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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준 칼럼] 미국 ‘2022 국가안보전략’과 반도체 전쟁

By | 2022년 10월 17일 | 국제, 미래, 미분류, 산업

예상대로 경쟁 상대는 중국이었다. 그런데 경쟁 무대는 기술. 미국 조 바이든 정부는 20211월 출범한 이후 110개월 만에 처음 내놓은 <국가안보전략>을 통해 중국과의 첨단 기술패권 전쟁을 최우선 외교·안보 과제로 천명했다.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중국과의 기술 격차를 벌려 글로벌 패권을 잃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 의지를 과시라도 하듯, 미국은 최전선인 반도체에서 무차별적으로 중국 옥죄기를 강화하고 있다. 그동안 미국이 주도해 온 자유무역, 제조업의 글로벌 분업 체계 등의 국제 경제 질서와는 상반된 흐름이다. 미국은 왜 이렇게 기술패권에, 특히 반도체에 집착하는 것일까? [편집자 주]

✔ 미국 정부 국가안보전략애서 중국과의 기술 경쟁 천명
✔ ASML 미국 사업부 ‘중국서 직원 철수’ 결정
✔ 장비, 엔지니어 차단으로 중국의 리버스 엔지니어링까지 어렵게 해
✔ 중국 반도체를 저부가가치 산업으로 남게 하려는 미국의 속내

사진:셔터스톡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의 백악관은 지난 10월12일(현지시각)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을 새로 발표했다. 48쪽의 보고서에 담긴 이 전략은 애초 올해 1월에 발표될 예정이었으나,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면서 전략이 수정돼 발표가 늦어졌다.

중국과의 경쟁 무대는 기술, 무역과 경제는 후순위

보고서에서 미국이 주요 외교·안보 이슈로 가장 중시한 것은 중국을 미국에 대한 최대 경쟁 상대로 규정한 대목이다. 특히 미국이 생각하는 중국과의 경쟁 무대는 기술이라는 점을 천명했고, 이와 동시에 무역과 경제에 대한 고려는 그 순위가 뒤로 밀렸다. 이를 위해 미국은 자국을 중심으로 쿼드(QUAD)나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같은 다자간 경제·안보 기구를 통하여 중국의 딥테크 산업에 대한 제어를 주요 전략으로 채용할 것임을 명시했다.

미국의 전략에서도 드러나듯, 현재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반도체 산업에서의 미-중 패권 경쟁은 앞으로 기술이라는 무대 위에서 전개될 패권 경쟁, 나아가 기술 패권 전쟁의 신호탄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많은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기술 패권 경쟁이 글로벌 경기 둔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과 경고를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 정부는 전 세계 반도체 무역과 공급망 붕괴, 그로 인한 비용의 상승, 그리고 기술 발전 흐름에 지장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그것보다 더 우선시되는 것이 중국과의 격차, 특히 기술 격차의 확대임을 강조한다. 

미국 입장에서는 기술 패권 경쟁으로 인해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의 상실이나 자국 반도체 업체들의 수익률 악화라는 경제적 손해가 생길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력 격차 확대가 그 손해보다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속내는 무엇일까? 이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국의 국익을 위하는 것은 지금까지 상식처럼 통용돼 왔던 자유무역과 잘 조직된 첨단 제조업 분업 체계가 아닌, 기술 주권의 보호와 차세대 기술에서의 패권의 강화라는 것을 의미한다. 기술 패권의 강화가 설사 구시대적인 보호무역주의로 흐르고, 소수의 주요 기술 강국들만 참여하는 다자간 경제·안보 블록 형성, 그리고 산업 블록 안에서의 기술 장벽으로 인한 제2의 냉전 시대 돌입, 그로 인한 글로벌 경제의 성장률 둔화로 이어지게 되더라도, 그것을 감수하겠다는, 감내할 수밖에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는 더 나아가 미국의 정책 방향이 단지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반도체 산업에 대한 패권 경쟁에만 집중되지 않고, 앞으로 차세대 배터리, 자율주행차, 항공우주산업, 바이오메디컬 산업, 양자 ICT 산업 등으로 점차 확장될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미국 정부는 중국의 반도체 자립화, 반도체 산업 확대, 반도체 기술력 강화에 대한 모든 지점에 대해 포석을 정교하게 놓는 것처럼 차례차례 제재 조치를 취하고 있다.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제재는 핵심 공정 장비, 설계 자산, GPU 등을 포함하여 전방위적으로 확대되고 있고, 여기에 더해 최근엔 기술 격차를 보다 벌릴 수 있는 제재 조치가 새롭게 시행되었다. 그것은 바로 반도체 제조 혹은 검사 장비의 도입과 유지 보수, 그리고 ‘트러블 슈팅’(trouble shooting)에 대한 부분이다. 트러블 슈팅은 작업 진행 중에 프로세서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것을 진단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말한다. 최근 이와 관련한 상징적인 ‘이벤트’가 있었다.

