시에 제조 난도가 높아지며, 따라서 설계 성능 구현 실패로 인한 수익률 저하의 위험도 같이 올라간다. 즉, 고부가가치 칩의 생산은 전형적인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구조를 따른다. 그래서 고성능 칩을 만드는 팹리스 산업의 성립을 위해서는 반드시 일정 수준의 기술력과 생산 규모를 갖춘 파운드리가 매칭이 되어야 한다.

팹리스 업체 ‘바이런’이 보여주는 중국의 어려운 처지

이러한 구조적 특성을 생각해 볼 때, 파운드리를 비롯한 반도체 제조 산업의 생산 규모와 제조 기술 수준이 팹리스 업체들의 수요에 제대로 매칭되지 않을 경우 시진핑 3기 이후의 중국 반도체 산업의 성장과 내실화는 달성되기 어렵다. 최근 제재가 시작된 H100이나 A100 같은 미국산 AI 가속기용 고성능 GPU 수입 중단에 대응할 주요 카드로 여겨졌던 중국의 GPU 설계 팹리스 업체인 바이런(Biren)이 처한 현실은 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바이런은 지난여름 BR100이라는 GPU를 선보였는데, 그 생산은 앞서 언급한 SMIC의 7 나노 공정을 통한 것이었다. 시장에 공개된 후, 업계 전문가들은 SMIC의 7 나노 공정 자체는 DUV 기반의 멀티패터닝 기술이었고, 그 원류는 TSMC가 2~3년 전에 시도한 방식과 흡사하다는 것, 심지어 후공정에 해당하는 패키징 기술까지도 거의 똑같다는 것을 밝혀냈다. 물론 TSMC는 기술 유출 사실을 부인하지만 TSMC의 전현직 공정 엔지니어들이 SMIC으로 이직하여 공정 기술을 변형하여 발전시켰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DUV 기반의 멀티패터닝은 기본적으로 원가가 매우 높고 공정 단계가 복잡하며, 따라서 생산 원가와 수율 관리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바이런 같은 팹리스 업체 입장에서는 제조된 칩의 성능이 보장되지 않는 리스크가 생긴다는 것과 동시에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5 나노 이하급 EUV 공정을 이용해야 하는데, SMIC는 EUV 노광기 수입이 불가능하고, 중국의 팹리스 업체들은 TSMC나 삼성전자에 EUV 공정 기반 파운드리를 위탁할 수 없다. 무려 7억 달러에 가까운 투자를 유치하여 야심차게 엔비디아에 도전할 수 있는 중국산 GPU의 개발, 그리고 글로벌 시장 진입까지도 천명한 바이런이었지만, 파운드리 단계에서 결국 진로가 막혀 고성능 칩으로부터의 수익 창출도 함께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이로 인해 바이런은 결국 지난 10월 말, 직원의 1/3을 구조조정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으며, 그 이후의 사정은 더욱 악화일로일 것으로 예측된다.

중국 정부도 이러한 한계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현재로서는 팹리스 업체들로 하여금 자국에서 그나마 생산할 수 있는 파운드리 공정 중심의 칩 생산을 독려하고 있다. GPU 팹리스 업체 중 하나인 무어 스레드는 최근 ‘MT-춘효’라는 GPU를 발표했는데, 칩의 제조는 SMIC의 테크노드 12 나노급 파운드리에 의존한다. 이 칩의 성능 자체는 NVIDIA의 2000 시리즈 GPU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7 나노 파운드리를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NVIDIA의 3080 시리즈에 버금가는 수준까지 (즉, 바로 한 세대 전에 해당하는 수준까지) 성능이 올라갈 수 있음을 무어 스레드는 천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SMIC의 7 나노 파운드리는 앞서 언급한 생산 용량과 원가 문제로 인한 어려움이 있다는 것, 그래서 사실상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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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바바 CPU 기대작의 쓸쓸한 퇴장

