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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권의 사람] 박현 “미-중 패권 전쟁 30~40년 간다”

By | 2022년 10월 21일 | 국제, 미분류, 산업, 정재권의 사람

중국 공산당 제20차 당대회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대관식’이나 다름없는 이번 당대회에 쏠리는 지구촌의 관심은 크게 두 가지다. 그 하나가 ‘시진핑 3기 체제’에서 누가 권력 핵심부를 구성할 것인지라면, 다른 하나는 ‘중국몽’(中國夢)의 실현을 위해 어떤 전략을 내놓을 것인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전략 중에선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선언한 패권 전쟁, 특히 기술패권 전쟁에 대한 대응 방침이 핵심일 수밖에 없다. 지금 두 나라는 다음 100년의 세계 질서를 걸고 사활적인 기술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왜 기술패권 전쟁인가? <기술의 충돌>을 쓴 박현 필자가 기술패권의 의미, 미-중간 기술패권 전쟁의 과거와 현재, 미래, 그리고 두 나라 경쟁의 틈바구니에 낀 대한민국의 선택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편집자주]

✔ 근대 이후의 세계사는 기술 패권의 역사
✔ 미-중간 패권 다툼을 6개의 영역에서 다룬 <기술의 충돌>
✔ 첨단기술, 네트워크, 핵심 광물, 금융 패권, 첨단무기, 디커플링
✔ 두 나라의 패권 경쟁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대한민국의 숙제

미국과 중국의 대결이 점입가경이다. ‘총성 없는 전쟁’이라는 표현이 조금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다. 특히나 2021년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미국의 대중국 견제는 그 이전보다 한층 노골적이다. 시진핑 국가주석 체제 아래서 ‘중국몽’(中國夢)을 향한 중국의 ‘굴기’(崛起)가 최고의 기세에 이른 탓이다. 무엇보다 첨단기술을 둘러싼 두 강대국 간의 대립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2022년 10월은 미-중 패권 경쟁의 미래를 점칠 수 있는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시기다. 미국 백악관은 10월12일 ‘국가안보전략’ 보고서를 발표했고, 중국은 ‘시진핑 3기 체제’를 대내외에 공표하는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미국은 ‘국가안보전략’을 통해 예상대로 중국을 유일한 ‘경쟁 상대’로 설정하고, 중국과의 첨단 기술패권 ‘전쟁’을 최우선의 외교・안보 과제로 천명했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 중국과의 기술 격차를 벌려 글로벌 패권을 놓치지 않겠다는 것이다. 기술 전쟁의 최전선인 반도체에서 대중국 무역 제재를 강화하고 있는 것은 그런 의지의 노골적인 표현이다. 이에 대해 중국은 그동안 미국과의 ‘전면전’을 피하려는 모습이었지만, 당대회를 계기로 어떤 식으로든 대응전략의 얼개를 드러낼 것으로 관측된다. 미-중 사이의 ‘낀 나라’인 대한민국으로선 이 패권 전쟁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왜 기술패권 전쟁일까? 최근 <기술의 충돌>을 펴낸 <한겨레> 박현 논설위원은 “근대 이후 세계사는 기술패권(Technological-Hegemony)의 역사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18세기 후반의 1차 산업혁명 이래로 세계사는 시대를 대표하는 기술을 선점해 세계의 경제・군사 헤게모니를 장악한 패권국과, 그 패권국의 기술력을 넘어서려고 애쓰는 추격국들의 공방으로 전개됐다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을 살피면, 미국은 20세기 이래로 내연기관과 전기공학을 바탕으로 패권국가가 된 이래 세계의 유일한 초강대국 지위를 누려왔고, 중국은 21세기 들어 거대한 인구와 생산력을 무기로 첨단기술 분야에 박차를 가해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를 뒤집으려 하고 있다.

<기술의 충돌>은 이런 두 나라의 기술패권 다툼을 모두 6개 영역에서 다루고 있다. 그 영역은 반도체, 인공지능, 5G 등의 첨단기술을 비롯해 지상·해저·우주 네트워크, 희토류 등의 핵심광물과 배터리, 전기차 분야, 금융, 첨단무기, 기술·자본의 디커플링(분리) 등이다. 다루는 영역이 광범위하지만, 저자는 30년 가까운 저널리스트 경력의 미덕을 발휘해 과거를 간명하게 복기하고, 현재를 폭넓게 살피고, 미래를 실천적으로 예측한다. 이렇게 ‘3박자’를 갖추고 알기 쉽게 미-중 경쟁을 설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저자 박현과 미-중 패권 전쟁, 그리고 대한민국의 선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셔터스톡

 

중국의 추격, 미국의 불안과 초조

정재권 : 미국 상무부가 10월7일 중국에 대해 미국산 첨단 반도체 장비의 판매를 사실상 금지하고, 인공지능(AI)과 슈퍼컴퓨터에 사용되는 반도체의 수출을 제한하는 조처를 했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시작된 반도체 기술 및 설비의 수출 규제가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더욱 거세지는 양상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나?

