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 지구촌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미·중 간 주도권 다툼의 고조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영향으로 '중국의 대만 공격' 시나리오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설'이 기름을 부었다. '설마'했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예측불허 상태로 치닫는 분위기다. 대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 두 나라의 힘겨루기는 어떻게 전개될까? 국제 문제 전문가인 고한석 필자는 두 나라의 전략을 '체스'(미국) 대 '바둑'(중국)이라는 접근법으로 흥미롭게 해석하면서, 두 전략이 대만에서 어떻게 충돌할지 예측한다. [편집자 주]

낸시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설에 고조되어가는 미·중  갈등대다수의 대만인은 중국의 통치도 대만 독립도 원하지 않아중국은 ‘세’의 우위 형성하여 상대방의 포기 유도하는 바둑 전략 구사✔ 미국은 개별 전투의 승리를 쌓아 가며 적을 섬멸하는 체스식의 전략한국도 중국에 대항하는 장기적인 전략 수립과 대안 구축 필요해

사진:셔터스톡

대만을 둘러싼 미-중 갈등이 최근 들어서 첨예화되고 있다. 1949년에 중국 대륙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면서 기존의 중화민국이 대만으로 철수한 이후로 중국과 대만은 줄곧 긴장 관계를 유지해 왔기에 이러한 갈등이 새삼스럽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 중국의 국력이 거의 미국의 턱밑까지 쫓아오면서 이러한 갈등은 새로운 맥락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올해 들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중국도 대만을 침공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보도가 서방 언론에서 쏟아져 나왔다. 여기에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할 것이라는 소식을 <파이낸셜타임즈>가 보도하면서 미-중 관계는 자칫하면 군사적 충돌이 일촉즉발할 수 있는 상태로 격화했다.

대만을 놓고 미·중 군사 충돌이 발생한다면

만약 대만에서 미-중 사이에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면 주한미군이 주둔하는 한국도 강건너 불구경만 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7월23일 <닛케이 아시아>의 보도 '왜 미 군부는 펠로시의 대만 방문에 반대하는가?'에 따르면, 일본 자위대의 3성급 예비역 사령관 이소베 고이치는 펠로시가 탄 비행기가 어디에서 이륙하는지를 중국군이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과거에 미국 정부인사를 태우고 대만으로 가는 군용기가 주한미군 기지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면서 이러한 비행은 대만해협에서 미-중 충돌이 벌어질 경우 주한미군이 전투를 지원하기 위한 하나의 연습 과정으로 활용된다고 말했다. 물론 한국은 대만과 상호방위조약을 맺지 않았기 때문에 대만에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경우 한국군이 직접 참전해야 할 의무는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주한미군 기지가 대만에서의 전쟁을 지원하는 병참기지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중국군의 잠재적 공격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설사 중국이 한국 내 주한미군 기지를 직접 공격하지는 않더라도 주한미군을 한반도에 묶어두기 위해서 북한에게 휴전선에서의 군사적 도발을 요청할 가능성이 높다. 어떤 경우든 한국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발을 담그게 될 수 있기 때문에 대만을 둘러싼 미-중 충돌에 대해서 다각도로 분석하고 대비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과연 대만에서 미-중간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발생한다면 어떤 조건 아래서 발생할 것인가? 그것은 언제쯤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까? 발생한다면 그 결과는 어떨까? 이런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는 중국, 미국, 대만이라는 세 당사자들이 겉으로 보이는 과격한 언사와 무관하게 속생각이 무엇인지를 깊이 있게 분석해야 한다.

