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의 문이 다시 열리면서 새로운 트렌드가 세 가지 잡히고 있다. 한번 가면 하루라도 더 오래 머무를 것, 모처럼 나갈 거면 이색적인 데를 갈 것. 돈을 아끼느라 너무 애쓰지 말 것. 기자에서 여행감독으로 변신한 고재열 필자가 지난달 이탈리아 돌로미테를 다녀왔다. 세 가지 트렌드를 다 충족시키는 여행지 같다. 최고봉의 높이가 3,343m인 돌로미테는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고 감독은 특히 이번 여행에서 ‘비아 페라타’(Via Ferrata, 철로 만든 길)라는 방식을 통해 돌로미테의 2개 봉우리를 수직으로 오르는 색다른 경험을 했다. 그는 비아 페라타를 ‘첫 키스의 날카로움’에 비유했다. [편집자 주]

✔ 수직, 수평, 사선. 등산의 각도는 산에서의 계급
✔ 비아 페라타 덕에 아마추어 수직 등산이 가능한 돌로미테
✔ 1차대전 중 설치한 철의 길 비아 페라타 덕에 수직등반 가능
✔ 도로와 곤돌라, 케이블카로 거미줄처럼 연결된 돌로미테
✔ 수직의 비아 페라타 체험은 신계로 들어서는 듯한 경험

 

 

 

산을 걸을 때는 세 가지 방식이 있다. 수직과 수평과 사선. 우리가 통상적으로 하는 등산은 사선이다. 산을 비스듬히 혹은 가파르게 올라간다. 둘레길을 걷는 트레킹은 수평이다. 그리고 암벽을 오르는 수직이 있다. 사선과 수평이 아마추어의 영역이라면 수직은 프로페셔널의 영역이다. 그렇게 등산의 각도가 산에서 반상을 가른다. 

등산의 각도가 반상을 가른다

일반인들이 하는 히말라야 트레킹은 대부분 베이스캠프에서 끝이 난다. 안나푸르나를 바라보고 걷는 ‘ABC 트레킹’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가, 에베레스트를 향해 걷는 ‘EBC 트레킹’은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가 트레킹의 종말점이다. 그런데 전문 산악인들에게는 베이스캠프가 정상 등정을 향한 출발점이다. 종말점이 출발점이 되느냐를 가르는 기준, 그것이 바로 암벽 등반 능력이다. 

히말라야의 8000m 고봉 8개를 무산소 등정한 산악인 박정헌 대장과 히말라야 트레킹을 한 적이 있다. 당시 박 대장이 만년설로 둘러싸인 봉우리들을 가르치며 “저 봉우리에서 영석이 형이 죽었고, 저 봉우리에서 미영이 누나가 죽었고, 저 봉우리에서 내 손가락 8개를 잃었다”라고 말했을 때 마치 인간계에서 신계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베이스캠프 위는 내게 인간의 영역이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돌로미테는 특별하다. 수직의 산을 모르는, 오직 수평과 사선의 산만 알아 왔던 아마추어들이 수직의 산을 탐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비아 페라타’(Via Ferrata)의 존재다. ‘철로 만든 길’을 뜻하는 비아 페라타는 클라이밍(암벽 등반)과 다르게 전문 산악인이 아닌 일반인이 가파른 암벽에 오를 수 있도록 해주는 등산로 혹은 등반 기술을 말한다.

[smartslider3 slider="7"] 돌로미테 풍경. 사진 속의 화살표를 클릭하면 더 많은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비아 페라타, 날카로운 첫 키스의 기억

비아 페라타의 경험은 첫 키스의 기억처럼 날카로웠다. 가파른 암벽에 굵은 와이어를 고정시켜 놓고 Y자형 고정줄의 카라비너(등반용 고리) 두 개를 번갈아 끼워가면서 한 발 한 발 옮기며 벽을 올랐다. 안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네스(등반용 고정벨트)가 단단히 채워졌다는 점, 당황스러웠던 것은 발을 받치는 발판은 따로 설치하지 않았다는 점. 오직 내 발로 치고 올라야 오를 수 있었다. 당황한 일행의 발이 걸리지 않는 바닥을 찾아 허공에서 바둥거렸다.

