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초 발생한 포스코 포항제철소의 침수 사태가 한 달을 맞고 있다. 그 사이 포스코는 피해의 원인과 복구, 책임 등을 둘러싼 논란으로 뒤숭숭한 시간을 보냈다. 특히나 침수 사태가 최정우 회장의 ‘인책론’으로까지 발전하면서 혼란과 갈등의 시간은 더 길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포스코를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며 ‘제2의 창업’을 선언했던 최 회장의 리더십에 대한 의문도 새삼 제기되는 모습이다. 지금 포스코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철강 전문가인 김경식 필자가 포항제철소 침수 사태를 계기로 포스코의 현주소와 과제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편집자주]

✔ 태풍 힌남노로 침수된 포항제철소, 창사 이래 처음 가동 중단✔ 제철소 침수 원인과 정상화 시기를 놓고 여전히 논쟁 중✔ 책임론 불거지며 포스코 지배구조로 번진 세간의 관심✔ 자동차, 조선, 가전 등 제조업 대한민국의 기틀 제공한 포스코✔ ‘국민기업’인가 ‘국가대표 기업’인가, 정체성 논란

태풍 피해 이후 재가동을 시작하는 포스코 포항제철소 (사진:연합뉴스)

지난 9월6일 새벽, 태풍 힌남노가 한반도를 지나가며 포항지역에 1시간당 100mm 이상의 역대급 폭우를 쏟았다. 포항에서만 사망 9명, 실종 1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고, 주택·상가 1만1천여 채가 침수·파손되고 차량 1천500대가 침수됐다, 기업체의 경우에는 포스코를 비롯한 92개 업체가 피해를 입었다. 기업체 피해 중에서 특별한 것은 포스코 포항제철소가 창립 이래 처음으로 침수되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추석 연휴를 반납하고 피해 복구에 집중하고 있던 9월14일 장영진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은 정부가 ‘철강 수해복구 및 수급점검 TF’의 운영과 함께 ‘민관합동 철강수급 조사단’(단장 민동준 연세대 명예교수)을 구성한다고 발표했다. 조사단은 철강재 생산의 정상화 시기 예측 및 공급망 안정의 선제적 확보, 정상화를 위한 정부 지원사항 확인, 철강 수급 상황 확인 등의 활동을 벌인다고 한다.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철강산업이 가지는 산업 전후방 영향을 생각할 때 정부의 이런 역할은 너무나 당연하다.

문제는 이날 브리핑에서 장 차관이 한 발언이었다. 그는 “태풍이 충분히 예보된 상황에서도 이런 피해가 발생한 것에 대해 한번 따져볼 예정”이라고 했다. 장 차관의 발언이 알려지자, 언론은 사전에 충분히 피해를 막을 수 있었던 ‘인재’라는 점을 부각하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해석했다. 또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의 책임을 묻기 위한 의도라고 풀이하면서, 정부 고위관계자가 “이번 태풍피해는 중장기적으로 포스코 지배구조와도 연결될 수 있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고 전했다. 이런 전망에 힘을 싣는 발언도 이어졌다. 여당인 국민의힘 성일종 정책위원회 의장은 “세계 초일류 기업이자 선조들의 핏값으로 세워진 자랑스러운 제철소에 큰 오점을 남긴 이번 피해는 반드시 책임이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침수된 포스코 포항제철소

포스코 침수 사태는 이처럼 그 경제・사회적 파장을 넘어 정치적 영역으로까지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이 때문에 답변을 해야 할 의문점들도 덩달아 많아진 양상이다. 그 질문들을 간추리면 이렇다.

