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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한석의 아시아 포커스] 오스트레일리아 외무장관 페니 웡, ‘외교의 실력’

By | 2022년 10월 5일 | 고한석의 아시아 포커스, 국제, 미분류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 참사’를 이유로 박진 외교부 장관에 대한 해임 건의안이 9월29일 국회를 통과했다. 윤 대통령이 분명한 거부 의사를 밝혀 박 장관은 자리를 보전하겠지만, 그 파장은 크고 길게 이어질 게 분명하다. 박 장관은 국제 외교무대에서 ‘의회가 탄핵한 외교 책임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뛰어야만 한다. 명분과 능력을 중시하는 외교무대에서 무시할 수 없는 핸디캡이다. 이 시점에서 국제문제 전문가인 고한석 필자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외무장관 페니 웡을 떠올렸다. 윤석열 정부와 비슷한 시기에 출범한 노동당의 앤서니 알바니즈 정부에서 첫 외교 책임자가 된 페니 웡은, 미국과 중국의 치열한 패권 전쟁 한 가운데서 오스트레일리아 중심의 외교노선을 추구해 큰 관심을 받고 있다. 그의 전략은 ‘미국을 맹종하지도, 중국을 배척하지도 않는다’로 압축될 수 있다. 미・중 대결에 끼인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편집자주]

✔ 오스트레일리아 노동당 정부의 새 외무장관, 다방면에서 소수인 페니 웡
✔ 여성, 동성결혼, 기후변화, 혼혈 등 오스트레일리아의 ‘새로운 방향’ 체현
✔ “더 많은 전략과 더 적은 정치, 말은 더 적게 하되 행동은 더 많이 하라”
✔ 최대 무역대상국 중국과 안보 파트너 미국 사이의 노련한 균형 외교
✔ 경청하는 외교, 편들기보다 원칙과 자율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외교 전략

사진:셔터스톡

미・중에 대한 오스트레일리아의 딜레마

오스트레일리아는 ‘아시아의 문턱에 놓인 유럽의 전초기지’라는 위상으로 인해 항상 불편함과 불안함을 가지고 있었다. 영토는 넓지만 인구(1960년에 1000만 명, 2020년에 2500만 명)는 적은 오스트레일리아는 역사적으로 자국 안보를 앵글로색슨 강대국에 의지해 왔다. 처음에는 영국에 의지했다가 2차 세계대전 동안에 영국으로부터 버림받았고, 그 이후에는 미국에 의존해 왔다. 지난 10년 동안 오스트레일리아는 최대 무역상대국인 중국과 최대 안보 동맹국인 미국 사이에서 매우 어려운 균형잡기 행동을 취해 왔다. 그동안 미국은 중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강대국으로 부상함에 따라 오스트레일리아가 느끼는 불안을 제대로 해소해 주지 못했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에 아시아로의 피벗을 주창했지만 제대로 실행되지 못했으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절에는 그의 혼란스러운 대외 정책으로 인해 당혹스러움이 컸다. 

중국과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운 오스트레일리아 자유당 출신의 스콧 모리슨 전임 총리는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 당선 이후 앵글로색슨 국가들의 안보 동맹인 ‘오커스’(AUKUS : 오스트레일리아, 영국, 미국 세 나라가 2021년 9월에 공식 출범한 삼각동맹)에 참여하고 핵 추진 잠수함을 도입하기로 합의하였다. 하지만 중국이 지난 4월에 오스트레일리아 바로 인근의 솔로몬 제도와 안보 협정을 체결하고 남태평양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오히려 허를 찔린 모습을 드러냈다.

