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부쩍 많아졌다. 원-달러 환율은 가파르게 치솟고 금리는 뛰는데, ‘빚투’한 부동산 값은 거꾸로 내려앉으니 속이 탄다. 그런데도 정부는 별 문제 없다며 딴소리다. 이러다 외환위기가 오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마저 나돈다. 눈앞의 경제 현상은 제각각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원인과 결과를 주고받으며 서로 얽혀 있는 법. 이종우 아이엠투자증권 센터장이 <메디치 보라>에 나와 세계 경제 및 한국 경제의 현재 상황과 그 맥락을 차분하게 짚었다. 이 센터장(이하 이)은 “우리 경제에 제2의 외환위기는 없지만, 경기 침체와 둔화는 오래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진행은 민경중 한국외대 초빙교수(이하 민)과 메디치미디어 김현종 대표(이하 메)가 맡았다. [편집자 주]

✔ 외환위기의 트라우마가 달러강세에 더 큰 불안 만들어✔ 현재의 달러 강세는 유로, 위안 등의 가치 약세 탓✔ 현재의 경제 상황은 겨울보다 더 추운 11월 추위와 같아✔ 강해진 우리 기업, 그만큼 제 역할 하고 시대에 맞춰 진화해야

사진:셔터스톡

메 : 지난번 <메디치 보라>에 출연하셔서 주식을 알려면 지식, 경험, 인간에 대한 이해, 이 삼위일체가 있어야 된다고 말씀하셨거든요. 오래 기억에 남는 얘기셨어요.

이 : 그렇습니까? 어깨가 굉장히 무거워지는 것 같습니다.

메 : 요즘 특히 환율이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환율부터 얘기를 풀어 주시죠.

달러 강세, 유로와 위안화가 약해서 

이 : 지금 원-달러 환율이 1,340원을 넘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굉장히 불안해하고 있는데요. 오래 전 경험이지만, 외환위기를 겪었기 때문에. 외환위기 같은 큰 위기를 경험하게 되면 그 세대가 사라질 때까지 경험이 계속 남는다고 얘기를 하거든요. 그 트라우마가 굉장한 거죠.

이제 환율이 1,340원이 되고, 이렇게 계속 올라가면 혹시 외환위기가 일어나는 거 아니냐, 하는 얘기를 합니다. 거기에 또 하나 얹혀진 것이 무역적자에요. 연초부터 8월20일까지 우리나라 무역적자를 보니까, 255억 달러더라구요. 이 추세대로라면 올해 연말까지 500억 달러 가까운데, 이대로 가면 난리가 나는 거 아니냐는 걱정이지요.

우선 최근에 왜 이렇게 원화가 약세인지 이유를 봐야 하는데, 딱 하나입니다. 달러가 대단히 강하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달러 강세는 달러 자체가 강해져서 나타날 수 있고, 반대로 보면 통화는 서로 간의 관계니까 다른 나라 통화가 약해져서 달러가 강해질 수 있는데, 지금 상황은 다른 나라 통화가 약해져서 달러가 강해지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유로도 그렇고 위안화도 그렇고.

메 : 지금 유로나 위안화가 약한 이유는 뭔가요?

이 : 아시는 것처럼 지금 유럽은 가뭄이 굉장히 심하고, 러시아에서 천연가스 수출에 제재를 많이 하다 보니 가스 가격도 굉장히 많이 올라가고 이런 상태입니다. 그래서 영국 같은 경우에는 7월에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0.1%를 기록했거든요. 그리고 연말에 지금 영국 중앙은행에서 물가상승률이 13% 정도까지 올라갈 거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물가가 굉장히 높아지면서 유로화 전체가 지금 흔들리고 있는 상태입니다.