박현 : 근본적으로는 중국의 추격에 대한 미국의 불안감, 초조함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미국은 과거에도 독일, 소련, 일본 등 경쟁국과 대결한 바 있지만 중국은 인구, 영토, 경제력 등 거의 모든 면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자다. 워싱턴에선 2010년대 초중반부터 중국의 부상에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는데, 특히 미국이 힘의 원천으로 여기는 첨단기술 분야에서마저 중국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자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느낀 것이다. 

 ‘기술의 두뇌’로 불리는 반도체의 경우, 미국의 수출통제에도 불구하고 중국 반도체 기업들의 매출이 지난해 크게 증가했다. 중국 파운드리 업체인 SMIC는 매출이 전년보다 40% 가까이 증가했다. 순이익도 17억 달러에 달했다. 이렇게 되면 대규모 연구개발 투자가 가능해 기술 진보 속도가 빨라질 것이다. 중국의 반도체 제조장비 수입액도 한국, 대만을 제치고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을 정도다.

바이든 행정부의 최근 움직임은 전임 트럼프 행정부 수준의 대응으로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 나아가 4차 산업혁명을 기반으로 한 ‘기술 굴기’를 저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런 기술은 첨단무기 개발과도 직결되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미국의 군사패권 질서에도 위협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반도체는 휴대전화, 노트북 같은 전자기기뿐만 아니라 에너지, 운송, 금융, 첨단무기 등의 필수 원자재여서 인프라와 국가안보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

또 인공지능과 슈퍼컴에 사용되는 반도체 수출 제한은 이것이 4차 산업혁명과 미래형 무기 개발에 중요한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의 경우 19세기 후반 전기 기술이 모든 산업 분야에 적용되면서 2차 산업혁명을 추동한 것에 비견될 정도로 앞으로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 적용돼 생산성을 끌어올릴 것으로 평가받는다. 군사적으로도 활용도가 매우 높다. 인공지능은 방대한 정보를 실시간 수집해 표적의 식별과 판단, 공격까지의 과정을 훨씬 빠르고 정밀하게 진행한다. 예컨대 킬러로봇이나 드론 떼가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 이런 신속성과 정확성, 파괴력 때문에 인공지능 무기의 등장을 화약과 핵무기 개발에 이은 ‘제3차 무기혁명’으로 부르기도 한다. 슈퍼컴도 4차 산업혁명 기술과 미래 군사기술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것으로 평가받는다. 미국이 반도체와 인공지능, 슈퍼컴 등 분야에서 기술적 우위 확보와 중국의 개발 저지에 사생결단식으로 나서는 이유다.

 

근대 이후 세계사는 기술패권의 역사 

정재권 : 박 위원은 이 책에서 미-중의 충돌을 ‘기술의 제국’을 향한 경쟁으로 규정하고 있다. 왜 기술인가?

박현 : 근대 이후 세계사는 기술패권의 역사다. 18세기 이래 산업의 기반이 되는 기술 개발에 성공한 국가는 생산력의 비약적 증가를 이뤄냈고, 이어 국제 무역을 주도했다. 그렇게 쌓은 국부를 바탕으로 군사력을 키워 세계 패권을 거머쥐었다. 기술 격변기에 대도약을 이뤄 세계 최강국이 되는 것이다.

18세기 후반 증기기관을 개발해 1차 산업혁명을 주도한 영국이 대표적이다. 증기기관은 전례 없는 대량 생산체제와 철도를 비롯한 수송·교통망을 탄생시켰다. 이를 토대로 국제 무역을 주도하고 세계 최강의 해군력을 구축해 대영제국 100년의 영화를 이끌었다.

19세기 후반, 미국은 전기와 내연기관을 기반으로 한 제2차 산업혁명의 물결에 올라타 영국의 경제 규모를 넘어섰다. 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 이후 영국의 퇴조를 틈타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하기 시작한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명실상부한 세계 패권국 자리에 올랐다. 미국은 1980년대 제조업 공동화와 쌍둥이 적자에 시달리며 휘청거리는 듯했으나, 1990년대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한 3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면서 패권 유지에 성공했다. 

21세기 초반 이후 인공지능, 통신망, 신재생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맞고 있다. 중국이 노리는 것도 바로 4차 산업혁명이라는 기회의 창을 이용해 미국을 넘어서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8년 공개석상에서 “지금 세계는 100년 동안 보지 못한 대격변에 직면해 있으며, 향후 10년은 세계 경제에서 신구 성장동력이 전환되는 시기”라며 이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천명하기도 했다.

정재권 : 지금 가장 뜨거운 ‘전장’은 반도체가 분명하다. 하지만 이 책은 반도체를 포함해 6개의 영역을 두 나라의 전장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다른 영역에서 두 나라의 우위, 혹은 열위 양상은 어떠한가?