지나고 나니 유쾌한 산악 사기극이었다. 사기극의 주모자는 원로 산악인 임덕용, 백승기 선생. 잘 짜여진 산악드라마처럼 그들은 용의주도하게 우리 일행을 수직의 세계로 안내했다. 첫 비아 페라타를 경험한 뒤, 앞으로 일정 동안 두 번 더 하게 된다는 얘기를 들은 일행은 일제히 일정표를 들여다 보았다. 그리고 모두들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돌로미테 대자연 산책’ 일정표에는 비아 페라타가 세 번이나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비아 페라타, 아무도 이 다섯 글자에 주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여행을 준비한 임덕용과 백승기는 우리가 빼도 박도 못하도록 일정표에 이 매력적인 ‘어른의 모험’ 아이템을 단단히 박아 놓았다. 산악인들이 비아 페라타를 이용하는 방식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선물 같은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인데, 둘은 우리에게 예상치 못했던 선물을 선사했다. 

1차 세계대전 중에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의 격전지였던 돌로미테에서 전문적인 산악 훈련을 받지 않은 군인들이 암벽에 포대나 저격용 굴을 팔 수 있게 설치한 장치가 바로 비아 페라타다. 수직의 비아 페라타를 오른 일행은 꼭대기에 설치된 십자가에 참배하며 그들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런 슬픔을 뒤로 하고 비아 페라타는 이제 등반가들이 등반의 즐거움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맛보게 해주는 안내자가 되었다.

 

 

이번 여행길에 함께 해주신 베테랑 산악인 백승기(좌), 임덕용(우)

 

‘살아 있는 전설’ 매스너의 겸허함

두 원로 산악인 덕분에 일행은 여행에서 뜻하지 않은 ‘장밋빛 순간’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 순간의 감동을 위해 두 산악인은 두 곳을 밑자락에 깔아두었다. 바로 라인홀트 매스너가 구축한 볼자노의 산악박물관과 이탈리아 스포츠 브랜드 라 스포르티바 본사에서 운영하는 실내암장이 그곳이다(라 스포르티바 매장도 들러서 필요한 장비를 구비하게 했다). 우리는 진정 몰랐다. 그 끝이 비아 페라타 수직 등반이 될 줄은.

볼자노의 고성을 리모델링한 산악박물관에서 가장 이채로웠던 점은 매스너 자신을 감춘 점이었다. 히말라야 14좌로 무산소 등정한 매스너는 말 그대로 산악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모든 산악인은 그에게 경의를 표할 준비가 되어있다. 그런데 그는 고비사막에서 힘겹게 걷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원경으로 찍은 사진 말고는 아무것도 산악사에 끼워 넣지 않았다. 산에서 스러져 간 수많은 이름과 그들이 산에서 지은 아름다운 미소를 옮겨 놓았다. 그 겸허함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산악박물관을 임덕용과 백승기 두 원로 산악인의 안내를 받고 관람하니 감회가 남달랐다. 번갈아 가며 설명하던 둘은 때때로 목이 메인 듯 말이 막히기도,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둘은 입시학원에서 만나 50년 가까이 ‘자일 파트너’로 지내온 사이다. 자일 파트너란 암벽 등반 때 자일을 공유하는 사이로, ‘서로 목숨을 책임지는 사이’라 할 수 있다. 이번 ‘돌로미테 대자연 산책’도 목숨까지 나누는 그들의 끈끈한 인연을 바탕으로 성사될 수 있었다.

두 원로 산악인이 깔았던 두 번째 트랩은 실내암장이었다. 일기가 좋지 않아 예정된 트레킹을 진행할 수 없게 되자 그들은 우리를 카나제이 마을의 실내 암장으로 안내했다. 처음엔 가벼운 마음이었다. ‘하고 싶은 사람만 재미 삼아 해 보라’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둘의 준비는 철저했다. 이탈리아 볼더링 국가대표팀 경력이 있는 베네디따를 우리의 알파인 가이드로 대기해 놓았다. 

안전장치가 충분히 돼 있는 곳에서 최고의 스태프를 둔 상황이라 일행은 가벼운 마음으로 클라이밍에 도전했다. 초급자 코스는 싱겁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수월했다. 손과 발이 의지할 곳이 명확하고, 안전하게 자일로 묶여 있고, 숙련된 알파인 가이드가 지탱해주는 상황이라 일행은 무난하게 정상까지 올랐다. 다들 자기 자신의 숨겨진 능력을 발견하기라도 한 듯 뿌듯해하는 표정이었다. 

