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한 것은 아니나 참으로 공교로운 시기에 김양희 국립외교원 경제통상개발연구부장(대구대 교수)을 <메디치 보이는 라디오> 방송에 모시게 되었다. 김 교수는 ‘세계 경제위기 대처와 일본의 경제안보’라는 제목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베 신조 전 총리 사망사건에 대한 국내외의 반응이 왜 이렇게 상반되는지, 왜 일본은 한국에 ‘수출 규제’라는 무모한 도발을 했는지, 경제안보가 왜 중요한지, 우리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김 교수의 혜안을 빌리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일본을 예로 들어 경제와 안보가 긴밀하게 연결되는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진행은 민경중 한국외대 초빙교수(민소장)과 메디치미디어 김현종 대표(메대표)가 맡았다. [편집자 주]

다방면에서 모든 것이 풍요롭던 버블경제 시대의 일본은 옛말쇠락하는 일본 극복위해 더욱 강경한 자세 취한 일본 보수 우익자동차 산업과 달리 반도체에서 한국과 일본은 환상적인 파트너기술의 형질의 변형, 군사 제품이 경제 제품이고 경제 제품이 군사 제품✔ 자원과 수출시장 확보 차원에서 한국도 IPEF 참여 긍정적으로 고려해야

쇠락한 선진국, '강한 닛뽄' 아베의 꿈도 저무나?: '일본통' 김양희 부장의 현지 관찰기 [메보라 #21] 일본의 신무기 '경제안보', 중일에 낀 한국의 선택은?(feat.김양희) [메보라 #22]

더 이상 선진국이 아닌 일본, 더 이상 부럽지가 않아

민소장: 얼마 전에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유세 현장에서 암살당했습니다. 전직 총리로는 1909년 이토 히로부미 이후 두 번째죠. 아베 전 총리 사망 이후 일본의 정치 뿐 아니라 경제적 상황도 여러 방면에서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메대표: 그래서 김양희 교수님 모셨습니다. 도쿄대에서 박사학위를 하시고, 대구대에서 가르치시다가 3년 전에 국립외교원으로 오셨습니다. 무엇보다도 경제통상 연구가 주된 업무시지요.

민소장: 일본에서 얼마나 계셨어요?

김양희: 1988년 12월에 가서 돌아온 건 97년입니다. 햇수로 치면 10년인데, 석사 박사 과정은 90년부터 97년까지 했고, 중간에 일 년 반 정도 영국에 다녀왔구요. 만으로 8년 정도 일본에 있었습니다. 버블경제라고 불리던 시절이었습니다.

민소장: 1994년에 히로시마에서 아시안게임을 했거든요. 한 달간 취재를 갔는데, 당시에 제가 정말 부러웠던 게 있어요. 버블경제라고 말씀하셨듯이, 먹는 걸 비롯해서 다양한 방면에서 굉장히 풍요로웠던 것 같아요.

김양희: 선진국이구나 하는 생각. 저도 1988년 처음 일본 갔을 때 가장 충격적이었던 게, 마트였어요. 시장이 아닌 마트를 갔는데, 세상에 야채 하나 하나를 랩으로 너무 깨끗하게 싸 놓고, 거기에 수증기 같은 게 떨어지면서 깨끗하고 신선하게 유지되는 거예요. 카트도 그때 처음 봤는데, 아기 아빠가 아기 띠를 앞으로 메고 카트 미는 게 너무 멋있어 보였어요. 너무 선진국이고, 세련돼 보였나 몰라요. 또 피자집을 가니 피자 뷔페가 있어서 또 놀랐지요.

 그랬던 일본이었는데, 이번에 가니 많이 달라져서 크게 놀랐습니다. 비행기 타고 가며 뉴스를 보는데 ‘전력 사정이 좋지 않아서 스튜디오 조명을 어둡게 했습니다’라는 자막이 있었어요. NHK 뉴스에는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헤드 라인이 심각하게 나오는데, 그 아래 나오는 제목이 BTS가 군대를 가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 이거예요. 채널을 돌려 예능을 보니까 일본 유명 기획사에서 5인 밴드를 키웠어요. 그런데 그 회사 대표가 “너희 노래하고 춤추는 거 보니까 해외로 진출해도 될 것 같다. 한국 BTS가 어떻게 컸냐. 너희들 정도면 충분히 해외 진출 성공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미안하지만 제 눈이 너무 높아진 거예요. 한국 기준으로 봤을 때는 ‘저게 과연 될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몇 년 전 드라마 <이태원 클래스>가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그 판권을 사서 리메이크한  <롯뽄기 클래스> 라는 걸 만들었어요. 이제는 패션이나 헤어 스타일 면에서 우리가 훨씬, 어찌 보면 지나칠 정도로 발달돼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이제는 한국 쪽이 훨씬 더 세련됐다는 느낌이지, 1988년에 느꼈던 선진국스럽고 세련되고 멋져 보이는 그 느낌이 아니에요. 오히려 일본 사람들이 후줄근해 보이는 느낌. 

 일본의 지하철에 아직까지도 스크린 도어가 안 깔려 있어요. 한국은 이제 없는 데가 거의 없죠. 일본은 제일 나중에 만들어진 남북선 정도만 깔려 있고. 재정이 어려우니까 나머지는 거의 없어요. 일본에서 지하철 타러 플랫폼에 들어가면 저는 이제 막 불안해요. 저 매연이 얼마나 심각할 텐데 하는 걱정도 들고, 선로에 빠질 수도 있고, 실제로 자살 사고가 종종 나요. 요즘에는 코로나 때문에 환기하느라 지하철의 문을 조금씩 열고 달려요. 저 스스로 착잡해지는 게, 이건 내가 알던 일본이 아닌데 하는 느낌을 좀 많이 받았죠.

메대표: 저도 1993년인가 제2금융권 출입기자 할 때, 오사카하고 도쿄를 다녀 왔어요. ATM이라고 하는 현금인출기가 어딜 가나 설치돼 있고, 그것이 선진국의 징표인 것 같아 놀라웠던 기억이 납니다. 

