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로 냉전이 종식되고 인류는 세계대전으로 얼룩졌던 20세기를 넘어 평화의 시대로 진입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로부터 한 세대가 지난 지금, 우리는 미중간 신냉전과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인류는 왜 평화를 가져오는데 실패했는가? 냉전과 신냉전은 과연 무엇이 다른가, 되돌아 온 것은 무엇이고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유럽에서 신냉전과 멀티제국의 불안정은 결국 전쟁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은 이제 중앙아시아와 인도양, 대만, 한반도를 둘러싼 갈등에 주목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대한민국의 자강론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중국이 민주국가가 된다면 우리의 대외정책은 달라질 것인가, 한미일 안보동맹이 강화된다면 우리는 경제에 더 많은 국가역량을 투입해야 할 것인가? 고한석 필자의 도발적인 제안에 대해 진지한 논쟁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분석과 대안을 이틀에 걸쳐 나눠 싣는다. [편집자 주]

✔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미국 패권 도전의 동력이 되다✔ 한국와 동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의 시장 개방덕에 고속 성장✔ 패권국가 간 충돌보다는 지역내 이웃국가 충돌 위험 높아✔ 민주주의가 확립되더라도 중국은 여전히 위협적인 이웃✔ 동맹내 역할 높여 자율성 확보하고 국방력 제고가 우리 숙제

사진: 셔터스톡

III. 왜 이렇게 되었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스스로의 눈을 찌른 미국

그렇다면 무엇이 이러한 상황을 만들어 내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이 주창하는 자유주의 국제질서 자체가 바로 스스로를 위협하는 상황을 만들어낸 동력이다. 소련과 공산주의 진영이 붕괴한 후 세계는 소위 자유주의 국제질서로 전일화되었는데 그 경제적 토대는 국내적으로는 자유로운 시장경제이고 국제적으로는 자본과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이었다. 우파는 이를 ‘세계화’라고 부르고 자유무역과 해외투자로 모든 나라가 이득을 본다고 찬양하였다. 좌파는 이를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면서 경제 주권 상실과 경제 양극화를 이유로 반대하였다. 이 양측의 예상과는 정반대로 세계화=신자유주의는 미국 헤게모니에 도전하는 권위주의 국가들이 경제적으로 성장하는데 일등 공신이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이 주창한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오히려 미국을 위협하는 상황을 만들어낸 동력이 되었다.(사진:셔터스톡)

