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바깥에서 민주당 얘기를 듣는 이관후 수석 칼럼니스트의 인터뷰입니다. 임미애 경북도당 위원장을 만났습니다. 임 위원장은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경북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누구나 예상한대로 패배했습니다. 그런데도 ‘전국적인’ 유명세를 얻었습니다. 서울 출신의 ‘586’ 세대인 그는 서울과 담을 쌓고 경북 의성에서 농사꾼으로 살아가다 군의원, 도의원을 거쳐 도지사 후보로까지 ‘성장’했습니다. 보수 성향이 강한 경북지역에서 민주당 정치를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그가 바라보는 민주당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요? 인터뷰 내내 임 위원장은 ‘지방’과 ‘정치개혁’, 특히 선거제도 개혁을 강조했습니다. 선거제도의 개혁 없이는 지방소멸을 막을 수 없고, 정치 발전의 선순환도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그의 호소가 묵직한 울림을 줍니다. [편집자 주]

✔ 지방선거 패배로 화제에 오른 임미애 경북도당위원장✔ 서울과 단절하고 평범한 농부로 악착같이 살아✔ 정치가 촉발하는 지방소멸의 악순환, 선거제도가 문제✔ 허대만의 꿈, 선거제도 개혁은 586의 마지막 역사적 소명✔ 중앙당은 기득권을 내려놓고 지방 정치의 절박함을 알아야

사진: 이혜진(메디치미디어 디자인팀)

진 선거가 화제가 되다

이관후 : 지방선거에서 화제가 되셨어요. 접전이나 의외의 역전이 아니라, 선거 결과가 지는 걸로 예측됐는데 말이죠. 이런 경우는 거의 못 봤는데요. 밖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캠프에 파견 갔던 당직자나 보좌관들이 돌아와서 다 ‘임미애 팬’이 됐더라고요. 또 민주당에서 처음 경북에 가서 선거 해 본 사람들이, 이런 데서 선거를 하시는 분들이 있구나, 하고 반성도 했다고 하고요. 제가 여의도 바깥의 민주당을 만나보겠다고 했더니, 많은 분들이 추천해주셨어요. 경북에서 하는 민주당 정치, 어떠신가요?

임미애 : ‘경북에서 민주당 하는데 서운하지 않아요?’ 이렇게 묻는 분들이 있어요. 서운하죠. 우린 나름대로 한다고 하는데 유권자들이 별로 안 좋아 해주셔서 서운해요. 그런데 유권자들이 누구한테 표를 줄 때, 그 표를 제가 받아야 할 당연한 이유는 없어요. SNS에서도 ‘어떻게 저쪽을 찍을 수 있어? 저건 비상식이야’ 이런 말을 보거든요. 우리를 찍는 건 당연하고, 저쪽을 찍으면 이해가 안된다는 거지요. 

하지만 저는 살면서 느낀 게, ‘세상에 당연한 건 없더라’는 거예요. 나의 진심을 안 알아주니까 서운하기는 하나, 그렇다고 우리를 안 찍는 것이 그들이 무슨 욕을 먹어야 하는 일은 아니잖아요. 내가 얻는 한 표는 당연하게 얻어야 할 한 표가 아닌거고, 진심으로 감사한 한 표지요. 그게 좀 많아야 되는데, 적어서 서운한거지 (웃음).

보이지 않는 지방

이관후 : 그런데 왜 그런 지방에서 정치를 시작하셨어요?

임미애 : 제가 서울 출신이에요. 지방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죠. 그런데 농활 며칠 갔다 오고. 한 일주일, 열흘 살다 오는 거죠. 떠날 날이 정해져 있는. 그런데 저 시골에서 그분들은 평생 사는 거잖아요. 내가 너무 가식적인거죠. 그러다가 양심에 콱 찔리는 거에요. 지방에 온게 28년 전이에요. 그런데 그때 서울에서 살다가 느꼈던 것과 지방에 살면서 느끼는 게 너무나 차이가 많아요. 사람들이 지방에 대한 이해가 너무 없고 점점 심해져요. 거기에도 사람살아? 이런 거에요. 

이번에 포항에 수해났을 때도, 이런 이야기 했어요. ‘강남에 물이 들어서 잠기면 몇날 며칠을 떠들어 대는데, 포항에서는 사람이 죽어도 하루 뉴스 나오고 그만이구나. 사람 목숨 값도 지방에 있느냐, 서울에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구나’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이관후 : 재작년에 구례, 하동에 엄청 비가 와서 수해가 났을 때도, 실은 비슷했지요. 제가 그때 주말마다 서울-경남을 오가며 일할 때인데, 남부지역에서는 큰 홍수가 났는데, 서울은 땡볕이라 뉴스가 하나도 안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때 ‘비가 서울에도 와서 참 다행이다’라는 칼럼을 썼던 기억이 납니다.

임미애 : 그러니까 사람이 좀 삐딱해지는 거에요. 기후위기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지방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겪고 있는데. '겨울에는 난방이 세서 문 열어 놓고 살고, 여름에는 에어컨 틀어서 문 닫아 놓고 사는 서울 사람들이, 지방에 사는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겪는 그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니네가 알아?' 이런 마음이 드는 거지요. 정치인들도 지방에 와서 좀 살아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관후 : 정말 살아보면 다른 것 같아요. 저는 정부에서 잠깐 일할 때 공무원들하고 이야기 나누면서 ‘와서 보니 그래도 행안부는 승진과정에서 지방 근무를 거의 의무적으로 한다. 1급까지 가면 3번은 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그나마 좀 이해를 하는 편이다. 기재부나 이런 부처들은 지방 근무를 거의 안한다. 이래서는 균형발전에 대해서, 지방소멸에 대해서 정부가 대처하기 어렵다. 전 부처에서 과장, 국장, 실장 승진할 때마다 지방에 보내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곤 했어요.

