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형규 전 삼성전자 사장은 4년 전 “미·중 무역분쟁이 한국에 기회”라는 의견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2018년 9월 11일 인터뷰 바로 가기) 다들 한국 경제 위기론을 애기할 때였다. 삼성에서 반도체 개발로 사장이 되었지만 이후 종합기술원장, 신수종 TF팀장 등을 역임해 산업의 미래에도 조예가 깊다.  임 전 사장을 다시 호명한 건 반도체 인력난의 진실게임 때문이었다. 정말 인재가 부족한가? 왜? 어떻게?를 듣기 위해서다. 인력난 때문만은 아니지만 요즘 삼성전자 주가는 힘이 없다. 임 전 사장은 반도체 산업 초기에는 오너의 추진력, 리더십이 가장 중요했지만 최고 수준으로 자리 잡은 지금은 국제 환경, 양질의 인재, 정부의 지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미국은 세계 반도체 산업의 건물주이고, 한국은 세입자이며 앞으로도 공존의 관계를 유지해 나가야 한다’는 해석은 매우 독특하다. 국립외교원 김양희 교수(경제통상연구부장)의 짧지만 날카로운 질문 덕에 <한국 반도체 산업사> 강의 같은 인터뷰가 나왔다. [편집자 주]      

✔ 오너 경영인의 빠른 판단과 추진력이 첫 번째 발전 요인✔ 추격하는 일본 경제에 불안 느낀 미국의 대한 우호 정책✔ 부지, 해외 인재 확보, 병역 특례까지 전방위적 정부 지원✔ 최근에는 김대중 정부 이후로 인재 확보 위한 정책 전무해✔ 의대와 플랫폼 비지니스로 빠지는 이공계 인력 반도체로 끌어와야✔ 우리도 경제적 보상과 사회적 대우 올려 우수 인력 확보해야

임형규 전 삼성전자 사장이 2020년 6월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모인 여야 국회의원 모임에서 우리나라의 반도체 산업에 대해 강의하는 모습(사진:연합뉴스)

김양희(이하 김): 반도체 하면 요즘 인력난이 이슈다. 현재의 산업 구조를 유지하려면 우수 인재가 계속 들어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임형규 (이하 임): 그에 앞서 한국 사람들이 왜, 어떻게 반도체에 성공했는지 얘기할 필요가 있다. 그간은 삼성이라는 제조업체 중심으로 이야기하다 보니 회장님 성공 신화로 이어졌다. 맞는 말이지만 다는 아니다. 왜 성공할 수 있었는지 분석이 모자라다. 

한국 반도체 성공의 첫 번째 비결: 오너의 리더십

김: 회장의 리더십도 있지만 다른 요인도 많다는 얘기 같다. 어떤 것들이 있나? 

임: 물론 산업 도입의 초기에 우선 가장 큰 역할은 오너들의 리더십이 맞다. 고 이병철 회장은 원래 타고난 사업가이고, 그 아들인 이건희 씨도 대기업 회장치고는 몸 사리는 스타일이 아니다. 미래에 필요하다 싶으면 과감하게 베팅을 하는 분이다. 조용하게 현상 유지하는 게 아니라. 꼭 반도체를 잘 알아서 그런 건 아니지만 ‘반도체는 (필생 사업으로) 해야 되겠다’고 결심을 한 거지요.

삼성이 워낙 좋은 인력이 많은 게 큰 도움이 됐다. 시작 단계부터 어떻게 해야 성공할지 고민하면서 사람을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1974년 부천에서 한국반도체를 인수하고, 여기서 인재를 양성하는 동시에 재미 과학자들을 영입했다. 삼성의 리더십으로 잘 짜인 초창기 프레임이 반도체 성공의 첫 번째 요인이다. 이런 이야기는 요새 동아일보 허문명 기자가 쓰는 이건희 평전에 비교적 잘 나와 있다. 하여튼 삼성그룹의 리더십은 분명히 중요했고 두 번째는 우리가 반도체 사업하기 좋은 환경이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미국의 반도체 사업의 세입자로서 한국의 공간이 있었다. 