민소장: IT(정보기술) 관련해서는 일본 아키하바라가 예전에는 성지였어요. 최근 10년 사이에는 아키하바라에 가도 살 게 없더라고요. 우리나라가 더 싸고 더 좋고 그런 거 느끼시죠?

김양희: 많이 느끼죠. 저 있을 때만 해도, 한국에서 누가 오면 제일 먼저 아키하바라 데려가서 코끼리 밥통, 일본 카메라를 샀죠. 코스였거든요.

메대표: 이제는 일본 제품 뛰어나다는 생각을 한국 사람들도 안 하죠.

김양희: 일단 뛰어난 제품을 거의 안 만들고 있어요. 일본이 판매는 하지만 더 이상 ‘메이드 인 재팬’은 거의 없죠.

메대표: 일본 공장들은 그것들을 안 만들면 더 하이테크로 가는 건가요, 아니면 로우테크로 가는 건가요? 아니면 축소되는 건가요?

김양희: 하이테크로 가죠. 하이테크로 가는데, 생산 볼륨으로 볼 때 하이테크는 아무래도 그 아래보다는 적을 수밖에 없죠. 그러니까 이게 엔저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하고도 연결되는데, 국내에서 만드는 게 점점 줄어드는 거예요. 그래서 투자를 별로 안 해요. 많이 사지도 않아요. 그럼 이 기업들은 어디 가냐, 해외에서 만들어서 이제 국내로 수입을 하죠. 그러니 무역 적자가 점점 늘어나게 됩니다. 

‘바꿔 본 역사’가 없는 일본, 현상 유지가 미덕인 나라

민소장: 왜 일본어 표현 중에 ‘空気を読む(쿠키오요무)’라는 거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공기, 즉 분위기를 잘 읽어야 한다는 말이던데요. 알아서 잘 처신하고 바른 말 잘 못하는 분위기. 그런데 최근 보도를 보니까 일본이 코로나와 함께 젊은 세대가 재택근무를 많이 했잖아요.

 재택 근무와 함께 사무실에서 억눌렸던 분위기가 많이 사라지고, 줌 회의나 대화방에서 자기 할 말도 하고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거든요. 실제로 그렇습니까?

김양희: 글쎄요. 사실 ‘쿠키오요무‘라는 말이 우리나라에도 전혀 없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우리도 눈치 보기, 분위기 파악 이런 말이 있잖아요. 그런데 ’미투‘ 같은 경우, 일본에서는 한국만큼 이렇게 확산이 안 됐죠. 한국보다는 분위기 깨뜨리지 않으려 하고, 대세에 맡기면서 가급적 싫은 소리 안 하는 부분들이 있긴 있어요. 

 그 부분은 제가 봤을 때는 전반적인 양국의 어떤 역사 차이에 기인하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한국은 집단 성취의 경험, 집단 쟁취의 경험이라는 게 꾸준히 있어 왔어요. 3.1운동도 그렇고, 현대사로 들어와서는 4.19도 있었지요. 한국 사람들 사이에는 뭔가 아니다 싶으면 바꾸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암묵적인 자신감이 있어요.

메대표: 정권 교체도 해 봤고 맨주먹으로 거대한 권력에 맞서 보기도 했지요. 

김양희: 수 틀리면 우리는 바꿔 버리잖아요. 이에 대한 지배 계층의 두려움도 있고요. 그런데 일본은 진정한 의미에서 혁명을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는 나라거든요. 그래서 전반적으로 어떤 열패감, 바꿔보고 싶지만 ‘해봤자 안 될 거야’ 하니까 되는 게 없어요. 그러다 보니 자민당 일당 체제가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대안 세력이 키워지지 않는 이런 정서가 사회 전반에 깔려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극우의 아이콘인가 영웅인가, 아베에 대한 엇갈린 평가

민소장: 얼마 전 일본에 계신 동안 아베 전 총리의 피격이 일어났다면서요.

김양희: 일본 내에서는 워낙 어처구니없는 사건이라 더 충격이 컸을 수도 있고요. 그래서 기존의 아베를 어떻게 봐왔느냐에 따라 아베 사후에 대한 평가도 극명하게 갈리고 있습니다. 일본 내에서도 가장 우파에 가까운 <산케이신문> 같은 경우는 ‘우리의 영웅이 사라졌다’ 이런 분위기죠. 그러나 <아사히>, <도쿄신문> 같은 경우는 ‘공도 있지만 과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된다. 왜 이 나라는 사람이 죽으면 무조건 미화하느냐’ 이런 시각도 좀 있고, 사실 우리 입장에서 아베라 하면 역사 수정주의자, 극우의 아이콘이었기 때문에 그가 총격으로 사망한 것에 대해서 굳이 깊이 애도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지요.

 메대표: 한국과 일본 반응을 이렇게 획일화해서 보지 말자. 적어도 일본 안에도 <산케이> 같은 극우적 시각과 또 <아사히>나 <도쿄신문> 같은 시각이 있다, 그 말씀 같습니다.

김양희: 그 부분이 우리가 일본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 나갈 것인가 하는 데 있어서 지녀야 할 자세 같습니다. 우리가 일본 또한 단색이 아니라는 것들을 종종 잊어버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민소장: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베 부인이 한국 드라마 좋아하고 친한파라는 인상을 줘서 처음 총리 했을 때는 비교적 우호적인 분위기가 있었어요. 두 번째 임기 때 일본의 우경화 바람을 타며 결정적으로 미운털이 박힌 것 같고. 결정적으로 2019년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관련한 갈등이 생겼을 때, 강하게 나와서 더 미움을 받은 게 아닐까 싶은데요. 어떻게 보십니까?

김양희: 일단 그들이 왜 그러는지를 이해하는 차원에서 일본 주류의 시각에서 본다면요. 2015년 위안부 문제 합의 당시에 일본 정부 입장에서 공식적으로 사과문을 넣는 거에 대해 당내에서 반발이 컸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베는 나름대로 밀어붙였는데, 사실 첫 단추를 잘 못 끼웠다고 봐요.

