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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편집 2022. 08.15. 00:00

[고한석의 아시아 포커스] 인도네시아, ‘한 수’높은 중진국 외교의 기술

By | 2022년 7월 20일 | 국제, 미분류

인도네시아는 우리가 경제적으로 큰 가치를 두면서도 정치나 외교적 측면에서는 평소에 잘 주목하지 않는 나라다. 그러나 고한석 필자는 미중 갈등과 우크라니아 전쟁이라는 혼란 속에서 인도네시아 조코위 대통령의 외교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동남아의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지난 달 우크라이나의 키이우와 러시아의 모스크바를 동시에 방문했다. ‘인도미 미션’으로 알려진 이 외교행보는 비동맹 노선을 견지해 온 인도네시아의 외교적 전통의 산물이면서, 국제적 평화 교섭에 나서는 명분도, 자국의 이익을 수호하는 실리도 모두 챙긴 영리한 선택이었다. 고한석 필자는 한국이 이를 배워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편집자주]

✔ G7 참가 후 키이우와 모스크바 방문하여 양국 정상과 직접 만난 조코위
식량 위협은 곧 안보 위협.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상대로 인도미 미션 펼치다
역사적으로 ‘비동맹 운동’의 선구자이자 주도적 역할을 해 온 인도네시아
주체적으로 자국의 안보 해결하고 적극적으로 세계적 문제에 앞장서는 좋은 예

사진:셔터스톡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인도네시아

지난주 아시아에서 크게 주목할 만한 이슈는 3가지였다. 하나는 물론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피격 사망이고, 두 번째는 코로나19로 상하이를 장기간 봉쇄했던 중국의 2/4 분기 경제지표 발표였다. 그리고 세 번째는 미국 바이든 대통령의 사우디아라비아 방문이다. 이 세 가지 이슈에 대해선 국내 주요 언론들이 심도 있는 보도를 내보냈기에, 이 이슈들을 재탕하는 것은 그다지 부가가치가 높은 일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언론이 놓치고 있지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이슈를 골라 그 맥락을 살피는 것이 독자들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명분과 실리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외교적 노력에 대해 조명해 본다.

에피소드 1

사진:연합뉴스

지난 4월29일 인도네시아 대통령 조코 위도도(Joko Widodo: 약칭 조코위)는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 및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 각각 여러 차례 통화했다고 발표했다. 조코위는 이 통화에서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논의하고, 올해 10월 말 발리에서 개최되는 G20 정상회담 의장국으로서 두 정상을 초청했다고 밝혔다. 이런 중립적 시도는 러시아에 대한 전방위 압박을 가하고 있는 서방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두 달 뒤인 6월26∼27일 독일에서는 G7 정상회의가 열렸는데, 여기에 조코위 대통령은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정상과 함께 참관국으로 초대받았다. 조코위는 회의가 끝난 후 곧바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와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를 잇따라 방문해 양국 정상을 만나고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에 대해서 일부 논평가들은 주제를 모르는 ‘돈키호테적’ 외교라고 치부하거나, 성과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비웃었다. 또 일부에서는 그의 모스크바 방문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서방 국가들을 화나게 만들고 푸틴에 의해서 이용당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상대로 한 조코위 대통령의 ‘인도미 미션’

에피소드 2
6월30일 세계라면협회(WINA)는 연간 1인당 라면 소비량에서 베트남이 1위를 차지하면서 그동안 줄곧 1위를 지켜 온 한국을 제쳤다고 발표했다. 국가별 시장 규모로는 중국이 연간 440억 개로 1위, 인도네시아가 연간 133억 개로 2위를 차지했다. 세계 최대의 라면 생산업체는 인도네시아의 최대재벌 기업인 ‘살림’(Salim) 그룹으로, 이 회사에서 판매하는 ‘인도미’(Indomie = Indo+mie = 인도네시아+면(mie))는 원래 고유 브랜드 이름이었는데 지금은 인도네시아 라면을 통칭하는 보통명사가 되었다.  