임미애 : 우리 이번에 쌀값 이렇게 폭락하는데, 이미 현장에서는 몇 년 전부터 알았어요. 쌀 농사 안 지으면 지원금이  없어요. 그러니 다들 논농사만 하죠. 쌀 양이 많아지는 거에요. 이러면 안 되니 다른 작물도 지원 하자는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3년 시범사업을 하다가 2021년에 중단됐어요. 그러자 논농사가 작년부터 늘었죠. 다른 작물 지원하는 예산은 1,500억이면 되거든요. 지금 쌀 재고를 해결하는데 7,500억 든다고 해요. 얼마 전 지역 뉴스에서 나오는데, 전국의 창고에 올해 햅쌀을 넣아야 되는데, 이미 쌓아둔 쌀이 많아 갈 데가 없어서 교회 창고까지 빌려서 옮겨다 놨다는 거예요. 뭔 정치를 이렇게 해요? 기재부는 예산을 왜 이렇게 운용해요? 빤히 보이는 일을.

이관후 : 기재부가 그렇게 하면, 국회에서라도 예산을 조정했어야 하는데, 국회도 지역을 잘 모르는 것 아닙니까.

임미애 : 농업은 더 몰라요. 농해수위 의원들조차도 농업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정치가 촉발하는 지방소멸의 악순환

이관후 :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농해수위 위원들이 대부분 영호남에서는 각 당에서는 기득권이고 선거 열심히 안해도 당선되는 분들이잖아요. 그게 아무래도 영향이 있겠지요. 또 이렇게 지역이, 또 그 산업이 자꾸 정부 예산이나 이슈에서 사라지는 것에는 분명히 대표성의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인구가 수도권 도시로 몰리니까, 국회의원도 도시에서 계속 늘어나요. 그러면 악순환이 반복되죠. 제가 몇 년 전에 ‘일괄적으로 유권자수 비례성을 맞추는 게 무슨 절대적 선이냐? 도·농, 수도권·지방 같은 격차 해소도 중요하다’, 이런 말 했다가 이상한 정치학자라고 손가락질 받았죠.

임미애 : 우리 같은 지역은 4개 군이 하나의 지역구에요. 그런데 수도권은 구청장 한 명 있는 곳에 국회의원이 몇 명이에요. 이렇게 비대칭적인게 정상인가요? 지역구 국회의원이라고 하는데, 그 국회의원들은 어떤 지역대표성이 있을까요? 이런걸 서울은 몰라요. 생각을 안해봐요. 그렇게 인구비례성만 갖고 지역의 대표성을 이야기 하는데, 그게 맞아요? 인구비례만 헌법 가치에요?

이관후 : 어떤 정치학자나 법학자들이 인구비례성만 이야기 하길래, 제가 ‘당신들 다 서울 살지 않느냐?’ 그랬어요. ‘어디에 살든 우리 국민 모두가 기본적인 삶의 기본은 누리고 살아야 하는 것도 우리 헌법 가치다. 지역구가 농촌에서 15만 명이 한 단위의 유권자고, 서울에서 30만 명이 한 단위라고 하면 그게 무슨 큰일이 난 것 같고, 인구비례가 무슨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는데, 이게 과연 민주적·진보적 가치인지 근본적으로 생각을 좀 해봐야 한다’ 그랬어요. 그래서 이상한 사람 취급 받고.

임미애 : 아주 이상한 정치학자시네. (웃음)

이관후 : 그런데 사실 이렇게 되는 게, 의식적으로 ‘지방이 있다’고 생각하는 노력을 안하면 그런 생각 자체를 하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임미애 : 사실 더 화가 나는 건 언제냐면, 이런 지역 소외의 문제를 (우리 당의) 정치인들에게 이야기할 때죠. 공감해주기를 바라고, 같이 분노해주기를 바라니까. 그래서 자기들의 위치에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해주길 바라니까요. 그런데 이분들이 기존 질서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지 어느 누구도 자기 목소리를 내기 않아요. 심지어 ‘그게 되겠어’라는 반응까지 보일 때, 정말 화가 나요.

이관후 : 저는 이게 정당체제와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영호남에서 기득권 정당들은 지역에서 별일 안 해도 당선되니 정책적 관심이 적어요. 결국 유의미한 경쟁은 서울과 수도권에서 벌어지니까 예산과 정책 경쟁이 치열하거든요. 그런데 지역에서는 자기들 당장 공천 받아서 재선되는 것 외에 몇십 년 뒤에 이 지역이 과연 있을지 없을지. 이런건 서울은 고민 안해도 되지만, 지역에서는 큰 일이잖아요. 그래서 권역별 비례대표니, 석패율제니 이런 이야기도 나오지 않습니까?

선거제도가 지방소멸을 가져온다

임미애 : ‘선거제도와 지방이 무슨 관계가 있어?’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정말 밀접한 관련이 있어요. 우리 지방자치가 30년이 넘어서 자리를 잡고 자기 역할을 해야할 것 같은데, 지금 경쟁이 없는 많은 지방에서는 천만의 말씀이에요. 오히려 지방자치가 빠른 속도로 실종되고 있어요. 이게 지방 소멸과 직접적으로 연동되어 있어요. 

경북 같은 지역은 지방선거에 나갈 사람이 없어요. 대구에서 광역의원 68%, 경북도 30% 이상이 무투표 당선이에요. 안될 것 같은데 누가 선거를 나가고 누가 정치를 해요? 기초의원은 후보군이 아주 얇아요. 과거보다 자질이 더 좋다고 말할 수 없어요. 정치를 할 만한 사람들은 안 나서요. 지역사회에 기여를 하고 싶어도, 선거에 나와서 떨어지기느니 다른 분야에서 활동을 하지요.

