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삶이 뒤흔들린 여성 17명의 이야기를 통해 이 전쟁의 참혹성을 알린 <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의 윤영호 필자가 한 발짝 더 전쟁의 세계로 들어갔다. 그는 11월 초 카자흐스탄을 시작으로 러시아, 폴란드 그리고 가능하면 우크라이나를 방문할 계획이다. 현재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머물고 있는 필자가 <피렌체의 식탁>에 현지 르포를 보내왔다.

르포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흥미롭게도 택시 기사 9명이다. 대한민국에서나 카자흐스탄에서나 택시 기사는 현지 상황과 시민의 마음을 가장 잘 읽어낼 수 있는 ‘여론 1번지’인 모양이다. 그들은 푸틴의 무차별적인 징병 방침이 러시아와 주변국에 미친 영향, 카자흐스탄으로 피신한 러시아인들의 생활상, 카자흐스탄이 보는 전쟁의 미래 등을 생생하게 전한다. 윤영호 필자의 르포는 러시아 등으로 계속될 예정이다.

우버가 떠난 자리, 러시아 브랜드 얀덱스가 장악하다아홉 명의 얀덱스 기사와 나눈 카자흐스탄의 현재 상황✔ '부자는 해외로 가고 가난한 이는 군대에 간다'는 러시아 징병의 현실2022년 1월 카자흐스탄 소요 이후 변화에 대한 기대 커져

카자흐스탄의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황금전사 기념비. 알마티 시내 공화국 광장에 있다. (사진:셔터스톡)

얀덱스와 러시아 제재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카자흐스탄의 중심도시 알마티 거리에서 손을 들고 택시를 잡는 사람이 많았다. 영업용뿐 아니라 일반 승용차도 택시 일을 했다. 우버가 생기며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고, 풍경은 다시 한번 바뀌었다. 우버가 카자흐스탄 시장을 떠났고, 빈자리에 러시아 회사인 얀덱스(Яндекс)가 들어왔다. 택시 앱 명칭은 ‘얀덱스 고’(Yandex Go)다. 이제는 거리에서 손을 들어 택시를 잡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얀덱스 택시를 이용한다.

11월 8일, 2년 만에 알마티에 왔다. 첫눈이 많이 내려 거리가 질척거린다. ‘얀덱스 고’가 없는 나는 지나가는 차가 튀기는 흙탕물을 피하며 손을 들고 있다. 처량하다. 앱을 깔면 되는데, 왜 이 고생을 할까? 

서방의 러시아 경제 제재로 영국 앱스토어에서 ‘얀덱스 고’가 검색되지 않는다. 당연히 다운로드할 방법이 없다. 이런 일은 영국에서 종종 일어난다. 영국 앱스토어 사용자는 한국의 업비트와 빗썸을 다운로드할 수 없다. 검색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물론 방법은 있다. 앱스토어 지역을 영국에서 한국으로 바꾸면 된다. 정보를 변경하고 한국 휴대전화 인증을 거친 뒤, 업비트와 빗썸을 다운로드하고 다시 영국 앱스토어로 돌아가면 된다. 

같은 방식으로 앱스토어를 한국으로 바꾸니 ‘얀덱스 고’가 검색된다. 그런데 이상하다. 다운로드 버튼을 누르니 ‘한국 앱스토어에서 안 된다. 다운로드하려면 영국 앱스토어로 바꾸라’는 메시지가 뜬다. 영국 앱스토어로 돌아가면 다시 검색이 되지 않는다. 업비트는 되는데, 얀덱스는 불가능하다. 우회로가 통하지 않는다. 앱스토어를 카자흐스탄으로 바꿔도 마찬가지다. 

제재를 우습게 생각하지 말라는 ‘경고’가 느껴진다. 러시아 제재의 영향을 직접 경험하고 있다. 택시를 잡기 위해서는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에게 얀덱스 택시를 잡아 달라고 부탁해야 한다. 번거롭고 미안한 일이다. 그렇게 만난 얀덱스 기사 아홉 명의 이야기다. 