인도미 미션이란? 

언뜻 보면 별 상관이 없는 두 개의 뉴스가 사실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지만 인도네시아 국민들은 조코위 대통령의 양국 정상 방문을 “인도미 미션”이라고 불렀다. 인도미는 노점을 자주 찾는 서민들부터 주머니가 궁한 학생들까지 많은 인도네시아인들이 즐겨 먹는 주식이다. 맛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가격이 매우 저렴하다는 점이다. 인도미 한 봉지 가격은 3000루피아(한화 약 260원)였는데, 최근에 밀 가격 인플레이션으로 인해서 3500루피아(약 310원)로 20%나 인상됐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세계 밀 공급량의 거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우크라이나의 공급량은 거의 10%에 달한다. 인도네시아는 우크라이나 밀의 2대 수입국이었는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면서 수입이 중단돼 라면 가격이 올랐고, 이는 서민 생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식용유의 원료인 해바라기씨유 세계 수출량의 75%를 차지하고 있는데 전쟁으로 인해서 공급이 막히자 그 대신 팜유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가격이 급등해 식용유 위기가 촉발되었다. 가격 안정과 국내 사용량 우선 확보를 위해서 세계 1위 팜유 생산국인 인도네시아는 한때 팜유의 수출을 제한하기까지 했다가 다른 나라들의 반발로 이를 풀었다. 또한 요소(尿素) 등 농업용 비료 역시 러시아가 세계 1위 공급국인데 전쟁으로 수출이 줄었고 비료 생산과정에서 필수적인 천연가스의 가격 인상도 반영되어 요소(尿素) 가격은 올해 들어서만 236%까지 폭등했다.  

이에 따라 인도네시아 농부들의 불만은 폭발 직전에 이르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4위 인구 대국으로, 2억8000만 명 국민의 식사 및 전기 소비에 필요한 식량 및 에너지 가격의 상승은 인도네시아에게 있어서 국가 안보적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한 조코위 대통령의 ‘인도미 미션’이 중요한 이유다. 

사진:셔터스톡

물론 조코위 대통령 자신을 위한 정치적 고려도 ‘인도미 미션’에 작용했다. 1967년부터 1998년까지 30년 넘게 장기집권했던 수하르토 대통령이 권좌에서 축출된 것도 아시아 금융위기 때 식료품 가격 폭등이 촉발한 대중 시위 때문이었다. 또한 5년 중임제 하에서 재선이 된 조코위로서는 임기 후에도 자신의 정치적 유산이 보존되기를 원하는데, 그 중 가장 큰 것은 올해 초 법안이 통과된 수도 이전(자카르타->누산타라)이다. 25년간 4단계에 걸쳐서 진행될 원대한 수도 이전 계획은 국제 환경의 변화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서 위협받을 수 있다. 한편 인도네시아는 G20 국가 중 유일한 동남아 국가로, 올해 1년간 의장국이 됐으며 10월 말에는 인도네시아 발리 섬에서 G20 정상회담을 예정하고 있다. 조코위 입장에서는 “함께 더 강한 회복”(Recover Together, Recover Stronger)을 주제로 한 올해의 G20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치뤄내 국제적 신인도를 높이고 인도네시아 같은 중진국들에 대한 자금 지원과 기술 이전의 확대를 꿈꾸고 있다. 

그런데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G20 참석 여부를 놓고 서방 국가에서는 보이콧 여론이 들끓고 있다. 조코위의 입장에서 이러한 서방 국가들의 태도가 신경 쓰이는 것은 당연하다. 반면에 국내의 정치지형은 이와 다르다. 인도네시아 국내에서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지원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이는 러시아의 침공을 지지한다기보다는 서방 국가들의 위선적 태도에 대한 반발에서 나온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의 이슬람 국가(전 국민의 약 90%)로 오랫동안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요구해 왔지만,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과 폭력 사태에 대해서 서방 국가들은 우크라이나 사태와는 달리 계속 무관심으로 일관해 왔기 때문이다. 