이관후 : 그래도 국민의힘 쪽은?

임미애 : 경북 국회의원 13명 보세요. 지방에서 커나가는 사람이 없어요. 다 서울에서 출세해서 내려온 사람들이에요. 이제 지방의 대표성인가요? 얼마 전에 경북 어디의 민주당 원로 당원들이 저에게 2년 뒤에 자기 지역에 출마해달라는 거에요. 제가 '연고도 없는 거기에 어떻게 나갑니까' 그랬더니, 그러면 서울에서 사람을 데려와 달라는 거에요. 

이관후 : 그런데 그 이유가 제도 때문이다?

임미애 : 이게 왜 지방정치에 영향을 미치냐면요. 그나마 기초에서 중대선거구에서 3인이니까 한명이 된다고 해도 한두번, 두세번 당선되고 나면, 광역에 나가야 되잖아요. 그 다음엔 성장해서 총선에도 나가고. 그런데 광역부터는 당선이 불가능해요. 선순환이 없어요. 기초에서는 두번 세번 번 당선되면 이제 40대인데도 그만 해야 되요. 이게 뭐에요? 이렇게 돼서는 실질적인 지방 정치가 지속가능하지 않잖아요. 지방정치의 실종은 지방의 소멸과 결코 다른 문제가 아니에요. 지방 소멸을 막고 싶으면, 선거제도를 개혁해서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줘야죠.

이관후 : 선순환의 구조가 위가 닫혀있으니까 작동이 안된다는 거군요. 그러면 기초의원처럼 국회의원도 중대선거구제가 그런 지역에는 좋을 것 같은데요. 

임미애 : 저는 그게 필요하다고 보지만, 그게 되겠냐는 사람들이 많죠. 권역별 비례대표제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조금 더 가능성을 두더라고요. 그런데 사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정당 중심의 다양성을 높인다는 비례대표의 원래 취지하고는 잘 안맞는 거잖아요. 저는 그러면 중대선거구제도 못할게 뭐냐는 거예요. 경북에서 지역구가 13개인데, 권역별 비례제를 할거면 지역구를 4~5개로 합쳐서 3~4명씩 뽑자는 거지요. 저는 이 주장을 해 볼거고. 만약에 권역별 비례제를 한다고 하면 석패율제를 안하면 의미가 없어요. 석패율제가 없으면 누가 지역에 출마해요? 그냥 권역에 비례대표를 신청하지. 지금 개정안에는 이 두 가지가 연동이 안되어 있어요. 그러면 의미가 없는거죠.

선거제도 개혁은 586의 역사적 소명

이관후 : 정치개혁이라는게 사실 기득권을 가진 현역 의원들이 그걸 포기하게 만드는 거니까, 참 큰 동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매번 잘 안되고. 

임미애 : 저는 선거제도의 변화를 정말 간절히, 절박하게 원합니다. 선거제도 변화 없이는 지방정치도, 중앙정치도 희망이 없어요. 저는 이른바 '586'이지만 이제  막 정치를 시작하는 사람인데요. 이 세대에 대해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전 우리 세대에게 역사적인 소명이 있다고 생각해요. 87년 6월 항쟁을 통해서 대통령 직선제를 이뤘다고 생각하면, 지금 우리나라를 보세요. 한 세대가 넘어서 이제는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시민들의 요구가 다양해졌잖아요. 그런데 지금 제도가 그걸 담아낼 수 있는 정치적 제도가 아닙니다. 문화도, 경제도 일류인데, 정치만 가장 후진적이잖아요. 이것을 바꾸어내는 제도 개혁, 특히 그 중심에 선거제도 개혁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걸 우리 세대가 마무리 짓고 떠나는 게 우리 역할이라고 봐요. 이걸 하지 않으면 정말 안되는 거예요.

저희 다음 세대에 새롭게 민주당으로 정치를 해보겠다는 젊은 친구들이 있어요. 경북에도 있어요. 저는 그 친구들에게, 지금의 이 제도 하에서 민주당으로 정치하라고, 차마 양심상 못해요. 그렇다고 여기서 선거 출마해서 정말 '쎄가 빠지게' 뛰어다니고 떨어진 그 친구들을 중앙당이 좀 챙겨서 앞길을 열어주나요? 그것도 아니잖아요.

이관후 : 이번에도 당에서 선출된 최고위원들이 다 수도권이에요.

임미애 : 민주당은 수도권 정당이죠. 

사진:이혜진(메디치미디어 디자인팀)

왜 지방에서 정치를 하게 되었나?

이관후 : 처음부터 지방정치의 어려움, 지역소멸 이야기를 참 사무치게 하셨는데. 원래 서울지역 대학의 총학생회장도 하고, 민주화 시대를 주역으로 보내셨어요. 그러다가 경북에는 어떻게 가셨어요?

임미애 : 92년에 결혼하고 처음 갔죠. 그 뒤에는 서울하고 일부러 거리를 두고 살았어요. 전혀, 아무도 안 만났어요. 그 20대를 내가 스스로 정리하지 않으면, 잊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활동도 했었는데요. 2010년대 중반에 민주당 혁신위원회 활동을 하니, 신문에 이름이 나왔나봐요. 그때 민가협 어머니들 몇 분이 전화를 하셔서, ‘나는 네가 죽은 줄 알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이관후 : 사람들이 죽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왜 그렇게까지 단절을 하시려고 했어요?

