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미국 정치,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정권 등장 이후의 미국 정치판은 한국 정치판과 많이 닮았다. 특히 다른 정파나 정치적 반대자를 으로 취급하고 바보”, 심지어 반역자로 낙인찍어 사생결단하듯 서로를 매도한다는 점이 매우 흡사하다. 무엇을 위해 그들은 그토록 험하게 싸우는 것일까? 국민을 위해? 얼마 전 미국 중간선거가 끝났다. 앞으로 2년 남은 임기의 트럼프 정권은 재선을 향해 일로매진(一路邁進)할 것이다. 그 재선 전략과 이후의 미국 진로를 가늠해 보려면 중간선거 결과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 정치판을 돌아보는 데에도 유용할 것이다. 미국 중간선거에 대한 분석과 전망을 우리 정치 및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함께 살펴본다. <편집자주>

 

민주당의 하원 장악이 의미하는 것

미국 중간선거 결과에서 가장 특징적인 변화는, 예상됐던 것이긴 하나 민주당이 하원 과반의석을 차지한 것이었다. 상원에서도 민주당이 위스콘신,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등 2016 대통령선거 때 트럼프를 지지했던 ‘러스트 벨트’의 주요 지역에서 상원과 주지사를 탈환하는 등 대선을 앞둔 당 입장에서는 유의미한 성과를 얻었지만, 공화당 우세를 뒤집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하이오와 플로리다 등의 주요 주지사 선거에서도 ‘트럼프 바람’을 막지 못했다. 트럼프의 인종주의와 성차별 등의 퇴행에 강한 거부감을 지닌 여성과 젊은층, 소수자들 중심으로 ‘민주당 물결’(blue wave)이 일긴 했으나, 그 물결이 민주당의 바람만큼 거세진 못했다. 그럼에도 민주당의 하원 장악은 향후 미국 정치에 적잖은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과반 의석을 장악한 민주당은 하원 상임위원장 자리를 독점할 것이다. 예산법안 심의권과 입법권을 지닌 하원을 민주당이 장악한 것은, 상·하원 모두 공화당이 장악해 온 이제까지와는 달리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의회 차원의 견제장치가 트럼프 정권 출범 이후 처음으로 본격 가동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제 공화당 독주에 제동이 걸리고, 미국 민주주의의 한 축인 의회가 견제와 균형, 합리적 토론이라는 본연의 자세를 되찾을 것인가. 불행하게도 전혀 그럴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양당 간 싸움은 더 거칠어질 공산이 크다.

중간선거 캠페인 기간에 더 심해지긴 했지만, 트럼프 정권 출범 이후 미국 정치는 공화, 민주 양당 정치인들이 상대방을, 의견이 다르고 때로 싸우더라도 함께 국정을 논하는 동료 정치인으로 보기보다 “적, 바보, 또는 반역자” 취급을 하는 게 일상화돼 있다.(<이코노미스트> 2018, 11.3-9) 정치인들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런 반목과 적대는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확대 재생산된다. 지난여름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골수 지지자 중에서 <뉴욕타임스> 등 주류 언론을 믿는다고 한 사람은 11%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들 중 91%가 트럼프가 무슨 말을 하든 믿는다고 답했다. 민주당은 다른가. 양단간에 약간의 편차가 있을지 모르지만, 민주당 쪽도 그 정반대 방향으로 닮은꼴이란다.