1. 포스코 피해는 얼마나 되며 언제 정상화되나

2. 이 사태는 인재인가, 천재지변인가

3. 왜 갑자기 지배구조 이슈로 확산되나 

4. 포스코홀딩스(지주회사) 출범 후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나 

5. 포스코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포항 제철소 피해는 얼마나 되며 언제 정상화되나

포스코의 피해 규모와 정상화 시기는 우선 궁금증이 큰 대목이지만, 역설적으로 포스코와 철강산업의 특성을 잘 모르는 질문에 해당한다. 포스코가 아니라 우리나라 산업의 피해를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쇳물에서 시작해서 수많은 최종 제품이 고객에게 전달되기까지는 우선 제철소 안에서 5~7단계의 제조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이후에도 제철소 밖의 2차 가공회사에서 2~3단계의 과정을 거친다. 그 전체 기간은 길게는 6개월, 아무리 짧아도 3개월 이상이 소요된다. 이는 소비자가 자신이 원하는 제품을 구입하려면 그만큼의 기간 전에 주문이 이뤄져야 하고, 반대로 생산 차질이 생기면 그만큼의 기간 동안 조달에 차질이 생길 수 있음을 의미한다. 

자동차 한 대에 소요되는 강판만 해도 100여 가지나 된다. 여기에 엔진용, 샤프트용 특수강 등을 포함하면 자동차 한 대에 필요한 철강 소재는 200여 종류가 넘는다. 한 자동차 회사의 브랜드가 20개가 넘고, 브랜드별로 연식에 차이가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자동차 한 회사가 필요로 하는 철강 제품은 적어도 5000가지에 이른다. 여기에다 조선용, 가전용, 건축용 등의 다양한 철강 수요를 충족하려면 제철소가 생산해야 하는 철강제품 규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런 까닭에 ‘정상화’라는 용어를 정의하기란 제철소에서 생산하는 철강 제품 종류만큼이나 다양하고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정상화는 ①고로 가동(슬라브 생산) 정상화 ②후판·열연 제품 생산까지 정상화 ③냉연(선재) 제품까지 정상화 ④도금(전기강판) 제품까지 정상화 ⑤전방(원부재료 조달)과 후방(최종 고객사) 관계사의 정상 가동까지 정상화 ⑥침수 이전과 같은 완전한 상태로까지 정상화 등의 여러 단계가 있다. 어떤 단계를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정상화 기간과 피해 금액은 달라질 것이다. 

현재로선 포항제철소 18개 공장 모두가 태풍 피해 이전 수준으로 완전 정상화하려면 내년 1분기가 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산업부 장영진 1차관은 9월29일 기자간담회에서 “제철소 18개 공장 중 13개는 올해 안에 정상화되고 나머지 공장은 내년 1분기 정도에 정상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포스코는 국내 철강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수준의 제품 공급을 위한 공장 재가동은 올해 안에 가능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침수 사태 이후 현재 포항의 지역경제는 ‘초토화’나 다름없는 상태다. 포스코에 각종 자재를 납품하거나, 제품을 받아 가공하는 업체들은 자체 공장의 침수에 따른 피해는 물론이고, 3개월 이상의 포스코 제품 생산 차질로 일거리가 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침수된 포스코 포항제철소

