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9조원 규모의 2023년도 예산협상이 막바지다. 국내 최고의 재정 전문가인 이상민 필자는 여야가 ‘윤석열 예산’, ‘이재명 예산’을 지키려다 보니 법정 처리기한을 어겼다고 봤다. 언론들은 둘 중에서 뭐가 이기는지를 주요 관전 포인트로 삼을 것이다. 그럼 국민들도 내키는 대로 편을 들고 있으면 될까? 아니다!

이상민 필자는 진짜 지켜야 할 ‘국민 예산’은 따로 있다고 말한다. 바로 ‘법인세’다. 국민들은 이걸 누가 어떻게 하는지 봐야 한다. 국민들이 제대로 된 판정자가 되어야 여야도 ‘좋은 예산’을 지키는 ‘좋은 정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예산 협상의 비공개 관행을 줄여야 하는데, 특히 최근 벌어지고 있는 ‘조세 소소위’가 사실상 조세법률주의라는 헌법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편집자 주]

✔ 올해도 넘기고 만 예산안 법정 처리 기한 12월 2일✔ 연말까지 예산안이 통과되지 못하면 함께 망하는 길✔ 이상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비공식 테이블에서의 예산 협상✔ 현재 쟁점은 지역사랑 상품권 예산 Vs 대통령실 예산✔ 국민 생활에 가장 큰 영향 끼치는 것은 법인세 감세 여부 

국회는 올해도 예산안 법정 처리 기한인 12월 2일을 지키지 못했다. 예산안 처리 기한은 무려 대한민국 헌법 조항이다. 국회는 헌법을 위반한 것이다.

법정 기한을 지키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내년도 예산안은 여야가 협상해서 통과시킬 것은 확실하다. 결국 기한을 어겼다는 것은 아직까지 합의가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럼 왜 합의가 안 되었을까? 그리고 여야는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협상할까? 문제점과 해결 방안은 무엇일까?

왜(Why)? : 벼랑 끝 전술, 치킨게임에서 이기고자

헌법을 어기고 기한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여당도 야당도 부담이 되는 일이다. 이런 부담을 감수하고서도 위헌적 행위를 하는 이유는 서로가 바라는 예산안을 어필하고자 하는 치킨게임의 일환이다.

치킨게임에서 승리하는 일은 ‘나는 비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상대방에게 주는 것이다. 그러나 치킨게임이 실제로 벌어지면 종말은 공멸이다. 그래서 말은 항상 강경하게 하지만 어김없이 ‘극적인 타결’은 예정되어 있다. 결국 강경한 말 중에서 어떤 말이 단순히 위협을 위한 전략적 언술인지를 잘 가려봐야 한다.

정부여당 쪽의 강경 발언은 ‘준예산 편성’ 가능성이다. 형식적으로는 12월 31일까지 내년도 예산안이 확정이 안 되면, 내년 1월 1일부터는 ‘준예산’을 편성해야 한다. 야권의 강경발언은 ‘야당 단독 통과’다. 결론부터 말하면 두 가지 말 모두 블러핑(bluffing, 허풍)일 뿐이다.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우리 헌법에 따르면, 아무리 야당 의원 수가 많아도 총액 증액은 정부가 동의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 그렇다고 12월 31일까지 예산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야당 뿐 아니라 정부·여당까지 모두 정치적 절벽에서 떨어져 죽는다.

어디서(Where)? : 비공식 협상 테이블(소소위)에서

공식적으로는 내년도 세출 예산안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이하 예결특위)’ 소위원회에서 논의를 해야 한다. 그런데 예결특위는 공식적으로 더 이상 열릴 계획이 없다. 공식적인 회의를 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비공식적 물밑 협상 테이블에서 여야가 협상할 수밖에 없다. 통상 ‘비공식 협상 테이블’은 예결소위 안의 소위, 일명 ‘소소위’라고 불린다.

그런데 비공식 협상 테이블에 ‘소소위’라고 이름 붙이면 마치 국회의 공식적 의결기구 같은 이미지가 생기고 관행화된다. 그래서 언론에서도 저 명칭을 계속 사용해주면 안 된다. 개인적으로는 ‘비공식 협상 테이블’이라고 부르는 것을 선호한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왼쪽)와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가 12월 2일 오전 여야 원내대표 회동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누가(Who)? : 예결위 여야 간사, 기재위 여야 간사, 원내 지도부, 기획재정부가

세출예산 ‘비공식 협상 테이블’에 참여하는 사람은 예결위원회의 여야 간사 및 위원장이다. 사안에 따라서 여야의 정책위의장과 원내대표 등도 참석한다. 세입예산 ‘비공식 협상 테이블’에 오는 사람은 기획재정위원회의 여야 간사 및 위원장이다. 사안에 따라 원내 지도부도 참석한다.