중급코스로 가니 상황이 급변했다. 손을 잡을 곳이 마땅치 않았고 발을 디딜 곳도 잘 걸리지 않았다. 앞서 배운 요령은 다들 잊어버린 채 오직 팔힘에 의지한 채로 바둥거렸다. 오기로 끝까지 올랐다가 내려왔는데 근육이 갑자기 긴장했던 탓인지 팔근육이 한참 동안 얼얼했다. 불과 몇 분 동안의 짧은 경험이었는데도 하루 종일 고된 노동을 한 것처럼 근육이 욱신거렸다.  

실내암장의 성취와 한계를 둘 다 경험하고 이틀 후인 9월10일 우리는 첫 번째 비아 페라타 대상인 로델라 봉 앞에 섰다. 사쏘롱고라는 중부 돌로미테 지역의 시그니쳐 산의 아담한 봉우리였다(아담하다는 것은 나중에 멀리서 보면서 깨달은 것이고 그 앞에 섰을 때는 압도적이었다). 약간의 공포와 약간의 흥분으로 거대한 암벽 아래에서 대기했다. 먼저 올라간 이들이 실시간으로 상황을 중계해 주었다.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손으로 잡을 곳이 어딘지 모르겠다’와 ‘발을 디딜 곳이 없다’는 얘기였다. 그렇게 흥분은 줄고 공포는 늘어가고 있을 무렵 내 차례가 되었다. 

가르침 받은 대로 Y자 모양의 카라비너를 하나씩 옮기며(두 개를 한꺼번에 옮기면 위험하다) 발의 힘으로 조금씩 올라섰다. 배운 대로 손은 거들 뿐이었다. 앞장선 일행의 중계 내용과는 다르게 손을 잡을 곳도 발을 디딜 틈도 명확했다. ‘깐떼’라는 수평 구간을 움직일 때 조금 겁이 나기는 했지만 대체로 무난했다. 실내암장을 경험한 덕에 고소에 대한 겁이 줄었던 덕이었다. 

 

 

 
[smartslider3 slider="10"]Y자 카라비너를 착용하는 모습.  

 

하늘로 향한 사다리를 오르다

 

처음에는 손과 발을 바위에 모두 밀착시키느라 사진을 찍을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중간쯤 올랐을 땐 어느 정도 요령도 붙었고 마음의 여유도 찾아서 스마트폰을 들고 주변 풍경을 찍기 시작했다. 수직의 산에서 보는 풍경은 남달랐다. 하늘로 향한 사다리를 오르는 기분이었다. 마라토너들이 느낀다는 ‘러너스 하이’와 비슷한 ‘크라이머스 하이’를 느끼며 기분 좋게 정상에 올랐다. 

무뚝뚝하기만 했던 우리의 알파인 가이드 베네디따가 환한 미소와 함께 인증샷을 찍어주었다. 그렇게 임무를 완수한 베네디따가 다음 팀을 안내하기 위해 산 아래로 내려갔지만 우리는 계속 남아서 정상 완주의 감동을 누렸다. 바위와의 진한 스킨십을 경험하니 나름 산악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계산된 모험’이 끝나자 두 원로 산악인은 왜 일정에 비아 페라타를 세 번이나 넣어 두었는지를 설명했다.

남은 비아 페라타 일정 가운데 동부 돌로미테의 시그니쳐 산인 트레치메 산 옆의 토블린 봉에서 진행한 두 번째 비아 페라타는 아쉽게도 참여하지 못했다. 비아 페라타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이 들러리 선 기분이 들지 않도록 그들과 함께 트레킹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늘 그렇지만 산을 오르는 것보다 사람의 마음을 오르는 것이 더 힘들다. 