 ‘배상금 지급하니 앞으로 다시는 사과하란 말 하지마. 소녀상 절대 설치하면 안 돼’ 이러면 한일 관계가 풀릴 거라고 생각한 것부터 잘못 됐지요. 당연히 한국에서는 심각한 반발이 있었고, 그 후 초계기 사건이라든가 또 결정적으로 2018년에 강제동원에 대한 대법원 판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일본하고 한국은 북한을 보는 시각, 중국을 보는 시각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어요. 같은 배를 타기는 사실 힘든 거죠. 더 깊이 깔려 있는 것은 식민 지배 시절에 대한 노스텔지아, 그 시절 막강했던 일본으로 다시 만들고 싶은 향수, 강한 일본의 부활을 꿈꾸는 그런 사람들이 일본 주류 세력인 거죠. 그 사람들은 식민사관에 입각해서 한국은 열등한 민족이고 우리가 개화시켜야 되는 그러한 종족인데, 그런 사람들이 그런 나라가 부강해져서 일본 말을 안 듣고 일본 경제를 위협할 정도까지 추격해 온다는 현실을 인정할 수가 없죠.

메대표: 교수님 말씀 들으니 아베와 그의 세대, 보수 우익의 정서는 쇠락기 같은 느낌을 극복하기 위해서 좀 강하게 나가는 느낌으로, 옛날의 영광을 찾겠다는 이런 마음으로 아베를 택한 거 같네요. 그 자체가 이제 조금 시대착오적이었다, 요즘 일본의 젊은 세대하고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 이 말씀으로 들리네요.

김양희: 그렇습니다. 사실 그전에 일본이 한국에 보여준 모습들은 사실 강자의 여유였거든요. 그래서 한국이 좀 기분 나쁘게 해도 받아들일 수 있었지요. 한국은 일본을 넘보는 나라는 아니었거든요. 적수가 아니었어요. 그런데 점점 한국이 치고 올라오고, 일본의 입장에서는 2010년부터 중국에게도 경제 규모가 뒤처진 것으로도 사실은 속이 끓겠지요. 

 덧붙여서 ‘65년 체제’라고 얘기되는 한-일 관계의 위계 질서가 무너지면서 한국마저 일본 뜻대로 안 되는 데에 대한 불만이 더욱 커지는 겁니다. 전반적인 안보면에서의 불신, 경제면에서의 추격,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정서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되면서 히스테릭한 반응의 결과로 나온 것이 수출 규제라 보면 됩니다.

민소장: 그런데 아베 사망 이후에 한국과 달리 전 세계적으로는 아베가 남긴 유산에 대한 추모 열기가 어느 정도 있는 것 같아요. 평가가 어떻게 나오고 있습니까?

CPTPP, QUAD, 아베의 굵직한 외교 구상, 고마워 하는 미국

김양희: 사실은 아베가 남긴 어떤 외교 정책면의 성과는 일본과 미국의 입장에서는 너무너무 고맙지요. 예를 들자면 리처드 아미티지하고 조지프 나이가 미-일 동맹에 관한 보고서를 정기적으로 만들어서 발표하고 있어요. 그 마지막 보고가 이제 2020년 12월7일에 나왔습니다. 거기서 놀라운 표현이 나와요. ‘일본은 전후 최초로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 서거나 미국을 리드하기 시작했다.’ 이 보고서가 왜 중요하냐면 이 보고서에서 꾸준히 얘기하는 것들이 아베의 외교 정책에 많이 녹아 들어갔거든요. 예를 들어 TPP(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에 들어가는 등의 전략적 다자주의 같은 것이죠. 트럼프가 동맹이고 뭐고 없이 오로지 ‘아메리카 퍼스트’ 기조로 나가니까 동맹들이 등을 돌리고 미국의 외교 자산이 거의 파탄날 즈음에 아베가 나타나서 그걸 다 추스르면서 뒷감당을 해줬거든요. 

 예를 들어, 트럼프가 취임 첫날 TPP를 탈퇴했을 때 아베가 꾹 참고 이것을 수습했습니다. 그렇게 큰 규모의 국제 협정을 일본이 주도해서 만든다는 것은 일본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변화입니다. 왜냐하면 일본은 전후에 자기들은 패전국가고 대외적으로 함부로 설치면 안 된다는 자각이 있기 때문에 뭔가를 주도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주저합니다. 그래서 대외 정책의 주요 수단이 ODA(공적개발원조)였어요. 근데 미국이 빠지면서 이제는 TPP는 다 끝났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낙담하고 있을 때, 그것을 추슬러서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을 만들었고 거기에서 출발해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아이디어를 제일 먼저 만든 게 아베입니다. 그리고 그걸 갖고 인도에 가서 인도에서 인도 태평양 전략을 처음 발표를 합니다. QUAD(쿼드)의 시작이지요. 그리고 중국의 ‘일대일로’와는 다른 질적인 인프라 투자를 얘기한다든지, 데이터의 자유로운 거래를 촉진하는 ‘데이터 프리 플로우 위드 트러스트(data free flow with trust)’ 등 굵직한 외교 구상을 아베가 만들어냈죠. 트럼프가 꼬장을 부리는 동안 일본이 이끌어 간 거예요. 미국 입장에선 너무 고마운 존재인 거죠.

메대표: 일본 총리들은 전범 국가의 소극적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아베는 관계 주도의 적극성을 매우 많이 보여줬다.

김양희: 서방 진영이 모래알이 되어 흩어지려는 것을 아베가 추슬러 주었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민소장: 아버지 아베 신타로가 외무상을 지냈고, 외할아버지가 총리도 했잖아요. 아베가 총리 출신 중에는 영어가 비교적 되지 않았습니까. 제 생각에 그런 국제적 시각을 갖춘 지도자가 일본에서 제대로 나온 건 아베가 처음이었다고 생각하거든요. 트럼프 별장에 가서 골프 치면서 일본 내에서조차 비굴해 보인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국의 이익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은 동의합니다.

메대표: 일본 입장에서는 총리다운 총리 노릇을 했다는 거네요.

무모한 수출 규제의 승자는 ‘상호의존성’, 한일 반도체 공조 절실

민소장: 또 한 가지 아베의 유산 중에서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백색 국가 제외가 있는데, 그 이후는 어떻게 되었나요?