패권 경쟁의 넓은 스펙트럼, 6개의 영역

박현 : 미-중 패권 경쟁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다. 그래서 나무에 집착하다 보면 숲을 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 책에선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미-중 기술패권 경쟁을 6개 영역으로 구분했다. 물론 각 영역 내에서도 다양한 분야가 있어 두 나라 사이의 우열을 일도양단식으로 가릴 수는 없다. 책을 읽으면 큰 그림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첫째는 첨단기술의 핵심인 반도체, 인공지능, 5G다. 반도체는 미국이 앞선 반면에 5G는 중국이 추월했다. 인공지능은 중국이 미국의 턱밑까지 따라붙었다. 

두 번째 영역은 지상·해저·우주에서의 네트워크 전쟁이다. 디지털 경제에서는 누가 더 광범한 네트워크를 확보하느냐가 승패를 좌우한다. 중국은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앞세워 유라시아와 아프리카를 잇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으며, 미국은 이를 차단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세 번째는 희토류를 비롯한 핵심광물과 배터리, 전기차 분야로 중국이 미국을 압도하고 있다. 덩샤오핑은 1992년 “중동에 석유가 있다면 중국엔 희토류가 있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언제든 이를 무기화할 수 있음을 과시한 것이다. 미국의 제재에 맞선 중국의 역공 카드가 될 수 있다. 미국이 최근 ‘인플레 감축법’에 전기차, 배터리, 핵심광물의 생태계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전략을 담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네 번째는 금융 패권 경쟁이다. 중국은 ‘디지털 위안화’로 달러 패권에 균열을 가하려고 시도하고 있으나 현재로선 역부족으로 보인다. 최근 ‘킹달러’(달러 초강세) 현상은 중국에는 불리한 형세를 만들 것으로 보인다. 

다섯 번째는 첨단무기 경쟁이다. 두 나라의 군비 지출액 기준으로 보면 미국이 훨씬 앞서지만, 최근 10년간 지출 증가율로 보면 미국이 -6%인 반면에 중국은 72%나 된다. 중국이 지난해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을 무력화시킬 수도 있어 미국에선 상당히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마지막으로 여섯 번째는 기술·자본 영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국의 디커플링(분리) 공세와 중국의 대응이다. 여기선 중국이 수세적일 수밖에 없는데, 기술 자립화와 홍콩 자본시장 활용으로 대응하고 있다. 

정재권 : 미국은 반도체, 인공지능, 5G 등 미래 산업과 군사력에서 우위을 점하는 데 핵심적인 ‘민군 겸용’의 첨단기술 분야에선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에서 배제하려는 뜻이 분명해 보인다. 일종의 부분적 디커플링인데, 이런 전략이 성공할 수 있을까?

박현 : 산업별로 조금씩 양상이 다를 것 같다. 우선 5G는 미국의 화웨이 제재가 몇 년째 진행되고 있는 만큼 미국의 전략이 어느 정도 성과를 냈는지 파악할 수 있다. 트럼프 집권 이후 미국은 화웨이의 통신망 확장에 제동을 걸고 나섰지만, 약발이 신통치 않았다. 지난해 미국외교협회(CFR)가 조사한 자료를 보면,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화웨이 장비를 즉각 금지한 나라는 8개국이다. 영국, 캐나다 같은 파이브 아이즈 소속 국가와 일본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그러나 네덜란드, 아이슬란드, 터키 같은 나토 회원국과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 국가들은 여전히 화웨이 제품 사용을 고수하고 있다. 

핵심 동맹들은 미국에 동조하고 나섰지만 미-중 사이에서 눈치를 보는 나라도 적지 않은 셈이다. 어느 쪽에든 미운털이 박히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 화웨이 통신장비를 설치한 경우에는 타사 제품으로 교체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드는 문제도 있다. 4G와 5G 기술이 연동되어 있어 4G를 화웨이로 설치했다면 5G도 화웨이 제품을 고르는 것이 비용과 효율에서 훨씬 유리하다는 말이다.

사진:셔터스톡

 

반도체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 배제, 쉽지 않다

관심의 초점인 반도체는 두 가지 측면으로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중국이 반도체 기술 자립화에 성공할지 여부, 그리고 중국이 깊숙이 개입돼 있는 반도체 글로벌 공급망에서 배제될 수 있을지 여부다. 

첫 번째로 미국의 반도체 수출 제재 강화는 중국의 반도체 기술 자립화 시기를 늦추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중국의 반도체 기술 자립화는 10년 내에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중국의 기술력과 정부의 막대한 자원 투입, 과거 일본 사례 등을 고려할 때 10~20년 정도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기술 자립화에 가장 중요한 게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의 국산화다. 과거 일본이 1970년대 초 반도체 제조 장비 기술 수준이 초기 단계였으나 약 15년 뒤에 미국을 따라잡은 전례가 있다. 지금 중국의 반도체 제조 장비 기술 수준이 일본의 1970년 초반으로 보는 전문가도 있다.