인재인가 천재지변인가

포항제철소 침수 사태의 원인을 따지는 일은 판단하기가 매우 어렵고 조심스럽다. 피해 보상(배상)의 책임이 따르는 문제인데다 인과관계를 분석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당장 이번에 문제가 된 포항제철소 옆 냉천을 둘러싸고 여야 정치권 사이에, 포스코와 포항시 사이에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우선 포스코는 “이번 포항제철소 침수의 원인은 인근 냉천의 범람 때문”이라며 “이른 시일 안에 냉천 바닥 준설, 불필요한 구조물 제거 등의 하천 재정비를 통해 물길의 흐름을 원활히 해야 냉천 범람을 구조적으로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태풍, 폭우 등에 대비한 냉천 재정비를 위해 포항시와 적극 협력해 나가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포항시는 “2012년 시작된 냉천 정비사업이 끝난 뒤에도 하천 폭은 2012년 이전과 비슷하다”며 “일각에서 하천 폭을 줄여서 유속이 빨라졌다고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물길이 포항제철소로 범람하게 한 다리도 포항제철소가 1976년에 세웠다는 게 포항시의 주장이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포항의 냉천 정비사업은 이명박 정부 시절에 국토교통부가 추진했던 ‘고향강 정비사업’에서 시작됐다. 당시 천변을 공원화하는 데만 집중했지, 제대로 된 수해 피해 대책이 강구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여당인 국민의힘은 “포항과 경주 일대에 피해가 컸던 것은 냉천·칠성천 등 지방하천이 시간당 100mm 넘게 쏟아지는 폭우를 감당하지 못하고 범람했기 때문이다. 2011년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 차원의 지천·지류 정비계획이 수립됐지만, 야당과 일부 언론, 시민단체들은 ‘20조원짜리 삽질’ 같은 자극적인 말을 내세워 강하게 반대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처럼 이해 관계자별로 주장의 차이가 크고, 과학적 분석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여서 침수 사태의 원인을 섣부르게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행정안전부는 이번 침수 사태의 원인과 사망자 발생 등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으며, 아직 결론을 내리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다음에 태풍이나 집중 호우가 와서 냉천이 범람해 포항제철소가 또다시 침수되도록 방치해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주요 건물(설비)의 출입구에 철저한 방수벽을 설치하는 등 시급한 예방 조치는 사태의 원인 파악과 별개로 시급히 시행되어야 한다.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오른쪽)이 지난 17일 침수 피해를 크게 입은 포항제철소 압연지역(후판공장) 지하에서 직원들과 함께 토사 제거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왜 갑자기 지배구조를 문제 삼나

포항제철소 침수 사태를 계기로 지배구조 문제가 제기된 것은 안타까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지난 30년을 돌이켜 보자. 박태준 회장이 1968년부터 ‘장기 재임’하다 김영삼 정부 출범과 함께 황경로 회장(1993)으로 바통이 넘겨진다. 김영삼 대통령 때는 이어서 정명식 회장(1993), 김만제 회장(1994~1998.3)으로, 디제이피(DJP) 연합의 김대중 대통령 때는 유상부 회장(1998.3~2003.3), 이구택 회장(2003.3~2009.2)으로 교체가 이뤄졌다, 이명박 대통령 때는 정준양 회장(2009.2~2104.3)이, 박근혜 대통령 때는 권오준 회장(2014.3~2018.7)이, 문재인 대통령 때는 최정우 회장(2018.7~)이 포스코를 맡았다. 특이한 점은 정권의 교체와 함께 예외없이 회장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포스코가 2000년에 실질적으로 민영화 되었다는 말이 무색하다. 

특징적인 것은 김만제 회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포스코 출신이라는 점이다. 유상부 회장은 포스코를 떠났다가 다시 컴백한 케이스다. 역대 회장들은 나름대로 포스코 발전에 기여했다. 김만제 회장(1994~1998)은 철강 연관사업을 통합하고 화학, 정비 등 비철강 부문을 과감히 정리(매각)했다. 당시 김 회장은 “지금 나가면 일자리가 유지되지만 위기 때는 갈 곳도 없다”고 떠나야 할 직원들을 설득했다. 뉴욕 증시 상장도 김 회장 재임 시절인 1994년에 이뤄졌다. 김 회장의 이런 선견지명으로 포스코는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큰 위기 없이 넘길 수 있었다. 그는 재임 시 임금도 대폭 올려 우수한 인재가 몰리도록 했다. 