하나·둘, 러시아 징병이 많은 것을 바꿨다

택시 기사 아자맛은 러시아에서 징병을 피해 카자흐스탄에 온 사람이 120만 명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카자흐 민족주의 성향이 강했고, 러시아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옛 소련이 망하면서 러시아로 돌아가거나 러시아 국적을 선호해 카자흐스탄을 떠난 사람이 350만 명이라고 했다. 그 가운데 120만 명이 이번에 돌아왔다는 주장이다. 그의 수치는 공식 통계와는 거리가 있다. 징병을 피해 카자흐스탄으로 넘어온 사람은 30만 명으로 추정된다. 택시 기사여서 러시아인을 많이 보았기 때문일 수 있다. 

소련 시기에 카자흐어 교육이 이뤄지지 않았다. 러시아어로만 교육이 가능했다. 카자흐어 말살 정책을 편 소련에 불만이 많은 아자맛에게 물었다. 

‘전쟁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난 이상 우리는 누구 편도 아니다.” 

‘중립이라는 입장을 이해하기 어렵다. 카자흐 민족주의자가 어떻게 우크라이나 편을 들지 않을 수 있는가?’ 

“인도적인 지원을 우크라이나에 해야 한다. 그러나 러시아가 망하면 카자흐스탄에 좋을 것이 없다. 카자흐스탄 경제는 러시아 경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지금은 러시아에서 징병을 피해 온 사람들 덕에 경제가 살아나고 있지만, 이것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러시아 경제가 좋아야 카자흐스탄 경제도 좋아진다.” 

비슷한 주장을 하는 얀덱스 기사 카낫은 카자흐스탄 국민 중에 중립을 표방하는 사람이 40%, 우크라이나 지지자가 30%, 의견 없음이 20%, 러시아 지지자가 10%쯤 될 것이라고 자신의 체감 지수를 말해준 적이 있다. 중립이 많은 이유는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이 같은 경제권이기 때문이다. 카자흐스탄 정부도 중립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카자흐스탄과 러시아가 공동 군사조약 아래 있음을 감안하면, 중립이란 사실상 러시아 반대를 의미한다. 

10여 분 택시를 타면서 모든 것을 물어볼 수는 없다. 대화는 다른 택시 기사와 이어 나갈 수밖에 없다. 이제는 택시를 타면 다짜고짜 물어야 한다.

예전처럼 손을 들어 택시를 잡는 사람은 보기 힘든 알마티 시내 모습. 왼쪽 끝에 보이는 노란 로고 차량이 얀덱스이다. (사진:윤영호)

셋, 부자는 해외로 가고 가난한 사람은 군대에 간다

세 번째 기사 에르켄은 한 달에 70만 텡게(우리 돈으로 200만 원)를 번다. 징병을 피해 온 사람이 많았을 때는 80만 텡게도 벌었다. 지금도 징병 사태 이전보다는 많이 번다. 

‘러시아인의 씀씀이가 큰가?’ 

“아무래도 러시아 소득 수준이 카자흐스탄 소득 수준보다 높잖아! 다들 돈을 잘 쓰던데.” 

‘온 사람들이 부자인가? 가난한 사람들은 없는가?’ 

“해외를 나가 본 사람이 다시 나가는 것이고, 못 나가 본 사람은 안 나가지. 전쟁이 나도 마찬가지야. 평상시에 부자는 해외로 가고, 가난한 사람은 시골로 간다. 전쟁이 나면 부자는 해외로 가고, 가난한 사람은 군대에 간다.” 

‘징병을 피해 온 러시아인을 어디에서 볼 수 있는가?’

“쇼핑몰에 가면 많다.”

‘알마티에 원래 러시아인이 많은데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딱 보면 한눈에 표시가 난다. 직접 가서 보면 알 수 있다.”