두 번째 글로벌 공급망에서 배제 가능할지 여부는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반도체 생태계는 많은 나라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 가장 단순하게 얘기하자면 설계·장비(미국, 네덜란드)-생산(한국, 대만 등 동아시아)-소비(중국) 구조다. 미국이 칩 설계도를 그리고 장비를 제공하면 한국, 대만 등이 이것으로 생산을 하고, 중국에 파는 구조라는 얘기다. 중국은 세계 반도체 소비의 약 60%를 차지한다. 우리나라 메모리 칩 수출의 60%도 중국으로 향한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은 이 칩을 수입해 휴대전화, 노트북 등 전자기기를 조립해 세계에 수출하는 식이다. 비근한 예로, 미국 애플의 아이폰은 90%가 중국에서 최종 조립된다. 미국이 과연 아이폰의 중국 조립을 금지할 수 있을까? 애플이 최근 아이폰의 일부 생산을 동남아시아 국가로 이전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기는 한데 아마도 상당한 시일이 필요할 것이다.

동맹국들의 반발도 상당할 것이다. 이번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반도체 제조 장비 수출통제 조치와 관련해 1년 유예를 허가받기는 했지만, 1년 후에는 어떻게 될지 불확실성이 매우 크다. 예컨대, 삼성전자는 낸드 플래시 전체 생산량의 41%를 중국 시안 공장에서 생산한다. 만약 이 물량이 제대로 생산되지 못하거나 중국에 판매되지 못하는 상황을 한국 정부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반도체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 배제는 쉽게 이뤄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고 본다.

 

미국의 대중국 3대 전략 ‘투자, 제휴, 경쟁’

정재권 : 지금 미국이 중국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떤 것인가? 199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두 나라는 상호의존성을 높이며 ‘윈-윈’을 추구하는 협력 관계가 기본틀 아니었나? 이제는 그 틀이 바뀐 것인가?

박현 : 냉전 종결 직후인 1990년대 초반 미국 민주당 정부인 클린턴 행정부는 중국을 국제경제 체제에 편입시키면 중국도 민주화의 길을 갈 것으로 생각했다. 경제가 발전해 중산층이 두텁게 형성되고 이들을 중심으로 사회 전반의 민주화를 이끈 서구, 그리고 동아시아의 전례를 따를 것으로 봤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중국을 가입시킨 것도 그런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그게 오판이었다는 걸 2010년대 초반 이후 깨닫기 시작했다. 더구나 처음엔 두 나라의 경제적 상호의존도가 높아지며 ‘윈-윈’ 모델이 작동했으나, 이때쯤 중국이 미국을 경제적으로 추월해 패권국 지위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위협까지 느끼기 시작했다. 오바마 행정부 말기부터 시작해 트럼프 행정부가 본격적인 대중국 견제에 나섰고, 바이든 행정부는 더 치밀한 전략을 구사하기에 이르렀다. 

2022년 5월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발표한 ‘대중국 전략’은 미국이 중국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는 인식 전환을 보여주는 결정판이다. 블링컨은 이 전략에서 중국이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서 많은 혜택을 받았음에도 여기에 기여하기보다 오히려 이를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스스로 궤도를 바꿀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는 만큼, 미국이 중국을 둘러싼 전략적 환경을 만들어냄으로써 변화를 강제하겠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투자, 제휴, 경쟁’이라는 3대 원칙을 제시했다. 이는 자체 경쟁력 강화, 동맹 규합을 통한 협공, 중국과의 경쟁을 말한다. 이 원칙은 10월12일 백악관이 발표한 ‘국가안보전략’(NSS)에도 그대로 담겼다. 

정재권 : 미국이 중국을 둘러싼다는, 대중국 ‘포위전략’은 우리와도 연관이 있다. 이 전략은 어떻게 구체화하고 있나?

박현 : 바이든 행정부가 지금 공을 들이고 있는 게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다. 바이든 대통령이 올해 5월 한·일 순방 때 출범식을 했다.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 13개국으로 구성돼 있는데 중국은 배제됐다. IPEF는 현재 중국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는 첨단산업의 글로벌 공급망을 동남아시아·서남아시아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미국의 원대한 기획이라고 본다. 미국이 거대한 체스 게임을 두기 시작한 것이다. 

바이든은 노회한 외교 전략가다. 냉전이 한창 진행 중이었던 1973년부터 상원의원을 시작했는데, 상원 외교위원장도 두 차례나 했다. 아마도 그는 최근 30여 년간 형성돼온 국제경제 질서 자체를 바꾼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기를 원하는 것 같다. 트럼프와는 차원이 다른 움직임이라고 봐야 한다. 다만 이 원대한 기획이 성공하려면 10년 이상 계속 추진해야 할 것이다. 