새 노동당 정부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외무장관 페니 웡

전임 정부의 태평양 제도 관련 정책 실패가 도마에 오른 가운데 지난 5월 실시된 총선에서 앤서니 알바니즈가 이끄는 노동당이 승리했다. 알바니즈는 총리가 되면서 오스트레일리아의 대외 정책을 총괄하는 사령탑인 외무부 장관에 페니 웡(Penny Wong)이라는 여성을 임명했다. 페니 웡은 그 자체로 새 노동당 정부의 색깔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인물이다. 그녀는 성(性)이 여자이지만 동성애자다. 그녀의 동성 배우자는 현직 공무원으로, 2011년에 페니 웡과 상의하여 시험관 정자 기증을 받아 아이를 가지게 되었으며,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2017년에 두 사람의 자녀로 공식 등록했다. 페니 웡은 또한 전임 노동당 정부인 케빈 러드 내각에서 처음 만들어진 기후변화 및 수자원 장관직을 수행했다. 그리고 그녀의 성(姓)은 중국계 혈통과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즉 그녀는 여성, 동성결혼, 기후변화, 혼혈 등 여러 면에서 오스트레일리아의 ‘새로운 방향’을 체현하고 있다.

2017년 11월 29일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는 법안이 통과되던 날 동료 의원들의 축하를 받으며 기뻐하는 페니 웡. 사진 가운데 인물. (사진:연합뉴스)

페니 웡의 가족사는 부계와 모계 모두 식민주의와 연관이 깊다. 그녀는 1968년 말레이시아 보르네오 섬에서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아버지와 영국계 오스트레일리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페니 웡의 중국어 이름은 황영현(黃英賢)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중국 화교 중에서도 소수인 핫카(客家)계 말레이시아인으로, 그 가족들은 증조할아버지 시절에 중국 남부 광동성에서 보르네오 섬으로 건너와 영국 북보르네오 회사((British North Borneo Company : 영국의 특별면허 기업으로 실질적 식민 통치기구)에 의해 노동자로 고용되어 광대한 담배 농장, 고무 농장, 주석 광산 등에서 고된 노동을 수행하였다. 웡씨 가족들은 그곳에 정착했고 그녀의 아버지 프란시스 웡(Francis Wong : 중국 이름은 黃銳誠)은 2차 대전 이후에 영연방 국가들이 동남아 국가들을 원조하기 위해 만든 콜롬보 계획의 혜택을 받아서 1966년에 오스트레일리아로 건너가 애들레이드 대학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거기서 제인 채프먼(Jane Chapman)을 만나 결혼했는데, 그녀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식민지 시절인 1830년대에 영국에서 옮겨와 정착한 백인 가족의 후예였다. 

당시 오스트레일리아는 소위 ‘백호주의’(White Australia Policy, WAP) 정책으로 인해서 비백인 이민을 제한했기 때문에 이 커플은 말레이시아의 보르네오 섬으로 돌아가 코타키나발루에 정착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페니 웡은 태어났다. 그녀가 7살 되던 해에 부모가 이혼하게 되었고 페니 윙의 어머니는 그녀와 남동생을 데리고 오스트레일리아의 애들레이드로 돌아왔다. 남매는 이곳 초등학교에서 유일한 동양인이었고, 그녀가 겪었던 끊임없는 인종차별, 그리고 그 속에서 인내하며 살아남고 발전하기 위해서 애썼던 경험은 그녀의 성격을 결정짓는 요인이 되었다.

비록 백호주의는 1966년에 당시 홀트 정부에 의해서 공식적으로 폐기됐지만 실질적으로는 1970년대 중반까지 유지됐기에 페니 윙은 자신이 성장한 오스트레일리아에 대해 진정한 귀속감을 느끼기 어려웠다. 1992년 당시 오스트레일리아 총리였던 폴 키팅이 기념비적인 연설을 통해서 ‘2차 세계대전 때 싱가포르의 함락은 1차 세계대전 당시 갈리폴리 작전(오스트레일리아의 국가적 기념일로 지정)만큼 오스트레일리아 역사에 중요하다’고 선언했을 때, 페니 웡은 자신이 진정으로 오스트레일리아인이 되었다고 밝혔다. 그녀는 아버지가 다녔던 애들레이드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고 그 후 오스트레일리아 노동당에서 정치활동을 시작하였다. 2001년에 처음으로 연방 하원 의원에 당선됐고 2007년에 노동당이 총선에서 승리한 후 케빈 러드 총리에 의해서 기후변화 수자원 장관으로 임명되어 활동했다. 지난 자유당의 모리슨 행정부 시절에는 야당인 노동당의 그림자 내각(예비내각)에서 통상장관과 외무장관 역할을 맡아 활동했고, 언론에 의해 가장 잘 준비된 외무장관 후보로 손꼽혔다. 그리고 올해 5월 노동당이 총선에서 승리하자 신임 알바니즈 총리는 그녀를 외무장관으로 임명했다.