70년 전 ‘비동맹 운동’의 선구자이자 기수였던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는 역사적으로 ‘비동맹 운동’의 선구자이자 주도적 역할을 했었다. 1955년 아시아-아프리카 29개 국이 인도네시아 반둥에 모인 ‘반둥 회의’(Bandung Conference)는 1961년 ‘비동맹 운동’(NAM) 정상회담의 창설로 이어졌다. 이러한 외교적 전통으로 인해서 인도네시아는 냉전 시대 내내 특정 블록에 가입하지 않는 중립 외교노선을 지켜왔다. 최근 들어서 다시 서방 대 러시아-중국의 진영 대립이 격화되어 다른 나라들에게 줄서기가 강요되자 이에 대한 반발로 이러한 비동맹 전통이 부활하고 있다고 국제관계 전문가들은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인도네시아는 러시아에 의한 ‘국경과 주권의 침해’에 대해서 규탄하는 유엔 성명에는 서명했지만 유엔 인권위 이사회에서 러시아를 제명하는 투표에서는 기권했으며, 서방 진영이 주도하는 제재에 대해서도 중립을 지키고 있다. 

이념적 중립노선과 함께 지역적 전통도 인도네시아의 중립적 입장에 영향을 미쳐 왔다. 전통적으로 아시아는 지역 분쟁에 조정 또는 개입하는 것이 암묵적으로 당사자 국가들의 주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이의를 제기해 왔다. 동남아시아 국가연합(ASEAN)의 기본 원칙은 ‘불개입’(Non-Interference)이다. 국민들의 관심도 주로 내정에 관한 것이었기에 타국의 분쟁 해결에 대해서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또한 미국과 유럽은 자신들이 규칙 기반 국제질서의 청지기 직분을 자임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자생적인 아시아의 평화 조성 노력에 그다지 신뢰를 두지 않는다. 

그러나 과거에 이 지역에서 간헐적으로 있었던 자체적 평화 중재 노력은 시간은 걸렸지만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다. 인도네시아는 1980년대 후반 캄보디아 내전 중이던 파벌들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10년간 정력적으로 노력하여 캄보디아의 지속적인 평화협력과 재건의 기초를 마련했다. 말레이시아는 2015년 필리핀 정부와 필리핀 남부 무슬림 지역 반정부 세력들 사이에서 성공적으로 평화 협정을 중재하여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지속돼 온 무력 충돌을 극적으로 감소시켰다. 말레이시아는 또 태국 남부의 이슬람 반군들과 방콕의 정부간 대화를 촉진하여 최근 몇 년간 이 지역의 폭력 사태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물론 미얀마 사태는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국내외적, 역사적 맥락에서 조코위는 인도네시아와 자신을 위해 적극적으로 평화 중재를 위한 외교 행보를 수행했고 매우 조심스럽게 방문을 계획하였다. 조코위는 자신의 요구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양면 작전을 썼다. 그는 한편으로는 서방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푸틴에게 G20 정상회담에 참석할 것을 공식적으로 요청하고, 여기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G20 회원국이 아닌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도 참관국으로 초대했다. 조코위는 양국 방문 직전에 참석한 G7 정상회담에서 참가국 지도자들에게 러시아 제재 항목 중에서 식량과 화학비료를 제외할 것을 촉구했으며, 무대 뒤에서 각국 정상들에게 자신이 젤렌스키와 푸틴에게 제시할 내용들, 그리고 푸틴의 G20 정상회담 참석에 대해서 동의를 하도록 설득했다. G7 회의 열흘 전에 인도네시아를 국빈으로 방문한 독일 대통령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는 이미 조코위에게 올라프 숄츠 총리가 G20 정상회의에 참석할 것이라고 통보했다. 현재로선 다른 G7 국가들도 그 뒤를 따를 것으로 보인다. 