사진:셔터스톡

중국의 대미 정책 기조 ‘투이불파(鬪而不破)’

정재권 : 중국은 미국의 압박에 대해 부분적으로 대응 조치를 내놓고 있지만 ‘전면전’은 피하려는 분위기인 것 같다. 틀린 해석인가? 맞다면 그 이유는 뭘까?

박현 : 맞는 말이다. 외교 전문가들 사이에선 중국의 최근 전략을 이렇게 표현한다. ‘투이불파(鬪而不破)’. 치열하게 싸우되 판 자체를 깨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중국은 미국의 각종 강경책에 대해 말로는 매우 강하게 비난한다. 또 미국이 대중국 첨단기술 수출통제 조치를 내리면 관련 법률을 제정해 맞대응을 한다. 그러나 법률을 제정해도 실제 행동으로까지는 아직 이어지지 않고 있다. 판 자체를 깨지 않겠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 이는 중국이 아직 현재의 국제경제 질서 안에 있을 때 얻을 게 많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경제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기 위해선 미국, 유럽, 일본, 한국 등의 앞선 기술에 대한 접근권을 확보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미국을 넘어서기 위해선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중국은 경제 규모로는 미국 바로 다음이지만, 1인당 국민소득으로 보면 여전히 중진국이다. 한국이 1994년에 도달한 1만 달러선을 넘은 게 2019년의 일이다. 이른바 ‘중진국 함정’을 넘어서려면 기술의 업그레이드가 가장 중요하다. 중국 관료들이 중진국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게 2015년이다. 중국이 ‘중국제조 2025’ 프로젝트를 시행한 것도 바로 그해다. 중국이 향후 30년 동안 3단계에 걸쳐 산업구조를 고도화함으로써 건국 100년을 맞는 2049년에 산업 최강국으로 우뚝 선다는 대전략이다. 

반도체, 전기차, 바이오, 항공우주 등 10대 전략산업을 선정하고, 2025년까지 달성할 시장점유율 목표치까지 제시했다. 반도체의 경우 2015년에 13% 수준인 자급률을 70%까지 끌어올린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이 전략은 순전히 경제적 측면에서만 보자면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나려는 기획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미국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 미국이 중국의 의도를 의심하고 대중국 견제를 본격화한 계기도 바로 이 전략이었다.

정재권 : 미·중을 잘 아는 인사인 케빈 러드 전 오스트레일리아 총리는 <피할 수 있는 전쟁 : 미-중간 재앙적 충돌의 위험>에서 “2020년대는 미-중의 힘의 균형의 역학관계에서 결정적인 10년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2020년대는 두 나라가 위태롭게 사는 시대가 될 것”이라며 “두 나라가 공존의 길을 찾는다면 세계는 더 나아지겠지만, 실패한다면 전쟁의 가능성이 놓여 있는 길로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나친 ‘경고’인가, 냉정한 현실인식인가?

박현 : 냉정한 현실인식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세계사의 대규모 전쟁은 패권국과 신흥 강대국 사이에 벌어진 것이었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원인을 부상하는 신흥 세력 아테네에 대한 패권국 스파르타의 불안과 두려움 때문이라고 진단했는데, 현재의 미-중 관계도 그런 길로 가고 있다. 중국은 커진 국력에 맞게 새로운 관계 설정을 요구하고, 미국은 이에 불안과 초조함을 느껴 강경한 정책들을 꺼내들고 있다. 

양국간 불신의 핵심 요인은 국력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 그리고 국내 정치 시스템과 이념의 차이가 계속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지금 양국 관계는 ‘자유의 가치를 전 세계에 전파한다는 선민의식으로 가득 찬 미국 예외주의와 100년 넘는 굴욕의 역사를 딛고 다시 세계의 중심에 서려는 중화 민족주의의 충돌’이다.  

 

패권 경쟁 30~40년 이어질 수 있다

정재권 : 두 나라의 경쟁을 ‘떠오르는 중국’과 ‘저물지 않는 미국’의 싸움으로 표현하는 이들이 있다. 이 싸움은 얼마나 진행될까?

박현 : 이건 예측의 영역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수십 년간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두 나라간 미래 경쟁을 전망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잘못된 통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첫째는 미국을 쇠락하는 패권국, ‘지는 해’로 생각하는 점이다. 세계은행 자료를 토대로 분석해보니, 미국 경제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부침은 있었으나 1980년대 이후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1950년대 세계 경제의 40%를 차지하던 미국의 비중은 다른 나라들이 성장하면서 1980년에는 25% 수준으로 하락했다. 그럼에도 이 수치는 세계 경제를 호령하는 데 충분한 규모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에는 23%까지 떨어지기도 했지만 2020년엔 다시 25%선을 회복했다. 온갖 종류의 쇠퇴론에도 불구하고 지난 40년간 미국 경제가 세계에서 차지하는 몫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1980~2020년 사이 유럽연합(EU)의 비중은 29%에서 18%로, 일본은 10%에서 6%로 크게 줄어들었다. ‘지는 해’는 유럽연합과 일본이다. 물론 중국이 ‘떠오르는 해’라는 점은 분명하다. 중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80년에 2%에 불과했으나 2020년에는 17%까지 치고 올라왔다.