이대로 가면 미국 민주주의가 머지않아 종말을 고하리라는 데에 많은 논자가 경고하고 있다. 갈수록 미국과 더 닮아가는 한국은 이 출구 없는 미국의 극단적 정파대립 양상도 판에 박은 듯 닮아가고 있다. 물론 많은 점에서 미국과 우리는 다르지만, 미국 정치판의 이런 행태는 복제품 같은 우리 정치판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제 2020년 대통령선거를 향한 공화-민주 양당 간의 격전이 도를 더해가고, 연방의회에서 교두보를 확보한 민주당은 트럼프와 공화당 정권에 대한 공세 수위를 한껏 높일 것이다. 트럼프를 괴롭혀 온 2016년 ‘러시아의 美대선개입 의혹’(당시 러시아 정보기관과 반 힐러리 클린턴 캠페인을 벌였다는 의혹)에 대한 의회 차원의 조사를 무시하거나 방해하던 공화당 방패막이가 고장 났으니 양당 간 공방은 더욱 치열해지고 소란은 더욱 커질 것이다. 부동산으로 돈을 번 트럼프의 돈세탁과 공·사 분리 무시 의혹에 대한 조사권도 발동될 것이고, 트럼프 가족들의 중동 비즈니스 의혹이나 여성 스캔들에 대해서도 그러지 않을까. 전임 버락 오바마 정권이 도입한 의료보험제(‘오바마 케어’)를 파기하려는 공화당의 시도에도 제동이 걸릴 것이다.

하원은 과반수 찬성으로 대통령 탄핵을 발의할 수 있으므로, 민주당은 트럼프 탄핵 발의도 할 수 있다. 다만 최종 탄핵 여부는 상원 3분의 2 찬성으로 결정되므로, 이번 선거에서 오히려 공화당이 의석을 더 늘린 상원 통과가 사실상 불가능한 이상 탄핵 발의는 비현실적이다. 게다가 1990년대 후반 뉴트 깅리치(Newt Gingrich) 하원의장 시절 다수당이었던 공화당이 탄핵 발의를 했다가 역풍으로 오히려 손해를 본 사례도 있어서 민주당이 섣불리 대통령 탄핵에 나서진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하원 민주당을 이끌어 온 낸시 펠로시 의원도 이미 그런 얘길 하고 있다.

 

트럼프의 대성공?

하지만 이후 트럼프가 더욱 적극적으로 밀어붙일 대통령 재선 행보가 역풍을 만나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 이번 중간선거에서 트럼프 지지로 모였던 공화당 내 분위기가 다시 반트럼프 분파의 재기와 도전으로 표출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보는 시각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럴 경우 공화당을 아울러서 민주당 도전을 물리칠 기대주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란다. 트럼프 재선 가도가 흔들릴 경우 미국 패권주의와 복음주의 보수기독교 세력이 지지하는 공화당 ‘정통’ 보수세력을 대표하는 펜스 부통령이 옹립되고 그때 공화당 내 반트럼프세력이 그의 탄핵에 찬동할 수도 있다는 것인데,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그럼에도 ‘트럼프 탄핵’ 카드는 미국 정치에 주요 변수로 계속 잠복해 있을 것이다.

이번 중간선거의 또 하나의 특징적 결과는 트럼프의 공화당 내 입지 강화다. 주요 지역 주지사 선거 등에서 트럼프의 막판 지원 유세가 큰 힘을 발휘한 것으로 분석되며, 공화당 내 그의 반대파들이 이번 선거를 전후해서 대거 의원직을 포기했거나 낙선했다. 선거 직후 트럼프가 “대성공”이라 자찬한 데에는 이런 당내 판세변화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따라서 트럼프는 대내외 정책에서 기존의 도발적인 자세를 그대로 견지하거나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중간선거 이후에도 지난 2년간 트럼프가 불러일으킨 돌출적 ‘풍파’가 유지되거나 거세질 수 있다는 얘기다. 예정된 민주당의 러시아 선거개입 의혹 조사를 의식해 선거 직후 제프 세션스(Jeff Sessions) 법무장관을 해임하고 말 잘 듣는 매튜 휘태커(Matthew Whitaker) 변호사를 대행케 한 것은 풍파를 잠재우려는 시도이겠으나 오히려 더 거친 풍파를 일으킬 수도 있다.