쇼핑몰 커피숍이나 레스토랑에 젊은 남성이 혼자 혹은 둘이 앉아 있는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다. 고급 옷을 입었고, 고급 휴대전화를 두세 개씩 가지고 있었지만, 휴대전화를 보기보다는 멍하니 있는 경우가 많았다. 개중에는 맥북을 앞에 두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있었다. 정말로 딱 봐도 달랐다. 

알마티 쇼핑몰 카페 모습, 사진은 본 내용과 직접적 상관이 없음. (사진:윤영호)

넷, 외국인도 징병한다?

러시아의 징병 선언은 이번 전쟁의 최대 ‘패착’ 가운데 하나다. 사회의 핵심 인력이 조국을 버리고 떠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젊은 엘리트와 부유층을 나라 밖으로 몰아낸 셈이 되었다. 

해외 도피를 막기 위해서 징병 회피자에게 부여하는 형벌을 징역 5년에서 10년으로 늘렸지만 효과가 없었다. 재산을 압류해 군 입대자에게 나눠주겠다는 출처 불명의 괴소문은 조금 효과를 냈다. 군인 수가 부족해지자 러시아는 중대 범죄자를 감옥으로부터 징병했고, 거리 노숙자를 징병했다. 러시아 거주 외국인과 영주권자를 징병할 수 있고, 해외에 영주권을 가지고 거주하는 러시아인까지 징병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해 놓았다. 그야말로 물불을 가리지 않는 징병이다. 얀덱스 기사 누르잔(가명)에게 물었다.

‘러시아에서 거주하는 외국인을 징병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푸틴에게는 뭐든지 가능하다. 지금까지 그가 한 일을 보면 알 수 있다. 그에게 불가능은 없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 하하하.” 

다섯, 신세가 역전된 두 명의 친구가 있다

기사 티무르에게는 모스크바에 사는 친구 두 명이 있다. 모두 카자흐인이지만 한 명은 러시아 국적을 취득했고, 한 명은 카자흐스탄 국적을 유지하고 있다. 러시아에 살기에는 러시아 국적이 편하고 좋다. 그런데 이번 전쟁으로 러시아 국적의 친구는 징병을 피해 러시아를 떠나야 했고, 카자흐스탄 국적의 친구는 모스크바에서 일상을 이어갔다.

징병 기피자의 아파트를 압류한다는 소문은 징병 대상자의 해외 도피를 일부 막았을 수도 있다. 괴소문으로 인해 해외로 도피한 사람이 집을 헐값에 팔기도 했다. 모스크바에 거주하는 카자흐스탄 국적 친구는 모스크바를 급히 떠난 러시아 국적 친구의 아파트를 위임장을 받아 매각해 주었고, 그 돈을 가상화폐인 테더(USDT)로 바꿔 친구에게 보내 주었다. 

외국인도 징병할 수 있는 칙령이 발표되면서 모스크바에 있는 카자흐스탄 국적 친구도 좌불안석이 되었다. 푸틴의 눈에는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국적자도 러시아에 살고 있으면 징병 대상자로 보이는 것 같다. 러시아는 중앙아시아 출신의 러시아 거주자에게 입대를 요구할 정도의 대접을 해주었을까? 

여섯, 기사들과의 만남은 극적이다

택시를 타면 다짜고짜 묻지만, 그것도 사람을 봐 가면서다. 후덕하게 생긴 기사에게는 부담이 적지만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기사에게는 힘들다. 루스탐(가명)은 유난히 날카롭고 신경질적으로 보였다. 망설임 끝에 이름을 나누고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그는 카자흐스탄에 온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은 20대 후반의 젊은이였다. 타지키스탄 출신으로 7년이 넘게 러시아 북서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일한 뒤 카자흐스탄에 왔다. 그는 알마티에 온 이유를 처음에는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는 인종차별이 심하다. 중앙아시아 무슬림들에 대한 차별이 특히 심하다. 굴욕감을 느낄 때가 많다.”

