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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연 칼럼] 이란 젊은이들 “끝까지 간다”

By | 2022년 10월 7일 | 국제, 미분류, 여성

세계의 눈과 귀가 이란으로 쏠리고 있다. 지난 9월 22살의 젊은 여성이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권력의 폭력에 희생당한 뒤, 이란의 정권교체와 자유, 인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란 전역을 뒤덮고 있다. 그리고 저항과 분노의 물결이 지구촌 전체로 넘쳐흐르고 있다. 시위대에 대한 강경 진압과 그에 대한 저항으로 150명이 넘는 이란인이 숨졌지만, 사태는 계속 이어질 조짐이다. 이란 국민들은 왜 거리로 나섰는가? 이란을 전공한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가 이란 내부와 해외에 있는 이란인 10여 명을 긴급 인터뷰해,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한다. 특히 20~30대 젊은이들의 생각과 결의를 눈여겨보자. 어려운 여건 속에서 인터뷰를 진행한 구 교수와,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인터뷰에 응해준 이란인들에게 감사드린다. 쌀럼(안녕하세요)! [편집자 주]

✔ 히잡 때문에 단속에 걸려 갑작스레 사망한 22세 마흐사 아미니
✔ 용감한 기자 닐루파 하메디의 결단으로 아미니 사건 수면으로 떠올라
✔ 국내외의 이란인들 목숨 걸고 똘똘 뭉쳐 반정부 시위를 벌이는 중
✔ 기본 인권인 자유, 안정된 삶, 그리고 이란의 남성과 여성을 위한 혁명
✔ 이란 사회에 관심 모으고, 인권 탄압에 대한 경계의 시선 거두지 않아야

Illustration: Marco Melgrati

“우리는 희망에 가득 차 있어요! 우리 젊은 세대들은 너무나 큰 희망에 가득 차 있어요. 물론 우리 부모 세대들은 결과에 대해 비관적이지만요. 한 두 달만 있으면 바뀔 것 같아요. 앞으로 이란에서 자유롭게 지낼 상상만으로도 지금 너무 행복해요” 

지난 10월1일 서울의 주한 이란대사관 앞 시위를 다녀온 한 이란 유학생은 한껏 들뜬 목소리였다. 최소 154명이 넘는 사망자(노르웨이에 본부를 둔 비정부기구 ‘이란휴먼라이츠’ 집계)가 나오고, 2000명 이상이 체포된 현실 앞에서 이란 젊은 세대들은 어떻게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란의 시위는 왜 일어났으며, 어떻게 이란을 넘어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들불처럼 퍼지는 연대 시위로 발전할 수 있었을까?

9월13일 쿠르디스탄에서 테헤란으로 여행을 온 22살의 여성 마흐사 아미니(Mahsa Amini)는 히잡을 적절하게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도 순찰대(갸쉬테 에르셔드)의 단속에 걸렸다가, 재교육센터에서 쓰러져 사흘 만에 세상을 떠났다.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인한 돌연사로 묻힐 뻔한 이 사건을 개혁 성향의 신문사 <샤르그>의 사회부 여성 기자인 닐루파 하메디(Niloufar Hamedi)의 용감한 결단으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3주가 넘게 이란 전역과 전 세대, 다양한 종족들, 그리고 세계 각지의 이란인 디아스포라들까지 하나의 목소리로 정권 교체와 자유, 인권을 외치고 있다. 중학생, 고등학생부터 소위 이슬람 혁명 세대라 일컫는 장년 세대에 이르기까지 지금 이란 국민들은 그야말로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들은 왜 무엇을 외치는 걸까?

(※이 글은 이란 국내외에 거주하는 20~40대 이란 남녀 10명과의 대화를 기초로 작성됐다. 그리고 끊임없이 업데이트되고 공유되는 수백 개의 소셜미디어 게시물과 트윗들을 함께 살폈다. 다만 대화를 나눈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름은 물론이고 성별, 거주 장소, 연령대 등을 표기할 수 없음을 밝힌다.)