모든 비공개 협상 테이블에는 기획재정부 고위급 인사가 참석한다. 정부가 동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상 기획재정부 고위인사가 비공개 테이블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언제(When)? : 4일부터 여야 합의 때까지

‘비공식 협상 테이블’은 공식 예결위 협상이 멈추면 바로 가동된다. 주말에도, 한밤중에도 열릴 수 있다. 이번의 경우 일요일인 4일부터 물밑 협상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비공식 협상 테이블의 존재 목적은 ‘극적인 타결’이다. 타결만 되면, 본회의를 소집하고 본회의에서 의결되면, 내년도 예산안은 확정된다.

언제 여야가 합의할까? 알 수 없다. 그러나 정기회 일정인 12월 9일까지는 ‘극적인 타결’이 될 것으로 기대 섞인 예측을 해본다. 만약에 정기회가 끝날 때까지 합의가 안 되면 어떻게 될까? 협상만 타결이 되면, 임시회를 소집해서 본회의를 열 수 있다. 정기회 일정이 끝나고도 합의가 안 되면 하루하루가 절벽으로 내몰리는 상황이다.

광역지자체는 중앙정부 예산안이 확정 이후인 12월 17일에 예산을 확정하려고 기다리고 있다. 기초지자체는 광역지자체 예산 확정 이후 12월 22일에 예산을 확정한다. 따라서 12월 9일까지 중앙정부 예산안이 확정되지 않으면, 이후 지자체 예산 심의에 막대한 지장이 생긴다.

국민의힘 성일종·민주당 김성환 정책위의장(사진:연합뉴스)

어떻게(How)? : 여야가 바터(교환)를 통해서

예산은 정치다. 그리고 정치의 기본은 타협과 협상이다. 그리고 타협과 협상의 방법을 여의도 언어로는 ‘바터’(barter, 물물교환)라고 표현한다. 내가 바라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바라는 것을 내주어야 한다. 그래서 ‘비공식 협상 테이블’에서 여야에게 가장 중요한 기준은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지킬 것인가에 있다.

무엇을(What for)? : ‘윤석열 예산’, ‘이재명 예산’을 버리고 ‘국민 예산’을 취하자

비공개 협상 테이블에서 누가 어떻게 바터를 하는지는 알겠다. 그럼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해야 할까? 이 부분이 이 글의 목적이다.

여도, 야도 본인이 주장하는 모든 것을 취할 수는 없다. 그런데 여야가 내세우는 주장은 사실 모두 진짜로 원하는 것은 아니다. 정말로 원해서 주장하는 사업도 있지만, 바터를 위해서 겉으로만 강경하게 주장하는 예산도 있다. 협상의 카드를 위해 버릴 목적으로 주장하는 사업도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여의도 화법에는 약간 통역기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떤 사업이 정말 원하는 사업이고, 어떤 사업이 바터용으로 희생될 사업일까? 알 수 없다. 남들만 모르는 것이 아니라 정작 여야 당사자도 잘 모른다. 300명의 국회의원이 모두 행위자이기 때문이다. 일일이 물어볼 수 없고, 입장도 다르다. 어느 의원이 자기 지역구 예산을 쉽게 협상용으로 포기하겠는가? 그래서 이 부분에서는 확실히 기재부가 유리하고 국회가 불리하다.

다만 확실하게 지키려고 하는 사업은 있다. 여는 ‘윤석열 예산’을, 야는 ‘이재명 예산’을 취하고자 한다고 한다. 윤석열 예산은 용산 대통령실 예산이고, 이재명 예산은 지역사랑 상품권 예산이다. 그럼 ‘국민을 위한 예산’은 어디에 있을까?

'법인세 감세' 여부가 핵심

법인세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정부와 여당이 주장하는 법인세 감세 조치로 향후 5년간 32조원의 세수가 감소된다고 한다. 내년도 우리나라 중앙정부 전체 보건복지 사업은 8.9조원 증가한다. 법인세 감세 조치에 따른 32조원이 줄지 않으면, 우리나라 전체 보건복지 사업의 증가액을 두 배 가까이 증대시킬 수 있다.

결국 예산 금액적으로(정량적으로) 국민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사업은 청와대 이전이나 지역사랑 상품권이 아니라 법인세 감세다. 그런 의미에서 법인세 감세를 주고 청와대 이전 예산이나 지역사랑 상품권 예산을 얻으면, 금액적으로는 뼈를 주고 살을 취한 것이 된다.

