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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훈 칼럼] 트럼프 ‘간첩법’ 혐의, 미국 뒤흔드나

By | 2022년 8월 22일 | 美 정치 깊이·멀리 보기, 국제, 미분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핫한 ‘뉴스 메이커’로 다시 등장했다. 연방수사국(FBI)이 그의 자택을 전격 압수수색하면서다. 혐의도 난데없는 ‘간첩법’이다. 미국 역사상 전직 대통령이 간첩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는 것은 트럼프가 처음이다. FBI의 수사 결과는 눈앞에 닥친 11월 중간선거는 물론이고, 2024년 대선에도 큰 영향을 미칠 빅 이슈다. 트럼프의 혐의는 무엇이며, 수사는 어떻게 흘러갈까? 대형 정치 일정을 앞둔 민주당과 공화당의 셈법은 무엇일까? 미국 사법 체계와 정치에 밝은 유정훈 변호사가 ‘트럼프 수사’를 다각도로 분석했다. [편집자 주]

✔ 유례없는 전직 미 대통령의 사법처리가 이루어질 것인가
✔ FBI, 국가 기밀 문건 무단 반출 혐의로 트럼프 자택 압수수색
✔ 워터게이트 당시 닉슨은 후임자의 사면으로 형사소추 모면
✔ 트럼프당이 되어버린 공화당도 트럼프와 선을 긋는 분위기
✔ 민주당을 구원할 수도, 역풍을 부를 수도 있는 트럼프 수사

뉴욕 5번가의 트럼프 타워 안에 설치한 도날드 트럼프 기념 장식. (사진:셔터스톡)

리처드 닉슨도 피해간 형사소추, 트럼프는 직격으로 맞을 것인가

미국에는 전직 대통령을 사법처리한 전례가 없다. 대통령이 직무와 관련하여 형사 범죄를 저지른 사례가 없기 때문은 아니다. 1974년 8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 위기에 몰려 사임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도청 지시, 사법 방해 등의 범죄 혐의가 있었지만, 대통령직을 승계한 제럴드 포드가 닉슨이 재직 중에 범한 모든 형사 범죄를 선제적으로 사면했기 때문에 형사소추가 진행되지 않았다. 물론 이는 헌정 위기까지 불러왔던 워터게이트 사건과 탄핵소추라는 예외적 상황에서 발생했던 일이고, 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 혹은 기소가 진지하게 이슈가 된 사례는 거의 없었다.

이런 미국에서 지금 제45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사법처리 문제가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트럼프는 공직 경력이 없는 정치 신인의 예상하지 못했던 당선이나 재직 중의 이례적인 행적뿐 아니라, 전직 대통령의 사법처리 논란이라는 측면에서도 독특한 존재임이 분명하다. 퇴임 당시부터 그가 사법 리스크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은 명백했다. 2020년 대선 패배를 뒤집기 위해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가장 치열한 경합이 벌어졌던 주인 조지아를 관할하는 연방검찰에서 이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현직 대통령이 백악관 앞 대중집회를 통해 폭력을 선동하여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던 2021년 1월6일 의사당 폭동 사태와 관련하여, 하원 특별조사위원회를 통해 트럼프가 사태의 경과를 인지하고 깊이 개입했다는 증거가 드러나고 있다. 대통령 직무 수행과는 별개로, 트럼프그룹 경영 과정에서 저지른 탈세, 사기 등의 위법 행위에 대한 뉴욕주 검찰의 수사 또한 진행되고 있다.

기밀 문건 반출 혐의로 FBI가 마라라고 압수 수색

그러던 중 8월8일 오후(현지 시각) 늦게, 연방수사국(FBI)이 트럼프가 소유하고 있는 플로리다 소재 마라라고(Mar-a-Lago) 클럽을 압수수색했다는 속보가 전해졌다. 트럼프는 퇴임 이후 원래 살던 뉴욕 맨해튼의 트럼프타워가 아니라 마라라고 클럽을 주된 주거지로 삼았다. FBI가 사실상 전직 대통령의 자택을 압수수색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압수수색은 미국 안팎으로 적지 않은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트럼프의 혐의 사실이 기존에 알려진 내용, 특히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던 1월6일의 의사당 폭동 사태에 관한 것이 아니라, 트럼프가 퇴임하며 국가기밀에 해당하는 문건을 무단으로 반출하여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퇴직후 거주하고 있는 플로리다 주 팜비치의 마라라고 전경. (사진:셔터스톡)

전직 대통령에 대한 압수수색이라는 초유의 상황을 맞아, 메릭 갈랜드 법무부장관은 기자회견을 열어 트럼프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고 본인이 이를 승인했다고 밝혔다. FBI는 이례적으로 법원의 승인을 받아 영장에 적시된 압수수색 대상을 공개했다. 압수수색을 통해 FBI는 1급 비밀(Top Secret) 4건, 2급 비밀(Secret) 및 3급 비밀(Confidential) 각 3건, 그밖에 ‘1급 비밀 겸 민감한 특수정보(Top Secret/Sensitive Compartmented Information)’로 표시된 1건 등 모두 11개의 기밀문건을 확보했다.