암스테르담에서 있었던 무슬림 신도들의 반 이란 시위 (사진:셔터스톡)

 이란으로부터의 목소리 “이번에는 죽을 각오로 끝장내려구요”

“쌀럼 기연. 88년(이란력 1388년/2009년) 기억하지? 함께 투표하러 갔던 거? 너 그날 무사비(당시 개혁파 후보) 지지한다고 녹색 옷을 입고 갔잖아. 그때 성공했더라면, 이란도 좀 변할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1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바뀌지 못했네. 권력자들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반드시 지켜봐야겠어.”(A, 이란 거주)

9월의 시위 소식이 들리고 나서, 안부를 묻는 나에게 이란의 한 도시에 살고 있는 이가 며칠 만에 답장을 해왔다.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이 일어난 지 30년 만인 2009년, 이란 대선 결과에 불복하며 처음으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녹색의 히잡과 티셔츠 차림으로 희망을 품고 50km 넘게 테헤란을 남과 북으로 잇는 발리아스르 거리를 가득 채웠던 이들은 선거 결과를 보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이란의 개혁과 변혁을 꿈꾸던 ‘나슬레 세봄’(이슬람 혁명 이후에 태어난, 주로 1980년대 이후 출생자)들은 지지했던 개혁파 후보가 아닌 보수전통주의자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의 재선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에 대항하여 시민들은 거리로 나섰고, 주로 침묵시위 또한 평화시위를 벌였다. 젊은이들은 녹색의 히잡과 티셔츠를 입고 승리를 나타내는 브이(V)자를 그리며 거리에 나섰지만, 돌아온 것은 수백 명의 사상자였다. 당시 희망을 잃은 수많은 젊은이들이 고국을 등졌다.

“쌀럼. 요 며칠 동안 인터넷이 완전히 끊겨서 너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없었어. 88년(이란력 1388/2009년) 기억나지? 그때보다도 더 심하고 격렬해. 이란이 자유로워져서 네가 다시 이란에 올 수 있었으면 좋겠어.”(B, 이란 거주)

이란의 벗들이 전하는 이번 시위는 2009년의 ‘녹색운동’ 때와 양상이 다르다. 사람들은 총부리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다시는 역사적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2009년의 녹색운동에는 대도시 중심의 중상류층 이상의 목소리가 주로 담겼다면, 2022년 시위는 이란 전역에서 세대와 소수민족 여부를 가리지 않는다. 이란의 전통 시장인 버저르의 상인부터 테헤란 저택의 상류층에 이르기까지 참여 계층이 광범위하며, 이란을 떠났던 이주민, 망명인, 유학생들까지 힘을 보태고 있다. 

이러한 분노는 한 여성의 죽음으로 시작되었지만, ‘이슬람’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했던 체제의 통제에 대한 저항만은 아니었다. 미국과의 핵 협상에 실패하면서 이란의 시민들은 지난 수년 동안 살인적인 물가 상승과 높은 실업률에 신음해야 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보여지는 것은 기득권 세력의 부정과 부패였다. 

이란 대학생들은 지난 3년 내내 코로나 상황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런데 공무원 자녀들은 20% 가산점을 주고, 공무원 자녀 특혜를 이용해 명문대를 많이 갔어요. 이번에는 정부 관계자들에 대한 대입 시험지 유출 의혹까지 나왔지만, 교욱부는 아무 문제가 없다며 종결했죠. 세금도 정말 높아요. 버저르 상인들에게 세금을 20% 무조건 뜯어가요.”(C, 이란 거주)

 JCPOA(2015년의 이란 핵 합의) 타결로 잠시 호황을 맞았다가 핵 협상 실패로 인해 이란은 수년간 지속되는 경기 침체를 겪어야 했다. 중동 최초로 코로나 감염국이 되어 경제 사정은 날로 심각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와 국제 외교, 핵 협상에 집중해야 할 정부가 여성들의 복장이나 단속하는 등 개인의 몸과 자유를 통제하는 데 치중하자 시민들의 인내도 임계점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란 시민들은 어느 때보다 용감했다. 이란 여성들은 히잡을 불태우고, 교과서와 학교와 모든 관공서에 걸려 있는 최고 지도자의 사진이나 혁명 인사들이 그려진 대형 걸개 등을 찢기도 한다. 시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두렵지 않느냐’는 나의 질문에 한 벗은 이렇게 대답했다.