 

미국이 그런 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북미관계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더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걱정스럽게도 나빠질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중간선거에서 나름 선방했다고 믿고 있고, 당내 입지까지 강화된 트럼프가 자신의 대선 가도에 득점 포인트가 될 수 있는 북 비핵화와 북미관계 개선 또는 정상화를, 당 안팎의 반대를 무릅쓰고 밀어붙일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하지만 휘태커 기용에서도 보듯 트럼프는 자신의 입지 강화를 위해 강경파 네오콘(신보수주의자) 존 볼턴을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하는 등 ‘아메리카 퍼스트’주의 매파들을 끌어들여 그들의 환심을 사려는 자세를 취해 왔다. 미중 무역전쟁이 본격적인 글로벌 차원의 패권경쟁 색깔을 띠게 되면서 그런 행보는 더 뚜렷해지고 있다.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까지 당 안팎의 반대와 견제를 무릅쓰고 과감한 행보를 보이던 트럼프의 대북 자세는 그 이후 선비핵화와 제재강화를 앞세우는 쪽으로 선회했다. 여전히 제2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낙관적 견해를 피력하고 있으나 예전과는 좀 달라 보인다. 이런 불안은 민주당의 공세 대처 및 자신의 재선 전략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이는 트럼프의 네오콘 내지 그들의 ‘워싱턴 컨센서스’ 노선으로의 우회(또는 야합)와 연결돼 있다. 네오콘인 ‘아메리카 퍼스트’주의자들에게 북 비핵화는 되면 좋고 안 돼도 손해가 없는 ‘꽃놀이패’ 딜(deal)이라는 지적이 있다. 그들로선 강한 타협 기준을 제시해 놓고 북이 굴복해 들어오기만을 기다려도 손해가 없는 것이다. 트럼프 정권의 최근 행보는 북미 딜이 그들에겐 우선순위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최악의 경우 북미관계, 또는 한반도 문제는 그들이 정략적 이익을 위해 마음대로 갖고 놀다 내던져도 상관없는 거래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미 그걸 알고 있었다. 그런 우려는 북미 접근 초기부터 일각에서 제기돼 왔으나 최근 좀 더 강해지고 있다.

 

한반도 평화, 스스로 자신을 구할 수밖에

트럼프 정부나 공화당 외부 요인도 이런 역풍에 가세할 공산이 더 커졌다. 국내 정치 차원의 권력투쟁 맞수인 민주당도 ‘아메리카 퍼스트’주의에서는 트럼프 진영과 그리 멀지 않다. 전통적으로 노조세력을 업고 있는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공화당보다 보호무역주의 경향이 더 강했으며, ‘중국제조 2025’가 상징하는 최근 중국의 대두로 인한 미국 패권 잠식 내지 상실에 대한 우려와 반중국 정서 또한 트럼프나 공화당 못지않다. 비록 조지프 나이(Joseph Nye)류의 ‘소프트 파워’를 강조하지만, ‘선한 미국이 세계를 이끌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태생적 사명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 ‘미국 예외주의’의 본류는 오히려 민주당 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과 대외정책 전문가들과 관료, 그리고 주류언론이 연합한 반트럼프 진영의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평화)에 대한 집착은 트럼프 진영을 능가한다.

게다가 북 비핵화와 북미관계 개선을 대선 가도의 득점 포인트로 활용하려는 트럼프 정권의 전략을 방해하고 반대해야 할 민주당은 트럼프와 북의 딜을 사사건건 트집 잡을 공산이 크다. 미국이 대북관계 개선에 자국 돈을 쓰려 하지 않는 상황에서 민주당이 예산안 심의권을 가진 하원 과반수를 장악한들 북미관계 진전에 별다른 변수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은 일면 타당할지 모르나, 앞으로 더 소란해질 미국 국내정치 차원까지 함수로 넣어 계산하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을까. 트럼프가 자신의 대선가도에 흠집이 가해질지도 모를 상황에서도 북과의 딜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있을까. 대다수 관측자들이 인류 보편가치나 정치적 이상의 추구 내지 실현과 가장 거리가 먼, 현실적 이해득실로 움직이는 정치인의 대표로 지목하고 있는 인물이 트럼프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에 대한 일말의 기대를 버릴 수 없는 남북으로서는 그런 미국에 영향을 주고 그들의 계산마저도 돌려놓을 대안이나 돌파구를 생각해내야 한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속도 조절론’으로 대표되는 미국 쪽 견제나 거부, 거기에 동조하거나 투항하는 국내 친미우파세력의 반대를 뚫고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바꾸면서 비핵화를 조기에 달성하는 것이다. 결국 스스로 자신을 구하는 수밖에 없다.