트럼프에게 적용된 혐의는 ‘간첩법(Espionage Act) 위반’으로 알려졌으나, 현재 해당 조항은 연방 형법전의 일부로서 적용 대상 또한 전형적인 간첩 행위에 한정되지 않는다. 영장에 적시된 범죄 혐의는 결국 정부 문건 또는 정보를 무단으로 유출 내지 보유한 행위에 대한 것인데, 구체적으로는 (i)국방 정보의 수집, 전송 및 손실(부적절한 보유 포함)을 처벌하는 제793조 위반, (ii)정부 문건의 불법적 은닉, 제거, 말소, 파괴 등을 처벌하는 제2071조 및 사법조사 등을 방해하거나 이에 영향을 미칠 의도로 문건을 변경, 파괴, 은폐, 위조하는 행위 등을 처벌하는 제1519조 위반이다. 전자의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후자의 경우 각각 3년 이상 20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할 수 있는 중죄에 해당한다.

FBI의 압수수색은 전격적이었지만, 돌이켜보면 트럼프 측의 국가기밀 무단 보유 관련 혐의는 이전부터 제기되어 왔고, 트럼프 측의 자업자득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대통령 기록물에 관한 법률(Presidential Records Act)은 대통령의 직무 수행과 관련된 일체의 기록물을 국가 소유로 하고, 퇴임 시 이를 국가기록물관리청(NARA: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에 반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역시 워터게이트 사건의 유산으로, 닉슨 대통령의 권력 남용, 집무실 녹음 테이프의 존재를 은폐하거나 의회 제출을 거부한 행위 등을 계기로 1978년 법률이 제정됐다.

트럼프 측은 대선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바이든 정부에 대한 인수인계를 거부하다 쫓기듯이 백악관을 떠났고, 그 혼란의 와중에 대통령 기록물 인계 업무 역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올해 2월 트럼프 측은 마라라고에 보관하던 대통령 기록물 15박스를 뒤늦게 반환했는데, 여기에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보낸 친서까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과정에서 국가기록물관리청은 트럼프 측이 마라라고에 기밀문건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여 법무부에 통보했고, 이런 일련의 사건이 이번 압수수색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미지:셔터스톡

트럼프 수사, 사면초가의 바이든을 구원할 것인가

전례가 없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가까이는 11월 중간선거, 나아가 트럼프 본인의 출마가 예상되는 2024년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선거에는 공약, 인물, 스캔들과 같은 미시적 요소보다 전체 구도가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잘 알려져 있는데, 이번 사건은 선거 구도 자체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먼저 조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의 입장. 대통령 임기 중간에 치러지는 중간선거는 2년 동안의 성과를 놓고 정권을 심판하는 구도로 진행되는 것이 보통이다. 2차 대전 이후 현직 대통령의 정당은 중간선거를 통해 하원에서 평균 25~26석을 잃었고, 그 결과에 따라 의회 다수당이 바뀌는 경우도 많았다. 이전의 민주당 대통령도 그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빌 클린턴은 1994년 중간선거에서 뉴트 깅그리치가 이끈 ‘공화당 혁명’으로 1952년 이후 처음으로 상하 양원을 모두 공화당에 내주는 수모를 당했고, 버락 오바마는 2010년 중간선거에서 하원 63석을 잃는 역대급 참패를 겪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를 꺾기 위해 불가피하게 선택된 후보라는 태생적 한계에, 야심차게 내세운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 개혁안이 의회에서 겪은 난항, 아프가니스탄 철군 과정에서 보인 난맥상,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피로감 등으로 인해 낮은 지지율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인플레이션에 따른 물가 상승으로 치명상을 입어 한때 지지율이 33%까지 떨어지기도 했고, 다소 반등세를 보인 지금도 40% 안팎에 머물고 있다.
<참고자료: https://projects.fivethirtyeight.com/biden-approval-rating/>

민주당이 하원에서 가진 우위는 10석 미만이고 상원은 50:50 동수이기 때문에, 바이든과 민주당은 예정된 패배를 기다릴 수밖에 없어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에 대한 형사소추, 그것도 여태까지 크게 주목받지 않았던 국가기밀 관련 혐의는 선거 구도를 흔드는 하나의 ‘호재’가 될 수 있다.(다른 하나는 연방대법원이 올해 6월 여성의 임신 중지를 헌법상 기본권으로 인정한 Roe 판결을 파기한 사건이다.) 