“두려움은 오히려 더 큰 분노로 바뀌게 되었어요. 더 이상 물러서지 못하는 막다른 길에 이른 것 같습니다. 이 땅의 젊은이들이 처한 현실이라, 이 투쟁은 계속될 조짐입니다. 시장 상인협회 간부들, 그리고 도소매 상인까지 모두 시위에 참여하는 상황이니까요. 매번 마지막 인사를 나눕니다. 이제 이란 시민들은 시위를 멈출 수가 없어요. 목숨을 걸었어요.”(D, 이란 거주)

이란에선 지금 밤 9시가 되면, 시민들이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모두 집에 불을 끈 뒤 창문을 열고 ‘독재자는 물러가라’를 외친다. 짙은 어둠 속에서 절규에 가까운 함성들이 메아리를 만든다. 경찰 차가 출동해도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곳에서 외침이 들리기 때문에, 특정해서 잡을 수도 없다. 이 방식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직전, 그리고 2009년 녹색운동 때도 시민들이 벌인 시위 방식이었다. 그 외침이 지금도 이란의 밤을 수 놓고 있다. 이란인들은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란 밖의 목소리 “이제는 이란에 돌아갈 미래를 꿈꾸고 있어요”

10월1일 전 세계 150여 개 지역에서 반정부 시위를 지지하고, 이란 정부의 강경 진압을 규탄하는 연대 시위가 벌어졌다. 이에 앞서 9월25일 열린 첫 시위에 참여했던, 긴 흑색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오던 한 이란 여성은 10월1일 이란대사관 앞 시위에선 자른 머리카락을 손에 들고 있었다. 이란 시위가 지속되는 동안 한국과 미국에 거주하는 이란 디아스포라들의 SNS에는 끊임없이 시위와 관련된 게시물이 올라왔다. 관련 기사와 영상을 보느라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는 이들이 많았다.

10월1일 대사관 앞 시위를 마친 이들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들떠 있었다. 9월25일의 첫 시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일주일 동안 더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고, 반정부 시위를 지지한 가수, 영화배우, 운동선수들의 구속 소식이 들려온 상황에서 왜 좀 더 희망에 차 있을까,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지난주는 사실 얼마나 모일지 몰랐거든요, 400명, 600명, 700명 등 한국에 거주하는 이란인들의 텔레그램 방만 세 개인데, 정말 조용했어요. 과연 얼마나 나올까 전혀 감이 안 잡혔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어요.”(E, 해외 거주)

“이번에는 지난주보다 뭐라 할까요, 단결력과 응집력이 느껴졌어요. 구호도 척척 나오고 뭔가 체계적이었어요. 그리고 다른 해외 도시에서 일어나는 글로벌 연대 시위를 보면서 힘을 얻은 것 같아요.”(F, 해외 거주)

평소에 그들은 자유 그리고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미국, 캐나다, 유럽 그리고 한국 등으로 떠난 이들이었다. 그들은 학위가 끝나도 이란으로 돌아갈 마음이 없다고 토로했던 젊은이들이었다. 한국에서 학위가 끝나 비자 연장이 어려워지면, 다시 캐나다나 오스트리아, 아니 ‘자신이 갈 수 있는 곳’으로 다시 떠나고 싶다고 말했던 이들이었다. 하지만 이번 시위에 참석하고, 고국의 반정부 시위를 인터넷으로 본 이들의 생각은 달라져 있었다. 알고 지냈던 지난 몇 년 동안 한 번도 말하지 않았던 ‘희망’을 이야기한 것이다.

이란 사회는 지금까지 늘 위태로웠다. 해외로의 삶을 꿈꾸는 이들이 고국을 떠나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불안하고 안정감 없는 사회가 40년 넘게 지속되면서, 이란은 점차 위태로운 사회가 되었다. 이란에 있는 이들도, 해외에 있는 이들도 가급적이면 정치적인 뉴스나 소식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리지 않았다. 그들이 이란 내부의 사회문제나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다. 많은 젊은 세대들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국제 외교 상황과 국내 정치문제, 그리고 끝없이 추락하는 경제 상황 앞에서 ‘희망을 잃은’ 무기력한 자포자기 상태였기 때문이다. 또한 소셜미디어에서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면, 자신과 고국의 가족들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터였다.

9월 21일 뉴욕 UN 본부 앞에서 있었던 반 이란정부 시위(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더 이상 참을 수도 없었고, ‘젊은 세대’가 앞장서지 않으면 또다른 ‘혁명’은 일어날 수 없다고 인식하는 것 같다. 해외에 있는 이란인들은 “이런 소셜미디어 활동이라도 하지 않으면 고국의 가족과 친구들한테 너무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슬람 혁명을 경험한 부모들은 이 정권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지만, 이란의 1370년대생(1991년 이후 출생자)과 1380년대생(2001년 이후 출생자)들은 자신들이 혁명을 일으킬 세대라며 물러서지 않겠다는 각오를 보였다. 