물론 야당이 청와대 이전 예산을 동의해주지 않는 것은 이해가 되는 측면도 있다. 전체 이전 예산이 얼마나 될지도 잘 모른다. 청와대 이전에 따른 직접적 예산뿐만 아니라, 청와대 이전이 아니었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도미노처럼 벌어지는 전체 금액은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

그럼 여야가 이런 합의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간접적인 청와대 이전 예산을 모두 잘 정리해서 국민과 국회에 알리고, 이번에 관련 예산이라고 인정한 부분만 통과시켜주는 방식도 있다. 요컨대 ‘자수해서 광명’찾는 방식이다.

사진:셔터스톡

 

국민들을 무시하지 마라

국민이 바라는 바는 윤석열 예산이나 이재명 예산 확보가 아니다. 윤석열 예산이나 이재명 예산을 포기하면서도 어떤 정당이 국민을 위한 예산을 끝까지 바터로 희생하지 않고 지키는지를 우리 국민들은 알 것이다.

정치인들은 정국 주도권이라는 전투에서의 승리를 지나치게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지지자들의 환호보다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수준을 믿어보자. 일시적 정국 주도권이라는 전투에서의 승리보다는 국민의 지지를 얻는 전쟁에서의 승리가 더 중요하다.

다시 말하지만 예산은 정치다. 좋은 예산, 나쁜 예산은 원천적으로 따로 정해져 있지는 않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좋은 예산과 나쁜 예산이 나누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바터로 희생되지 않고 지켜야 할 사업이 무엇인지를 고르는 것은, 그 정당의 정치를 증명한다.

꼭 지적해야 하는 문제점 : 증액은 100% 비공식적으로 결정

바터를 포함한 정치적 협상 과정은 부득이하게 공개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비공개에서 논의되는 수준과 범위가 지나치게 넓고 크다는 게 문제다.

졸고 <2022년 예산 국회심의 문제점 개선방안>에 따르면 올해 2022년도 정부 예산안은 국회에서 8.9조원이 증액되고 5.6조원이 감액되었다. 그런데 공식 예결특위에서 감액된 금액은 단 1.2조원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증액된 8.9조원 전액은 비공식 협상 테이블에서만 이루어졌다. 사실상 공식적인 국회 예결위 심의는 ‘거대한 쇼’에 불과하고, 실제 예산안 심사는 비공식 협상 테이블에서 대부분 이루어진다는 얘기다.

사실 예결위가 파행되면, 어쩔 수 없이 비공식 협상 테이블이라는 물밑 협상을 할 수밖에 없다. 어디에선가는 협상은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파행조차 되지 않았는데, 예결위 보류 안건은 모두 비공식 협상 테이블에서 진행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국회 예산안 심의권을 스스로 내려놓는 탈헌법적인 행위다.

특히, 세법을 다루는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에서 합의가 안 된 세법을 비공식 협상 테이블을 가동하는 것은 비교적 최근에 발생한 일이다. 과거에는 ‘예결위 소소위’는 있었어도 ‘조세 소소위’는 없었다.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다.

전에는 보류 안건도 조세소위에서 2회독, 3회독을 거치면서 의견을 조율했다. 어쨌든 공식적인 프로세스를 거치려고 노력한 것이다. 게다가 세법은 조세법률주의가 매우 강하게 요구되는 법이다. 그래서 세법은 절대로 비공개 협상 테이블에서 논의되면 안 된다. 비공개 협상 테이블에서 세법을 논의하는 것은 ‘조세법률주의’라는 헌법 가치를 어기는 행위다.

해결 방안은? 공개는 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기록은 해야

비공식 밀실 회의를 당장 공개하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기록이라도 남겨야 한다. 정확하게 기록을 남기고 만약 공개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으면 부분 공개라도 해야 한다. 그리고 일정 시간이 경과하면 전문 공개를 해야 한다.

공공기록물법에 따르면, 비밀 기록물도 일정한 보호 기간 이후에는 재평가해 공개해야 한다. 아무리 중요한 ‘톱 시크릿’도 30년이 지나면 모두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다. 공개는 몰라도 기록은 반드시 해야 한다. 정권이 바뀐 이후에라도 공개하자. 최소한 역사학자나 우리 후손을 위한 기록은 반드시 해야 한다.


글쓴이 이상민은분석하는 게 일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예산서, 결산서, 집행내역을 매일 업데이트하고 분석한다. 참여연대 간사, 국회의원 보좌관을 거쳐 현재는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