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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호의 런던아이] 엘리자베스 2세, 다스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By | 2022년 9월 13일 | 국제, 미분류

20세기도 아닌, 21세기에 입헌군주제는 우리에게 확실히 낯선 정치제도다. 하지만 선진국으로 일컬어지는 영국과 일본 등의 나라에서 왕과 여왕은 지금도 건재하다. 흔히 말해지는 ‘군림하되 다스리지 않는 존재’로. 그 입헌군주의 상징인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70년의 재임 기간을 마치고 세상을 떠났다. 전 세계는 애도의 물결로 가득하다. 그런데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70년은 군림하되 다스리지 않았던 시기였을까? 영국 런던에 거주하며 국제 문제를 날카롭게 분석해온 윤영호 필자는 역설적으로, 다스리되 군림하지 않았기 때문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존재감과 영광이 유지됐다고 풀이한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영국 왕실에 대한 흥미로운 해석. [편집자주]

✔ 의무로 가득찬 일생, 그 핵심은 국민을 위로하는 것
✔ 책임감과 의무감 속에서 여왕을 지탱해준 유머 감각
✔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무엇인가’ 보여준 일생
✔ 푸틴도, 트럼프도 얌전하게 만들었던 여왕의 품격

2022년 9월 6일, 발모랄 성에서 신임 리즈 트러스 총리와의 면담. (사진:연합뉴스)

‘To you, she was your Queen. To us, she was The Queen. She will be with all of us forever.’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영국인) 당신들에게, 그녀는 당신들의 여왕이었다. (프랑스인) 우리들에게, 그녀는 여왕 자체(The Queen)였다. 그녀는 (프랑스인) 우리 모두와 함께 영원할 것이다’라는 말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죽음을 애도했다. 짧지만 강렬한 이 말에는 엘리자베스 2세가 여왕 전체를 대표하고 왕정 전체를 대표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멀지 않은 20세기 우리 역사에 고종과 순종이 있었지만, 두 왕의 존재가 가깝게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좀처럼 극복하기 어려운 전통의 단절이 있다. 오히려 백제 의자왕이 가깝게 생각될 정도다. 의자라는 명칭과 군림하는 왕의 이미지가 잘 연결된다. 진시황제도 우리가 가진 왕 이미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모든 것을 가졌고, 세상 위에 군림한 존재로서 왕이다.

2차대전 말기에 엘리자베스 여왕은 ATS 부대에서 소위로 복무하며 정비 엄무를 맡았다. (사진:Imperial War Museum)

군림하되 다스리지 않는다?

시대가 바뀌었고 왕의 역할은 제한되어 현존하는 왕은 대부분 입헌군주다. 그러나 왕의 군림 이미지는 여전하다. 온갖 호사를 다 누리는 이미지도 있다. 입헌군주를 ‘reign but do not rule’이라고 하는데, 우리말로는 ‘군림하되 다스리지 않는다’라고 표현된다. 입헌군주가 ‘군림하되 다스리지 않는다’라면, 공화제의 리더는 ‘다스리되 군림하지 않는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렇다고 해서 공화제의 리더가 입헌군주제의 왕에 비해 도덕적 우위를 가진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입헌군주를 대표하는 엘리자베스 2세는 군림했지만, 다스리지 않았는가?

그녀는 여왕이 될 운명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다. 큰아버지가 있었다. 그가 왕(에드워드 8세)이 되고 1년도 지나지 않아 사랑을 찾아 왕위를 버렸다. 연애 소설과 영화를 위한 좋은 소재지만, 왕국 입장에서는 더없이 무책임한 일이었다. 형의 갑작스러운 퇴위로 인해 대중 연설에 어려움을 겪었던 동생이 왕(조지 6세)이 되었고, 조지 6세의 큰딸인 엘리자베스는 열 살의 나이에 여왕이 될 운명과 마주했다. 그리고 15년 뒤인 1952년 25세에 여왕이 되었다.

여왕의 자리는 온통 의무로 가득했고, 자유가 없었다. 그것은 젊은 공주가 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다. 주어진 과제가 무거워 호사는 즐겁지 않았다. 세계적으로 독립과 평등의 요구가 유례없이 높던 시절에 왕국을 유지해야 하는 임무는 막중했다. 그리고 70년 재임이 끝난 지금 영국은 여전히 ‘United Kingdom’이며, 영국인은 여전히 자부심에 가득 차서 국가 ‘God Save the Queen(King)’를 노래한다. 재임 기간 그녀는 15명의 총리와 일했는데, 살아 있는 5명의 전임 총리가 여왕을 묘사하면서 빠짐없이 사용하는 단어가 ‘의무감’(sense of duty)이다.

1997년 영국에서 발행된 우표. (사진:셔터스톡)

영국 왕실의 의무감을 실천하다

1966년 웨일스의 에버판에서 산사태가 발생했다. 무너진 흙더미가 학교와 마을을 덮쳐서 아이들 116명과 어른 26명이 죽었다. 해럴드 윌슨 총리는 여왕에게 현장에 가서 주민을 위로해 달라고 부탁했으나, 여왕은 가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정확히 무엇을 하기를 바라나요?”

“국민을 위로하기를 바랍니다.”

“쇼를 하라구요? 군주는 그런 걸 하지 않습니다.”

“누가 쇼를 하라고 했죠? 국민을 위로하라고 했습니다.”

윌슨과의 대화를 통해 여왕은 자신이 해오던 의무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여왕의 업무는 의무로 빼곡한데, 의무의 핵심은 연례행사에 참여하여 군주인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로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가 평생 가장 후회하는 일로 꼽은 것이 에버판 현장을 늦게 방문한 것이다. 위로하는 자는 군림할 수 없고, 군림하는 자는 위로할 수 없다.