권위주의 체제하의 효율적인 경제 성장

한국에서도 아무리 정치적으로는 박정희에 대해서 권위주의 정권이었다고 비판하더라도 경제성장에 대해서 그가 남긴 업적은 널리 인정되고 있다. 권위주의는 단순한 1인 독재 체제가 아니다. 특히 소위 ‘권위주의 개발국가’는 소수의 권리를 희생시키고서라도 다수의 열망을 실현시키려는 공동체적 의지의 정치적 표출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국제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푸틴과 시진핑이 자기나라에서는 지지율이 높은 이유이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역사적으로 다른 나라에서도 급속한 경제성장은 권위주의와 깊은 연관성이 있다. 자본주의적 근대화에 앞서 있던 영국을 따라잡기 위한 독일의 근대화, 그리고 서구 열강을 따라잡기 위한 일본의 근대화는 모두 권위주의 정치체제 하에서 성공적으로 추진되었다. 심지어는 영국과 미국도 자본주의적 근대화 시기에는 국내적으로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었다. 노동자와 여성, 소수인종에게는 참정권을 부여하지 않고 제반 민주적 권리 획득 운동에 대해서 경찰과 군대를 동원하여 탄압하고 학살하면서 자본의 원시적 축적을 도왔고 이를 통해서 자본주의적 근대화를 이룩하였다. (영국은 1928년, 미국은 1920년, 미대륙 원주민에게는 1930년이 되어서야 보편적 투표권이 도입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특정 문화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지역에서 시차를 두고 일어났다. 유럽에서는 19세기와 20세기 초반에 먼저 일어났고 20세기 중반에 동아시아에서 일어났고 20세기말과 21세기 초에 유라시아 대륙을 중심으로 동일한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경제학계에서는 경제성장과 민주주의의 상관성에 대해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논란은 민주주의의 정의를 ‘민의의 반영’ 기구(representative branch)인 의회 민주주의에 국한시키는 편협한 이해에서 비롯된다. ‘민의의 집행’ 기구(executive branch)인 행정부는 민주주의의 또다른 한 축이다. ‘민의’는 정치적 요구도 있지만 그보다 사회경제적 요구가 더 큰 부분을 차지하기에 이러한 정책을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작동하는 행정 체계가 필수적이기다. 행정부의 토대인 근대적 관료 체제는 정책 집행의 ‘효율성’을 핵심으로 하며 이는 집단적 생존 투쟁의 극단인 전쟁을 수행하는 근대적 군대의 조직체계에서 기원한 것이다. 관료제가 가장 잘 발달한 프랑스에서 그 기원은 나폴레옹 전쟁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심지어 근대의 또다른 한 축인 자본주의적 기업조직 역시 효율성을 강조하기에 그 조직 및 절차도 군대(및 관료 시스템)의 조직원리를 그대로 가져와서 사용하였다.) 결국 시장 경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예측가능한 효율적 관료체계(그 근원으로서의 효율적 군사체계)가 필요하다. 인도와 남미에서 의회 민주주의는 매우 발달되어 있지만 경제성장이 상대적으로 부진한 것은 이 나라들의 행정 체계가 효율적이 못한 것이 상당히 큰 이유다. 이 나라들이 자국을 위한 근대적 전쟁을 치러본 적이 없다는 역사적 맥락도 고려해볼 수 있겠다.

경제성장에 날개를 달아 준 자유무역

그리고 경제성장과 또 하나의 깊은 연관성이 있는 요소는 바로 시장의 규모이다. 19세기 유럽의 국가들이 경제적으로 번영할 수 있었던 것은 영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무역 체제 하에서 자국 상품을 다른 나라로 수출함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20세기 후반에 서유럽 국가들은 유럽 공동체라는 고소득 국가들의 큰 시장을 가지고 있었고 동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이 공산주의 봉쇄라는 안보 목적을 위해서 자국 시장을 개방해준 덕분에 이들 나라들은 신속한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반면에 폐쇄적 계획경제였던 소련 및 동구권, 중국이나, 식민지에서 탈피하여 민족자립을 지상과제로 했던 인도 및 남미 국가들은 ‘보호무역주의’와 국내 소비시장 중심의 ‘수입 대체 산업’을 핵심 경제정책으로 삼았기 때문에 경제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게 되었다.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중국이 대외개방과 함께 해외시장에 진출했고 국제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결정적으로 급성장했다. 러시아와 같은 나라들은 이렇게 성장하는 국가들에게 필요한 자원을 자유롭게 수출하면서 사회주의 붕괴 이후 경제적 어려움을 수습하고 다시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이 안보를 위해 공산국가 봉쇄를 위해 시장문을 열어 준 덕에 비약적인 경제 발전을 이루었다. (사진:셔터스톡)

성장과 갈등. 100년의 데자뷔, 그 결과는?

결국 ‘근대화와 자유무역을 통한 경제성장’은 19세기 유럽의 권위적 체제 국가에서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이들은 일본 메이지 유신의 핵심강령인 ‘부국강병’처럼 경제적으로 부강해지면서 군비 투자로 군사적 힘도 강화되었다. 자신의 국가이익이 다른 나라와 충돌을 빚자 보호무역주의로 선회하였고 그렇지 않아도 역사상 처음으로 근대적 공업에 기반한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게 된 유럽 국가들은 전쟁터로 줄달음쳤다. 30년 사이에 2차례 유례없이 참혹한 ‘근대적 총력전’을 직접 경험한 유럽 국가들은 그후 평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한편 19세기부터 20세기에 걸쳐서 서구의 식민지로 전락했던 다른 대륙의 국가들은 이들로부터 벗어나 근대적 민족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 온갖 희생을 무릅썼다. 이 과정에서 특히 제국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이에 대해서 큰 자부심을 가졌던 비유럽지역 대국들은 ‘치욕의 세월’을 견뎌내야 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이들이 채택하였던 사회주의라는 경제체제는 짧게는 30년(중국), 길게는 60년(소련)의 실험 끝에 결국 오류로 판명이 났다.

