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남’을 자처하는 도시학자 정석 교수(서울시립대)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다녀왔다. 시립대 학부생 4명과 함께 진행한 ‘도시미인 프로젝트’. 교통수단 가운데 대중교통과 자전거, 보행 세 가지(대·자·보)가 세계에서 가장 활성화돼 있는 도시 암스테르담을 두루 돌아다니며 친환경 도시교통 시스템의 현주소를 살폈다. 정 교수는 특히 자전거가 주요 교통수단으로 자리잡은 네덜란드에 감탄하며 질문을 던진다. 서울을, 대한민국의 도시들을 ‘자전거 친화도시’ ‘대·자·보 친화도시’로 만들 수는 없을까? [편집자 주]

대중교통, 자전거, 보행의 머릿글자를 딴 대·자·보✔ 전 세계에서 대·자·보가 가장 활성화된 암스테르담✔ 2013년 암스테르담 대·자·보 교통 분담률 78%✔ 우리의 도시에도 자전거 도로 충분히 확보되기를✔ 자전거 친화적인 시민 의식도 함께 자랐으면

대중교통, 자전거, 보행이 전체 교통에서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암스테르담 (사진:셔터스톧)

7월27일 새벽 6시15분(현지시각)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키폴공항에 비행기가 내렸다. 7월26일 밤 11시40분 인천공항을 출발해 14시간의 긴 비행을 한 뒤다. 오랜만의 해외 출장이다. 코로나로 발이 묶인 지 3년 만이다. 동행한 승용(도시사회학과 18학번), 태민(도시행정학과 17학번), 수림(공간정보학과 17학번), 병민(공간정보학과 17학번) 등 학부생 4명도 적잖이 들뜬 눈치다.

도시미남 5인조의 도시미인 프로젝트 

7박8일 암스테르담 출장의 시작은 6월 초였다. 네 학부생이 ‘도시미인 프로젝트’의 지도교수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해 왔다.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과학대학의 도시미인 프로젝트는 시립대 학생들을 해외 도시로 보내 한 달 동안 머물며 도시문제와 해법들을 연구하게 하는 매우 흥미로운 프로그램이다. 왜 ‘도시미인’일까? 아름다운 사람이란 뜻도 있지만, 도시를 연구하는 ‘미래인재’라는 뜻도 담긴 중의적 표현이다. 2019년 프로젝트가 시작됐고, 첫해에는 64명을 선발해 미국 샌프란시스코, 영국 런던, 몽골 울란바토로 등 12개 도시에 파견했다. 2020년과 2021년은 코로나로 쉬었고, 올해 2022년 여름방학에 다시 재개해 암스테르담과 싱가포르 두 도시에 각각 3팀을 파견해 현재 두 도시에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지도교수인 나는 8월2일 서울로 돌아왔다.

학생들의 연구주제를 들은 뒤, 기왕 암스테르담에 갈 예정이라면 ‘자전거’를 중심으로 하는 ‘대·자·보(대중교통+자전거+보행) 도시’를 연구해보면 좋겠다는 의견을 건넸다. 학생들은 주제를 다듬어 ‘BTS(Bicycle, Transportation to Seoul)’라는 제목으로 연구계획을 세웠고, 암스테르담을 지원한 18팀이 겨루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최종 3팀에 선정되었다. 팀원 네 명 가운데 세 명이 시립대 홍보대사 ‘이루미’ 출신이어서인지 아주 훈남들이고, 지도교수 또한 환갑의 나이여도 미모에 꿇리지 않는다는 자부심이 여전한 ‘자뻑남’인지라 우리는 이번 프로젝트를 ‘도시미남 5인조의 도시미인 프로젝트’로 부르기로 했다.         

공항에서 우버 밴을 불러 짐을 싣고 학생들의 숙소인 암스테르담 남쪽의 교외지역 웨이버(waver)까지 가는데 30분 정도 걸렸다. 암스테르담 시내 호텔 대신 교외의 에어비&비를 숙소로 정한 것은 순전히 학생들 뜻이었다. 시내까지 오고 가기엔 불편이 따르겠지만, 시골 작은 마을에서 한 달을 살면서 호텔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마을살이를 체험하는 건 귀한 기회일테니까. 

스키폴공항 도착. 왼쪽부터 필자, 송승용, 차병민, 구태민, 장수림.

