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대한항공의 객실 승무원으로 20년 넘게 일했다. 알다시피 어느 날 사주 가족으로부터 부당한 대우와 폭력을 겪었고, 노동자이자 인간으로서 남의 발에 밟히지 않으려다 보니 계획에 없던 ‘투쟁’을 하게 되었다. 그 몇 년간 ‘박창진이 회사 다니는 걸 보며 나도 싫은 회사를 꾸역꾸역 다닌다’는 노동자가 많았다. 2020년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로 정치를 시작했다. 당내 경선에서 승보다 패가 많았다. 그 사이 정의당은 노동자 대표성보다 젠더 대표성이 부각되었고, 더 크게는 언론과 일반의 관심에서 많이 멀어져 갔다. 박창진의 글을 계기로 정의당을 생각해 본다.[편집자 주]   

✔ 전태일의 정신과 바보 노무현이 바꾸고자 했던 세상을 지향한 정의당✔ 정의당내 정치활동 시작하며 느낀 배척의 문화, 그들의 선민 의식✔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대대적인 인테리어 공사가 아니라 본질적인 변화✔다양한 의견이 논의되고 실천으로 이어지는 것이 당이 되살아날 

2020년 9월 17일 SBS 목동사옥에서 열린 정의당 당대표 후보자 방송 토론회에 앞서 후보들이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종민, 김종철, 배진교, 박창진 후보. (사진:연합뉴스)

붕괴는 한 순간에 오지 않는다

붕괴는 한순간에 오지 않는다. 많은 금이 가고 지속적인 누수가 쌓인 후 축대마저 더 버티지 못 할 지경에 이르러야 파국의 종결점인 붕괴가 온다. 지난 몇 년간 정의당에는 균열을 알리는 수많은 신호가 꾸준히 울려왔다. 하지만 정의당은 작은 덧칠하나로도 충분했을 많은 순간에 균열을 방치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어떤 조치로도 회복이 불가능한 지점에 이르렀다.

2017년 고 노회찬 의원에 대한 막연한 존경이 나를 정의당으로 이끌었다. 창당 정신에 나와 있듯이 정의당은 전태일의 정신과 노무현의 만남으로 시작되었다. 소위 땅콩 회항이라고 불리는 사건 이후 더 견고해진 노동에 대한 나의 가치관과 바보 노무현이 바꾸고자 했던 시대와 사회 변화의 정신이 만나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러나 그 막연했던 기대와 존경이 만들어낸 환상은 2019년 9월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를 권유받고 실제 당내 정치 활동을 시작하며 철저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정의당에 대한 회의. 배척의 문화

우선 절대 다른 인물과 생각을 품지 않겠다는 배척의 문화였다. 당시는 연동형 비례제라는 것이 논의되던 상황이다. 각 세력은 자기 몫의 파이를 빼앗길 수 없다는 생각에 강하게 휩싸여 있기도 했지만, 나는 그보다도 뿌리 깊은 문화적인 토대가 더 크다고 느꼈다. 당내 문화 밑바닥에는 오래된 운동권 문화의 잔상이 가득했다. 역사를 함께 향유하며 형성되어온 선후배만이 동료라는 동지의식의 컸다. 그리니 노동을 이야기 하거나 나의 경험에서 있었던 사회적 부딪힘을 이야기 할 때면 먼저 나오는 말이 ‘구속 한번 돼 보셨나, 어디 손가락 하나라도 절단된 적이 있으신가, 해고되어 보셨나’ 등의 말이었다. 긴 시간동안 여러 고초를 겪으면 형성된 ‘우리만이 적통’이라 생각하는 순혈주의가 있었다. 또한 나름의 전통 진보 정치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코스가 우선으로 보였다. 아마도 영향력이 있는 대학을 배경으로 학노연이나 총학등으로 운동을 시작하고, 투옥이나 지명수배 등을 겪으며 자연스레 사회운동에서 정치 영역으로 들어온 이들만 누리는 정통성이 중요하다 여기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것은 다수가 경험할 수 없는 소수의 특수했던 상황 아닌가. 이런 것을 더 우월하다 여기는 태도는 진보 정당이 비판하는 기득권의 엘리트 의식과 다를 게 어디 있겠는가. 

또한 소위 말하는 운동을 진행하며 축적해온 지식에 대한 지적 우월주의와 우리는 항상 옳다고 자신하는 정치적 올바름이었다. 당내 총선 후보가 되고나서 당내 활동가 그룹에서 소위 말하는 강연을 요청했다. 그 자리에서 땅콩 회항과 노동자의 권리를 주제를 이야기하였는데, 강연 중 여승무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그 순간부터 참석자 몇 명의 노동자를 여성과 남성으로 나누는 단어 사용에 대한 지적이 시작되면서 강연을 마치지도 못하고 해명하라는 요구에 대답하는 것으로 그 시간을 마쳐야 했다. 그러니 시민을 가르쳐야 할 계몽의 대상으로 보고 이끌어야 할 대상으로 대하게 된다. 이 시대만큼 진보적인 시대가 언제 있었던가. 손 안의 스마트폰 하나로 전 세계 시민들과 정보를 실시간 공유하는 현실에 눈을 감았는가.