중국 같은 경우에는 올해 2분기 경제성장률이 0.4%를 기록했습니다. 코로나19가 발생하고 그해 2분기에 마이너스 성장을 했던 걸 제외하고는 가장 낮은 수준이예요. 상하이나 베이징을 코로나 때문에 봉쇄했던 영향이 상당한 데다 중국의 부동산 가격이 많이 떨어져서 부실이 굉장히 많이 생길 거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위안화가 약세일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달러가 강해지고, 달러 강세가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며 원화가 또 약해지고, 이런 국면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 겁니다.

제2의 외환위기는 없다

민 : 그래도 우리나라 외환보유고가 지금 4,400억 달러 정도 됩니다. 그렇다면 외환위기는 없는 것 아닌가요?

이 : 제가 보기에는 제2의 외환위기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앞에서 제가 무역적자를 말씀드렸잖아요? 그게 이제 계속 커지면 당연히 위험하다고 봐야죠. 우리나라에 달러가 들어올 수 있는 가장 큰 통로가 무역흑자니까요.

8월20일까지 255억 달러 적자가 났는데, 에너지 수입을 보니 지난해 같은 시기와 견줘 에너지 수입에 더 들어간 돈이 560억 달러입니다. 그러니까 원래 지난해만큼 에너지 가격이 들어갔다면 월마다 대략 100억 달러 정도 무역흑자가 나는 거였거든요. 그런데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면서 거기에 따라서 추가로 들어가는 부분들이 굉장히 많았던 거죠.

지금 국제유가도 배럴당 130달러에서 90달러 정도까지 내려왔고요. 그동안처럼 에너지 가격이 계속해서 높아지게 되면 인류가 견딜 수가 없어요. 어떤 형태로든지 제가 봤을 때는 에너지 가격이 조금씩 내려갈 겁니다. 그런 점들을 감안하면 새로운 외환위기는 없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역 환율전쟁’, 물가를 잡아라

민 : 사실 예전에는 많은 국가들이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자국 통화가치의 하락을 목표로 뒀었잖아요. 그런데 최근에는 통화가치 상승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걸 두고 ‘역 환율전쟁’이라는 얘기까지 나오는데,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요?

이 : 가장 큰 이유는 물가 때문이죠. 과거에는 물가가 1년 전 정도까지만 하더라도 굉장히 안정적이었잖아요. 미국이 2% 정도 됐고,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1%대 초중반 정도였거든요. 그러니까 물가는 걱정하지 않고, 수출을 통해서 흑자를 많이 내 성장을 끌어올리는 것이 중요했죠.

그런데 지금은 더 중요한 게 물가가 됐습니다. 너무 물가가 높다 보니. 만약에 원화 가치가 1,300원에서 1,400원이 되면 수입물가 자체가 많이 올라가잖아요. 그렇게 되면 굉장히 어려워지는 국면이 될 수밖에 없지요. 대표적인 예가 독일인데, 독일이 지금 생산자물가가 거의 37%씩 상승하고 있습니다. 37%나 상승하는 가장 큰 이유가 뭐냐 하면 에너지 가격하고 유로화 약세거든요. 독일에서 소비자물가가 37% 상승하는 건 1945년 이래로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사정이 이러니 지금 모든 나라들이 물가상승을 억제하는 게 최우선의 정책 과제가 됐어요. 일단 수입물가가 높아지는 것을 막아야 하고, 그러러면 중요한 게 역시 환율이 강세를 유지하는 거죠. 그래서 지금 환율전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라고 봅니다.

메 : 그렇지만 (전쟁의) 결과는 잘 안 나오잖아요.

이종우 : 그렇죠. 현재까지는 결과가 잘 안 나옵니다. 우리나라 원화도 그렇고 유로화도 그렇고. 약세가 되는 것은 다 원인이 있는 건데 그 원인 부분이 지금 굉장히 강한 거죠. 지금으로선 어떤 시도를 한다고 하더라도 잘 통하지 않는 그런 상태로 봐야 할 겁니다.

메 : 그렇다고 시도를 안 할 수도 없고요.