그런데 우버 기사가 내려준 곳은 목적지가 아니었다. 황당했지만 지도를 다시 확인한 뒤 짐을 끌고 시골길 500m 가량을 걸어 숙소인 2층 단독주택에 도착했다. 1층에는 넓은 거실과 부엌과 화장실이 있고, 2층에는 세 개의 침실과 화장실이 있어 네 명 학생들이 살기에는 적합한 집이었다. 부엌의 창밖으로는 너른 초원 풍경이 펼쳐지고, 피아노와 작은 기타까지 있어서 음악을 즐길 여유도 누릴 수 있는 아주 포근한 집이었다.  

학생들의 숙소 앞에서

학생들 숙소에 짐을 풀고 다시 우버 밴을 불러 암스테르담 남역(Zuid) 가까이 위치한 나의 숙소 시티즌M호텔에 짐을 내려놓은 뒤 학생들과 함께 암스테르담 도심부로 향했다. 암스테르담 남부역은 세계무역센터가 위치한 중심업무지구 환승역으로, 철도와 메트로 여러 노선을 이용할 수 있는 교통 요지다. 시내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정기권이 1일, 2일, 3일, 4일권 등으로 다양하게 있고, 역 구내의 판매기에서 카드나 현금으로 쉽게 구매할 수 있다. 학생들과 나는 4일 정기권(25.5유로)을 구매한 뒤 메트로 M52를 타고 암스테르담 중앙역을 향해 출발했다. 

<유튜브 바로보기> 대·자·보 도시 암스테르담(1) 도시미남 5인조의 도시미인 프로젝트

대·자·보 도시 암스테르담 

암스테르담 중앙역에 내려 광장으로 올라오니 네덜란드의 수도에 온 게 실감이 났다. 담광장(Dam Square) 방향으로 큰길을 천천히 걸었다. 담광장 조금 지난 곳에 위치한 중국식당 ‘만다린 풀루’에서 점심 식사부터 했다. 도시미인 프로젝트로 암스테르담에 파견되는 팀은 모두 3팀 12명인데, 1팀이 우리보다 하루 먼저 도착했고, 3팀은 8월1일 도착 예정이어서 먼저 온 1팀과 함께 점심 식사를 했다. 1팀 지도교수인 교통공학과 박신형 교수까지 모두 10명이 암스테르담에서 상봉해 인사도 나누고 맛난 점심을 즐겼다. 

암스테르담 중앙역 앞. 뒷줄 가운데부터 시계 방향으로 차병민, 송승용, 구태민, 장수림, 필자

점심을 먹고 가까운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한 뒤 기다리며 로킨(Rokin) 거리 풍경을 한참 바라봤다. 길 한가운데에는 트램이 천천히 오고 갔고, 양측 자전거도로에는 자전거들이 끊임없이 지나갔다. 너른 보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걷고 쉬며 도시 삶을 즐기고 있었다. ‘대중교통과 자전거와 보행만으로 관광도 생활도 너끈히 가능한 도시, 그게 곧 대·자·보 도시 아닌가? 트램과 자전거와 보행, 여기에 더해 철도와 운하 페리와 수상택시까지, 암스테르담은 진정 대·자·보 도시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암스테르담의 모습을 영상에 담았다.  

암스테르담 시내 대중교통은 메트로와 트램이 두 축을 이룬다. 지하철에 해당하는 메트로는 암스테르담 북서쪽(Isolatorweg)에서 남역을 지나 남동쪽(Gein)을 연결하는 M50 노선을 비롯해, 북서쪽과 남역을 지나 중앙역을 연결하는 M51, 암스테르담 남역을 출발해 중앙역과 북역(Noord)을 최단 거리로 이어주는 M52, 중앙역에서 남동쪽(Gaasperplas)을 연결하는 M53, 역시 중앙역에서 남동쪽(Gein)을 잇는 M54까지 5개 노선이 시내 대중교통의 중추 역할을 담당한다. 지상을 오가는 트램도 16개 노선이 운행되고 있고, 정기권(GVB)을 구매하면 메트로와 트램을 해당 기간에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암스테르담 메트로 노선도

역마다 어느 노선 메트로가 언제 도착하는지 안내가 잘 돼 있고, 노선 안내도는 지나온 역들은 희미하게, 앞으로 만나게 될 진행 방향 역들은 진하게 표시되어 있는 점이 특이했다. 안내(sign)의 핵심은 ‘필요한 때, 필요한 곳에, 필요한 것 위주로’ 알려 주는 것임을 고려한다면 매우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아는 사람은 안 봐도 알고, 모르는 사람은 봐도 모르는 안내’가 이를테면 잘못된 안내다. 이런 안내를 종종 목격하게 되지 않는가? 도로교통 안내이든, 지하철 안내이든 마찬가지다. 안내는 잘해야 한다. 핑크색으로 경로를 표시해줘 덜 헷갈리게 하는 우리나라 도로교통 안내는 이용자를 배려한 친절한 안내라 할 수 있다. 