그 후 이들은 과거에 유럽 국가들이 19세기에 부강해지기 위해서 사용하였던 방법론 즉 권위주의적 행정체계, 시장경쟁, 자유무역을 통한 근대적 제조업의 육성이라는 전략을 채택하였고 성공하였다. 이들은 이러한 경제적 부의 일부를 군대에도 투자함으로써 군사강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는데 이는 기존 패권국가와의 갈등으로 귀결되고 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대영제국이 헤게모니를 쥔) 자유무역과 평화 체제가 함께 하면서 서유럽 국가들이 급성장하고 사회적으로 번영을 구가하던 ‘벨 에포크’(Belle Époque) 즉 아름다웠던 시절은 결국 보호무역주의 등장과 열강의 충돌로 이어졌다. 탈냉전 이후 20세기 말부터 21세기 초까지 (미국이 헤게모니를 쥔) 자유무역과 평화 체제를 통해서 급성장한 나라들의 경쟁은 결국 보호무역주의 등장과 강대국간의 갈등으로 귀결되는 것은 역사의 데자뷔라 느껴진다. 현재 국제적 갈등의 원인이 100년 전과 동일한데 그 결과도 100년 전과 동일할까.

제국간의 충돌인가? 지역 내의 충돌인가?

더 ‘큰’ 문제는 이 나라들이 서유럽 국가들처럼 근대에 형성된 민족에 기반한 적절한 규모의 국가들이 아니라, 거대한 영토와 고유의 문명적 정체성을 지닌 국민을 보유한 제국의 역사를 가진 ‘큰’ 나라들이라는 점이다.

사실 이에 유사한 성격을 가진 서방의 제국은 미국이다. 미국은 구대륙들과 바다로 격리되어 있고 인접한 국가가 2개(그나마 그중 하나는 같은 인종적 문화적 기반을 가진 캐나다) 밖에 없다는 특성상 영토를 둘러싼 전쟁을 벌인 적은 (인디언과 멕시코, 스페인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 2번의 세계 대전에서 핵심 역할을 맡아서 승리하고 이후 냉전 시기에는 서방 진영의, 탈냉전 시기에는 전세계의 유일한 패권 국가로써 사실상의 제국으로써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관철하였고 전쟁발생을 억제하였다. 그렇기에 이 시기를 ‘팍스 아메리카나’ 즉 미국 하에서의 평화 체제라고 불렀으며 이는 로마 제국 하에서 국제적 평화가 유지되었던 ‘팍스 로마나’에 비교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비록 고대 문명과는 다른 차원이지만, 복음주의적 기독교와 개인 권리의 절대성 등을 강조하는 ‘미국적 문명’을 구축해왔다.

한 제국 하에서의 평화 체제가 무너지고 여러 개의 제국이 갈등을 하다가 충돌하게 되면 (사실상 서구 열강들이 중심이 되었던) 1, 2차 세계대전과는 달리 ‘진정한’ 의미에서의 ‘세계’ 대전이 될 가능성이 있다. 다행히도 국경이 인접한 유럽 열강들을 전쟁으로 몰아넣은 2번의 전쟁과는 달리 각 대륙별로 나뉘어져 있는 신흥 제국들 간에는 ‘거리의 횡포’(tyranny of distance)가 작용하여 직접 지상전을 펼치게 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 하지만 이들이 보유한 대륙간 탄도 미사일은 거리의 횡포를 뛰어넘는 핵전쟁의 공포를 부과하고 있다. 그나마 상호 확증 파괴 가능성으로 인해서 ‘공포의 균형’이 형성되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다.