대중국 외교 노선의 변화 가능성

페니 웡의 임명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외교 노선, 특히 대중국 노선의 전환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이서 눈길을 끌었다. 전임 스콧 모리슨 정부는 미국, 영국 등 전통적인 앵글로색슨 동맹과의 안보협력을 지나치게 중시해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 단교 직전까지 갈 정도로 관계가 틀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두 나라는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이후 ‘강 대 강’으로 부딪쳤다. 모리슨 총리는 2020년 4월 코로나19 발원지에 대한 국제 조사를 요구했고, 이에 반발한 중국은 오스트레일리아에 전방위적인 무역 보복을 가했다. 그러자 오스트레일리아는 미국과 연합 군사훈련을 강화했고, 피터 더튼 국방장관은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오스트레일리아는 미국 등과 함께 군사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강한 주장을 내놓기까지 했다. 

이 시기에 야당의 예비내각에서 외무장관이었던 페니 웡은 모리슨 정부가 국내 정치적 목적으로 중국을 과도하게 자극해 오스트레일리아의 안보를 오히려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하며 대중국 정책에서 확연하게 시각차를 드러냈다. 이런 때문인지, 중국도 노동당 정부 출범 직후부터 오스트레일리아와의 관계 개선에 대해 기대감을 표시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알바니즈 총리가 당선되자마자 브리핑을 통해 “1970년대 오스트레일리아 노동당 정부는 중국과 수교하는 올바른 선택을 함으로써, 두 나라 관계 발전에 역사적인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케빈 러드 전 총리를 비롯한 역대 노동당 정부는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태평양 제도 국가들이 ‘중심’이 되는 외교

외무장관에 취임하자마자 페니 윙은 신임 총리 알바니즈와 쿼드 정상회담을 위해 일본 도쿄를 방문했고, 곧이어 알바니즈 총리의 첫 공식 방문을 위해 인도네시아로 향했다. 페니 웡 외무장관은 행정부 출범 직후 100일 동안 태평양 섬나라들을 4차례(피지, 사모아와 통가, 뉴질랜드와 솔로몬 제도, 그리고 7월 ‘태평양 제도 포럼’ 정상회의), 동남아시아를 세 차례(베트남과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를 방문했다. 그녀는 오스트레일리아 국민의 조상들이 전 세계 270개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점을 언급하면서 “오스트레일리아는 세계 구석구석에 다가가서 ‘우리는 당신들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녀는 특히 태평양 제도 국가들에 대해 자신의 스타일인 ‘경청(Listen First) 외교’를 수행하면서 오스트레일리아의 새로운 정체성에 기반한 외교 전략을 수립하였다. 위에서 열거한 여러 가지 이유로 그녀는 어떤 특정한 인종이나 서방 문화에 근거한 편들기보다는 ‘원칙과 자율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외교 전략을 지향한다.

페니 웡은 ‘경청하는 외교 스타일’, ‘원칙과 자율을 동시에 추구’한다고 알려져 있다

페니 웡 장관은 지난 9월 열린 유엔 총회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모든 작은 나라들에 대한 공격과 마찬가지이며, 더 큰 나라가 더 작은 이웃을 복속시킬 권리가 있다는 것은 잘못된 주장”이라고 명확히 언급했다. 그녀는 이것이 “정상적인 것이 될 수 없으며 결코 간과될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인도, 일본을 포함한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아시아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더 큰 영구적 대표권을 보장받기 위한 유엔 개혁을 지지했고, 2029년부터 2030년까지 오스트레일리아가 안보리의 비상임 이사국이 될 수 있도록 로비를 했다. 그리고 중국이 태평양 제도로 영향력을 넓히려고 시도하자 취임 직후부터 이들 나라들을 순방하면서 중국을 견제하였다. 