7월 23일 닛케이 아시아의 보도 '왜 미 군부는 펠로시의 대만 방문에 반대하는가'

중국,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 최상위 목표다

먼저 중국은 대만에 대해서 어떤 전략을 가지고 있을까? 전략적 목표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전략은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 대만을 본토로 귀속시키는 것은 하나의 전략적 목표이며 중국 지도부는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하지만 대만의 본토 귀속은 동시에 더 상위 차원의 전략 목표로 설정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기 위한 전략 중 하나이기도 하다. 즉 중국의 입장에서 대만의 본토 귀속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에 종속되는 목표이지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니다. 소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은 외교, 군사, 문화, 기술 등 다양한 측면에서 발현될 수 있겠지만, 이 모든 것의 토대가 되는 것은 강한 경제력과 산업 경쟁력이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꿈 즉 ‘중국몽’을 이루기까지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있으며 일단은 약 30년 후인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을 그런 꿈이 달성되는 시점으로 삼고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부 서방 학자들은 중국의 인구 감소와 경제성장률 하락, 미국의 견제 등으로 인해 중국의 국력 신장은 거의 정점에 이르렀으며 곧 쇠락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중국의 지도층 역시 이를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기회의 창이 사라지기 전에 역사적 과업인 대만 통일을 위한 무력 침공을 시도할 것이며 따라서 지금이 가장 위험한 시기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포린 폴리시에 실린 관련 기사. 하지만 중국 내부 분위기는 여전히 절대적으로 낙관적이며 ‘시간은 우리편’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만약 대만에 대한 침공이 미-중 간에 전쟁을 촉발시켜 중국의 피해가 막대해지고 서방 국가들의 강력한 제재로 경제적 토대가 무너지게 된다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최상위 목표는 파탄나게 된다. 중국 지도부가 겉으로는 아무리 격렬한 언사를 내뱉어도 이는 정치적 수사이며, 대륙에 있는 14억 명의 밝은 미래를 희생하면서 2300만 명의 대만을 무력으로 점령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자신의 통치 기반을 허무는 일이다. 하지만 내뱉은 말이 있고 국가적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만약 대만이 ‘독립’을 선언하거나, 미국이 공식적으로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거나, 더 나아가 미군이 대만에 주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다면 중국은 어쩔 수 없이 온갖 피해를 무릅쓰고서라도 군사적 행동을 할 것이다. 따라서 중국 지도부 입장에서는 중국이 충분히 부강해지는,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는 제발 대만의 소위 ‘독립’ 선언과 미국의 개입이 없기를 바라고 있다고 보여진다. 미국은 중국이 ‘현상(現狀) 변경’을 시도한다고 하지만 대만에 관한 한 중국은 당분간 ‘현상 유지’ 세력에 가깝다.

체스 전략 vs 바둑 전략

그렇다면 중국은 그냥 대만을 그대로 둘 것인가? 대만의 본토 귀속이라는 목표를 위해서 어떠한 전략을 취하고자 할까? 미 육군 전략 연구소(SSI) 연구원이자 육군 군사대학(Army War College)의 데이비드 라이(David Lai) 교수가 쓴 <돌에서 배우는 교훈 : 중국의 전략적 개념 ‘세’(勢)를 이해하기 위한 ‘바둑’식 접근 방식(2004)>을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손자병법에서 나온 ‘세’의 개념은 2가지 측면에서 서양 군사학에서 익숙한 ‘전략’과 다르다. 첫째는 그것이 승리의 수단으로 무력 사용을 최소화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명확한 계획에 따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한다는 것이다. 우리 말에도 ‘세를 형성’한다, ‘기세 등등’하다는 말이 있다. 이것이 의미는 상대로 하여금 저항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반면에 압도적인 ‘세’를 구축하기 전에 섣불리 전투에 나선다면 많은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

서양의 전략 게임인 체스는 개별 전투에서의 승리를 통해서 적을 섬멸해 가면서 궁극적인 승리, 즉 상대편 왕을 죽인다는 사고방식에 기반하지만, 바둑은 공간 확장을 통해서 전반적인 ‘세’의 우위를 형성하여 상대방이 포기하도록 만듦으로써 승리한다는 사고방식에 기반하고 있다. 또한 체스는 ‘오프닝’부터 시작해서 몇가지 정해진 주요 전략들이 있고, 자신과 상대방의 말들이 정해진 규칙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공격과 반격을 일정한 수까지 앞서 계산해서 전략을 실행한다. 고수들의 경우 중반전에 접어들면 종반전까지 어느 정도 수의 예측이 가능해진다. 반면에 바둑은 한 수 한 수가 개별적 규칙을 가진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거나 상호조응하면서 의미를 획득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한 수를 둘 때는 명확한 전략을 가진 행위라기보다는 상황의 변화에 따라서 그때 그때 조금씩 우세한 세를 형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구축해 가는 방식으로 행동한다.