유상부 회장(1998~2003)은 특이한 케이스다. 그는 박태준 회장의 적자로 분류되어 박 회장과 함께 포스코를 떠났다가 박 회장의 배려로 화려하게 컴백했고, 또 박 회장과의 불화로 포스코를 떠났다. 그는 광양제철소 완공(2000년)과 민영화(2000년 10월)를  계기로 대대적인 PI(Process Innovation)를 추진했다. 또한 ERP(전사적 자원관리)와 6시그마를 도입하여 ‘철강 하드웨어에 소프트웨어의 날개를 달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동안 포스코에 개입된 수많은 이권을 시스템(PI)으로 해결했다. 한 예로 같은 규격의 고무벨트가 포항제철소에는 9000원에, 광양제철소에는 1만4000원에 납품되었다. 이권이 개입됐기 때문이다. 그는 광양제철소 납품회사에 PI 시스템을 보여주면서 스스로 받아들이도록 했다. 이러한 경영의 투명성은 포스코의 앞날을 밝게 했지만, 나중에 자신에겐 그늘로 돌아왔다. 

황경로 회장(1992년)부터 현 최정우 회장(2022년)까지 정확히 30년 동안 8명의 회장이 바뀌었다. 공통점은 ①회장은 정권교체와 함께 당연히 바뀌고 ②모두 임기 중에 교체됐다는 점이다. 포스코 회장의 ‘흑역사’다. 매번 ‘어~, 어~’ 하다가, 언제부터인가 ‘abNORMAL’이 ‘NEWnormal’이 되었다. 최근 장영준 산업부 1차관과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의장의 ‘포스코 책임론’을 갑작스러운 발언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드물다. 어쩌면 타이밍을 기다렸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철강업계의 여론이다.  

다행히 포스코는 하부구조(제철보국 마인드)가 워낙 탄탄해서 경영진의 임기 중단 사태가 발생해도 회사가 방향성을 잃지는 않고 있다. 시인 박목월이 작사한 포스코의 사가는 “끓어라 용광로여 조국 근대화”로 시작해서 “국민의 신뢰와 축복받아 무궁하게 발전하는 포스코”로 끝난다.  

그렇지만 아쉬움이 적지 않다. 회사의 최고경영자(CEO)가 내부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발탁되지 못하고 외부와 연계돼 낙점을 받는 듯한 의혹이 되풀이되니 말이다. 이런 양상의 후유증은 너무나 크다. 한 전직 제철소장은 “포스코는 과장 이상만 되면 차기 회장이 누가 될지, 누구를 밀어야 할지 걱정한다. 현 회장은 이미 인사권이 확정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필자는 이런저런 정치인들의 모임에 나갔다가 제철소(지방)에 근무하는 부장급 명함을 서울 음식점에서 받은 경험이 자주 있다.

지난해 4월 포스코에선 홍보·대관 라인이 모두 교체돼 업계의 관심이 쏠린 적이 있다. 철강업계 사정을 아는 이들은 최정우 회장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2021년 2월22일)한 이후 대외 파트 교체를 생각한 것으로 보고 있다. 눈길을 끈 대목은 대부분의 간부를 내부 직원이 아닌 외부인으로 교체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포스코 내부를 잘 아는 한 언론인은 “최 회장이 청문회 출석을 하면서 본인을 위해 일하는 내부 직원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라고 풀이했다. 어쩌면 ‘과장 이상만 되면 차기 회장을 찾는다’는 자조적 고백이 배경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인사 기조는 지주회사인 포스코홀딩스의 출범(2022년 3월2일) 이후에도 이어졌다. 지주회사의 대외업무 파트는 새로운 외부인사로 많이 채워졌다. 