“저는 사실 이란으로 돌아갈 마음이 없었어요. 오죽하면 조국에 돌아가기 싫겠어요? 하지만 이제는 행복하게 미래를 상상하고 꿈꾸고 있어요. 이번 시위로 체제가 바뀌면 저는 나의 조국, 이란으로 돌아갈 생각이에요. 

이번 시위는 우리 세대의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윗세대가 독재 왕정에 반해 혁명을 일으킨 것처럼 우리 세대도 문제 있는 이 정권을 바꿔야죠. 우리는 항상 이란에 가고 싶었어요. 사실 이렇게 외국을 떠도는 것이 아니라, 조국에 가고 싶었단 말이죠. 이번에 성공하지 못하면, 저도 이제 더 이상 이란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지금 물러서면 이제 정말 끝인 것 같아요.”(G, 해외 거주)

“이란에서 지난 몇 년 동안 이런 시위는 지속적으로 일어났었잖아요? 저는 우크라이나 여객기 추락 사건을 접하고 그때 나의 조국을 버렸었어요. 앞으로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 것 같아요. 아예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번 시위를 보면서, 뭔가 희망을 보았어요. 그래서 박사학위를 받는다면, 조국으로 돌아가 이란 사회를 발전시키고, 우리 국민들을 도와주고 싶어요.”(H, 해외 거주)

이번 시위에서도 디아스포라 미디어들은 이란 사회의 헤테로토피아(일상의 공간과 다른 공간)와 같은 대안적 언론 환경을 제공하여 전 세계로 강압적인 시위 탄압을 알리고 글로벌 연대 시위를 가능하게 했다. 이란계 캐나다인인 하메드 에스마에일리온(Hamed Esmaeilion)의 제안으로 시작된 10월1일의 ‘이란의 자유를 위한 행진’은 총 150개 국에서 진행되었으며, 캐나다 토론토에서만 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 이란의 자유를 외쳤다. 

하메드 에스마에일리온은 지난 2020년 미국과의 전쟁 위기 상황에서 이란 상공에서 격추된 우크라이나 여객기 752편 사고로 사랑하는 아내와 9살난 딸을 잃었다. 두 사람은 고국에 잠시 다녀오던 길이었다. 2022년 10월5일로, 이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한 지 1000일이 지났다. 그는 지금까지 진상 규명을 위해 애써 온 유가족 대표이다. 그는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지 1000일이 되던 날,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생명을 사랑하는 또 다른 세대의 새로운 항의”라고 이번 시위를 평가했다. 

지난 9월 24일 런던에서 있었던 시위 현장(사진:셔터스톡)

‘여성, 삶, 자유’ 그리고 ‘남성, 조국, 번영’

이란의 오늘날 반정부 시위는 단순히 ‘히잡 시위’가 아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인권인 자유, 안정된 삶, 그리고 이란의 남성과 여성, 즉 모든 사람을 위한 혁명이다. 그리고 이 시위 과정에서 글로벌 여성들, 특히 중동 여성들의 연대는 감동적이다. 소셜미디어 페이지 ‘stand with women of iran_turkey’에서 터키 여성들은 “나도 마흐사 아미니다”라고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른다. 시리아의 쿠르드 여인들은 머리 스카프를 벗고 투박하게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여성, 삶, 자유’를 외치며 행진을 했다. 아프가니스탄 여성들 역시 총부리를 들이대며 제압하려는 남성들 앞에서도 용감하게 이란 여성들의 자유를 위해 연대 시위에 나섰다.

이란의 미래를, 정권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절대 그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어느 때보다 이란 사회에 관심을 모으고, 인권 탄압에 대한 경계의 시선을 거두지 않아야 한다. 지구촌 전체의 관심과 연대의 목소리가 더해질 때, 이란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서로의 목소리를 맞춰 가듯이 희망의 마음도 모여질 수 있다. 

이란 여성들과 연대하는 의미에서 여성들이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다. 프랑스 배우 줄리엣 비노쉬(좌)와 마리옹 꼬띠야르도 동참했다. (사진:연합뉴스)

 


글쓴이 구기연은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이다. 2009년 1년 동안의 이란 테헤란 현장 연구를 통해 이란 청년 세대에 대한 심리인류학 연구로 박사논문을 작성했고, 이를 바탕으로 <이란 도시 젊은이, 그들만의 세상 만들기>(2017)를 썼다. 주로 이란의 청년 세대와 여성 문제, 이란 내 한류 그리고 미디어를 통한 시민사회 운동 등을 연구해 왔다. 최근에는 한국 내 이슬람 혐오 이슈와 무슬림 난민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중이다.