GPU뿐만 아니라 중국이 자급하고자 총력을 기울이는 반도체 칩인 CPU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여전히 대부분의 물량을 인텔과 AMD에 의존하는 중국 입장에서 PC는 물론, 관공서용 PC, 거대 데이터 서버용 CPU의 자급화는 시급한 사안 중 하나였고, 이는 중국 정부가 2010년대 초반부터 룽손이나 자오신 같은 자국산 CPU 설계 팹리스 업체에 대규모로 투자를 집중한 것에서도 잘 알 수 있다. 특히 화웨이의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이 2010년대 후반, 모바일 AP칩 설계 기술을 이용하여 CPU 설계 분야로도 사업을 확장하던 추세 역시 이러한 중국 정부 정책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CPU 역시 코어 숫자와 클럭 주파수, 소비 전력이라는 성능 요소를 동시에 잡기 위해서는 10 나노 이하급 초미세 파운드리 공정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GPU와 마찬가지로 파운드리 공정 단계에서의 기술적 장벽은 중국산 CPU의 근본적인 약점이 된다. 중국의 알리바바가 야심차게 내놓은 128 코어 CPU인 이티안(Yitian) 710은 지난 11월 전 세계 CPU 성능 순위를 비교하는 SPEC 2017 랭킹에서 삭제되었다. 이 랭킹은 시장에 출시된 CPU를 전용 벤치마크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연산 점수를 매김으로써 결정되는데, 랭킹을 산정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중요한 요소는 그 CPU를 시장에서 일정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지 여부다. Yitian 710 출시 당시 벤치마크 점수는 AMD의 제온 32 코어 프로세서와 비슷한 수준인 440점이었다. 최초 생산품의 성능이 우수한 수준으로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TSMC의 N5(테크노드 5 나노급) 파운드리 공정을 이용하여 생산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미국의 대중 제재가 본격화된 이후 알리바바와 TSMC의 거래는 중단되었고, Yitian 710 제조가 가능한 파운드리 시설도 중국 내에 전무한 탓에 결국 생산과 시장 공급은 모두 중단되었다. 이로 인해 AMD의 제온 프로세서에 맞먹을 것으로 기대된 알리바바의 CPU 기대작은 시장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앞서 언급한 CPU나 GPU 같은 시스템반도체 외에도, 메모리반도체 역시 결국 10 나노 이하급 한 자릿수 파운드리에 대한 의존도가 조만간 높아지게 된다. DDR5 이후의 차세대 DRAM, 세 자릿수 이상의 3차원 적층 구조의 낸드 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 역시 시차를 두고 제조 공정이 7 나노, 5 나노 공정 등으로 옮겨가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중국 정부가 반도체 자급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메모리반도체 자급도 결국 10 나노 이하급 파운드리 제재로 인해 다음 세대로의 기술 진보가 막히게 되는 것은 거의 정해진 결말이다. 결국 미국의 대중 파운드리 및 제조 공정 제재가 지속되는 한, 중국 반도체의 병목현상은 지속된다.

필자가 그동안 예측했듯, 중국이 이러한 병목현상에 대해 취할 수 있는 대책은 당분간 ‘버티기 전략’ 밖에 없다. 10 나노 이하급의 파운드리가 없다면 비용과 수율에 신경 쓰지 않고 DUV 멀티패터닝 파운드리를 더 많이 확장할 수 있다. 혹은 아예 EUV 리소그래피가 향하는 로드맵과 분리되어 독자적인 칩 구조를 정하여 성능을 극한으로 밀어붙일 수도 있다. 장기적으로는 미국이 주도하는 로드맵과는 다르게, 현재의 실리콘 반도체 제조 기술과 완전히 분리되어 새로운 방향을 더 빨리 탐색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은 ‘플랜 B’로서 양자컴퓨터 칩으로의 전환을 더 서두를 수도 있다.