김양희: 제가 국립외교원 들어가고 딱 일주일 뒤에 수출 규제가 시작됐습니다. 1년 동안 죽다 살았지요. 저도 처음엔 이게 뭐지 어리둥절했죠. 일반 상품 무역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두 가지 문제가 만났는데, 이게 이제 본의 아니게 만나진 거거든요. 제가 첫 2년은 평가를 했는데 올해는 안 했습니다. 이제는 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나왔습니다. 이 말은 사실상 일본의 패착이라고 봅니다. 

 제가 일본의 외교관, 학자, 정부 관료를 만날 때마다 강조하는 게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수출 규제로 갈 수밖에 없었던 외교적인 실책이 있었다 치자. 그렇다고 일본이 수출 규제를 감행한 건 미숙했다. 한국에서 일본의 수출 규제를 중국이 사드 보복한 것, 중국이 일본의 희토류 보복한 것과 동급으로 친다. 당신네 스스로 흑역사를 만들었다. 당신네들이 이런 걸 하면서 그간 한국의 외교적인 실책은 가려지고 일본을 악마화시킬 수 있는 너무나 훌륭한 구실을 만들게 되었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리고 ‘이 수출 규제의 승자는 일본도 한국도 아니다. 양국은 패자고 승자는 상호의존성이다’라고 저는 이야기합니다.

민소장: 상호의존성?

김양희: 자동차 산업과는 달리 반도체에서 한국과 일본은 환상의 짝꿍이에요. 이미 반도체는 1992년 이후 일본에서 한국으로 넘어왔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반도체 업계 1위를 차지하면서, 이후 일본의 반도체 수요 산업이 국내에서는 줄고 그 수요가 한국으로 넘어옵니다. 그것이 한국의 삼성이고 SK죠. 그리고 일본의 소재나 장비 산업은 한국의 수요자인 삼성과 하이닉스하고 환상적인 호흡을 맞추고 있었어요. 서로 상승작용을 보여줍니다. 삼성에서 반도체를 잘 만들려면 ‘이 반도체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장비를 어떻게 할지, 소재는 어떻게 해야 될지’ 이렇게 같이 의논해 나가면서 같이 커왔거든요. 그런데 이걸 인위적으로 일본 정부가 끊어냈던 거예요. 일본이 ‘탈일본화’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죠. 근데 가만히 들여다 보니 ‘탈일본’은 맞는데 ‘탈일본 기업화’는 아닌 거예요. 일본의 해외 공장에서 가져와서 주든가, 정 안 되면 일본에서 수출했던 걸 한국에 와서 생산합니다. 사실 이 소부장 3개 품목은 한국에 자회사가 있어요. 그런데 이 3개 품목은 첨단 제품이라서, 그동안 한국에서는 생산을 안 하고 일본에서 만들어서 수출해왔거든요. 그런데 수출 규제를 시작하면서 손님(삼성, SK)을 잃을까 봐, 그 업체들이 다 한국에서 이걸 생산하기 시작을 합니다. 

 더 황당한 것은, 한국에서 자생이 되기 시작한 거예요. 예를 들어 예전부터 ‘EUV 포토레지스트’를 듀폰이 만들어 보려고 했는데 실패했어요. 이번에 이런 일이 생기니까 ‘다시 한 번 해볼게’ 하면서 EUV 생산에 성공하지요. 일본은 사실은 이렇게까지 될 줄 몰랐죠. 한 번 혼내면 한국이 ‘허걱 잘못했습니다’ 할 줄 알았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고요. 일본이 생각했던 거 이상으로 한국에서 온 국민이 들불처럼 들고 일어났지요. ‘감히 일본이 한국을 이렇게 해’라는 거죠. 그러니까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기 힘든 관계였지요.

효율이 모든 경제활동의 능사는 아니야, 경제안보가 중요한 이유

민소장: 아베 사망 이후 <포린 폴리시> 기사를 보니까 ‘첫 번째 임기 때는 군사력과 미국의 일본 점령에 대한 상징적 유산 이런 거에 좀 집착을 했다. 그리고 두 번째 임기 중에는 국가 권력의 경제적 토대를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이런 회고가 있더라고요. 이 부분에서 오늘 김영희 교수님이 강조하시는 ‘경제안보’라는 부분을 우리가 좀 용어를 잘 정리하고 갈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김양희: ‘시대가 더 이상 경제와 안보를 분리시켜서 사고하기 힘들 정도로 경제 전반에 안보적인 함의라는 게 너무나 강하게 다가오는 시대로 전환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은 경제 활동의 안보적인 영향, 그것이 갖고 있는 안보적 리스크, 혹은 안보적 플러스 효과까지도 충분히 고려해서 움직이는 시대로 전환됐다는 거지요.

메대표: 경제안보라는 게 그러니까 경제는 정말 굉장히 중요해서 우리의 삶 내지는 안보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얘기인지, 아니면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는 것처럼 경제에 있어서도 동맹적 정서를 바탕으로 경제와 안보를 결합시켜 함께 봐야 된다는 얘기인지 궁금하네요.

김양희: 둘 다죠. 어디에 더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조금씩 무게 중심이 달라질 수는 있겠는데요. 저는 지금과 같은 경제안보를 논하게 만든 중요한 환경 변화로 세 가지를 생각합니다.

 첫째로 지금까지는 무조건적으로 효율성을 추구하다 보니 글로벌화하고, 그게 계속되어 ‘하이퍼 글로벌라이제이션’까지 갔잖아요. 효율에 기반해서 전 세계로 뻗어 나가서 그 글로벌 벨류 체인을 길게 길게 만들어 놨는데, 어느 날 자연재해나 코로나 같은 위기 상황을 겪으며 정신 차리고 보니 국민 생명에 위협이 되는 백신이나 마스크, 보호 장비 같은 것들을 자국에서 안 만들고 있는 거예요. 만드는 게 비싸서요. 

메대표: 싼 것만 추구하다 보니 어느새 보급선이 길어져, 위기 상황에서 확 당길 수 있는 게 안 되더란 말이죠.

김양희 : 상호의존성이 고도화됐지만, 효율만 따지면서 움직이다 보니 이건 효율이 아니라 그 나라의 경제 회복력, 또 그 나라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상당히 안 좋은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죠.