‘그 정도로 차별이 심한가? 카자흐스탄은 어떤가?’ 

“카자흐스탄은 인종차별이 없는 편이다. 그리고 종교적 관용성도 높다.” 

‘러시아가 일자리가 많아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지 않은가?’ 

그 질문에 기사는 평정심을 잃고 지난 9개월 동안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그는 러시아에서 반정부 시위에 별 뜻 없이 갔다가 잡혔다. 구치소에서 한 달간 빵 몇 조각으로 연명하다가 본국인 타지키스탄으로 보내졌다. 타지키스탄에서 3개월간 갇혀 있다시피 했고, 마침내 카자흐스탄으로 올 수 있었다.

‘왜 타지키스탄에서 일하지는 않는가?’ 

“그곳에는 일자리가 없고 자유가 없다. 많은 사람이 탈레반이 장악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에 자유가 없다고 말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은 몇몇 영역에서만 그렇지 정치적 발언은 자유스러운 편이다. 타지키스탄의 자유가 감이 잡히지 않는다면, 아프가니스탄보다 10배 정도 자유가 없다고 보면 된다.” 

러시아에서 당한 인종차별, 러시아 구치소의 인권상황과 굶주림, 타지키스탄의 비극적인 상황에 대해 듣는 것은 괴로웠다. 그의 택시는 타본 택시 중에 가장 낡았지만, 운전 솜씨만은 수준급이었다. 택시 요금이 2100텡게(6100원) 나왔는데 4000텡게를 주고 잔돈을 받지 않았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의 위치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지도. (사진:셔터스톡)

일곱, 카자흐스탄 소요를 돌이켜 보다

늦은 밤에 만난 택시 기사 아르만(가명)은 현역 직업 군인이다. 급여는 30만 텡게(87만 원)다. 그것으로는 많은 가족을 부양할 수 없어서 퇴근 후에는 택시 일을 병행한다. 밤과 주말에 일하면 25만 텡게를 벌 수 있고, 그럭저럭 생활을 유지할 수준이 된다. 군인을 그만두고 전업 얀덱스 기사가 될 것을 고민하고 있다.

올해 1월 카자흐스탄에는 전국적으로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카자흐스탄 서부 지역에서 휘발유 가격 상승에 항의하던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돼 민주화 요구로 번졌다. 시위가 격렬해졌고 발포로 이어졌고 무기 탈취와 교전까지 있었다. 238명이 사망했고 1만 명이 넘게 체포되었다. 

현역 군인에게 1월 소요 사태에 대해 물었다. 그는 알마티의 한 시설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시위대가 그곳까지 왔다. 위협을 느꼈지만 당시에는 사격 명령이 없었다. 이틀 후에 발포 명령이 떨어졌는데 다행히도 발포 명령 이후에 자신의 근무지에 시위대가 오지는 않았다.

‘발포 명령대로 총을 쏘았겠는가?’

“아마도 쏘았을 것이다. 군인으로서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가정을 하고 싶지 않다.” 

‘러시아 군대도 작전에 투입되었는가? 왜 러시아 군대까지 필요했는가?’ 

“러시아군은 알마티 공항에 대기하고 있었고 작전에 투입되지 않았다. 카자흐스탄 군대는 시위 진압 경험이 없기 때문에 만일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러시아 군대가 온 것이다. 소요는 금방 진정되었고, 러시아 군대는 카자흐스탄을 떠났다. 그리고 그들은 한 달 후에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되었을 것이다.”

카자흐스탄 알마티 시내 쇼핑몰 모습. (사진:윤영호)

여덟, 변화를 지켜보고 있다

카자흐스탄 소요 후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장기 집권한 전임 대통령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와 그의 가족이 정치와 경제 권력에서 물러났다. 카자흐스탄은 자원의 나라다. 경제의 심장인 자원을 움켜쥐고 있던 세력이 물러나자 경제 숨통이 트인다. 정치적 자유도 개선된 것으로 보인다. 시위에 참여했던 사람, 시위를 진압한 사람들 모두 변화에 대한 기대가 있다. 

