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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현 칼럼] 김대중-장쩌민, ‘화양연화’의 시대는 어떻게 가능했나

By | 2022년 12월 7일 | 국제, 정치, 한반도

한국과 중국의 사이가 가장 좋았던 때는 언제였을까? 한·중 관계에 밝은 이라면 우선 김대중 대통령과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의 시대를 떠올릴 듯하다. 당시 두 나라는 순탄한 미·중 관계의 토대 위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상호이익을 추구했다. 미·중 패권 대결의 격화 속에서 한·중 관계가 살얼음판인 요즘과 견주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다.
그 ‘화양연화’ 시대의 한 축이었던 장쩌민 전 국가주석이 세상을 떠났다. 중국 전문가인 문일현 필자(중국정법대 교수)는 장쩌민의 시대를 돌이켜보며, 미국 일변도로 치닫는 윤석열 정부의 외교 노선이 과연 바람직한 길을 가고 있는지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김대중 정부가 미·중 사이에서 추구한 ‘논두렁’ 외교는 특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편집자 주]

✔ 낭만적 공산주의자이자 마키아벨리스트이기도 했던 두 얼굴의 장쩌민
✔ 저우언라이, 후야오방 사망 때처럼 추도 분위기는 시위를 부채질할까?
✔ 중국 역대 지도자 중 처음으로 한국을 국빈 방문한 국가원수
✔ 김대중-장쩌민의 시대는 한·중 관계의 화양연화(花樣年華)
✔ 대한민국 외교, 국익 중심의 실용주의가 절실하다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이 12월 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추모대회를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중국 대륙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추모 열기에 휩싸여 있다. 1989년 천안문 사태를 계기로 최고지도자로 등극해 2004년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끝으로 모든 공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중국을 15년간 통치했다. 마오쩌둥 이후 최장수 지도자다.

낭만적 공산주의자 & 마키아벨리스트

그는 철저한 공산주의자였지만 음악과 문학을 사랑했다. 송년 모임에서 환갑을 훌쩍 넘긴 현직 공산당 지도부들로 합창단을 조직해 자신이 직접 지휘하며 노래를 부르는 깜짝쇼를 연출하기도 했다. APEC(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 정상회담 환영 만찬에서는 피아노를 직접 치며 엘비스 프레슬리의 ‘러브 미 텐더’를 열창한 낭만주의자였다. 동시에 파룬궁 회원이 공산당원 수를 넘어서자 ‘최후의 1인까지 색출하라’고 가혹하게 탄압했던 마키아벨리스트이기도 했다.

수도 베이징은 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과거 두 차례 대규모 시위 모두 정치지도자의 추모식이 도화선이 됐기 때문이다. 1976년 1차 톈안먼 사태는 저우언라이 전 총리의 죽음을, 1989년 2차 톈안먼 사태는 후야오방 전 총서기의 사망을 애도하던 인파들이 시위대로 변하면서 일어났다. 공교롭게도 1989년 톈안먼 사태 이후 처음으로 벌어진 시위 와중에 장쩌민의 부음이 전해졌다.

대규모 시위와 정치지도자 죽음의 함수관계

그가 사망하기 직전 많은 중국인들이 거리로 뛰쳐나왔고, 코로나19의 가혹한 봉쇄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 곳곳에서 일어났다. 일부는 방역정책 비판을 넘어 체제를 겨냥한 구호를 외치기도 했고, 한편에선 백지를 들고 말없이 항의했다.

과거에도 산발적 시위는 끊이지 않았다. 대다수 시위는 임금체불이나 토지 보상과 같은 주로 국지적이고 지엽적 사안에 대한 반발이었을 뿐 중국의 정치체제에 대한 도전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시진핑 주석이 주도한 ‘제로-코로나’ 국가정책을 정면으로 반대했다. 참가자들 또한 특정 집단에 국한되지 않고 직업, 계층, 민족, 종교 등에서 다양했다. 여기에 베이징대, 칭화대 등 전국의 50여 개 대학생들까지 가세했다. 엄격한 감시와 통제에도 불구하고 일반 시민들이 온라인 상에서 시위대 주장에 동조했다는 점도 이례적이다.

시위를 바라보는 시각도 극명하게 엇갈린다. 한편에선 이번 시위를 지나친 방역정책에 대한 일시적 불만 표출로 해석한다. 그래서 중국 정부가 완화 조치를 하면 곧바로 진정된다고 전망한다. 반면 다른 쪽에선 정권 전복을 노린 ‘색깔 혁명’으로 간주한다. 시 주석이 3번째 임기를 시작한 지 불과 6주 밖에 안 된 시점이다. 때문에 해외 불순세력들과 연계된 체제전복 행위로 규정해 강력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또 다른 한편에선 침묵하는 다수는 대부분 시 주석과 정부의 정책을 지지한다고 주장한다. 어느 쪽 주장이 옳은지 단언하기 어렵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관망론도 혼재돼 있다.