 

저무는 미국에 대한 집착은 시대착오

중장기적 관점으로 보면, 역설적으로 트럼프 정권의 등장과 ‘아메리카 퍼스트’를 향한 미국 조야의 외침은 미국 패권의 쇠퇴 내지 몰락이 본격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조짐일 수 있다. 많은 논자들은 강자들이 정점에 올라서서 그것을 유지‧확장하려고 욕심을 내는 순간부터 몰락 이 시작됐다는 <대국의 흥망>(예일대학교 역사학 교수 폴 케네디, 1877)류의 예언이 지금의 미국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얘기한다. 그들은 미중 무역전쟁에서 휘두르고 있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수는 미국이 건설한 자유무역체제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자기파괴적이고 자기패배적인 조치라고 지적한다. 거기에는 그것을 뒷받침할 군사력과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된다. 경기 활성화와 제로에 가까운 실업률 등으로 나타나는 지금의 단기적 미국경제 호전이 자기패배적인 조치 덕분이라면, 폴 케네디가 지적했듯이 그것은 장기적으로 미국의 몰락을 재촉할 뿐이다.

미국의 패권 방어 노력이 강화될수록 내부 자원은 고갈될 것이고, 외부의 대응 내지 거부도 거세질 것이다. 중국, 러시아는 물론 서유럽과 일본 등 전통적 친미주의 동맹국들조차 과도한 미국 중심주의를 거부하고 각자도생의 길로 나서거나 집단체제를 구축해 미국에 대항하게 될 것이다. 북한, 이란과 러시아 등 미국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나라나 기업을 달러 중심의 국제거래망에서 배제하는 미국의 제재에 대한 반발로 중국과 러시아 등은 탈달러‧탈미국 움직임 또한 구체화하고 있다.

물론 미국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초대국 지위를 유지할 것이고, 막강한 대외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다음 패권국이 중국일지 아닐지 누구도 모르지만, 지금 미국과 서방이 미국 패권에 대한 도전국으로 중국을 상정하는 것이 그들의 예사롭지 않은 혐오 및 공포와 연동돼 있지 않을까. 최근 서방의 반중국 정서에는 ‘황화론’ 같은 인종주의적 편견까지 스며들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스페인에서 네덜란드, 영국, 미국으로 이어진 대국의 흥망, 곧 패권의 이동은 지금까지 산업혁명 이후 득세한 서방 유럽인들 간의 교체였지만 ‘패권국 중국’은 얘기가 다르다. 30여 년 전 일본이 거품경제로 부풀어 올랐고 ‘미국 다음은 일본’이라는 얘기가 돌았을 때, 일본에 대한 서방의 공포와 멸시가 유난했듯이.

다음 패권국이 중국일지, 아니면 다극체제로 갈지 모르겠으나 일부 논자들이 오래전부터 예언했듯이, 서방의 자멸은 이미 피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서방이 다시 가난뱅이 후진으로 전락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서방의 지배가 끝난다는 얘기일 뿐.

유럽까지 포퓰리즘 기운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서방의 미국화는, 크게 보면 서방이 상대적으로 유복했던, 서방이 지배하던 세계가 끝나가고 있는 데서 비롯된 시대 말의 전환기적 현상이 아닐까. 그렇다면 국내 일부 보수우파 세력의 다극체제 거부, 미국 일극주의 집착은 길게 보면 흘러간 물에 발을 담그려는 시대착오일 수 있다.

 

한승동/ 본지 편집인, <한겨레> 국제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