포스코홀딩스 출범 후 무슨 일이

포항제철소 침수 사태로 최정우 회장의 교체설이 불거진 것은 마뜩하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최 회장 체제가 그 자체로 논란의 대상이 되어 온 사실은 짚어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최 회장은 2018년 7월 취임한 뒤 많은 일을 했다. 올해 3월의 포스코홀딩스 출범은 1968년 포항제철(현 포스코)이 세워진 뒤 55년 만에 이룬 ‘제2의 창업’이라고 불릴 만하다. 최 회장 스스로도 포스코홀딩스 출범식에서 “오늘은 포스코 역사에서 제2의 창업이 시작되는 날”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지주회사는 그룹 전체적인 시각에서 시대의 요구에 맞는 유연성을 추구하고, 사업회사는 분야별 경쟁 우위를 유지하는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지주회사를 중심으로 사업회사들의 경쟁력을 강화해 ‘친환경 미래소재 대표기업’으로 발돋움하자는 주문이다. 포스코가 친환경 미래소재 대표기업으로 키우고 있는 포스코케미칼의 경우 시가총액이 14조 원으로, 모기업 포스코홀딩스의 시가총액인 19조 원의 3/4 수준까지 와 있다.

앞서 최 회장은 취임 1주년인 2019년 7월 ‘포스코 기업시민헌장’을 선포하기도 했다. 이 헌장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포스코는 ‘더불어 함께 발전하는 시민기업’ 경영이념 하에 고객, 구성원, 주주 등 모든 이해 관계자와 소통하고 공감하면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혁신하여 궁극적으로 더 큰 기업가치를 창출하여 지속성장하고자 한다.” 그리고 회사의 로고를 ‘With POSCO’로 교체했다. 

최 회장은 또 포스코홀딩스 출범 한 달 뒤 전 직원에게 포스코그룹의 정체성 논리를 문서로 전달했다. 그 주요 내용은▶포스코홀딩스는 2000년 정부 보유 지분의 전량 매각에 따라 완전 민영화된 민간기업이다.▶포스코그룹은 철강을 넘어 친환경 미래소재 사업으로 균형성장을 지향하는 글로벌 기업이다.▶포스코그룹이 국민기업이라는 주장은 현실과 맞지 않으며, 미래 발전을 위해서도 극복되어야 할 프레임이다, 등이다. 

이 ‘정체성 논리’에서 가장 핵심적인 대목이 ‘대일청구권 자금이 사용되었으므로 국민기업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그 돈은 다 갚았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더 이상 국민기업이라는 이름으로 포스코를 향한 부당한 간섭과 과도한 요구는 없어져야 합니다. 이제 포스코의 애칭은 ‘국민기업’이 아니라 친환경 미래소재 분야의 ‘국가대표 기업’이 되어야 합니다”라고 마무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포스코 안팎에서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황경로 2대 포스코 회장, 안병화 전 포스코 사장 등 포스코 창업 원로 6명은 “포스코의 정체성을 훼손한 현 경영진의 자성을 촉구한다”는 취지의 성명서를 내고 반발했다. 이들 외에도 대한민국의 현대 경제사에서 포스코가 갖는 의미를 아는 많은 이들이 포스코의 주장에 의아해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 경제가 세계 10대 강국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초창기 우리나라 경제 설계자들은 국가 자원의 선택과 집중을 위해 혜안을 발휘했다. 산업의 기본이 되는 피(전기)와 근육(철강·석유화학)은 물론 신경(정보통신)에 모든 국가 자원을 집중했다. 그 중에서도 철강은 ‘집중의 집중’ 대상이었다. 선조들의 핏값인 대일 청구권자금을 종잣돈으로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가 탄생했다.(1968년 4월1일) 이 돈만이 아니다. 당시 정부는 세금과 이자 감면, 정부보증 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정부의 투융자예산을 모조리 포항제철 건설에 쏟아부었다. 법인세를 전액 면제해주고, 전기요금 등 공공요금까지 할인해줬다. 그야말로 ‘싹쓸이 지원’이었다.

이렇게 설립되고 지원을 받은 포항제철은 그 대가를 발휘했다. 양질의 철강 제품을 세계 최고로 경쟁력 있게 공급했다. 그 덕분에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와 조선 회사가 나왔고, 전기전자와 기계산업 등 모든 산업화에 필요한 철강제품이 공급됐다. 내부 경영도 훌륭히 수행했다. 창사 이후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이 늘 세계 최고의 수익성을 달성했다. 미국 민간 철강전략연구소인 WSD가 전 세계 철강회사를 대상으로 평가하는 경쟁력 순위에서 2010년부터 현재까지 포스코는 12년 연속 1위를 달리고 있다.

