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9일 밤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서 150여 명이 압사하는 참극이 발생한 이후, 대한민국은 그 이전과 다른 세상이 되었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장’이라는 최우선 책무를 담당할 능력도, 의지도 없음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국민은 절망과 분노에 깊이 빠져들고 있다. <피렌체의 식탁>의 이관후 수석칼럼니스트는 지금 상황을 ‘무정부 상태’라 진단하고, 우리 사회에 묻는다. 이 무정부 상태를 어찌할 것인가? [편집자 주]
✔ 첫날부터 대통령실 이전 결정 외에는 아무 준비 없던 정부✔10월29일 밤 이태원의 참사가 확인시켜준 무정부 상태✔ 안전의 결핍과 무고한 다수 희생자를 만들어낸 국가의 무위✔ 일선 경찰을 희생양으로 사건의 책임을 유야무야하려는 검찰✔ 여당은 모든 임명직에 대한 엄중한 책임과 쇄신을 요구해야
용산에 정부는 있는가?
윤석열 정부가 시작된 5월10일, 용산으로 출근한 공직자와 기자들에게 전해 들었다. ‘무정부 상태’ 같다고. 청와대로 들어가지 않기로 결정한 것 말고는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다고. 무슨 사고라도 나면 어떻게 대처할지 모르겠다고.
권력을 갖게 되었지만 국가를 경영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도, 비전도, 책임감도 없는 정권. ‘용산’은 첫날부터 그랬던 모양이다.
국가의 무위, 단풍철 산행에도 주최측은 없다
10월29일 밤 이태원에서 참사가 일어난 뒤 정부 당국자들이 보여준 태도와 대처 능력, 그리고 119 통화일지로 일부 드러난 참사 전의 상황은, 이 나라가 5월10일부터 지금까지 내내 무정부 상태였음을 증명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갓 3개월을 넘긴 정부의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지는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임기 초반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 하락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라는 작위(作爲), 곧 ‘유위’(有爲)의 결과였다. 반면에 윤석열 정부의 지지율 하락은 어떠한 정치적·정책적 행위도 없이, 그저 억지스러운 인사와 이해되지 않는 외교 행보, 대통령의 부적절한 처신에서 빚어진 ‘무위’(無爲)의 결과였다.
국가의 무위! 그것은 무정부 상태다.
30년 넘게 여러 정부에서 일한 고위 관료가 이렇게 말했다. 관료를 앞장 세우고 검사가 감시하는 체제에서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적극 행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정부에서는 어떤 선제적 조치도 쉽게 하기 어려울 것이고, 그것이 빚어낼 결과가 무엇보다 두렵다고.
안일했다. 그때만 해도 이런 무위의 결과가 외교나 산업정책, 연기금 등의 개혁에서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는 정책의 실패로 나타날 가능성 정도를 우려했을 뿐이다. 왜 무위는 먼저 안전의 결핍으로 귀결되고 무고한 희생자를 낳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을까!
책임을 회피하려다 존재 이유를 망각한 정부
150여 명의 희생자가 수도 한복판에서 축제를 즐기다가 사망했는데 국가는 할 일이 없었다고 답하는 정부라면, 그곳에는 이미 정부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주최자가 없어서 매뉴얼이 없었다고? 단풍 든 산과 해수욕장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에는 무슨 주최자가 있어서인가? 중앙정부의 관료든, 지방정부의 단체장이든 그런 철면피 같은 발언을 하는 곳에는 이미 정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 안전의 책임자는 처음에는 집회 때문에 경찰이 모자랐다고 하더니, 다음에는 경찰이 있었어도 할 일이 없었다고 하고, 그다음엔 경찰이 이런 일을 통제할 권한이 부족하다고 했다. 시민들이 스스로 자신들을 지켜달라고 그렇게 애원했는데도,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다니, ‘나는 책임이 없다’는 말 이외에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무능할지언정 책임은 없다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일선의 경찰과 소방관들이 정부가 바뀔 때마다 모두 교체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경찰은 ‘압사’를 우려하는 119 신고전화가 빗발칠 때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것은 일선 경찰의 책임인가? 그렇지 않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 안전에 대한 무능의 원인은 그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 어디를 보고 있느냐에 달려있다.