G7 찍고 키이우와 모스크바 연달아 방문한 동남아 지도자

조코위는 행선지도 먼저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뒤 러시아로 향하기로 결정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예의를 갖추었다. 또한 외국 정상으로는 최초로 영부인 이리아나(Iriana)가 위험한 전쟁이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를 함께 방문해 키이우 병원에서 전쟁 희생자들을 껴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젤렌스키의 무기 제공 요구에 대해서는 인도네시아 헌법이 다른 나라에 군사 원조를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는 이유로 거절했지만 의료 지원과 병원 재건을 돕겠다는 약속을 발표했다. 

푸틴과의 회의에서 조코위는 물론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언급했지만 이는 애당초 불가능한 미션이었음을 본인도 알고 있었고, 실질적으로는 식량 위기 해결을 위한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 허용을 1차적 목표로 삼았다. 회담에서 푸틴은 비록 우크라이나의 비협조와 서방의 제재를 비난하면서도 인도네시아 등 ‘우호적인 국가들’이 필요로 하는 질소, 인산, 칼륨 등 비료를 최대한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회담 직후에 안전한 곡물 운송을 보장할 것이라는 입장을 인도네시아 정부에 전달했다. 

푸틴과의 회담에서는 내용이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조코위는 만약 푸틴이 곡물 수출 재개를 거절한다면 지금까지 중립을 지켰던 나라들이 입장을 바꾸게 만들 것이고, 제재 동참에 서명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며, 러시아가 점점 더 고립되고 영향력을 잃을 위험이 있다고 은근하게 압박을 가했을 것이다. 

7월 13일 이스탄불에서 열린 4자회담. (사진:연합뉴스)

조코위의 방문이 열흘 정도 지난 뒤 낭보가 들려왔다. 7월13일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튀르키예, 유엔 4자가 모여 흑해 봉쇄 해제를 위한 4자 협상을 진행했다. 이날 협상에서는 우크라이나 곡물 운송을 위해 흑해 항로의 안전보장 조정센터를 설립하고, 이를 유엔이 운영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곡물 수출입 항구에 대한 3개 국 공동 통제의 원칙에도 동의했다. 이틀 후인 7월15일 러시아 국방부는 협정을 위한 문서 작업이 곧 마무리될 예정이며, 이르면 7월20일께 서명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흑해 연안에 설치된 기뢰의 제거에 대한 논의도 진전을 보였다고 한다. 이러한 긍정적 변화가 물론 조코위의 외교적 노력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한국이 배워야 할 중견국 외교의 모델

이번 기회를 통해서 조코위는 중견국 정상이 적극적 외교 행보를 통해 자국의 (비군사적) 안보 문제 해결은 물론이고 세계적 문제의 해결에 어떻게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좋은 사례를 보여줬다. 한국은 GDP 기준으로 세계 10대 강국이고 과학기술, 경제, 국방, 문화 등 여러 면에서 인도네시아보다 앞선 중견국이다. 하지만 주체적으로 자국의 안보 문제를 해결하고 적극적으로 세계적 문제의 해결에 앞장서는 면에서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관련 뉴스 링크>

닛케이 아시아, 7월5일 “인도미 외교: 어떻게 인플레이션이 조코위를 키이우와 모스크바에 가게 만들었는가”

닛케이 아시아, 7월6일 “인도네시아의 조코위가 아시아 평화 중재자의 길을 개척하다”

닛케이 아시아, 7월14일 “식량과 에너지 가격의 상승은 인도네시아의 정치적 안정을 위협한다”

저널 IPS(International Politics and Society
:독일 사회민주당의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재단(Friedrich-Ebert-Stiftung)이 벨기에에서 발행하는 국제관계 저널

7월8일 “인도네시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새로운 중재자?”


글쓴이 고한석은
서울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에서 IT정책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SK China에서 4년 동안 일했으며 삼성네트웍스에서 글로벌사업추진팀장을 맡기도 했다. 이후 열린우리당 정책연구원 정책기획 연구원과 정세분석국장,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부원장 등을 거쳐 서울디지털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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