정치란 다스리는 행위다. 다스리는 것은 쇠스랑으로 밭의 흙을 골라 이랑과 고랑을 만드는 것이다. 입헌군주로서 여왕은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녀가 다스리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녀가 다스린 것은 국민의 마음이다. 국민의 마음속 감정을 골라 이랑과 고랑을 만들면, 총리가 고랑을 따라가면서 이랑에 작물을 심는다. 고추를 심을지 참깨를 심을지는 총리가 결정하지만, 밭이 거칠어 작물 재배가 어려워지면, 총리는 여왕에게 쇠스랑과 갈퀴를 손에 쥐어주며 밭을 골라 달라고 부탁한다.

많은 사람이 입헌군주는 군림하되 다스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입헌군주의 역할은 정확히 그 반대다. 입헌군주는 군림하지 않고 다스려야 한다. 그렇지 못한 입헌군주는 살아남지 못한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그 역할을 누구보다도 훌륭하게 수행했다. 보리스 존슨 전 총리는 의무감(sense of duty)이 그녀의 ‘역사의식’(sense of history)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큰아버지 에드워드 8세는 가지고 있지 못했지만, 그녀가 가지고 있었던 것이 그것이다. 다이애나 왕자비가 추구한 것이 개인의 행복이라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자신의 행복 위에 역사라는 큰 가치를 올려놓았다. 국가는 개인에게 역사의식을 강요하지 못하지만, 여왕은 스스로와 왕실 구성원에게 그것을 강요했다.

찰스 왕자와 다이애나 왕자비 앞에서 웃고 있는 여왕의 모습, 1982년(필자 제공)

여왕 70년의 세월을 지탱해준 ‘유머 감각’

의무감과 역사의식 속에서 은퇴 없이 70년을 일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래서 여왕이 장착한 것이 ‘유머 감각’(sense of humour)이다. 그녀가 가진 의무감과 역사의식이 지속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유머 감각으로 무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대인이 질곡의 역사를 버틸 수 있었던 것이 유대인의 농담 때문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녀가 험한 시대를 무리 없이 이끈 것도 그녀의 유머 감각 덕분이다.

이런 일화가 전해진다. 어느 목수가 버킹검궁에서 가구를 해체하고 있었는데, 누가 뒤에서 “차 한 잔 줄까요?”라고 물었다. 목수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답했다. “‘노가다 차’(builder’s tea)요. 설탕 두 개요. 지난번처럼 말도 안 되는 도자기 잔과 접시 그런 것 말고요. 그냥 머그잔에 주세요.” 그리고 잠시 후에 같은 여인이 와서는 “차 여기에 두었으니 드세요”라고 말하고는 돌아섰다. 말을 참 고상하게 한다고 생각한 목수가 뒤를 돌아보니, 여왕이 문을 열고 나가고 있었다. 

이러한 행동 자체가 그녀가 가진 작지만 완벽한 유머의 일부다. 여왕이 가지고 있었던 원칙 중 하나는 자신을 접견하러 온 사람이 들어올 때보다 나갈 때 더 기분이 좋게 만드는 것이었다고 한다. 매주 자신을 접견하러 오는 총리는 물론이며, 가구를 수리하러 온 목수도 예외가 아니었다. 심지어 한밤중에 그녀의 침실에 잠입했다가 경호원에게 끌려 나간 침입자조차도 들어올 때보다 기분이 좋은 상태로 나갔다.

영국 국민 중에는 왕정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조차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좋아했다. 여왕이 ‘왜 좋은가?’라는 질문에 어느 좌파 지식인은 이렇게 답했다. “여왕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다. 그녀는 자본주의에 대항한 최후의 보루였으며, 물밀듯이 밀려오는 자본의 힘 앞에 ‘여기까지!’라고 경계를 지어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그녀의 품격 앞에 세상의 모든 독재자와 자본의 첨병이 예의를 지켰다. 블라디미르 푸틴도 여왕 앞에서 긴장하며 영어로 떠듬떠듬 연설문을 읽었으며, 도널드 트럼프도 여왕 앞에서 무례하게 행동하지 못했다.”

9월9일 여왕의 사망이 발표되자 버킹검 궁 앞의 빅토리아 여왕 기념비 앞에 몰려든 추모 인파(사진:셔터스톡)

우리가 반대로 알고 있는 여왕과 왕실의 존재감

‘이제 내가 좋아하는 여왕은 죽었고, 더 이상 왕정을 지지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거나 극히 적다. 여왕에 대한 사랑과 존경은 영국(United Kingdom) 체제에 녹아 있으며, 여왕에 대한 감사와 기대는 그대로 찰스 3세에게 이어진다. 그 과정에 다이애나 왕비에 대한 동정이 비집고 들어갈 여지는 거의 없다. 찰스 3세가 실책을 연발하지 않는 한 영국 왕정의 인기는 우리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그 방면에서 그들은 1000년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고, 우리는 그 노하우의 본질을 충분히 알지 못한다. 그들은 우리 정치 교과서가 반대로 말하고 있는 왕정의 비밀도 간직하고 있다. 우리는 ’입헌군주는 군림하되 다스리지 않는다‘라고 알고 있지만, 그들은 ’다스리되 군림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군림하지 않는 공화제 리더는 또 얼마나 되는가?


글쓴이 윤영호는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와 같은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증권사, 보험회사, 자산운용사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했고, 카자흐스탄 증권사 겸 자산운용사인 세븐 리버스 캐피털(Seven Rivers Capital)에서 대표로 일했다. 현재는 영국 런던에서 자산을 운용하며 런던 생활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옵션투자 바이블>, <유라시아 골든 허브>, <그러니까, 영국> 등이 있고, 최근에는 인터뷰 모음 <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를 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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