하지만 이번 시위가 ‘색깔 혁명’은 아닐지라도 중국인들이 국가정책에 공개적으로 도전한 첫 번째 사례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 탓에 장 전 주석 사망이 시위의 불씨를 살리는 계기가 될까 봐 걱정하는 이들도 적잖다.

코로나19 봉쇄 조치에 반대하며 ‘백지 시위’ 펼치는 중국 시민(사진:연합뉴스)

장쩌민의 공과에 대한 상반된 평가

장쩌민 전 주석에 대한 중국 내 평가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장 전 주석은 퇴임 5년 후인 2009년 4월 한 국영기업을 시찰하면서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재임 기간 세 가지를 해냈다.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확립했고, 덩샤오핑 이론을 당헌에 삽입했으며, 3개 대표 사상을 확립했다.”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쪽에선 그의 자화자찬(?)을 대부분 수긍하고 있다. 이 가운데에서도 3개 대표 사상은 중국공산당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조치라고 높이 평가한다. 기업가들의 입당을 허용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 계급정당이었던 중국공산당이 북유럽식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정당으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됐다는 이유에서다.

폭발적 경제성장과 중국을 세계의 중심부로 진입시켰다는 점도 그의 업적으로 꼽고 있다. 대표적인 게 1997년 홍콩반환과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이다. WTO 가입이 없었다면 중국경제의 고속 성장은커녕 G2로의 부상도 어림없었다고 얘기한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유치도 그렇지 않느냐는 것이다.

반대쪽 평가는 야박하다. 재임 기간 부정부패가 만연했고, ‘범죄와의 전쟁’(嚴打)을 명분으로 인권, 노동, 민주화 운동가들을 짓밟았으며, 파룬궁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고 비판한다. 경제적 성과는 덩샤오핑의 지침을 철저히 따른 결과일 뿐 자신의 철학이나 정책은 없었다. 재임 기간 양극화도 심해져 0.35였던 지니계수가 0.45로 악화했다. 사형집행 건수는 10년 동안 약 2만 건에 달한다는 국제앰네스티 발표도 있다.

중국 현 지도부의 평가도 우호적이지 않다. 지난해 중국공산당 6중전회에서 통과된 역사결의는 장쩌민 주석의 이름을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공(功)과 함께 과(過) 또한 적지 않다고 비판했다. 당의 리더십이 약화하고 주변화됐으며 집행 능력이 부족했다. 부패가 만연하고 파벌정치가 횡행해 당과 국가의 존망을 위협했다고까지 날을 세우고 있다.

장쩌민 전 국가주석의 사망을 1면에 실은 중국 국내 신문들(사진:연합뉴스)

소련 몰락을 보는 판이한 시각, 장쩌민 vs 시진핑

장쩌민 전 주석과 시진핑 주석은 소련의 몰락을 바라보는 세계관도 판이했다. 장 전 주석은 소련의 붕괴가 급격하게 추진한 개혁개방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개혁개방의 속도와 방식 등 소련공산당의 관리 허술을 직접적 원인으로 지목했다. 반면 시 주석은 전혀 다른 기준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데올로기 혼선으로 소련의 역사와 공산당, 레닌이나 스탈린과 같은 지도자를 부정했다. 당의 모든 조직이 무력화됐고 군대마저도 당의 지도에서 벗어났다. 결국 그토록 거대한 소련공산당은 무너졌다. 정권 붕괴는 종종 이념적 영역에서 시작된다. 정치 불안과 정권교체는 하룻밤 사이에 일어날 수 있지만 이념 진화는 장기적 과정이며 이념적 방어가 뚫리면 다른 분야의 방어도 매우 어려워진다.”

시 주석과 장 전 주석의 개인적 관계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시 주석 취임 직후부터 계속된 반부패 전쟁이 결과적으로 장 전 주석 측근들 대다수를 겨냥했고 장 전 주석을 평가절하한 역사결의를 시 주석이 주도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갖고 있다.