암스테르담 메트로를 이용할 때는 주의할 점이 있다. 출입문 버튼을 눌러야 한다. 우리나라 지하철은 역에 도착하면 모든 출입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닫히지만, 여긴 출입문 개폐 버튼을 눌러야 문이 열린다. 아무 생각 없이 기다렸다가 역에 도착해 내리려 하는데 문이 열리지 않아 황급히 옆 출입문으로 내렸던 적이 있다.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몸이 따르지 않아서 겪었던 일이다. 내릴 때뿐만 아니라 탈 때도 마찬가지다. 눌러야 열린다. 네덜란드에서는 명심하자. “두드려라. 아니 눌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시내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GVB 정기권의 가격은 1일권 8.5유로, 2일권 14.5유로, 3일권 20유로, 4일권 25.5유로다. 독일은 지난 6월부터 ‘한 달 9유로 무제한 대중교통 이용권’을 3개월 동안 한시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우리 돈으로 1만2000원을 내고 티켓을 사면 고속철도를 제외한 전국의 기차, 전철, 버스 등 모든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베를린 월 정기권이 86유로였음을 감안하면 아주 파격적인 조치임을 알 수 있다. 반응도 뜨거워 전체 인구의 40% 가까운 국민이 9유로 티켓을 구입했고, 대중교통 이용률도 크게 늘었다. 휘발유 가격이 내렸고 물가상승률도 꺾이는 등의 효과까지 거두고 있다. 

GVB 4일 정기권. 25.5 유로에 4일간 모든 대중 교통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 대통령실의 ‘국민제안 톱10’에도 ‘한 달 9900원으로 대중교통 무제한 이용하는 K-교통패스 도입’ 아이디어가 올라와 있다고 한다. 꼭 시행되길 바란다. 에스토니아는 수도 탈린에서 2013년부터 5년간 대중교통 무료화를 시행했고, 2018년부터는 전국에 확대 적용하고 있다. 대중교통 이용자를 파격적으로 우대할 때 ‘대·자·보 도시’는 꿈이 아닌 현실이 된다. 기후위기에도 좋고, 탄소 줄이기에도 효과적이며, 사회적 약자들의 이동권까지 보장해주는 1석3조의 묘약이 바로 대중교통 우대정책이다. 

<유튜브 바로 보기> 대·자·보 도시 암스테르담(4) 대중교통 메트로 타는 법

학생 주도의 글로벌 도시교류 프로젝트 

둘째 날인 7월28일 오전에는 암스테르담에서 활동 중인 두 팀이 함께 암스테르담 시청을 방문했다. 암스테르담 시청은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워터루플레인(waterlooplein) 역 가까이에 있다. 시청 출입문 앞에는 ‘내일 세상이 멸망해도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던 스피노자 동상이 서 있고, 시청 바로 옆에는 오페라 발레 극장과 아주 큰 벼룩시장이 있다.  

시청 국제협력과의 사빈 짐브레 과장으로부터 암스테르담의 여러 정책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질의응답 시간을 가진 뒤, 우리 학생들이 서울시의 대중교통 정책과 자전거 정책을 설명하는 시간도 가졌다. 서울시의 정책을 자매도시에 소개하고 교류하는 정책 수출과 도시 마케팅의 뜻깊은 시간이었다. 교수 주도가 아닌 학생 주도여서 더욱 멋지고 뿌듯한 시간이었다.  

시청에서의 미팅 후 기념사진

오전 10시에 시작해 12시 가까이에 끝난 면담은 매우 유익했다. 질의응답 시간이 길어져 1팀의 발표 시간을 갖지 못한 게 아쉬웠다. 통역 없이 영어로 진행된 면담과 발표를 너끈히 해내는 학생들이 자랑스러웠다. 도시미인 프로젝트 지도교수들에게 주어진 아주 중요한 미션 하나는 ‘나서지 않기’다. 학생들이 주도하도록 맡기고 지켜보며 꼭 필요할 때만 도와주는 게 지도교수의 역할인데,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잘하고 있으니 아주 듬직했다.  