임미애 : 저는 20대에 제 하고 싶은 것 하고, 나름 화려하게 살았거든요. 그런데 사람이 20대의 그 경력만 평생 우려먹고 살 수는 없잖아요. 그러면 안되는 거잖아요. 저도 지방에 가서 알았지만, 시골에 가면 정말 눈만 뜨면 일해야 되고, 그렇게 해야 겨우 먹고 살 수 있어요. 저는 어렸을 때 어려움 없이 살았거든요. 그런데 제가 농사를 짓고 살아보니 먹고 사는 게 너무 힘든거에요. 제가 엄마한테 전화해서 그랬어요. ‘엄마, 사는 게 원래 이렇게 힘들어? 사는데 이렇게 돈이 많이 드는지 몰랐어.’

이관후 : 왜 그렇게 힘들게?

임미애 : 그러게 말이에요? (웃음) 그런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루종일 산업현장에서, 농어촌에서 그렇게 죽을둥 살둥 버텨 내는데요. 그런 생각이 드니까, 서울의 삶들과 단절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관후 : 그렇게 힘들게 살지않는 선택을 하실 수도 있었잖아요.

임미애 : 지금도 사실 잘 이해는 안 가는데. 왜 후회한 적이 없겠어요? 있지요. 애들이 연년생 남자애들인데, 처음 농사지을 때, 아이들을 거의 돌보지 못했어요. 그러면 애들이 그냥 땡볕에 밭에서 놀다가 지치면 밭 한 귀퉁이에서 잠이 드는 거예요. 애들한테 미안했던 건 있어요.

아이들 급식 때문에 기초의원이 되다

이관후 : 그러다가 2000년 초반에 남편 분과 같이 정치를 시작하셨는데요. 

임미애 : 지금 생각해보면, 참 여기까지 오게 될 줄 몰랐죠. 전혀 그런 생각 해본 적이 없어요. 경북에 와서 그냥 농사 짓고 사는데, 2002년에 남편이 '노사모' 활동을 해야겠다는데, 그래 그 정도는 좋다, 이랬어요. 그런데 나중에 열린우리당이 만들어지고 2004년 총선 때가 되는데 출마자들이 나오잖아요. 그런데 우리 지역에서 노사모 활동을 했던 저희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는 그런 사람이 후보가 될 것 같은거예요. 그래서 남편이 본인이 선거에 나가겠다고 하는데, 제가 굉장히 반대를 세게 했어요. 실제로 공천도 어려웠는데, 당시 김근태 의원이 마지막에 힘을 써주셔서 어떻게 우여곡절 끝에 공천이 됐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게 뭐 좋은 거라고.

그때 선거하면서 처음 알았어요. 경북 사람들이 민주당 쪽에 대해 가진 심리적 벽이 그렇게 높은 줄을. 찬조연설자 한 명을 못 구해서, 할 수 없이 제가 유세차를 타고 군위, 의성, 청송을 다 돌아다녔죠. 당시만 해도 그 반감이 심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지금도 제가 어디서 어떻게 유세를 했고, 사람들이 저한테 뭐라고 했는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게 나요. 그때 상처가 너무 커서, 지금도 별로 안 가고 싶은 지역이 있을 정도에요.

그런데 그때, 우리 지역 분들이 저를 눈 여겨 봤던 것 같아요. 2006년에 지방선거제도가 바뀌었잖아요. 중대 선거구로. 비례대표제도 생기고. 그런데 제가 비례대표로 나올거라는 소문이 퍼진거예요. 근데 저는 나간다면 ‘떨어지더라도 지역으로 나가야지’라는 생각을 당연히 했죠. 사실은 그전에도 전혀 생각은 없었어요. 결정적 계기가 된게 우리 아이들 급식이에요. 제가 초등학교 어머니회장을 했는데, 아이들이 밥이 너무 맛이 없어서 다 남겼다는 거에요. 어머니들이 식재료 검수를 했는데, 거의 다 중국산인거에요. 고추장, 된장 같은 장류는 아주 다 중국산이고요. 거기다 쌀은 정부미고.

이관후 : 아니 도시도 아니고, 부모들이 다 농사를 짓는데.

임미애 : 억울한거죠. 농촌에 살면서 다른 건 다 부족해도, 아이들 먹는 것은 그래도 제대로 해야 하는 것 아니에요? 그런데 이유를 보니까, 급식비가 너무 싼 거에요. 그래서 국내산 농산물을 쓸 때 끼니당 지원비를 좀 주자고 했죠. 처음에 끼당 25원, 그다음 50원, 100원. 이렇게 지원을 했어요. 이런 걸 하면서 기초의원으로 활동을 하게 됐지요. 그러면서도 언제든지 다시 농사로 돌아가야 되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어요. 여기까지 올 거라고 진짜 한번도 상상도 안했어요.

너무 힘들어서 안해 본 게 없다

이관후 : 농사 짓는 게 좋으셨어요?

임미애 : 솔직히 농사만 지어서 먹고 살기는 어려웠어요. 1992년에 사과 값이 상자당 7천원이었어요. 열심히 농사 지어서 2000 상자를 창고에 넣어놨는데, 그러면 도매상인들이 와서 값을 후려쳐서 사가는 거죠. 헐값에. 지금 같은 온라인 경매 이런 게 없었어요. 벌써 30년 전이잖아요. 너무 싸게 넘겼죠. 지금은 질만 좋으면 4만원, 5만원도 받는데.

이관후 : 그때는 가격 결정권이 농민들한테 너무 불리하게 되어 있었죠.