중국의 입장에서 대만의 본토 귀속은 소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본질적 ‘세’를 형성한 후 이를 통해서 대만이 어쩔 수 없이 중국의 요구에 동의하도록 만드는 ‘불계승’으로 마지막 단계를 장식하는 ‘화룡점정’이지, 대만을 점령해야만 ‘세’를 형성할 수 있는 필수적 과정이 아니다. 중국은 대만에 대한 ‘세’를 형성하기 위해서 한편으로는 대만 경제에서 차지하는 자신의 비중을 지속적으로 높이면서 세계 경제에서의 비중도 높여가며 ‘경제적 세’를 형성하는 한편, 이를 군대의 현대화와 군비 확장으로 연결시켜 ‘군사적 세’를 형성하는 노력을 배가하고 있다. 만약 중국이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고 대만의 본토 귀속을 행동으로 옮기려고 할 경우에도 그것은 다양한 압박과 봉쇄, 협상과 편의적 합의 등을 거치면서 상징적/구체적 양보를 받아내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실질적인 통합까지 어쩌면 끊임없는 전진과 후퇴의 과정을 겪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현재 대만과 관련된 중국의 ‘현상 유지’ 전략은 궁극적인 ‘현상 변경’에 도움이 되는 수단인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입장은 어떨까? 중국과는 정반대로 미국은 궁극적인 ‘현상 유지’를 위해서 현재의 ‘현상 변경’을 추구하는 전략을 취해야 한다. 미국은 현재 그런 전략을 실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미국은 자신이 주도하는 국제질서라는 현재의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곧 국익을 수호하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경제 발전을 둘러싼 환경이 ‘현상’(現狀) 즉 현재 상태대로 유지된다면 멀지 않은 미래에 중국의 경제력 및 군사력은 미국을 추월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미국은 중국에 유리한 제반 조건들을 변경하여 중국의 추격을 주저앉히려고 한다. 지난 4~5년간 기존의 조건들을 뒤엎는 다양한 공격적인 경제 정책들, 예를 들어 관세 장벽과 투자 제한, 화웨이 통신장비 퇴출, 반도체 장비 수출 금지, 주식시장에서 중국기업 퇴출과 미국내 대학에서의 공동연구 중단 등을 동원해 중국의 경제 발전 속도를 늦추어 더 이상 1등의 자리를 넘보지 못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단순한 ‘기술 경쟁’만으로는 ‘산업 정책’ 즉 국가 지원을 앞세운 중국을 이길 수 없기에 미국 역시 자유 시장의 원칙을 버리고 (산업 정책이라는 말은 미국에서 거의 금기 단어이므로 직접 사용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규제 및 지원 정책을 통해서 중국의 추월을 막으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경쟁과 정책으로 미국의 1등 지위를 유지할 수는 있어도 패권을 유지할 수는 없다. 1등과 패권은 다른 것이다. 만약 1위를 유지하더라도 2위, 3위 국가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국제 체제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관철할 수 없으며 매사에 2위, 3위 국가와 협상을 벌여 타협과 양보를 통한 조정을 해야만 한다. 이런 1등 국가를 패권국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결국 패권을 유지하려면 2위, 3위 국가의 경제력을 파괴적으로 교란하여 주저앉혀야만 한다. 지난 4월에 미국 국방장관 로이드 오스틴은 “다시는 나쁜 짓을 저지르지 못하게 러시아를 약화시키는 것”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의 목표라고 말했다. 미국의 입장에서 가장 좋은 결과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가 명분없는 싸움을 시작하여 서방의 강력한 경제적 제재를 받게 되고 결국 러시아의 국력 자체가 약화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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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은 미국의 팻감?