암스테르담 시청 방문 중 서울의 대중교통에 대해 발표하는 모습

사빈 과장은 함께 식사를 못해 미안하다며 근처의 좋은 식당을 추천했다. 운하 가까운 곳에 위치한 ‘야렌(Jaren)’ 식당에서 두 팀이 함께 식사를 했다. 아주 중요한 공식 일정을 성공리에 완수했으니 점심도 푸짐하게 먹기로 했다. 햄버거에 네덜란드 맥주를 곁들였다.

점심 식사를 한 뒤 1팀은 암스테르담대학을 방문하러 떠났고, 우리 2팀은 시청 근처 벼룩시장을 돌아본 뒤 ‘렘브란트 박물관’과 ‘헤르미타주(Hermitage) 암스테르담 박물관’ 두 곳을 들렀다. 렘브란트 박물관은 그가 살았던 집을 박물관으로 바꾼 곳이어서 더욱 정감이 갔다. 그림만 보는 곳이 아닌, 화가의 삶을 느끼며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어서 더욱 생생한 느낌이 전해왔다. 

헤르미타주 암스테르담 박물관은 1681년에 지어진 340년이 넘는 오래된 ‘미음’자 건물인데, 처음에는 양로원으로 지어졌고 나중에 병원으로 바뀌었다가 전면 리모델링을 거쳐 현재는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오래된 옛 그림들뿐만 아니라 아주 대담한 현대미술까지 감상할 수 있어 다채로웠다. 건물로 둘러싸인 너른 마당은 고즈넉했고 모퉁이에 카페가 있어서 차와 맥주를 즐길 수 있다. 토요일에는 이곳에 장이 열리고, 일요일에는 재즈 공연과 영화 감상도 가능하다고 하니 장소를 아주 알차게 쓰는 것 같아 부러웠다. 

헤르미타주 암스테르담 박물관 마당

박물관 구경을 마친 뒤 학생들이 미리 예약해 놓은 자전거를 받으러 갔다. 암스테르담대학 로스쿨 가까이 위치한 ‘스와프피에트(Swapfiets)’ 암스테르담 동부지점에서 전기자전거(e-bike) 4대를 받았다. 한 달 대여료가 일반 자전거는 60유로, 전기자전거는 110유로라고 한다. 한 달 빌리는데 15만원 정도이니 많이 비싼 건 아니었다. 전기자전거는 1단부터 3단까지 조절이 가능하고 단계를 높일수록 힘을 덜 들이고 페달을 밟을 수 있어서 편리했다. 

학생들은 자전거를 타고 숙소로 향했고, 나는 박 교수와 아이강변의 빔하우스(Bimhuis) 앞 4’33 카페에서 만나 오붓하게 맥주를 마시며 일몰을 즐기고 숙소로 돌아왔다. 암스테르담 시내를 가로질러 흐르는 넓은 아이강으로 해가 지는 풍경을 보며 공연까지 즐길 수 있는 빔하우스는 암스테르담에서 놓치지 말하야 할 명소 가운데 하나다. 아쉽게도 여름철에는 공연이 없고 9월부터 공연이 열린다고 해서 일몰과 맥주만 즐겨야 했다. 그런데 카페 이름이 왜 4’33일까? 궁금해 물었더니 매니저가 존 케이지의 유명한 피아노 작품 이야기를 한다. 아하~    

<유튜브 바로 보기> 대·자·보 도시 암스테르담(2) - 암스테르담 시청 방문

교통수단 분담률 측정 

7월28일 아침 8시, 숙소인 시티즌M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하다가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다. 식당 창밖으로 베토벤 거리(Beethoven Straat)를 오고 가는 다양한 교통수단의 숫자를 세어보고 싶어졌다. 얼핏 보아도 자전거 숫자가 꽤 많았다. 스마트폰 카메라를 켜고 약 5분 동안 촬영한 뒤, 베토벤 거리를 지나가는 출근길 교통수단별 이용자 숫자를 세어봤다. 자동차, 대중교통(트램), 자전거, 보행, 기타(PM, 오토바이) 교통수단별 비율은 얼마나 될까? 