미국 “ASML은 중국에서 직원을 빼라”

위의 이미지는 네덜란드 ASML의 미국 사업부가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의 캡쳐 화면이다. 이 이메일 메시지에서 볼 수 있듯, ASML은 최근 발표된 미국 상무부의 대중 반도체 공정 장비 제재 정책에 따라, 중국 현지 팹에 파견된 모든 자사 직원들의 철수를 결정했다. 물론 여기에는 각 팹에서 일하고 있던 ASML의 엔지니어들도 포함되는 조치다. 

이 조치를 통해 매뉴얼만으로는 커버할 수 없었던 엔지니어의 경험과 노하우의 공급이 중단되었다. 특히 EUV는 물론, DUV 리소그래피에 여전히 크게 의존하고 있는 중국의 파운드리와 메모리반도체 업체들은 공정 트러블 슈팅 과정에서 더 큰 비용과 생산 일정 지연을 겪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EUV는 물론, DUV 같은 레거시 리소그래피 장비 역시 ASML의 점유율이 확고부동한 1위이며, 중국 입장에서는 이 장비들을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전무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제재 조치는 사실상 ASML의 리소그래피 장비 수입은 물론, 이미 중국이 도입하여 제조 현장에서 활용하고 있는 리소그래피 장비의 유지-보수-업그레이드의 전면 차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중국 반도체 회사들이 활용할 수 있는 ASML사의 리소그래피 활용 연한의 연장 가능성도 덩달아 축소되었다.

ASML은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반도체 장비 기업으로,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는 리소그래피 장비의 전 세계 1인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ASML은 EUV 리소그래피가 본격적으로 반도체 제조업에 투입되기 전부터 이미 DUV 리소그래피 시장에서도 최강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DUV 리소그래피가 EUV에게 왕좌를 내어 주는 상황이 되었지만, 지난 7월 중국의 대표적인 파운드리 업체인 SMIC가 7nm 공정을 DUV + SAQP(멀티패터닝)를 이용하여 달성한 사례에서도 보듯, 여전히 현역으로 활용되는 고급 장비이다. 보급 대수 역시, 현재 전 세계적으로 보급된 EUV 장비는 160여 대 정도이지만, 현역에서 쓰이고 있는 DUV는 이의 8~10배에 달한다. 여전히 레거시 선단 공정에서는 DUV 리소그래피 장비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현재 기술 경쟁이 극심해지고 있는 5나노급 이하 공정에서만, TSMC와 삼성의 파운드리 분야에서만 EUV 확보 쟁탈전과 수율 경쟁이 격화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EUV 리소그래피가 파운드리 시장은 물론 메모리반도체와 시스템반도체를 아우르는 첨단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의 대세가 될 것임은 확실하다. 그렇지만 아직 그 시점까지는 시간이 다소 남아 있는 상황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미국의 조치는 중국에게 허용된 이 약간의 여유마저도 소거하려는 뜻이 담겨 있다.