이러한 논란이 벌어지는 데는 나름 연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의문은 ‘정체성’이란 용어를 왜 사용했느냐는 것이다. ‘정체성’이란 계량적, 물질적, 법률적 용어가 아니라 탄생부터 성장 과정을 통해 형성되는 일종의 유전자(DNA)이고, 가치 규범이며 조직 행위의 준거틀이다. 이런 정체성은 독자적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생태계와의 상호 작용을 통해서 형성된다. 그런 까닭에 정체성은 오래가고 쉽게 변하지 않아, 상대성과 독립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섭씨 1500도 고온의 용광로 옆에서 작업하는 포스코 직원. (사진:연합뉴스)

중요한 것은 대다수 국민들이 정체성 논란보다는 포스코가 철강산업뿐 아니라 자동차, 조선, 가전, 기계산업 등 제조업 대한민국의 기틀을 제공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해달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애써 개념 정리하고 홍보하는 ‘기업시민’보다 국민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불러주는 ‘국민기업’이 더 자연스럽다. 특히나 기업에는 국적이 있다. 최근 한-일 간에 초미의 현안인 일제 시기 강제징용 배상 문제도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끝났다고 하지만, 우리 대법원은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에 배상 책임을 부과하지 않았는가?

호사다마(好事多魔)인가, 과유불급(過猶不及)인가. 최정우 회장 취임 후 의욕적으로 추진한 ‘포스코 기업시민헌장’과 직원들에게 배포한 ‘포스코그룹 정체성’ 문건, 그리고 그 논리를 담아 해마다 발행하는 <기업시민보고서(ESG보고서)>는 최 회장의 경영철학(?)과 의욕에 대한 궁금증을 낳고 있다. 요즘 개별 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자본시장과 국가 차원에서도 화두가 되고 있는 ‘ESG 경영’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사회적 책임’(Social)과 ‘지배구조 개선’(Governance) 등의 목표가 제대로 실천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사례를 보자.

ⅰ) 포스코홀딩스 출범은 포스코의 미래를 위한 의미 있는 출발일 수 있지만, 사전 준비 부족으로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본사 주소지 논란이다. 포스코홀딩스(지주회사)는 정관에 본사 주소지를 서울로 정했다. 지역사회는 섭섭하겠지만 이 자체를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본사 주소지로 사업의 주목적 수행과 직원들의 근무지를 고려하는 건 당연하다. 문제는 지주회사 출범을 전후해 이해관계자와 충분히 소통했느냐 여부다. 

이 문제로 지역사회와 격렬한 갈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포스코홀딩스는 지난 2월25일 지주사 출범(2022년 3월2일) 후에 본사 소재지를 포항으로 이전하겠다고 포항시와 합의했다. 그러나 그 이후 TF를 구성하고 논의를 계속하고 있지만 서로 갈등만 쌓이고 있다. 이런 와중에 광양제철소가 있는 광양지역과 전라남도에서 지주회사를 광양으로 유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현재 사태는 계속 악화하고 있다. 

또 포스코는 지주사의 포항 이전을 요구하는 1인 시위자에게 1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프레시안> 2022년 7월27일치). 물론 이 시위자의 주장에는 과도한 점이 있어 보인다. 지주사 본사 이전뿐만 아니라, 현 경영진의 미공개이용 주식 내부자 거래(현재 검찰 수사 중), 성폭력 축소·은폐·책임 회피, 포스코의 국민기업 정체성 부족 등의 다른 주장도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일은 지주회사가 벌였는데, 사업회사인 ㈜포스코가 “시위자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명예훼손 및 업무방해의 피해가 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런 대응이 기업시민헌장 정신(With POSCO)에 맞는지 의문이다.