2019년 신중국 건국 70주년 행사장에서 시진핑(왼쪽), 후진타오(오른쪽)와 함께 선 장쩌민. (사진:연합뉴스)

한·중 수교와 장쩌민의 각별한 한국 사랑

장쩌민 전 주석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각별했다. 한·중 관계 발전은 장 전 주석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한국과 중국의 수교는 그의 재임 초인 1992년 8월 이뤄졌다. 그의 측근들은 장 전 주석이 한국과의 관계를 각별하게 생각했다면서 1995년 말 한국 방문과 1997년 IMF 사태가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사회주의국가 지도자로서뿐 아니라 중국 역대 지도자 중 처음으로 한국을 국빈 방문한 국가원수였다.

장 전 주석은 삼성, 현대 등 국내 대기업들을 둘러봤다. 그때 한국의 대기업이 한국 경제발전 초기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했고 얼마만큼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게 됐다. 한국의 재벌체제는 시장 독과점 등 많은 폐해가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전자나 조선 등에서 한국이 세계적 수준으로 발돋움한 것은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성장한 재벌 때문에 가능했다고 판단했다. 장 전 주석은 서울 거리를 가득 메운 자동차가 대부분 외제차가 아니라 한국산이라는 사실에도 매우 놀랐다.

장 전 주석은 귀국길 전용기에서 한국을 연구하라고 지시했고 국무원 산하에 ‘한국연구소조’가 설립됐다. 이를 계기로 중국은 한국의 재벌체제를 철저하게 벤치마킹한 후 자국 내 국영기업에 대한 대대적인 통폐합을 단행했다. 중국기업들이 맷집을 늘리고 근육을 키울 수 있었던 배경이다. 그러자 장 전 주석은 이제 세계로 진출하라는 이른바 ‘주출거’(走出去) 정책을 추진했다. 이는 국제무대에서 명함도 못 내밀던 중국기업들이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선 직접적인 계기로 작동했다. 2022년 미국 경제지 <포춘>이 선정한 글로벌 500대 기업에는 중국이 136개로, 미국의 124개를 앞지르고 있다.

장쩌민 전 주석은 방한 이듬해인 1996년 7월 인민대회당 푸젠팅에서 진행된 <중앙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느낀 소회를 언급하기도 했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현대조선소를 둘러보고 참 깊은 인상을 받았다. (중략) 나는 전자공업부장을 오랜 기간 지냈는데 유감스러운 일은 우리나라 전자공업을 발전시키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반도체 기술이 발달하지 못해 중국의 전자공업도 아직까지 발달하지 못한 상태다.”

한국이 1997년 발생한 IMF 사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역할은 지대했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으로선 가장 가까운 이웃이자 세계에서 제일 큰 시장인 중국이 바로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장쩌민이 1995년 11월 16일 울산 현대자동차를 방문, 생산라인에서 근무하던 한 직원과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장쩌민-김대중, ‘화양연화’(花樣年華)의 시대

장쩌민 전 주석은 한국의 IMF를 특별한 방식으로 기억했다. 1998년 11월 김대중 대통령이 중국을 국빈 방문했을 때 일이다.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에서 열린 환영만찬에서 장쩌민은 김 대통령에게 이런 얘기를 건넸다. 나라가 어려워지면 대부분 귀금속을 사들이거나 재산을 밖으로 빼돌리려 하는데 김 대통령께서는 어떻게 금 모으기 운동을 생각해냈느냐면서 한국인들이 벌인 자발적 금 모으기 운동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고 감탄했다.

장 전 주석 재임 이후 한·중 관계는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초고속으로 발전했다. 그에 반해 중국의 오랜 혈맹이었던 북한과의 관계는 정반대였다. 북한은 한국과 수교한 중국을 배신자라고 공개 비난했고 2000년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할 때까지 양국 관계는 오랜 기간 싸늘했다. 한-중 수교는 당시 중국의 최고실력자 덩샤오핑의 결심으로 가능했지만, 전면에서 집행한 장본인은 장 전 주석이었다. 1994년 북한의 NPT(핵확산방지조약) 탈퇴로 한반도에 전쟁 위기가 불거지자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외교 목표로 제시하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논두렁’ 외교

장쩌민 전 주석 시절 한·중 양국 관계가 황금기를 구가한 것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동한 결과다. 우선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순탄했다. 미·중 틈바구니에 낀 한국이 별다른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 탓에 김대중 전 대통령은 ‘논두렁론’을 실천으로 옮기려 노력했다. 논두렁 사이를 걷는 소가 꼭 어느 한쪽 풀만 먹지 않고 양쪽 두렁의 풀을 다 뜯는다는 실용주의 외교다.