두 번째는 중국이 머지않아 미국을 추월하리라는 걸 기정사실화하는 주장이다. 많은 외교·안보 전문가와 미디어가 이걸 전제하고서 논의를 전개하는데 그렇지 않을 개연성이 높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이 2020년대 말~2030년대 초반에 미국 경제 규모를 추월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으나, 중요한 변수들이 생기고 있다. 미-중 패권 경쟁 심화, 중국 정부의 민간기업 개입 강화, 코로나19에 따른 봉쇄정책 등 중국 경제에는 좋지 않은 악재가 잇따라 터졌다. 시진핑 주석의 3연임도 추가된다. 그래서 미-중의 경제 규모가 대등해지는 시기는 2030년대 중반으로 지연될 수 있다. 게다가 중국도 ‘한 자녀 정책’의 여파로 지금 일본이나 우리나라처럼 빠른 고령화와 인구 감소를 겪게 될 것이다. 이런 것까지 감안하면 중국이 미국 경제 규모를 일시적으로 넘어서라도 압도적으로 추월하지는 못하다가 다시 미국에 역전당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미-중 어느 한쪽도 서로를 압도하지 못하고 거의 비슷한 규모로 경쟁이 30~40년 이어질 수 있다. 

정재권 : 두 강대국의 ‘전쟁’ 양상과 강도에 따라 글로벌 경제·기술 생태계가 엄청난 회오리를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나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미-중간 대립이 격화할 경우 큰 피해가 우려되는데.

박현 : 미-중 사이에 낀 나라들이 받을 타격이 매우 크다. 전쟁 같은 극단적인 시나리오를 배제하고 경제적 측면만 따져봐도 그렇다. 두 강대국이 보호주의로 돌아설 경우 우리처럼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들은 후폭풍이 클 수밖에 없다. 국내 언론에서는 보도가 잘 되지 않았는데, 국제통화기금(IMF)에서는 2020년 미-중간 첨단기술 분야의 교역이 중단되는 ‘기술 디커플링’이 현실화할 경우 시나리오별로 주요국 경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추정했다. 대상 국가는 미-중과 한국, 일본, 유럽, 인도 등 6개국이다. 시나리오는 미-중간 디커플링, OECD-중국간 디커플링을 상정하고, 각 나라는 같은 블록 내에서만 교역을 하는 경우와 두 블록 모두 교역이 가능한 경우 두 가지로 구분해 추정했다. 

그 결과 미-중간 디커플링이 이뤄지고 같은 블록에서만 교역이 허용될 경우, 미국과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감소율이 각각 3%, 4%가량으로 추정됐다. 그런데 OECD와 중국간 디커플링이 이뤄질 경우에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미국은 감소율이 1%대에 그쳤지만, 중국은 8%에 달했다. 미국은 동맹·우호국과 연합해 중국과 디커플링하는 게 최소 비용으로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셈이다. 바이든 행정부 대중국 전략의 3대 원칙 중 ‘동맹 규합을 통한 협공’이 나오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한국은 미-중간 또는 OECD-중국간 디커플링이 이뤄져도 두 블록과 모두 교역이 허용될 경우에는 GDP가 소폭 증가했다. 한국이 중국을 대체하는 어부지리 효과를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은 블록 내에서만 교역이 허용될 경우에는 한국이 입을 타격이 치명적이다. 미-중간 디커플링 때는 GDP 감소율이 6%로, 조사 대상국 중 피해가 가장 컸다. OECD-중국간 디커플링 때도 감소율이 5%에 달했다. 일본은 두 시나리오 모두에서 한국의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피해를 입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도는 미-중 디커플링 때에는 -1%였지만, OECD-중국 디커플링 때는 0%였다. 이는 한국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일본, 인도에 견줘 매우 높은 데서 기인하는 현상이다. 이런 예측은 미-중 패권 다툼을 대하는 안목과 태도에 중요한 실마리를 던져준다.

사진:셔터스톡

 