 또 하나는 경제적인 측면. 제가 봤을 때 국내에서 이 부분을 조금 더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저는 그것을 이제 기술의 형질이 전환됐다고 표현합니다. 단순히 ‘기술이 발달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왔다’가 아니라 ‘디지털 전환이 된다’라고 하는 것은 소위 이제 초연결이라는 말로 표현을 하잖아요. 또 과거에는 이 기술은 민간에서 쓰는 것과 군사적으로 쓰는 것을 구분했는데, 이제 그게 없어지고 있어요. 이걸 ‘이중 용도, 듀얼 유즈(Dual Use)’라고 하는데요. 그러다 보니까 민간에서 거래되는 기술 개발이라든가 기술 교류, 기술 수출과 수입 이 모든 것들에 대해서 정부가 모른척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지요. 이렇게 기술의 형질이 전환됐다는 두 가지 점을 말씀드릴 수 있겠고요. 

 거기에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가장 중심적인 변인이 저는 지정학적인 불안정성의 고조라고 보거든요. 아까 상호의존성이 커졌다고 말씀드렸지요. 그런데 안보 면에서 믿을 수 없는 상대가 나타나고 서로 간에 기술 패권 경쟁 그다음에 전략 경쟁까지 가버리게 되면, 이 상호의존성을 상대가 무기화해버리게 되는 거죠.

 역사적으로 봤을 때 패권의 교체는 새로운 기술의 전환과 항상 같이 이루어졌어요. 그런 점에서 ‘지금의 4차 산업혁명, 디지털 전환을 현재의 수퍼 파워인 미국이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패권을 중국한테 넘길 수도 있겠다’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니 이제는 신자유주의의 첨단이던 미국조차도 기술 개발에 신경 써야 되고, 기술을 수출하는데 돈보다도 우방에 수출해야 된다는 자세가 나오는 거지요. 

경제와 안보의 결합, 기술의 듀얼유즈, 지정학적 불안정성

메대표: 방금 말씀하신 경제안보의 세 가지 조건, 첫째로 싼 것만 찾다 보니 그 부작용이 생기고 그래서 조달에 있어 경제성과 함께 안보적인 측면, 조달의 용이함 같은 걸 따져야 된다는 얘기네요. 두 번째는 기술의 형질이 변형되면서 군사 제품이 경제 제품이고 경제 제품이 군사 제품이다, 이런 복합적인 듀얼 유즈를 말씀하신 것 같고요. 세 번째는 지정학적인 불안정성이 고조되면서 상호의존성이 무기화되고 있다는 것이네요. 결국 1, 2, 3번의 상당 부분을 관통하는 게 특정 국가의 편중성을 극복해야 된다, 그 점에서 안보적 시각을 대고 잘 좀 봐야 된다 이 얘기신가요?

김양희: 상호의존성이 무기화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비해서 글로벌화됐다고 하지만 사실은 효율성을 추구하다 보니 지역적으로 편중되어 있었거든요.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중국이에요. 물건 값이 싸기도 하지만, 잘 만들어요. 그러다 보니 마스크 뿐 아니라 항생제, 랩탑 이런 것들을 너무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는 게 문제가 된거죠. 

 근데 이제 또 하나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기술의 형질 전환이 되면서 기술 자체가 안보화 되어 버려요. 그런 상황이 되기 때문에 국가 입장에서는 더더욱 쉽게 놔줄 수가 없고. 그렇게 되면 점점 국가가 앞으로 나서고, 이전엔 시장 뒤에 있다가 이제는 점점 시장과 기업을 제치고 더욱 전면에 나설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오게 되겠지요. 

민소장: 경제안보의 가장 무기화의 대표적인 사례가 한-일 관계로 보면 반도체나 디지털 포토레지스트라든가 불화수소 이런 거 아닙니까?

김양희: 그전에 하나 분명히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상호의존성을 무기화했잖습니까. 그런데 이 문제는 경제안보라는 차원과는 조금 결이 다른 것이, 일본과 한국이 군사적으로 적성 국가는 아니거든요. 그런데 중국과 미국이라든가, 중국과 일본, 러시아와 미국은 서로 적성국 관계이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어쨌든 적성 국가가 아닌, 안보적으로 대립하는 관계가 아닌 한국에도 그렇게 상호의존성의 무기화를 휘둘렀다고 하는 점에서는 상당히 좀 쇼킹한 사건이었죠.

왜 중국과 일본만 금리를 안 올리나

민소장: 이제 경제 문제로 조금 더 넘어가서요. 현재 전 세계적으로 금리 인상 기조가 있잖아요. 그런데 유독 중국과 일본만이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어요. 일본의 금융 완화 정책은 왜 그런 겁니까?

김양희: 일단 금융 완화를 할 수밖에 없었던 요인은 장기 침체, 디플레이션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질적으로 양적으로 최대한 금융을 완화시켜 물가를 올려보고 경제 성장을 해보자고 했는데 잘 안 됐어요. 소비자 물가 2% 상승, 실질 GDP 2% 상승 이런 것들 결국 목표 달성을 못했어요. 

 아베노믹스가 성공을 했느냐에 대해서 논란의 여지가 많지요. 지금 일본한테 시급한 것은 물가 안정이 아니고요. 금리를 올려서 또 경제가 침체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더욱 큽니다. 그리고 이게 좀 더 심각할 수도 있는데요. 일본의 부채가 GDP 대비 250% 정도 됩니다. 지금 금리를 올려버리면 재정이 부담이 커지는 거지요.

메대표: 정부의 부담 능력이 약해서 일본 은행이 금리를 못 올리고 있다는 게 지난주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의 얘기였는데, 정부는 빚을 내서 경기를 자꾸 부양하려고 했고 그 결과 빚은 점점 늘어났겠네요. 이게 아베노믹스라고 저희는 알고 있는데요. 그러면 아베 사망 이후 기시다 총리는 이 기조를 계속 가져가는 건가요, 아니면 수정하게 될까요?