기술 표준에서 멀어지면? 옛 소련의 실패

그렇지만 중국이 반도체 생산 공정의 표준 로드맵에서 점점 멀어질수록 이는 중국 반도체 산업에 가중되는 부담이 된다. 이미 이에 대한 선행 사례가 있다. 과거 냉전 시절, 구소련은 미국과 비교하여 가장 뒤처진 기술 중 하나를 IC칩 생산기술 즉, 지금으로 따지면 반도체 생산기술이라고 판단했다. 그렇지만 미국은 전략적으로 IC칩 생산기술이 구소련 혹은 소련의 영향을 받는 국가로 흘러가는 것을 원천 차단했다(대공산권 수출금지 조약). 구소련은 몇 세대가 지난 생산 장비를 겨우 구해 재조립하는 방식으로 IC칩을 생산하려 했다. 구소련 붕괴 직전인 1980년대 중반, 구소련 전역에는 150곳에 달하는 반도체 생산라인이 있었지만, 그 중 가장 앞선 공정 기술을 가진 라인조차 2 마이크로미터(2000 나노) 수준의 패터닝 공정이 가장 최신 공정이었다. 당시 미국이 생산하던 가장 최신의 마이크로프로세서는 인텔의 80386칩으로서, 800 나노 공정으로 제조된 칩이었다. 미국과 구소련의 반도체 생산 공정 기술력의 차이는 단위 면적 당 트랜지스터의 집적도를 3.5~6.5배까지 벌어지게 만들었다. 이 공정 기술의 격차는 미국의 기술 제재로 인해 더 줄이기는 어려운 것이었다.

구소련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공정 기술이 아닌 소재 기술로 관심을 돌렸다. 구소련을 대표하던 반도체 기업 중 하나인 미크론은 1980년대 중후반, 모스크바 외곽의 산업단지인 젤레노그라드에 위치한 공장에서 갈륨비소(GaAs) 같은 비(非) 실리콘 계열의 화합물반도체 소재를 활용한 새로운 칩을 제조하고자 했다. GaAs 같은 화합물반도체 소재는 실리콘보다 전자 이동도가 더 빠르고 더 적은 전력으로도 구동이 가능했기 때문에 구소련 입장에서는 공정 기술의 격차를 메꿀 수 있는 기술적 돌파구로 기대되었다.

문제는 GaAs 같은 화합물반도체는 웨이퍼 제조 단계에서부터 기술적 난관이 많이 있었다는 것이고, 이는 실리콘 웨이퍼처럼 양산 공정으로 웨이퍼를 만드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했다. 또한 GaAs는 실리콘에 비해 원료를 확보하는 것도 어려웠으며(실리콘은 사막이나 바다 모래에서도 추출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실리콘처럼 자연적으로 표면에 산화막이 형성되는 특성도 없었기 때문에 나중에 소자로 만드는 과정에서 추가로 공정이 필요하기도 했다. 후공정 면에 있어서도 GaAs는 실리콘에 비해 열전도도가 떨어져, 트랜지스터 집적도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가져가기 어려웠으며, 온도 변화에 민감하여 파손되는 빈도가 높았다.

GaAs라는 새로운 소재로 혁신을 꿈꿨던 구소련의 반도체 산업은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실리콘 기반의 반도체로 회귀할 수밖에 없었고, 미국과의 제조 기술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1989년에도 구소련의 실리콘 반도체 기반 마이크로프로세서 생산 공정은 여전히 1.5 마이크로미터 수준의 패터닝 공정에 의존했지만, 미국과 일본의 패터닝 공정은 600 나노, 500 나노를 향해하고 있었다. 트랜지스터 집적 밀도 측면에서는 7~9배로 격차가 더 벌어진 셈이다. 구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로 계승된 이후에도 러시아의 반도체 기술은 여전히 낮은 경쟁력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현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의 주요 전쟁 장비들에 들어가는 반도체를 러시아가 자급하지 못하며, 그나마 자급할 수 있는 반도체 칩의 성능도 2000년대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나는 사실이다.