한국 ‘칩4동맹’ 참여는 불가피할 듯, 우리 몫 보장받아야

정재권 : 당장 반도체의 경우, 지난 9월28일 미국이 주도하고 일본, 대만, 한국이 참여하는 반도체 공급망 관련 협의체인 ‘칩4동맹’의 첫 예비회의가 개최됐다. 한국은 중국을 의식해 동맹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작업반’(working group)이라는 용어를 쓰고, 향후 본회의 참여 여부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운신의 폭은 넓지 않다. ‘칩4동맹’에는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박현 : 우선 ‘칩4동맹’이라는 명칭 자체가 맞는지 한번 따져볼 필요가 있다. 국내의 한 언론이 처음 이런 표현을 사용하면서 국내에서는 이렇게 굳어졌는데, 미국에선 ‘팹4’(fab4)라는 표현을 쓴다. 여기서 팹은 반도체 제조공장을 일컫는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 제조에 차질이 생겨 최근 1~2년간 반도체 공급난을 겪은 만큼 이를 안정화시키려는 목적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최근 미-중 관계를 감안하면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칩4동맹이라는 표현은 미국의 의도를 일정 정도 드러내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런 점은 주의해야 한다. 칩4동맹이라고 하면 미국을 중심으로 한국, 일본, 대만 등 4개국이 동맹을 맺어 반도체 전 공정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것처럼 비치는데 이건 가능하지 않다. 일단 반도체와 관련한 네 나라의 이해관계가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다. 삼성전자와 대만 TSMC는 제조의 맞수다. 두 회사가 동맹을 맺을 수는 없다. 한-일 관계에서도 일본은 아직도 한국에 대해 반도체 3대 소재의 수출 규제를 풀지 않고 있다. 

다만 한국을 제외한 3개 국 사이에선 공조를 할 여지가 많다. 미국은 반도체 제조공장의 유치 및 자국 반도체 제조업체의 부흥을, 일본도 잃어버린 반도체 제조 왕국의 부활을 꿈꾼다. 대만은 중국으로부터 직접적인 안보 위협을 받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도움이 간절하고, 소재가 강한 일본과도 협력하고 싶어 한다. 실제로 세 나라는 첫 예비회의가 열리기 전부터 공조 논의를 해왔다고 한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우리도 이 회의체에 참여하는 게 불가피하다.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미국의 기술과 장비가 없으면 생존을 보장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떤 형태로든 미국에 협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시장은 중국에 의존한다. 현재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의 약 60%가 중국(홍콩 포함)으로 향한다. 이 시장을 잃을 수는 없다. 그래서 칩4에 참여해서 미국에 협조하되, 중국 시장에 대한 접근권을 확실하게 보장받아야 한다. 

이번에 미국이 대중국 반도체 제조 장비 수출통제를 삼성전자와 에스케이하이닉스에 1년간 유예해줬는데 이런 식으로는 곤란하다. 국내 일부 관료는 미국이 우리를 배려했다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 미국도 자국에 공급 차질이 생길까 봐 그런 결정을 내린 측면이 크다고 본다. 또한 1년 유예가 끝난 뒤에는 그럼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얘기가 없다. 기업은 이런 불확실성을 제일 싫어한다. 이런 식이라면 우리 기업들의 대중국 사업은 큰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다. 우리 정부가 이런 부분에서 미국 정부로부터 양보를 확실하게 얻어내야 한다.

정재권 : 미중 ‘패권 경쟁’은 그렇다면 우리에게 위기로만 작용하는 것인가? 기회의 측면은 없는가?

박현 : 기회의 측면이 분명히 있다. 중국은 지금 제조업 분야에서는 이미 한국을 따라잡았고, 첨단산업 분야에서는 일부를 빼놓고는 거의 따라잡았다. 메모리반도체도 미국의 대중국 기술 수출통제가 없었다면 아마도 얼마 안 있어 따라잡힐 가능성이 있었다. 미국의 대중국 견제가 우리에겐 시간을 벌어준 셈이다. 우리는 미국과의 기술협력을 통해 계속 원천 기술에 접근할 수 있지만, 중국은 미국의 제재로 기술 접근에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반도체, 배터리 같은 분야는 세계시장에서 더 확고한 입지를 다질 수 있다. 중국에 뒤처져 있는 인공지능, 클라우드, 빅데이터, 항공우주, 양자기술 등에서도 추격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행운의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 우리에겐 ‘신조선책략’이 필요하다

정재권 :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특히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산업에서 미·중이 무시하지 못할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 이런 존재감을 바탕으로 G2의 경쟁 구도 속에서 어떤 생존·발전 전략을 세워야 하나?

박현 :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만나는 전략적 요충지인 한반도는 숙명적으로 강대국의 각축장일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구한말 상황과 비슷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당시와 지금은 천지개벽이라고 말해도 될 만큼 상황이 다르다는 점을 인식해야 올바른 해법을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당시엔 우리가 힘이 없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산업에서 미·중도 무시하지 못할 레버리지를 갖고 있다. 세계 최강국 미국의 대통령이 한국에 있는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기술협력을 요청한 것은 우리가 지금껏 보지 못한 장면이다. 미국의 ‘칩4’ 추진에 대해 중국이 한국에 ‘중재자’ 역할을 주문하는 기류도 보기 드문 장면이다.

1880년 청나라 외교관 황쭌셴(黃遵憲)은 <조선책략>(朝鮮策略)에서 쇄국정책을 펴고 있던 조선에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선 ‘중국과 친하고, 일본과 맺고, 미국과 연계’(親中結日聯美)함으로써 자강을 도모할 것을 권고했다. 강대국 간에 힘의 균형을 만들라는 얘기였다. 아무리 그럴듯한 방도라도 스스로 힘이 없으면 강대국의 희생물로 전락할 수밖에 없음을 그 뒤의 역사는 말해준다. 지금은 미-중 신냉전과 높아진 우리의 위상을 고려한 ‘신조선책략’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때다. 