2004년 삼성 반도체 사업 진출 30년 축하 행사에 참석한 이건희 회장. (사진: 연합뉴스)

미국이라는 기술 문명과 호흡이 잘 맞는 세입자

김: 미국 역할론이란? 

임: 미국은 21세기 문명의 창시자다. 20세기의 항공기, 전신 전화에 이어 사무용 컴퓨터, 개인용 컴퓨터, 인터넷, 반도체, 정보혁명이 다 거기서 나왔다. 그걸 우리에게 개방하고, 유학생 받아주고, 초기 제품 구매해주었다. 처음에는 일본이 앞서고 한국이 뒤에 가면서 미국이 메모리반도체 같은 것 같이 개발하고 구매해줬는데, 전반적으로 일본 경제가 커지니까 부담을 느낀 미국이 무역 전쟁을 벌였다. 결과적으로 일본을 내려 앉히고 한국을 끌어준 측면이 있다. 

김: 1985년 플라자 합의로 대표되는 미국의 일본 때리기가 있었다. 한때 일본이 세계 1위 경제 대국이 된다는 재팬 애스 넘버원( Japan As Number 1)같은 책이 나올 정도였다.  

임: 산업적으로 성공하는데 환경이 굉장히 중요하다. 중국은 그게 없어 우리하고 차이가 나는 것이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기술문명을 만든 큰 건물주가 있으면 우리는 그 세입자라고 보면 된다. 입주해서 그 건물의 지붕 아래, 기술 프레임 안에서, 집을 지켜가면서 열심히 했던 거다. 일본은 너무 빨리 크게 자라서 여러 차례 견제 받다 내리막길에 접어든 것이고, 중국은 세입자가 덩치만 믿고 룰도 잘 안 지키면서 밀고 들어오니까 미국이 문을 싹 닫아버리는 거다. 최근 통상 마찰의 본질은 그런 거라고 본다. 우리 반도체 산업에는 이처럼 중국한테 없는 여러 가지 환경적 이점이 있었다. 

부지, 해외 인재, 병역 특례 등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세 번째는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박정희 정권 시절에 이공계를 엄청나게 키웠다. 나의 고교 시절엔 문과 두 반, 이과 여섯 반이었는데, 이후 서울대 공대 정원을 8백 명으로 확대하고 또 카이스트, 과학원이라는 걸 만들어 가지고 최고의 학생들을 가르쳤다. 김충기 교수님은 서울대 전기과, 컬럼비아대 석사, 박사 하신 분인데, 1975년부터 2008년까지 카이스트에서 가르치셨다. 실리콘밸리에서 바로 오고, 진짜 제대로 반도체를 배워 오신 분이다. 나도 서울대 공대를 나왔지만, 반도체에 관한 진짜 틀은 카이스트에서 김 교수님에게 배웠다. 그때 카이스트 대단했다. 서울대 공대가 학년당 8백 명, 여기에 물리, 화학 등 이과대 전공자 한 4백 명 합쳐서 서울대 이공계가 천 몇 백 명 되는데, 카이스트에서는 이중 석사를 한해에 딱 1백40명 뽑았으니까 어느 정도인지 알겠죠. 여기에 지방 대학에서 일등 한 명씩 오고요. 그런 식으로 해서 엘리트 교육을 했다. 

다음으로 정부의 지원이 있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욕을 많이 먹어도 반도체 육성에 큰 역할을 했다. 1983년도에 이병철 회장이 실리콘 밸리 가 보고, 일본 가 보고 이제 반도체 해야 되겠다 생각했어요. 이쪽이 미래에 유망하다 느낌이 왔는데, 반도체 하겠다고 기흥에 단지를 만들었다. 계획에서 착공까지 딱 7개월이 걸렸다. 부지 선정하고, 인프라 깔고. 요즘 같으면 어림없다. 30만 평 부지에 첫 공장을 짓는데, 정부가 대폭 도와준 거지요. 

1984년도부터는 1년에 150명 정도 병역 특례를 줬는데, 지금 대략 환갑 정도 된 그 사람들이 오늘날 삼성 반도체의 주력 기술자들이다. 일 년에 1백50명쯤 한 3년간 들어왔으니까 몇 백 명은 특례 준거죠. 얘들이 그야말로 군대에서 하듯이 밤새 일했다. 맨날, 월화수목금금금, 매일같이 십 년 정도 하니까 도가 트인 거다. 