9월 들어 대중 반도체 기술 및 무역 제재 기조를 더욱 강화하고 있는 미 상무부는 최근 필자가 예상했던 방향과 절차를 따라가기라도 하듯, 중국에서 생산되는 반도체 공정의 요소요소를 하나씩 혈을 짚어가는 추세다. EUV 리소그래피 장비는 물론, 18nm급 선단 공정용 장비들에 대해서도 광범위한 제재에 돌입했다. 이는 미국의 Applied Materials(AMAT)나 LAM research(LAM) 같은 회사들이 점점 중국에 대한 시장을 상실하게 될 수도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AMAT나 LAM과는 달리, ASML은 네덜란드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생산하는 EUV 리소그래피 장비는 물론, 이제 DUV 리소그래피 장비(EUV 리소그래피 이전 장비)도 미국의 제재 정책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미국 회사들은 미국 국내 법을 따라야 하므로 미국 정부의 정책이 통한다고 하더라도, 왜 네덜란드 회사로까지 이 정책의 영향이 미칠 수 있는 것일까? 

사실 ASML이 생산하는 EUV 리소그래피 장비에는 분류 기준에 따라 적게는 6,000여 개에서 많게는 15,000개까지의 부품이 들어간다. 이러한 부품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품들은 정밀 광학계와 반사경, 그리고 EUV(13.8nm의 파장) 광원 생성 및 안정화 장치, CO2 레이저 발생 장치 등이다. 그리고 장비가 정확하게 제어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스테이지 역시 중요한 요소를 차지한다. 이 중에서 스테이지는 미국 동부 코네티컷주에 위치한 공장에서, 광원 관련 기술은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의 샌디에이고에 위치한 R&D 센터에서 연구되거나 생산된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리소그래피 스캐너 전체를 굳이 통제하지 않더라도, 이 광원과 스테이지에 관련된 기술 IP 사용이나 해외 반출에 대한 부분만 통제해도 사실상 리소그래피로서의 기능이 온전히 발휘될 수 없게끔 통제할 수 있게 된다. 이 때문에 ASML의 리소그래피 장비는 미국 회사가 생산하는 장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미 정부 정책의 영향을 받아 대중국 기술 통제 품목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ASML의 리소그래피 장비, 미국 장비 회사들의 각종 공정 장비의 수입은 물론, 그것의 유지, 보수, 그리고 업그레이드까지 미국이 중국을 통제한다는 것은 기술 격차를 더 벌리겠다는 의지의 발로다.

‘리버스 엔지니어링’까지 어렵게 하려는 미국

보통 첨단 산업 분야에서 후발 업체들이 선두 업체들을 따라잡고 싶을 때 리버스 엔지니어링(reverse engineering)이라는 전략을 취하기도 한다. 자동차를 예를 들면 경쟁 업체의 신차를 구입하여 완전히 분해한 후, 각 부품들의 스펙과 쓰임새, 성능을 확인한 다음 다시 조립해 가면서 복제도 해 보고, 개선도 해 보고, 특허 침해 가능성도 피해 가는 전략을 수립한다. 

그런데 반도체 장비에서는 이 리버스 엔지니어링이 쉽지 않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ASML의 리소그래피 장비 역시 중국에서 분해도 할 수 있고, 재조립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재조립 이후에 예전 같은 스펙의 성능을 재현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중국 입장에서는 이가 없이 잇몸으로 버티는 상황이므로, 그나마 DUV 리소그래피 장비까지는 이미 중국에 들어와 있는 중고 장비를 개조하면서 버틸 수 있다. 

실제로 이제 쓰임새가 다 된 중고 ASML DUV 리소그래피 장비를 모아서 재활용(사실상 마개조)하는 사업체가 중국에서 속속 생기고 있는데, 이러한 사업체들에서도 장비를 재활용하기보다는 마개조에 초점을 맞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했을 경우 장비의 성능이 동일하게 재현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장비의 핵심 소모품 공급이 미국의 대중 제재 조치로 어려워지면서 장비 개조업체들은 중국산 부품을 대체품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는데, 간신히 작동은 되게 만들었지만 기기 자체의 수명은 단축되었고, 특히나 장비 성능은 오리지널 제품에 미치지 못하게 되었다. 