정재권 : ‘신조선책략’이라니, 흥미롭다.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인가?

박현 : 세 가지를 핵심 축으로 삼아야 한다. 

첫째는 어느 강대국과도 소원해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황쭌셴식으로 표현하자면 ‘연미화중통일’(聯美和中通日) 아닐까? 미국과 연대하고, 중국과 친화하며, 일본과 소통해야 한다. 

둘째, 개방형 통상국가로서 경제와 안보의 분리를 추구하며 미·중 모두에 국제 통상규범 준수를 요구해야 한다. 미-중 충돌 시 중국과의 경제 단절을 우려하는 나라는 우리뿐만이 아니다. 세계 60개 나라가 중국을 최대 무역 파트너로 삼고 있는 게 현실이다. 애플을 비롯한 중국 사업이 많은 미국의 기업, 금융기관들도 중국과의 경제적 단절을 원치 않는다. 독일, 스웨덴, 오스트레일리아 등 중견 강국들, 그리고 미국 기업들과 연대해 미-중의 완충 역할을 해야 한다. 미-중 경제를 디커플링(분리)할 게 아니라 경제 이슈들을 민감한 안보 이슈들과 디커플링해야 한다.

셋째, 우리가 동아시아 평화질서 구축의 주도자로 나서야 한다. 냉전 시기 유럽 국가들이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를 창설해 냉전적 대결을 완화하고 공존을 달성했던 것처럼, 동아시아판 안보협력기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대만해협 위기 같은 미-중간 첨예한 갈등이 빚어질 경우 우리나라도 연루될 위험이 있는 만큼 지역 안보협력체를 통해 최악의 사태로 비화하는 걸 막아야 한다.

정재권 : 미-중의 기술패권 전쟁에 관심을 갖고 책까지 쓰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박현 : 현재 미-중 패권 경쟁은 경제, 외교, 군사, 이데올로기 등 거의 전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 ‘기술’까지 추가된다. 우리나라에 경제, 외교, 군사, 기술 등 각 분야의 전문가는 많은데 그 전체를 아울러서 보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미-중 패권 경쟁과 관련한 신문 보도나 글들에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운 좋게도 저는 경제와 외교, 군사, 기술 등을 어떤 식으로든 접해본 경험이 있다. 

미-중 기술패권 경쟁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13년 오바마-시진핑의 첫 정상회담 취재가 계기가 됐다. 당시 두 정상은 공식 석상에선 ‘신형 대국관계’를 함께 만들어가자고 했으나, 이면에선 미국의 첨단무기, 첨단산업 기술에 대한 중국의 해킹 문제가 뜨거운 쟁점이었다. 그렇게 보면 이 이슈에 관심을 가진 게 거의 10년이 된 셈이다.

애초에 책을 낼 생각으로 글을 쓴 건 아니었다. 지난해 <한겨레>에 ‘G2 기술패권’을 주제로 한 연재를 올해 6월까지 20차례 했는데, 이 연재물이 출간의 밑바탕이 됐다.

정재권 : 책의 주제가 ‘기술’이긴 하나, 그 구체적인 영역은 매우 넓다. 다양한 영역에서 중요한 흐름을 확인하고, 정보를 모으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박현 : 기본적인 뉴스 흐름은 국내외 주요 언론을 통해 파악한다. 외국 언론의 보도는 국내에 축약 형태로 보도되는데, 원문을 꼭 확인한다. 정확한 내용을 확인하려는 생각도 있으나 해당 보도의 원래 소스와 추가적인 취재 경로 등의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체적인 이슈와 관련한 심층적 분석과 관점 정립에는 주요 싱크탱크를 활용했다. 미국은 수백 개의 싱크탱크가 활동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정통한 전문가들의 글을 주로 참조했다. 외교·안보 분야는 브루킹스연구소와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경제 분야는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기술은 정보기술혁신재단(ITIF) 등이 대표적이다. 영국과 독일, 오스트레일리아의 연구소들도 도움이 많이 됐다. 영역이 워낙 다양해 일일이 나열할 수는 없으나, 중요한 자료의 소스는 책에 밝혀놓았다. 필요한 분들은 참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책을 쓴 박현은
<한겨레>의 저널리스트다. 이 신문에서 국제부장, 경제부장, 부국장을 지내고 현재는 논설위원으로 경제·국제 관련 사설과 칼럼을 쓰고 있다. 워싱턴 특파원 시절인 2013년 오바마-시진핑 정상회담을 취재하며 미-중 관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10년 가까이 이 이슈를 추적해 왔다. 서울대 서어서문학과를 졸업하고 서강대 경제대학원(기술경제학)과 영국 웨스트민스터대(커뮤니케이션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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