임미애 : 지금은 택배, 직거래, 경매 이런 게 생기니까 결정권이 농민들한테도 많이 커졌죠.  1톤 트럭에 10킬로그램씩 포장을 하면 80개가 들어가요. 그전까지는 도매로 15킬로 포장을 했어요. 우리가 92년에 10킬로 포장으로 택배 사업을 처음 시작했거든요. 이런 식으로 지역사회에서 많은 걸 바꿨어요. 농사를 지으면서도 바꾸는 게 많아요. 안해 본 게 없어요. 농림부도 시작 안했을 때 우리가 먼저 전자상거래를 시작했거든요. 우리 돈까지 더 써가면서 개척했죠. 전국 단위에서 생산자와 소비자 만나는 농산물 직거래 같은 것들을 처음 시작했어요. 그때 2만원짜리 팔아서 1억 넘게, 다른 분들 것까지 다 팔아드렸죠. 그렇게 열심히 살아서 이제 겨우 좀 살아볼 한데, 남편이 갑자기 정치를 한다고 하니까 얼마나 마음이 갑갑하던지.

선거제도 개혁을 굳게 결심한 이유, 허대만

이관후 : 그런데 그렇게 시작한 정치가, 게다가 경북에서 민주당 정치하는 것 아닙니까? 갑갑했다는 게.... 얼마 전에 돌아가신 허대만 전 경북도당 위원장님 생각이 나네요. (*임미애 위원장의 전임인 허대만 전 경북도당위원장은 26세에 포항에서 기초의원에 당선된 후, 포항에서 민주당계열 정당으로 7번 나가서 모두 낙선했다. 암으로 투병하다가 지난 8월 22일, 53세로 별세했다)

임미애 : 제가 4월 29일에 당에서 공천확정 연락을 받고, 곧바로 30일에 가서 만났어요. 포항의 도의원 후보 사무실 개소식이 있었어요. 그 전에 회복중이라고 해서 봤는데, 완전히 아닌 거에요. 머리가 빠지고, 얼굴은 까맣고, 복수가 차 있고. 과거의 허대만의 모습이 없어요. 그런데도 목소리는 쌩쌩해서, 전날 다 전화를 해서 사람들을 불러 모았더라고요. 제가 도지사 선거캠프를 포항 쪽에 하고 싶다고 했어요. 포항에 시의원이 여러 명 나오고 도의원 후보도 있고 하니까, 어떻게든 도와서 한 사람이라도 더 당선시키고 싶었거든요. 

허대만 위원장이 그 자리에서 선거 캠프에 대해서 사람 구성이나 이런 것들을 다 정리를 해줬어요. 그리고 운전을 해서 다시 오는데, 너무 힘들어서 집까지 올 수가 없는 거에요. 운전을 할 수가 없어서... 그 때 결심이 섰어요. ‘지금 민주당은 저런 이들의 삶이 하나 둘 갈아 넣어져서 여기까지 온거다. 이제 정말 선거제도 개혁 싸움을 시작해야 되겠다’.

경북도당위원장을 지낸 고 허대만. (사진:연합뉴스)

이관후 : 지방 선거 이후에 다시 농사로 돌아가지 않으신 이유도 관련이 있으신거죠.

임미애 : 도지사 선거에 나갈 때, 도당위원장 선거는 나가야겠다고 이미 생각을 했어요. 도지사 선거가 사실은 저한테는 정치의 시작이었고, 그래서 그게 결심이 어려웠어요. 그전까지 기초의원, 도의원은 말 그대로 지역에서 필요해서 한 거고요. 정치는 남편이 하고 있으니까. 사실 제가 농사도 낫고, 경제관념도 더 있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농사를 짓는 게 낫죠. 그런데 남편이 표를 얻는 것, 대중적 스킨십 같은 것은 저보다 약한데.

이관후 : 남편 분이 김현권 전 국회의원이신데, 이거 인터뷰에 나가도 됩니까?

임미애 : 사실인데요 (웃음). 둘이 좀 달라요. 제가 스킨십은 더 낫고, 그런데 정치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건 또 남편이 나은 것 같아요. 저는 사람들을 잘 만나는 스타일, 남편은 복잡한 일을 잘 풀어서 성과를 잘 내는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둘 중 한 사람이 정치를 하면 남편이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제가 도지사 선거 제안을 받아들이고 결심했을 때는, 저도 정치에 뛰어든다는 확실한 생각이 섰던 거죠. 선거 출마 자체가 제가 정치를 시작한다는 선언 같은 거였어요.

진짜 정치인이 되다

이관후 : 그런데 도당위원장 선거라고 아주 쉽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요. 

임미애 : 도당위원장 선거에서 남편이 도움이 안됐어요, 오죽하면 제가 ‘당신이 가장 큰 약점이야’라고 직접 이야기도 했어요 (웃음). 두 가지 네거티브가 있었어요. 하나는 남편이 지역위원장인데 부인이 도당위원장을 나간다. 다른 하나는, 제가 치밀한 계산 속에서 2년 뒤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하기 위해서 도당위원장을 하려고 한다는 거예요. 

이관후 : 그래서 대응은요?

임미애 : 첫 번째로 ‘(떨어질 것 같은) 도지사 후보는 되고, 도당위원장은 안 된다’, 이건 말이 안된다고 했어요. 도지사 후보가 된다면 도당위원장 후보도 될 수 있는 것 아니냐, 이렇게 말을 했고요. 두 번째는, 저는 사실은 비례대표는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한번도 비례대표 신청 서류를 내본 적도 없고요. 누가 물어보더라고요. 왜 한번도 그 생각을 안했냐고. 그러게요. 왜 그랬나 몰라요.