DUV 장비 개조 사업도 난항을 겪고 있지만, EUV 리소그래피 이후부터는 더더욱 답이 없는 상황이다. 중국 내에서 확보할 수 있는 EUV는 1세대 EUV 시제품 1~2대 정도 외에는 없으며, 그나마도 시제품에 가까운 성격이기 때문에 성능이 현재 활용되는 제품에 미치지 못한다. 또한 EUV 장비는 DUV 장비보다 훨씬 더 많은 광학계와 부품이 채용되고 있는데,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중국제 부품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반도체 산업에 있어서 장비의 수입만큼이나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장비의 유지, 보수, 그리고 업그레이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는 장비 엔지니어의 노하우가 중요하다. 반도체 생산 장비는 어떤 공정인지에 따라 다르지만, 생각보다 세심한 관리가 필수적이며 사소한 에러에도 취약성을 가지고 있다. 습도나 공기 중 먼지 농도가 조금만 변해도 성능이 변할 수 있으며, 심지어 같은 장비임에도 오퍼레이터에 따라 샘플의 데이터가 달라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장비 회사의 엔지니어들은 이러한 장비 성능 변동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다양한 기술 지원을 한다. 되도록 사람이 관여하지 않아도 되는 영역을 늘려 놓고, 사람이 관여해야 하는 영역도 최대한 시스템의 지원 아래서 이뤄지도록 기술의 흐름을 만들어 놓는다. 고객사의 요구에 대해 맞춤형으로 장비의 개조가 이뤄지기도 하는데, 개조가 되는 시점부터 에러 취약성이 생기기도 하는 까닭에, 사실 장비 회사의 엔지니어들은 원래의 소속만 장비 회사일 뿐, 주로 일을 하는 곳은 고객사가 되다시피 한다. 그래서 겉으로 보면 이 사람이 ASML 직원인지, 삼성전자 직원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다. 

실제로 TSMC나 삼성전자의 사업장 주변에 가면 이들의 협력사가 꽤 많이 포진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부품, 소재, 설계 IP, 그리고 장비 회사들이 바로 이러한 협력사들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이른바 팹 라인 한 개를 신설할 경우, 각종 장비가 1,000~1,500대 투입된다. 하지만 이러한 장비가 투입되어 설치된다고 해서 바로 작동되는 것은 아니다. 설치 후에도 샘플이 제대로 나오는지 반복해서 테스트하고, 고객사에서 그 장비를 운용할 오퍼레이터들, 테크니션들을 끊임없이 교육해야 한다. 기술적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해줄 수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이 때문에 장비 회사 엔지니어들은 본사가 아닌, 고객사 근처에 자리를 잡고 언제든 현장에 투입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장비는 물론, 엔지니어 노하우도 차단한다

엔지니어가 지닌 노하우의 활용은 반도체 공정 분야에서는 매뉴얼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과거 한국의 반도체 회사 엔지니어들은 당시 선진 업체들이었던 미국이나 일본의 반도체 회사에 파견되어 기술을 배우고 공정의 흐름을 눈대중으로라도 익히고 와서 다시 공정 장비 매뉴얼과 비교하면서 그것을 그대로 따라 하는 방식으로 기술을 익혔다. 사실 매뉴얼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보강하기 위해 엔지니어들을 갈아 넣다시피 하여 퍼즐 맞추듯 샘플을 재현하고 장비의 진공도나 압력, 에칭 가스의 농도나 조성 같은 각종 공정 파라미터들의 미세 조정 정보를 몸으로 체득했다. 이런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각 회사의 공정에 적합한 조건을 맞춰 가기도 했다. 

현재도 이러한 경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과거에 비해 장비 운용과 유지 보수는 꽤 많이 자동화되었고, 예측가능한 범위도 넓어졌지만, 여전히 중요한 단계에서는 엔지니어의 경험과 감각이 중요하다. 문제의 해결은 장비 엔지니어와 고객사의 엔지니어가 계속 머리를 맞대며 트러블 슈팅을 하는 방식으로만 가능한 일이다. 