그러나 이 순방의 핵심 주제는 중국에 대항하는 서방과의 ‘안보 무리짓기’가 아니라 ‘기후변화’에 대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기후변화가 안보와 무관한 것은 물론 아니었다. 그녀 자신이 과거 기후변화 및 수자원 장관이었던 페니 웡은 해수면 상승으로 이들 나라들에게 실존적 문제로 닥친 기후변화와 관련해 ‘과거 오스트레일리아 정부가 제대로 자신의 책임과 지원을 다하지 못했다’고 잘못을 인정했다. 그리고 기후변화 문제의 해결에 오스트레일리아가 앞장서는 한편,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해 태평양 제도 포럼을 강화하는데 도움을 주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서방이나 중국 어느 한쪽의 안보적 관심사를 중심에 두는 것이 아니라 이들 나라들의 안전을 중심에 놓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접근법을 통해 태평양 제도 국가들의 단결과 자주권을 강화하여 솔로몬 제도의 소가바레 대통령 등 일부 국가들이 친중국적 편향을 보이는 것에 대해 동료적 압력을 행사했다. 그녀는 오스트레일리아가 “조건을 붙이거나 지속 불가능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지 않을 파트너이며 태평양 섬나라들의 우선순위나 제도를 잠식하지 않을 파트너”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는 중국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중국을 견제하려는 발언이자, 다른 서방 국가들처럼 이런저런 조건을 붙여서 재정을 지원하는 자세와는 다른, 남태평양의 공동체적 입장을 가지고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지난 8월 4일 프놈펜에서 있었던 아세안 외교장관회의 의장국 주재 환영 만찬장에서 미 국무장관 블링컨과 일본 외무상 하야시와 함께

미국을 맹종하지도, 중국을 배척하지도 않는다

동시에 페니 웡은 오스트레일리아가 미국과 동맹 관계이면서도 맹종하지는 않는 주체성을 가져야 한다고 계속 강조했다. 그녀는 태평양을 ‘주권이 존중되는 평화롭고 번영하는 지역’으로 만들기 위해 가까운 중소 강대국들과 공통의 이익을 찾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녀는 야심차게도 이를 통해서 세계의 초강대국들, 즉 중국과 미국이 행동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페니 웡이 외무장관이 되면서 중국은 전임 모리슨 정부에 가한 외교적 동결을 부분적으로 완화했다. 그녀는 지난 7월 발리에서 열린 G-20 외무장관 회의와 9월에 열린 유엔 총회에서 별도로 그녀의 카운터파트인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과 만났다. 7월 회의에서, 그녀는 왕이 부장에게 “오스트레일리아는 우리나라와 국민들에게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필요한 만큼을 말할 것이다. 우리는 차분하고 일관되게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중국과 전임 오스트레일리아 자유당 정부 둘 다 몰입했던 호전성에 대한 암묵적인 비판이었다. 그리고 유엔 총회에서 그녀는 중국이 오스트레일리아에 대한 징벌적 무역 조치를 없애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기 위해 러시아에 영향력을 행사할 것을 촉구했다. 페니 웡은 기자들에게 “더 안정적인 관계를 위해 양측이 많은 조치를 취해야 할 긴 여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는 이에 대해 오스트레일리아와 ‘이견을 적절히 해소하고’ 양국 입장 차이의 ‘중간 지점’에서 만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것은 양측 어조의 뚜렷한 변화였다.

중국과의 부분적인 해빙은 페니 웡의 외교정책의 초기 성공으로 널리 보도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와 중국의 관계에 관해선 그녀가 그동안 자제해 온 말들이 그녀가 드러내놓고 한 말들만큼이나 중요하다. 그녀는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8월 대만 방문을 지지하지도 비판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이 방문은 미국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페니 웡은 중국의 대응, 특히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과도했다고 지적하고, 중국의 ‘자제와 긴장 완화’를 요구했다. 페니 웡의 이런 논평이 있은 뒤 며칠 동안 오스트레일리아 방송의 주요 시사 프로그램들은 그녀를 인터뷰하기 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그녀는 이를 모두 거절했다. 페니 웡은 예상 가능한 질문, 즉 만약 대만을 놓고 미국과 중국이 충돌할 경우 오스트레일리아는 미국 편에 합류할 것인가, 라는 질문을 사실상 회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전 정부의 국방장관인 피터 더튼(현 야당 대표)은 지난해 11월 오스트레일리아가 미국 편에 서서 참전하지 않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지만, 페니 웡 장관은 이러한 가정된 상황에 대해서 어떠한 의견도 표명하지 않았다.