정부가 그 뒤에 이제 통상 마찰, 안티 덤핑 문제 같은 게 불거졌을 때 역할을 많이 했다. 그때 상공부에서 덤핑제소 건과 특허 제소건 풀려고 정부 차원에서 미국과 얘기를 많이 했다. 그런 게 다 백그라운드 돼서 삼성과 한국의 오늘날 반도체가 있는 거다. 국제 환경, 국가의 인프라 서포트, 사업 주체들의 어떤 스마트한 의지 그 세 가지다. 

탁월한 민간 리더십 부재로 2% 부족한 중국 반도체

김: 중국은 앞으로도 어려운가?  

임: 중국은 이야기가 좀 다르다. 중국도 원래 인재는 엄청나게 키웠다. 정부가 강력한 의지도 있고. 5~6년 전부터 칭화대니, 중국과학원 같은 데에서 인재가 우리 10배씩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그 사람들한테 부족한 거는 미국이라는 환경이다. 하나 더 꼽으면 리더십의 부족도 있다. 제가 5, 6년 전쯤에 중국 반도체 업계나 주요 제조업체 리더들을 다 만나 봤다, 중국 정부가 글로벌 플레이어로 육성하려는 칭화유니나 SMIC 고위층들도 다 만나봤는데, 그때 SK 부회장으로서 하이닉스 사업과 연관해 많이 만났다. 이야기를 쭉 들어보니 그때도 중국은 누가 해야 되나, 즉 누가 대표주자가 되어야 하나 이거 가지고 많이 논의 중이었다. 중국 공산당은 돈도 있고, 반도체 육성에 대한 강한 의지도 있는데, ‘반도체는 내가 맡아서 하겠소’ 하는 사업 주체나 사람이 없는 거였지. 

삼성 같은 게 없었다. 예를 들어 알리바바의 마윈이나 화웨이의 런정페이같은 사람들이 반도체를 하면 완전히 다르게 했겠지. 리더십도 있고 추진력도 있고, 중국은 거대한 시장이니까 저절로 몇 년 안에 대형업체도 될 것이고. 그런데 반도체는 돈과 인재를 초집중해서 10여 년씩 밀어붙어야 하는데 그때 시점에서 민간이 하기에는 매력이 없고, 정부가 하기에는 자율성이 모자라고. 사업가 입장에서 볼 때는 자기 거라야 자기가 마음대로 하는데, 정부에서 돈 받아가지고 그게 되나. 

중국 정부도 그런 대표 사업가를 구하려고 애를 쓰고 있더라. 그때 이야기는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중국의 경쟁력을 높인 사업가를 비롯해 몇 분이 있었다. 그분을 만났더니 ‘당과 정부에서 나보고 하라는데 못하겠다’고. 자기 너무 고생했다고. ‘제가 다 이해한다’고 했다. 나 자신도 반도체 하다 진이 다 빠졌기 때문에 너무 잘 알지. 

중국 국립 칭화대가 설립한 반도체 회사 칭화 유니. 2021년 파산 신청에 들어갔다. (사진:셔터스톡)

또 다른 시도로 칭화유니의 자오웨이궈 회장 이런 친구도 있는데 완전 비즈니스 맨이다. ‘돈으로 기술 사자’는 식으로 반도체 기업 M&A에 엄청 열 올리다 미국에 딱 걸려서, 지연과 제재를 반복하고 있는데. 결국 리더십 문제다. 어쩌면 이건 공산주의 체제의 문제다. 당이나 정부가 할 수는 없고, 민간은 자율성을 확보한 상태에서 10여 년 초집중하기 어렵고. 오히려 철강이나 자동차 이런 거는 정부 주도로 공기업에서 할 수 있는데. 기술과 자본의 흐름이 느리니까. 

반도체 산업의 특징: 초집중, 빠른 기술과 자본 흐름

김: 얘기하다 보니 반도체 산업의 특징이 차례로 나오는 것 같다. 초집중, 기술과 자본의 흐름이 매우 빠른 산업.   