그런데 저는 2006년에 기초의원에 출마하면서부터 항상 당선됐어요. 지방에서 제 역할에 주어진 것 열심히 하겠다는 것외에 생각해본 적이 없고,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을 해야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거든요. 정치에 본격적으로 확 뛰어드는 것보다는 지역의 주민들하고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았으니까요. 그런데 자꾸 이걸 문제 삼으니까 제 태도를 바꿨어요.

“제가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될 수 있다면 하겠다. 그리고 2년 국회의원을 하고, 그리고 2년 뒤에 국회의원 경력을 갖고 도지사 선거에 또 출마하겠다. 이번에 민주당 도지사 후보로 나선 제가, 도의원 경력만 갖고 유권자들에게 표를 달라고 하는게 사실 좀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제가 더 많은 경험과 경력을 쌓고, 더 당당한 도지사 후보가 될 수 있다면, 그 기회가 있다면 하겠다”, 이렇게 답을 했어요. 그랬더니 그 뒤로는 조용해졌어요. 

이관후 : 그 순간에 갑자기 정치인이 되신 것 같은데요. 

임미애 : 그런가요? (웃음) 도당위원장 출마할 때 목표는 하나였어요. 선거제도를 바꾸는 데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겠다. 그리고 공론화 시킬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찾아보겠다, 하는 것이었어요. 

제가 어제 국민의힘 천하람 당협위원장(순천·광약·곡성·구례갑)을 만났어요. 선거제도 개혁과 관련해서 영남의 민주당에서는 일정한 지지와 당세가 있으니까 이야기가 좀 나오지만, 호남의 국민의힘은 그렇지 못하죠. 천하람 후보가 2020년 총선에서 순천에서 3%를 얻었어요. 근데 이번 지방선거에서 전남 도의회에서 국민의힘 비례대표가 한명 당선됐어요(11.8% 득표). 순천에서는 국민의힘 비례대표 시의원이 전남지역에서 사상 최초로 당선됐어요(13.1% 득표). 이제 호남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어요.

그런데 선거제도 개편 문제를 논의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은 오히려 민주당 내에 있어요. 민주당 안에서는 호남에서 국민의힘을 협상의 대상, 정치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아요. 그런데 거기서 3%든, 2%든 전체 국가 입장에서는 집권 여당인데, 당연히 협상을 해야 하는 파트너죠. 그러니 저라도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을 해보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쉽지가 않아요.

이관후 : 어려운 일이죠. 저는 선거제도 개편과 관련해서, 한꺼번에 다 하려고 하지 말고, 좀 점진적으로 간다는 생각을 했으면 싶어요. 연동형 비례제를 한다면 한꺼번에 50석, 100석 늘리려고 하지말고 단계적으로. 지금 국민들이 연동형은 원하는데 의원정수 확대는 강하게 반대하거든요. 그럼 처음에는 전체 의석수는 그대로 두되 지역구를 조금 줄이고 비례대표를 조금 늘리고, 대신 그 늘어난 의석은 권역별 비례제로 배정을 해서 석패율제를 함께 시행하는 거지요. 그 다음 선거에서는 의원정수를 확대하면서 비례 비중을 더 늘리고.

이렇게 몇 차례를 해서 단계적으로, 나중에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도 없애는 완전한 연동형 비례제로 가는 게 맞지 않나 싶어요. 그 과정에서 비례대표들이 더 수준이 높아져야 되고, 국민들이 ‘저렇게 잘하는 비례대표들을 더 늘려줘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도록 말이지요. 그렇게 단계적으로 국민들의 동의를 얻어서 가는 게 맞지 않나 싶거든요. 

이 과정에서 현역 의원들을 다 기득권으로 몰지 말고, 권역별 비례대표도 신인에게만 오픈할 것이 아니라 다선의원들도 자격을 주고, 좋은 지역구에는 신인을 발굴해서 내보내고. 다선중진 의원 중에 국회와 당에서 역할이 필요하신 분들을 비례대표로 일정하게 모시고, 본인들의 좋은 지역구에는 영입한 신인들을 내보내줘야 안정적으로 정치를 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정치개혁으로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임미애 : 저도 똑 같은 생각이에요. 우리가 국가보안법 문제를 아직도 이야기 하잖아요. 지난 노무현 정부 때 하나라도 고쳤으면, 뭐가 바뀌었어도 바뀌었죠. 한꺼번에 다 하려다가 잘 안된거잖아요. 오늘 시・도당위원장들 회의에서도 '지금 민주당이 야당이 되었는데 뭘 해야 되느냐' 하는 그런 이야기가 나왔거든요. 정치개혁에 대한 이슈를 선점해서 풀어 가보자. 대여투쟁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느냐. 그건 그것대로 하더라도, 다음 선거에서 우리당이 주도권을 잡으려면 그 이슈는 정치개혁밖에 없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정치개혁의 핵심은 선거제도 개혁이지요. 이것을 전면적으로 당이 어느 시점에 내건다면, 그전에 사전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잖아요. 당이 이런 것들을 해 나가야 하지 않는가 싶은 거지요. 그런데 당 안에서는 왜 그런지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가 너무 힘이 들어요. 

이관후 : 정치개혁이라는게 딜레마가 그런 있지요. 다른 입법이나 정책과 다르게, 이 부분은 본인들이 스스로의 기득권에 손을 대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선의’와 ‘낙관’만 갖고 하기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어쨌든 중요한 것은, 지금은 정부와 여당 비판만 해서는 민주당이 득점하기는 어렵다는 것이거든요. 뭔가 다른 대안을 내놓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요. 도당위원장 되시고 나서 ‘토론식 정치학교’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셨어요. 어떤 맥락이신지?