김양희: 기시다 총리는 아베 사망 전까지만 하더라도 조금 다른 길을 가려고 했었죠. 아베의 의도와는 달리 아베노믹스를 통해서 정말로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은 주식 투자한 사람들, 그다음 대기업들이죠. 하지만 명목 임금은 오르지 않았고 가계 살림살이는 나아졌다는 느낌이 없었어요. 아베노믹스 경기가 71개월 장기 호황을 누렸다고 하지만, 일본에서는 실감하지 못하는 호황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그런 상황에서 기시다는 아베파의 지원을 전격적으로 받고 등장했지만 아베의 그늘에서 벗어나 조금 자기의 색깔을 가질 필요가 있었고. 그 방향은 새로운 자본주의를 얘기하면서 좀 더 분배에 신경 쓰는 쪽이었지요.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자기의 실력을 보여주면서 홀로서기에 성공했어야 하는데, 아베가 갑작스럽게 죽으면서 그게 안 돼버렸습니다. 기본적으로 압승은 예상됐지만 아베 동정표의 영향을 무시할 수가 없었지요. 기시다는 아직 당내에서 자기의 입지가 강하지 않기 때문에 아베파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베노믹스를 정면 부정하기는 힘들 거에요.

메대표: 사실상 선택이 없다는 말씀으로 들리네요. 

김양희: 이미 코로나 때문에 상당한 재정을 풀었기 때문에, 아베 시기에 비해서 채무가 조금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다가 다시 코로나 이후에 팍 뛰었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또 돈을 더 풀 수도 없는 상황이고. 만약 아베가 이런 식으로 사망하지 않았다면 앞으로 3년 동안 선거가 없기 때문에 기시다가 좀 더 자기의 색깔을 낼 수 있는 여지가 있었어요. 기시다 입장에서는 절호의 찬스를 놓친 셈입니다. 

민소장: 얘기를 정리해 보면 장기 디플레이션에 시달리던 일본은, 인플레이션 압박을 받는 미국 같은 나라와는 달리 오히려 소비도 촉진시키고 경제를 좀 살려야 되는 상황이었군요.

김양희 : 워낙 장기 디플레이션에 빠져 있었지요.

쇠락해도 세계 2위 일본 경제, 중·일 사이 균형잡는 것이 우리 과제

민소장: 지금 일본과 중국 간의 경제적 현안은 뭘까요? 외교, 안보 이런 거 말고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 속에서 일본이 지키는 부분들이 있잖아요. 저희가 미-중 패권 얘기를 자주 했는데, 아직 일본의 입장을 못 들어봤거든요.

김양희: 일본도 사실 우리 못지 않게 중국하고 긴밀한 경제 관계를 갖고 있죠. 대중 수입 의존도는 한국보다 높습니다. 그러다 보니 표면적으로 일본은 미국 쪽으로 확실히 경도된 것처럼 보이지만 내심 그 안에서도 중국과의 관계를 그렇게 나쁘게 가져가지 못하는 한계가 분명히 있어요. 그건 우리도 유심히 살펴 봐야 될 부분이죠.

민소장: 저는 그런 부분이 결국은 과거에 제국을 거느렸던 나라들의 특색 같아요. 동네에서 어린애들끼리 싸우는 것은 그냥 그렇게 보다가, 자기들끼리 싸울 때도 결정적일 때는 큰 싸움은 피하면서 그대로 같이 가는 게 보여요.

메대표: 말로는 큰소리 치면서, 줄 거 주고 받을 거 받는 기술이 있어요.

민소장: 우리가 일본과 위안부 문제 논할 때, 중국이 우리 편 들어줄 것 같지만 안 그렇거든요. 오히려 ‘중-일 관계 우호 몇 주년’ 해서 서로 교류하는 걸 보면 약 오를 때가 있어요. 

김양희: 아무리 일본이 경제가 쇠퇴했다 해도 세계 3위에요. 중국은 또 세계 2위거든요. 대국이에요. 아직은 한국이 일본과 미흡하나마 조금 관계를 개선할 수밖에 없는 이유고요. 우리로서는 앞으로 중국하고 이전처럼 장기적으로 좋은 관계를 가져 가기는 힘들어요. 그건 명약관화하고요. 그런 가운데 일본하고의 관계마저 안 좋아진다면 운신의 폭에 제약이 커지겠지요. 그러다 우리보다 훨씬 이해관계가 더 맞아떨어진 저 두 대국이 어떤 합의를 할지 우리는 모르는 상황이에요. 지금처럼 한-일 관계가 안 좋아졌을 때 정말 미소 지을 나라는 중국이라는 거죠.

메대표: 경제안보를 튼튼히 하기 위해서라도 외교가 필요하다는 거네요. 일본이 미국 옆으로 바짝 붙어서 친하게 굴면서도, 또 중국에 대해서 강경 발언하면서도, 실제 중국과의 경제 교류나 협력에는 큰 지장이 없는 것처럼, 한국도 경제안보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거꾸로 외교가 필요하겠어요.

일본의 <경제안보 추진법>은 거대담론이 아니라 자국 기업 보호책

김양희: 일본이 중국과 경제 교류나 협력에 지장이 전혀 없는 건 아니고 지장이 없게 하려고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죠. 예컨대 ‘경제안보 추진법’도 처음에는 ‘일괄 추진법’이라고 이름 지었다가 자민당 내 친중파 쪽에서 일괄이란 말이 좀 부담스럽다고 빼자고 했어요. 그래서 일괄을 뺐어요. 

 그리고 미국과 달리 일본은 경제안보법 법안 어디에도 중국이라는 말은 한 글자도 나오지 않습니다. 물론 중국을 의식하는 것도 있지만, 일본은 내심 미국도 의식하고 한국도 의식하기 때문에 굳이 중국이라는 말을 넣어 중국을 자극할 필요도 없다는 전략적인 판단도 있는 거고요.

메대표: 일본에는 ‘경제안보 추진법’이라는 것이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법에서 특정 국가를 적성 국가처럼 지적하는 일은 없다는, 두 가지 굉장히 새로운 얘기를 들었습니다.