미국은 중국에 대한 반도체 제재를 다방면으로 이어가고 있는 와중에, 이런 인적 노하우의 유입 차단까지 놓치지 않고 있다. ASML 미국 지사의 이메일은 그런 단적인 사례일 뿐이다. 중국 반도체 현장에서 쓰이고 있는 미국산, 일본산, 네덜란드산 장비들의 운용 과정에서 트러블 슈팅에 대응할 수 있는 인력들이 빠져나가면 장비가 하나둘씩 멈추고 에러를 낼 때마다 생산 일정이 지연되고 품질이 저하된다. 비용은 상승하고, 결국 수율의 저하로 인해 원가 경쟁력이 저하된다. 

중국, 더 갑갑해졌다

중국 입장에서는 그래서 이러한 미국의 제재 조치가 더 갑갑하게 다가올 것이다. 특히 반도체 제조업의 특성상, 장비의 수명은 비교적 짧다. 보통 라인에 설치돼 4~5년 정도 활용하면 오래 쓰는 셈인데, 그만큼 장비의 감가상각률은 높다. 문제는 감가상각률이 높은 만큼 유지·보수를 위한 부품 공급이 안정화돼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장비 공급사의 고유한 서비스 영역에 해당한다. 미국은 미국 장비 회사의 이러한 서비스마저도 금수조치를 걸고 있다. 부품을 확보해도 테스트할 엔지니어가 지원되지 않으며, 그나마도 이제는 부품도 구하기 어려워진 셈이다. 이는 기존의 경향보다 장비의 감가상각률이 더 높아질 것임을 의미하며, 이는 반도체 제조 현장에서의 시간 지연, 비용 상승, 수율 악화, 생산량 저하, 시장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미국 정부가 이렇게 더 구체적인 조치를 더 넓은 범위에서 더 깊은 포인트까지 집요하게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는 중국 반도체 산업 자체를 죽이려는 목적보다는 중국 반도체 산업이 필수적으로 추구할 수밖에 없는 기술의 예봉을 꺾기 위해서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미국의 전략보고서에서도 강조되었듯, 미국의 의도는 미-중 사이의 반도체 기술 격차를 현재 수준보다 더 확대하려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중국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하나씩 지우려는 것이다. 

파운드리 뿐만 아니라, YMTC나 창신궈지 같은 중국의 메모리반도체 회사들이 추구하는 3D 낸드 플래시 혹은 DDR5 같은 DRAM에서의 선단 공정 개선 역시 이번 미국의 조치로 인해 하나씩 막히게 되었다. 3D 낸드 플래시에서는 선단 공정 뿐만 아니라 패키징 공정 같은 후공정 기술도 결국 막히게 될 것이고, DRAM에서는 선단 공정만 통제해도 중국 메모리반도체 회사들의 기술 성장은 이제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된다. 물론 기술이 당장 더 발전하지 않더라도 지금 생산할 수 있는 제품은 여전히 중국 내 시장에서는 많이 팔리고, 일부는 수출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기술 혁신 속도가 빠르고 신규 장비에 대한 기술 혁신 의존도가 높다는 반도체 산업의 특징을 고려하건대, 이렇게 당장의 기술 기반 생산에만 의존하게 되는 중국 반도체 산업은 점점 채산성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즉, 점점 저부가가치 칩을 생산하는 쪽으로 쇠퇴할 수밖에 없게 되는 셈이다.

미국 속내는 중국 반도체를 저부가가치 산업에 머물게 하는 것

이는 미국 정부가 정확하게 원하고 계획하는 지점이다. 중국이 그동안 추구해 온 반도체 산업 성장 공식은 비교적 단순하다. 처음에는 저부가가치(즉 기술 진입 장벽이 낮은) 반도체 산업에 진출한다. 그리고 그 산업을 성장시키면서 중국 내부의 수요에 대응하며 자본을 축적한다. 그 자본을 기반으로 더 높은 부가가치 분야로 진출한다. 고부가가치 반도체 산업일수록 기술 확보는 물론, 장비 확보 면에서도 더 집중적인 자본 동원이 필요한데, 그 자본은 그 이전 단계에서 확보된 것을 이용하는 셈이다. 중국은 이러한 성장 공식과 더불어 정부의 집중적인 지원책, 그리고 해외 선두 업체들로부터의 인력 유입을 통해 자국의 반도체 산업을 짧은 시간 안에 글로벌 수준에 근접시키는 데 성공했다. 