임: 반도체는 계속 빠른 기술 변화에 대응해야 하고, 자금과 엔지니어의 투입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그래서 한번 늦어지면 영 따라잡기 힘들고. 중국이 늦어진 이유다. 거기에 미

국이 견제하고. 중국 반도체가 정부의 장려에도 불구하고 고전하게 되는 이유가 그런 데 있다. 

김: 미·중 전략적 경쟁이라는 구조적 요인이 계속될 것 같다. 앞으로도.

임: 시간이 지나면 중국도 엔지니어들은 내부에서 올라올 거다. 오래 하다 보면. 미국에서 자라서 거기서 시작하고 10년, 20년쯤 익힌 기술자들이 합류해 리더십을 보여줄 것이다. 삼성의 역사도 초창기 10년은 미국에서 온 사람들이 주도하다가 그 뒤에 내부에서 자란 사람들이 쫙 올라갔다. 중국도 이제 제대로 하기 시작한 지 한 10년 가까이 돼 가니까, 밑에서부터 서서히 올라오지 않겠나. 지금 35세, 40세쯤 된 친구들을 끌어올리는 거지. 하지만 중국엔 이건희나 삼성그룹 같은 조직이 없다. 그거 어떻게 해결할지는 나도 궁금하다. 

반도체 산업 발전은 그 세 가지, 즉 국제 환경, 국가의 인프라 서포트, 사업 주체들의 스마트한 의지가 중요하다. 이 흐름이 일단 만들어지면 리더십은 덜 중요하다. 지하철 시동이 한번 걸리면 전기소비가 덜 들어가듯이. 이재용 부회장의 부담은 이병철, 이건희 회장보다 덜  한 거지. 그렇다고 부담이 가벼운 건 아니다. 아버지 때보다는 삼성의 위상이 나아졌지만,  파운드리 분야의 경쟁자는 더 강하다. 여전히 인재를 모으고 잘 등용하는 것, 인재를 통해 기술 개발에 최대한 앞서가는 것. 매우 중요하다. 이번에 유럽 출장 마치고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기술”이라고 하는 이야기 듣고 마음이 아주 좋았다. 올바른 방향이다.  

지금 가장 큰 요인은 연구개발 현장에 인재가 지속적으로 공급돼야 한다는 점이다. 미국은 한국 반도체에 여전히 우호적이거나 전보다 더 우호적인데. 편 짜서 세계시장에 같이 가자는 거니까. 

연구개발 현장에 인재가 부족한 것, 이게 문제다. 정부도 김대중 대통령 이후로는 이 문제에 있어 손 놓고 있다. 정부에 대한 지적의 목소리가 약하니까 자기들이 잘하는 줄 안다. 과학고 ,카이스트 이런 시스템이 인재공급을 해줬는데 이공계 우수 인재가 점점 의대나 플랫폼 기업으로 빠지고 있다. 큰 고민이다. 한때는 한의사들로 많이 빠졌는데. 이과 신입생 비중을 현재보다 40%쯤 늘려야 한다.  

김: 인재의 중요성에 공감한다. 중국이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이는 이유도 알 것 같다. 산업 생태계 측면에서의 인프라 구축은 인재만큼 중요한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나? 재작년 일본의 갑작스런 부품, 소재, 장비 수출 제한 조치와 관련해서 생각해보자. 한국의 소재·부품·장비 산업은 삼성이 지금 같은 성공을 거두는 데 얼마나 기여했나?   

전방 산업이 강하면 소재와 장비는 덩달아 발전해

임: 원래 전방(前方) 사업이 발달해야 소부장같은 후방 산업도 발달한다. 일본도 소부장이 강한 이유는 옛날에 일본이 전자, 반도체가 강할 때의 유산이다. 그때 키워준 장비업체니, 소재 기업 이런 게 있는 거다. “우리나라는 소재가 약하다”, 이런 소리는 맞지 않는다. 전방 산업이 없는데 어떻게 소재산업이 발달하겠는가. 어찌 보면 소재는 별거 아니다. 위의 산업이 발달해서, 즉 자동차 전자 산업이 발달해서 수출 많이 하고 부품소재 많이 구입해주면 발달한다.  