또 한-중 양국이 추구하는 국익이 큰 틀에서 일치했다. 중국으로선 경제발전을 위해 한국의 기술과 투자가 필요했고, 한국은 경제와 안보 모두 중국의 협력이 절실했다. 여기에 양국 지도자 사이의 깊은 신뢰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대표적인 예가 패트리엇 미사일의 한국 배치다. 미국은 당시 미사일 방어망 구축을 위해 미국산 패트리엇 미사일을 구매하라고 한국을 압박했다. 고민하던 한국은 당시 서독에 배치됐던 미국의 중고 패트리엇을 싼값에 사들이기로 했다. 냉전 종식으로 어차피 서독에 있는 무기를 폐기할 계획이던 미국으로선 반대할 이유가 없었고 한국으로선 저렴한 비용으로 미국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김대중 대통령은 조용히 중국에 특사를 보냈다. 이번 조치가 중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장 전 주석 등 중국지도부에 설명했다.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으면서도 미·중 모두에게 나름의 격식과 예를 갖춰 국익을 챙긴 대표적 사례이다.

윤석열 정부 이후 살얼음판인 한·중 관계

한·중 관계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또다시 엄중한 시험대에 올랐다. 윤석열 정부는 그간의 대중 외교를 굴종외교라고 비판하면서 한국을 존중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에 반해 중국은 윤석열 정부의 외교정책이 미국에 과도하게 편향된 ‘친미반중’ 노선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미국이 중국을 배제하려는 의도로 주도한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에 한국이 창설 멤버로 참가하는 것이나 한국이 일본과 군사협력에 적극성을 보이는 것 역시 자국 견제가 목적이라고 보고 있다.

윤 대통령은 최근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을 언급하면서 미국식 용어를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차용했다. 중국경제는 꼬라박는 수준이고, 중국경제를 이용해 성장하는 시대는 끝났다는 한국 고위 인사들의 공개적인 발언도 계속되고 있다. 중국은 한국이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디커플링(탈동조화)을 암시하고 군사적 분야에서까지 미국의 대중국 압박에 동참하려는 것 아니냐며 잔뜩 긴장하고 있다. 특히 ‘대중국 포위·압박·봉쇄’라는 미국 전략에 한국이 제 발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는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양국 관계의 이상을 예고하는 경고음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한국 외교, 국익 중심의 실용주의가 절실하다

한국의 국익은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과도 일치할 수 없다. 국익 지상주의를 원칙으로 하는 국제관계에선 당연한 이치다. 한국은 안보와 경제 문제 해결을 위해 미·중을 필요로 하지만, 미·중은 패권을 놓고 다투면서 자신들의 국익에 부합하는 차원에서 남북한을 카드로 활용하려 한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철저한 국익 중심의 실용주의 외교로 맞서야 한다. 북한이 도발하니 어쩔 수 없다며 노골적으로 어느 한쪽 편에 서는 건 위험천만이다.

미-중이 이판사판으로 싸움을 하다가  갑자기 그만 싸우고 잘 지내자는 식으로 판이 바뀌면 그에 따른 치명적 손실을 한국은 고스란히 감내해야 한다. 그게 냉혹한 현실이다. 한국의 국익이 무엇인지 냉정하게 판단하고 신중하게 행동하면서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철저한 실익외교를 펼쳐야 한다. 가치는 이익 앞에 서면 반드시 작아지기 마련이다. 독일, 프랑스, 인도 등 유라시아 열강들이 미·중, 미·러 사이를 오가며 펼치는 외교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한국이 진정 추구해야 할 국익은 무엇인가? 장쩌민의 추도식을 보면서 다시 한번 되묻는 베이징의 아침이다.


글쓴이 문일현은
대학에서 스페인어를 전공했으나 현실에서는 독학으로 배운 중국어로 사회생활의 꽃을 피웠다.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로 있다가 1996년 아시아 기자로서는 처음으로 중국 국가주석이었던 장쩌민 주석을 단독 인터뷰했다. 그 이후로도 중국 최고지도자의 외국 언론과 단독 인터뷰는 아직까지 없다. 1997년 중국 지도부가 비공개에 부친 ‘덩샤오핑 사망’을 전 세계에서 최초로 특종보도했다. 이후 한국 김대중 정부의 언론개혁을 지원하는 문건을 작성해 관계기관에 제언했다는 이른바 언론개혁 문건 작성 의혹에 휩쓸려 언론계를 떠났다. 베이징에서 학계와 실업계에 몸담았다. 베이징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마치고 중국 엘리트 대상의 고등교육기관인 정법대 교수로 재직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의 여러 기관과 기업, 특파원들에게 상담과 조언을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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