김양희: 일본의 ‘경제안보법’과 관련해서 우리가 좀 주목해야 될 부분들이 있는데, 상당히 재밌습니다. 일본의 ‘경제안보’라고 하는 것은 기시다 정권의 4대 핵심 정책 중 하나로 들어가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새로운 자본주의’에요. 새로운 자본주의는 성장 전략과 분배 전략으로 나뉘고, 그 중 성장 전략 안에 경제안보가 들어가 있어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경제안보란 외교 쪽에 가 있어야 될 것 같은데요.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일본 입장에서 경제안보는 거대담론이 아니라는 거예요. 일본의 기업이 앞으로 미-중 사이에서 여러 가지로 혼란스럽고 힘들 수 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명확한 가이드 라인을 주겠다는 이야기예요.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자국 기업을 보호하고 지킨다는 그 출발선이 확실한 거죠. 그리고 이것을 굳이 어떤 외교안보 전략도 아니고, 경제안보 전략을 따로 떼어낸 것도 아닌, 성장 전략에 넣어놨다고 하는 것은 산업 정책의 모양새를 하고 있다는 거거든요.

 제가 이번에 일본에 가서 확인하고 싶었던 게, 일본 입장에서는 기업에게 경제안보 얘기를 하면서 안보가 중요하니까 ‘이거 하지 마, 저거 하지 마’라고 채찍질만 할 수는 없다는 거예요. 당근도 필요한 거죠. 이거 하면 보조금 줄게, 이거 하면 우리가 지원해 줄게 해서 채찍과 당근을 같이 주는 차원에서 이것을 산업 정책으로 포장을 한다는 거죠. 기업의 입장에서는 수출, 투자, 사사건건 막기만 하고, 일일이 신고해야 되고 허락 맡아야 되요. 그 준수 비용이라는 게 상당한 부담이고 피곤하거든요. 심지어는 규제 안 지키면 벌금 부과한다는 얘기까지 나왔어요. 기업이 엄청나게 반발을 해서 철회가 되긴 했습니다.

민소장: 얼마 전에 4년7개월 만에 한-일 외무장관 회담이 열렸거든요. 국내의 반일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대일 관계를 반드시 회복시켜야 한다는 정책적 의지가 있었고. 윤석열 정부가 대일 외교에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가 뭘까요. 과연 일본은 태도를 바꿀 것인가도 궁금합니다.

김양희: 저도 기본적으로는 큰 틀에서 그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쉽게 얘기하면 경제보다는 안보 논리가 더 우선되는 시대로 변했다 라는 얘기거든요. 지금은 그런 속에서 우리가 경제적인 이득을 따라 가다가는 자칫 소탐대실할 수 있는 상황이 왔다는 거예요. 

 특히 저는 개인적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엄청나게 중요한 어떤 분기점이 됐다고 보거든요. 경제적인 실익보다도 안보가 중요해지는 시기가 왔고, 한국도 이제는 전략적인 모호성을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려운 상황에 와 있다는 거죠. 경제적으로만 하더라도 아까 얘기했던 이중 용도(dual use) 품목의 대표적인 게 반도체잖아요.

 반도체 원천기술을 보유한 미국, 장비나 소재 기술을 가진 일본 등이 반도체 동맹을 제안할 때, ‘우리는 중국 시장 때문에 그쪽으로 가지 못합니다’라고 얘기하기 어려운 상황이에요. 자칫 우리 반도체 기술의 일부가 군사적으로도 잘못 쓰여질 수 있는 그런 우려도 배제하면 안 되거든요. 그런 부분이 있기 때문에 저는 공급망 재편을 하더라도 흑백으로 미국이랑 할래 중국이랑 할래의 이분법적 구도가 아니라 보고요. 

 안보 요소까지 고려한다면, 이중 용도 기술은 안보면에서 신뢰할 수 있는 나라랑 같이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신발이라든가 가구, 일반 컴퓨터 같은 품목까지 모든 것에서 중국과의 협업에서 벗어나자는 얘기는 누구도 하지 않고, 그거는 불가능하지요. 미국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자원과 수출 시장 확보 차원에서 IPEF에는 참여할 수밖에 없어

민소장: 바이든 대통령 방한 즈음에 인도 태평양 이코노믹 프레임웍 얘기가 한창 나오다가 요즘 쏙 들어간 것 같아요. 왜 그런 겁니까?

김양희: 쏙 들어가지 않았고요.

민소장: 확실히 관심은 많이 떨어졌잖아요. 인도가 러시아하고 손을 잡으며 미국이 삐졌나요?

김양희: 아니요. 그렇게 보긴 어렵고, 물밑에서 실무 차원 논의가 이뤄지는 중입니다. 일본에서 5월24일에 한 건 그 구상에 대한 론칭이죠. 협상을 개시하자고 시작을 한 거고, 이제는 협상을 개시하기 위해 실무 작업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문제는 이제 그게 과연 잘 될 수 있을까 하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고, 현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는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거죠.

 기본적으로 저는 한국이 IPEF(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1차적으로 특히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경제보다도 더 중요하게 등장한 안보를 생각한다면 기본적으로 한-미 동맹을 확고히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기 힘든 상황이라 생각하거든요. 그런 것 뿐 아니라 경제적인 측면만 놓고 보더라도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현재는 기술이나 원자재 면에서 중국에 많이 의존하는데, IPEF에 참가하는 나라 중에 우리에게 필요한 자원을 가졌거나 잠재적인 제3의 수출시장인 곳이 많아요. WTO는 기능을 안 한 지 오래 됐고, 이런 상황에서 ‘뭔가 만들려고 하는데 한국도 들어와서 같이 할래?’하는데 거기에 안 들어갈 이유가 없죠.

메대표: 국내 기업이나 주주들의 고민은 미국, 또는 IPEF 협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가되 중국에서 질서 있는 퇴각을 해야 한다는 거지요. 중국 쪽에서 퇴각하는 속도 조절도 잘 하고, 전반적인 전략 전술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중국 거래를 많이 하는 기업과 주주들의 걱정이죠.

김양희: 너무 중요한 지점이고, 저도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는 말입니다. 너무 급격하게 변화하다가 너무 큰 전환 비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갈 필요가 있어요. 지금 IPEF에 들어가는 게 중국과 모든 것들을 단절하고 이쪽으로 가겠다가 결코 아니거든요. 