“전국적인 시위로 154명 사망” ··· 이란은 지금
by 정재권 콘텐츠 코디네이터

네덜란드에 본부를 두고 있는 NGO 이란휴먼라이츠 홈페이지

지금 이란에선 당국의 유혈 진압과 인터넷 차단에도 불구하고 시위와 파업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란 정부는 강경대응으로 일관하고 있어, 사태의 장기화와 피해 확대가 우려되고 있다. 현재 이란의 시위 상황을 빠르고 상세하게 확인할 수 있는 곳은 네델란드에 있는 비정부기구 ‘이란휴먼라이츠’(Iran Human Rights)다.

이란휴먼라이츠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10월4일(현지시각) 현재 이란 전역에서 발생한 시위로 어린이를 포함해 최소 154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사망자 가운데는 9명이 18살 미만인 것으로 추정되지만, 문서 증거를 통해서 확인된 것은 아니라고 이 기구는 전했다. 이란의 전체 31개 주 가운데 17개 주에서 사망자가 발생해, 이번 시위가 이란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망자가 많은 곳은 남동부의 시스탄·발루체스탄주 63명, 북부 마잔다란주 27명, 길란주 12명, 북서부 서아제르바이잔주 11명 등이다.

특히 9월30일 시스탄·오발루체스탄주의 중심 도시 자헤단에서 발생한 ‘피의 금요일’ 사태로 인한 사망자가 63명으로 늘어났다고 이란휴먼라이츠는 밝혔다. 이날 사태는 경찰서장이 발루치족 15살 소녀를 강간했다는 의혹을 항의하기 위해 조직된 시위를 강경 진압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시스탄·발루체스탄주는 파키스탄 및 아프가니스탄과 인접한 접경지역으로, 발루치족 등 여러 소수민족이 이란 정부의 소수민족 차별 철폐와 자치권 확대 등을 요구하며 갈등해 왔다.

이란휴먼라이츠는 “이란, 특히 자헤단에서의 시위대 살해는 반인도적 범죄에 해당한다. 국제 사회는 이 범죄를 조사하고 이슬람 공화국에 의해 더 이상의 범죄가 저지르지 않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란휴먼라이츠는 또 대학들과 고등학교들이 시위에 참여하는 등 시위 양상이 확대되고 있다고 전했다. 10월2일 테헤란의 샤리프공과대학에서 시위 학생들에 대한 폭력적인 진압이 있었으며, 이튿날 23개 대학에서 시위가 벌어졌다고 한다.

이처럼 시위가 확산되는 데는 히잡과 관련된 여성 인권의 차원을 넘어, 40년 넘게 누적된 부패와 권력 남용 등 국가 시스템 전체에 대한 분노가 깔려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여성의 권리를 요구하던 시위가 사회의 모든 영역을 통제하는 이슬람식 통치 체제의 종식에 대한 요구로 빠르게 전환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 인터뷰에서 한 이란 사업가는 “여성, 기술, 빈곤의 삼각관계가 시위의 원동력”이라며 “젊은이들은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무거운 구속 때문에 삶이 낭비되고 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최근 몇 년 사이 경제 사정이 악화한 것이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2018년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에 대한 제재를 전면 복원하면서 이란 경제는 빠르게 침체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란의 2021년 물가상승률은 40%에 육박했다. 청년 실업률이 27%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여기에다 이란 경제를 지탱했던 중산층이 석유 생산 급감,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물가상승 등으로 절반 이하로 줄어들며 국민적 불만을 부채질했다. 이런 정치·경제·사회적 배경이 깔려 있는데도 이란 정부는 이번 시위를 ‘외부세력의 음모’, ‘정부 붕괴 기도’ 등으로 규정하며 강경 기조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다.

이란 국영 통신 <IRNA>는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10월3일 군 행사 연설을 통해 “똑똑한 사람이라면 이란 내 시위에 배후가 있음을 알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하메네이는 이어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의 진보를 막기 위해 이런 혼란을 조장하며, 과거에도 비슷한 음모를 꾸민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고 한다. 모하마드 바게르 갈라바프 의회 의장도 의회 연설에서 “개혁과 개선을 요구한 과거 시위와 달리 이번 시위는 정부 붕괴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게 분명하다”며 강력한 진압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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