김: 동전의 양면처럼 삼성과 소재 부품 산업이 같이 발달해 왔다?  

임: 삼성 때문에 소재 산업이 컸다고 표현하는 게 정확할 것 같다. 그렇다고 삼성이 한국의 소재산업을 키워줄 생각으로 그렇게 된 건 아니다. 어떤 폴리시(policy)였냐면. 우리가 처음 반도체 할 때, 삼성그룹 전반적으로 ‘한국 애들 잔뜩 데리고 어떻게 우리가 세계 경쟁을 할 수 있느냐’는 분위기였다. 즉 삼성 텔레비전 사업부는 글로벌 1등 하는 부품기업하고 협력해서 텔레비전에서 1위를 하는 게 목표지, 삼성 반도체 사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모든 걸 자기 사업에 최적화를 시키는 거지, 계열사라고 봐주고 이런 거 없었다. 하물며 외부 부품 소재 업체야. 물론 옆에 있다 보니까 서로 정보는 오갔겠지만, 그게 살아남는 방법이었다. ‘반도체도 마찬가지고 장비, 소재, 모두 글로벌에 가장 잘하는 놈을 키워라.’ ‘반도체 부문은 반도체만 잘 만들어! 소재 뭘 쓰느냐 이런 거 걱정하지 말고.’ 이렇게 쭉 해왔다. 하다 보니 이제 따라오는 ‘애’들도 있고 이제 좀 비슷하게 만드는 ‘애’들 있으면 써주는 정도다. 

그런 거지, 굳이 삼성 반도체가 소부장을 키우고 이거는? 아니다. 정부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하다가 삼성 반도체 경쟁력이 떨어지면 안 된다. 정부는 물론 같이 끌고 가려 하지만 실제로 그것도 부품소재가 어느 정도 따라와 줘야 가능한 거다. 일단 기본은 그거고, 그러다 보니 국산도 많이 사주고. 한국이 소재 쪽은 좀 올라오지만, 장비는 아직 멀었다. 

소재는 많이 발달했으나 장비 면은 아직 취약

김: 그러면 일본의 수출 규제에서 한 번 막히고, 지금은 또 미국이 웬만한 건 자국에서 생산하겠다(reshoring) 하고. 그간은 필요한 소재를 해외에서 충분히 공급받았는데, 공급망 혼란 속에서 삼성이 현재의 구매정책을 그대로 유지하는 건 문제 아닌가. 

임: 소부장 중에서 소재보다 장비 부분이 더 취약하다. 장비는 이미 글로벌하게 고도화된 스시템에서 생산되고 소비된다. 한국이 장비 분야에서 취약한 이유는 이 분야가 중소기업 영역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주 작은 비즈니스 영역은 아니지만. 제가 2000년대초 기술  총괄할 당시에 장비 제조 진출을 검토한 적이 있었다. 그때 대부분이 반대해 못했는데 이유는 장비 제조를 중소벤처 산업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건 대기업에 안 맞다 이렇게 본 거거든. 우리나라 벤처라는 게 기술을 제대로 키운 회사도 몇 개 있지만 상당수는 상업 자본으로 출발해 대충 하다가 성장한 회사들이 많아서 어떤 깊이 같은 걸 느끼기 어렵다. 독일이나 일본의 장비 업체들하고 비교할 때 많이 나타난다. 중소기업이니까 기술개발과 시장개척을 위한 강력한 집중력을 확보하기 힘들고, 최고의 인재 유치에서도 밀린다. 

미국의 반도체 장비 제조회사인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Applied Materials)는 유별난 경우다. 거긴 크고 강력하지만, 기본적으로 여러 수많은 장비가 모여서 그런 거고. 장비 제조 분야에서는 글로벌 벽을 뛰어넘을 뛰어난 기술자라든지 창업자가 별로 안 보인다. 매출 1, 2조 한다면 일반에서는 큰 회사지만 반도체 분야에서는 그렇지 않다. 

한국이 삼성이라는 대기업의 경우는 인재와 자금력을 몰아넣어서 세계의 벽을 넘었는데, 그다음의 규모가 작은 산업에서 아직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이 삼성은 알아도 ‘원익’이나 ‘SEMES’ 같은 반도체 장비업체는 모르니까 가려 하질 않는다. 그러니 1백-2백 명 짜리 회사라 해도 진짜 전문가들이 모여 있는 회사, 이런 거 아직 못 만들어 내는 거다. 정부는 매년 중소기업 육성지원 대책 발표하는데...