패권국들간의 직접적인 충돌은 사실상 발생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는 구 냉전 시기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국제적으로는 일극 또는 양극 체제에서 다극 체제로 원심력이 작용하고 지역 내에서는 그 극을 중심으로 구심력이 작용하기 때문에 지역내에서 패권국과 이웃 국가들 사이의 충돌 가능성은 더 높아지게 된다.

냉전시절에 보았듯이 패권국가들 간의 직접 충돌은 쉽지 않고, 대신 지역내 이웃 국가들 사이의 충돌 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다. (사진:셔터스톡)

Ⅳ. 새로운 질서에서 우리는 어디로 어떻게 갈 것인가

자유주의 국제질서라는 ‘규칙 기반의 국제 질서’는 현재 벼랑 끝에 몰려 있다. ‘팍스 아메리카나’라는 용어가 의미하는 바처럼 사실 이 규칙들은 미국이 2차 대전 후와 냉전 후에 자신이 주도하여 만든 것들이고 미국의 우위 하에서 유지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규칙들이 미국에게만 유리했던 것은 아니다.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은 이러한 체제 하에서 성공적으로 발전하여 왔기에 현재의 규칙에 기반한 국제 질서가 유지되는 것이 훨씬 이득이 된다. 그러나 이제 러시아는 이러한 규칙들을 무시하고 행동하기 시작했으며, 중국은 규칙을 다시 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미국이 이들을 제압할 수 있을 만한 힘을 가지고 있지도 않기 때문에 향후 국제질서는 규칙에 기반해 형성되기 보다는 강대국간 협상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국제질서의 유동성이 높아지고 예측가능성은 낮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이 반갑지는 않지만 그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그에 맞는 대응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한미 동맹 체제를 유지하면서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의 전략에 동참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중국이 공산당 독재 국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중국이 제국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채택하는 수단은 같아 보이더라도 원인이 다르면 목표도 달라진다. 미국의 대중 전략이 가지는 가장 큰 문제점은 구 냉전과 유사하게 현재의 러시아의 푸틴 체제와 중국의 시진핑 및 공산당 지배체제를 와해시키고 그 나라들이 민주주의 체제를 도입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이다. 이는 목표 설정을 잘못하는 것이고 ‘신 냉전’이라는 용어는 이러한 오류를 범하기 쉽게 만든다.

민주주의가 정착하더라도 중국은 여전히 위협적

하나의 사고 실험(thought experiment)을 해보자. 만약 지금 중국이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니고 1911년에 수립된 ‘중화민국’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고 국내적 혼란이 수습되어 국내에서 중국 국민당과 다른 정당들이 지금의 대만처럼 민주적인 선거를 치르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내부적 혼란기가 지나서 지금처럼 수출 제조업에 기반하여 경제규모가 미국과 어깨를 겨루게 되고 GDP의 2%를 국방에 투자하는 국가라고 상정해보자. 이 국가는 우방인가? 적국인가? 강대한 주변국은 누구에게나 긴장요인이다. 일본은 민주주의 국가지만 한국에 불편하다. 아시아의 모범적 민주주의 국가 인도 역시 파키스탄과 전쟁을 치렀고 지금도 주변국과 갈등이 심각하다.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열망을 표현하게 해주고 실현시켜주는 시스템이다. 민족국가의 국민들이 민족주의적 성향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고 규모가 큰 나라의 민족주의는 주변국들에게 당연히 압박으로 느껴지게 된다. 유럽은 고만고만한 규모의 나라들이 근대에 와서야 민족주의가 형성되었기에 뿌리가 깊지 않다. 게다가 그러한 민족주의적 열정으로 20세기 전반에 두 차례의 참혹한 전쟁을 경험하였기에 자체 내의 민족주의에 대한 경계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다른 지역의 나라들은 오래된 역사와 과거의 영광에 대한 깊은 향수를 가지고 있고 이것을 서구의 지배에서 벗어나 국가를 발전시키는 원동력 중 하나로 활용하고 있다. 현재 러시아에서도 푸틴을 반대하는 일부 정치인들과 시민단체들이 있지만, 푸틴에 대한 러시아 국민들의 지지는 매우 높은 편이다. 설사 푸틴이 제거된다고 하더라도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원하는 러시아 국민들의 표를 얻어서 당선된 정치인이 과연 유럽 및 미국과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까?