임미애 : 작년에 제가 경북도당 교육연수위원장을 할 때 구미에서 해봤어요. 보통 교육이라면 강의 프로그램이 많은데 그 한계가 좀 있지요. 그것도 하면서 토론을 주로 했어요. 정치에서 상대의 입장을 공격하는 경우는 많지만 생산적인 논의가 되려면 상대의 이야기를 잘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출발을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동안 그렇지가 못했어요. 이런 토론이 없으면 우리의 논리도 빈약해지지요. 그래서 10꼭지를 정해서 토론식으로 계속 진행을 했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이 토론에 참여했던 분들 중에서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를 해보겠다는 분들이 여럿 나왔어요. 특히 그때 민주당원도 아니고, 단지 이런게 있다는 현수막을 보고 참여했던 분이, 자기 가족과 주변 분들이 다 보수적이고 국민의힘 지지자인데, 이번에 입당을 하고 도의원 선거에 출마까지 하셨던 사례가 나왔어요. 

박정희의 생가가 있는 선산에서 출마를 했는데, 최진욱 후보 그분에게 당선을 생각하지 말고 '어디를 가도 최진욱이 보이네, 여길 가도 저길 가도 후보가 보이네'라는 말이 나오도록 열심히만 해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정말 열심히 하셨고, 특히 아이들하고 잘 놀아주고, 진짜 인기가 좋았어요. 그랬더니 시의원보다 더 득표가 높게 나왔어요. 토론 정치학교를 통해서 이런 젊은 친구들을 찾아낼 수 있었죠. 그럼 이 프로그램을 경북 전체에서 해보자, 이런 생각인거에요. 

이렇게 찾아낸 젊은 일꾼들이 있다면 이분들을 중심으로 청년 대변인단을 구성하고 싶어요. 경북에서 민주당이 논평을 내도 언론이 잘 안 실어주거든요. 그런데 논평 자체도 잘 안 내요. 선거 때를 제외하면 도정은 도정대로 그냥 굴러가고, 민주당은 존재감이 없는 거에요. 유권자들은 생활 속에서 도정에 대한 민주당의 입장을 모르는 거지요. 제가 도당위원장 되고 8월부터는 도정에 대해 계속 논평을 냈어요. 그런데 한명의 당직자가 도맡아서 하기는 어렵거든요. 그래서 청년 대변인단을 구성해서 트레이닝도 시키는 거지요. 

우리같은 지역에서 문제는, 민주당으로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이 없어서가 문제가 아니라, 그런 사람이 온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그분들에게 어떤 기회도 제공을 못하고 있다는게 문제에요. 어떤 방식으로든지 그분들이 경험을 쌓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기회를 만들고, 이런 것들을 해야겠다는 생각이지요.

제가 이번에 국회의원들을 만날 때마다 이야기를 했어요. '보좌관이든, 비서관이든, 인턴이라도 좋다. 연락을 달라. 기회를 달라. 우리 지역에 정말 좋은 인재들이 있다'고요. 똘똘한 청년들이 많아요. 그런데 정치를 하고 싶어도 기회가 없어요. 민주당에서 경북 출신 보좌관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에요. 제가 이번에 선거하면서도 보도자료 쓸 사람, 그런 경험이 있는 단  한 사람이 없어서 처음에 너무 힘이 들었어요. 저는 제가 도당위원장이 되고, 2년 뒤 총선에서는 이런 시스템을 갖춰서 그런 부분에서는 출마자들에게 부담 안주고, 도당에서 다 뒷받침해주는 그런 실력을 갖추고 싶어요. 그렇게 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노력할겁니다.

민주당은 뭘 해야 지지를 받을까?

이관후 : 시간이 금방 지났네요. 마지막으로 앞으로 민주당이 무얼 잘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국민들에게 지지를 받고 선거에서도 이기고 수권정당이 될 수 있을까, 이 이야기를 좀 해주시면 좋겠어요. 앞에서 정치개혁 이야기 하셨고, 또 더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임미애 : 저는 선거 때 무슨 생각이 들었냐면, '검수완박'은 할려면 더 진작했어야지 왜 이걸 지금 하나, 이런 생각을 했어요. 저희가 촌에 앉아 있지만, 2020년에 우리가 압도적인 다수당이 막 되었을 때, 그때 우리가 정치개혁 같은 걸 곧바로 들어가면 민주당은 산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우리가 뭔가를 가졌다고 생각할 때, 바로 그때 우리가 기득권을 포기하고 내려놓는 모습을 보이고 정치개혁의 로드맵을 약속하고 실천하고 한다면 좋았을텐데. 그럼 국민들이 진심으로 지지를 해주지 않을까 하는 거였죠. 그런데 안했어요.

이관후 : 선거에서 3번을 연속해서 이기고 나니까,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은 안 한거죠. 그 결과는 우리가 지금 보듯이...

임미애 : 여기서 궁금해지는 거예요. 진짜 그렇게 오만해도 된다고 생각한 건가? 여의도에서만 먹고 사는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하는 게 가능했을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한 발짝만 여의도를 벗어나도 국민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을 안 하는데요. 

저는 그때, ‘지금 3번 연속 국민이 지지를 보내줬을 때, 정치개혁해서 기득권을 내려놓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우리 다음 선거 이기기 어렵다. 정국의 주도권을 우리가 가져가기 힘들다’ 이렇게 생각했거든요. 

냐하면 유권자들은요, 때로는 많은 것을 허용해주는 것 같지만 굉장히 예민해요. 제가 경북에서 맨날 느끼는 게 뭐냐면, 유권자들의 마음은 유리그릇 같아서 깨지기도 쉽고요, 대신에 한번 믿음을 주면 그래도 일정한 기간을 믿어줘요. 그런데 이게 깨지기 시작하면, 돌이키기가 어려워요. 