김: 얼마 안 되는 이공계 인재를 삼성이 다 가져가서 중소기업으로는 안 흘러가는 것 아닌가.  

인구 3천만의 대만에서는 반도체가 최고의 산업이다. (사진:셔터스톡)

대만 중소기업에서 배우는 인재 확보의 교훈

임: 정부, 부품기업 기업주, 원청 또는 구매업체의 3자가 다 의지를 재점검해봐야 한다. 정말 1등을 하려 하는가? 대만의 중소기업에 인재가 가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일단 대만에서는 의대 진학이나 플랫폼 기업 입사가 인기가 아니다. 이공계 인력이 그 분야로 빠져나가지 않는 것이다. 아울러 중소기업에서도 주식으로 보너스를 준다. 잘 나가는 회사에 신입사원으로 들어가면 액면가로 스톡 보너스를 주거든. 그러면 3년 차 된 친구도 몇억씩 버는 거지. 대만에서 팹리스가 잘 되는 것은 그런 이유라고 본다. 나라는 작더라도 인재가 특정 분야에 굉장히 집중되고 있다. 그게 대만의 경쟁력이다. 

김: 한국 같은 인구 5천만 정도의 중간규모 국가에서는 전략산업에 인재를 몰아야 한다는 주장 같다.  

임: 대만은 인구 3천만인데 다른 산업이 없다. 우리는 너무나 다양한 걸 하고 있다. 자동차, 조선, 다 한다. 결국 사람 숫자가 부족하다. 반도체는 해마다 몇십조 원씩 수익을 안겨주는, 대형 유전(油田) 같은 산업인데 이 정도 산업을 유지하려면 인재 공급이 더 많아야 한다. 국가도 정말 키우고자 하는 소규모 산업 분야나 중소기업군이 있다면 선택과 집중해야 한다. 다 살리기 위한 정책은 아무것도 안 하고 내버려 두는 거 하고 비슷하다. 

김: 오늘은 반도체 연구개발 인재 부족이 주제다. 해결책은? 

임: 당장 정부가 추진 중인 수도권 대학에서의 학과 증설 같은 대책이 실제로 실현되어야 한다. 이게 가장 크고, 외국에서 인재가 들어오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제가 2005년에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학의 한국인 교수 사무실을 찾아갔는데, 재미있는 걸 보았다. 복도에 교수들 이름 명패가 붙어 있는데, 미국 이름이 하나도 없고 죄다 중국, 한국, 인도 이름이더라. 

김: 내부 확충과 외부 영입의 동시 추진이군요.  

임: 눈을 넓혀 파키스탄, 인도, 베트남 친구들을 받아들이는 준비가 필요하다. 그들에게 한국 반도체 회사 입사는 장점이 있다. 그 나라 회사에서 익힐 수 없는 기술을 제 것으로 만들 수 있으니까. 한국 회사 취업이나 한국 근무는 메리트가 있다. 더 장기적으로는 북한 젊은이들도 대상에 넣어 생각하면 어떨까? 그들의 기초과학 실력은 괜찮다.   

반도체 엔지니어의 자부심을 올려주는 것 또한 중요

김: 아울러 할 일은? 엔지니어들에게 보상이 잘 돌아가야겠죠. 또?  

임: 직업으로서 반도체 엔지니어의 자부심을 올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의 열정, 소명감을 북돋우는 사내외의 응원이 중요하다. 한국 반도체 산업이 경제에 기여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그 엔지니어들은 서울대학병원의 의사 같은 사회적 인정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닐까.     

 반도체 기술자가 매력 있는 직업이라는 그림을 삼성이 더 많이 그려내야 한다. 정부도 지원해야 하고. 반도체 회사에 취직하면 돈도 많이 벌고, 세계 일류 기업들에 마음대로 뽑혀 갈 수 있고, 이런 성공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요즈음은 이전보다 돈은 더 주는 것 같은데 더 줘야 한다.