기대감을 가지고 더 지켜보겠다는 예르잔은 3년 전에 퇴역한 군인이다. 은퇴할 때 퇴직금으로 1300만 텡게(3770만 원)를 받았고, 은행에 3년간 저축하여 1700만 텡게를 만들었다. 그 돈으로 한 달 전에 8만km를 주행한 중고 기아 K7을 샀다. 차가 새 것처럼 보였다. 이전에는 도요타 캠리를 몰았고, 일이 끝나면 피곤하고 허리가 아팠는데, K7은 하루 종일 운전해도 피곤하지 않단다. 기아차가 도요타보다 훨씬 좋다고 한다. 단순히 기분 탓인지도 모르지만, 최근에 카자흐스탄에서 부는 한국 중고차 열풍을 감안해 본다면, 단순히 기분 탓만은 아닌듯하다. 

아홉, 이제 전쟁 이후를 생각한다

러시아 징병을 피해 온 사람들 상황을 묻자 기사 일리야스는 이렇게 말했다. “이미 일부가 카자흐스탄을 거쳐 다른 나라로 가거나 러시아로 돌아갔다. 이제는 전쟁 이후를 생각해야 한다.” 

징병이 발표되고 많은 사람이 카자흐스탄을 찾은 것은 여권 없이도 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표를 구하기 어려웠던 비행기 대신에 차와 기차로 카자흐스탄 국경을 통과할 수 있었다. 징병이 발표된 뒤 공포심이 매우 높았다. 국경에서 통과가 될지 안 될지, 통과가 안 된다면 잡혀갈지 집으로 돌려보낼지, 통과가 가능하다면 카자흐스탄 사람의 태도가 어떨지 전혀 몰랐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면서 공포심은 어느 정도 사라졌다. 러시아에 신물이 난 일부는 러시아 영향권으로부터 되도록 먼 나라로 갔고, 일부는 러시아로 돌아갔다. 

‘돌아가면 징병을 피해 해외로 도피한 것 때문에 잡혀가지 않는가?’

“징병을 피해서 카자흐스탄에 왔다 간 것인지, 출장 다녀간 것인지, 친인척 방문하고 간 것인지, 여행 왔다 간 것인지 입증이 어렵다. 사법 처리가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러시아 정부는 징집령에 따라 31만8000명의 징병을 마쳤고 추가 징집 계획은 없다고 11월 4일에 발표했지만,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다만 전쟁이 소강상태에 돌입했고, 협상이 불가피하다는 여론이 러시아에서 높아지는 것에 기대를 걸고 돌아가는 사람이 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러시아를 떠나려는 의지를 완전히 접은 것은 아니다. 해외로 나간 젊은이를 다시 불러 모아야 할 러시아 정부가 징병 도피자를 엄단하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유가는 하락세로 접어들었고, 러시아 경제는 3/4분기에 -4% 성장률을 기록했다. 전쟁이 시작되고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다. 제재의 효과는 시간이 갈수록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조금만 더 간다면 휘날리는 눈발 속에서 아무 차나 멈춰주기를 기다리며 하염없이 손을 들고 있는 출장자가 늘어 갈 것이다. 겨울이 깊어지면 온도는 영하 30도에서 40도에 이른다. 그런 상황에서 외국인이 길거리에서 손을 들어 낯선 택시를 잡는 것은 가능할까?


글쓴이 윤영호는서울대학교 외교학과와 같은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증권사, 보험회사, 자산운용사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했고, 카자흐스탄 증권사 겸 자산운용사인 세븐 리버스 캐피털(Seven Rivers Capital)에서 대표로 일했다. 현재는 영국 런던에서 자산을 운용하며 런던 생활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옵션투자 바이블>, <유라시아 골든 허브>, <그러니까, 영국> 등이 있고, 최근에는 인터뷰 모음 <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를 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