출근 시간대 베토벤 거리를 5분간 촬영하여 분석한 교통수단별 이용자 숫자

가장 빈번하게 오고 간 교통수단은 자전거로 44대였다. 다음이 자동차로 11대, 보행자가 6명, 오토바이와 PM이 3명, 그리고 트램이 2대 지나갔다. 3량으로 구성된 트램에 타고 있는 승객 숫자를 각 50명 총 100명으로 가정한다면 대중교통 100명(61%), 자전거 44대(26.8%), 자동차 11대(6.7%), 보행 6명(3.7%), 기타 3대(1.8%)여서, 대·자·보(대중교통+자전거+보행)의 교통수단 분담률이 91.5%로 아주 압도적이었다. 

세계 도시들 가운데 자전거의 교통수단 분담률이 가장 높은 도시는 암스테르담과 코펜하겐으로 각각 30% 이상이다. 2013년 암스테르담의 교통수단 분담률을 보면 자전거 32%, 보행 29%, 대중교통 17%로 ‘대·자·보’ 아니 ‘자·보·대’의 비율이 78%를 차지한다. 같은 해 캐나다 몬트리올은 자전거 2%, 보행 10%, 대중교통 16%로 ‘대자보’는 28%에 불과하고 자동차가 72%를 차지하고 있어 대조적이다. 

<유튜브 바로 보기> 대·자·보 도시 암스테르담(3) 출근길 교통수단별 비율은?

자전거 천국 네덜란드

일주일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다. 학생들이 지도교수를 위해 작별 파티를 해주겠다고 했다. 호텔에서 하루 일찍 체크아웃을 하고 귀국 하루 전날인 7월31일 이른 오후에 학생들 숙소로 갔다. 요리를 주로 담당하는 병민이는 점심 식사로 김치찌개와 돼지고기 수육에 계란말이를 만들어주었고, 저녁에는 파스타와 삼겹살에 으깬 감자요리까지 해주었다. 귀국날 아침에는 카레라이스로 나를 놀라게 했다. 

8월1일은 원래 점심 때 AMS 연구소를 방문하기로 한 날이었는데, 만나기로 한 연구원이 고열로 출근하지 않아 약속이 취소되었다. 귀국 비행기 시간은 저녁 9시20분. 여유 있게 6시까지 공항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오후 5시쯤 숙소를 출발하면 되니 마지막 날 뜻밖의 여유 시간이 선물처럼 주어졌다.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 자전거를 타고 암스테르담 교외 작은 도시들 몇 곳을 다녀보기로 의견을 모았다. 마침 수림이가 집에서 쉬고 싶다고 해서 나도 전기자전거를 탈 수 있게 돼 넷이 함께 오후 1시쯤 웨이버 숙소를 출발해 윗트호른(Uithoorn), 암스텔벤(Amstelveen), 아우더커크(Ouderkerk)를 돌아 숙소까지 4시간 정도 자전거를 탔다.   

자전거를 타고 달려보니 알겠다. 네덜란드가 왜 자전거 천국인지를. 큰길이든 좁은 길이든 어디에나 자전거도로는 있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항상 먼저 배려해주었다. 교차로를 건너기 전 자전거를 멈추고 기다리는데 운전자가 손짓하며 먼저 건너라고 해주었다. 고속도로에도 자전거도로는 나란히 안전하게 마련되어 있고, 작은 시골길에도 자동차는 한 차선을 서로 교행하면서 달리는 반면, 자전거도로는 도로 양측에 충분한 폭으로 확보되어 있었다. 

자전거는 효자 같은 존재다. 자전거를 타면서 방귀를 뿡뿡 뀌지 않는 한 탄소배출 제로의 교통수단이다. 운동 효과도 있으니 건강에도 좋고, 온몸으로 도시와 지역을 느끼게 해주는 참한 교통수단이다. 

코펜하겐과 함께 자전거 천국 세계 1, 2위를 다투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서너 시간 자전거를 타고 이곳저곳 달려보며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드넓은 초원과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와 말과 염소들, 운하를 따라 펼쳐지는 정겨운 풍경, 바람에 샤워를 하듯 온몸을 안아주는 대자연의 품 안에서 아주 멋진 자전거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유튜브 바로 보기> 대·자·보 도시 암스테르담(5) 자전거 천국 네덜란드, 달려보니 알겠다!

네덜란드는 어떤 나라? 

네덜란드 방문은 이번이 네 번째다. 1996년 서울연구원에서 ‘대중교통 지원을 위한 보행환경 개선방안’ 연구를 위해 처음 방문했고, 대중교통과 자전거와 보행을 아주 치밀하게 엮어주는 대자보 시스템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멀리 휴가를 떠날 때도 말 안장에 가방을 걸치듯 자전거에 짐을 싣고 안전하게 분리된 자전거 전용도로를 달리며 먼 길을 떠나는 자전거 무리를 보면서 많이 놀랐다. 