이 : 그렇습니다. 이게 정책이 먹히고 안 먹히고에 관계없이 그런 시도를 정부가 하고 있다, 라는 시장에 주는 사인이 의미가 있거든요. 그것조차 안 하게 되면 시장에서 ‘정부가 손을 놓고 있구나. 그러면 계속해서 환율이 올라가겠지’ 라고 인식하게 됩니다.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시도는 계속해야 하는 거죠.

민 : 사실 독일은 물가도 싸고 정치, 사회적으로 안정된 유럽의 선진국이잖아요. 그런데도 물가가 37% 올랐으니 국민들이 큰 고통이겠어요. 특히나 지금은 여름이어서 난방비가 들지 않는 상황에서 이 정도라면, 겨울에 어떤 상황이 초래될지 많이 두렵겠습니다.

이 : 그래서 과연 올해 겨울을 제대로 넘길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우려가 많이 나옵니다. 원래 겨울에 써야 하는 천연가스를 미리미리 비축해, 과거에는 8월 중순이면 필요한 양의 70% 정도를 확보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유럽 같은 경우가 지금 확보율이 65% 정도밖에 안 돼요. 과거에 비해서도 조금 낮은 상태죠. 

게다가 지금 러시아가 주도권을 잡았기 때문에, 예를 들어 ‘우리 공장을 사흘 동안 셧다운하고 정비를 하겠어’, 이렇게 하면 유럽은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으니 굉장히 어려운 상황인 거죠. 미국은 그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고. 처음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졌을 때 많은 나라들이 미국과 동조화를 했는데, 동조화를 한다는 건 미국의 블록 안에 들어오는 나라들에 대해 미국이 어느 정도 책임을 져줘야 한다는 얘기거든요. 에너지나 이런 부분들에서. 그런데 그게 안 되다 보니 지금 유럽을 중심으로 해서 그 블록이 계속해서 약해지는 상태라고 볼 수 있는 거죠.

경기 침체, 경기 둔화 오래 간다

민 : 흔히 경제를 얘기할 때 인플레이션, 스태그플레이션 이런 얘기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이제 재난 영화 <퍼펙트 스톰>처럼 환율이나 여러 가지 상황으로 퍼펙트 스톰이 올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하는 분들이 좀 있어요. 어떻게 보십니까?

이 : 항상 언제든지 그런 얘기들은 굉장히 많이 했습니다. 과거에는 그런 상황을 어떤 단어로 불렀냐 하면 ‘복합불황’이라고 했었죠. 불황이 한 군데에서만 생기는 게 아니라 이것저것 같이 생긴다고 해서. 일본 같은 경우에는 실물의 불황이 나중에 금융 불안으로 전이 되더라, 그래서 실물과 금융이 동시에 불황이 생겼다 해서 복합불황이라 얘기하거든요.

지금 안 좋다, 라고 얘기하는 건 이런 부분들이죠. 경기가 나쁜데 금리는 올라가고, 물가는 높고, 자산 가격은 버블이 생기고. 이렇게 난리가 한꺼번에 겹쳤으니 얼마나 큰 난리가 나겠느냐 이런 부분들이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과연 그러면 이런 상황을 견딜 수 있느냐 없느냐, 그다음에 이렇게 해서 막 위기로 번져서 난리가 나느냐, 이것이 가장 큰 문제인데 아직까지는 큰 위기로 발전할 거라는 징후는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봤을 때는 위기가 발생해 난리가 나기보다는 경기 침체, 경기 둔화가 과거 때보다는 훨씬 더 오래 간다, 이렇게 접근하는 것이 맞지 않나 생각됩니다. 

지금 경제 상황은 겨울의 문턱인 11월 말

메 : 지금의 경제 상황이 계절로 치면 어느 시기쯤 될까요? 날씨로 비유를 들어보는 거죠.