2019년 11월 13일 정의당 박창진 국민의노동조합특별위원장(가운데)이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에서 열린 제49주기 전태일 열사 추도식에서 추모객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의당에서 노동이 사라졌다

정의당 당원 칠할 정도가 40대 이상의 남성이고 여러 차례 걸친 설문 조사에 정의당에게 가장 기대하는 것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물었을 때, 다수의 답 또한 노동이다. 그리고 정의당 스스로도 노동자를 위한 당이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많은 시민과 정의당 지지자들조차도 정의당에서 노동이 사라졌다 말한다. 기대하는 모습과 실제가 다르면 그 실망은 배가 되기 마련이다. 많은 시민들이 정의당은 이제 여성, 청년 등 지협적 의제만을 다루는 당이라고 인식한다. 그렇다고 정의당이 하는 수많은 정치 활동에서 노동이 사라지거나 수적으로 줄어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왜 많은 이가 정의당 활동에서 노동이 사라졌다고 말하는가. 

달라진 노동 현장, 구태의 정의당

어느 순간 당내 활동가들의 삶 자체가 실제 노동과 멀어진 것은 아닐까? 22년을 대기업 노동자로 일한 경험으로 당내에서 노동관련 활동을 하고자 한다 했을 때 당내에서 제일 먼저 들은 이야기가 ‘파업을 해봤냐, 투옥이나 해고를 당해봤냐’였다. 현재도 열악한 노동은 존재하고 노동권 침해와 산재사고와 사망이 여전하지만, 노동 현장은 이미 수십 년 전의 환경과 완전히 달라졌다. 이런 현실을 인정하지 않다보니 자신들이 겪은 오래되고 낡은 역사 속에 노동을 대입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결국 정의당이 내세우는 노동이 과거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다수 시민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다 보니 정의당이 내세우는 노동계 인물조차도 실제 노동 경험보다는 겉모습에 치중해 노동자의 유니폼 입고 ‘저 노동해요’하고 외치는 모습은 아니었을까. 시민은 정치인들 생각 이상으로 현명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가짜와 진짜 조차도 구별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이런 착각은 어설픈 이미지 정치로 시민을 설득할 수 있다는 착각에 이르게 만든다. 결국 정의당도 당내 강경파의 목소리와 일부 팬덤의 목소리에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편향이 빠진 것은 아닐까.

정의당에는 아직도 시민이 우리를 제대로 몰라주니 억울하다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우리가 언제 페미니즘만 했나요. 우리는 노동과 시민의 삶을 위한 활동을 더 많이 했어요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실제로 그러하다. 하지만 겉모양만 남은 노동 활동과 활동 가짓수만으로 어필해 온 정치는 공감을 얻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다수 시민은 오히려 파격적 이미지 정치로 대중에게 어필했던 퍼포먼스들만 뇌리에 남게 되었다. 내 삶과는 멀어 보이는 의제만 다루는 정당으로 각인하게 된 것이다.

간판이 아니라 본질을 바꾸어야

비대위를 구성하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정의당의 모순시대는 그 끝을 모르는 것 같다. 본질을 바꾸려는 의지는 보이지 않으며 ‘변하겠다고, 믿어달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누구도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솔직히 대부분은 시민은 관심조차 주지 않는다. 정의당 비대위가 추진할 첫 번째 혁신 조치가 중앙당사 이전이라 한다. 겉모습만큼 바꾸기 쉬운 것이 어디 있으랴, 쇼핑 좀 하면 스타일 바꾸기는 능히 가능하고 헤어스타일만 바꿔도 다른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본질에 문제가 있을 때 이런 겉모습 바꾸기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어느 우매한 식당 주인이 우리 음식이 맛없어서 손님이 줄 서서 들어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식당의 위치가 안 좋아서 그러는 거야 하는 것과 같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스마트폰으로 땅끝마을 토굴 속 맛집이라 하더라도 본질이 매력적이라면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는 시대가 아닌가. 시스템이 변하려면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바뀌어야 할 사람들이 기득권을 내려놓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 할 때 변화는 요원하다.

이런저런 감성적인 메세지와 이미지 변화로 당 안팎의 원성이 수그러지기만 기다리는 기만전술 같아 보이기까지 한다. 이런 하급 기술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야한다. 문제의 핵심은 당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인물들이다. 물론 그 뒤에는 각 계파의 자리 보존 욕망과 이당의 권력을 천년 만년 누리기 위해 기획을 책동하는 이들의 꺼지지 않는 욕망도 있다. 그러다보니 여전히 내 탓보다는 남 탓에서 비호감의 이유와 실패의 이유를 찾고 있는 것이다. 