이와 비슷하게 대만 역시 미국의 입장에서는 바둑의 팻감과 비슷하다. 어떤 영역에서의 수 싸움이 승패를 가리기 힘들 때 즉 패를 형성하게 될 때 A가 이 패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다른 영역에서 상대방 B로 하여금 맞대응할 수밖에 없도록 A가 두는 수가 팻감이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한반도가 대만 점령을 위한 팻감이 될 수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궁극적 현상 유지, 이를 위한 경제력 싸움이라는 패를 이기기 위해서 대만을 둘러싼 현상 변경 시도를 팻감으로 쓰는 것이다. 중국은 이 팻감에 대응해도 손해이고 대응하지 않아도 손해이다. 미국은 중국이 이 팻감에 대응하지 않으면 작은 현상 변경에 성공하는 것(대만에 대한 사실상 국가 인정과 이를 통한 시진핑의 국내적 지지 약화)이고 만약 중국이 실제로 무력으로 대응하면 큰 현상 변경(국제적 경제제재를 통한 경제력 약화)을 통한 궁극적 현상 유지에 성공하는 것이므로 어떤 경우든 나쁘지 않은 수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번 펠로시의 대만 방문이 성사되든 아니든 지속적으로 대만을 빌미로 중국의 반발을 불러오는 행위들을 강화할 것이고 그러한 반발이 일정한 선을 넘게 되면 이를 계기로 삼아 전방위적인 제재 공세를 가하고자 할 것이다.

실제 당사자인 대만의 입장은 어떨까? 다양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대만인들은 중국의 통치 하에 놓이기를 원하지 않으며 통일도 원하지 않는다. 2020년에 실시된 여론조사에선 ‘대만인이자 중국인 즉 이중 정체성’을 꼽은 응답자가 29.9%에 그쳤다. ‘중국인’이란 응답은 단 2.6%에 불과했다. 대다수(64.3%)가 자신을 중국인이 아닌 ‘대만인’으로 규정했다. 그런데 ‘이른 시일 안에 통일’(1.0%)과 ‘현상 유지 속 통일 추진’(6.6%) 등을 합친 통일 선호 여론은 7.6%였으며 ‘현상 유지 속 독립 추진’(25.8%)과 ‘이른 시일 안에 독립 추진’(6.6%) 등 독립 선호 여론은 32.4%였다. 대만인 정체성의 비율과 비교하면 독립 선호 여론은 그 절반에 불과했고, 통일을 추진하든 독립을 추진하든 현상 유지를 원하는 응답을 합치면 그 역시 32.4%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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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대만인들의 냉정한 현실 인식이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대만은 반도체 호황 등을 계기로 중국 시장과 미국 시장에서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으며 1인당 국민소득도 곧 한국을 추월할 태세이다. 중국과의 관계 악화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중국에 대한 수출 증가율은 2021년의 11.9%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24.8%가 되었는데 여기에 가장 기여한 것은 반도체 수출이다. 대만의 반도체 산업은 지난해 대만에서 수출의 37%, 국내총생산(GDP)의 17%를 차지했다. 대만인들은 중국의 무력 침공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반대하며 무기 구매와 군사 훈련 등 국방 태세를 강화하고 있고 유사시 미군의 도움을 무조건적으로 바라고 있지만, 미-중 갈등이 첨예화되면 대만은 중국이나 미국보다도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만약 미국이 주도하는 칩4(Chip4) 등 반도체 동맹이 현실화되어 중국에 대한 반도체 판매가 규제될 경우 대만은 자국 반도체 수출 시장의 절반을 잃게 되어 커다란 경제적 타격을 받게 된다. 게다가 대만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당사자로써 그 피해는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이처럼 대만인들의 입장에서는 중국에 의한 궁극적인 현상 변경이나 미국에 의한 현재의 현상 변경이나 모두 손해를 보기 때문에 중국이나 미국과도 다른 ‘진정한 현상 유지’를 원한다고 할 수 있다. 2000년에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민주진보당의 천수이볜이 총통으로 당선되었을 때 해외언론 인터뷰에서 기자가 “독립 선언을 할 것인가”라고 질문하자 천수이볜은 웃으면서 “우리는 이미 독립되어 있는데 무슨 독립 선언을 해야 하는가”라고 되물었다. 난처한 질문을 비켜가는 정치적 수사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자주성과 외교 현실을 절묘하게 절충하여 대답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대만에 대한 미국의 지지는 이미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표현되었고 심지어 조 바이든 대통령조차도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미국이 대만을 방어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발언하였다. 이제 대만에게는 펠로시의 방문과 같은 상징적이고 정치적인 행위가 추가로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중국의 침략에 맞설 수 있는 무기를 제공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중국의 전략이 당분간 현상 유지이기 때문에 대만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현상 유지 기간 동안 최대한 국방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우선 과제이면서 한편으로는 방어력이 불충분한 상태에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을 최소화해야 한다. 우크라이나에 있어서도 러시아 침공이 발생하기 전에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했어야 할 일은 ‘우리의 문은 항상 열려 있다’고 자신의 입장을 상징적으로 말하는 것(실제로는 가입 신청을 받아들이려고 하지도 않았다)이 아니라 사전에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고 국방력을 강화시켜주는 일이었다.