이 : 월로 진단하면 현재는 딱 11월 정도 이렇게 됐다고 봐야 하죠. 그러니까 이제 늦가을은 거의 끝나고 겨울로 들어가는 문턱 이런 때죠. 왜냐하면 경제가 어느 정도 둔화되고 하는 건 뚜렷하게 보이는데 아직까지는 확실하게 둔화됐다고 하는 것들이 숫자상으로 분명하게 나타나는 형태는 아니죠.

그런데 군대에서 제일 추운 때가 언제냐 물어보면 11월이라고 많이 얘기합니다. 왜냐하면 아예 추우면 난방을 할텐데, 11월은 난방도 안 해주는데 기온이 떨어지니까 굉장히 춥거든요. 그러니까 지금이 군대의 11월하고 똑같은 거예요. 아예 경기가 굉장히 침체되고, 둔화되고 그러면 사람들은 거기에 대응을 합니다. 정부도 경기가 침체된 것을 어떻게 하겠다, 라며 정책을 폅니다.

지금은 그것도 아니니까 사람들은 아직 적응이 안 된 상태고, 정부는 침체가 확실히 된 것 같지는 않으니까 여기에서 그냥 좀 어떻게 좋아질 수 없을까, 이 정도에서 끝나면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 계속해서 금리를 올리잖아요. 만약에 완전히 경기가 침체돼 버리면 그때는 금리를 올리는 것이 아니라 이제 금리를 조금 내려볼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죠. 그러니까 지금은 사람들은 추워지는데 할 수 있는 거는 별로 없는 형국이다 보니, 딱 11월이라는 생각입니다.

메 : 지금 말씀하신 걸 들어보면 11월이다. 아직 소한, 대한이 남아 있다는 측면에서 비상 대책을 쓸 정도는 아니지만, 체감 추위는 상당하다, 이렇게 보시는 거군요.

이 : 그렇죠.

주가가 먼저, 그다음 부동산, 금리 순으로 움직인다

민 : 경제 상황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인 원자재, 부동산, 금리, 환율 등의 영향 관계나 변동 전망 등을 현 시점과 대비해서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 여러 가지 변수들이 있는데, 그게  순서상으로 진행되는 걸 보면 가장 먼저 움직이는 건 주가입니다. 그건 어느 때든 항상 주가가 가장 먼저 움직이고요. 그다음 두 번째로 움직이는 것은 경제 변수들이고. 그러니까 경제는 좋은 것 같은데 주가가 한참 떨어지잖아요? 그러면 이게 맞냐 틀리냐 얘기를 하는데, 나중에 검증해보면 ‘아 이래서 주가가 먼저 움직였구나’라고 알게 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경제 변수들이 움직이고요. 그다음에 세 번째로 거의 비슷하게 움직이는 것이 부동산 가격, 그다음에 기업의 실적 이런 것들이 같이 움직이죠. 그러니까 부동산 가격이 경제 변수나 이런 것들보다도 더 늦게 움직이는 건 주식하고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주식은 규모가 작고, 부동산은 크잖아요. 주식은 작은 돈을 가지고도 할 수 있지만, 부동산은 상대적으로 굉장히 큰돈을 가지고 해야 하니까 몸을 움직이는 게 늦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까지 다 지나고 나면 그다음에 금리가 움직이는 형태가 되죠. 왜냐하면 금리를 움직이는 거는 특히 한국은행 같은 곳에서 기준금리를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들은 다 결과를 보고 하는 일이거든요. 

미국 연준이 선제적으로 무슨 대응을 한다, 이런 얘기를 하잖아요. 그건 이제 세상 편할 때 할 수 있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내 생각대로 경제 변수들이 다 움직이고 그래서 내가 세상을 다 움직일 수 있는 것 같이 생각될 때만 선제적인 대응 어쩌고 이런 얘기를 하는 거죠. 정책이라고 하는 건 거의 대부분 정책을 펴기 전에 여러 가지 결과가 다 나와서 그걸 보고 ‘아 결과가 이렇게 됐는데 내가 이걸 이렇게 바꿔야 되겠다’라고 생각하는 시점에서 실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금리를 움직이는 정책 같은 건 가장 늦게 나오게 되죠.