과거에 페니 웡은 긴장 완화의 방법에 대해서 “더 많은 전략과 더 적은 정치, 말은 더 적게 하되 행동은 더 많이 하라”(More strategy, less politics ; Talk less, do more)고 말한 적이 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 그녀는 하나의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바로 ‘Settling point’라는 것인데, 우리말로 ‘정착 지점’ 또는 ‘타협 지점’으로 번역될 수 있다. 그녀는 2019년 9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연설에서 처음 밝힌 이 개념을 통해 미국의 리더십은 “국가들의 공동체(그리고 그에 따르는 모든 것들)를 선도한다고 간주될 때 가장 효과적일 것”이며, 중국도 “이 지역에 있는 우리 대부분이 권위주의적인 중국이 지배적인 강대국이 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 지역에서 “미국과 중국 모두 절대적 우위를 행사할 수 없을 것”이기에 서로를 무너뜨리려는 헛된 노력 대신에 “강대국으로서 서로 공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케빈 러드 전 노동당 총리가 최근 제기한 미-중 사이의 ‘관리된 전략적 경쟁’(managed strategic competition)이라는 용어를 긍정적으로 여러 차례 언급하였다.

미・중 사이에서 균형적 지점을

‘정착 지점’이라는 개념은 동남아 국가들과 오스트레일리아, 태평양 국가들은 결국 미국과 중국이라는 양극단 사이의 중간에 있는 어느 지점에서 살아가야 하며, 그러기 위해 균형적 지점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말레이시아 지역 출신으로 동남아 국가들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더 잘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자신이 비록 오스트레일리아 외무장관이지만 아세안이야말로 “인도-태평양의 중심”이라고 묘사하면서 이 지역에서 미국, 중국, 인도, 일본 등의 다극적 미래를 인정하고 함께 노력할 것을 촉구하였다.

쉽지 않은 과제이지만 이것이 가능해진다면 최대의 동맹국과 최대의 무역상대국 중에서 오스트레일리아가 어떤 쪽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예/아니오’의 이진법을 넘어설 것이다. 아직 야당이던 시절에 그녀는 노동당의 정책이 “우리 자신을 위해 끊임없이 의사결정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혼란스러운 현재의 세계는 비선형적이며, 그러한 이유로 옵션이 다양할 뿐만 아니라 선택과 의사결정도 다양하다”고 강조했다.

만약 재임 기간 동안 페니 웡이 성공적으로 이러한 임무를 완수한다면, 지역 포럼 국가들의 행동 양태를 새롭게 형성하게 될 뿐만 아니라 세계 초강대국들의 행동 양태에도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그것은 세계가 오스트레일리아를 인식하는 방식과 오스트레일리아가 스스로를 보는 방식도 변화시킬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마도 페니 웡은 미-중 사이의 전쟁을 피하는 데 기여한 인물 가운데 한 명으로 기억될 것이다.

* 이 글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10월1일치에 실린 ‘페니 웡은 오스트레일리아가 지원자 이상이 되기를 원한다’(Penny Wong Wants Australia to Be More Than a Supporting Player)라는 글에 기반하여 쓴 것이며, 일부 문장은 발췌한 것임을 밝혀둡니다.


글쓴이 고한석은
서울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에서 IT정책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SK China에서 4년 동안 일했으며 삼성네트웍스에서 글로벌사업추진팀장을 맡기도 했다. 이후 열린우리당 정책연구원 정책기획 연구원과 정세분석국장,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부원장 등을 거쳐 서울디지털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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