이번 참사의 대처 과정에서 공직의 책임자들 다수가 국민의 안전보다 정권의 안전, 자신의 안전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사후적으로 분명하게 확인되었다. 안전의 책임자인 한덕수 국무총리,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윤희근 경찰청장 등은 모두 입을 맞춘 듯 참사에 대한 일말의 사과나 비통함조차 없이 책임 회피로 일관했다. 경찰의 대처가 너무나 미흡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서야 고개를 수그렸다. 그런 와중에도 한덕수 총리는 외신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며 농담과 미소를 곁들였다. 총리는커녕 인간으로서의 자세가 의심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국정의 총책임자인 ‘용산’은 책임 인정과 대국민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그저 격노와 질책만이 있을 뿐이다.
검찰은 경거망동해선 안 된다
의전이 앞서면 안전은 밀리게 된다. 높은 분의 심기를 먼저 챙기면, 위험을 경고하는 보고에 아랫사람은 주저하게 마련이다. 수십 명 이상의 사망이 예상되는 긴급한 상황에서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어떤 비서실 직원이나 보좌관도 구두로 보고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 책임이 보고자에게 있는가 보고를 받는 사람에게 있는가.
그런데 검찰은 참사를 기회로 삼겠다는 듯 일선 경찰을 희생양 삼아 사건의 책임을 우발적인 것으로 유야무야하려 하고 있다. 심지어 검찰의 수사 범위를 넓히려는 계기로 삼으려는 태도마저 보이고 있다. 참으로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우리는 임진왜란 때 한산도에서 승리한 수군과 칠천량에서 전멸한 수군이 같은 조선의 병사라는 것을 안다. 통탄할 칠천량 패배의 책임은 원균에게 있지 수병들에게 있지 않다. 패배는 지휘계통의 부재와 지휘관들의 관심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지, 일선 수병이 책임져야 할 일이 아니다. 검찰은 경거망동을 삼가고, 윗선의 책임부터 규명해야 한다.
보수는 자멸할 것인가, 여당에게 달렸다
지난해 8월 윤석열 검찰총장은 이렇게 말했다.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국민을 어떻게 보호하느냐에 정부의 존재 이유가 있는 것인데, 이 정부는 정부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올해 8월 윤석열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국민의 안전에 대해서 국가는 무한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참사가 일어나자 대통령의 말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 되었다. 큰비로 침수가 벌써 시작되는 것을 보고도 유유히 퇴근했던 대통령은, 반지하 참사 현장에 가서 “어떻게 여기 계신 분들이 미리 대피가 안 됐나 모르겠네”라는 말을 남겼다. 무작정 집무실부터 용산으로 옮긴 이후로 이태원 참사의 관할인 용산경찰서, 그리고 비상 상황에서 가동되어야 할 서울시경 기동대에 어떤 보완이 이루어졌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한국의 민주화 세력은 정치 행태에서는 미숙하고, 경제와 사회 정책에서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곤 했다. 그러나 한국의 보수는 이제 최소한의 국정 운영 능력, 아니 국가의 유지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통치의 기본조차 이행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지금 무정부 상태를 이대로 계속 둘 것인가, 아니면 국가를 유지하고 우리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비상 수단이라도 강구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당장은 여당의 책임이 중요하다. 정부에서는 대통령 이외의 모든 공직자는 국민이 선택한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국회는 다르다. 한 명 한 명이 국민이 선출한 대표자다. 여당이 대통령의 재신임을 물을 수 없다면, 대통령실과 행정부를 막론하고 모든 임명직에 대한 엄중한 책임과 쇄신을 요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당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글쓴이 이관후는피렌체의식탁 수석칼럼리스트다.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국회에서 6년간 일했다. 영국 런던대학교(UCL)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서강대, 경희대 등에서 강의했다.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경남연구원을 거쳐, 행정안전부 장관정책보좌관,국무총리 메시지비서관을 지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에 칼럼을 썼고, 펴낸 책으로 <한국민주주의, 100년의 혁명>, <시민의 조건, 민주주의를 읽는 시간>, 번역서로 <정치를 옹호함>이 있다. 정치와 정치학을 잇는 일에 주로 관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