민 : 미 연준의 금리 마지노선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시나요.

이 : 지금 제 생각으론 3.5%를 넘게 되면 굉장히 부담스러울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3.5% 정도로 보이는데요.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면 22년 동안이거든요. 그 시기에 기준금리도 그랬고 10년물 국채 수익률도 평균이 대략 3.3%에서 3.6% 사이에 있었습니다. 그게 2000~2010년의 앞선 10년 동안에는 비교적 높았고요. 한 4.5% 정도. 뒤의 10년은 2.2% 정도밖에 안 됐습니다. 그렇게 해서 평균적으로 보면 3.3~3.6% 정도 됐기 때문에 대략 3.5% 정도 되면 더 이상 금리가 크게 낮다는 얘기들이 나오지 않을 거로 보이고요.

이제 9월에 미국이 0.5%p 금리를 인상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3%거든요. 나머지 두 번 남았는데, 0.25p% 올리면 3.5%가 됩니다. 그러면 대략 올해의 금리 인상은 다 끝나는 거죠. 

민 : 우리도 그 정도까지는 올라갈 수 있나요?

이 : 우리는 3.5%까지는 올라가지 않을 것 같고요. 대략 한국은행 기준으로 했을 때는 3.0% 정도까지는 올릴 것 같습니다. 

일본, 자민당 집권 70년이 경제 개혁 발목잡았다

메 : 김양희 대구대 교수가 <메디치 보라>에 출연해 일본 경제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센터장님도 일본을 평가할 때 ‘정치에 발목 잡힌 개혁’ 이런 표현을 쓰셨어요. 일본의 정치와 현 경제 상황을 어떻게 보시나요.

이 : 일단 일본 같은 경우에는 오랜 시간에 걸쳐서 경제가 안 좋았지 않습니까? 워낙 경제적으로 성숙돼 있는 상태라 성장률 이런 것들이 약해질 수밖에 없죠. 그런데 이렇게 상황이 오랫동안 좋지 않으면 뭔가 조정을 하려고 해야 하잖아요? 구조조정을 하든지 해서 새로운 동력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이렇게 해야 되는데 그런 부분들이 정치적인 영역에 막혀서 잘 안 되는 형태가 된 거죠. 2000년대 초 일본이 구조조정을 열심히 해보려고 했는데, 정치권에 번번히 막혀 버렸어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일본 자민당이 만들어진 게 1955년이거든요. 지금까지 70년 가까이 됐는데, 그 중에 4년 정도를 제외한 모든 기간을 자민당이 집권했습니다. 일본 정치구조가 딱 굳어진 거죠. 자민당의 이익 구조가 워낙 강해서, 이들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은 절대 의회를 통과하지 못하는 형태가 돼 버리는 거죠. 그러면서 정치가 완전히 경제의 발목을 잡아서 구조를 조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업이 제1 개혁 대상

메 :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이 문제일까요?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개혁은 무엇이고, 그걸 저해하는 요소는 무엇일까요?

이 : 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개혁을 해야 하는 분야를 꼽으라고 하면 기업을 개혁해야 한다, 기업이 제일 큰일이다, 이렇게 봅니다. 왜냐하면 외환위기를 지나면서부터 우리나라 국부의 굉장히 많은 부분들이 기업으로 계속 몰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국부를 기업들이 계속 끼고만 있는 상태가 돼버렸거든요. 몰린 국부로 재투자를 하거나, 고용을 많이 늘리거나, 임금을 많이 주거나 이런 형태가 아니잖아요.

메 : 외환위기 이후에 가계나 정부에 있던 부가 기업으로 많이 갔고, 그게 이제 소득 불평등의 원인이 되기도 하죠. 

이 : 그렇습니다. 지금과 같은 형태가 계속되게 되면 기업의 힘은 굉장히 세지는데 반해 기업이 해야 되는 부분들은 안 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계속해서 기업과 가계 사이에 격차가 벌어지고, 이게 나중에 가게 되면 굉장히 큰 문제가 될 수밖에 없어요.