중국도 본격적인 개혁개방을 하기 전인 ‘죽의 장막’ 시절,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에 대해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중국의 반도체 산업에 대한 투자는 이미 베이징대, 푸단대를 비롯한 5개 대학에 반도체 전공을 개설한 1956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마오쩌둥 시대인 1957년에는 중국이 트랜지스터 생산에 성공했으며, 1965년에는 중국 최초의 IC 생산으로까지 성과가 이어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중국 반도체 산업의 성과는 양산용이 아닌 연구실에서 시험 생산한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으며, 산업의 수요를 감당하기는 어려웠다. 1976년 덩샤오핑 시대로 접어든 이후에도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비록 개혁개방의 정책에 따라 해외 반도체 업체들의 중국 진출이 시작되어 합작회사가 설립되기 시작했지만, 해외 업체들의 기술은 적어도 두 세대 이상의 예전 기술을 기반으로 한 것들이어서 중국의 반도체 제조 기술 기반은 크게 개선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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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버티기’ 속에서 신기술 전략 나설까?

그나마 2000년대 들어 중국이 WTO에 가입하고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일원이자 성장 잠재력이 큰 시장으로 인정되기 시작하면서 중국 전역에 해외 업체들과의 반도체 합작회사들이 집중된 클러스터들이 형성됨에 따라 제조 기술 수준이 글로벌 수준에 근접하기 시작했을 뿐이다. 다만 중국 입장에서는 불운하게도 그렇게 근접할 수 있도록 허락된 시간이 채 한 세대가 되지 않았다. 구소련이 그랬고, 마오쩌둥 시기의 중국이 그랬듯, 미국의 기술 제재에 봉착한 현재의 중국은 버티기 전략으로 당분간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기술적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현재의 기술을 회피할 수 있는 다양한 실험을 할 것이다. 구소련에서 시도한 것 같이 새로운 반도체 소재, 혹은 아예 새로운 반도체 개념이나 구조, 그리고 중간 단계를 건너뛴 양자컴퓨터로의 이행을 추진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오랜 고민이 담긴 로드맵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기술적 돌파구를 추진하는 것은 대개 실패로 귀결된다. 구소련의 GaAs 계획도 단적인 사례지만, 중국이 1990년대 추진했던 독자적 ASICS 칩의 실패 역시 비슷한 사례다. 1990년, 중국은 본격적으로 반도체 산업의 융성을 위해 이른바 ‘980 공정’이라는 프로젝트 아래 ASICS 칩을 제조한다는 결정을 했다. 하지만 DRAM 같은 메모리반도체와는 달리, ASICS 칩은 현재의 팹리스 회사들이 설계하는 주문형 반도체 칩에 해당하는 것이라, 설계와 제조를 동시에 아우르기가 어려웠던 것은 물론, 양산형 공정을 갖추기는 더더욱 어려웠다. 특히 당시 중국이 추진하던 ASICS 칩의 용도는 대개 군사용이었는데, 칩에 요구되는 성능과 수명이 가혹하여 생산 규모는 더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공정이 건설되기 시작하여 겨우 완성된 것은 1997년이었는데, 무려 7년이나 걸려 완공된 반도체 제조 공장에서 나온 칩이 제대로 작동도 못 하고 시장에서 외면받는 것은 계획의 실패를 의미했다. 1990년대, 미국이나 일본, 그리고 한국의 반도체 업체들이 일반적인 반도체 제조 라인 한 개를 완성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짧게는 6개월, 길어도 2년 이하였던 것을 생각하면, 중국의 ASICS 프로젝트는 3~4번 이상 세대를 교체하며 기술을 발전시켰어야 했던 황금 시기를 놓치게 만든 셈이다.