이관후 : 한쪽에서 금이 가기 시작하면 쭉 퍼져서 쩍 갈라지고.

사진:이혜진(메디치미디어 디자인팀)

‘그래도 없는 사람 살기에는 민주당이 좋았다’는 말

임미애 : 2002년에 한 정치평론가가, 이제는 유권자 지형이 변해서 보수가 다시 집권하기 어려울거다, 이랬어요. 저는 당시에 경북 농촌에 살면서 굉장히 큰 위로를 받았어요. 나는 이렇게 농사나 지으면서 살지 몰라도, 그래도 우리 세력이 계속 이긴다면 좋겠다, 이런 자부심이 있었어요. 그런데 불과 2-3년 만에 확 뒤집어졌잖아요. 지금도 똑 같아요. 의석수만 많다고 오만하게 하면 어떤 결과가 올지. 유권자의 마음을 알아야 해요.

이번에 쌀값 안정화를 위한 ‘양곡관리법’이 농해수위 소위에서 통과가 되었잖아요. 민주당이 통과를 시키고 국민의힘은 기권을 하고 나갔죠. 이걸 경북에서 모든 농협 앞에 현수막을 걸었어요. ‘민주당은 합니다, 국민의힘은 협조하라’ 이렇게요. 그동안 현수막은 중앙당에서 뭐 걸어라, 이렇게 할 때만 했거든요. 처음으로 도당에서 판단해서 해보자 하고 했어요. 그랬더니 농민들이 와서 보고 ‘그래도 없는 사람 살기에는 민주당 정부가 나았던 것 같아’, 이러시는 거예요. 생전 처음 듣는 말인 거에요. 

이관후 : 그런 말을 현장에서 들으면 눈물이 막 날 것 같은데요.

임미애 : 그러니까요. 처음 듣는 말이에요. 이 사람들이 한번도 민주당 찍지 않았던 사람들인데, 쌀값 안정화에 반응하는 거예요. 쌀값 내년에 또 떨어질겁니다. 농기계에 쓰는 경유 기름값이 얼마나 올랐어요? 계속 올라요.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그래도 없는 사람 살기에는 민주당 정부가 좋았지’ 이러는데, 갑자기 힘이 확 나는 거예요. ‘그래 어쩌면 이거일지도 몰라’, 이 생각이 들었지요.

얼마 전에 4개 시도당이 상생협약을 해서 당세가 좋은 지역으로부터 지원을 좀 받았어요. 그 돈을 저는 올해 다 쓴다고 했어요. 우리가 민생에서 잘하는 것 현수막 걸고, 우리 도민들 만나는 데 다 쓰겠다고 했어요. 그 첫 번째가 이 현수막이었어요. 이렇게 조금씩 다가서면 마음이 열리지 않을까요?

이관후 : 차곡차곡 쌓는 거죠. 그런데 참 이렇게 지역에서 눈물겹게 차곡차곡 쌓아가면, 중앙정치에서 또 한방에 잃고 이런 일들이 있잖아요. 

표가 적어보이죠? 절박하게 뛰어서 얻은 소중한 표에요

임미애 : 지난 지방선거 때도 진짜 지역에서는 다들 죽을둥 살둥 뛰어다니는데, 서울에서 뭐 하나 잘못해서 한방에 날라가고. 그럴 때는 정말... 제가 선거하는 과정을 어디에서 다큐를 찍으러 왔었어요. 그런데 며칠 있더니 이해할 수가 없다는 거에요. 떨어지는게 뻔한 선거를 기어코 나와서 뛰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는데, 도대체 어떤 마음이냐는 거에요. 카메라로 찍는 분이 이렇게 말씀 하시더라고요. 자기가 놀랐대요. 결과가 예상되는 선거니까 건성으로 할 줄 알았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결과를 알고 있는 후보가, 캠프가, 마치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하면 당선될 것처럼 절박하게 뛰더라는 거예요. 그 이야기를 딱 들으면서 ‘우리는 늘 이렇게 절박하게 뛰어서, 그래서 요만큼 얻었던 건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웃음) 표가 적어보이죠? 그런데 그게 그냥 얻은 게 아니에요. 늘 그렇게 절박하게 해서, 그래서 이만큼 얻는 거에요.

* '슬의생'에 나왔던 전미도 배우. 딱 그 느낌이었다. 사람에게 참 따뜻하지만, 그 힘으로 일은 누구보다 깐깐하게 하는 사람. 보면 힘이 나는 사람. 임미애 위원장은 그런 사람이었다.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3시간의 인터뷰가 죽 이어졌다. 미처 글로 다 옮기지 못한 많은 이야기를 했다. 허대만 전 위원장 이야기를 할 때는 서로 잠시 목이 멨다. 혼자서 책가방을 메고 왔던 그 모습대로, 갈 때도 기차 시간 때문에 서둘러 짐을 챙겨 청량리역으로 떠났다. 여의도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경북 의성에서 새벽에 올라와, 밤중에야 집에 도착했을 것이다. 영남의 민주당, 호남의 국민의힘에서 정치를 하는 이들을 새삼 떠올렸다.


글쓴이 이관후는피렌체의식탁 수석칼럼리스트다.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국회에서 6년간 일했다. 영국 런던대학교(UCL)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서강대, 경희대 등에서 강의했다.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경남연구원을 거쳐, 행정안전부 장관정책보좌관,국무총리 메시지비서관을 지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에 칼럼을 썼고, 펴낸 책으로 <한국민주주의, 100년의 혁명>, <시민의 조건, 민주주의를 읽는 시간>, 번역서로 <정치를 옹호함>이 있다. 정치와 정치학을 잇는 일에 주로 관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