저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기 전부터 기업이 가지고 있는 소득의 일정 부분을 가계로 이전시켜주는 형태가 돼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나라 경제가 나중에 진짜로 위험해진다고 얘기했어요. 우리가 수출을 많이 한다고 하더라도 내수 소비가 줄어들어 버리는 형태가 되면 기업 자체도 굉장히 어려워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저는 지금도 굉장히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번 정부도 기업에 더 힘을 실어주는 형태로 가지 않습니까? 나중에 굉장히 어려워질 거라고 생각됩니다.

메 : 기업으로만 이렇게 부가 집중되면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사회가 불안정해지면서 결국 기업도 영향을 받습니다. 그 점에서 지금과 같은 추세는 현명하지만은 않은 것 같은데요.

문제는 정부, 퍼블릭 섹터라도 나서줘야 되는데 정부는 반대로 법인세 같은 걸 다 바꾸겠다고 하니, 당장은 경제 활성화에 보탬이 될지 몰라도 장기적 차원에서 보면 국가 경제, 기업 경제, 가계 경제에 걱정이 된다, 이런 말씀이시네요.

이 : 예, 그렇죠.

재벌, 낡은 생태계에 갇혀 있다

민 : 우리 경제에서 대기업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과거에는 대기업이 수출로 우리를 먹여 살린다고 했잖아요?

이 : 저는 주식시장을 계속 봐 왔으니까 그 경험으로 말씀드려 볼게요. 우리나라에서 재벌이라고 얘기하는 대기업들이 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과거와 비교할 때 더 커졌을지 모르지만 주식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해서 낮아지고 있어요. 왜냐하면 우리나라 재벌 회사들이 주력으로 보유한 산업이나 기업들이 이제 ‘올드 패션’이 됐기 때문이죠. 산업 구조의 변화 속에서 넘어가고 있는 쪽의 비중이 굉장히 커져 있는 상태라 변화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이 양반들이 회사를 만들고 돈을 본격적으로 번 기억들이 있는데, 그 기억과 앞으로 우리 경제가 주력으로 삼고 키워야 할 기업과 생태계가 안 맞는 거예요. 안 맞다 보니, 돈은 많이 갖고 있는데 이쪽에 투자를 못 하는 형태가 되는 거죠. 나중에 어떻게 되냐 하면, 돈은 굉장히 많이 갖고 있는데 새로운 산업이나 이런 것들이 올라오지 못하면서 계속 약해지는 형태가 됩니다. 이게 지금 가장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곳이 일본이예요.

반대로 미국 같은 경우를 보세요. 20년 전에 미국의 주식시장을 지배했던 회사와 지금 지배하고 있는 회사는 완전히 다릅니다. 또 1980년에 지배했던 회사와 2000년에 지배했던 회사는 또 다르거든요. 그만큼 미국 경제는 탄력이 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된 거고, 일본은 그렇지가 않잖아요. 

우리나라가 이대로 간다고 생각해 보세요. 앞으로 10년 후 정도 됐을 때 지금의 주력 대기업들이라는 곳은 돈은 굉장히 많이 갖고 있는데 성장 등에서는 약해져 버리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국가 경제 전체적으로 매우 안 좋은 형태죠.

메 : 정말 공감합니다. 우리가 주식 투자도 젊고 도전적인 기업들이나 개인들에게 해야 할텐데요. 장강의 뒷물결 기업에 돈이 가는.

이 : 그렇습니다. 주식시장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부분입니다.


출연자 이종우는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1992년 대우경제연구소를 시작으로 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 한화증권 리서치센터장,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 아이엠증권 리서치센터장,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등을 거쳤다. 낙관 속에서 위기를 경고해 적중시킨 실적으로 ‘한국의 닥터 둠’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저서로는 『기본에 충실한 주식투자의 원칙』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