이러한 사례들이 이미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버티기 전략을 취하면서 많은 기술적 돌파구를 테스트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돌파구는 대부분 위에서 언급한 사례들처럼 많은 자원과 시간을 소모하며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물론 더 많이 시도하면 그 가운데서 성공하는 케이스가 나올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 정부는 반도체 관련 자국의 기초/응용 과학 연구 생태계에서 쏟아지는 다양한 연구 성과를 주목하고 있으며, 그 성과들이 점점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학계에서 인정받는 것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 성과들 중 극히 일부라도 20~30년 후에 새로운 돌파구, 나아가 산업을 뒤집을 수 있는 기폭제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중국 ‘신기술 전략’ 성공 가능성 적어

ASML의 EUV 노광기도 1987년에 출판된 기술 개념 페이퍼에서 출발하여 2010년대 초반에서야 비로소 공정 기술로 완성된 것을 생각해 보면, 약 한 세대 정도의 기간을 버티기만 한다면 결국 기술적 돌파구가 완성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렇지만 ASML의 EUV 노광기가 그 정도의 오랜 시간을 버티면서 개발되고 시장에 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ASML의 광학 노광기, 그리고 이후에 이어진 DUV 노광기 장비가 세계 시장에서 오랜 시간 동안 계속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안정적인 수익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중국의 버티기 전략은 이와 달리, 자국 내부의 폐쇄적인 생태계에서 주로 중국 정부의 공적 자금에 의존하여 이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이러한 환경적 조건이 실제로 수십 년을 이어갈 가능성, 거기에 수익이 창출되지 못하는 기술의 맹아가 오래 살아남을 가능성, 그렇게 살아남았다고 해서 그것이 글로벌 산업에서 표준으로 채택될 가능성 등을 모두 고려한다면, 종합적인 관점에서 중국이 시도하는 다양한 기술적 돌파구가 시장에서 표준으로 자리 잡을 확률은 매우 낮을 것이다. 물론 그것이 ‘0’의 확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중국의 내수 시장은 폐쇄적이지만 그 자체로 규모가 크다는 특징도 있기 때문에 결말에 대한 예단은 금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버티기 전략은 기술적 완성도와 성숙도를 보장할 수 있는 솔루션을 도출하는 것으로 이어지기 힘들 것이다.

앞으로의 글로벌 반도체 산업 환경의 큰 변화는 이미 예정되어 있다. 해가 바뀌고 또 2020년대 중후반으로 갈수록 중국은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중심에서 조금씩 멀어질 것이고, 중국에 의존하던 많은 미국, 일본, 대만, 그리고 한국의 반도체 업체들의 비즈니스 환경도 큰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환경의 변화 속에서 중국이 고수할 버티기 전략, 그리고 그 속에서 암중모색하며 시도할 다양한 기술적 옵션들이 몇 년 후, 몇 십년 후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하다.

한국, 산업 환경 및 기술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한국 역시 반도체 산업을 앞으로도 국가 기간산업에 준하는 수준으로 집중 관리할 수밖에 없을 텐데, 현세대 이후의 기술 돌파구에 대해 5년 후, 10년 후, 그리고 한 세대 후 글로벌 시장에 한국의 반도체 산업과 학계가 어떠한 답안을 내놓을 수 있을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그 고민은 기초과학이라는 뿌리에서 시작하여 산업에서 로드맵에서의 표준 선점이라는 결말로까지 이어져야 하며, 다양한 분야에서의 시행착오 경험이 학계와 업계에서 함께 공유될 수 있는 개방되고 포괄적인 생태계 조성으로 풀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글쓴이 권석준은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에서 학사, 석사 과정을 마치고 MIT 화학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첨단소재기술연구본부 책임연구원을 지냈고 차세대 반도체 소재 및 광(光) 컴퓨터, 양자 컴퓨터 등의 차세대 IT소자 원천 기술 등을 연구 중이다. 현재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지금까지 60여 편의 논문을 해외 저명 학술지에 게재했다. 최근에 한중일 반도체 산업에 관한 저서 <반도체 삼국지>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