 우리로서는 기존에 없는 새로운 국제 규범을 마련해 가는 거고요. 그리고 안보 면에서 중요하기 때문에 파트너 선정이 쉽지 않은 반도체 산업, AI 같은 부분에 있어서 우리에게 없는 핵심 기술을 갖고 있는 나라들과는 같이 움직일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어요. 이런 협력을 추구하더라도 그것이 중국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되죠. 안 될 뿐 아니라 불가능합니다.

‘트러스트 밸류 체인(Trust Value Chain)’ 잘 고려해야

민소장: 트러스트 밸류 체인(Trust Value Chain), 즉 신뢰의 가치 사슬 얘기가 자꾸 나오는 게 거꾸로 생각하면 ‘믿을 건 우리끼리 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자꾸 편을 만드는 게 오히려 신뢰가 아니고 불안감에 의한 밸류 체인인 것 같아요. 

김양희: 맞습니다. ’트러스트 벨류 체인‘은 제가 만든 용어인데, 이걸 얘기하면서 이게 바람직하다 라는 말이 아니라, 미국의 시각에서 봤을 때 미국이 하고자 하는 게 TVC(추력 편향 제어)이에요. 안보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산업은 믿을 수 있는 우방이나 동맹하고만 하겠다는 시각이지요. 그게 잘 될 것 같냐고 물으신다면 아직까지는 회의적이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두 가지 이유를 말씀드릴 수 있는데. 첫 번째로는 국가 대 국가 관계에서 과연 말 그대로 국가 간의 충분한 신뢰가 구축되기가 쉽지 않다는 거죠. 당장 한-일 관계가 어색하고요. 반면에 일본하고 대만은 상당히 사이가 좋아 보이죠. 그런데 그 대만조차도 2019년에 일본이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강화하는 걸 보면서 크게 놀랍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우리도 탈일본화 해야 되겠다 라는 생각에 해당 품목을 스물여섯 개 정도 뽑아냅니다. 한 번에 다 못하니까 그중에 네 개만 일단 먼저 시범 사업을 했습니다.

 사실 기본적으로 국가 대 국가 관계에 온전한 신뢰라는 건 없죠. 100% 신뢰라는 건 없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저 나라보다는 조금 믿을 만한 나라를 택한다는 거지요. 제가 신뢰의 가치 사슬을 얘기할 때 신뢰에는 이중의 의미를 담습니다. 첫 번째로 어떤 물건을 만들어 낼 때 경영학적인 측면에서의 신뢰. 납기 잘 지켜주고, 제대로 된 품질을 만들어줄 것 같은 신뢰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말하는 신뢰 가치 사슬은 그걸 훨씬 뛰어넘어서 적어도 ’안보적으로 등 뒤에서 칼을 꽂진 않을 거다, 나한테 총을 겨누지는 않을 거다‘라는 그 신뢰가 훨씬 더 커진 거죠. 이런 부분에서 쉽지는 않을 겁니다. 쉽지 않을 거라 말씀드린 이유는, 시장 논리를 과하게 거스르는 안보 논리가 지속 가능하겠느냐 라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지요. 

 국내 기업들에서는 미국이 너무 과하게 중국을 압박하면 힘들다고 이야기해요. 우리는 미국에 가서도, 중국에 가서도 물건을 팔아야 되는데, 이런 식으로 하면 오히려 장기적으로 시간은 중국 편이라는 얘기를 하기도 하거든요. 그리고 온 나라가 반도체를 자국 내에서 만들겠다고 할 경우, 만들기도 쉽지 않지만 다 만들어 냈을 때 그 공급가는 감당이 안 되거든요.

 그래서 이런 걸 봤을 때 쉽지는 않지만 거듭 말씀드리는 것은 안보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기술과 품목, 자국의 어떤 보건 위기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품목 등에 있어서는 결국은 그리로 좌충우돌하면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갈 수밖에 없을 거다 라는 겁니다. 

메대표: 한국은 한국의 이유로 일본은 일본의 이유로 중국을 점진적으로 배제해 나가는 경제 구도를 짜고 있는데, 그 점에서는 일본과 한국이 이해관계가 좀 비슷한 점이 있죠. 중국이 요소수 같은 것을 수백 개 차단할 수가 있는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공동 대응하는 걸 논의해 볼 수도 있겠지요. 동아시아 경제 질서의 새 판을 짜면서 일본하고 나눌 수 있는 것들이 뭐가 있는지, 그런 것들은 좀 더 연구하고 협의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유량(Flow)은 적어보이지만 저량(Stock)이 큰 일본

민소장: 우리가 과거에는 일본을 배우자, 따라잡자 했는데 어느 순간 일본에 대해서 우리가 너무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일본이 그래도 현재 세계 경제 3위인데 우리가 무시하는 거 아닌가 싶고요. 저력이 있는 나라잖아요.

김양희: 경제학에서 경제 지표를 볼 때 저량과 유량이라는 구분을 많이 하거든요. 영어로는 플로우(Flow), 흐름이죠. 그 다음에 스톡(Stock), 저량입니다. 일본이란 나라는 저량 기준으로 보느냐 유량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보이는 모습이 확연히 달라요. 

 유량 기준으로 봤을 때, 실질적으로 체감하는 바는 우리보다 더 못 사는 거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저렇게 침체돼 간다 하면서 30년을 버틸 수 있었던 그 힘은 바로 그 저량에서 나오거든요. 그 저력을 쉽게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4~5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일본이란 나라는 한국의 가까운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에 우리가 일본을 제대로 잘 연구하면 한국이 앞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데 많이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요즘에는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이제 다른 길을 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디지털 전환, 그린 전환이 오고 시대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적응력은 훨씬 뛰어납니다. 일본은 저량이 버틸만 하니까 오히려 서서히 자신이 침체돼 가는 상황에 대해 그다지 위기의식을 못 느끼는 거지요. 어쨌든 가까이 있는 나라고, 일본의 시대는 끝났다고 관심까지 끊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꾸준히 일본을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메대표: 일본 같은 스톡을 어떻게 하면 우리도 갖출 수 있을지 그 지혜를 빌려올 부분이 있으면 빌려오고, 또 플로우가 좋다고 해서 너무 신나 하지 않는 자세가 진정한 극복을 이루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