만약 미국의 제재가 없었다면 반도체 산업의 각 분야에서 글로벌 탑에 등극하게 되는 업체들이 나오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을 것이다. 미국의 제재는 바로 이 시점에 작용하게 됐고, 그 조치들은 중국의 반도체 산업을 다시 저부가가치 산업에 머물게 만드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미국은 중국 반도체 회사들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에 제동을 걸고, 기술 확보 경로를 차단함과 동시에 기술 개발을 위한 자금줄 말리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됐다. 

1980년대 중반의 미-일 반도체 협정이 다소 인위적으로(즉, 주로 미국의 입장만 대변하여) 양국 내에서의 상호간 반도체 시장 점유율에 대한 쿼터 설정과 정부 개입의 범위 제어에 초점을 맞췄다면, 2020년대의 미-중 반도체 산업 경쟁은 이러한 협정 서류 한 장 없이, 미국이 일본에게 했던 방식보다 더 혹독하고 집중적으로 작동하게 된 셈이다. 어찌 보면 중국 입장에서는 제2의 미-일 반도체협정 같은 것인데, 문제는 협정의 제약 조건이 훨씬 더 강력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현재의 미국은 중국과 그나마 이러한 협정을 맺을 의향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중국의 20차 당대회가 궁금하다

중국이 이에 대해 중장기적으로 어떠한 국가적 시책을 준비할 것인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다만 이제 막 시작한 중국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연임이 확정되고 나면, 미국의 반도체 기술 제재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 정부가 생각하는 밑그림을 확인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중국의 20차 당대회회의(사진:연합뉴스)

이와 별개로 미국의 의지가 글로벌 시장의 보호나 수익률 등에 맞춰진 것이 아니라 기술 주권, 안보적 차원에서의 기술력 격차 확대, 도전자의 도전 기회 배제, 패권 강화 방향으로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는 것은 한국도 초미의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문제다. 미국은 한국 업체들에 대한 편의 봐주기나 한국 업체들이 중국 시장 상실로 인해 겪게 될 수익 약화 혹은 사업 전망 불투명성 등은 별로 중요한 요소로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한국의 주요 반도체 업체들, 그리고 한국 정부의 산업 정책이 미국의 방향과 일치하고 있는지, 그럴 의지가 있는지가 미국의 주요 관심사가 될 것이다. 이에 맞춰 생각해 보면 결국 미국이 취할 수 있는 협상 레버리지는 한국 반도체 업체들의 고질적인 아킬레스건인 반도체 장비의 높은 해외 의존도, 설계 자산 의존도, 기술 IP 의존도, 그리고 차세대 반도체 기술 향방 결정 참여 가능성에 놓이게 될 것이다. 

한국의 대응책은 미국의 리쇼어링 정책에 최대한 올라타되 이러한 뿌리 깊은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부분에 대한 불확실성을 해소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 중장기적으로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 공급망 변화로 인한 위험을 인도나 동남아 시장 개척 등으로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 그리고 중국 현지에 진출한 사업체들의 안전한 철수 전략을 마련하는 것 등이 되어야 할 것이다. 중국 당대회 이후, 중국이 취할 수 있는 대응책의 방향과 의미, 그리고 미-중 전쟁에 대한 한국의 응수 전략에 관심이 쏠린다.


글쓴이 권석준은
서울대 공대 화학생물공학부에서 학사, 석사 과정을 마치고 MIT 화학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첨단소재기술연구본부 책임연구원을 지냈고 차세대 반도체 소재 및 광(光) 컴퓨터, 양자 컴퓨터 등의 차세대 IT소자 원천 기술 등을 연구 중이다. 현재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지금까지 60여 편의 논문을 해외 저명 학술지에 게재했다. 최근에 한중일 반도체 산업에 관한 저서 <반도체 삼국지>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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