아무리 국내적 민주주의가 정착되었다고 하더라도 경제적 군사적으로 거대한 중국은 한국에게 커다란 위협 요소일 수밖에 없다. 대중들의 민족주의 열정에 지배되는 ‘민주국가’ 중국은 어쩌면 지도자들이 국가전략적 필요에 따라서 대중을 억누르는 ‘권위주의 중국’보다 주변국에 더 위협적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은 이념 때문이 아니라 지정학적 이유로 전형적인 ‘원교근공(遠交近攻: 중국 병법에 등장하는 말로 먼나라와는 친선을 맺고, 가까운 나라는 공략한다는 뜻-편집자 주)’ 전략을 택할 수밖에 없다. 설사 미국이 트럼프 같은 인물이 대통령이 되어서 국내적으로 독재국가가 되었다고 가정하더라도 미국과 손을 잡고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

동맹 내의 역할 제고로 자율성 확대, 종국엔 국방력 강화

중국을 최대한 견제하되 우리의 국익과 무관하게 강대국들간의 충돌에 동원되어서도 안되고 강대국들간의 협상 때문에 우리 이익이 침해받아서도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중요하다. 첫째는 자체적인 국방 역량의 강화이다. 이는 동맹의 강화와 자율성의 확대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가져온다. 동맹국에 대한 군사적 의존이 커질수록 국제무대에서 발언력은 약해진다는 것은 유럽과 일본의 예를 보아도 알 수 있다. 반대로 동맹 내에서 국방력을 강화하면 발언력도 강해지면서 운신의 폭이 넓어진다. 일본이 노리는 것도 이것이다. 북한과 군사적 대치상태인 한국은 이를 명분으로 지역 내에서의 군사적 역할을 강화하여야 한다.

대표적으로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한미 미사일 지침이 폐기되어 탄도 미사일 사정거리에 제한을 없앤 것은 중요한 진전이다. 미국은 중국 주변에 위치한 미군 기지에 이동형 중장거리 미사일을 배치하고 싶어한다. 근거리에서 발사하는 미사일은 도달 시간이 짧아져서 중간에 요격하기 쉽지 않으며 이동형 발사대는 미사일 발사후 신속하게 이동함으로써 원점 타격을 목적으로 하는 적의 반격에서 안전할 수 있다. 미국은 과거 중거리 핵전력 조약(INF)의 규정으로 한국이나 일본에 5천 킬로미터 이하의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지 않은 상태이다. 지난 2019년 미국이 이 조약을 탈퇴함에 따라 이제는 그러한 제약이 없어졌지만, 만약 미군이 주일 미군기지 또는 주한 미군기지에 중거리 미사일을 직접 배치하려고 한다면 중국의 입장에서는 아마도 1961년에 소련이 미국의 코 앞에 있는 쿠바에 미사일을 설치하려고 했을 때 미국이 ‘전쟁을 불사하는’ 극렬한 반발과 유사한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

아직까지 일본은 자체적으로 지상 발사 미사일을 설치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한국이 미사일 사거리 제한을 없애고 중거리 미사일을 개발하여 배치한다면 미국 입장에서는 환영할 것이다. 물론 중국이 반발하겠지만 우리 정부는 ‘아무리 한미동맹이라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게 할 수 있는 미사일 발사는 한국 정부가 결정한다’는 입장을 취하여 미국이 직접 설치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설득할 수 있다. 이를 통해서 오히려 한반도 주변에서의 전쟁 위험을 낮출 수 있다. 만약 우크라이나가 1994년에 핵무기를 러시아에 이전하는 대가로 러시아, 미국, 영국이 안전보장을 약속했던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체결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전쟁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經美安<重>. 경제는 미국과, 안보는 신중을 기해