대한민국의 입장도 대만과 비슷하다. 우리의 수출 1위 품목은 반도체이며 반도체 수출에서 중국(홍콩 포함)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62%다. 만약 우리가 중국 시장을 포기한다면 우리 경제가 받게 될 충격은 엄청나게 클 것이고 1인당 국민소득도 하락하게 된다. 게다가 대만에서의 군사적 충돌이 한반도에서의 충돌로 이어질 경우 그 피해는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어쩌면 우리는 미-중 양측에 각각 자제를 촉구할 수 있는 더 좋은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우리를 압박하는 중국이 힘이 커져 가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한국도 그에 대항하는 전략을 수립하고 실질적 대안을 구축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상징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거나 미-중 갈등에 너무 일찍 깊숙이 관여되어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를 입기보다는, 중국의 강압적 영향력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산업적 차원과 국방적 차원에서 어떤 단계적 전략이 필요한지를 고민하고 그 로드맵을 제시하는 것이 더 시급한 과제이다.

보론: 펠로시의 대만 방문에 대한 예상

이 글을 쓰는 동안 펠로시는 동아시아 4개국 순방을 위해서 미국을 떠났다. 대만을 방문할 것인지 취소할 것인지 여부에 대해서 공개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취소할 것이라면 그것이 사후에 취소했다는 것이 알려지든 사전에 취소를 공개하든 본인에게 정치적으로 부담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일본과 한국 등 중국의 압력을 받는 나라들을 순방하기 직전에 자신의 대만 방문 취소를 공개한다면 이들 나라에서 자신의 방문 효과는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 예고없이 방문을 강행하든, 아니면 4개국 순방 후 대만 방문을 하지 않고 미국으로 돌아가서 대외적으로는 원래 일정에 없었다고 하든 둘 중의 하나가 남은 셈이다. 1991년 하원의원으로 중국 방문 시 사전 예고없이 천안문 광장에서 1989년 민주화 시위로 사망한 희생자를 기념하는 플래카드를 펼쳐서 중국과 미국의 관계자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던 펠로시의 과거 행적으로 보면 방문을 강행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중국은 군용기 등을 동원한 위협 시위는 할지언정 물리적으로 이를 막지는 못할 것이다. 펠로시는 대통령 유고 시 이를 대행할 수 있는 미국 국가 요인 서열 2위의 인물이어서 펠로시의 대만 방문을 직접 물리력으로 위협하는 것은 미국 자체에 대한 적대적 군사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 거꾸로 펠로시도 이를 알기 때문에 방문을 강행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중국이 단지 대변인이나 성명서로만 비난하는데서 끝나지는 않을 것 같다. 예상되는 몇가지 대응은, 전투기를 동원하여 대만 방공식별구역을 깊숙이 비행하여 이를 저지하기 위해 출동한 대만 전투기와의 조우전을 펼치거나, 군함을 동원하여 대만 영해 깊숙이 들어와서 대만 해군 함정과 포격전을 벌이는 것, 또는 대만 영해 10해리(약 18km) 인근에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 등이다. 공중전과 해상전의 경우 지상전과는 달리 눈에 보이는 정확한 경계선이 그어져 있지 않아서 주권에 대한 주장을 하기 쉽고, 순수하게 군인들 간의 교전으로 민간인에 대한 부수적 피해가 없어서 대중의 정서적 파급 효과가 제한적이며, 육군과 달리 교전 지역을 점령해야 하거나 점령 후 주둔해야 하는 데서 발생하는 부담이 없다. 