ⅱ) 포스코홀딩스 출범을 위한 임시주주총회(2022년 1월28일)를 코앞에 둔 1월5일, 포스코는 “2022 사업연도까지는 지배주주 순이익의 30%를 배당으로 지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 회장도 같은 날 공개한 주주서한에서 “연결배당성향 30%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누구라도 포스코의 약속을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포스코는 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그 이후에도 약속 불이행에 대해 아무런 해명이나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당시는 지주회사 출범 이후에 포스코를 물적분할해서 재상장할 경우, 기존 주주들이 주가 하락으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런 탓에 지주사 정관에 물적분할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담으라는 여론이 나오는 등 주총이 소란스러워질 수 있는 분위기였다. 이런 사정을 되짚어 보면, 지주회사 출범 주총을 앞두고 의도적으로 주주를 기만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여지가 충분하다.

ⅲ) 지난 6월7일 포항제철소에서 사내 성폭력을 당했다고 한 직원(20대 여성)이 고소를 했다. 고소인은 직원 4명이 3년 동안이나 성추행을 했으며, 그 가운데 한 명은 새벽 2시30분께 막무가내로 자신의 집에 들이닥쳐 유사강간을 했다고 주장했다. 나머지 3명은 회식 자리에서 특정 부위를 만지거나, 업무 때 성희롱을 하는 등 피해자에게 성폭력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에 ㈜포스코는 직원 4명을 모두 업무에서 배제하고 간부 직원은 보직 해임했다. 그리고 2주가 지난 후 ㈜포스코 김학동 부회장은 “직원과 가족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많은 이해관계자들은 이 정도 사안이면 최정우 회장이 직접 사과를 해야 할 사안 아니냐며, 포스코그룹의 성인지 감수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해에도 50대 직원이 20대 신입 직원을 성추행하는 사건이 벌어지는 등 포스코에선 성폭력 피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포스코는 앞으로 어떻게?

기업은 국적이 있고, 좋은 기업이 좋은 사회를 만든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중요한 것은 사람, 이해관계자들이 더불어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가 ‘주주 자본주의’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가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반기업도 이러할 진데, 탄생의 역사적 배경(숙명)이 각별하고,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독점적으로 부여(운명)된 포스코라면 더 모범적일 필요성이 크다. 

조직은 스스로 진화하는 조직이 가장 좋은 조직이다. 스스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가치지향에 맞게 가치사슬을 잘 설계하고, 가치사슬상의 이해관계자들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이들에게 가치에 합당하는 보상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포항제철 박태준 회장의 육성이 나오는 추모 영상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가장 먼저 기억할 것은 대일 청구권자금으로 건설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지역사회의 이해와 협력도 기억해야 합니다. 포항제철을 위해 수많은 주민들이 정든 고향을 떠나야 했고 인내와 협조를 보내주었습니다. 그래서 지역사회와 포항제철은 공생·공영의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포스코는 출발부터 이해관계자와 함께하는 진정한 ESG경영의 실천자였다. 이러한 포스코의 DNA로 기업 생태계를 잘 설계하고 운영하는 것이 리더(회장)의 책무다.

https://www.youtube.com/watch?v=iuspZgyD7x0&ab_channel=%ED%8F%AC%EC%8A%A4%EC%BD%94TV


글쓴이 김경식은고철(高哲)연구소 소장. 오랜 철강회사 근무를 통해 ‘기업이 국력이고 복지다, 좋은 회사가 좋은 사회를 만든다’는 소신으로 관련 활동을 하고 있다. <중앙선데이>의 ‘김경식의 실전 ESG’ 연재 칼럼을 비롯해 여러 매체에 칼럼을 쓰고 있다. <한겨레> 열린편집위원회 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ESG경영위원을 맡고 있다. 저서로 <푸른연금술사>(공저), <사람중심 ESG를 말한다>(공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