경청에는 실천적 행동이 전제되어야

항공사를 다닐 때 일이다. 입사 교육 당시 항공사 서비스 품질에 불만이 생겨서 화가 난 승객 대응 매뉴얼에 ‘경청하기’라는 내용이 있었다. 그래서 항공사 귀책사유로 불만이 발생한 승객의 이야기는 교육 때 배운 대로 더욱 진지하고 정중하고 잘 들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오히려 승객이 더 크게 불만을 제기했다며 징계를 매번 받는 일이 반복되었다. 뒤늦게 한 선배가 그건 회사가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 할 때 생기는 경제적 손실이 싫어서 실제 해결은 회피하고 애꿎은 승무원들을 고객 불만 해결에 갈아 넣는 방식이라 설명해서 뒷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노동자를 희생하여 불만 고객을 기만하는 나쁜 행위였던 것이다. 실제 행동이 전제되고 해결하려고 하니 잘 경청해주는 것으로 기대했는데 그 이후 문제 해결을 위한 실천적 조치가 없으니 고객들은 불만이 가중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사악한 자본이 엉뚱한 곳에 책임을 전가 시키는 방식이었다. 경청은 분명 훌륭한 소통의 기술이다. 그러나 반드시 경청에는 실천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행동이 뒤따른다는 것이 대전제이다. 경청을 본말전도나 책임전가의 얄팍한 수단으로 이용하게 된다면 더 큰 신뢰를 잃게 되는 것이 이치이다. 지금 이 소멸의 시간에 진정으로 해야 할 것은 실천적 행동뿐이다.

인연주의, 동지 우선주의, 연고중심 주의, 고루한 선후배 관계, 그리고 막연히 잘 될 거야라는 근거 없는 무한 긍정 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감성이 아닌 이성이 필요한 시기이다. 그래야 겨우 숨구멍 하나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지 못하면 다음 시간은 없을 것이다. 

2018년 11월 21일 박창진 대한항공 전 사무장이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입법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눈물나게 고마웠던 시민들의 목소리

이 글이 나가면 아마도 당이 위기이니 ‘그만 들쑤셔라, 입 좀 다물어라, 당을 위한 선당후사도 모르시냐’는 반응이 난무 할 것이다. 아래층에 불이 나서 연기가 피어오르는데 체면 치례 하느라, 내 몫만 챙기느라 모두가 침묵해서 오늘의 이 사태에 이르렀다는 것을 더 이상은 알고도 모르는 척 할 수 없다. 혁신이든 재정비이든 다양한 의견의 수렴도 하지 않고 또 그 시민들의 목소리가 가르키는 방향도 따르지도 않겠다면 어찌 재정비와 혁신이 달성될 수 있을 것인가. 더더군다나 시민 대중의 투표로 권력을 위임 받고 존재가치가 인정되는 정당이라는 조직이 말이다. 정의당의 엘리트주의가 다수 시민의 목소리를 덮지 말기 바란다. 시민의 목소리를 모르고 하는 소리 취급하다 보니, 그동안 각종 게시판과 뉴스에 달린 댓글 속에 표시되는 민심의 경고등을 그냥 상대 진영의 여론조작 정도로만 취급해 온 것 이다. 민심을 내 방식대로 유리하게만 해석하는 ‘정신 승리’는 종국에 시민들로 하여금 정의당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까지 의문을 가지게 만들 것이다. 더 이상 침묵이 선당후사의 마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 존립의 위기에 더 다양하게  목소리가 나오고 논의되고 실천으로 이어지는 것이 당이 되살아날  길이라 믿는다. 현재 정의당은 다수의 침묵 속에 위선의 따가운 눈초리를 견뎌내며 고심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의 용기가 철저하고도 절실하게 필요하다.

이번 지선에서 냉혹할 만큼 차가워진 시민들의 눈길을 선거 현장 곳곳에서 마주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눈물 나게 고마웠던 진심 어린 목소리, ‘제발 정의당이 진보정치의 바른 길로 가 주세요. 힘없는 약자들의 대변자가 되어주는 길로 가주세요’라고 말하는 시민들이 있었다. 분명 우리가 대변해야 할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수많은 이들 존재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생존이라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고통을 감내하고 조직의 생존을 위해 소중히 여기는 것조차 버릴 줄 아는 ‘고육계(苦肉計)’가 절실하다. 


글쓴이 박창진은대한항공 객실 승무원 출신의 노동운동가이자 현 정의당 부대표이다. 경남 거제에서 태어나 자랐고 부산 동아대학교를 졸업했다. 어릴 적부터 뱃사람인 아버지가 타지에서 보내온 엽서를 보며 먼 이국을 동경해오다가 우연히 접한 항공사 모집 공고에 매료돼 대한항공에 승무원으로 입사했다. 땅콩회항 사건의 직접 피해자이자 내부 고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