 

 

 

[smartslider3 slider="9"]비아 페라타. 비전문가의 수직 등반을 가능하게 하는 철선. 화살표를 클릭하면 더 많은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세 번째 비아 페라타는 9월13일 라가주오이 봉 내부에 뚫린 수직 갱도를 내려오는 것으로 대체했다. 바위산의 내부에 암굴을 뚫어 저격수를 배치하고 포대를 설치했던 봉우리다. 전쟁의 참상을 날것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밖으로 연결된 곳에는 비아 페라타로 이어진 곳도 있었다. 갱도 안팎을 나선형으로 회전하며 내려왔는데 이것 또한 수직의 산을 경험하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수직의 풍경이 펼쳐졌다.  

이처럼 우리가 경험한 돌로미테는 수직이었다. 돌로미테의 진정한 매력을 느끼려면 수평이 아니라 수직의 산을 경험해야 하고, 비아 페라타는 아마추어들에게도 이를 가능하게 해준다. 그런데 돌로미테를 찾는 한국의 트레커들은 오직 수평으로 가로지를 뿐이다. 돌로미테 여행 상품은 대부분 알타비아(하늘길) 1코스를 종주하는 코스로 구성된다. 한국의 여행사들이 히말라야 트레킹처럼 돌로미테 트레킹도 종주 방식으로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히말라야와 돌로미테는 조건이 다르다. 히말라야는 워낙 고산이고 오지라 탈출로가 없어 단일코스를 종주 방식으로 다녀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돌로미테는 수많은 산책로가 도로와 곤돌라, 케이블카로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굳이 한 길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알타비아는 총 12코스가 있는데 산군별로 권장 등산로를 설정한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이나 제주올레처럼 하나로 연결되어 종주하는 길도 아니다.

 

 

[smartslider3 slider="5"]라가주오이 수직 갱도. 

코끼리를 보러 와서 코만 만지고 가서야

 

성취 지향의 한국 트레커들은 알타비아1 종주를 돌로미테의 유일한 여행법처럼 알고 있다. 수직의 돌로미테를 온몸으로 경험할 수 있는 비아 페라타도 그냥 지나칠 뿐이다. 비유하자면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샐러드와 수프와 파스타와 디저트를 생략하고 그냥 메인 요리만 먹는 것이라 할 수 있다. 30년 넘게 돌로미테 지역에서 전문 알파인 가이드로 활동하고 있는 임덕용 선생은 이를 ‘코끼리를 보러 와서 코만 만지고 가는 일’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돌로미테에서 알타비아1을 종주하는 것이 코스 하나를 성취하는 일이라면 수직의 비아 페라타를 경험하는 것은 새로운 차원에 들어서는 일이다. 안나푸르나 트레킹과 에베레스트 트레킹에서 베이스캠프 위로 발걸음을 디뎌보는 일이다. 인간계가 아닌 신계로 들어서는 길이다. 비록 ‘비아 페라타’라는 셰르파의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말이다. 

[smartslider3 slider="6"]동부 돌로미테의 트리치메. 

돌로미테의 주인 티롤인과 만나다

하나 더 중요한 것은 돌로미테의 주인인 ‘티롤인’을 만나기 위해서는 알타비아1이 있는 동부 돌로미테에서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옛 티롤 왕국의 후예인 이들은 이탈리아인도 아니고 오스트리아인도 아닌 ‘티롤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독특한 산악 문화를 일궈냈다. 이들과 만나기 위해서라도 돌로미테는 좀 더 깊숙이 들어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수직의 돌로미테와 만나야 한다. 

비아 페라타를 마치고 카나제이 마을에 내려왔을 때 마을은 가을 맥주축제로 분주했다. 산의 아들딸인 티롤인들 사이로 바이스비어(밀맥주)를 마시면서 티롤의 낭만을 한껏 만끽했다. 산악온천도 지친 우리의 근육을 달래주었다. 노천탕에서는 저 멀리 우리가 수직으로 가로지른 돌로미테의 봉우리들이 보였다. 수직의 돌로미테는 아름다웠다.

 

 

[smartslider3 slider="8"]포르도이 전경. 

 

 


글쓴이 고재열은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고, 20년 동안 <시사저널>과 <시사IN>에서 기자로 일했다. 현재는 ‘어른의 여행’을 디자인하는 여행감독으로, <월간 고재열>이라는 이름으로 여행을 발행하고 있다. ‘사람이 여행이다’는 신념으로 ‘생애 전환 여행’을 고민하고 ‘길 위의 살롱’을 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