마치 2002년에 우리나라 서해에서 발생했던 연평해전처럼 교전 후 에스컬레이션(확전)의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적어서 중국 측에서 시도할 유혹이 크며 양측 모두 이런 체면치레 교전 이후 다시 비난 성명서를 주고 받는 대치 국면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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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한발 더 나아가게 되면 현재 대만 영토인 금문도(金門島)와 마조도(馬祖島)를 봉쇄하고 투항을 요구하는 것이다. 금문도와 마조도는 사실상 대륙에 붙어 있는 섬으로 가까운 곳은 2km, 본섬은 1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게다가 이곳 주민들은 대부분 바로 코앞인 복건성이 고향인 사람들이기에 자신들을 대만인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대만 독립에도 부정적이어서 민주진보당 출신 정치인이 지역구 의원에 당선된 적이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없는 곳이다. 이곳은 중국에서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이기에 봉쇄될 경우 대만의 해군이나 미국 해군이 가까이 근접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곳이다. 중국이 이곳을 봉쇄하고 투항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각종 경제적 이득을 지원하고 (비록 홍콩에서의 탄압으로 빛이 바랬지만) 1국2체제를 보장한다고 협상을 요구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무혈 내지는 최소한의 충돌로 이 두 곳을 중국 영토로 만들 수 있다.

금문도와 마조도는 지도에 표시된 대로 지리적으로 대만 본섬보다는 중국 푸젠성과 더 가깝다.

흥미로운 부분은 1979년에 만들어진 미국의 ‘대만관계법’에서는 ‘대만’에 대한 정의를 대만 본섬과 팽호군도(澎湖群島: 대만해협에서 대만에 가까운 쪽 위치)로 명시하였으며 금문도와 마조도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대만관계법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미국과 대만 사이에 맺어진 상호방위조약도(1954년 제1차 대만해협 위기 즉 금문도 포격 사건 이후인 1954년 12월에 대만 방위를 위해서 맺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두 섬을 명시하지 않았다. 1958년 제2차 대만해협 위기가 발생하자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대만의 장개석 총통에게 이 섬을 포기할 것을 요구하였지만 장개석이 끝까지 거부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1960년대 말까지도 소규모 포격이 몇 년에 한 번씩 있었다. 이처럼 여러 차례의 충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이 두 섬을 ‘대만관계법’에서 제외시킨 것은 중국과의 충돌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닌가 추측할 수 있다.

만약 중국이 금문도와 마조도를 봉쇄하여 점유하게 될 경우 일시적 충돌이 아니라 강압적으로 영토와 주민의 귀속을 영구적으로 변경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몰고 올 파급 효과는 공중전이나 해상전보다 훨씬 더 클 것이고 서방은 중국에 대한 대규모 제재를 가할 것이다. 중국측으로서는 매우 험난한 앞길을 마주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글쓴이 고한석은서울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에서 IT정책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SK China에서 4년 동안 일했으며 삼성네트웍스에서 글로벌사업추진팀장을 맡기도 했다. 이후 열린우리당 정책연구원 정책기획 연구원과 정세분석국장,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부원장 등을 거쳐 서울디지털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