서울도 자전거 천국이 될 수 있다. 공공자전거 따릉이 대수도 크게 늘었고, 따릉이 이용자도 점점 늘어가고 있다. 나 역시 따릉이가 처음 등장할 때부터 매년 이용권을 끊고 자주 이용하는 따릉이 애용자다. 전농동 서울시립대에서 서울시청까지도 종종 따릉이를 타고 가곤 한다. 문제는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자전거도로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자전거로 차도 위를 달릴 땐 늘 위험을 느끼게 되고, 보도 위를 지날 때는 보행자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다. 

자전거를 좀 더 편안하고 편리하게, 그리고 안전하게 타게 해줄 수는 없을까? 이미 녹색교통 진흥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는 한양도성 안 도심부라도 모든 도로에 왕복 1차선씩 자전거도로를 내어줄 수는 없을까? 한 번에 바꾸는 게 어렵다면 주말 토요일과 일요일만이라도 한 차선씩 자전거에게 내어줄 수는 없을까? 

대·자·보 도시를 만드는 일은 어렵고 또 쉬운 일이다. 자동차에 길들어 있는 시민들을 설득하고 공감대를 만들며 저항을 슬기롭게 넘겨야 하니 어려운 일이지만, 대·자·보 도시가 참으로 좋은 도시임을 점진적으로 단계적으로 체감하게 하면서 공감하고 지지하는 시민들의 수를 늘려간다면 결코 어려운 일도 아니다. 

자전거 천국을 일상화하고, 이미 오래 전부터 대·자·보 도시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암스테르담 시민과 네덜란드 국민들, 그리고 행복한 나라에서 유쾌한 여행과 체류를 즐기는 세계인들을 보면서 한없이 부러웠다. 

호텔에서 마지막 잠을 자던 날, 1층 바에 들러 맥주를 두어 잔 마셨다. 이렇게 한 곳에서 일주일 가까이 보내니 호텔도 집 같고 주변 지역도 우리 동네처럼 느껴졌다. 여행과 지역살이는 다르다. 여기저기 빨리빨리 오가며 많은 걸 보는 것이 여행이라면, 한 곳에 머물며 천천히 지역에 스며들어 보는 것이 지역살이다. 맥주를 마시면서 내 앞에서 바쁘게 일하는 매니저에게 물었다. 네덜란드는 어떤 나라냐고. 대답은 의외로 간단명료했다. “노래 부르고 싶은 사람들은 노래 부르라고 하고, 춤추고 싶은 사람은 춤추게 하고, 술 마시고 싶은 사람들은 술 마시게 하고, 저마다 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나라입니다.” ‘관용’의 나라, ‘포용’의 나라라는 뜻이겠다. 

일주일을 머물면서 시내 어디서나 봤던 포스터와 현수막들이 떠올랐다. 무지개로 상징되는 성소수자들의 이벤트 ‘나의 성, 나의 프라이드(My Gender, My Pride)’를 알리는 포스터였다. 암스테르담에서는 카페와 커피숍을 구분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카페는 커피나 음료를 마시는 곳이고, 커피숍은 대마초를 피우는 곳이라고 했다. 과연 시내 곳곳에 커피숍이 있었고, 그 앞을 지날 때면 특이한 담배 냄새가 맡아졌다.  

성소수자 이벤트를 알리는 포스터

다양성을 존중하고 소수자의 권익도 보호하는 관용과 포용의 나라. 약자들도 부담 없이 타고 다닐 수 있는 자전거를 상전처럼 받드는 나라. 발랄하고 경쾌하고 늘 새로움을 추구하는 나라. 네덜란드에서 머문 일주일이 아주 많이 즐겁고 행복했다. 비행기가 스키폴공항을 이륙하는 순간 에밀리 펄 킹슬리가 쓴 시 ‘네덜란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Welcome to Holland)’가 떠올랐다. 네덜란드에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글쓴이 정석은“마을과 도시, 지역과 국토는 오직 시민의 손으로만 건강히 되살릴 수 있다”고 믿으며 블로그, 페이스북, 유튜브 계정 ‘도시의 정석’으로 시민과 소통하는 도시연구자. 서울대학교에서 학사,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서울연구원(13년), 경원대(현 가천대 7년)를 거쳐 2014년부터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