비례대표 제도가 없는 미국에서 의회 선거의 승패는 개별 지역구 선거 결과의 총합이지만, 이와 별개로 “어느 정당이 의회 다수당을 차지하는 것이 나은가”라는 전체 지지도 조사(이를 ‘generic ballot’이라고 한다)의 의미가 적지 않다. 바이든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과 별개로, 의회 다수당에 관한 설문에서는 민주당이 근소한 열세이기는 하지만 최근에는 공화당과 비교적 대등한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참고자료: https://projects.fivethirtyeight.com/polls/generic-ballot/> 

민주당은 유권자에게 트럼프의 불법 행위를 용인하고 그가 2024년 대선에 출마하여 다시 대통령이 되는 길을 열어줄 것인지, 트럼프를 옹호하는 공화당에 나라를 맡겨도 좋을지를 물음으로써, 선거 구도를 바이든 정부에 대한 심판에서 트럼프를 선택할지 여부로 전환하는 궁리를 하고 있다. 트럼프의 2020년 대선 패배 부인이나 의사당 폭동 선동은 그 자체가 민주정 시스템에 끼치는 해악과는 별개로 정치 공방의 성격을 피할 수 없는 반면, 국가기밀 유출은 그런 측면이 훨씬 적다는 점에서 이 사건을 최대한 활용하지 않을 수 없다.

반면에 공화당은 이 사건으로 복잡한 셈법에 빠져들었다. 트럼프를 중심으로 결집하는 구심력이 일단 강력해 보이지만, 트럼프에게서 이탈하려는 원심력과 비교할 때 어느 쪽이 결국 우월할지 속단하기 어렵다. 

일단 공화당이 ‘트럼프의 당’이 되었다는 것은 명백한 현실이다. 2021년 1월 트럼프 탄핵을 찬성했던 공화당 하원의원 10명 중 단 2명만 당내 경선을 통과했다. 특히 딕 체니 전 부통령의 딸이자 공화당 하원 서열 3위까지 올랐던 리즈 체니마저 경선에서 참패한 것은 이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FBI의 압수수색 직후 지지 세력이 결집하고 트럼프 측에 하루 100만 달러 이상의 정치자금이 쏟아졌다는 보도도 있다. 공화당의 주요 정치인들도 당장은 법무부와 FBI가 현직 대통령의 정적에 대한 정치적 수사를 한다고 비난하며 트럼프를 편들고 있다.
<관련 NYT 기사: https://www.nytimes.com/2022/08/14/us/politics/trump-search-republicans.html> 

딕 체니 전 부통령의 딸이자 공화당 하원 서열 3위까지 올랐던 리즈 체니마저 경선에서 참패했다. (사진:연합뉴스)

정치와 수사는 모두 ‘살아있는 생물’

하지만 공화당 정치인 중 트럼프가 약점을 보여 정치적 힘을 잃는 경우에도 끝까지 운명을 같이할 사람은 많지 않다. ‘트럼프가 후보 혹은 대통령이 되면 지지할 수밖에 없지만, 그가 다시 후보 혹은 대통령이 되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게 솔직한 속내일 것이다. 론 드산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자신을 키워준 트럼프와의 대립을 무릅쓰고 2024년 대선 행보를 보이고 있는 중이고,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도 2020년 대선 패배 등에 관해 트럼프와 선을 그으며 자신의 주요 지지층인 복음주의 개신교 세력을 바탕으로 대선 도전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 트럼프를 두고 수사와 정치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정치와 수사는 모두 ‘살아있는 생물’과 같다는 얘기를 듣는다. FBI가 관련 서류를 정확하게 지목하여 압수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든 제보자가 누구인지, 압수수색의 근거가 된 진술서가 공개될 것인지, 트럼프가 문서를 보관한 장소를 찍은 내부 보안 카메라에 어떤 영상이 담겨 있는지 등 형사사건 자체도 매일 요동치고 있다. 

트럼프에 대한 사법처리 문제는 바이든 정부가 해결해야 할 또 하나의 전례 없는 과제가 되었다. 물론 백악관은 직접적인 의견 표명을 자제하며, 법무부와 FBI가 독립적으로 진행하는 수사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이 사건 수사는 결국 바이든 정부의 레거시(유산)가 될 수밖에 없다. 사상 초유의 전직 대통령 사법처리를 관철할 수 있을지, 트럼프라는 예외적 사례에 대해 명백한 위법행위만 정밀 타격하는 게 가능할지, 아니면 ‘판도라의 상자’만 열어 젖힌 채 트럼프를 향한 결집을 강화시키는 역풍을 불러올지 아직은 섣불리 예측하기 어렵다. 미국은 물론이고 지구촌 전체가 변화하는 상황을 따라가며 주목할 수밖에 없다.


글쓴이 유정훈은
변호사(한국 및 미국 뉴욕 주). 2011년 버락 오바마에 맞설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이 한창이던 시점에 미국 연수를 하며 미국 정치·선거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페이스북에서 꾸준히 미국 정치와 법에 관한 ‘덕질’을 계속하고 있다. 메디치미디어가 출간한 <상 차리는 남자? 상남자!>의 공저자이기도 하다. 각종 언론매체의 칼럼니스트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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