둘째로 경제와 안보를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 과거에 한국은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 즉 ‘경중안미’ 전략을 취했었다. 최근 들어서 경제도 미국, 안보도 미국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하지만 이는 지나치게 단선적인 사고이다. 우리는 이제 ‘경제는 미국, 안보는 신중’을 기하는 방침을 취하는 것이 우리의 국익에 맞다.

‘경중안미’는 중국이 우리보다 기술적으로 한 수 아래인 지금까지의 상황에서는 우리의 국익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중국의 기술은 한국의 턱 밑까지 추격해왔고 일부는 추월하기까지 하였다. 미국이 중국과 경제적으로 디커플링을 시도한다고 하여도 세계 시장에서 한국과 중국과의 경쟁은 피할 수 없다. 첨단기술 관련하여 한국은 미국이 중국에게 부과하는 제재와 한국에 대한 압력을 핑계 삼아서 최대한 기술이전을 규제하고 중국의 추격속도를 늦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경제의 주체는 민간기업이고 규제 정책은 언제든지 다시 원상회복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방이 느끼는 위협감은 군사적 측면보다 덜 민감하다. 러시아조차도 우크라이나에 대해서 EU가입은 문제없지만 NATO 가입은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에 안보 분야에서의 변화는 대개 조약과 협정으로 외화되기 때문에 일단 발생하면 불가역적이고 직접적이기 때문에 상대방은 큰 위협으로 인식할 수 있으므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게다가 규칙보다는 강대국간의 협상과 타협 여하에 따라서 갑자기 결론이 바뀌는 상황에서 혼자서 일찍 비타협적 입장을 취하는 것은 스스로 운신의 폭을 줄이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지렛대 전략, 강대국 중심 질서에서 중소국의 생존전략

셋째로 규칙 기반의 국제질서가 약화되고 강대국 중심의 질서가 강화될수록 그렇지 않은 나라들은 강대국들이 서로 힘의 균형을 추구하는 전략을 지렛대로 이용하여 자국에게 유리한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2차 대전 이후부터 미국의 동맹국인 터키는 최근에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 신청 등 러시아에 맞서 나토를 강화하고자 하는 미국의 요청을 지렛대로 활용하여 (물론 쿠르드 족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터키군 현대화를 위해 최신형 F-16 도입에 대한 양보를 얻어내는 등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였다. 물론 잘못하면 마치 조선 말에 청나라-일본-러시아-미국 등 열강에 의존하려다가 몰락한 전철을 밟을 위험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자체적인 힘이 전제되어야 한다. 한국은 기술, 경제, 문화, 군사 등 여러가지 면에서 과거와는 달리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강대국들 간의 힘의 균형추구가 개별 분쟁에 대한 해결을 넘어서서 강대국이 아닌 나라들에게도 발전에 유리한 규칙의 조정으로 이어지도록 다원적인 외교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신남방 정책’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단계 더 높은 차원에서 지역 전략을 수립해야 이러한 지렛대 전략에 무게를 더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앞에는 어찌보면 100년 전의 국제정세가 다시 도래한 것처럼 보인다. 맑스의 자본론이나 밀의 자유론이 아니라 마키아벨리와 비스마르크를 다시 읽는 것이 더 도움될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르게 보면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전인미답의 국제정세가 펼쳐지고 있다. 결국 정세 변화의 동력과 맥락, 그리고 우리가 가진 것을 면밀히 관찰하고 분석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글쓴이 고한석은서울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에서 IT정책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SK China에서 4년 동안 일했으며 삼성네트웍스에서 글로벌사업추진팀장을 맡기도 했다. 이후 열린우리당 정책연구원 정책기획 연구원과 정세분석국장,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부원장 등을 거쳐 서울디지털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